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코의 보물상자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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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의 존재감에 대해 얼만큼의 확신을 가지고 있을까?

아마 확신보다는 나의 부족함을 감추기에 더 우선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부족함을 가지고 있고, 때론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그것이 가장 평범한 일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미코의 보물상자>를 읽으면서 간혹 잊게 되는 나의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붉은 노을 맥주' '스마일 스미레'의 작가 모리사와 아키오 소설의 주인공이 유쾌하고, 시원한 성격으로 기억된다면 이번 소설 <미코의 보물상자>주인공은 연약하지만 단단한 그런 존재로 그려진다.


주인공 미코는 우여곡절이  참 많은 삶을 가진 여자다.

자신을 낳자마자 버린 부모, 엄격하다 못해 학대에 가깝게 키운 할머니, 자신의 존재조차 기억못하는 학창시절, 우연히 만난 남자와의 연애놀이와 연이는 폭력, 딸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미코의 삶은 결코 쉬워보이지 않지만 미코는 묘하게 사람들에게 각인이 되는 그런 여자이다.


<미코의 보물상자>는 싱글맘 미코 또다른 직업, 유사성매매의 손님과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비록 유사성매매로 돈을 버는 미코이지만, 그녀를 버티게 해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존재인 딸 치코때문이다. 극과 극의 직업을 가진 미코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독자는 미코의 삶이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 유사성매매를 하는 미코를 보는 독자들은 아마도 세상에 찌들어 세상을 향해 원망하는 미코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코는 그렇지 않다. 물론 딸아이와 살아가면서 미코의 직업 때문에 눈총을 받고, 소문의 주인공이 될 때도 있지만. 미코의 결단력은 강하다.


<미코의 보물상자>에는 상처를 감추고 사는 이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부모와 절연해서 살아가는 남자도 있고, 대인기피증 때문에 왕따를 당하는 이도 있고, 때론 자신의 못난 부분을 오히려 더 약한 이에게 폭력과 무자비함으로 풀어버리는 지질한 인간도 있다.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좌절'을 특이한 성표현으로 쏟아버리는 중년의 남자도 있다. 그뿐인가? 부모에 대해 어긋한 오해를 하고 엄한곳에서 자신의 결핍을 충족하는 사람도 있다.


<미코의 보물상자>라는 소설이 생각보다 깊게 읽혀진다. 삶에 찌든 미코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세상의 아픔을 가진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투영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삶에 대한 각각의 다른 시선을 보게 된다.

나에게는 사랑이었지만, 상대에게는 상처가 되는 것도 보게 되고, 나에게는 가벼움이지만 타인에게는 지독한 아픔과 돌덩이처럼 무겁다는 것을 보게 된다. 때론 남에게는 지지리궁상의 삶이겠지만 나에게는 가장 소중함의 시간으로 남는 것도 보게 된다.

<미코의 보물상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에서 독자는 잔잔함과 상처 두가지를 다 맛보게 된다.


미코의 기억에 할머니는 학대에 가깝게 모질게 자신을 키웠따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눈으로 본다면 오냐오냐 키웠던 아들이 내깔려두고 간 작은 아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아들처럼 키울 수는 없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을 져버리는 그런 아이로 키울 수 없다. 더구나 부모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이기 때문에 더 강하고 모질게 키울 수밖에 없다. 마귀할멈이 된다 하더라도 나의 아이는 세상에서 꿋꿋하게 버텨낼 배짱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이다.


중학생인 미코와 마음의 공감을 나누던 보건 선생님의 이야기도 그렇다. 어쩌다 보니 엄마가 먼저 돌아가시고, 어쩌다 보니 그 엄마의 자리에 다른 여자가 들어왔다. 아빠를 무겁게 누르고 있을 외로움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 여자가 엄마의 자리에 있다는 것만 중요하고 엄마의 노릇을 그대로 하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싫어서 내가 먼저 피한다.


꿈을 가졌지만 결국 꿈을 버린 늙어버린 중년의 남자가 있다. 박봉의 월급쟁이 삶을 살아가지만 아내는 그런 나의 존재를 비웃기만 한다. 꿈도 없이 그저 의무만 다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나도 스트레스는 지독히 쌓인다. 그나마 멀리 원정을 와서 때론 가학적인, 때론 코스프레하는 방법으로 욕망을 풀어버린다.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이 들지만 나를 상대해주는 미코라는 여자는 천박하지 않다. 오히려 내가 더 위로를 받고 대접을 받는다는 점이 좋다.


