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 이대흠
비빔밥엔 잡다한 것이 들어가야 한다 신건지나 묵은 김치도 좋고 숙주나물이나 콩노물도 좋다 나물이나 남새 노무새도 좋고 실가리나 씨래기 시락국 건덕지도 좋다 먹다 남은 찌개 찌끄래기나 달걀을 넣어도 좋지만 빼먹지 않아야 할 것은 고추장이다 더러 막걸리를 넣거나 된장국을 홍창하게 넣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취향일 뿐 그렇다고 국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빔밥엔 가지가지 반찬에 참기름과 고추장이 들어가야 하지만 정작 비빈 밥이 비빔밥이 되기 위해서는 풋것이 필요하다 손으로 버성버성 자른 배추잎이나 무잎 혹은 상추잎이 들어가야 비빔밥답게 된다 다 된 반찬이 아니라 밥과 어우러지며 익어갈 것들이 있어야 한다 묵은 것 새 것 눅은 것 언 것 삭은 것 그렇게 오랜 세월이 함께해야 한다.
하지만 재료만 늘어놓는다고 비빔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빔밥을 만들기 위해서는 요령이 필요하다 비빈다는 말은 으깬다는 것이 아니다 비빌 때에는 누르거나 짓이겨서는 안된다 밥알의 형태가 으스러지지 않도록 살살 들어주듯이 달래야 한다 어느 하나 다치지 않게 슬슬 들어올려 떠받들어야 한다
손과 손을 맞대고 비비듯 입술과 입술을 대고 속삭이듯 그렇게
몸을 맞대고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게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우려 이미 분리할 수 없게 그렇게
그렇게 나는 너를 배고
너는 내게 밴 상태라야 비빔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는 사람아 비빔밥을 먹을래?
내가 너에게 들고 싶다
난 이대흠을 '작침' 이라는 시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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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 枕 /이대흠

어떤 사람이 떠나고 그 사람이 그립다면
그 사람이 멀리 있다고 생각 마라
그리운 것은 내 안으로 떠나는 것이다
다만 나는
내 속을 보지 못한다
*작침:까치 베개. 까치가 집을 지을 때 풀이나 나뭇가지 사이에 집어넣는 작은 돌. 그 돌을 품에 가지고 다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된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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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를 읽노라면 마음이 애잔하다.
요번 시에선 애잔한 걸로 부족해 고향과 어머니를 전방에 배치한다.
내가 고른 시, '비빔밥'이 그 중 '덜'이다.
실은 나는 비빔밥이 별로 이다.
이것저것 잡다한 것이 들어가 주는 것 같아서 영 그렇다.
난 아무리 찬이 없어도 접시나 보시기에 찬을 조금씩 덜어 골고루 먹는 것이 좋다.
비빔밥의 계란은 한 쪽만 익혀 뜨거운 밥과 익은 찬들과 어우러져야 제맛이다.
하지만, 이런 나도 보리밥에 강된장 넣어 먹는 그런 비빔밥은 좋다.
그렇게 비빔밥을 비벼먹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한 이불 덮고 누워 방귀를 뽕뽕 끼며 잠들었으면 좋겠다.
'작침'을 대할 때만 해도 시어를 아끼는 게 못내 아쉬웠는데,
요번 시집에서의 느낌은 조곤조곤 늘어놓다 못해 좀 질퍽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요리책 한권도 같이 읽었다.
요리책이라고 하기엔 좀 가볍지만, 취지는 좀 무거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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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음식이 아니라 내 아이의 몸을 파괴하는 독이었다는 것을 아이의 건강이 나빠지고서야 할게 되었습니다...제가 직접 체험해 효과를 보니 아토피, 과잉행동증후군 등으로 고생하는 아이와 부모에게도 저희 집의 식탁 혁명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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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스타일리스트이자 유명 셀러브리티 등의 오가닉 식단을 담당했던 친한 동생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다. 그 동생의 대답은 간단했다. "오빠, 아이 식단은 아이 시선에서 바라봐 줘, 비빔밥을 준다고 했을 때 큰 그릇에 나물을 흩뿌리고 벌건 고추장 소스를 뿌려 준다면 애들은 그걸 무섭게 생각할 거라고.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간단해."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혁준이를 위해 재료와 조리법은 배웠지만 스타일링은 전혀 바뀐 게 없었다. 외려 어른이 좋아하는 걸 아이에게 맞추라고만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미안해질 정도였다.(50쪽)
난 이런 책을 좀 시니컬하게 읽는 경향이 있다.
요리 책으로 읽으면, 취지도 좋고 내용도 그럴듯 하고 한데 말이다.
'엄마와 아빠가 조금만 더 수고스럽게 움직여 아이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면 지체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라고 본문에선 얘기하고 있지만,
발상을 조금만 비틀면 겨울방학이면 밥을 굶는 친구들이 있다.
내 아이를 친환경 유기농에 밀가루도 안 먹여가며 고이 감싸 키웠다 한들,
이 아이가 친환경 유기농 급식을 하는 학교에 다니게 될까?
따뜻한 밥 한 그릇 같이 나눠 먹으며, 소통을 꿈꿀 수 있으면 족한 게 아닐까?
커다란 양푼에 이것저것 섞어넣고 비비면 꽂는 숟가락 갯수 만큼 둘러앉아 먹을 수 있으니 숟가락 갯수만큼 충만하다.
이젠, '밥 한번 먹자' 대신 '비빔밥 먹을래'로 레파토리를 바꿔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