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지음, 박규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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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きみ)が代(よ)は千代(ちよ)に八千代(やちよ)に
さざれ石(いし)のいわおとなりて
こけのむすまで
임금의 대는 천년만년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
 위의 것은 일본의 기미가요의 가사다. 우리 입장에선 기가막힌다. 한일축구중계마다 일본 선수들이 나름 비장미를 갖고 부르고 음악도 심상치 않던데 겨우 저런 내용이었다니. 국가라면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니 보통 혁명이나 국가의 건국이념이나 아름다움등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이건 철저히 한국인의 생각이다. 아마 다른 나라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하긴 하겠지만. 근데 책 국화와 칼을 읽어보면 저 짧디짧은 일본의 기미가요에는 사실 일본 국가의 사회구조를 관통하는 이념과 그 상징은 천황에 대한 관점이 매우 잘 드러난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 국화와 칼은 상당히 오래된 책이다. 저자가 1946년에 이걸 썼고 자신은 이미 1948년에 죽었을정도니 말이다. 2차대전 중 미국과 영국등의 연합국은 일본군과 싸우며 상당히 놀란다. 문화적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인데. 이녀석들은 좀처럼 항복이란걸 몰랐고, 천황만세라는 말을 하며 자살 폭탄 공격을 일삼기 일쑤였다. 굉장히 잔혹하여 적군의 포로를 학대하거나 잘 살려두지 않았고, 가는 곳마다 참상이었다. 그런데 막상 하나하나를 잡고 보면 생각보다 온순하고 점잖으며 교양이 있었다. 연합국은 일본 점령을 앞두고 그들을 용이하게 지배하기 위해 일본인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고 그들의 이런 모순점을 파헤쳐 제목자체에 드러낸 책이 바로 국화와 칼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에 오래 체류하며 그들의 일상과 일거수 일투족을 느끼고 공감하며 책을 써냈다. 그래서 책 내용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상당히 깊으며 오늘날까지도 상당히 통용되는 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일본이란 나란 기실 거의 변하지 않은듯 싶으니 말이다.

 

1. 일본의 사회규범이자 도덕법칙인 사회계층질서의 유지

 각 사회의 윤리체계나 문화는 인간이 자신의 생물학적 조건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들의 환경에 적응하여 생겨난 것이다. 자신의 생존과 번식이 최우선 과제인 생물은 처음엔 각개격파식으로 나아갔겠지만 곧 집단으로 협력하며 생활할 때 적응도가 높아지는 것을 발견한다. 이는 새로운 이타적인 행동양식의 탄생을 의미하는데 인간의 경우 이를 발전시킨 것이 윤리나 도덕의 시작이다. 서양문화권에서는 이런 기초적인 것에 기반해 기독교 윤리와 고대 그리스철학을 토대로 자신들의 윤리를 발전시켰고 동아시아에서는 토착윤리에 불교와 도교, 유교가 버무려져 윤리체계가 성립했다. 양자의 윤리는 비슷하면서도 다르지만 적어도 절대적인 원칙이나 규범이 있다는 저에서 공통적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동아시아에 속하면서도 일본의 규범이나 도덕은 상황윤리적이다. 즉, 자신의 사회관계나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올바른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일본 역시 유교윤리를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였는데 중국의 경우 인이 가장 중시되는 반면 일본인 인보다는 효와 충을 우선적인 원리로 삼았다. 중국의 인은 천자와 관료제의 전제가 되는 것으로 이들이 인을 올바르게 베풀때만 이들의 권력이 정당화된다. 하지만 인이 사라질 경우, 반란이나 민란은 이루어질수 있는 것이며 이는 실제로 무수한 왕조교체의 실제 원인이나 명분이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천황제는 영원히 유지되는 것으로 일본인들은 인의 이런 요소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본은 충과 효를 위주로 받아들여 자신들의 위계적 사회질서의 유지에 이를 적용시킨다. 위계적 사회질서를 모든 사람이 따르는 매커니즘이 바로 일본의 사회규범이다. 이는 모든 계층의 사람이 자신의 직분이나 신분에 맞는 행동과 생각을 해야한다는 것으로 일본인들은 이처럼 분수에 맞게 살때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일본인이 자신의 직분에 맞게 살게끔 하는 주요 원리로 온(恩)이 있다. 온은 상급자나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에게 받는 것으로 일본인은 이를 불편해하지만 마땅히 받아도 되는 것으로 여긴다. 온에는 가장 높은 것이 천황에게서 받는 것이며 다음으로 부모나 주군, 스승, 그외 사람들에게서 받는 것이 있다. 문제는 이 온이 죽을때까지 노력해도 만분의 일도 갚을수 없는 성질의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즉, 일본인은 평생 온의 굴레에 갇혀 상급직분의 사람의 명령이나 그들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온을 갚는 행위를 온가에시(報恩)라고 한다. 여기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기무(義務)이고 다른 하나는 기리(義理)다. 기무는 아무리 노력해도 갚을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으로 당연히 시간적 한계가 없어 죽을 때까지 해야하는 것이다. 천황이나 법률, 일본 국가에 대한 충, 효, 임무등이 해당된다. 반면 기리는 자기가 받은 온과 같은 양만큼만 같으면 되는 것으로 시간적 한계가 있어 해결이 가능하다. 기리는 역시 두 가지로 나뉘는데 세켄에 대한 기리,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다. 세켄에 대한 기리는 주군이나 가까운 친척, 타인등에 대한 것이며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는 타인에게 모욕이나 비난을 받을 경우 그 오명을 씻어야 하는 의무, 예절의무 등이다.

