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간, 불태우다 쏜살 문고
윌리엄 포크너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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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대로 별점 : ★★★★★

◎ 수록작품 : <가뭄이 든 9월>, <헛간, 불태우다> , <저 석양>, <에밀리에게 장미를>,

<버베나 향기>

◎ 작가소개 : 윌리엄 포크너 1897~1962

『압살롬, 압살롬!』『성역』 고함과 분노』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등의 작품이 있으며 노벨문학상, 전미도서상, 퓰리처상 등을 수상했다.

윌리엄 포크너도 처음이다. '미국 남부 문화에 뿌리를 둔 포크너는 남북 전쟁과 재건을 거치면서 쇠퇴해가는 남부의 전통적 가치관과 삶의 방식, 급격히 몰락해가는 대지주 사회의 풍경을 절묘하게 그려내었다'(책날개, 작가 소개 글 중에서) 남북전쟁이라고 하면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장면들만 반사작용처럼 떠오르는 지라 그가 그려낸 그 시기 남부의 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했거니와, 유수의 상들을 받은 만큼 정말 그럴 정도로 좋은지 확인하고 싶은 배배꼬인 심정도 한 몫을 한 터였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그럴 정도로 좋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전에 꼭 물 한 잔을 옆에 두길 권한다. 읽으면서 곧바로 목이 턱 마르게 될 것이므로)

가뭄이 계속 되어 타들어가는 날씨 속에서 백인여성을 공격한 흑인 남성에 관한 소문이 떠돌게 되고, 더위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듯 진상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를 응징하는 <가뭄이 든 9월>, 가난한 백인과 부유한 백인, 그들 간의 격차가 만들어낸 계급과 갑질, 그로 인한 분노가 터지는 가운데 뒤늦게라도 아버지의 잘못을 밀고해야만 하는 아들을 그린 <헛간, 불태우다>, 여전히 백인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몸을 팔고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남의 아이를 임신하고 무위도식하는 남편이 해칠 것을 무서워해야 하는 낸시를 통해 흑인 가정 내에서의 또다른 폭력을 보여주는 <저 석양>,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스스로 고립되어 산 여인이 죽었을 때 드러나는 무서운 진실을 그린 <에밀리에게 장미를>, 사업파트너였던 이에게 아버지가 살해를 당하자 집에 돌아와 그를 향해 총을 발사하기를 종용하는 지역 사회를 보여주는 <버베나 향기>.

이 다섯 편은 모두 갈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종에 관계 없이, 그러나 인종 차별 문제가 있기에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갈등을 해결하고자 나서는 이들이 있는데 <가뭄이 든 9월>에서 흑인애인이라는 조롱을 들으면서도 흑인 편을 들어주는 백인 이발사,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그 잘못을 바로잡고자 밀고하는 <헛간, 불태우다>의 사티, <버베나의 향기>에서 아버지의 원수를 죽이라는 사람들에 밀려 그를 찾아갔으나 원한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베이어드가 바로 그들이다. 어떤 상황이건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한결같이 이 말이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그런 식으로 해결하려하면 절대 안 된다고.

'그들도 사람이죠. 인간들이라고요.'(129쪽)

선집이라 당연히 그렇겠지만 다섯 편 모두 훌륭하다. 한 번의 힘만으로도 거침없이 액체를 끌어올리는 스포이드처럼 그렇게 빨려들어가는 흡인력도 엄청나지만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매끄러운 번역 덕분일 테니 김동욱 선생에게도 감사를!) 그를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나처럼 이 단편집에 도전할 것을 권한다.

다섯 편의 작품 중 <에밀리에게 장미를>은 나머지 작품들과는 약간 다른데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을 읽는 느낌과 비슷했다. 북부인이었던 호머 배런과 애인 관계였던 남부 여인 에밀리가 비소를 써서 그를 죽인 뒤 그와 한 침대에서 오래 생활하다 죽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움푹 패인 베개와 그녀의 머리카락은 소름 끼피는 반전을 선사한다. 박정현의 노래 '하비샴의 왈츠'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위대한유산> 속 하비샴도 에밀리와 너무 닮았기에)

포크너가 더 마음에 드는 이유는 그가 노벨문학상으로 받은 상금을 ‘새로운 작가들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기금의 설립과 흑인 교사 양성을 위해 기부했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위대하다. 그 위대한 이를 만난 기쁨을 나는 별 다섯 개로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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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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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대로 별점 : ★★★★★

◎ 책 선택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 :

"≪그리스인 조르바≫를 여성 작가가 여성인물로 다시 쓴다면?

