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수 있는 건 없고 읽고 싶은 책들이 눈에 띄어 모아 놓는다. 













먼저 <버추얼 히스토리>. 만약 역사가 다르게 전개됐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여러 역사학자들이 논의하는 책이다(600페이지). 이름하여 '가상 역사'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여러 우연 또는 필연이 겹쳐 전개됐던 역사가 만약 그 핵심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다. 당시에 작용하던 '역사적 힘'을 살펴보는 연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인구가 바꾼 역동의 세계사>.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일까를 인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464페이지).















<마지스테리아>. 과학과 종교가 얽히며 펼쳐낸 역사에 관한 책이다(720페이지). 서구에서 과학은 종교적 열망에서 태어났고('신의 비밀을 밝히다'), 종교와 갈등하다가, 이제는 종교로부터 벗어나 독자적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과학과 종교는 갈등한다. 특히 기독교에서 그렇다. 늘 흥미로운 주제이다. 















<독일인의 전쟁 1939-1945>. 파국으로 끝났던 2차대전을 수행했던 독일인들에 관한 책이다(976페이지). 부제가 '편지와 일기에 담긴 2차대전, 전쟁범죄와 폭격, 그리고 내면'이다. 끔찍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소름이 끼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면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찬란한 5월이 이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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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 제국주의(영국, 프랑스)와 후발 제국주의(독일, 일본, 이탈리아) 사이의 전쟁으로 2차대전을 바라보는 이 책의 전반부는 2차대전 진행상황의 요약이다. 일반 전쟁사 책처럼 자세하지는 않지만 그 흐름을 따라가기에 좋다. 전쟁에서 일어나는 여러 결정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전쟁을 다른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1942년 후반부에 일어나는 세 가지 전투--태평양 전선의 과달카날 전투, 북아프리카 전선의 엘 알라메인 전투, 유럽 전선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저자는 2차대전의 세 전환점이라고 부른다. 추축국의 점령지가 최대로 확장된 지역에서 연합국과 맞붙어 패배하기 때문이다. 이 이후 추축국은 긴 수세로 접어들며 점령지를 하나 둘 잃게 된다. 


처칠은 엘 알라메인 전투가 승리로 끝난 이후, 이것이 전쟁의 "끝이 아니며 끝의 시작도 아니지만, 아마도 시작의 끝"이라는 현란한 연설을 했다. 1943년 1월, 영국과 미국은 향후 전략을 조율하기 위해 북아프리카의 카사블랑카에서 회담을 열었다. 미국은 원래 북아프리카 침공보다 프랑스 침공을 원했고, 북아프리카 침공이 성공적으로 끝난 당시에도 그렇게 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영국은 북아프리카 작전이 끝나는 대로 이탈리아 침공으로 이어가길 원했다. 미국은 영국의 설득에 밀려 북아프리카를 침공하면서도 이것이 영국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지키는 일에 말려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영국은 이집트와 중동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영국의 제안대로 이탈리아 침공으로 전쟁을 이어가게 되고, 프랑스 침공은 1944년으로 미뤄지게 된다. 만약 1942년 말이나 1943년에 미국이 프랑스를 침공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 미국은 더 멀리 진격해서 독일 전역을 점령하고 동유럽 일부도 미국에 의해 해방됐을 수도 있다. 물론 미군은 독일과 싸우면서 훨씬 더 많은 피해를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독일의 분단이 없었을 수도, 폴란드나 체코도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서 발전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전후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비슷한 일이 태평양 전선에서도 있었다. 대만 침공에 이은 중국 본토 상륙이냐 아니면 오키나와 침공이냐를 두고 미국도 고민을 했는데 결국 오키나와 침공으로 결정이 났다. 만약 미군이 중국 본토에 상륙했다면 중국이 국공내전으로 그렇게 빨리 공산화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오늘 만드는 역사는 어떻게 후세에 기록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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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irective [No. 21, Operation 'Barbarossa'] was hugely ambitious and it largely ignored other evaluations that questioned whether the German armed forces could hope to conquer and occupy a territory on this scale. The army Military Geography branch of the General Staff presented a detailed report in August 1940 that highlighted the large Soviet industrial resources already established in Siberia, and the simple facts of topography and climate that severely limited what would be possible. General Georg Thomas, head of the Armed Forces' Economic Office, tried unsuccessfully to demonstrate to Hitler right up to the moment of the invasion that oil supplies were simply inadequate. 'What one does not have, but needs,' Hitler is said to have replied in June 1941, 'one must conquer.' (p. 150)


"[히틀러의] 작전명령 제21호는 매우 야심적이었으며 독일군이 이 정도 규모의 영토를 정복하여 점령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다른 평가들을 대부분 무시하고 있었다. 1940년 8월, 총참모본부의 육군 군사지리국은 소련이 산업 시설을 이미 시베리아에 확립했으며 지형과 기후로 인한 작전상 제약이 매우 심할 것임을 강조하는 상세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국방군 경제국장인 게오르크 토마스 장군은 석유 비축량이 충분치 않음을 침공 직전까지 히틀러에게 납득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필요하지만 가지지 못한 것은 정복해야 한다." 1941년 6월에 히틀러는 이렇게 답했다고 알려져 있다.


환상[망상]과 실제, 꿈과 현실의 조화는 국가나 개인 모두에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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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버리는 이 책에서 기존에 알려진 2차대전에 대한 통념 몇 가지를 바로잡으려고 한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인해 2차대전이 시작되는 상황에 대한 것이다. 


