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군항공대는 종전 후 독립하여 공군이 될 명분을 쌓을 목적으로, 전쟁 중 전략폭격의 효과를 독립적으로 조사하는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여기에는 여러 명망 있는 민간인들이 참여해서 전략폭격의 효과에 대해, 전쟁 중 독일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던 인사들과의 인터뷰와 남아 있는 자료들을 종합하여 여러 분야를 살펴보는 보고서를 냈다. 이것이 ‘미국전략폭격조사United States Strategic Bombing Survey’이다. 


여기에 참여했던 중요 인물의 하나가 하버드대학 교수였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이다. 그는 전략폭격의 효과에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의 전쟁—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도널드 밀러는 이 문제가 잘못 알려진 바가 있다고 말하며 이를 바로잡고자 한다. 배경을 설명하는 사설이 길었는데, 국역판의 번역에 대한 마지막 글을 작성하고 싶어서이다. 폭격조사 보고서와 관련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문제가 되는 원문과 번역문 구절을 나열한다. 연속된 문단이지만 나눠서 살펴보며, 밑줄은 오역 의심 부분에 내가 추가한 것이다. 


  What significance does this new interpretation of the German war economy have for understanding the bomber war? If mobilization already was in full swing in 1942, then Spaatz and Tedder were at least partially right. Although Germany's entire economic fabric was not stretched tight by 1944, at least two vital areas were: oil and transportation. This made them perfect target systems when they were finally hit, Germany having no reserves of either gasoline or rolling stock to replace what was lost to the bombers. (p. 467) [rolling stock: 철도 차량]


  독일 전시경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폭격 전쟁을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만약 독일이 1942년에 총동원 체제하에 들어갔다면 스파츠와 테더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옳았던 셈이다. 그러나 독일 경제 중 최소한 두 가지 핵심 분야, 즉 석유와 교통은 1944년까지 총동원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 이 때문에 독일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잃은 석유와 철도를 대체할 수 없게 되었다. (2권 299 페이지)


밑줄 친 “Although Germany's entire economic fabric was not stretched tight by 1944, at least two vital areas were: oil and transportation.”를 직역하면 이렇다: ‘독일의 전체 경제 (체제)가 1944년에 팽팽히 잡아당겨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즉, 총동원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두 핵심 분야는 그랬다(즉, 총동원됐다): 석유와 교통이었다.’ 역자는 이를 “독일 경제 중 최소한 두 가지 핵심 분야, 즉 석유와 교통은 1944년까지 총동원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라고 반대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때문에 독일은 연합군의 폭격으로 잃은 석유와 철도를 대체할 수 없게 되었다.”라고 한다. 총동원되지 않았기 때문에 폭격으로 잃은 석유와 철도(교통)를 대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문은 그렇지 않다. 폭격으로 잃은 석유와 철도를 대체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들이 이미 총동원되고 있었으므로 비축했던 여분reserve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원문에 밑줄 그은 “having no reserves of either gasoline or rolling stock”의 의미인데, 역자는 이를 누락하며 잘못 번역했다. 


  In Galbraith's report for the Bombing Survey, he writes that prior to the summer of 1944, Allied bombing had "no appreciable effect either on German munitions production or on the national output in general." While this seems to support the idea that strategic bombing failed, Galbraith goes on to argue in his report that the oil and transportation campaigns eventually conjoined to deliver unrecoverable damage to the economy, dramatically reducing steel, oil, and aircraft production. He even concedes that bombing conducted prior to the summer of 1944 had placed a ceiling on Germany's production of combat aircraft, that it was "possible that production would have been 15-20% higher in the absence of bombing." (p. 467)


