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공원을 가로지르면 인천에서 부천으로 넘어가게 된다.

부개동에서 상동으로 가는 길.

뜨거운 날, 호수공원 가운데 앉은 연인이 눈길을 끌었다.

항상 저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텐데

가을, 겨울엔 보이지도 않더니 봄이 되자 보이다니.

다소곳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와 조금 뻐기듯 보이지만 그래도 어색함을 감추지 못한 남자는

아무래도 만난 지 몇 번 안 된 것 같다.

다 내보이지 못하고 가슴에 간직한 열정이 많을 저 때가 지나고 나면

덤덤한 마음으로 소 닭 보듯 살아가게 될 게 뻔하니,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살아있는 저 한 때를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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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인가 하여 한참을 쳐다봤다.

벚꽃이 지나간 자리, 이제 곧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는 아름다운 엄마들이다.

바람에 꽃잎들을 아름답게 흩뿌릴 땐 소녀같고, 소년 같더니

이젠 새로운 생명을 품으려는 경건한 마음의 엄마와, 아빠가 되어 있었다.

둥글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 위해 부지런히 양분을 모으고

햇살을 모으고 정성을 모으겠지.

나도 한 몫 보태주마.

예쁜 열매를 맺으라는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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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안 쪽에 심었던 라일락은 담장을 따라 어디곤 향기를 흘렸다.

멀리까지 진하게 마중나오던 라일락 향기에 취해

집에 다 왔다는 안도감에 취해

봄 밤은 그렇게 향기로웠는데

이젠 그 집터에 5층짜리 빌딩이 들어서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고스란히 넘겨줘야 했던 그 집도,

그 집에 대한 추억도 너무 아련해졌지만

봄이 되어 라일락이 피고 나면 다시 그 시절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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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하는 등들이 내걸렸다.

기원을 담아 정성으로 내거는 등.

마음으로 거는 등이건만, 어느 절에서는 법당 부처님에 가까울수록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한다.

1년내내 걸어놓는 등이고, 교회처럼 십일조 헌금을 걷지 않기에 특별히 절에서 재원을 마련할 일은

없다고 하지만 너무나 터무니 없는 가격을 제시한 절들이 가끔 보인다.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고, 내가 복을 많이 받기 바라는 대신 복을 많이 짓기를 기원하는 등.

그래서 연등을 만들 때 연잎 한 장 한 장을 떼어내서 한 쪽을 꼬아 붙이는 작업을 하는 동안

경건한 마음으로 만들어 불자들에게 건넬 때 기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등이건만

돈으로 환산되어 걸려 있는 등들을 보면 왠지 씁쓸하다.

어느 가난한 여인이 등을 밝힐 기름을 살 돈이 없어서 구걸하여 등을 밝혔더니

그 여인의 정성이 가득 담겨 있기에 부처님이 잠드셔야 할 시각까지 활활 타올랐다고 한다.

 

나와 이웃의 앞길까지 밝혀주는 등이 부디 그 가난한 여인의 등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환하게 켜지기를 기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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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한 마리가 살았습니다.

무엇에나 싫증을 잘 내던 그 물고기는 매일 새로운 걸 찾아다녔습니다.

어느 날, 지나가던 나그네 물고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다가 꽤 넓은 줄 알고 있지? 나도 여태 그런 줄 알았단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한 번 힘차게 솟구쳐서 바다밖 세상을 보았더니...."

"그래서요?"

"거긴 바다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내 눈이 튀어나올 뻔 했지."

"우와, 어떤 걸 보셨어요?"

"반짝이는 것도 많고, 눈을 찌를 것 같은 강렬한 햇볕도 따뜻하고, 이상하게 생긴 것들도 많지.

직접 보지 않고는 말로 설명을 못하지."

"거긴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어요?"

"글쎄..나야, 한 번 솟구쳐서 본 것 뿐이라 정확하게는 모르겠다만, 아무래도 열심히 하늘님한테 빌면 되지 않을까?"

그날부터 그 물고기는 하늘님한테 바다를 벗어나 다른 곳에 가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먹지도 자지고 않고 빌기를 한 달. 삐쩍 마른 물고기가 안쓰러웠던 하늘님이 나타나셨어요.

"그래, 넌 어디로 가고 싶단 말이냐?"

"네.저는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그래? 흠..그렇다면 한 곳에 머물러 있어도 새로운 걸 계속 볼 수 있으면 되렸다?"

"네..그럼요. 그럼요"

이렇게 해서 그 물고기는 절간 처마 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기분좋게 댕그렁거리는 소리까지 낼 수 있게 된 물고기는 매일매일 바뀌는 바다의 모습도 보고

곁을 지나 날아가는 갈매기와도 이야기를 하고, 바람이 전해준 소식도 듣고,

꽃이 피고 잎이 나고 열매가 맺고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고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발소리도 듣고

이야기도 들으면서 매일매일 새롭게 살고 있다지요.

-낙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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