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님의 서재에서 박칼린에 관한 글을 접하고 궁금하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요즘 넷을 뜨겁게 달구는 다른 축인 <슈퍼스타 K 시즌2>의 그들을 보게 되었다.
보는 동안 소름이 돋았는데,
이건 전율이라기 보다는 공포 영화를 볼 때의 오싹함에 가까운 것이었다.
내 나이 스물 하나때는,
설익었었지만 기고만장하였다.
내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나누고,
그리하여 옹골찬 존재를 만들어가는 것의 중요함 따위는 알지 못했고,
내 자신을 꾸미고 포장하여
자꾸만 드러내고 돋보이고 싶어했었다.
그래서,나이 스물 하나인 친구가
그것도 둘 중 하나는 떨어져야 하는 경쟁에서 어떻게 배경이 될 수 있었는지 궁금 하였다.
주체가 되는 삶도 멋지지만,
주체가 멋지기 위해서는 두리뭉실하고 모호한 배경들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좀 챙피한 비교인지는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근데 마음과는 다르게 머리는 이런 말도 한다.
열심히 하는 것과 미치는 것은 다르다.
단지 연습하는 것만으론 부족한 게 있는 법.

김선우 시인이 맞나 모르겠다.
"상처 속에 함몰되지만 않는다면 상처받음은 살아있음의 생기발랄한 증거이기도 하잖아요."
<내 입에 들어온 설탕같은 키스들>
김선우 지음 / 미루나무 / 2007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