세상에는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는 이들이 많다. 나의 부족함, 또는 결핍으로 인한 상처, 좌절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나 아닌 다른 것으로 변명을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고, 나의 생각과 나의 행동으로 이루어질 뿐이라는 답을 알면서도 말이다.

미코는 버림받은 아이다. 그것만으로 삶의 모든 것이 회색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코는 사랑을 배웠다. 조부모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보건 선생님을 위로하면서 사랑을 알게 되었다. 비록 미코를 때리는 남자였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인간의 나약함을 먼저 보았다.

아마도 그것은 괴로운지언정 매일의 보물을 찾으려는 미코의 오래된 습관에서 얻어진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미코의 보물상자>는 읽는 내내 차분할 수밖에 없다.

왜?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라는 질문을 미코에게 수도 없이 하지만, 세상을 향해 담담하게 미소 짓는 미코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세상에서 나만의 보물 찾기...

독자들은 미코의 어린 딸이 결혼식 전날, 엄마의 보물을 들여다보게 눈물 흘리는 모습에서 같이 울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떠나게 되는 딸아이의 앞에 앉은 미코의 모습에서도 눈물이 먼저 흐른다. 하지만 슬프지가 않다. 눈물이 흐르지만 가슴은 왠지 벅차다. 따뜻하다.


세상을 외롭게 살아왔지만, 미코에게는 늘 잔잔한 여운이, 그리고 따스함이 있다.

그것이 미코가 찾아낸 보물 때문인지, 그 보물을 찾기 위해 주변의 어지러움과 혹독함을 안보는 미코때문이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하찮은 물건이라도 그 속에 담긴 추억을 떠올리고, 또 생각하고... 아마도 이렇게 세상을 살아온 미코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따뜻하다..참.. 따뜻하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삶이 거창할 필요가 없는데 가끔은 거창한 삶이 제대로 된 삶이라고 우길 때가 있다.

남의 이야기를 나에게 담으려고 하니 과장된 거창함만 늘어놓는데 말이다.

길바닥에서 주운 작은 돌 하나에도, 오랜 시간 나에게 남겨주었던 할머니의 작은 거울에서도, 어릴 적 친구에게서 받았던 사탕반지에도 의미가 있고, 진한 삶이 있는데도 말이다.


미코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잔잔함이라는 표현이 오래 남는다.

나의 삶에서 이런 잔잔함을 얼마나 만들어봤을까..

가볍게 읽히는 소설이지만, 잔잔한 여운은 오래 남는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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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야 재테크하자 - 월급쟁이가 배워야 하는 놀부의 재테크
윤효신 지음 / 청년정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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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재 당신은 재테크를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잠시 고민을 하게 된다..

내가 과연 재테크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재테크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는 있는 것일까?

나의 경우는 노후대책이라는 숙제 앞에서 어떻게든 재테크를 시작하고 그에 따른 수익을 일으키는 무엇을 해야 하지만 막상 시작을 하려고 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재테크를 하기가 쉽지 않다.

너나 나나 다 어려운 요즘의 경제적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소시민, 평범한 사람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고 해도 거의 비슷한 답을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솔직한 말로 현실은 정말 팍팍하다. 쥐꼬리만한 월급도 월급이지만 날이 갈수록 치솟는 물가 앞에서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절약하는 것이 그나마 재테크 아니겠냐라고 말하곤 한다.

특히 재테크의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인 내 집 마련이라는 타이틀 앞에서는 정말 만만치 않는 현실이 화가 날 때도 있다. 

10여 년이 넘은 시간을 투자하고 쪼개고 살아야 겨우 내 집 마련의 기틀을 가지게 되고 그나마 어느 정도는 대출이라는 부채를 안아야만 마련할 정도이니, 재테크는 남의 이야기이라고 말해도 이해가 되는 현실이다.


주식이나 펀드를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겠냐라는 무관심 역시 팍팍한 경제여건 때문에 그런 자조적인 답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투자 상품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기도 하지만 그나마 가지고 있는 원금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그나마 그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재테크 수단이기도 하다.


