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라디오에서,믿음에 관한 일화를  들은 후로...내게 믿음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었나 보다. 

누군가 왕을 죽이려해서 잡고보니 아주 반가운 친구였단다.  
둘은 얼싸안고 회포를 푼 뒤,
"내가 두렵지 않은가?자네를 죽이려 했는데..."
"무슨 오해나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실은 여행 중에 돈이 떨어졌는데,돈 안들이고 여기까지 올 수 있는 방법이 이 방법 밖에 없었네.
물론 자네가 나를 믿어줄거란 전제하에 말이네." 

이 얘기를 듣고는,비록 얘기 속의 그들이지만...참 멋지다 싶었다. 
왕이 자신을 죽이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믿음이지만, 
왕의 경우 친구가 자신을 죽이려했는데도,무슨 오해나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얘기할 수 있는 쿨함이 부러웠다.  


남편과 나는 6년 연애 끝에 결혼을 한 올해 15년 차의 부부이다.
처음 연애할 때는 부처님이 웃으니까 가섭이 따라 웃는 다는 염화시중의 미소가 가능했었던 것도 같은데,
실토하자면 남편이 거하게 사업을 세번이나 말아 잡수시는 과정에서 말없음은 부부사이의 골을 만들었었다. 
다시말해,무슨 오해나 그럴만한 사정이 아니라,체념에 가까웠다.

기실 남편은 아주 감성적이고 로맨틱한 사람이었다.
연습장에 쓰는 글씨도 단정히 시처럼 내려 쓸 수 있는 사람이었고,
대학 방송국 아나운서였던 그는  마지막 방송이라며 울먹울먹하다가 멘트를 버벅거리는 바람에,
사유서까지 쓰고 졸업반에 유래없는 운동장을 10바퀴 도는 벌을 받기도 했다. 
여행을 다니며 사진 찍는 걸 좋아했던 그는,
필름의 처음이나 끝은 꼭 나를( 내 손이나 ,머리카락,신발 등) 찍어줬다. 

결혼 후,남편은 감성과 로맨틱함을 같이 말아 잡수셨었다고 생각하고 체념했었다.
그런데,한걸음 물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니,
남편은 그대로인데 내가 바뀌어 있었던 거였다.
직장생활에 지친 나는 쉬는 날이면 방바닥에서 들러붙어 뒹굴거려야 다음 일주일을 지탱해 나갈 수 있었고,
여행은 일로 인한 워크 숍이나 세미나 따위가 전부였이며,
가족끼리의 여행은 주로 아들의 현장학습 증빙용 이었다.
그런 나를 남편은 체념하지 않고,
무슨오해나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생각하며 15년동안이나 믿고 기다려준 거 였다.

결혼 15년만에 남편과 둘이 여행을 다녀왔다.
대학시절 같이 갔던 그 여행지였고,
비록 디카였지만,그 카메라의 처음엔 내 눈을 찍어줬다. 

둘이 여행을 많이 다니자는 약속은 지킬 자신이 없다,저질 체력인고로... 
하지만,대화를 많이 하자는 약속은 지키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염화시중이나 이심전심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말을 해도 자신의 의중을 상대방에게 제대로 전달하기가 힘든데,
말을 안 하고서는,
우리는 부처님이나 가섭의 고매한 사고방식은 물론이거니와,
가장 믿는 한 사람의 마음상태를 헤아리기엔 턱없이 가벼운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쯤에서 생각을 살짝 비틀어 보게 되는데... 

높은 기대치의 믿음은 이보다 좋을 순 없는 일이지만,
낮은 기대치의 믿음에 대해서 말이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는다." 
"주는 만큼 받는다."
까지는 뭐 그럭저럭이다. 

하지만,
"믿는 만큼 배신감을 느낀다."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
"사랑하는 만큼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김훈의 한 구절이었던 것 같다.)
이런 문구는 이해관계가 개입된 얄미운 문구이다. 