그럴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이 소설은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무려 신형철과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합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으로 더욱 좋아하게 된 신형철과 내 인생의 책인『그리스인 조르바』. 내가 좋아하는 두 단어가 딱 겹쳤는데 외면한다는 건 분명 안경을 바꿀 때가 됐다는 얘기다! (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우연처럼 기가 막히게도 안경테가 부러졌다. 소오름~ )

'헝가리 문학이라면 마라이 산도르, 크리스토프 아고타, 케르테스 임레 등을 떠올리게 되는데, 서보 머그더는 우리에게 아직 친숙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 만큼은 못 되는가 싶었다. 어설픈 예단이었다.(신형철의 추천의 글 중에서/ 369쪽)' 산도르 마라이의 『유언』 이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걸작인 건 나도 인정하는데 케르테스 임레는 또 누구지? 찾아보니 이 분도 200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헝가리 작가들 참 대단하군그래. 노벨문학상도 복잡하고 추잡한 일들이 엮여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안 줬고!) 그의 『운명』도 일단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프리모 레비를 뛰어넘는지 확인해봐야겠으니까.

작가이자 화자인 '나'와 집안일을 도와주러 온 에메렌츠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악몽으로 막을 연다.

나의 꿈은 머리카락 한 올의 차이도 없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환영이다. 항상 똑같은 그 하나의 꿈을 꾼다. 계단 아래, 대문 가에 나는 서 있다. 철망으로 엮이고 깨뜨려지지 않는 유리창이 달린 쇠틀의 대문. 그 안쪽에서 나는 자물쇠를 열려고 한다. 문밖 거리에는 구급차가 서 있다. 창을 통해 가물거리는 구급요원들의 실루엣은 부자연스럽게 커 보이며, 마치 달 같은 후광이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다. 열쇠는 돌아가지만 헛돌 뿐이다. 구급요원들에게 문을 열어주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으면 제때에 환자에게 당도할 수 없을 텐데. 그럼에도 나는 문을 열 수가 없다.

7~8쪽

젊은 시절을 보내고, 에메렌츠도 보내고 이제 늙어 죽음을 기다리는 화자는 용서를 구하듯이, 혹은 고해성사를 하듯이 지난 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지금까지 나는 용감하게 살았으며, 죽음 또한 이렇게 거짓없이 용감하게 맞이하고 싶다. 하지만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조건이 있다. 에메렌츠를 죽인 것은 나였다. 그녀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구원하고자 했다는 말도, 여기서는 그 사실 관계를 바꿀 수 없다.

10쪽

마르고 나이가 많은데도 힘이 좋고, 하루 24시간을 꽉 채워 사는 여자, 환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걸 낙으로 삼고, 건물 11곳의 제설작업을 맡고 있으며, 절대로 눕는 법이 없이 작은 소파에 기대 쉬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 아버지와 어머니, 쌍둥이 동생과 그녀의 관을 놓을 석조무덤을 짓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 겨우 읽을 줄 알고 더하기와 빼기의 연산만 가능했지만 기억력은 컴퓨터처럼 작동하는 사람,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뜰 앞에 모이지만 절대로 누구도 집안으로 들이지 않는 사람이 바로 에메렌츠다.

화자인 내가 길에서 구출했지만 주인보다 에메렌츠를 더 따르던 개 비올라는 언제나 들어갈 수 있지만, 그녀의 닫힌 문 안에 누가 있을지, 무엇이 있을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 한 번, 그녀 스스로 화자인 나에게 열어주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진실 때문에 화자는 두고두고 악몽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를 살리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 그녀의 비밀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이 되었고 그녀의 치부를 가려주지 못했으므로.

' 내가 다른 것도 원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언젠가 나의 어머니에게 했듯 그녀를 안고 싶었다든지, 다른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은 이야기들, 말하자면 어머니가 이성이나 지성보다는 사랑의 감정으로 받아들였던 그런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239쪽)' 함께 지내는 20년 동안 이렇듯 그녀에게 좀 더 다가가고자 했으나 에메렌츠는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엄마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 아이같은 모습에 내내 마음이 아팠다. 초반부의 마릴라 아주머니와 앤을 보는 것 같달까? (앤처럼 말괄량이는 절대 아니지만) 결코 눈 앞에서 말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화자인 나를 딸처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이런 표현을 대놓고 했다면 둘의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으리라. (사랑하는 사람들은 거리가 필요하다고 누군가가 내게 말했었다. 그때는 포장 잘 한 핑계라 생각했고 지금은 인정한다.)