중년의 나이가 될수록 고민은 참 많다. 매월 벌어들이는 수입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것이고, 노후대책은 해야 하고 또 장성한 자녀들의 종잣돈이라도 마련을 해줘야 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본다면  알게 모르게 위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재테크를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보통의 사람들은 월급이나 수입을 을 쪼개고 아껴 쓰면서 조금씩이라도 예금을 하고 있다. 조금 더 생각을 하는 이들이라면  조금의 위험부담을 감안하고서라도 경매 등을 통한 재테크를 하고 있다.


여기까지 공감하는 독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다른 방향으로 재테크를 생각을 해봐야 한다.

재테크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도 해보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재테크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그리고 수익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왜 그래야 하느냐고?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변하는 세상에 느긋한 재테크의 방법, 시점이 오래된 방법은 결코 수익 보장을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주 쉬운 예로 부동산 소유로 인한 재테크를 떠올려보면 정확하다. 예전에는 부동산(흔히 말하는 집)을 가지고 있으면 그래도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어떤가? 오히려 매매차익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하우스푸어가 되어서 집을 짊어지고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는 점이다.

세상이 변하니까 재테크에 대한 개념도, 실행 방법도 당연히 바꾸어야 한다는 점을 독자들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을 자주 이용하는 독자라면 온라인상에서 아주 유명한 가계부를 알 것이다. 재테크 관련 카페인 <흥부야 재테크하자>라는 곳이다. 그런데 동명의 이름으로 운영자가 재테크에 대한 책을 독자들에게 내놓았다.

저자는 평범한 독자에게 가난한 흥부가 아닌 부자인 흥부가 되는 법을 소개한다.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목돈 만들기를 떠올리면 된다.

소시민들이 가장 손쉽게 시작할 수 있고, 가장 안정적인 방법으로 수입을 쪼개서 금융기간에 장기 보관하는 방법으로 목돈 만들기를 가장 큰 재테크로 여기고 있다.


지금 이 시점은 부동산, 주식, 크라우드 펀딩 시대이다. 월급을 받아서 한 푼 두 푼 모아서 목돈을 만들겠다는 단순한 재테크는 이젠 버려야 할 때이다.

부자들이 왜 부자가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분명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마인드로 금리를 찾아내고, 투자방법을 찾아낸다는 점을 꼼꼼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부자는 왜 부자일까?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생각을 하고 실행을 하기에 남들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남기고, 이자에 이자를 불리는 복리의 개념으로 자산을 불려가고 있을까?라는 관점으로 주시를 해야 한다.


<흥부야 재테크하자>를 읽으면서 나 역시 아주 단순한 개념의 재테크만 알고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부자는 처음부터 다르다는 무책임한 결론을 내리고 그들이 움직이는 것은 소시민의 생각과는 아예 다르다고 스스로 발전을 하려고 하지 않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참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생각을 퍼뜩 든다.


<흥부야 재테크하자>는 투자, 재테크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이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글로 설명한다.

가장 기본적인 개념부터 설명한다. 재테크니 자산의 증식이니라는 말을 언급하기 전에 내가 가진 자산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세세히 살펴보는 계기를 제시한다. 그리고 흔히 간과하게 되는 통장관리에 대한 개념부터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자유롭게 사용하는 입출금 통장과 목돈 마련을 위한 예금 등으로 만 구분을 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통장부터 확실하게 쪼개서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부터 재테크의 시작이라고 한다.

이젠 은행의 금리를 운운하는 시대는 옛말이다. 은행도 자금을 굴려서 자산의 증식을 위한 하나의 사업체이기 때문에 결코 소시민의 금전에 대한 금리를 넉넉하게 줄 이유가 없다. 독자들은 이러한 금리, 금융기간의 생리를 정확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


<흥부야 재테크하자>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복리의 개념'이다. 돈이 돈을 벌게 한다는 말이 그저 하는 소리가 아니다. 이런 말을 믿고 꼼꼼하게 정보를 챙기고 자산의 증식을 꾸려가는 사람은 분명 부자가 될 것이고, 돈이 돈을 벌게 한다더라는 말을 자조적으로 하면서 그건 나와는 별개의 문제인, 이를테면 자산 증식에 도가 튼 사람이나 경제 공부를 한 사람들이나 하는 방법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은 결코 자산의 증식의 일부분이라도 경험하지 못하게 됨을 언급한다.


재테크라는 것은 한마디로 투자를 하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금을 은행에 가만히 넣어만 둔다면 지금의 초저금리 시대에 어떤 수익을 얻을 수 있을까? 절대 수익 창출이 어렵다. 그저 원금 보전만 보장할 뿐이다.

