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간, 불태우다 쏜살 문고
윌리엄 포크너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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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대로 별점 : ★★★★★

◎ 수록작품 : <가뭄이 든 9월>, <헛간, 불태우다> , <저 석양>, <에밀리에게 장미를>,

<버베나 향기>

◎ 작가소개 : 윌리엄 포크너 1897~1962

『압살롬, 압살롬!』『성역』 고함과 분노』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

등의 작품이 있으며 노벨문학상, 전미도서상, 퓰리처상 등을 수상했다.

윌리엄 포크너도 처음이다. '미국 남부 문화에 뿌리를 둔 포크너는 남북 전쟁과 재건을 거치면서 쇠퇴해가는 남부의 전통적 가치관과 삶의 방식, 급격히 몰락해가는 대지주 사회의 풍경을 절묘하게 그려내었다'(책날개, 작가 소개 글 중에서) 남북전쟁이라고 하면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장면들만 반사작용처럼 떠오르는 지라 그가 그려낸 그 시기 남부의 모습이 궁금해지기도 했거니와, 유수의 상들을 받은 만큼 정말 그럴 정도로 좋은지 확인하고 싶은 배배꼬인 심정도 한 몫을 한 터였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그럴 정도로 좋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전에 꼭 물 한 잔을 옆에 두길 권한다. 읽으면서 곧바로 목이 턱 마르게 될 것이므로)

가뭄이 계속 되어 타들어가는 날씨 속에서 백인여성을 공격한 흑인 남성에 관한 소문이 떠돌게 되고, 더위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듯 진상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를 응징하는 <가뭄이 든 9월>, 가난한 백인과 부유한 백인, 그들 간의 격차가 만들어낸 계급과 갑질, 그로 인한 분노가 터지는 가운데 뒤늦게라도 아버지의 잘못을 밀고해야만 하는 아들을 그린 <헛간, 불태우다>, 여전히 백인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몸을 팔고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남의 아이를 임신하고 무위도식하는 남편이 해칠 것을 무서워해야 하는 낸시를 통해 흑인 가정 내에서의 또다른 폭력을 보여주는 <저 석양>,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스스로 고립되어 산 여인이 죽었을 때 드러나는 무서운 진실을 그린 <에밀리에게 장미를>, 사업파트너였던 이에게 아버지가 살해를 당하자 집에 돌아와 그를 향해 총을 발사하기를 종용하는 지역 사회를 보여주는 <버베나 향기>.

이 다섯 편은 모두 갈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종에 관계 없이, 그러나 인종 차별 문제가 있기에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갈등을 해결하고자 나서는 이들이 있는데 <가뭄이 든 9월>에서 흑인애인이라는 조롱을 들으면서도 흑인 편을 들어주는 백인 이발사,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그 잘못을 바로잡고자 밀고하는 <헛간, 불태우다>의 사티, <버베나의 향기>에서 아버지의 원수를 죽이라는 사람들에 밀려 그를 찾아갔으나 원한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베이어드가 바로 그들이다. 어떤 상황이건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한결같이 이 말이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그런 식으로 해결하려하면 절대 안 된다고.

'그들도 사람이죠. 인간들이라고요.'(129쪽)

선집이라 당연히 그렇겠지만 다섯 편 모두 훌륭하다. 한 번의 힘만으로도 거침없이 액체를 끌어올리는 스포이드처럼 그렇게 빨려들어가는 흡인력도 엄청나지만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매끄러운 번역 덕분일 테니 김동욱 선생에게도 감사를!) 그를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나처럼 이 단편집에 도전할 것을 권한다.

다섯 편의 작품 중 <에밀리에게 장미를>은 나머지 작품들과는 약간 다른데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을 읽는 느낌과 비슷했다. 북부인이었던 호머 배런과 애인 관계였던 남부 여인 에밀리가 비소를 써서 그를 죽인 뒤 그와 한 침대에서 오래 생활하다 죽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움푹 패인 베개와 그녀의 머리카락은 소름 끼피는 반전을 선사한다. 박정현의 노래 '하비샴의 왈츠'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위대한유산> 속 하비샴도 에밀리와 너무 닮았기에)

포크너가 더 마음에 드는 이유는 그가 노벨문학상으로 받은 상금을 ‘새로운 작가들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기금의 설립과 흑인 교사 양성을 위해 기부했다는 사실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위대하다. 그 위대한 이를 만난 기쁨을 나는 별 다섯 개로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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