1. 2차대전은 누가 일으켰는가? 위에서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대전이 일어났다고 적었다. 그럼 2차대전을 일으킨 것이 독일인가? 오버리는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영국, 프랑스와 바로 싸울 생각은 없었다고 말한다. 체코를 병합한 것의 연장선상으로 그저 식민지(독일어 표현에 따르면 레벤스라움Lebensraum, 즉 '삶의 공간')를 늘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발 제국주의 국가인 독일의 팽창을 선발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는 그저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1939년 9월 3일, 영국/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렇게 2차대전은 시작됐다. 독일의 호전성이 2차대전을 촉발한 것은 맞지만, 독일-폴란드 전쟁이 세계대전이 된 것은 영국/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영국/프랑스는 독일이 더 강해지기 전에 독일을 꺾으려고 했다. 히틀러는 영국/프랑스와 싸우더라도 독일이 더 강해진 이후인 1942~43년 경 싸우려고 했다. 두 제국주의 세력 간의 전쟁은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2차대전의 발발이 1939년 9월 3일로 정해진 것은 영국/프랑스의 결정이었다. 물론 독일이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국/프랑스는 자신들의 영토와 식민지가 직접 독일의 공격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독일과 전쟁을 선포했다. 자신들의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더 기다리기보다는 바로 독일과 전쟁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 더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독일이 처음에 너무 잘 싸우는 바람에 이러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2.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 몇 주만에 패퇴하면서, 영국만이 독일에 맞서게 되었다. 히틀러는 영국과 굳이 싸울 생각은 없었지만, 새롭게 총리가 된 처칠의 지도 하에 영국은 독일에 대항하게 된다. 섬 나라 영국과 이미 상당히 영토를 확장하여 유럽의 많은 부분을 손에 넣은 독일의 대결은 영국이 위태로워 보였다. 독일의 기세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은 영국 본토로만 한정해서 생각하면 안 된다. 식민지를 포함한 영국제국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 영국의 별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식민지 백성과 물자를 모두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영국-독일의 전쟁이 영국의 열세라고 하기는 어렵다. 물론 전쟁 초반에는 준비가 더 잘 된 독일이 우세해 보였다. 독일이 영국 공군을 무력화하기 위해 벌인 '영국 전투'(영국 항공전)에서도 영국은 '소수' 공군 조종사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독일 공군을 물리쳤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독일 공군이 폭격 목표를 공군기지 등 군사적 목표에서 런던으로 바꾸지 않았다면 영국 공군이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은데, 오버리는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영국은 사실 충분한 전투기와 조종사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전투기 세력은 독일 공군과 대등했다. 시간이 흐르며 전투는 소모전 양상으로 흘러갔는데,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항공기 생산량은 영국이 독일보다 오히려 우월했다는 것이다. 


3. 영국 항공전이, 독일이 영국에 실제로 상륙하여 침공하기 위한 사전 작전인지, 아니면 단순히 영국을 위협하여 협상의 장으로 나오게 하기 위한 작전인지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다. 영국 항공전에서 영국 공군을 압도하지 못한 독일이 결국 영국 침공을 접고 동쪽의 소련을 침공하기 때문이다. 많은 책들은 히틀러가 영국을 실제로 침공할 생각이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기술한다. 독일군이 상륙용 주정을 모은 것도 단순한 위협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버리는 히틀러가 영국 침공을 정말로 심각하게 고려했으며, 이후의 소련 침공조차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한 정지 작업의 측면이 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소련 침공은 식민지를 넓히려는 히틀러의 야욕에 부합했다. 독일은 결국 소련이란 진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수세에 처하게 된다. 


오버리의 책은 쉽지는 않지만 새로운 시각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이후에도 많이 언급되는 저작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의 상황을 자꾸 현재와 연관 지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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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오버리Richard Overy는 영국의 전쟁사가로서,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Russia's War>이라는 2차 세계대전 중 독소전에 관한 그의 책이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폭격전을 다룬 그의 <The Bombing War>를 근래 읽었는데, 최신 사료를 이용하여 기존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역사학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의 최근작인 <Blood and Ruins>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는 이 책에서 2차 세계대전이 1차 세계대전부터 이어오는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전쟁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번역가 이희재는 그의 책 <번역전쟁>에서 1차 세계대전은 떠오르는 강국 독일을 견제하려는 영국의 군산복합체(그리고 그 배후의 ‘금벌’)가 일으켰다는(또는 유도했다는) 시각을 얘기한 바 있다. 결국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으로 얼마 없던 식민지를 모두 잃은 독일은 다시 한 번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에 합류하기 위해 식민지가 필요했는데, 이미 세계는 선발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 등이 거의 나눠가진 후였다. 독일은 그 해결책을 상대적으로 낙후되고 힘이 미약한 주변의 유럽국가들에게서 찾았다. 핑계는 거기에 독일계 주민이 거주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오스트리아, 그다음엔 체코, 그리고 그 다음 목표가 폴란드였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은 선발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 프랑스와 후발 제국주의로 도약하려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 간의 싸움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오버리의 주장이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둔 국가들 간의 전쟁이므로 세계대전으로 번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독일은 자신들이 점령한 국가의 백성들을 식민지인으로 (당연히) 가혹하게 취급했다. 이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선발 제국주의 국가들이 취했던 방식이기도 했다. 차이는 선발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프리카나 중동, 아시아 등에서 인종이 다른 식민지인을 가혹하게 다뤘던 반면, 독일은 유럽에서 동일 인종의 유럽인들을 식민지인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선발과 후발 제국주의 통치 모두에 인종주의가 배경으로 깔려있지만, 독일의 인종주의는 좀 더 좁은,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웠다. 유럽에 식민지를 세우자면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제국주의는 식민지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적 착취의 구조이다. 선발 제국주의가 후발 제국주의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가당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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