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철학 - 이진우 교수의 공대생을 위한 철학 강의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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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철학사를 정리하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 책은 의심에 초점을 두어 정리한 책이다. 남들은 크게 의식하지 않거나 당연하게 여기는 부분에 대해 문제점을 갖고 자신만의 사상을 만들어간 철학자들이 등장하는데 총 10명이다.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드, 하이데거, 샤르트르, 비트겐슈타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벤야민, 포퍼, 아렌트다. 책 자체도 두껍지 않고 한 철학자당 짧게 두 항목정도의 핵심사안만 다루어 이해가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재밌는 책이었다. 인상적인 부분만 정리해보았다.

 

1. 마르크스

"자유로운 개인을 탄생시키면서 동시에 사회를 변화시킬 개인의 자유와 역량을 퇴화시키는 것이 현대의 패러독스다."

- 실제로 그렇다. 지금 사회가 딱 그렇지 않은가. 자본주의는 돈과 여가, 상품들을 주지만 딱 그걸로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종속시킨다.

 

"생산력 발전이라는 역사 과정은 마치 생산력을 가장 많이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계급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역사발전 과정에서는 지배적인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성장에 기여하기 보다는 오히려 장애가 되는 시점이 있다. 이 시기 생산력과 생산관계가 모순으로 치닫고 사회적 혁명의 기준이 싹트게 된다."

- 분배가 안정되고 사회정의가 나름 실현되면서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고, 다시 이 왕조의 지배층에 의해 분배가 뒤틀리고 불의가 커지면서 생산력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착취가 더욱 커져 다시금 망해고 새 왕조가 들어서는 중국과 한국의 왕조 교체공식은 이 통찰에 거의 합치한다. 왔다 갔다 하는 면도 있지만 생산력 발전이라는 측면으로 인류가 향해간다는 점도 부인하긴 어렵다.

 

2. 니체

"기독교는 사람들의 신앙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 항상 구체적 현실속의 궁핍과 위기의 비상사태를 만들어낸다."

"현실의 삶을 지옥으로 그려야 사람들은 천국을 기원한다."

"사람들은 허무주의가 기독교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고 하지만 니체는 기독교가 허무주의의 근원이라고 단언한다"

"인간은 특정 의도, 의지, 목적의 결과가 아니다. 자신의 존재를 어떤 목적에 전가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목적의 개념은 사실 우리가 고안한 것이며 사실은 없는 것이다"

- 신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철학자 답게 종교에 대한 독설이 강하다. 종교가 척박한 현실을 정당화하고 이로 인해 기득권의 유지를 돕는다는 속성에서 위 말은 정말 옳다. 현세가 아름답다고 하는 종교는 아마도 없는 것 같다. 종교의 없음이 사람들에게서 윤리와 존재의 이유를 허문다는 점에서 목표를 상실한 허무주의를 상실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보인다. 오히려 내적으로 그런 것을 찾을 필요도 없는데 찾으려하고, 그런 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종교를 찾는 다는 면에서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이 종교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역발상이 맘에 든다.

 인간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것도 아니고 목적을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발상도 좋다. 하라리가 인류3부작에서 지적해 많은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한 허구와 비슷하다고 본다. 삶의 목적, 가치, 등 여러가지는 행복해지고 오래 살기위한 본능을 충족하기 위해 결국 우리가 만든거고 사실 없는 게 맞다.

 

3 . 프로이드

"행복이 영원히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문명이 발전"

"개인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쾌락원칙을 따르나 이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공동체에 순응해야 한다"

"우리는 진화과정을 통해 너무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게 만들어졌다"

"프로이트에 세명제"

1. 인생의 목적을 결정하는 것은 쾌락 원칙의 프로그램이다

2. 쾌락 원칙은 행복해지기 위한 프로그램을 우리에게 부과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완수될 수 없다

3. 성본능을 목적달성이 금지된 충동으로 바꿈으로써 행복을 찾을 수 있다.

- 인간을 포함한의 목적이 결국 유전자 전달과 그를 위한 성공적 번식과 생존이며 행복은 그 과정에서의 부산물이다. 우리에겐 결코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지만.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우린 너무 행복해져서도 너무 불행해져서도 안된다. 경주마가 양극단에선 멈출것이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는 이를 너무 잘 파악한듯하다. 거기에 인간의 행복이란게 집단 생활을 시작한 시점에선 그리고 협력이 공리를 더욱 크게 한다는 점이 유전자에 반영된 이후로는 인간은 집단을 떠나선 정의되기 어려워졌다.

 프로이드의 세명제는 정말 완벽해 보인다. 세번째 것을 성본능이 아니라 그냥 그것을 포함한 일반적 본능으로 했다면 말이다.

 

4. 아렌트

"경제는 필연성을 해결하고 정치는 자유를 추구한다"

"정치는 난민이나 잉여처럼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단순히 행정적 기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동세계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정치다"

"잉여존재가 즉면한 진정한 위태로움은 경제적 궁핍뿐만 아니라 공동세계를 상실한 무세계성이다"

"제3제국의 악은 대부분 사람들이 그 악을 인식하게 되는 특징을 상실한 것이다"

- 지금은 경제와 정치가 분리되는걸 상상하기 어렵지만 저때만 해도 그리고 좀 전에도 학자들은 둘은 분리해야 마땅하다고 본듯하다. 자본주의가 본격화하며 경제가 정치를 잠식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현재 거의 모든 국가가 그러하고 경제적 실패는 곧 정권의 상실로 연결된다는 면에서 이런 우려는 타당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어느 나라건 정치가 잘 안되는건지도 모르겠다.

 사회 소외계층의 경제적으로 가난해질 뿐더러 자신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낼 공간, 그리고 정치를 통해 이들이 함께 나아갈 공동공간을 만드는게 중요하다는 주장도 인상적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록 이게 안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경제가 잘 나가다 어려워지면 우경화하여 이게 더욱 안되는 듯 하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발견했다. 정말 극악한 반인권적 행위에 대해 사람들은 국가나 법의 명령, 혹은 그걸 포장한 거짓말로 인해 악함에 대한 민감성을 상실하고 그 행위를 자행한다. 나치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까운 일본이 그러하다. 그들은 대동아 공영권이란 허황된 주장에 말려 대부분의 국민들이 한국과 중국을 서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논리에 묻혀 식민지배와 전쟁에 동조했다. 백여년이 지났고, 민주국가로 탈변했지만 무늬만 그런지라 여전히 자국 보수 우익의 논리에만 몰려 현재 갈등상황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 평범한 악이 되지 않으려면 꾸준히 공부하고 진실을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하긴 일본 탓만 하기도 그렇다. 우리도 여러번 잘못된 논리에 묻혀 잘못된 정치인을 뽑지 않았는가. 그가 우리 소외계층에게 한짓을 본다면 우리 역시 평범한 악이 된적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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