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코의 보물상자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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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의 존재감에 대해 얼만큼의 확신을 가지고 있을까?

아마 확신보다는 나의 부족함을 감추기에 더 우선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부족함을 가지고 있고, 때론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이고, 그것이 가장 평범한 일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미코의 보물상자>를 읽으면서 간혹 잊게 되는 나의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붉은 노을 맥주' '스마일 스미레'의 작가 모리사와 아키오 소설의 주인공이 유쾌하고, 시원한 성격으로 기억된다면 이번 소설 <미코의 보물상자>주인공은 연약하지만 단단한 그런 존재로 그려진다.


주인공 미코는 우여곡절이  참 많은 삶을 가진 여자다.

자신을 낳자마자 버린 부모, 엄격하다 못해 학대에 가깝게 키운 할머니, 자신의 존재조차 기억못하는 학창시절, 우연히 만난 남자와의 연애놀이와 연이는 폭력, 딸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미코의 삶은 결코 쉬워보이지 않지만 미코는 묘하게 사람들에게 각인이 되는 그런 여자이다.


<미코의 보물상자>는 싱글맘 미코 또다른 직업, 유사성매매의 손님과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비록 유사성매매로 돈을 버는 미코이지만, 그녀를 버티게 해주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존재인 딸 치코때문이다. 극과 극의 직업을 가진 미코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독자는 미코의 삶이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 유사성매매를 하는 미코를 보는 독자들은 아마도 세상에 찌들어 세상을 향해 원망하는 미코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코는 그렇지 않다. 물론 딸아이와 살아가면서 미코의 직업 때문에 눈총을 받고, 소문의 주인공이 될 때도 있지만. 미코의 결단력은 강하다.


<미코의 보물상자>에는 상처를 감추고 사는 이들의 모습이 보여진다.

부모와 절연해서 살아가는 남자도 있고, 대인기피증 때문에 왕따를 당하는 이도 있고, 때론 자신의 못난 부분을 오히려 더 약한 이에게 폭력과 무자비함으로 풀어버리는 지질한 인간도 있다.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좌절'을 특이한 성표현으로 쏟아버리는 중년의 남자도 있다. 그뿐인가? 부모에 대해 어긋한 오해를 하고 엄한곳에서 자신의 결핍을 충족하는 사람도 있다.


<미코의 보물상자>라는 소설이 생각보다 깊게 읽혀진다. 삶에 찌든 미코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세상의 아픔을 가진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투영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삶에 대한 각각의 다른 시선을 보게 된다.

나에게는 사랑이었지만, 상대에게는 상처가 되는 것도 보게 되고, 나에게는 가벼움이지만 타인에게는 지독한 아픔과 돌덩이처럼 무겁다는 것을 보게 된다. 때론 남에게는 지지리궁상의 삶이겠지만 나에게는 가장 소중함의 시간으로 남는 것도 보게 된다.

<미코의 보물상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에서 독자는 잔잔함과 상처 두가지를 다 맛보게 된다.


미코의 기억에 할머니는 학대에 가깝게 모질게 자신을 키웠따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눈으로 본다면 오냐오냐 키웠던 아들이 내깔려두고 간 작은 아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아들처럼 키울 수는 없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을 져버리는 그런 아이로 키울 수 없다. 더구나 부모도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이기 때문에 더 강하고 모질게 키울 수밖에 없다. 마귀할멈이 된다 하더라도 나의 아이는 세상에서 꿋꿋하게 버텨낼 배짱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이다.


중학생인 미코와 마음의 공감을 나누던 보건 선생님의 이야기도 그렇다. 어쩌다 보니 엄마가 먼저 돌아가시고, 어쩌다 보니 그 엄마의 자리에 다른 여자가 들어왔다. 아빠를 무겁게 누르고 있을 외로움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 여자가 엄마의 자리에 있다는 것만 중요하고 엄마의 노릇을 그대로 하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싫어서 내가 먼저 피한다.


꿈을 가졌지만 결국 꿈을 버린 늙어버린 중년의 남자가 있다. 박봉의 월급쟁이 삶을 살아가지만 아내는 그런 나의 존재를 비웃기만 한다. 꿈도 없이 그저 의무만 다할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나도 스트레스는 지독히 쌓인다. 그나마 멀리 원정을 와서 때론 가학적인, 때론 코스프레하는 방법으로 욕망을 풀어버린다.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이 들지만 나를 상대해주는 미코라는 여자는 천박하지 않다. 오히려 내가 더 위로를 받고 대접을 받는다는 점이 좋다.


세상에는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는 이들이 많다. 나의 부족함, 또는 결핍으로 인한 상처, 좌절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나 아닌 다른 것으로 변명을 한다.

인생이라는 것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고, 나의 생각과 나의 행동으로 이루어질 뿐이라는 답을 알면서도 말이다.

미코는 버림받은 아이다. 그것만으로 삶의 모든 것이 회색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코는 사랑을 배웠다. 조부모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보건 선생님을 위로하면서 사랑을 알게 되었다. 비록 미코를 때리는 남자였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인간의 나약함을 먼저 보았다.

아마도 그것은 괴로운지언정 매일의 보물을 찾으려는 미코의 오래된 습관에서 얻어진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미코의 보물상자>는 읽는 내내 차분할 수밖에 없다.

왜?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라는 질문을 미코에게 수도 없이 하지만, 세상을 향해 담담하게 미소 짓는 미코의 모습만 보일 뿐이다.

세상에서 나만의 보물 찾기...

독자들은 미코의 어린 딸이 결혼식 전날, 엄마의 보물을 들여다보게 눈물 흘리는 모습에서 같이 울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떠나게 되는 딸아이의 앞에 앉은 미코의 모습에서도 눈물이 먼저 흐른다. 하지만 슬프지가 않다. 눈물이 흐르지만 가슴은 왠지 벅차다. 따뜻하다.


세상을 외롭게 살아왔지만, 미코에게는 늘 잔잔한 여운이, 그리고 따스함이 있다.

그것이 미코가 찾아낸 보물 때문인지, 그 보물을 찾기 위해 주변의 어지러움과 혹독함을 안보는 미코때문이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하찮은 물건이라도 그 속에 담긴 추억을 떠올리고, 또 생각하고... 아마도 이렇게 세상을 살아온 미코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따뜻하다..참.. 따뜻하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삶이 거창할 필요가 없는데 가끔은 거창한 삶이 제대로 된 삶이라고 우길 때가 있다.

남의 이야기를 나에게 담으려고 하니 과장된 거창함만 늘어놓는데 말이다.

길바닥에서 주운 작은 돌 하나에도, 오랜 시간 나에게 남겨주었던 할머니의 작은 거울에서도, 어릴 적 친구에게서 받았던 사탕반지에도 의미가 있고, 진한 삶이 있는데도 말이다.


미코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잔잔함이라는 표현이 오래 남는다.

나의 삶에서 이런 잔잔함을 얼마나 만들어봤을까..

가볍게 읽히는 소설이지만, 잔잔한 여운은 오래 남는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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