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시사인) 제877호 : 2024.07.09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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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배터리 공장 화재와 '디오르 백 사건'을 종결 결정한 권익위, '채 상병 특검범' 입법 청문회 등의 기사에도 불구하고 내 시선을 가장 끈 것은 <AI는 전기를 먹고 자란다> 기사였다. 기후 변화를 실감하는 요즘, 인류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나선 것일까. 빅테크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발전원은 재생에너지라고 하지만...


인공지능(AI)이 기후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처럼 말하고 반응하는 생성형 AI의 등장은 ‘탄소중립’을 위협하는 새로운 변수가 됐다... 거대언어모델(LLM)을 ‘공부’시키고, 데이터를 저장하고, 복잡한 알고리즘을 연산해 실행하기 위한 모든 과정에는 단순 검색을 통해 답변을 얻는 것보다 수십 배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

  구글에서 일반 검색을 할 때 사용되는 전력은 0.3Wh(와트시)이지만 같은 내용을 챗GPT로 검색할 경우엔 그 10배인 2.9Wh가 사용된다. 만약 구글 검색엔진에 AI 기능이 통합될 경우, 최대 30배까지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개별 검색당 6.9~8.9Wh).

  AI가 구동되는 모든 과정은 ‘데이터센터’에서 이루어진다. 데이터센터는 서버 컴퓨터, 네트워크 회선, 데이터 스토리지(저장장치) 등 IT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한 건물에 모아둔, 연중 24시간 전력을 써야 하는 ‘전력 다소비 시설’이다. 과거 데이터센터는 서버 수천 대를 돌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버 수십만 대를 운영하며 대량의 데이터를 집적하고 연산하는 AI 전용 ‘하이퍼스케일(Hyperscale)’ 데이터센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AI 기술 선점 경쟁이 치열한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구축에 지갑을 열고 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오픈AI와, 2028년까지 1000억 달러(약 135조원)를 투입해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의 가장 큰 데이터센터에 투입된 금액보다 100배 많은 규모다...

  거대한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은 탄소배출량과도 연결된다. 서버 수십만 대가 가동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서버를 구동하는 데 필요한 전력뿐만 아니라, 서버의 열을 식히기 위해서도 엄청난 양의 전기를 써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연간 전력 소모량은 460TWh(테라와트시)로, 프랑스(425TWh), 독일(490TWh)의 국가 연간 전력 소모량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2026년에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하는 전력량은 그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4~25페이지) 


우리나라의 2022년 연간 전력 소모량은 568 TWh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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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는 여기기사를 따라 '전력 소모량'으로 썼으나, 정확한 표현은 소모 전력량이다. 기사는 전력과 전력량, 전기, 전력 소모량 등을 모두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Wh(와트시)는 전력량의 단위이고 W(와트)가 전력의 단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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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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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힌다. 유시민을 전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책 제목과 미리보기의 내용이 너무 매력적이라 읽을 수밖에 없었다. 총선 후 짧은 기간 동안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이 대단하다. 그의 글솜씨와 생각에 감탄과 공감을 하며 읽었다. 


다 읽은 지금의 감상은 이렇다. 유시민과 같은 어른이 있어서 다행이다. 길어도 3년이면 '윤석열이란 병'도 지나간다. 표지 다음 장에 그의 글씨로 이런 문구가 쓰여있다. "희망은 힘이 세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답답한 분들에게 읽어보시라고 강력히 추천한다. 


글 속 몇 구절을 다음에 옮겨 놓는다.


  국가는 추상적인 존재다. 정부도 그렇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정부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국가의 수준은 정부의 수준이 좌우하고, 정부의 수준은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의 수준이 결정한다. 대통령 중심제인 우리나라의 정부 수준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자신이 어떤 수준이며 어떤 수준의 사람들을 정부에 기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윤석열은 정부를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도 인간 윤석열 수준으로 내려앉는 중이다.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판도 함께 녹아내린다. '모든 민주주의는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지적 소유권이 누구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 옳은 말이다. (26 페이지)

  다시 말한다. 비속해지면 악에 물든다. 스스로 사유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언어로 말하려고 노력해야 비속함을 이겨낼 수 있다. 그런 각성을 한 시민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나는 믿는다. (35 페이지)

2022년 3월 9일, 한국 유권자는 '위선'이 싫다고 악을 선택했다. 결과가 그렇다는 것이다. 악인 줄 알고도 선택했다는 말은 아니다. (39 페이지)

