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가 툭 나온 구절인데, 문득 마음에 와 닿는다. 때는 1940년대, 동명관을 운영하는 우두머리 기생 숙향이, 떠돌아다니다 찾아온 추평사의 아들 동삼에게 하는 말이다. 


  "법도 따지는 양반들 별거 아니다. 화신 백화점 옥상에서 돈을 다발로 뿌려봐라. 양반들이라고 뒷짐만 질 것 같니? 아서라, 겉으로는 체신 차리는 사람일수록 실속은 더 차리느니. 내 이날 이때까지 오만 사내를 다 겪어봤지만 양반일수록 더 개차반이더라. 서푼 값어치도 없는 게 양반님네 법도니라. 진짜 사내는 사람을 보지 출신을 따지지 않느니." (123 페이지)


'양반'이란 요즘으로 치자면 사회에서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는 사람을 일컫겠다. 권력자, 부자, 소위 사회지도층,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국회의원을 포함한 선출직, 중앙부처 공무원, 검사, 의사, 교수, ... 이들의 법도란 무엇인가? 실속을 가리기 위한 명분인 건가? 


비슷한 얘기를 최근 직접 들은 적이 있어서 세상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인간에게 너무 기대를 하는지도. 물질이 있어야 먹고 사니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쳐도, 욕심이 욕심을 부르는, 누가 봐도 과한 경우는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고 김대중 대통령 말씀처럼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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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드디어) (다시) 읽기 시작한다. 언제 끝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 Mathematics was regarded as the acme of exact reasoning, a body of truths in itself, and the truth about the design of nature. How man came to the realization that these values are false and just what our present understanding is constitute the major themes...

... But intellectually oriented people must be fully aware of the powers of the tools at their disposal. Recognition of the limitations, as well as the capabilities, of reason is far more beneficial than blind trust, which can lead to false ideologies and even to destruction. (Preface)


"수학은 정밀한 추론의 최고봉이자 그 자체로 진리인 것들의 집합체, 또한 자연의 설계에 대한 진실된 설명으로 여겨졌다. 어떻게 인간이 이러한 평가가 거짓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됐는지, 그리고 현재 우리의 이해는 어떠한지가 이 책의 주요 주제이다. 

지식인이라면 지니고 있는 도구의 힘을 반드시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이성의 능력 뿐만 아니라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맹목적 신뢰보다 훨씬 더 유익하다. 맹목적 신뢰는 잘못된 이데올로기나 심지어는 파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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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의 의미. 


  While people are fairly young and the musical composition of their lives is still in its opening bars, they can go about writing it together and exchange motifs (the way Tomas and Sabina exchanged the motif of the bowler hat), but if they meet when they are older, like Franz and Sabina, their musical compositions are more or less complete, and every motif, every object, every word means something different to each of them. (pp. 88-89)


"젊으며 삶이란 음악곡이 아직 도입부일 때, 사람들은 곡을 함께 쓰고 주제를 교환하기도 한다(토마시와 사비나가 보울러 햇이란 주제를 교환했듯이). 하지만 프란츠와 사비나 같이, 더 나이가 들어 만나면 작곡은 이제 거의 끝나 있어서, 모든 주제, 모든 대상, 모든 말은 이들에게 서로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어떤 음악을 들으면 비슷한 감정을 떠올리는 같은 세대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오래된 나무가 서로 바라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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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4-01-18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저 부분 너무 좋죠!! 🥹 저도 두 번 읽은 부분....

blueyonder 2024-01-18 10:36   좋아요 1 | URL
많은 분들이 이 소설을 좋아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시작. 쿤데라가 말하는 '영원회귀'의 의미. 영원회귀하지 않는 우리의 일생은 '가볍다'. 그 누구도 단죄할 수 없다.


The idea of eternal return is a mysterious one, and Nietzsche has often perplexed other philosophers with it; to think that everything recurs as we once experienced it, and that the recurrence itself recurs ad infinitum! What does this mad myth signify? 

  Putting it negatively, the myth of eternal return states that a life which dissappears once and for all, which does not return, is like a shadow, without weight, dead in advance, and whether it was horrible, beautiful, or sublime, its horror, sublimity, and beauty mean nothing. We need to take no more note of it than of a war between two African kingdoms in the fourteenth century, a war that altered nothing in the destiny of the world, even if a hundred thousand blacks perished in excruciating torment. 

...

  If the French Revolution were to recur eternally, French historians would be less proud of Robespierre. But because they deal with something that will not return, the bloody years of the Revolution have turned into mere words, theories, and discussions, have become lighter than feathers, frightening no one. There is an infinite difference between a Robespierre who occurs only once in history and a Robespierre who eternally returns, chopping off French heads. 

  Let us therefore agree that the idea of eternal return implies a perspective from which things appear other than as we know them: they appear without the mitigating circumstance of their transitory nature. This mitigating circumstance prevents us from coming to a verdict. For how can we condemn something that is ephemeral, in transit? In the sunset of dissolution, everything is illuminated by the aura of nostalgia, even the guillotine. (pp. 3-4)


"영원회귀라는 생각은 신비롭다. 니체는 이 생각으로 다른 철학자들을 종종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우리가 한 번 경험한 그대로 반복되며 이 반복이 무한 번 계속된다니! 이 말도 안되는 신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반대로 생각하면, 영원회귀의 신화란 한 번 사라지면 끝이며 다시 반복되지 않는 일생이 무게도 없으며 처음부터 죽어있는 그림자와 같음을 말해준다. 일생이 끔찍하거나 아름답거나 숭고할지라도, 이 끔찍함, 아름다움, 숭고함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14세기 두 아프리카 왕국 간의 전쟁, 수십 만이 잔혹한 고통 속에서 죽었음에도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에 아무런 영향이 없었던 이 전쟁을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만약 프랑스대혁명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프랑스 역사가들은 로베스피에르를 덜 자랑스워할 거라고 얘기할 수 있다. 반복되지 않기 때문에 대혁명의 피로 물든 세월이 단지 말과 이론과 논의로 바뀌어 깃털보다 가벼워지고 누구에게도 공포를 선사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에 단 한 번 나타나는 로베스피에르와 영원히 반복해서 나타나 프랑스인들의 목을 베는 로베스피에르 사이에는 무한한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영원회귀라는 생각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다르게 사물이 보이게 하는 하나의 관점이라고 해두자. 덧없음이라는 정상참작 없이 사물이 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 덧없음이란 정상참작으로 인해 우리는 선고를 유예하게 된다. 금새 사라지는 일시적인 것을 우리가 어떻게 단죄할 수 있겠는가? 사라짐의 황혼 속에서는 모든 것이 향수鄕愁란 빛에 휩싸이게 되는 법이다. 단두대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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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지난 시간들, 모두 영화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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