  갤브레이스는 1944년 여름에 작성한 폭격 조사 보고서에 연합군의 폭격이 독일의 탄약 생산과 경제 생산 전반에 눈에 띄는 타격을 주지 못했다고 기술했다. 이것은 전략폭격이 실패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갤브레이스는 보고서에서 석유 작전과 교통 작전은 독일 경제에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주었으며, 철, 석유, 항공기 생산량 저하에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그는 1944년 여름에 실시한 연합군의 폭격이 독일의 전투기 생산량을 15~20퍼센트 감소시켰다고 주장했다. (2권 299 페이지)


이번에는 번역문을 먼저 보자. “갤브레이스는 1944년 여름에 작성한 폭격 조사 보고서에 연합군의 폭격이 독일의 탄약 생산과 경제 생산 전반에 눈에 띄는 타격을 주지 못했다고 기술했다.” 이 문장이 이상한 것은 위원회가 1945년 초반부터 활동한 것으로 앞에서 설명되었기 때문이다. 원문은 이렇다: “In Galbraith's report for the Bombing Survey, he writes that prior to the summer of 1944, Allied bombing had "no appreciable effect either on German munitions production or on the national output in general."” 이를 보면 갤브레이스의 보고서에 적혀 있는 내용은 이렇다: ‘1944년 여름 이전에는 연합군의 폭격이 독일의 탄약 생산이나 일반적 국가생산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원문은 연합군 폭격의 1944년 여름 이전의 효과를 언급하는 것이다. 보고서의 작성이 1944년 여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 아니다. 원문은, 하지만 결국, 즉 1944년 여름이 지나, 전력폭격이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eventually”가 그런 의미이다. 하지만 번역문은 그냥 “그러나 갤브레이스는 보고서에서 석유 작전과 교통 작전은 독일 경제에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주었으며”라고 번역하며 갤브레이스가 앞과 뒤에서 서로 모순되게 기술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후에도 “1944년 여름에 실시한 연합군의 폭격”이 언급되는데 이를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1944년 여름 이전에 실시한 연합군의 폭격’이라고 해야 한다. 


이 책은 전쟁사 전문번역가가 번역해서 군사용어 등이 흠잡을 데가 거의 없으며,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잘 읽히는 편이다. 하지만 위에서와 같이 잘못되거나 부정확한 번역이 가끔 보인다는 점이 아쉽다. (잘된 번역이 많음에도 이렇게 지적하는 건 ‘주마가편’이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하나 있다. 원문의 문단이나 섹션을 누락하고 번역한 부분이 종종 눈에 띈다는 점이다. 아마 중요하지 않은 에피소드라고 판단했거나 분량을 줄이려고 했던 듯싶다. 역자의 판단인지 편집자의 판단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축약 번역본이 아니라면 저자의 허락 없이 이렇게 누락하며 번역하는 건 저자나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이제 <Masters of the Air> 독서도 끝을 향해 달려간다. 읽는 중에 미국-이란 전쟁 소식을 들으며 비극은 반복된다는 생각을 했다. 유도미사일 등으로 폭격이 훨씬 정확해진 지금도 폭격은 민간인 희생자를 낳을 수밖에 없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만약 목적마저 잘못됐다면, 이 희생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가. 2차대전이나 지금이나 타당한 의문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6-04-17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The Sense of an Ending (Hardcover)
Barnes, Julian / Random House Inc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기억과 세월과 나이듦과 책임과 회한에 대한 이야기. 한 번만 주어진 인생은 어떻게 뒤돌아보더라도 후회가 남는다. 기억과 추억은 뒤늦은 합리화일 뿐. 뒤로 갈수록 코믹해지다가--그래서 재밌다가--갑자기 뒤통수를 친다. 결말이 꼭 이럴 필요가 있을까.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확인해보고 싶어서 결말을 두 번 읽었다.


