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 내 마음대로 별점 : ★★★★★

◎ 책 선택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 :

"≪그리스인 조르바≫를 여성 작가가 여성인물로 다시 쓴다면?

그럴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이 소설은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무려 신형철과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합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으로 더욱 좋아하게 된 신형철과 내 인생의 책인『그리스인 조르바』. 내가 좋아하는 두 단어가 딱 겹쳤는데 외면한다는 건 분명 안경을 바꿀 때가 됐다는 얘기다! (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우연처럼 기가 막히게도 안경테가 부러졌다. 소오름~ )

'헝가리 문학이라면 마라이 산도르, 크리스토프 아고타, 케르테스 임레 등을 떠올리게 되는데, 서보 머그더는 우리에게 아직 친숙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 만큼은 못 되는가 싶었다. 어설픈 예단이었다.(신형철의 추천의 글 중에서/ 369쪽)' 산도르 마라이의 『유언』 이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걸작인 건 나도 인정하는데 케르테스 임레는 또 누구지? 찾아보니 이 분도 200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헝가리 작가들 참 대단하군그래. 노벨문학상도 복잡하고 추잡한 일들이 엮여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안 줬고!) 그의 『운명』도 일단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프리모 레비를 뛰어넘는지 확인해봐야겠으니까.

작가이자 화자인 '나'와 집안일을 도와주러 온 에메렌츠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악몽으로 막을 연다.

나의 꿈은 머리카락 한 올의 차이도 없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환영이다. 항상 똑같은 그 하나의 꿈을 꾼다. 계단 아래, 대문 가에 나는 서 있다. 철망으로 엮이고 깨뜨려지지 않는 유리창이 달린 쇠틀의 대문. 그 안쪽에서 나는 자물쇠를 열려고 한다. 문밖 거리에는 구급차가 서 있다. 창을 통해 가물거리는 구급요원들의 실루엣은 부자연스럽게 커 보이며, 마치 달 같은 후광이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다. 열쇠는 돌아가지만 헛돌 뿐이다. 구급요원들에게 문을 열어주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으면 제때에 환자에게 당도할 수 없을 텐데. 그럼에도 나는 문을 열 수가 없다.

7~8쪽

젊은 시절을 보내고, 에메렌츠도 보내고 이제 늙어 죽음을 기다리는 화자는 용서를 구하듯이, 혹은 고해성사를 하듯이 지난 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지금까지 나는 용감하게 살았으며, 죽음 또한 이렇게 거짓없이 용감하게 맞이하고 싶다. 하지만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조건이 있다. 에메렌츠를 죽인 것은 나였다. 그녀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구원하고자 했다는 말도, 여기서는 그 사실 관계를 바꿀 수 없다.

10쪽

마르고 나이가 많은데도 힘이 좋고, 하루 24시간을 꽉 채워 사는 여자, 환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걸 낙으로 삼고, 건물 11곳의 제설작업을 맡고 있으며, 절대로 눕는 법이 없이 작은 소파에 기대 쉬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 아버지와 어머니, 쌍둥이 동생과 그녀의 관을 놓을 석조무덤을 짓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 겨우 읽을 줄 알고 더하기와 빼기의 연산만 가능했지만 기억력은 컴퓨터처럼 작동하는 사람,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뜰 앞에 모이지만 절대로 누구도 집안으로 들이지 않는 사람이 바로 에메렌츠다.

화자인 내가 길에서 구출했지만 주인보다 에메렌츠를 더 따르던 개 비올라는 언제나 들어갈 수 있지만, 그녀의 닫힌 문 안에 누가 있을지, 무엇이 있을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 한 번, 그녀 스스로 화자인 나에게 열어주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진실 때문에 화자는 두고두고 악몽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를 살리고자 했으나 결과적으로 그녀의 비밀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이 되었고 그녀의 치부를 가려주지 못했으므로.

' 내가 다른 것도 원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언젠가 나의 어머니에게 했듯 그녀를 안고 싶었다든지, 다른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은 이야기들, 말하자면 어머니가 이성이나 지성보다는 사랑의 감정으로 받아들였던 그런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239쪽)' 함께 지내는 20년 동안 이렇듯 그녀에게 좀 더 다가가고자 했으나 에메렌츠는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엄마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 아이같은 모습에 내내 마음이 아팠다. 초반부의 마릴라 아주머니와 앤을 보는 것 같달까? (앤처럼 말괄량이는 절대 아니지만) 결코 눈 앞에서 말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화자인 나를 딸처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이런 표현을 대놓고 했다면 둘의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으리라. (사랑하는 사람들은 거리가 필요하다고 누군가가 내게 말했었다. 그때는 포장 잘 한 핑계라 생각했고 지금은 인정한다.)

어쨌거나 오랜 시간 속에서 오해를 하고 풀리는 일이 반복되는 동안 결국 주인공이 깨달은 것은 '애정은 온화하고 규정된 틀에 맞게, 또한 분명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를 대신해서도 그 애정의 형태를 내가 정의할 수 없다는 .' (118쪽) 것이다.

그녀는 모든 사람의 예시였으며, 모든 이의 조력자였고 모범이었다. 풀을 먹인 앞치마 주머니에서는 비둘기 같은 아마 손수건과 종이로 싼 사탕들이 부스럭거리며 나왔다. 그녀는 눈의 여왕이었으며, 그녀 자신이 확실함 그 자체였다. 여름에는 첫 번째 체리였고, 가을에는 영근 밤, 겨울에는 화톳불에 익힌 호박, 봄에는 관목의 첫 봉오리였다. 에메렌츠는 깨끗했고 논란의 여지 없이 우리 누구나가 항상 되고자 했던, 가장 선한 우리 자신의 모습이었다.

282쪽

다 읽고난 뒤에야 신형철이 왜 조르바를 언급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성별은 물론이고 성향도 모습도 하는 일도 완전히 다른 인물이지만 순수한 인물에 방점을 찍어놓을 수밖에 없으니까.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24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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