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댄 후퍼는 미국의 우주론자이자 입자물리학자이며 시카고 대학 교수이다. 그는 이 책에서 현대 우주론이 당면한 세 가지 문제를 나열한다.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암흑물질이 무엇인지, 왜 우리 우주에 물질이 반물질보다 훨씬 많은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주의 가속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암흑에너지는 무엇인지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우주의 '미스테리'가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 초기의 몇 초 동안과 연관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최근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은 답보 상태이다. 많은 기대를 걸었던 고에너지 실험과 정밀 관측 결과가,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물리학이나 문제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실험들은 몇몇 유력했던 이론들을 배제해버리는 효과를 낳았다. 저자는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는 데 사용하는 '렌즈'가 잘못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을 이야기하면서도, 새로운 실험, 관측, 그리고 아이디어가 미스테리를 해결하리라 낙관한다. 비관론자인 내게는 '렌즈'에 대한 언급이 눈에 더 크게 들어온다. 저자는 이러한 미스테리들을 "loose ends"라고 언급하며 조금만 더 연구를 지속하면 매듭을 지을 수 있을 것처럼 언급하지만, 사실 이런 상황은 19세기 말에 우리가 이미 겪은 바 있다. 당시에도 몇몇 '사소한' 문제들--흑체복사의 문제, 물질의 방사성--을 제외하고는 물리학의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loose ends"들은 해결될 것이기에 물리학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고 많은 물리학자들이 생각했다. 하지만 역사는 어떻게 전개됐는가? 간단한 "loose ends"라고 생각했던 것이 혁명을 잉태하고 있었고, 20세기 초 물리학에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두 기둥이 태어나며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눈을 완전히 바꾸었다. 


역사는 다시 반복될까? 알 수 없다. 어쩌면 현대 우주론과 입자물리학이 맞닥뜨린 문제가 너무나 거대해서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주는 영원히 미스테리로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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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버리는 이 책에서 기존에 알려진 2차대전에 대한 통념 몇 가지를 바로잡으려고 한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인해 2차대전이 시작되는 상황에 대한 것이다. 


1. 2차대전은 누가 일으켰는가? 앞에서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대전이 일어났다고 적었다. 그럼 2차대전을 일으킨 것이 독일인가? 오버리는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영국, 프랑스와 바로 싸울 생각은 없었다고 말한다. 체코를 병합한 것의 연장선상으로 그저 식민지(독일어 표현에 따르면 레벤스라움Lebensraum, 즉 '삶의 공간')를 늘리고자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발 제국주의 국가인 독일의 팽창을 선발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는 그저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1939년 9월 3일, 영국/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다. 이렇게 2차대전은 시작됐다. 독일의 호전성이 2차대전을 촉발한 것은 맞지만, 독일-폴란드 전쟁이 세계대전이 된 것은 영국/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영국/프랑스는 독일이 더 강해지기 전에 독일을 꺾으려고 했다. 히틀러는 영국/프랑스와 싸우더라도 독일이 더 강해진 이후인 1942~43년 경 싸우려고 했다. 두 제국주의 세력 간의 전쟁은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2차대전의 발발이 1939년 9월 3일로 정해진 것은 영국/프랑스의 결정이었다. 물론 독일이 잘 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국/프랑스는 자신들의 영토와 식민지가 직접 독일의 공격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독일과 전쟁을 선포했다. 자신들의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더 기다리기보다는 바로 독일과 전쟁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 더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독일이 처음에 너무 잘 싸우는 바람에 이러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2.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 몇 주만에 패퇴하면서, 영국만이 독일에 맞서게 되었다. 히틀러는 영국과 굳이 싸울 생각은 없었지만, 새롭게 총리가 된 처칠의 지도 하에 영국은 독일에 대항하게 된다. 섬 나라 영국과 이미 상당히 영토를 확장하여 유럽의 많은 부분을 손에 넣은 독일의 대결은 영국이 위태로워 보였다. 독일의 기세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은 영국 본토로만 한정해서 생각하면 안 된다. 식민지를 포함한 영국제국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 영국의 별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식민지 백성과 물자를 모두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영국-독일의 전쟁이 영국의 열세라고 하기는 어렵다. 물론 전쟁 초반에는 준비가 더 잘 된 독일이 우세해 보였다. 독일이 영국 공군을 무력화하기 위해 벌인 '영국 전투'(영국 항공전)에서도 영국은 '소수' 공군 조종사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독일 공군을 물리쳤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독일 공군이 폭격 목표를 공군기지 등 군사적 목표에서 런던으로 바꾸지 않았다면 영국 공군이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은데, 오버리는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영국은 사실 충분한 전투기와 조종사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전투기 세력은 독일 공군과 대등했다. 시간이 흐르며 전투는 소모전 양상으로 흘러갔는데,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항공기 생산량은 영국이 독일보다 오히려 우월했다는 것이다. 


3. 영국 항공전이, 독일이 영국에 실제로 상륙하여 침공하기 위한 사전 작전인지, 아니면 단순히 영국을 위협하여 협상의 장으로 나오게 하기 위한 작전인지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있다. 영국 항공전에서 영국 공군을 압도하지 못한 독일이 결국 영국 침공을 접고 동쪽의 소련을 침공하기 때문이다. 많은 책들은 히틀러가 영국을 실제로 침공할 생각이 없었다고 기술한다. 독일군이 상륙용 주정을 모은 것도 단순한 위협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버리는 히틀러가 영국 침공을 정말로 심각하게 고려했으며, 이후의 소련 침공조차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한 정지 작업의 측면이 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소련 침공은 식민지를 넓히려는 히틀러의 야욕에 부합했다. 독일은 결국 소련이란 진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수세에 처하게 된다. 


