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글, 하윤숙 옮김, 비채 펴냄
◎ 내 마음대로 별점 : ★★★★★
◎ 간단한 작가 소개: 버나딘 에바리스토 Bernardine Evaristo
1959년 런던, 영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영국 태생의 혼혈 흑인이라는 태생적 배경과 연극이라는 문화적 배경이 창작의 원천이 되엇고, 무엇보다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라는 현실은 역사와 근원에 대한 갈망을 낳아 장르· 인종· 젠더· 문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글쓰기를 시작한다. 선보이는 작품마다 파격과 융합을 시도해 화제를 낳았고, 희곡과 비평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면서 '영국 작가들의 작가'로 불린다. 2019년 10월에는 여덟 번째 책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이 문학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부커상을 마거릿 애트우드와 공동 수상하며, 부커상 최초의 흑인 여성 수상자라는 사실에 더욱 이목이 집중되었다. - 책날개 작가 소개 중에서 정리-
내셔널 시어터에서 열리는 희곡 <다호메이의 마지막 여전사> 공연을 앞둔 앰마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앰마의 딸인 야즈로 이어졌다가, 동료였던 도미니크와 야즈의 대모인 캐럴, 캐럴의 친구인 버미와 라티샤, 캐럴의 선생이자 인생을 바꿔준 사람인 셜리, 셜리의 엄마인 윈섬, 나중에 해티의 딸로 밝혀지는 퍼넬러피, 해티의 손녀인 모건, 해티, 해티의 엄마인 그레이스를 거쳐 다시 애마의 연극이 공연되는 시점으로 돌아오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흑인 여성들이다.
장장 600쪽에 걸친 대서사시라고 해야겠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실은 반점(혹은 쉼표, )만 있을 뿐 온점(혹은 마침표 .)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들어가기에 앞서 ' 이소설은 운문 형태를 띠는 산문으로 문장부호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한국어판 역시 이 점을 최대한 살려 옮겼습니다.'라는 일러두기에서 미리 밝힌 바 있다. 그래서 흑인 특유의 리듬감으로 읊조리는 음악처럼 들리기도 하고, 이런 불평등 아래서도 삶은 지속되고 있고 지속되어야만 한다는 것으로도 읽힌다.
이 책을 통과하고 있는 단어는 다섯 가지다. 흑인, 불평등, 동성애, 페미니즘, 자유
나는 솔직히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페미니즘: 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아우르는 용어.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살펴보고, 여성이 사회 제도 및 관념에 의해 억압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내는 여러가지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포괄하는 용어이다. 두산백과에서) 아니, 페미니즘을 앞세워 불평등을 조장한 남성들과 같은 행보를 보이는 일부 여성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두자. 그래서 특별할 것 없는 이 말을 맞닥뜨렸을 때 꽤나 신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