그렇다면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인데 투자를 해야 하는 가장 적절한 금액(이를테면 결코 손해를 보지 않을, 또는 어느 정도의 수익을 보장하는 종잣돈의 한도 금액 등등) 이 얼마여야 하나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나의 판단에 의해서, 내가 수집하는 정보에 의해서 진행이 되어야 한다.


그래도 재테크에 대해 감을 못 잡는 이들에게 이 책은 간단하고 확실한 답을 해준다. 재테크란 높은 수익보다는 안정적으로 꾸준히 들어오는 수익이 우선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또 하나의 팁을 얻게 된다. 바로 저자가 언급하는 '복리'의 개념이다. 레버리지의 개념을 재테크에 적용을 하는 것이다.


솔직히 재테크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해본 적이 없다. 재테크라고 하면 어느 정도의 종잣돈을 마련한 후에 그것을 투자해서 수익을 얻는 방법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흥부야 재테크하자>를 읽으면서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이 바로 복리의 개념, 레버리지의 개념이다.

아끼고 절약해서 겨우 종잣돈을 만들고 그것으로 재테크에 투자를 해서 수익을 얻기란 시간이 무척 많이 걸린다. 그리고 그동안의 금융시장의 변화로 또 어떤 변수가 적용될지도 모르는 미지수의 수익을 바라는 것보다, 종잣돈 마련과 수익 창출이라는 개념을 복리를 이용해서 충분히 움직여볼 수 있겠다는 감을 잡아보게 된다.


그동안의 나의 재테크는 종잣돈 모으는 것에만 포인트를 두었지만, 조금씩이라도 복리를 적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재테크를 체크해야겠다. 재테크의 개념을 새롭게 인식하는 <흥부야 재테크하자>를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각각의 나이별로 확실하게 개념을 잡아두어야 하는 재테크에 대한 저자의 글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

20대, 30대, 40대 각각의 상황에 맞게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예가 있기 때문에 과감하게 개념의 변화를 시도해봄도 좋을 듯싶다.

재테크에 대해서 재미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새로운 개념의 재테크를 확실하게 잡아보는 그런 책이라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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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외롭지 않아 - 때론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 아우름 8
마스다 에이지 지음, 박재현 옮김 / 샘터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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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력하면 된다'라는 말을 참 많이 한다.

남들이 좌절을 하거나, 시련에 빠져서 허우적댈 때 우리는 흔히 '노력하면 된다', '노력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동안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하다'라는 말로 위로를 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내가 좌절을 했거나, 만족할 결과를 얻지 못할 경우는 어떠할까?

타인에게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결과를 던지면서 나에게는 그에 따른 보상이나 대가가 없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에게도 '노력을 했으니까 됐다'라는 말로 쉽게 마무리를 짓지 못한다는 말이다.

자신에게는 절대로 노력만으로 충분하다는 말로 자신을 쉽게 위로하지 못하고 나의 노력에 대한 무언가를 꼭 쟁취해야만 나의 노력을 인정받았고,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스스로 보상 없는, 대가 없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고 먼저 결론을 내리고 움직이는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볼 필요도 있다. 


샘터 아우름 시리즈인 <노력은 외롭지 않아>를 통해서 우리는 저자가 했던 인생의 노력에 관해서 읽어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과와 보상에 대해 더 중점을 두고 있던 독자들이라면 저자의 글을 통해서 과연 우리가 노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노력을 노력 자체만으로 인정을 하고 그 순순한 뜻을 잘 실천하고 있는지 생각을 갖게 하는 시간을 가져보게 된다.


저자 마스다 에이지는 일본의 변호사이며 사진가로도 활동하는 사람이다. 글 속에서 밝히는 그의 삶은 보통의 사람보다 더 많은 고통과 좌절을 겪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제목인 <노력은 외롭지 않아>보다는 부제 "때론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라는 글이 더 눈에 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노력이라는 것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함이 아닌, 스스로 객관적으로 생각을 하고 그에 따른 결론에 수긍해야 하는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타인이 노력을 하라고 한들, 자신의 마음과 열정이 없으면 절대로 할 일도 없고, 남의 인생에 내가 끼어들어 대신 노력을 해줄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 이 노력이라는 것은 나 스스로를 키우는 성장의 한 과정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노력의 정도에 따라 반드시 결과를 얻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을 해본다면 노력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그동안의 내 행동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설사 보상이 적다고 해도 타인의 잣대, 또는 객관적인 잣대로 본다면 노력만큼의 보상일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노력, 결과, 보상, 대가는 완전히 나만의 것이고 나의 움직임에 대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어마어마한 운과 재능을 가진 이들에게 번번이 밀릴 때가 태반일 테고, 결과물에 대한 보상 역시 천차만별인 경우가 많다. 끝없이 노력하면 되다는 말로 자신을 다독이면서 달려보지만, 말도 안 되는 결과를 얻을 때의 좌절감은 정말 쓰다. 그렇게 생각하자고 마음을 비우다가도 평균적이지 못한 상황에는 화도 나도 세상에 대한 원망을 쏟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 말아야 할까?