'노력했으니까 댓가를 얻는다'
는 바꾸어 말하면,노력이 없다면 댓가도 없다는 조건부의 냄새가 짙다.
주었으니까 받는다.
믿었으니까 배신감을 느낀다. 
아프니까 성숙해진다. 
까지는 억지로 넘어가겠는데...
사랑하니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 한다는 이 부분에서 '턱~' 하고 숨이 막힌다. 

내가 이율배반적인 건지 모르겠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는 없는건가요?'하고 묻고 싶어진다. 

내가 그(또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그(또는 그녀)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어서는 아니다.
그냥 내 멋에 겨워 사랑하는 것이니까,
내가 그 사랑에 지쳐서 다른 사랑을 찾을 때까지는 그냥 그 자리에 그렇게 있으면 되는 게 아닐까? 

<그대 이름 내 가슴에 숨쉴때까지>라는 좋은 처방전도 있으니까 말이다.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 이 외 수 -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바람부는 날에는
바람부는 쪽으로 흔들리나니
꽃 피는 날이 있다면
어찌 꽃지는 날이 없으랴

온 세상을 뒤집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밤에도
소망은 하늘로 가지를 뻗어
달빛을 건지리라

더러는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와
일기장 갈피마다
눈이 내리고
참담한 사랑마저 소식이 두절되더라

가끔씩 그대 마음 흔들릴 때는
침묵으로
침묵으로 깊은 강을 건너가는
한 그루 나무를 보라. 

  

또 한권 생각난 책,<하찮은 인간,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0년 8월


호모 라피엔스(Homo Rapiens)는 ‘약탈하는 자’라는 의미다. 인류를 중심에 놓지 않은 그의 견해는 책의 원제 ‘Straw Dogs(지푸라기 개)’에 더 잘 나타난다. ‘지푸라기 개(추구·)’는 노자의 도덕경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와 같이 여긴다)’에서 나왔다. ‘추구’는 고대 중국에서 제물로 만든 개 모형으로 제사 때는 존귀한 대우를 받다가 제의가 끝난 뒤에는 하찮게 여겨지는 존재였다. 자연은 애증 없이 존재하며 스스로 변화하고 생멸할 뿐이고 인간도 그런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의미다.

 

내가 아침부터 왜 이리 시니컬한 페이퍼를 쓰느냐 하면 다 '박승화' 때문이다.
박승화와 알리가 부른 이 노래를 아침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싱글이어서 알리딘엔 이미지가 없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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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09-08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엄청 부담스럽게 나와,진짜 토해 내고 싶게 만든다~ㅠ.ㅠ

yamoo 2010-09-0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니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 한다...지금은 가슴이 턱 막히는 문장이지만...또 세월이 가면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전에 비교해서 지금 변하신 것처럼 앞으로도 변하겠지요. 이외수씨의 좋은 처방전도 있네요~^^

아침부터 정~말 시니컬한 글인데..전, 이상하게도 이런 글이 좋더라구욤..헤~
이런 글 많이~ 많이~ 올려주세요~~

sslmo 2010-09-09 10:15   좋아요 0 | URL
맨날 제게 칭찬만발이신 yamoo님,감사~^^

만 하루만에 다는 댓글이네요~
오늘은 시니컬하지는 않은데...
날이 잔뜩 흐려 멜랑꼬리하네요~

마녀고양이 2010-09-08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가슴이 쿵 해뜸...
나무꾼님이 쓴 글 중에, 제일 맘에 든다....
(어느새 반말로 변해뜸.. 홍홍, 어짜피 낼 보면 말 놓을거잖아.. 김칫국... ^^)

비로그인 2010-09-08 12:11   좋아요 0 | URL
우끼지만 동감~~
낼 보면 반말하게 될 사이!

stella.K 2010-09-08 12:13   좋아요 0 | URL
마고님 또 통했군요. 나도 마고님한테 말 놓고 싶어 근질근질...김칫국인가?ㅎㅎ