어쨌거나 오랜 시간 속에서 오해를 하고 풀리는 일이 반복되는 동안 결국 주인공이 깨달은 것은 '애정은 온화하고 규정된 틀에 맞게, 또한 분명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를 대신해서도 그 애정의 형태를 내가 정의할 수 없다는 .' (118쪽) 것이다.

그녀는 모든 사람의 예시였으며, 모든 이의 조력자였고 모범이었다. 풀을 먹인 앞치마 주머니에서는 비둘기 같은 아마 손수건과 종이로 싼 사탕들이 부스럭거리며 나왔다. 그녀는 눈의 여왕이었으며, 그녀 자신이 확실함 그 자체였다. 여름에는 첫 번째 체리였고, 가을에는 영근 밤, 겨울에는 화톳불에 익힌 호박, 봄에는 관목의 첫 봉오리였다. 에메렌츠는 깨끗했고 논란의 여지 없이 우리 누구나가 항상 되고자 했던, 가장 선한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다.

282쪽

다 읽고난 뒤에야 신형철이 왜 조르바를 언급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성별은 물론이고 성향도 모습도 하는 일도 완전히 다른 인물이지만 순수한 인물에 방점을 찍어놓을 수밖에 없으니까.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24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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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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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글, 하윤숙 옮김, 비채 펴냄

◎ 내 마음대로 별점 : ★★★★★

간단한 작가 소개: 버나딘 에바리스토 Bernardine Evaristo

1959년 런던, 영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영국 태생의 혼혈 흑인이라는 태생적 배경과 연극이라는 문화적 배경이 창작의 원천이 되엇고, 무엇보다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라는 현실은 역사와 근원에 대한 갈망을 낳아 장르· 인종· 젠더·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글쓰기를 시작한다. 선보이는 작품마다 파격과 융합을 시도해 화제를 낳았고, 희곡과 비평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면서 '영국 작가들의 작가'로 불린다. 2019년 10월에는 여덟 번째 책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이 문학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부커상을 마거릿 애트우드와 공동 수상하며, 부커상 최초의 흑인 여성 수상자라는 사실에 더욱 이목이 집중되었다. - 책날개 작가 소개 중에서 정리-

내셔널 시어터에서 열리는 희곡 <다호메이의 마지막 여전사> 공연을 앞둔 앰마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앰마의 딸인 야즈로 이어졌다가, 동료였던 도미니크와 야즈의 대모인 캐럴, 캐럴의 친구인 버미와 라티샤, 캐럴의 선생이자 인생을 바꿔준 사람인 셜리, 셜리의 엄마인 윈섬, 나중에 해티의 딸로 밝혀지는 퍼넬러피, 해티의 손녀인 모건, 해티, 해티의 엄마인 그레이스를 거쳐 다시 애마의 연극이 공연되는 시점으로 돌아오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흑인 여성들이다.

장장 600쪽에 걸친 대서사시라고 해야겠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실은 반점(혹은 쉼표, )만 있을 뿐 온점(혹은 마침표 .)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들어가기에 앞서 ' 이소설은 운문 형태를 띠는 산문으로 문장부호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한국어판 역시 이 점을 최대한 살려 옮겼습니다.'라는 일러두기에서 미리 밝힌 바 있다. 그래서 흑인 특유의 리듬감으로 읊조리는 음악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런 불평등 아래서도 삶은 지속되고 있고 지속되어야만 한다는 것으로도 읽힌다.

이 책을 통과하고 있는 단어는 다섯 가지다. 흑인, 불평등, 동성애, 페미니즘, 자유

나는 솔직히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페미니즘: 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아우르는 용어.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살펴보고, 여성이 사회 제도 및 관념에 의해 억압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여러가지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두산백과에서) 아니, 페미니즘을 앞세워 불평등을 조장한 남성들과 같은 행보를 보이는 일부 여성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두자. 그래서 특별할 것 없는 이 말을 맞닥뜨렸을 때 꽤나 신선했다.

당연히 페미니즘은 남성혐오가 아니야! 여성 해방에 관한 거고, 동등한 권리에 관한 거며, 한계를 규정하는 기대치에 관한 거라고, 가부장제에서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해야 해

445쪽, 비비가 메건에게 보낸 메시지 중에서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이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의 사회적인 위치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되어 굉장히 씁쓸하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삶이 망가질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기회를 잡기도 전에 박탈당하는지.

