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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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글, 하윤숙 옮김, 비채 펴냄

◎ 내 마음대로 별점 : ★★★★★

간단한 작가 소개: 버나딘 에바리스토 Bernardine Evaristo

1959년 런던, 영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영국 태생의 혼혈 흑인이라는 태생적 배경과 연극이라는 문화적 배경이 창작의 원천이 되엇고, 무엇보다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라는 현실은 역사와 근원에 대한 갈망을 낳아 장르· 인종· 젠더·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글쓰기를 시작한다. 선보이는 작품마다 파격과 융합을 시도해 화제를 낳았고, 희곡과 비평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면서 '영국 작가들의 작가'로 불린다. 2019년 10월에는 여덟 번째 책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이 문학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부커상을 마거릿 애트우드와 공동 수상하며, 부커상 최초의 흑인 여성 수상자라는 사실에 더욱 이목이 집중되었다. - 책날개 작가 소개 중에서 정리-

내셔널 시어터에서 열리는 희곡 <다호메이의 마지막 여전사> 공연을 앞둔 앰마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앰마의 딸인 야즈로 이어졌다가, 동료였던 도미니크와 야즈의 대모인 캐럴, 캐럴의 친구인 버미와 라티샤, 캐럴의 선생이자 인생을 바꿔준 사람인 셜리, 셜리의 엄마인 윈섬, 나중에 해티의 딸로 밝혀지는 퍼넬러피, 해티의 손녀인 모건, 해티, 해티의 엄마인 그레이스를 거쳐 다시 애마의 연극이 공연되는 시점으로 돌아오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흑인 여성들이다.

장장 600쪽에 걸친 대서사시라고 해야겠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실은 반점(혹은 쉼표, )만 있을 뿐 온점(혹은 마침표 .)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들어가기에 앞서 ' 이소설은 운문 형태를 띠는 산문으로 문장부호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한국어판 역시 이 점을 최대한 살려 옮겼습니다.'라는 일러두기에서 미리 밝힌 바 있다. 그래서 흑인 특유의 리듬감으로 읊조리는 음악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런 불평등 아래서도 삶은 지속되고 있고 지속되어야만 한다는 것으로도 읽힌다.

이 책을 통과하고 있는 단어는 다섯 가지다. 흑인, 불평등, 동성애, 페미니즘, 자유

나는 솔직히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페미니즘: 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아우르는 용어.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살펴보고, 여성이 사회 제도 및 관념에 의해 억압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여러가지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두산백과에서) 아니, 페미니즘을 앞세워 불평등을 조장한 남성들과 같은 행보를 보이는 일부 여성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두자. 그래서 특별할 것 없는 이 말을 맞닥뜨렸을 때 꽤나 신선했다.

당연히 페미니즘은 남성혐오가 아니야! 여성 해방에 관한 거고, 동등한 권리에 관한 거며, 한계를 규정하는 기대치에 관한 거라고, 가부장제에서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해야 해

445쪽, 비비가 메건에게 보낸 메시지 중에서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이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의 사회적인 위치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되어 굉장히 씁쓸하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삶이 망가질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기회를 잡기도 전에 박탈당하는지.

어느 쪽이 되었든 흑인이라는 것도, 동성애자라는 것도 의식적으로 내린 정치적 결정의 결과가 아니었다, 전자는 유전적으로 정해진 것이고 후자는 심리적, 정서적 경향이다

578쪽, 야즈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롤런드를 이야기하며

안다고 생각했다. 텔레비전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일들이니까. 흑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아직도 너무 많으니까 나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그들이 겪는 것의 ⅛이나 될까? 작가가 흑인 + 동성애까지 극단적으로 들이민 것은 '백인은 인종 전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 대표하면 되지 않는가(579쪽)' 라고 한 것처럼 백인들은 무엇을 해도 너그럽게 용서되는 세상에 산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작가 자신이 흑인이면서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하기에 이토록 빠져드는 것 같다.

피부색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를 사랑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똑같이 평등한 한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그녀에게 받았으니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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