마녀고양이 2010-09-08 12:21   좋아요 0 | URL
스텔라 언니, 절대 아녀여. 편안하게 말 놓으세여~

나무꾼님이랑 저랑 마기님은 동갑이거든요... 큭큭.
그래서.... 이제 알아서 대충 말 놓는거져~ 흐흐흐.

stella.K 2010-09-08 12:41   좋아요 0 | URL
여기는 그대와 동갑내기들이 많나 봐. 좋겠당.^^(마고님 말 놓으라니까 막 이래.흐흐)

sslmo 2010-09-09 10:21   좋아요 0 | URL
마고님/반말은 좋은데...
그럼 그동안 내 글보고 좋다,멋지다...했던 건 빈말이었음~?
심각하게 고려를 해보아야 할 듯~^^

마기님/우리 오늘 만나면 계급장 떼고 걍 반말하는 것임?^^
재밌겠다~

stella09님/제게도 편히 말 놓아 주세요~
저도 좋아요~^^

비로그인 2010-09-08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그 양철님의 눈을 찍은 인증샷은 어디있냐고?
아무리 잘쓰면 뭐하냐고?
젤 중요한게 빠졌다고~

마녀고양이 2010-09-08 12:20   좋아요 0 | URL
동감이야..
나두 이 말 쓰려다가, 글의 감동으로 분위기 깰까봐 관뒀으..

sslmo 2010-09-09 10:22   좋아요 0 | URL
눈을 찍은 사진은 집에 디카에 보관 중이죠~

내 눈 같지 않아요.
참 예쁘지만,낯설고 어색하다는~^^

stella.K 2010-09-08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철님, 신랑이랑 좋은 시간이셨겠어요.
그런 깨달음의 시간이 인간 모두에게 필요한데 말입니다. 흐흑~

sslmo 2010-09-09 10:24   좋아요 0 | URL
글에서 군더더기를 많이 자체생략해서 그렇지,
고성방가,난리 부루스 였어요~^^

깨달았으니,이제 실천할 일만 남았는데 말이죠~ㅠ.ㅠ

꿈꾸는섬 2010-09-08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철나무꾼님 여행다녀오셨군요.^^
부부 사이 대화는 필수!!!
ㅎㅎ 양철나무꾼님의 감수성이 정말 좋아요.^^

sslmo 2010-09-09 10:26   좋아요 0 | URL
1박2일짜리 간단한 여행이었는데,나름 괜찮았어요~

부부 사이에 대화도,대놓고 화내는 것도 다 필수인 것 같아요~

전 여기서 왜 의젖한 현준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죠?^^

gimssim 2010-09-0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철나무꾼님.
우리 나이의 대화는 '대놓고 화내는 것'인데?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컴퓨터에 코 박고 일하느라 페이퍼도 못쓰고 있는데
간만에 솔직담백한 페이퍼로 목마름 씻고 갑니다.
운동 갔다가 저도 오늘 쯤은 페이퍼 하나 올릴 생각입니다.

sslmo 2010-09-09 10:27   좋아요 0 | URL
솔직담백한 페이퍼이긴 한데요,
하루 지나고 보니 '좀' 창피하긴 하네요~^^

중전님 페이퍼도 읽으러 가겠습니다.

책가방 2010-09-08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10개월 연애하고 만15년을 함께 살았네요.ㅋ

멋진 남편분이랑 사시네요. 저도 <눈> 사진 보고파요~~~~

sslmo 2010-09-09 10:31   좋아요 0 | URL
돌이켜보면,연애는 책가방님 정도가 딱인 것 같아요.
연애를 하면서 사시사철 바뀔 정도~^^

왜 다들 멋진 남편이라고 하는 거죠?
그런 멋진 남편 간수하고 살아준 내가 더 멋진데~~~^^

2010-09-08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0-09-09 10:42   좋아요 0 | URL
여행은 뭐 1박2일짜리였는걸요~
가정사나 개인사는 올리지 말라던 누군가의 점잖은 충고가 좀 그랬어요.

