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철학
김진석 지음 / 개마고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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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가치가 홀로 역사적 변화를 가져오기 힘들 듯이, 기술적 요인이 홀로 역사를 망치는 것은 아니다. 인간 인식에 예속된 대상들을 지배하려는 기술에 서양문명이 크게 의존하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그렇게 영향력이 큰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차원들과의 얽힘 속에서만 비로서 현실적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한 예로 기술은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유발하면서 생산력을 확대하는 괴물 같은 ‘자본‘과 결합되면서 가공할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이 자본의 힘은 부정적인 양상을 띠는 것만은 아니다. 자본주의 발전 속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도시 노동자들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한다.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개인들의 폭발적인 의식과 갈망은 이제까지 어떤 사회도 만들지 못했던 문제도 양산했지만 동시에 개인들에게 매우 개방적인 상황도 만들었다.-117쪽

과거의 사유체계에 고유한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연구할 수 있고 또 연구해야 하지만, 다른 역사적 문제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그 개념들이 역사적으로 근본적인 문제라고 해석하는 철학적 오류가 사실 철학적 담론에 일반적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도‘가 그렇고 ‘무위‘가 그렇고 적지 않은 경우에 ‘자연‘도 그렇다. 서양의 ‘초월적 신‘이 그렇고 ‘이성‘이 그렇듯이.-123쪽

잘 알다시피 생태주의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후자가 근대적 산업 생산성의 진보와 발전을 믿는다는 점에서 서구의 근대적 역사관과 동일한 궤적 위에 있기 때문이고, 또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자연을 대상화하는 인간중심주의라는 점에서 서구적 인간주의와 비슷한 성향을 띠기 때문이다. 그 이유엔 한편으론 마땅한 근거가 있다. -129쪽

그러나 생태자연주의 혹은 생명자연주의는 생명과 자연을 순수한 조화와 공생의 공간으로만 이해한다는 점에서 근본주의적 성격을 가진다. 그 근본적인 이상주의는 순수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형이상학에 절대적 도덕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독선적이고 권위적일 수도 있다. 계급적 불평등이 핵심 문제이고 그것을 없애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은 점에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 단순하고도 독선적이었다면, 생명자연주의는 자연 혹은 생명에 대한 외부적 폭력이 핵심적 재난이고 그것만 해결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점에서 전자와 비슷한 꼴을 하고 있다. 왜 역사적 갈등(사회적, 정치적, 신분적, 종교적)과 자연에 대한 갈등이 상호작용 속에서 존재한다고 인정하면 안 될까? 자연에 대한 인간들의 맹목적 남용을 경계하고 조절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왜 자연과 생명을 어떠한 상처나 슬픔도 없고 어떠한 허망함과 잔혹함도 없는 조화로운 공간으로 상정해야 하는가?-130쪽

노자의 말들이 형이상학적으로 고도의 이념적 가치를 가졌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아무리 철학적 사상이나 이념이 초월적이고 이상적이라도, 아니 실제로 그러면 그럴수록, 그것은 오히려 공허하게 사용되거나 위선적으로 남용되기 쉽다. 실제로 노자의 이념들은 오늘날 너무 형이상학적 초월성에 기대는 경향을 보이며, 따라서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들이 착종된 영역에서 구체적이고도 실제적 지침으로 사용되기는 매우 어렵다. 서양사상의 꽃들인 플라톤적 이데아나 칸트의 절대적 도덕률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더 나아가 다른 사상과 비교하자면 매우 파격적이고 전복적인 니체의 사상도 그 자체로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철학사상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을 구체적인 현재적 주체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이다. 철학사상이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실천적 맥락 속에 들어가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140쪽

한번 비교를 해보자. 기독교가 먼저 생겼던 나라들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추상적이고도 광신적인 영적 구원주의에서 상당히 벗어나,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의무와 역할에 관심을 쏟는 편이다. 그에 비교하면 노자와 공자에 대한 김용옥의 해석학은 근본주의적 혹은 광신적 해석학에 가깝다. 그는 노자와 공자가 오늘의 세속적이고도 현실적인 사회에서 어떤 시대적 혹은 반시대적 방식으로 살고 또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민감한 주제에 주의를 기울이기 보다는, 가히 광신적이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 하나 하나를 선포한다. 성서의 성스러운 말씀을 해석하는 자의 교부의 열정과 표정으로 그는 얼마든지 평범한 말일 수 있는 구절도 신성화한다. 사실 노자와 공자의 말 중에서 꽤 많은 부분은 그 시대 누구나 할 수 있었을 보통의 말이거나 진부한 수준의 말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해석적 태도에 가깝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개인적으로 비판한 태도이거나 회의적 태도라기보다는, 과거의 ‘철학적‘ 기록을 차분하게 연구할 때 가져야 할 ‘고고학적‘이며 ‘발생학적‘ 태도인 것이다. -177쪽