오버리의 책은 쉽지는 않지만 새로운 시각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이후에도 많이 언급되는 저작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의 상황을 자꾸 현재와 연관 지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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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2
조세래 지음 / 문예춘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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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勝負)는 '이기고 짐'의 한자어이다. 찾아봐도 적절한 영어 단어가 없는 것 같다. 이기고 짐을 목표로 하는 game이라고 해야할지, 대결이라는 의미에서 duel이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승부사란 이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바둑을 두는 사람도 승부사이다. 이기고 짐이 명확한 승부에서, 진 사람은 견디기 힘든 아픔을 겪는다. 이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라니... 


2편의 주인공은 추평사의 아들인 추동삼이다. 추동삼 역시 세상을 떠돌아 다니는 바둑 명인이다. 여기에 화자 역할을 하는 박 화백의 인생 얘기가 겹쳐진다. 책에는 전문기사 제도가 자리를 잡기 전에 돈을 걸고 바둑을 두는 사람들 얘기가 넘쳐난다. 큰 돈이 걸린 내기 바둑 승부를 이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이들, 두어보니 기력 차이를 실감하는 이들, 바둑 실력을 늘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이들의 얘기를 읽으니 TV 바둑 중계에서 바둑 두는 기사들이 왠지 다르게 보인다. 


바둑을 주요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끝까지 읽어보니 결국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인생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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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ersistence of mathematicians in searching for some basic truths is understandable. To accept the fact that mathematics is not a collection of diamonds but of synthetic stones, after the centuries of brilliant successes in describing and predicting physical phenomena, would be hard for anyone and especially for those who might be blinded by pride in their own creations. Gradually, however, mathematicians granted that the axioms and theorems of mathematics were not necessarily truths about the physical world. Some areas of experience suggest particular sets of axioms and to these areas the axioms and their logical consequences apply accurately enough to be taken as a useful description. But if any area is enlarged the applicability may be lost. As far as the study of the physical world is concerned, mathematics offers nothing but theories or models. And new mathematical theories may replace older ones when experience or experiment shows that a new theory provides closer correspondence than an older one. (p. 97)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자들이 계속해서 기본적 진리를 찾는 데 매달린 것은 이해할 만하다. 수 세기 동안 물리 현상을 기술하고 예측하는 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수학이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인조 보석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특히 자신들이 만든 창조물에 대한 자부심으로 눈이 먼 이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수학자들은 수학의 공리와 정리들이 반드시 물리 세계에 대한 진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어떤 영역의 경험은 특정한 공리 집합을 제시하며, 이 공리들과 그것들의 논리적 귀결은 이 영역에 충분히 정확하게 적용되어 이를 경험에 대한 유용한 기술로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들이 더 확장된 영역으로 적용된다는 보장은 없다. 물리 세계 연구에 수학은 이론, 즉 모형만을 제공할 뿐이다. 경험 또는 실험에 대해 새로운 수학 이론이 이전 이론보다 더 밀접한 대응관계를 제공한다고 판명되면 새로운 이론은 이전의 이론을 대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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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오버리Richard Overy는 영국의 전쟁사가로서,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Russia's War>이라는 2차 세계대전 중 독소전에 관한 그의 책이 번역되어 소개된 바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폭격전을 다룬 그의 <The Bombing War>를 근래 읽었는데, 최신 사료를 이용하여 기존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역사학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의 최근작인 <Blood and Ruins>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는 이 책에서 2차 세계대전이 1차 세계대전부터 이어오는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전쟁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번역가 이희재는 그의 책 <번역전쟁>에서 1차 세계대전은 떠오르는 강국 독일을 견제하려는 영국의 군산복합체(그리고 그 배후의 ‘금벌’)가 일으켰다는(또는 유도했다는) 시각을 얘기한 바 있다. 결국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으로 얼마 없던 식민지를 모두 잃은 독일은 다시 한 번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에 합류하기 위해 식민지가 필요했는데, 이미 세계는 선발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 등이 거의 나눠가진 후였다. 독일은 그 해결책을 상대적으로 낙후되고 힘이 미약한 주변의 유럽국가들에게서 찾았다. 핑계는 거기에 독일계 주민이 거주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오스트리아, 그다음엔 체코, 그리고 그 다음 목표가 폴란드였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은 선발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 프랑스와 후발 제국주의로 도약하려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 간의 싸움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오버리의 주장이다. 전 세계에 식민지를 둔 국가들 간의 전쟁이므로 세계대전으로 번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독일은 자신들이 점령한 국가의 백성들을 식민지인으로 (당연히) 가혹하게 취급했다. 이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선발 제국주의 국가들이 취했던 방식이기도 했다. 차이는 선발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프리카나 중동, 아시아 등에서 인종이 다른 식민지인을 가혹하게 다뤘던 반면, 독일은 유럽에서 동일 인종의 유럽인들을 식민지인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선발과 후발 제국주의 통치 모두에 인종주의가 배경으로 깔려있지만, 독일의 인종주의는 좀 더 좁은,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웠다. 유럽에 식민지를 세우자면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제국주의는 식민지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적 착취의 구조이다. 선발 제국주의가 후발 제국주의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가당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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