  윤석열은 보수와 중도의 연합을 깨뜨리고 보수를 분열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실과 내각과 정부기관에 극우 성향의 망나니, 무능한 아첨꾼, 정치 검사, 심지어 술친구까지 불려들였다. 대통령실과 정부에서 공직 경력을 부풀린 측근과 전직 검사들을 총선에 내보냈다. 모든 정치연합을 자기 손으로 해체하고 보수의 한 축에 불과한 극우와 검찰 세력의 수장을 자처한 것이다. 침팬지 알파 메일도 이렇게 하면 권력을 지키지 못한다. 인간의 권력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63 페이지)

  윤석열은 왜 여당의 당내 민주주의를 허물고 왕정을 할까? 불안해서, 버림받을까 겁이 나서다. 그는 국정농단 사건 수사 검사로서 박근혜를 구속 기소했고, 국회의 대통령 탄핵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박근혜 탄핵소추안은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의원과 무소속 의원 171명이 발의했다. 탄핵 가결에 필요한 재적의원 2/3에 한참 모자랐다. 그런데 투표에서 234명이 찬성했다. 60명 넘는 여당 의원이 탄핵에 가담했다. (77~78 페이지)

저널리스트는 취재한 사실 중에서 가치가 있는 것을 골라 뉴스를 만들 때 저널리즘 규범을 의식한다. 몇 가지는 널리 알려져 있어서 저널리스트 아닌 사람도 안다. '사실을 존중한다.' '정치권력과 광고주와 수용자의 간섭을 배제하고 독립적 주체적으로 판단한다.' '이해관계와 이념이 대립하는 문제를 보도할 때는 중립과 균형을 지킨다.' 조심하자. 그런 규범이 있다는 걸 안다는 말이다. 지킨다는 말이 아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나라에는 이런 규범을 지키는 저널리스트가 거의 없다. (91 페이지)

  기자는 사회에 책임을 느끼는 지식인이 아니다. 민중을 위해 싸우는 투사도 아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많아서 기자는 사는 게 괴롭다. 월급을 받고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회사원일 뿐인데 비리를 폭로하고 불의에 항거하며 인권과 정의를 위해 싸우라고 하니 난처하기 이를 데 없다. 기자가 자본과 정치권력의 간섭과 횡포에 맞서 언론 자유와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우던 시대는 지나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실 그런 시대는 있지도 않았다. 그런 것처럼 보인 때가 잠깐 있었을 뿐이다. 

  공영방송과 극소수 독립언론 말고는 어느 언론사도 저널리즘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 규범이 현실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지키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이젠 그마저 그만두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게 아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이것을 변경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96~97 페이지)

  하지만 윤석열의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취임사에서 비판했던 반지성주의 행동을 자신이 한다. 설마 알면서 그렇게 하겠는가. 몰라서 그러는 게다. 모르면 말과 행동이 상충할 수 있다. 그것 말고는 해석할 길이 없다. 그는 반지성주의자가 아니라 '무지성'이다. 그냥 뭘 모른다. 그런데도 언론은 모른 체 한다. 2022년 5월 8일까지 시퍼렇게 날이 섰던 기자들의 비판 정신은 윤석열 취임과 동시에 사라졌다. 김건희 주가조작 의혹을 문재인 정부 검찰이 탈탈 털었는데도 기소조차 하지 못했다는 그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는다. 검찰은 김건희를 건드린 적도 없다. 소환조사 한 번 하지 않았다. 남편이 검찰총장인데, 감히 어느 검사가 그렇게 했겠는가. 윤석열은 논리의 앞뒤가 맞지 않고 사실이 아닌 주장을 진지하게 한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렇게 믿고 말한다. (165 페이지)

  어느 쪽이 이길까? 나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나 정의가 이긴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싸움은 강한 자가 이긴다. 이긴 자가 의롭지 않으면 불의가 판을 친다. 어떤 불의는 한 세대가 흘러도 바로잡지 못한다. 정의도 가끔은 이긴다. 역사를 보면 그렇다. 이번 싸움은 윤석열이 진다. 그는 강하지 않다. 강하다고 착각해서 강한 척을 할 뿐이다. 유능하지도 않다.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 몰라서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국민이 불신하고 미워하는 대통령의 권력은 역사의 밀물이 들면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27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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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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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망'에 대한 글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나이 듦과, 나이가 듦에도 나이 들지 않는 마음에 대한 책이라고 난 말하고 싶다. 나이 든 누구나 느낀다. 지난 날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고.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게 느낀다. 그럼에도 마음은 늙지 않아서 거울을 보면 아직도 거울 속의 내가 낯설다. 하지만 어느덧 나이든 나를 조금씩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렇게 나이 든 나를 받아들임에도 문득 나이를 잊도록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육체적 갈망인 모양이다. 작가는 그러한 모습을, 젊음의 싱그러움과 그것을 사랑하는 노작가의 갈망을, 시인 이적요를 통해 보여준다. 시인 이적요는 결국 죽음을 통해 사랑을 완성하고자 하지만, 난 안다. 죽음은 아무 것도 완성하지 않는다. 죽음은 과정일 뿐이다. 나의 젊음은 자식에게로 이어진다. 우리는 자식으로 이어지는 젊음을 통해, 내가 죽어도 이어지는 생명을 본다. 그러므로, 난 주장한다. 사랑이 내리 사랑이듯, 삶은 내리 삶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동물성(또는 생명성)을 잊는다. 우리는 생명의 사슬을 잇는 한 역할을 맡고 있다. 생명은 이어지고 우주는 돌아간다. 그저 그뿐이다. 