이 땅의 신자들이 다른 어떤 곳의 신자들보다 영성과 구원에 집착하면서도 사회적 의무와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표리 관계를 이루듯이, 김용옥의 경우에도 고전의 말씀 하나 하나에는 이곳 저곳의 지식을 다 끌어다 붙여놓으며 말씀의 후광을 상징하려고 하면서도, 그것이 사용되는 사회적이며 실천적 맥락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178쪽

‘동양‘ 철학이나 ‘서양‘ 철학을 막론하고 오늘날 매우 필요한 기본적인 전제가 있다. 우리는 과거의 텍스트를 해석하고 연구하는 것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사상을 모색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고전적인 텍스트를 연구하는 학문 연구자가 당연히 현재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전문가적이고 심오한, 그리고 일반인들보다 더 유익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고 여길 필요가 없다. 물론 이런 구분은 상당히 논쟁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인들뿐 아니라 철학교수들도, 과거의 텍스트를 잘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은 오늘의 세계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혹은 은연중에 믿기 때문이다. 이 선입견이 "21세기를 위한 노자", "21세기를 위한 공자" 같은 구호뿐 아니라 "철학의 대중화"란 구호의 밑에 깔려 있다. -182쪽

사정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에서도 비슷하다. 제논이나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이 서양사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 단편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런 것이지 사상이 가장 본원적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가상의 사상사를 설정한 후에 근원적 가치를 소급적으로 투사하는 관념적 해석학을 버리자. 그런 해석학은 다시 그 가치가 역사적인 인과관계에 따라 연대순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여기는데, 그런 생각이야말로 유치한 해석학인 것이다. 노자와 공자의 단편은 그 자체로 매우 심오하고 중요해서 자연적으로 전승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대의 사람들이 그 이름을 빌리고 거기에 기생하고 공생하면서 현재와 전통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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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철학
김진석 지음 / 개마고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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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쓸모 없을 것 같은 지식을 강의하는 고역을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이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고 믿습니다(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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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천자문 22 - 한계를 뛰어넘어라! 뛰어넘을 초 손오공의 한자 대탐험 마법천자문 22
올댓스토리 지음, 홍거북 그림, 김창환 감수 / 아울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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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사주려구요. 새로운 악당의 출현으로 새로운 싸움이 시작될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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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진화
로버트 라이트 지음, 허수진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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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종교의 기원부터 시작해서 일신교 신앙의 발전을 차근차근 따라간다. 종교의 발전은 인간의 도덕적 지경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부족 -> 국가 -> 인종을 넘어선 제국), 이러한 현상은 물질적 토대에 바탕해서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종교가 성공적으로 대응한 면모라고 설명한다. 현재의 일신교는 전지구적으로 하나의 사회가 되어버린 현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지만(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거의 경우처럼 도덕의 지경을 전지구적으로 넓혀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 문화적 진화론에 바탕한 시각이며, 인간의 도덕적 지경의 향상이란 반복된 패턴은 신(또는 신성)의 존재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냐는 논지로까지 나아간다.

 

여러가지로 재미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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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성의 사내 필립 K. 딕 걸작선 4
필립 K. 딕 지음, 남명성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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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몰입하기 힘들었지만 일단 주인공들의 상황과 캐릭터가 전개되면서 점점 빠져들었다. 클라이막스 부분을 읽다가, 일 때문에 책에서 빠져나오니 내가 사는 세상이 너무나 낯설게 보인다. 필립 K 딕이 그린 세상이 너무나 현실적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너무나 꿈 같기 때문인가. 너무나 현실적인 꿈이라고 하면 될까...

 

양자역학에서 얘기하는 평행우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세상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우리 세상에서 그 세상을 상상하며 몸서리치는 우리들은? 그 세상에서 드러난 압제자들과 우리 세상에 숨어 있는 압제자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꿈만 같은 현실, 현실과 같은 꿈.

 

그쪽 세상의 세계지도(위키피디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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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12-06-13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뚜기는 무겁게 짓누른다'의 원제는 The Grasshopper Lies Heavy.

blueyonder 2012-07-02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뚜기는 누구일까? 책속의 독일인? 일본인? 죽어 널부러진 메뚜기? Bug's Life의 메뚜기가 생각남. 압제자의 이미지. 약간은 코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