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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7년의 밤에 이어서 기대를 안고 정유정 작가의 최근작은 종의기원을 봤다. 7년의 밤이 주요 세 인물과 매우 현실적이면서 스산한 공간적 배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었다면, 종의 기원은 한명의 심리에 집중했다. 바로 싸이코 패스 유진이다. 싸이코 패스는 전 인구의 2-3%인데 그 2-3%중 탑 1%에 해당하는 싸이코 패스를 프레데터라 칭한다. 그리고 유진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다.
그치만 그는 생각보다 평범하다. 유진은 어렸을 적 수영선수를 하다 잦은 발작 증세로 포기하고 현재 로스쿨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아버지와 한살 많은 형은 어려서 사고로 죽고 어머니, 그리고 형을 무척 닮은 친구 해진과 동거중이다. 고아인 해진은 형과 너무 닮아서였는지 유진 어머니의 맘에 들어 양아들이 되었다. 유진의 집은 군도신도시로 해안가의 신도시며 아직 인프라 구축이 잘 안된상태다. 집은 25층짜리 아파트의 꼭대기 복층아파트로 복층 바깥쪽에 테라스가 있어 이쪽의 계단을 통해 출입문을 통하지 않고도 바깥으로 나갈수가 있다.
유진은 형과 아버지가 죽은 후부터 의사인 이모에게 처방받은 약을 달고 산다. 어머니와 이모는 유진에게 수영을 포기시킬 정도로 약을 중시한다. 하지만 유진은 약을 먹고 싶지 않다. 약을 먹지 않으면 신기하게도 감각이 매우 예민해지고 신체능력이 크게 향상되기 때문. 로스쿨 시험을 앞두고 합격을 위해 약을 며칠 거르던 유진은 운동삼아 외출했다 심한 발작 증세를 느낀다. 정신을 잃고 해진의 전화에 깨어난 유진은 심한 두통과 고통속에 피투성이에 헝클어지고 악마같은 외모를 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란다. 물론 집안엔 더한 광경이 그를 기다리고 있긴 했다.
책을 읽으면서 유진의 많은 생각과 내적 고뇌를 보게 되는데, 생각보다 매우 평범하게 느껴지는 면이 많았다. 작가는 어쩌면 평범한 악을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평범하지 않은 것은 여러 차례의 살인과 그 처리를 해내면서 그 과정과 자신이 처한 지경에 대한 고뇌만 할 뿐 피해자에 대한 연면이나, 죄책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타인이건 가족인건 말이다. 좀 그러도 차이가 있다면 살인하는 타인은 사물로 지칭하는 한편, 적어도 가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며, 더 많은 귀찮음이 다가와서인지 가급적 죽이는데 여러 망설임이 있다는 것 정도겠다. 이런 면 때문인지 소설에서의 악 유진은 오히려 7년의 밤의 악당 오영제보다 착해보이기 까지 하다. 분명 더 큰 악일진데 말이다.(하지만 그래도 오영제는 감정을 느끼고 왜곡된 사랑까지 하는 반면, 유진은 계산만 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더 악이다.) 세상엔 인간이 행한 악이 가득하고, 1시간마다 평균 18번의 거짓을 말하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악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을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