내 마음의 상처가 두려워 노력을 아예 접고 살아야 할까?


저자는 참 지독한 삶을 살아왔다. 어릴 적 아버지의 부재와 가난한 삶에 이은 생활고, 그로 인한 긴 병치레를 겪었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의 축복으로 태어났을 큰아이의 난치병과 그로 인한 죽음, 그리고 부모로서의 좌절감을 겪었다고 한다.

저자는 살기 위해서 노력을 했고,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아무런 방도가 없다는 대답 앞에서도 아이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결코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렇다고 포기를 했을까? 아니다. 저자는 동적인 노력, 정적인 노력으로 자신을 다독였다.


거창한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체를 노력이라고 해도 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도 노력일 테고, 어제의 화를 참으면서 오늘 다시 매진하는 것도 노력의 하나일 것이다. 좀 더 나은 성적을 위해서 움직이는 학생들의 하루도 노력의 하나이고,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한 취준생의 하루도 노력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노력을 하면서 그 노력에 대한 감사를 느끼지 못하다는 점에 만족도의 강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하루의 모든 시간이 노력의 하나일 텐데 이것을 스스로 너무 가볍게 여긴다는 점이다.

물론 지겹고 힘겹고 짜증 나고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고, 또 시작하는 것 자체가 노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때론 고생하는 부모님을 떠올리면 다시 매진한다는 이도 있을 것이고,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이도 있다.

또는 지금보다 더 나은 경제적 안정을 위해 다시 참는다는 이도 분명 있다.


비록 큰 결과는 아니었을지언정, 진정으로 원했던 목표를 향해 움직였던 과거를 떠올려 보자. 그리고 그것을 위해 생각과 온몸이 강렬해졌던 감정을 떠올려보자.

어느 누구던 분명 그렇게 움직였을 시간이 있었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나의 정신이 더 맑아지고 강했을 적이 있음을 있을 것이다.


결과를 따지기 전에 끝없이 매진했던 기억과. 그 결과를 향해 움직이던 나의 영혼의 외침을 기억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노력의 시작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저자 역시 이렇게 말을 한다.

비록 결과를 얻지 못해도,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해도 올바른 노력을 하면 운명을, 그리고 인생을 크게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역경에 처한 사람. 벽에 부딪힌 사람, 불합리에 역겨움을 느끼는 사람, 기적을 원하는 사람, 좌절을 딛고 재기하고 싶은 사람, 운명을 바꾸고 싶은 사람, 인생을 바꾸고 싶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뻔한 말이겠지만, 노력의 결과보다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노력'에 대한 가치를 더 바라보았으면 한다.

좌절도 당연한 것이고, 쥐꼬리만한 보상도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스스로에게 적용했으면 한다.

누구보다도 지금 하고 있는 나의 노력은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나의 만족을 위해서 하고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결과보다는 그 자체에 가치를 두는 그런 넓은 시선을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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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책 읽기 아우름 9
장석주 지음 / 샘터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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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은 인생의 오후, 빛은 따듯하고 그림자 길어져, 걸음을 느리게 잡아당기면 곧 펼쳐질 금빛 석양을 기대하면서 잠시 쉬어 가도 좋은 시간.

아침부터 수고한 마음을 도닥거리고 어루만지면서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지 평온하고 지혜롭게 사유하라.

그런 이에게 오후는 길고, 충만하다"(졸저 <마흔의 서재>중에서...


책을 읽다 보면 어디엔가 기록을 해놓고 싶은 구절이 있다. 마흔 중반을 넘어서면서 책을 읽게 되었다. 그전에도 읽기는 했지만 아이들 키운다는 이유로 나만의 독서 시간을 내지 않았었다. 우연히 시작된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스스로 만족감에 뿌듯함을 느끼는 날도 있다.