 이런 일본의 도덕률은 의무에 대한 극단적인 변제와 철저한 자기 부정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엄격하고 개인을 옭아메는 도덕률에도 일본사회는 오관의 쾌락을 적극적으로 허용한다. 여기에도 이중잣대가 적용되는데 위의 기리나 기무를 침해하지 않는 영역안에서라면 쾌락이 적극적으로 허용이 된다는 것이다. 일본이 성적으로 상당히 문란한 것은 어쩌면 이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같은 쾌락의 허용은 기무와 기리에 지친 일본인들에게 상당한 위안을 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일본인은 또한 하지(수치심)에 매우 민감하다. 이는 자신이 이름에 대한 기리를 다 못하거나 기무를 잘 지키지 못할 경우 타인으로부터 비판을 받으면서 생겨난다. 일본인은 법적인 죄의 중대성보다는 오히려 이 하지의 중대성에 무게를 둔다. 예를 들어 한 사무라이가 한 암살범으로부터 자신의 주군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는 그 암살범을 제거 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바쳐서 접근하기도 하고 각종 탈법과 위법, 비윤리적 방법을 동원해 마침내 그를 제거한다. 그러면 일본사회에서는 이 사무라이는 칭송받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하지는 일본사회의 도덕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외적 동인이 된다.

 

2. 일본이 사회계층질서유지를 최우선으로 삼는 이유

 정리하면 일본사회를 움직이는 규범은 결국 사회계층의 유지다. 일본은 이를 위해 중국의 유교윤리중 효와 충사상을 자신들의 사회계층유지의 맞게 번안해 온을 만들어내었으며 그 온을 실행하는 것이 기무와 기리다. 기무와 기리는 어쨌든 평생 갚기 힘든 것으로 사회피지배계층의 일본 국가 자체와 상층부를 위해 평생 노력해야하는 동인을 제공하며 이로써 사회체제가 유지된다. 온을 갚는 과정에서 일본인은 하지로 인해 혹은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로 인해 외적인 혹은 내적인인 강압을 받게 되며, 그래서인지 허용적인 쾌락의 추구로 잠시 위안을 추구하기도 한다. 재밌는 점은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어쨌어 이렇게 폐쇄적인 형태의 사회규범이 일본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이점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지 않은듯 한데. 그가 남긴 한줄에서 힌트를 얻자면 결국 안전이 아닌가 싶다. 베네딕트는 책에서 일본인들이 사회계층적 질서를 유지하고 거기서 맡은 바 기무와 기리를 할 때 안전을 느낀다고 말했다. 온을 갚는 행위의 목적이 자신의 안전확보에 있다는 점인데 결국 이것이 이 체제의 목적이 된다. 일본에 안전이 중요한 이유로는 두 가지 정도가 생각이 든다. 우선 그들의 자연환경이다. 지진과 화산활동, 태풍과 해일이 몸추지 않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당연히 끊임없는 불안을 느끼고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을 법 하다. 다음은 섬이라는 특성이다. 일본은 중국, 한국과는 달리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섬으로 고립되었다보니 각종 전쟁이나 사회적 동란에서 달아날 곳이 마땅치 않다. 실제로 중국이나 한국의 고대민들은 전란을 피해 서로의 나라로 이민하는 것이 잦았다. 하지만 섬인 일본은 도망갈 곳이 없으니 아무래도 안전확보가 더욱 어려웠고, 이로 인해 절대 변하지 않는 안정적 사회질서를 최우선으로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절대 변하지 않는 정치질서가 천황제였을 것이다. 실제로 일본 역사에서도 인간의 욕심으로 정권교체는 무수히 일어났지만 천황은 허수아비일지언정 변하지 않았다. 아무도 건드릴 생각을 하지 않으니 심지어 지금까지도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3. 일본의 이런 체계가 낳은 문제