어느 쪽이 되었든 흑인이라는 것도, 동성애자라는 것도 의식적으로 내린 정치적 결정의 결과가 아니었다, 전자는 유전적으로 정해진 것이고 후자는 심리적, 정서적 경향이다

578쪽, 야즈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롤런드를 이야기하며

안다고 생각했다. 텔레비전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일들이니까. 흑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아직도 너무 많으니까 나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그들이 겪는 것의 ⅛이나 될까? 작가가 흑인 + 동성애까지 극단적으로 들이민 것은 '백인은 인종 전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 대표하면 되지 않는가(579쪽)' 라고 한 것처럼 백인들은 무엇을 해도 너그럽게 용서되는 세상에 산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작가 자신이 흑인이면서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하기에 이토록 빠져드는 것 같다.

피부색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를 사랑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똑같이 평등한 한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그녀에게 받았으니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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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일기 - 세상 끝 서점을 비추는 365가지 그림자
숀 비텔 지음, 김마림 옮김 / 여름언덕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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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일기』 - 세상 끝 서점을 비추는 365가지 그림자

숀 비텔 지음, 김마림 옮김, 여름언덕 펴냄

◎ 내 마음대로 별점 : ★★★★☆

2001년 11월 유일하게 공식 북타운으로 지정된 위그타운에 있는 서점 '더북숍'을 인수해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중고 서점의 주인이 되었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일에 대한 열정이 점점 커져 가는 한편 서점의 미래에 대한 절망감도 함께 자라나고 있다. - 책날개 작가 소개에서

당당히 2월부터 시작하는 이 서점 일기를 펴면 책들을 나선형으로 쌓아올린 조형물, 'The Book Shop' 이라는 명명백백한 간판을 지닌 서점 외관과, 보이는 모든 공간이 책들로 둘러싸이고 아늑한 소파와 전등이 반기지만 뜬금없이 해골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내부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방어할 틈도 없이 들이닥치는 조지 오웰의 발언과 작가의 첫 문장은 낄낄거리게 만드는 동시에 책에 대한 기대감을 한없이 솟구치게 만들었다.

나는 과연 서점 주인을 '업'으로 삼고 싶은가? 내가 일했던 서점의 주인은 내게 친절히 대해주었고 서점에서 행복했던 날도 있었지만, 대체로 아니올시다.

-조지 오웰, 「서점의 추억들」, 런던, 1936년 11월

서점 주인이 되기를 주저하는 오웰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서점 주인은 성마르고 편협하고 비사교적이란 고정관념이 있는데(<블랙 북스>란 코미디에서 딜런 모런은 이런 서점 주인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그건 '대체로' 사실인 듯하다.

7쪽

좀 더 나이가 들어 60대쯤엔 서점을(혹은 서점을 빙자한 카페나 혹은 작은 마을 도서관) 하나 운영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인 나도 이 부분(성마르고 편협하고 비사교적)에서 상당히 찔렸다.

'어떻게 알았지? 그럼, 나는 서점주인으로 딱 맞게 태어난 거야?'

멋 모르는 사람들에게 '중고서점 운영'은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 옆에서 안락의자에 슬리퍼 신은 발을 올리고 앉아 입에 파이프를 물고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노라면, 지적인 손님들이 줄줄이 들어와 흥미로운 대화를 청하고 책값으로 두둑한 현금을 놓고 나가는 그런 목가적인 일이 결코 아니라는 효과적인 경종을 울려준다.

8쪽 -조지 오웰의 수필을 읽은 뒤

이것도 맞아. 딱 그런 걸 원했거든! 그런데 아니라고?