주변 내 나이 또래의 중년 아줌마들보다는 조금 별스럽게 책을 많이 읽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한 사람으로 내 만족에 뿌듯하면서도 때론 숙제 아닌 숙제를 짊어지는 듯한 상황이 생길 때면 내가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나라는 반문을 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라는 책을 읽어가면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내 인생의 또 다른 그림을 위해 준비하고 있음을 다시 깨치게 된다.

아하... 이런 의미를 찾고 싶은 거였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샘터 아우름 시리즈의 하나인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를 읽는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다독가이자 인문학 저자인 장석주 작가의 경험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다독가라는 점에 눈길이 간다.

책을 왜 읽을까?

재미있어서 읽고, TV에 매달려 사는 게 싫어서 읽기도 한다. 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알고 싶어서 책을 읽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또는 내가 읽은 책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뿌듯함이 읽기도 한다.

그렇다면 책을 읽었다는 것으로만 결론이 내려지는 것 아닐까?


솔직한 말을 하자면 책을 읽는 것도 상당히 힘들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책을 읽기도 어렵지만, 주부와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다니면서 책을 읽기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읽고, 내가 쓴 글이 하나씩 쌓여가는 재미와 뿌듯함이 더 배로 크게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에서 이런 글이 있다.


나는 책읽기가 '지적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읽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노동이라는 점에서 거기에는 인내와 수고가 따릅니다. 인내와 수고 둘 중 하나라도 회피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책 읽기입니다.


우린 책읽기를 통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우주의 경계를 더 넓게 펼쳐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보고 들은 것이 제일 정확하다고 믿고 산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사건, 그리고 수많은 주장일 공존하고 살아간다. 그것을 이루는 여럿의 우주를 다 접하고 살기란 어렵다. 내 우주의 일도 제대로 흘러가지 못해 방황하고 좌절할 때가 있는데 다른 우주를 이해하기를 절대적으로 어렵다.

어려운데 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책읽기 이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어본다.

그렇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나, 깊이 있게 읽어야 하나.

여기에도 여러 우주가 존재한다. 무조건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도 맞는 것이고, 쉽게 쉽게 읽어내려가야 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모든 책을 빨리 읽어야만 되는건 아니고, 반대로 모든 책을 천천히 정독할 필요도 없습니다. 책은 저마다 그 책이 갖고 있는 지식수준과 밀도에 알맞은 적정 속도로 읽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속이 후련하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주변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책을 더 많이 읽지만, 언제부터인지 책에 눌린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저 책에 대한 욕심으로 일단 무조건 읽어보자 했고, 그냥 책을 읽었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의 깊은 곳까지 되새기고 생각할 여유도 없이 그렇게 말이다.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의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가까이하지 않음에 안타까움을 전한다. 물론 사느라 바빠서 시간도 없도 금전의 여유도 없다는 말도 맞다. 하지만 저자는 책 속에는 그 금전보다 열 배는 더 되는 값어치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사는 게 어려울수록, 좌절감에 빠질수록 오히려 책과 더 가깝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얼마 전부터 지침을 느낀다. 늘 똑같은 일상에 지치는 것에 더불어 신체적인 변화에 스스로 위축이 되어간다고 할까? 그동안 달려온 시간에 대해 자꾸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억지가 생긴다. 한동안 밀어두었던 책읽기를 다시 시작한다.

오랜만의 일이라 글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그래도 읽는다. 그렇게 그렇게 시작하고 2주정도 지나니 다시 글이 눈에 들어온다.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우울감이 있기는 하지만 책을 읽고 나만의 글쓰기를 통해서 나를 다독인다고 해야 할까?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를 읽어가면서 많은 공감을 느낀다.

아하... 이래서 책을 읽는구나.. 이래서 내가 책읽기를 참 좋아하는구나라고 다른 시선으로 결론도 내려보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지게 되면 느닷없는 죄책감이 들 때도 있지만 이 역시 하나의 경험으로 즐겁게 느끼라는 저자의 말도, 책을 읽되 책의 내용만 기억하기보다는 책에 몰입해서 여러 가지 상상을 동원할 수 있는 느낌을 즐기라는 저자의 말도 참 반갑게 느껴진다.