 일본의 이런 사회유지규범이 낳는 문제는 사회의 보수성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계층유지를 위한 질서를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에서 그 사회질서의 붕괴는 일어날 수 없다.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이식받고 그토록 높은 국민소득과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민주화를 이룰수 없었던 요인이다. 사회계층 유지가 사회의 주 목적이다보니 민주사회에서는 보기 드물고 정치인들의 자리 대물림도 아직까지 일어난다. 문제의 아베도 기시노부스케의 외손자이며 무례한 발언을 일삼은 고노외상도 고노담화를 한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다음은 사회전체의 비윤리성이다. 일본사회의 윤리는 내면적 절대규범이 없다보니 상황에 따라 자신들의 올바른 행동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충의 최고점이 있는 천황이 전쟁수행을 명하자 그들은 옥쇄를 각오하고 실행하며 전쟁에 자신을 희생했고, 그 천황이 항복할 것을 명하자 바로 순한 양이되어 미국인들을 받아들였다. 즉, 사회기득권층이 내린 전체적인 판단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려 저항하던가 비판적 판단을 내리기 매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지금의 한일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내는 일본 시민은 소수일 수 밖에 없으며 일본이란 나라 자체가 언제든지 잘못된 방향으로 쉽게 방향타를 틀 수 있는 위험성을 내재하게 된다.

 

4. 이런 폐쇄성에도 메이지 유신이 성공한 이유

 일본사회의 이런 폐쇄성에도 그들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근대화에 성공한 것은 매우 의외의 일이다. 물론 사회계층질서의 유지를 위해 상층의 판단에 쉽게 따라가는 일본대중을 생각한다면 근대화로의 전환에 하층민의 저항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천황 폐하의 명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 방향을 전환할 상층부가 된다. 실제로 서구 세력이 접근하였을때 도쿠가와 막부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과 별 차이 없는 쇄국을 단행했다. 하지만 막부는 결국 전쟁에서 패하고 새로운 계층이 이자릴 차지 하게 된다.

 이들은 근대 이후 성장한 상인계층이었는데 이들은 사무라이 계층과 결탁해있었다. 일본의 사회질서는 그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계층간의 교류가 가능했는데 부유한 상인이 자신의 아들을 사무라이의 양자로 입적한다던가, 서로 통혼하는 방식이 가능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부유한 상인이 사무라이 계층이 될 수 있었고, 이로써 양계층은 결탁해왔다. 때문에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기존의 국가지배계층을 전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기득권이 유지된체 사회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되었다. 실제로 유신 정부는 근대화를 단행하면서 서구적 법개혁을 했지만 상층부의 기득권을 보장해주었다. 토지대장을 몰수하고 계급제도도 철폐했지만 다이묘들에게 기존에 받던 조세의 절반을 보장해주었고, 토지대장을 몰수한 시점에는 향후 그들이 받아야 했던 봉록을 일시불로 지급해주었다. 일부의 상류계층들을 자본주의가 시작한 시점에 이미 자본을 갖고 시작할 수 있었고 국가가 주도하던 산업을 불하받아 지금의 일본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다.

 즉,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회계층질서를 다른 방향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한국이나 중국의 근대화의 길패가 결국 사회지배계층이 결국 자신의 기득권유지를 위해 미적거렸던 것이 하나의 큰 원인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일본의 성공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어찌보면 일본은 뿌리부터 서구화를 이룬 것이 아니라 중국이나 한국이 주창했던 '동도서기'에 성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동도서기에 불과했던게 현재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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