When you are in your twenties, even if you're confused and uncertain about your aims and purposes, you have a strong sense of what life itself is, and of what you in life are, and might become. Later... later there is more uncertainty, more overlapping, more backtracking, more false memories. Back then, you can remember your short life in its entirety. Later, the memory becomes a thing of shreds and patches. It's a bit like the black box aeroplanes carry to record what happens in a crash. If nothing goes wrong, the tape erases itself. So if you do crash, it's obvious why you did; if you don't, then the log of your journey is much less clear. (pp. 114-11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6-02-23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2-24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nd that's a life, isn't it? Some achievements and some disappointments. It's been interesting to me, though I wouldn't complain or be amazed if others found it less so. ... 

  I survived. "He survived to tell the tale"that's what people say, don't they? History isn't the lies of the victors, as I once glibly assured Old Joe Hunt; I know that now. It's more the memories of the survivors, most of whom are neither victorious nor defeated. (pp. 60-61)

But if we can't understand time, can't grasp its mysteries of pace and progress, what chance do we have with historyeven our own small, personal, largely undocumented piece of it? (p. 66)

Try as I couldwhich wasn't very hard—I rarely ended up fantasising a markedly different life from the one that has been mine. I don't think this is complacency; it's more likely a lack of imagination, or ambition, or something. I suppose the truth is that, yes, I'm not odd enough not to have done the things I've ended up doing with my life. (p. 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년 한 해의 독서 기록을 정리해 남기고 싶어졌다. 이전에 한 번도 안 해 봤고, 아마 앞으로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 1월부터 읽은 순으로, 간단히 분야를 나눠 정리한다. <시사IN>과 같은 주간지는 제외했다. 


소설(14권): 생각보다 소설을 많이 읽었다(<모비 딕 - 상, 하>는 1권으로 셈).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다. 읽고 나니 한바탕 꿈을 꾼 것 같기도 한 이 작품의 여운이 많이 남는다. 하루키를 더 읽고 싶어졌다. 


과학(12권): 


     


     


  


위의 책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자면 역시 <A Brief History of Time>이다. 추억이 어린 책이기도 해서, 나 자신과 과학계의 변화를 나름 실감할 수 있는 독서였다. 


사회(3권):


  


별로 안 읽었지만 그래도 한 권을 고르자면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이다. 이 시대에 '공산주의'와 '마르크스'를 말하다니 매우 신선했다. 읽다 보면 설득된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대이다. 


에세이(4권):


   


위의 책들 중에서는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 질문을 내게 하면 뭔가 가슴이 뭉클해진다. 


철학(2권):


  


위의 2권 중에서는 <개소리에 대하여>를 꼽는다. 계엄과 탄핵으로 마음을 졸이며 시작했던 한 해. 이제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다른 국민들에게 감사했던 한 해이기도 하다. 


내가 좋은 사람이면(좋은 사람이고자 노력하면)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할 거라는 생각으로 살려고 한다. 고백하건대, 올해 보기 싫은 사람이 생겼다. 역시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내게 다시 상기시킨다. 


억지로 이미지를 넣으며 작성한 빈약한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께: 

올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25-12-31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전에 한 번도 안 해 봤고, 아마 앞으로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각오가 왠지 역설로 읽힙니다. ㅎㅎ
좋은 독서였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lueyonder 2025-12-31 19:49   좋아요 0 | URL
2025년 독서이력을 왠지 한번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해 본 것이지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 독서를 많이 하시는 다른 알라디너분들과 비교하면 보잘것없어서 앞으로 또 할 일은 없을 것 같고요. ㅎㅎ
잉크냄새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2025-12-31 2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31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31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2-31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5-12-31 2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흥미롭게 읽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blueyonder 2025-12-31 23:01   좋아요 2 | URL
페크 님, 방문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곡 2026-01-01 0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6년이 방금 도착했습니다 해피 뉴이어!

blueyonder 2026-01-01 07:16   좋아요 1 | URL
서곡 님, 해피 뉴 이어! 감사합니다!
 


<탑건: 매버릭>의 주제곡 중 하나인 레이디 가가의 'Hold My Hand'. 쌀쌀한 겨울, 톰 크루즈의 모습과 <탑건> 영화를 되새기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