님 말씀도 맞아요.
전 그동안 대화라는 것이 다잡은 제 마음을 허물어 버릴까봐 좀 두려웠었나 봐요.

그레이 로맨스도 나름 멋지잖아요~
전 <헤롤드와 모드>도 나름 멋질것 같아요~

루체오페르 2010-09-08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은 제게 많은 배움과 느낌을 줍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내일, 마기님 마녀님 양철나무꾼님+@? 오프모임이 있나보군요!오~ 엄청 재밌겠습니다.ㅎㅎ

sslmo 2010-09-09 10:44   좋아요 0 | URL
혹,결혼에 대한 안 좋은 환상만을 심어 주는 건 아닌지~ㅎ.ㅎ

그쳐?
벌써 기대만발,좀 설레이기도 하는 걸요~^^

비로그인 2010-09-08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일 광화문 쪽 가면 양철님하고, 마기님 뵐 수 있는건가요?
왠지 거기 배회하고 싶어지네요 ㅋㅋㅋ

비로그인 2010-09-09 09:35   좋아요 0 | URL
아~~바람결님~~
광화문에서 배회하실래요?
우연히 만날까요?
푸히히~

sslmo 2010-09-09 10:46   좋아요 0 | URL
헐~바람결님도 서울 사시는 군요?
아닌가?직장이 서울이신가?
암튼 바람결님과 바람난 세 여자,광화문에서 배회하다...이 조합도 괜찮은 걸요~^^

같은하늘 2010-09-09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삼총사의 만남이 성사되는 건가요? 부럽~~~
전 결혼전에도 결혼 후에도 둘만의 여행은 없었던것 같은데, 정말 멋진 옆지기님이세요.
그리고... 눈 인증샷은 필수잖아요~~

sslmo 2010-09-09 10:55   좋아요 0 | URL
삼총사의 만남,지금 좀 설레여서 일이 손에 안잡혀요~
이러다가 직장에서 쫒겨날 듯~

님도 자녀분들 조금만 더 크면,둘만의 여행 가능해 질텐데요,뭘~^^

이번 여행이 의미있었던 건,
한달 2만원씩 15년간 적금 들어 다녀온 것이지요~

안그랬으면,
삶에 치여...
게다가 세상은 어지럽기만 하여 좀 힘들었을 거예요.

saint236 2010-09-0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혹 나는 아내에게 어떤 사람인가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sslmo 2010-09-09 10:59   좋아요 0 | URL
한번씩 자리매김과 위치확인은 필요할 것 같아요~

근데,언젠가 님 페이퍼에서 본 것 같은데...
락스청소 하시느라고 아내 분과 자녀를 처가로 피난시키신다면서요~?
그런 마인드라면...충분하시지 않을까요?^^

세실 2010-09-09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아요. 이런 솔직함이라니.....
문득 옆지기랑 여행 가고 싶네요. 그러고보니 단둘의 여행은 신혼때 빼고는 아이들이 늘 함께 했네요.
님이랑 좋은 친구가 될거란 믿음이 생겨요.
제가 두살 많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정신연령은 님보다 아마 어릴꺼예요. ㅋ

sslmo 2010-09-10 10: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걸 수 있다면,제겐 영광이예요~^^

pjy 2010-09-10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저도 댓글이 다들 왜 이러신가 했어요~ 요런 멋진 남푠을 잘도 건져올려서 잘 살고 계시는 양철나무꾼님이 짱인거죠*^^*
금도끼와 은도끼의 유혹을 참으신거죠? 배팅 크게 하시고 한판 건진거죠?? ㅋㅋㅋ

sslmo 2010-09-10 20:55   좋아요 0 | URL
건져 올리다뇨?^^
제가 구제하여 반짝거리게 만들었다니까요.

금도끼 은도끼보다 잘 다듬은 무쇠도끼가 나무는 더 잘 베듯이 말이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