책을 읽되 아직 초보자의 선을 넘지 못한 내가 느꼈던 책에 눌린다는 느낌... 이것은 책읽기에 대한 어쭙잖은 인식 때문이었나 보다는 생각도 해본다. 나에게 맞춰서 책읽기를 하되 책에 몰입하는 것... 이것이 가장 좋은 책읽는 방법일 텐데 말이다.

또한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강박적인 습관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속으로는 얼마나 후련하던지..


책 속에 모든 길이 있다.라는 말이 옳은 답인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간혹 다른 곳에서 길을 찾으려고 무던히도 헤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책에서 얻는 경계만큼 나의 우주는 더 넓어짐을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혹여나 더 빠른 길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어리석은 기대감에 그렇게 움직인다.

저자는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냈고, 그것을 이어오고, 그것으로 인한 기쁨과 만족감이 가득하다고 한다.


인생의 모호함을 느끼고 있는 독자라면 저자의 말처럼 책을 통해서 다시 매진해봄이 어떨까? 아직도 미래의 꿈에 대해서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청년 세대들 역시 차분하게 책을 통해서 나의 꿈과 나의 목표를 재정비함은 어떨까?

과연 그럴까?라는 의구심보다는 수많은 현인들이 남긴 책들과 그것이 여전히 읽히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서 나의 인생을 통째로 뒤바꿔 보는 것도 획기적인 인생의 한 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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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22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글 속에서 저를 만나는 줄 알았어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멋진엄마 2016-01-22 17:36   좋아요 0 | URL
ㅎㅎ고맙습니다...저도 책을 꾸준히 읽고 있지만, 제대로 읽는건지..왜 읽고 있는건지 문득문득 반문하게 되더라구요..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하고 있는 책읽기에 대해 자신감이랑 자부심이 생기더라구요^^
 
새로운 생각은 받아들이는 힘에서 온다 - 시인의 마음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표현하기 아우름 7
김용택 지음 / 샘터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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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시인...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또 어른이 되어 임실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자연에서 느끼는 감성을 고스란히 시로 표현한 김용택 시인이다. 문학의 중심지인 서울에서의 활동이 없는 상황에서도 김용택 시인의 독자층은 꾸준히 형성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짧은 글귀로 압축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시의 특성상 모더니즘이나 민중문학의 표현에 앞장서는 것이 그것이지만, 김용택 시인은 그러안 이슈적인 면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김용택 시인이 그렇게 활동하지 않아도 독자들에게 각인되는 가장 큰 이유는 태어나서 자라고 일하던 곳의 자연 이야기를 묵묵하게 쓰기 때문일 것이다. 시골의 넉넉함과 풍요로움, 때론 겪어보고 싶은 체험을 글을 통해서 전달받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김용택 시인이 이번에는 시가 아닌 담담한 글로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전한다. 샘터의 '아우름 시리즈'를 통해서 읽게 되는 <새로운 생각은 받아들이는 힘에서 온다>라는 책이다.

알려진 대로 샘터의 '아우름 시리즈'는  각계각층의 명사들이 다음 세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만의 색으로, 또는 저자들이 경험했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속에서 느꼈던 지혜를 두루두루 이야기하는 책이다.

인생의 선배가 들려주는 말이기도 하고, 작가의 작품성을 염두에 두는 것보다는 소통이라는 주제를 놓고 독자들에게 편하게 이야기하는 책이다.

읽어 내려가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편안한 글도 좋고, 저자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좋은 것이 바로 '아우름 시리즈'인 것 같다.


<새로운 생각은 받아들이는 힘에서 온다>

제목만으로 느끼게 되는 것은 뭐랄까... 틀에 박힌 이야기만 들려줄 것 같지만, 전혀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글은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대로의 것이 나의 생각이 되고, 나의 힘이 된다..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아시다시피 김용택 시인의 글 속에는 시골에서 자라고, 경험하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 이야기가 있다. 서두름 없이 천천히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나무며 구름이며 하늘이 참 환하게 다가오는 그런 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소낙비가 내린 후에 거미줄에 맺힌 빗방울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늘 콩콩 밟고 건너뛰는 도랑의 디딤돌도 이야기도 있다.

시인은 모든 것을 천천히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그 모습을 글로 남기고 독자들은 그 글을 통해서 자연이라는 것을, 그리고 바쁨이라는 생활 속에서 잊고 있던 파란 하늘을, 싱그러운 시골의 공기 냄새를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할 것은 그 자연 속에서 삶의 모든 것을 깨우치는 지혜를 저자도 얻고, 독자도 얻게 된다는 점이다.


