건축가 유현준은 책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학교건축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소신을 밝힌 적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학교 건물은 너무 획일적이고 규제가 많으며 변화에 대한 심리적 저항도 강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제외한다면 교사나 학교행정직원, 교장, 교육청등의 생각도 낡은 편인데, 그들 자체가 이런 획일적 학교만 경험한 탓도 있지만 구조적 문제도 많다. 일단 안전지상주의로 모든 안전을 학교에 떠넘긴다. 교육보다는 안전에 대한 책임이 앞서는 상황이니 창의적 설계가 나오기 어렵다. 또한 예산도 적다. 학교건물은 모든 공공기관 건물중 평당 건축비가 가장 낮았다. 거기에 규제도 많다. 안전이나 최소기준등에 대한 규제들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유현준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였고, 아이들의 창의성을 높이는 층고가 높은 건물, 학년에 진급할때마다 다양한 바깥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분리된 학년 건물들. 그리고 언제든지 바로 짧은 쉬는 시간이라도 운동장이나 놀이터로 접근할 수 있는 건축 등을 제시했다.
이번에 읽은 학교 건축 관련 책은 학교 공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다. 6명의 건축가와 교육정책관, 교직원의 학교건축 관련 경험을 담은 책이다. 우리나라는 학교건축이 정형화 되어 있듯 놀이터도 정형화되어 있다. 학교 건축이 일자형 복도에 같은 형태의 교실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면 놀이터는 미끄럼틀(slide), 그네(swing), 시소(seesaw)의 소위 3S 형태다. 그리고 역시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 놀이터를 지배한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의 놀이터는 위험의 제거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자연히 크기도 형태도 수준도 7세이하에 적합한 놀이터가 되고 만다. 하지만 책에서 제시하는 일본이나 유럽의 놀이터는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여기엔 안전에 대한 다른 생각이 자리한다.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안전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위험을 제시해 살아 있는 위험을 경험하고 스스로 안전하게 행동해나가는 것이 진정한 놀이터 안전교육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책에서 제시한 무려 8미터 높이의 미끄럼틀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놀랍게도 올라가는 계단도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한국 놀이터의 또 다른 문제점은 놀이터 공간의 대부분과 중앙을 정형화된 조형놀이기구가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양마저 무척이나 비슷해 문제인데, 그 기능과 놀이 용도가 정해져있다. 즉, 출발과 끝점. 놀이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는 획일적 사고를 유도하며 놀이법이 정해진 매우 지시적인 기구다. 놀이터에는 조형놀이기구가 없는 경우가 적합하며, 형태를 다용도 활용형으로 만들어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를 고안해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고안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놀이터는 공공성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놀이에서는 놀이의 형평성이 중요한데, 현재 우리나라의 놀이터는 공공놀이터의 부족으로 그 형평성이 무너지고 있다. 상당수 놀이터는 아파트에 위치하거나 실내테마파트형태로 존재하며 이들은 폐쇄적이고 비용을 요구한다. 때문에 책은 공공영역인 시청이나 구청 주민센터의 빈공간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어나가는 실내형 공공놀이터의 설립도 주장한다. 참신하다.
학교건물은 상당히 획일적이다. 일자형이나 기억자 건물이며, 조회대가 있고, 운동장이 있으며 교실은 천편일률적인 모양이다. 복도는 길게 일자형이며, 중앙현관은 권위적이고 대개 학생의 접근을 허용치 않는다. 최근 다양한 모양새의 건물도 짓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짓는 주체가 교육지원청으로 정해져 있고, 속도전으로 짓다보니 학교를 사용하는 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다양한 주체가 학교건물을 짓는다면 좀 개선될 것으로 책은 주장한다.
학교건물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학생들과 수업을 통해 이를 이뤄나가는 것이었다. 학생은 자신이 사용하는 공간의 주인이므로 마땅히 그것에 대해 주권을 가져야하는데, 이를 공간주권이라 한다. 그리고 이 공간주권에 대한 수업은 민주시민역량함양과 관련한다. 학생들은 이 프로젝트 수업을 거치며 먼저 자신들의 생활을 돌아본다. 어디서 놀았는지, 하루중 학교어디에서 시간을 보냈는지, 어디를 이용하고 가고 싶은데 그렇게 하기 어려운지. 이런걸 토대로 공간에대해 연수도 받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생각이 정리되면 재구성하고자 하는 공간을 정하고 이에 대한 공모전을 갖는데, 심사까지 전교생 앞에서 엄격하게 수행한다. 공모에 당선한 의견은 여러 현실 요건을 고려해 그대로 반영되거나 현실에 맞추어 다소 수정 반영되기도 한다.
교문을 새로 구축하는 사례가 나오는데 위와 같은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서 안을 정했음에도 갑작스런 소방법의 변경으로 새로 안을 구성해야 했고, 그 사이 정책 변화로 예산도 끊겨서 결국 실패하게 된 사례는 무척 안타까웠다. 이 작업을 학생들과 진행했던 교사는 레고로 교문을 만들 생각을 학생들과 하고 있다는데 정말 기대되는 모습이다. 레고교문을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중앙현관은 나무를 대어 미끄럼틀과 앉을 수 있는 계단 형태로 구축한 사례가 있었다. 권위적인 공간이 학생들이 얼마든지 쉬고 앉아서 놀며 책도 볼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중앙현관 내부가 바뀐 사례도 있다. 이 학교의 학교장은 학교의 부족한 유휴공간확보를 위해 교장실을 과감히 내주고 중앙현관에 통유리창으로 교장실을 새로이 만든다. 그리고 그 옆의 공간들은 학생들이 오가며 쉴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그리고 화초가 놓인 휴식공간으로 변화했다.
도서관의 사례들도 많다. 기존 도서관은 딱딱한 테이블과 의자에 사방에 책을 많이 넣는 구조였다. 하지만 학생들은 wi-fi가 되기도하고, 만화 코너가 따로 있고, 간단한 음료도 먹을 수 있는 자유로운 형태의 도서관을 원한다. 책에 등장한 사례들은 책을 도서관 사방 벽에 붙박이 장으로 담아내고 주변 공간을 눕기도 하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있는 형태로 구축한 사례가 나온다.
최근 학교 현장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과정의 혁신에 초점을 두고 있다. 수업에서 교육과정혁신 그리고 평가로 옮겨지고 이들의 일체화에 신경쓰는 일련의 흐름을 보이고 있는데 아직까지 교육공간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이런 공간의 재구조화가 이루어질때 학생들이 다니고 싶은 학교, 마음껏 노는 학교, 공부가 잘되는 학교, 그래서 창의적이고 역량을 갖출 미래 인재를 배양할수있는 학교가 완성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