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지음 / 아작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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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타일은 아님. <X-Men>과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결합. 더하기 <어바웃 타임> 플러스 <인터스텔라>? 끝까지는 읽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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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통권 168호 - 2019년 9월~10월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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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밀린 숙제를 하고 있다. 녹색평론을 좀 읽었다. 특히 발행인 김종철 선생의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글을 관심 있게 보았다[1]. 요즘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생태문명’이라는 단어가 더욱 눈에 확 들어온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어디일까. 김종철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근대’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그 지속불가능성입니다. 왜냐하면 근대란 자신의 생존기반을 끊임없이 부수고 짓밟지 않으면 한순간도 유지될 수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근대문명을 뒷받침해온 것은 재생 불가능한 자원들이었습니다. 수십만 년에 걸친 호모사피엔스의 생존 기간 중 불과 200~300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 ‘근대문명’은 주로 지하에 매장된 재생 불가능한 자원들을 거의 고갈시켜버렸고, 그 자원 중 화석자원들이 근대문명의 유지와 확산을 위한 불가결한 에너지원으로 무절제하게 남용됨으로써 기후변화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대두된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싫든 좋든 이 근대문명을 종식시키고, 어쨌든 생태문명을 시급히 재창조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재창조’라는 말을 쓴 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즉, 생태문명이라는 것은 새삼스럽게 우리가 창안할 필요도 없는, 오랜 세월 인류가 살아온 기본적 생활양식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인간 역사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비근대적’ 삶을 누려왔습니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그 비근대적 삶이란 기본적으로 재생 가능한 자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생활이었습니다. 따라서 큰 이변이 없는 한, 그것은 이 지상에서의 인간의 영속적인 삶을 보장하는 생활양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생태문명의 재창조란 ‘근대’가 이 세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기 이전의 거의 모든 토착적 혹은 전통적인 삶의 복구를 통해서 또하나의 ‘비근대적 문명’을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복구는 단순한 복원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근대’를 통과해오는 동안 불가피하게 손상된 자연적 및 사회적 질서를 수선∙치유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인류 사회에 축적되어온 갖가지 창조적인 지혜와 경험과 기술을 살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가 ‘재창조’라는 용어를 강조하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9~10 페이지)


근대문명에 대한 평이 좀 거칠기는 하지만, 이제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분명한 당위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생태문명의 재창조란 ‘근대’가 이 세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기 이전의 거의 모든 토착적 혹은 전통적인 삶의 복구를 통해서 또하나의 ‘비근대적 문명’을 창출한다는 것”이라는 전망에 나는 실망한다. 이것이 현실성 있는 대안일까. 우리의 물질과 편안함에 대한 욕망을 제어해서 우리의 존재를 이 지구에서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 만 년 또는 천 년 전의 생활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생태문명인가. 과연 우리가 ‘택배’로 대변되는 삶을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삼성전자의 반도체 라인’이라는 근대문명의 총아를 해체하고 “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문명”(10 페이지)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비근대’인가 ‘탈근대’인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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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글에만 대한 감상이다. 매우 유익해 보이는 (일본 극우파와 후쿠시마 사고 등에 대한) 그 외의 글들이 있는데, 혹시 기회가 되면 추후에 감상을 적으려고 한다.

[1] 시 전문 계간지 <신생> 창간 20주년을 기념하여 행한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2] 저자는 ‘전근대’란 단어가 근대는 발전이라는 가치평가를 내재하므로 ‘비근대’라는 용어를 쓴다고 밝힌다(8~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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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노벨레 문지 스펙트럼 개정판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백종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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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이야기이지만 지금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근대 사회가 형성되면서 행복한 가정에 대한 사회의 규범이 생기는 와중에, 인간의 욕망에 대한 묘사가 매우 흥미롭게 그려진다. 아마 요즘 소설이라면 더 나아갔을 수도... 지난 세기 초, 인간 내면의 탐구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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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제662호 : 2020.05.26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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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662호에는 이천 냉동 물류창고 화재에서 희생된 안타까운 이의 사연이 머리 기사로 실려있다. 일간 뉴스에서 그저 또 하나의 사건 사고로 넘기던 일을, 이렇게 개인의 사연을 통해 접하니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기사 다른 어디서도 접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사회가 매우 다기해지면서, 누구의 죄라고 100%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점점 늘어간다. 불교에서도, 이제 살생의 업을 누가 지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짐승과 그 짐승을 죽여서 먹는 사람 간의 죄와 업이 분명했지만, 지금은 도살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다르다. 우리는 도살장의 잔인함에 애써 눈을 감고 상 위에 차려진 고기를 맛있게 먹는다. 


이번 냉동 물류창고 화재의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공사 발주처와 시행사가 직접적인 책임을 지겠지만, 이러한 냉동 물류창고에 저장되는 상품을 사는 우리 사회 구성원은 죄는 없는 것인가? 싼 것만을 찾는 우리들로 인해 사람의 목숨이 희생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주변을 돌아볼 여유, 당연히 생각했던 것들의 가치를 더욱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돈이 중요하지만, 돈만 중요하지 않다는 것,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며, 아깝게 목숨을 잃은 이들의 명복을 빈다.


그 외의 기사에서도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잘 알 수 있다. 다음은 다른 기사들의 제목 중 몇몇이다: 

- 팬데믹의 '약속된 출구' 면역에 대한 모든 것

- 선거 조작론에 보수 간 정면충돌만

- 봉쇄 풀린 프랑스의 불안한 일상

- 헛다리 짚는 CIA의 평양 분석


실려있는 또 다른 많은 기사가 내게 유익했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기자가 기더기라 불리는 현실 속에서, 의미 있는 기사들을 실어낸 <시사인>에게 다시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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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평전 보리 인문학 1
한명기 지음 / 보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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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현실, 이상과 실제란 모든 인간이 처한 현실일 것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상을 위해 목숨을 거는 개인은 칭송 받을 수 있지만, 국가가 이상을 위해 온 백성을 거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상을 얘기하는 것은 통쾌하고 선명하지만, 세상은 이상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지혜를 다시금 깨닫는다. "김상헌이 남한산성에서 곧바로 귀향한 것은 지조 높은 행동이었지만 그 또한 최명길이 열었던 문을 통해 나갔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이식이 했던 말이다. 


모두 현실에만 치우친다면 짐승들과 다름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지 않고 이상만 외친다면 그것도 참 난망한 일이다. 균형감, 전략적 사고가 더욱 필요한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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