작가는 (서점주인은) 이 일기에서 오웰의 「서점의 추억들」에 나오는 구절을 소개하는데 대부분은 그 시대에 한한 내용들인지라 살짝 거북한 부분도 있지만 조지 오웰이 서점(햄스테드에 있는 '북 러버스 코너')에서 일할 때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쥔장(숀)은 '우리 서점을 사랑하고, 보유서적의 품질을 개선하고 장사가 잘 되게 하기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하려고 노력한다. 단지 그런 일이 어떤 건지 우리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르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111쪽)' 라고 칭한 니키라는 점원과 함께 일하는데 나 같으면 당장 그만두라고 할 만한 상황에서도 둘이 잘 지내는 걸 보면 둘이 똑같기 때문인 것 같다. 왜냐면 니키도 만만치 않은 게 서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면 가관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또 니키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숀이 얼마나 배려 있고 인정 많은 사람인지 모르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제가 아주 꽁꽁 언 빙판길을 지나 차도 없이 서점에 겨우겨우 도착했을 때,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기를 막고 싶으면 골판지 상자를 펴서 작업대 밑에 깔아도 좋다고 허락했답니다. 그것도 아주아주 두꺼운 상자를요. 정말 친절하지 않나요? 그리고 난방기의 빨간 전원 불빛(열은 조금도 안 나지만) 덕분에 보기만 해도 참 아늑해요. 숀이 이렇게 다정하답니다! (385~386쪽)'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재미있지만 간간히 등장하는 알바생들과 고양이 캡틴, 중고서점을 들락거리는 많은 사람들 이야기가 건조한 표현 속에 도사린 유머들로 인해 빛을 발한다. 분명 실명을 사용했을 텐데 어쩌려고 이 사람은 이렇게도 솔직하게 기분 나쁨과 그들의 무식과 그들의 예의 없음을 낱낱이 쓴 걸까? 나만 전전긍긍하지, 이 분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눈치다. 그들의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들만 봐도 그렇다. 이게 2014년의 일기라고 하고 여태 서점을 잘 운영하고 있다니까 별 문제는 없는 모양이다.

여기에 언급된 많은 책들 중 내가 아는 건 안타깝게도 20%가 될까 말까다. 그중에서 특히 『럼두들 등반기』가 나타났을 땐 어찌나 기쁘던지. 너도 읽었구나! 이거 모르는 사람 많은데. 반가워! (나보다 어린 것 같아서 반말 좀 했수)

서점 주인은 가만 앉아서 일할 거라는 상상을 여지없이 부수고, 책 상자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중노동에, 인터넷서점과의 소리 없는 전쟁, 책을 사러 멀리 까지 가서 일일이 들춰보고 값을 매겨야 하는 머리 아픔에, 어이 없는 손님들 응대까지 해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고민 중이다. 서점 하지 말까?

아무튼 아침 먹고 앉아서 쉼없이 네 시간 가량 읽어댔다. 남의 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일인지. 일기 안 쓰는 걸 반성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날이 그날 같아서 안 쓴다는 애들의 핑계를 그대로 들이밀고 있다.





*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위 사진(左)처럼 글자가 살짝 겹쳐 인쇄된 게 몇 쪽 가량 나와서

가뜩이나 눈이 안 좋은 내가 어지러움을 느끼며 읽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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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의 개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2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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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의 개』,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박종윤, 손명희, 이혜정, 정해영, 최희영 옮김

교유서가 펴냄

◎ 내 마음대로 별점: ★★★★★

(요즘 내 평점이 후해졌나? 별 다섯 개가 왜 이리 많담!)

『마틸다』, 『제임스와 슈퍼복숭아』 ,『찰리와 초콜릿공장』,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

『멋진 여우씨』, 『창문닦이 삼총사』 이 정도가 로알드 달 작품 중 읽어본 동화책 들이다.

그의 멋진 상상력에 얼마나 감탄을 하며 읽었던가!

그러고보니 그의 소설들은 『개조심』을 제외하곤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사실, 이 책은 중간 쯤에 책갈피가 꽂혀 있다. 뭐하느라 다 안 읽었을까?)

이번에 새롭게 로알드 달의 베스트 단편집 세트가 나왔길래 손이 근질거렸으나

읽은 작품들이 중간에 끼여 있는 것도 같은 착각을 (분명 착각일 것이다) 일으켜

일단 처음 들어보는 <클로드의 개>만 데려왔다.

<클로드의 개> , <조지 포지> , <로열 젤리>, <달리는 폭슬리> , <소리 잡는 기계>,

<윌리엄과 메리>, <천국으로 가는 길>,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이렇게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클로드의 개>는 연작형식이라 웬만한 장편에 가깝고

나머지 작품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단편들이다.

오오오, 로알드 달이 '에드거 앨런 포 상'을 괜히 받은 게 아니다.

그 광기와 재치, 독창적인 상상력이라니!!

줄거리를 조금이라도 소개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이 작품들이 갖는 반전의 묘미를 다 놓치게 되니 입을 꾹 다물어야 한다.

뭐가 제일 좋았는지를 생각해봤는데 고를 수가 없다.

이건 애들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를 묻는 것과 동일한 문제다.

입술을 꽉 깨물고 읽다 만 『개조심』이나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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