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고 나이가 많은데도 힘이 좋고, 하루 24시간을 꽉 채워 사는 여자, 환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걸 낙으로 삼고, 건물 11곳의 제설작업을 맡고 있으며, 절대로 눕는 법이 없이 작은 소파에 기대 쉬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 아버지와 어머니, 쌍둥이 동생과 그녀의 관을 놓을 석조무덤을 짓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 겨우 읽을 줄 알고 더하기와 빼기의 연산만 가능했지만 기억력은 컴퓨터처럼 작동하는 사람,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뜰 앞에 모이지만 절대로 누구도 집안으로 들이지 않는 사람이 바로 에메렌츠다.
화자인 내가 길에서 구출했지만 주인보다 에메렌츠를 더 따르던 개 비올라는 언제나 들어갈 수 있지만, 그녀의 닫힌 문 안에 누가 있을지, 무엇이 있을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 한 번, 그녀 스스로 화자인 나에게 열어주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진실 때문에 화자는 두고두고 악몽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를 살리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 그녀의 비밀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이 되었고 그녀의 치부를 가려주지 못했으므로.
' 내가 다른 것도 원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언젠가 나의 어머니에게 했듯 그녀를 안고 싶었다든지, 다른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은 이야기들, 말하자면 어머니가 이성이나 지성보다는 사랑의 감정으로 받아들였던 그런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239쪽)' 함께 지내는 20년 동안 이렇듯 그녀에게 좀 더 다가가고자 했으나 에메렌츠는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엄마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 아이같은 모습에 내내 마음이 아팠다. 초반부의 마릴라 아주머니와 앤을 보는 것 같달까? (앤처럼 말괄량이는 절대 아니지만) 결코 눈 앞에서 말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화자인 나를 딸처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이런 표현을 대놓고 했다면 둘의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으리라. (사랑하는 사람들은 거리가 필요하다고 누군가가 내게 말했었다. 그때는 포장 잘 한 핑계라 생각했고 지금은 인정한다.)
어쨌거나 오랜 시간 속에서 오해를 하고 풀리는 일이 반복되는 동안 결국 주인공이 깨달은 것은 '애정은 온화하고 규정된 틀에 맞게, 또한 분명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를 대신해서도 그 애정의 형태를 내가 정의할 수 없다는 .' (118쪽)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