간혹 도심 생활은 너무도 바쁘게 경쟁 속에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게 자연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자연에 눈을 돌리는 자체가 여유 있는 삶의 하나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모두 여유가 없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면서, 도심 속에서 살아가면서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인의 말처럼 억지로 보라는 것이 아니라 매일 내 눈에 스치는 모든 것을 찬찬히 들여다봄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매일 똑같이 다니던 골목길에서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그 어떤 날 유독 파란 하늘이 각인될 때의 느낌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잠시 그 하늘의 색에 취해서 아무 동요가 일어나지 않던 그 잔잔함을 말이다.

시인이 말하는 자연을 들여다보고, 주변을 찬찬히 들여다본다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파란 하늘 때문에 속이 후련했다...라던가, 파란 하늘을 보니까 웃음이 저절로 피어난다 하던가 등의 내 감정을 표현해 본 적이 있는가 떠올려보게 된다.


이 책의 부제가 <시인의 마음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 표현하기>이다.

그만큼 표현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 역시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학창시절에는 글자 하나하나 정성 들여 쓰는 일이 많았다. 수업시간에 줄기 장창 써 내려가던 필기부터 가슴 설레던 첫사랑과의 소식도 예쁜 편지지에 꼭꼭 눌러 적어 보냈었다. 조금 더 발전하고 글에 자신이 있는 친구들이라면 심야 라디오 방송에 사연을 보내고 읽히기를 애타게 기다리기도 했다.

비록 솜씨는 부족했을는지 몰라도 모든 것을 글로 썼고, 글 속에서 표현이 되었던 그때가 있다.


그런데 요즘의 주변 모습을 그렇지가 않다. 출근길에 보면 애어른 할 것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오히려 책을 읽고 나서는 사람이 귀한 정도이기도 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 시대 속에서 사는 아이들은 속도전에서는 무척 빠르다. 지구 곳곳의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알려지는 시대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눈으로 보고 바로 인식되는 이 방법 때문에 내 속에 있는 감정에 대해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는 것이 생각해 볼 문제라는 것이다.

싫다 좋다, 다르다 틀리다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을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도 없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내가 가진 정보를 날리고 있는 동시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의견을 말하기 전에 전하는 이의 감정을 그대로 인식하고 또 다른 곳으로 날려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인문학이 강풍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인문학을 듣는 청년들이 과연 인문학을 이해하고 싶어서 듣는지, 아니면 또 다른 스펙을 위해서 듣는지 모르겠다. 그 어려운 책에 대해서 열심히 듣고 본 이들에게 그것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라고 한다면 거의 태반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는 것이다.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자세히 보아야 생각이 일어난다.

무엇을 이루어야겠다는 생각도 우선이겠지만, 그 과정에 있는 것을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는 어떨까?


시인은 가르치던 올망졸망한 아이들에게 자기 나무를 정하게 했다 그리고 매일 '네 나무는 뭐하고 있대?'라고 물어본다. 몇 번을 보라고 하고 물어봐도 그냥 '나무가 있다'라고 말하던 아이들이 어느 날은 나무 아래 할아버지들이 있고, 냇물이 있고, 하늘이 있다는 것을 말했단다.

매일 똑같은 자리에 있던 나무의 존재도 기억하지 못하던 것이 그 자리에 나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좀 더 들여다보고 천천히 보니까 나무 옆에 시냇물이 있고, 나무 그늘에서 할아버지들이 한가로이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이라는 것이 그렇다.

내가 뭘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살아갈까에 대한 계획은 거창하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것은 매일 조금씩 나를 보고 주변을 보고, 세상을 보는 힘 때문에 결론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하고 싶다.

시인이 독자들에게, 특히 다음 세대들에게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런 시야를 갖기 원함이 아닐까?

책을 읽고, 글을 읽고, 글을 쓰고, 나를 표현하는 것.

이것이 내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정리한 생각에 또 다른 생각이 겹쳐지는 것

이것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어느 날 뚝 떨어지는 삶의 지혜는 없다. 인생의 깊이는 없다.

어떤 일이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하는 것, 그래서 내가 잘하게 되는 것.

이것이 삶의 의미이고 인생의 목표가 아닐는지.

그렇게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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