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일기 - 세상 끝 서점을 비추는 365가지 그림자
숀 비텔 지음, 김마림 옮김 / 여름언덕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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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일기』 - 세상 끝 서점을 비추는 365가지 그림자

숀 비텔 지음, 김마림 옮김, 여름언덕 펴냄

◎ 내 마음대로 별점 : ★★★★☆

2001년 11월 유일하게 공식 북타운으로 지정된 위그타운에 있는 서점 '더북숍'을 인수해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중고 서점의 주인이 되었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일에 대한 열정이 점점 커져 가는 한편 서점의 미래에 대한 절망감도 함께 자라나고 있다. - 책날개 작가 소개에서

당당히 2월부터 시작하는 이 서점 일기를 펴면 책들을 나선형으로 쌓아올린 조형물, 'The Book Shop' 이라는 명명백백한 간판을 지닌 서점 외관과, 보이는 모든 공간이 책들로 둘러싸이고 아늑한 소파와 전등이 반기지만 뜬금없이 해골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내부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방어할 틈도 없이 들이닥치는 조지 오웰의 발언과 작가의 첫 문장은 낄낄거리게 만드는 동시에 책에 대한 기대감을 한없이 솟구치게 만들었다.

나는 과연 서점 주인을 '업'으로 삼고 싶은가? 내가 일했던 서점의 주인은 내게 친절히 대해주었고 서점에서 행복했던 날도 있었지만, 대체로 아니올시다.

-조지 오웰, 「서점의 추억들」, 런던, 1936년 11월

서점 주인이 되기를 주저하는 오웰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서점 주인은 성마르고 편협하고 비사교적이란 고정관념이 있는데(<블랙 북스>란 코미디에서 딜런 모런은 이런 서점 주인의 모습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그건 '대체로' 사실인 듯하다.

7쪽

좀 더 나이가 들어 60대쯤엔 서점을(혹은 서점을 빙자한 카페나 혹은 작은 마을 도서관) 하나 운영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인 나도 이 부분(성마르고 편협하고 비사교적)에서 상당히 찔렸다.

'어떻게 알았지? 그럼, 나는 서점주인으로 딱 맞게 태어난 거야?'

멋 모르는 사람들에게 '중고서점 운영'은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 옆에서 안락의자에 슬리퍼 신은 발을 올리고 앉아 입에 파이프를 물고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노라면, 지적인 손님들이 줄줄이 들어와 흥미로운 대화를 청하고 책값으로 두둑한 현금을 놓고 나가는 그런 목가적인 일이 결코 아니라는 효과적인 경종을 울려준다.

8쪽 -조지 오웰의 수필을 읽은 뒤

이것도 맞아. 딱 그런 걸 원했거든! 그런데 아니라고?

작가는 (서점주인은) 이 일기에서 오웰의 「서점의 추억들」에 나오는 구절을 소개하는데 대부분은 그 시대에 한한 내용들인지라 살짝 거북한 부분도 있지만 조지 오웰이 서점(햄스테드에 있는 '북 러버스 코너')에서 일할 때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쥔장(숀)은 '우리 서점을 사랑하고, 보유서적의 품질을 개선하고 장사가 잘 되게 하기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하려고 노력한다. 단지 그런 일이 어떤 건지 우리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르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111쪽)' 라고 칭한 니키라는 점원과 함께 일하는데 나 같으면 당장 그만두라고 할 만한 상황에서도 둘이 잘 지내는 걸 보면 둘이 똑같기 때문인 것 같다. 왜냐면 니키도 만만치 않은 게 서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면 가관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또 니키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숀이 얼마나 배려 있고 인정 많은 사람인지 모르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제가 아주 꽁꽁 언 빙판길을 지나 차도 없이 서점에 겨우겨우 도착했을 때,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기를 막고 싶으면 골판지 상자를 펴서 작업대 밑에 깔아도 좋다고 허락했답니다. 그것도 아주아주 두꺼운 상자를요. 정말 친절하지 않나요? 그리고 난방기의 빨간 전원 불빛(열은 조금도 안 나지만) 덕분에 보기만 해도 참 아늑해요. 숀이 이렇게 다정하답니다! (385~386쪽)'

둘이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재미있지만 간간히 등장하는 알바생들과 고양이 캡틴, 중고서점을 들락거리는 많은 사람들 이야기가 건조한 표현 속에 도사린 유머들로 인해 빛을 발한다. 분명 실명을 사용했을 텐데 어쩌려고 이 사람은 이렇게도 솔직하게 기분 나쁨과 그들의 무식과 그들의 예의 없음을 낱낱이 쓴 걸까? 나만 전전긍긍하지, 이 분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눈치다. 그들의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들만 봐도 그렇다. 이게 2014년의 일기라고 하고 여태 서점을 잘 운영하고 있다니까 별 문제는 없는 모양이다.

여기에 언급된 많은 책들 중 내가 아는 건 안타깝게도 20%가 될까 말까다. 그중에서 특히 『럼두들 등반기』가 나타났을 땐 어찌나 기쁘던지. 너도 읽었구나! 이거 모르는 사람 많은데. 반가워! (나보다 어린 것 같아서 반말 좀 했수)

서점 주인은 가만 앉아서 일할 거라는 상상을 여지없이 부수고, 책 상자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중노동에, 인터넷서점과의 소리 없는 전쟁, 책을 사러 멀리 까지 가서 일일이 들춰보고 값을 매겨야 하는 머리 아픔에, 어이 없는 손님들 응대까지 해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고민 중이다. 서점 하지 말까?

아무튼 아침 먹고 앉아서 쉼없이 네 시간 가량 읽어댔다. 남의 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일인지. 일기 안 쓰는 걸 반성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날이 그날 같아서 안 쓴다는 애들의 핑계를 그대로 들이밀고 있다.





*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위 사진(左)처럼 글자가 살짝 겹쳐 인쇄된 게 몇 쪽 가량 나와서

가뜩이나 눈이 안 좋은 내가 어지러움을 느끼며 읽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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