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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씨는 진짜 사랑입니다
엘리자베스 버그 지음, 박미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9월
평점 :
나의 혈육이 가장 든든하고, 가장 믿음직하다는 말이 무색한 세상에 살고 있다. 참.. 무섭고, 안타까운 일이다.
언제 어디서든 나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피로에 지친 나를 감싸주는 가족이 없다는 것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세상은 오히려 가족이 없는 것이 더 좋은 그런 지경의 일도 간혹 보여준다.
하지만 이렇게 변하는 세상에서도 우리는 가족의 사랑. 그 속의 따뜻함. 그리고 끈끈한 사랑을 늘 갈망한다.
어쩌면 이 감정은 이후의 미래가 오더라도 변하지 않는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아서씨는 진짜 사랑입니다>는 세상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서로에게 따뜻함을 전해주고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가는 그런 소설이다.
힘없는 노인, 가정과 학교에서 소외된 청소년, 오직 자기만의 주장만을 하는 수다쟁이 할머니라는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이들의 모습을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서서히 엮어가는 소설이다.
사랑이라는것. 특히 가족의 사랑이라는 것이 꼭 혈연이 아니더라도 남에게도 충분히 주고 받을 수 있는 따스한 감정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얼마전 아내를 죽음으로 떠나보낸 85세 아서 씨의 일과는 무덤덤하다. 약한 몸을 이끌고 정원을 가꾸고. 말 안듣는 고양이 고든을 챙기고 작은 도시락을 챙기고는 아내의 무덤으로 가서 하루의 절반을 보내고 온다.
할일 없는 노인의 하루 때우기의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또는 변화도 없이 느릿하게 지나는 하루겠지만, 아서 씨는 이 시간을 결코 허튼 시간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무엇을 한다는 것. 더구나 나의 아내 놀라를 떠올리고 그녀의 주변에 함께 누워있는 이들의 생을 떠올려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초라한 하루는 아니다.
고즈넉한 무덤을 배경으로 한 아서 씨의 하루 일상은 의외의 모습이다. 죽음과 슬픔으로 음산할 것 같은 무덤이 기억의 존재를 확인하는, 그리고 따뜻한 추억을 재생하는 그런 장소로 보여지는 부분이 그렇다.
이런 변화없는 일상 속에서 아서 씨는 매디라는 매디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고교 졸업을 앞둔 매디는 아버지와 살고 있지만 단둘뿐인 이들은 오히려 더 남남같다. 배려도 없고 이해도 없다. 너무 냉랭하고 무관심하다. 엄마의 부재, 아내의 부재라는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아빠도 딸도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매디의 아빠는 자신만의 슬픔이 먼저인 사람이다. 미성년자인 딸을 챙길 여력조차 없는..못난, 약한 그런 아빠이다. 이런 아빠의 부재로 매디는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는 돌봄을, 배려를 받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사랑을 찾았다고 한다. 단지 잠깐의 쾌락조차 자신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인다.
느닷없는 미혼모라는 선택으로 매디는 일상의 모든 것에 변화를 갖게 된다. 남들은 음침하다는 무덤에서 아서 씨를 만나고, 그를 통해서 따뜻함을 배워간다. 남을 배려하는 것을 배우고, 스스로 귀한 사람임을 깨우치게 된다.
잠깐의 쾌락으로 얻은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미혼모로 다닐 학교를 알아보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늙어가고.. 서서히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나이 많은 노인과 왕따를 당하고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매디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간다. 나이 많은 이의 지혜를 필요로 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젊은이의 손길을 필요로 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아서 씨의 이웃 수다쟁이 루시까지 가족의 틀에 함께 동참하게 된다.
루시 역시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프랭크를 어렵게 만나지만 그녀의 사랑은 딱 거기까지였다. 남은 루시는 세상을 버리는 듯 했다. 사는 의미를 못찾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못찾았다. 죽지 못할 뿐이었고, 늘 부지런을 떨었던 살림은 온갖 악취가 풍기는 그런 모습으로 변해간다.
이웃해 있던 아서 씨는 루시를 돌아본다. 늘 보이던 자리에 앉아서 시시콜콜 참견을 하던 루시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아서 씨는 루시의 현관문을 두드린다.
매디가 아서 씨의 집으로 들어오고 루시도 강제적으로 아서 씨 집으로 들이닥친다. 매디의 새 생명을 돌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주장하면서 말이다. 이들은 가족이 되었다. 아서와 매디. 그리고 루시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고 전혀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이들이지만, 이 세 사람의 관계는 혈연의 그것보다 더 따뜻함을 보여준다. 가슴속의 공허한 부분은 서로의 존재로 채워진다. 소외 되었던, 타협을 못했던 모습은 타인을 돌아보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변한다.
루시는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갖게 해준 아서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깨달았어요.
행복이 뭔지...
혼자 앉아서 내 집을 바라봤어요.
현관의 낡은 의자가 눈에 띄더군요.
괜히 서글퍼지더라고요.
볼품없이 낡아 빠진 의자가
내 인생을 대변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동안 겉으로만 좋은 척,
괜찮은 척하면서 살았어요.
남들뿐 아니나 나 자신도 속였어요.
그런데 여기서 몇 주 지냈는데.
참 행복했어요.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왠지 행복이 곁에 앉아 있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나 자신을 참 많이 속이고 살고 있다. 그저 좋은 척, 아닌 척 아주 멋진 인생을 사는 척을 하면서 남들에게 나의 겉모습만 보여준다. 나는 이렇게 행복해..라는 타이틀 아래서 말이다.
하지만 행복이 과연 그것일까?
어쩌면 늘 행복하자라고 하면서 엄한 곳에서 찾고 있지 않을까?
행복이라는 것은 나와 또 다른 이들, 어느 누구에서든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먼저 우기기보다는 너를 조금 더 생각을 해주고. 너의 상황을 먼저 바라봐 주는 것... 거기에서 행복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전혀 남이었던 아서와 매디 그리고 루시가 소소한 행복의 마음을 알아가고. 그 마음으로 인해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찾는 그런 행복이 아닐까?
거창하게 판이 짜인 그런 행복보다는 누군가를 위해 생각을 해주고, 움직여 준다는 것.. 이것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