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would refute the Darwinian theory of evolution? Evidence which, in the light of the best available explanation, implies that knowledge came into existence in a different way. For instance, if an organism was observed to undergo only (or mainly) favourable mutations, as predicted by Lamarckism or spontaneous generation, then Darwinism's 'random variation' postulate would be refuted. (p. 96)


"무엇이 다윈의 진화론을 반박할 수 있을까? 만약 최고의 설명에 비추어볼 때 지식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게 됐다는 증거가 있다면 그럴 수 있을 터이다. 예컨대, 어떤 생명체가 용불용설의 예측과 같이 생존에 유리한 변이만을 주로 겪거나 또는 자연 발생을 하는 것으로 관찰된다면 다윈의 '무작위 변위' 가설은 반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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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day, almost the entire capacity of the Earth's life-support stem for humans' has been provided not for us but by us, using our ability to create new knowledge... The Earth did provide the raw materials for our survival--just as the sun has provided the energy, and supernovae provided the elements, and so on. But a heap of raw materials is not the same thing as a life-support system. It takes knowledge to convert the one into the other, and biological evolution never provided us with enough knowledge to survive, let alone to thrive. In this respect we differ from almost all other species. (p. 50)


도이치는 그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통념 두 가지를 바로 잡으려고 한다. 첫 번째는 '평범성의 원리principle of mediocrity'이고, 두 번째는 지구가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우주선 지구spaceship Earth'라는 이름으로 통용된다. 우주선이 인간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가 인간 생명을, 더 넓게는 생명체들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범성의 원리는 우리가 사는 지구, 태양계, 은하가 전혀 특별할 것이 없음을 주장한다. 평범한 행성, 평범한 항성계, 평범한 은하계의 하나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도이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우주의 진정 평범한 곳은 절대 온도 2.7도의 거의 아무 것도 없는 암흑임을 그는 지적한다. 어찌 지구 환경을, 그 속에서 특별히 배열되어 존재하는 우리를 특별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도이치의 주장이다. 


두 번째, 지구가 우리와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 도이치는 지구가 환경과 자원을 제공하는 것 외에 특별히 어떤 생명을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구가 우리가 살기에 좋은 환경이 된 것은 지구가 우리에게 해 준 것보다는 우리가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더 크다는 것이다. 특히,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달해서 문명을 유지하는 것은 생물학적 진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지적한다.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통념을 원래의 맥락에서 이해하면 잘못됐다고 하기는 힘들 듯 싶다. 도이치는 이 통념이 주는 잘못된 인식의 위험성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점에는 동의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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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son said that research is one per cent inspiration and ninety-nine per cent perspiration--but that is misleading, because people can apply creativity even to tasks that computers and other machines do uncreatively. So science is not mindless toil for which rare moments of discovery are the compensation: the toil can be creative, and fun, just as the discovery of new explanations is. (p. 41)


과학, 또는 과학자는 실패할 때에도 창의적일 수 있다. 실패를 통해서도 배우며, 자연의 본질에 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기계-인공지능은 그렇지 않겠지만. 여기에 인간의 존재 의의가 있을까. 요새는 연구도 인공지능에게 맡긴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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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9일 알파고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제는 노벨상 수상자인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와 현재 인간 최고수인 신진서 9단의 간단한 기념대국도 열렸다.


허사비스는 AGI가 5년 후면 가능하리라고 얘기하는데, 글쎄... 지켜볼 일이다. 


다음은 행사를 다루는 기사. 허사비스와 신진서 9단이 10분 동안 둔 기보와 흥미로운 인터뷰 내용도 나온다. 


https://cyberoro.com/news/N_news_view.oro?num=53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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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ing insignificant because the universe is large has exactly the same logic as feeling inadequate for not being a cow. Or a herd of cows. The universe is not there to overwhelm us; it is our home, and our resource. The bigger the better. (p. 35)


"거대한 우주에서 우리의 하찮음을 느끼는 것은 젖소가 아니어서 우리의 불충분함을 느끼는 것과 정확히 같은 논리이다." 재미있는 생각이다. 논리적으로는 그럴지 모르겠다.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하는 이야기. 하지만 사람의 감정이 늘 논리적인가? 엄청난 집에 들어가면 압도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이것이 우리 집이니 난 부자야 하고 느끼는 것이 더 합당한 반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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