굳이 사족을 덧붙이자면, 세대는 단절될 수밖에 없다. 살아온 세월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난 같은 세대가 왠지 정겹다. 같은 운명공동체니까. 스러지는 인생에서, 같이 나이 드는 서러움을 얘기하고, 또는 나이 듦으로써 반대로 얻는 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갖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듯 싶다. 문학작품 감상을 적다가 너무 교훈으로 흘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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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시사인) 제865호 : 2024.04.16 - 세월호 10주기 특별호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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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주기 특별호이다. 사고가 일어난 지 어느덧 10년이 됐다. 아직도 그 당시 상황이 잘 기억난다. 세월호와 연관되었던 이들의 인터뷰가 죽 나온다. 아직도 눈물 바람을 하며 읽었다. 산다는 건 무언지 뒤돌아 보게 된다. 한 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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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4-04-16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 곳에서 생업에 종사하며 바쁘게 사는지라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별 관심이 없었던 저에게
세월호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습니다.

아들의 나이가 마침 딱 그 때
세월호와 함께 수장된 아이들과 같은 나이라서
전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안타까움과 분노로 저절로 눈물이 솟구치더군요.

생때같은 아이들을 잃고나서도 10주기가 되도록 여전히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회,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을 겪었던 아이들이 나이 먹어
청년이 되니 또 다시 길거리에서 압사, 떼죽음을 당하는 사회,
21세기 잘 길러놓은 아들을 국민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보내놓으면 아직도 여전히 시신으로 돌아올 위험이 농후한 사회,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이러한 일들이
너무나 쉽게 잊혀지고 덮혀지는 사회.
언제나 그리워하고 또 돌아가고 싶은 모국이라서
이런일들이 너무 슬픕니다.

blueyonder 2024-04-16 15:43   좋아요 1 | URL
참으로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저도 이 사회의 일원이니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 계시면 더 애국자가 되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고 살아보려고 합니다. 다음 번 한국 오셨을 때 조금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어 봅니다.
 
승부 2
조세래 지음 / 문예춘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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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勝負)는 '이기고 짐'의 한자어이다. 찾아봐도 적절한 영어 단어가 없는 것 같다. 이기고 짐을 목표로 하는 game이라고 해야할지, 대결이라는 의미에서 duel이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승부사란 이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바둑을 두는 사람도 승부사이다. 이기고 짐이 명확한 승부에서, 진 사람은 견디기 힘든 아픔을 겪는다. 이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니... 


2편의 주인공은 추평사의 아들인 추동삼이다. 추동삼 역시 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바둑 명인이다. 여기에 화자 역할을 하는 박 화백의 인생 얘기가 겹쳐진다. 책에는 전문기사 제도가 자리를 잡기 전에 돈을 걸고 바둑을 두는 사람들 얘기가 넘쳐난다. 큰 돈이 걸린 내기 바둑 승부를 이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이들, 두어보니 기력 차이를 실감하는 이들, 바둑 실력을 늘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이들의 얘기를 읽으니 TV 바둑 중계에서 바둑 두는 기사들이 왠지 다르게 보인다. 


바둑을 주요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끝까지 읽어보니 결국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인생 이야기이다. 


  "설숙 스승은 왜 그리 추동삼씨에게 무관심했습니까?"

  "......."

  "스승 된 도리로 제자의 마음을 잡아주어야만 하지 않았을까요?"

  "스승이란 자리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해주는 위치가 아닐세. 제자들에게 삶의 지표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지. 그것은 말없는 그늘이고 삶의 울타리이기도 하네."

  담담한 해봉처사의 대답을 들으면서도 박 화백은  그 말에 선뜻 찬동할 수 없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서로 공조함으로써 더욱더 빛이 나는 법인데 스승의 그 지나침 냉담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17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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