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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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별 5개를 선택한 책을 읽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유시민이 쓴 책이고, 가장 좋아하는 분야인 역사가 주제인 책이기 때문에 읽기 전부터 기대가 높았다. 읽고 나서 역시 유시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논리적으로 글을 쓴다.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을 하니 내용에 대한 이해도 높고, 가독성도 높다. 그가 왜 베스트셀러 작가인지 이제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역사에 관심을 가진 모든 일반인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책에서 언급된 모든 책을 읽어 보았다고 해도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이 읽을 책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총 균 쇠>와 <사피엔스>을 읽었다. 이 책들의 저자들이 서사적인 내용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썼기 때문에 핵심적인 내용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역사서들과 비교를 하고, 역사와 인류사를 구분하고, 이 책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역사의 역사>를 읽고 나서 알았다.


저자 유시민은 이 책을 패키지 관광에 비유한다. 주요 지점만 투어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만 허용하는 패키지 관광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주요 장소를 볼 수 있지만, 진정한 즐거움이나 깊은 의미를 얻을 수는 없다. 저자는 유명한 역사가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저서를 설명하면서 비교하는 정도만 독자에게 제공할 뿐이라는 의미로 <역사의 역사>를 패키지 관광에 비유했다. 

하지만, <역사의 역사>는 패키지 관광으로 치부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의 역사>는 체계적으로 역사를 접하고, 이해하고, 정리하고자 하는 일반인들에게 뛰어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주는 책이다. 일전에 읽은 <역사의 쓸모>보다 훨씬 깊이 있고, 역사를 이해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 일반인들이 역사 공부를 처음 할 때 훌륭한 지침서이고, 역사에 관심 없는 사람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내가 즐겨 하는 게임 중에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 있다. 어쌔신 크리드 오딧세이 이다. 이 게임의 배경이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동맹국들이 일으킨 분쟁으로 촉발된 전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주인공은 배를 타고 그리스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모험을 하는데, 주인공이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레오니다스의 후손이고, 주인공과 함께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 중의 한 명이 헤로도토스이다. 헤로도토스는 실존 인물인데 스스로 여행을 다니며, 당시의 역사를 서술해서 <역사>라는 역사서를 남긴 유명한 사람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역사를 알고, 게임을 하면, 몰입도가 그만큼 높아진다. 


최초의 문명 충돌, 최초의 동서양의 격돌 등으로 묘사되는 페르시아 전쟁을 알고 싶으면, <역사>를 읽어보아야 한다. 저자 유시민은 낯선 정보가 너무 많아 독해가 어렵기 때문에 <역사>를 읽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서사에 집중하면서 읽으면 충분히 재미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에 용기를 얻어 헤로도토스의 <역사>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구입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역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도 그렇지만 <사기>를 읽으면 역사 서술에는 '발전'이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제9장에서 만날 <총 균 쇠>와 <사피엔스>의 저자들은 사마천보다 2,000년 늦게 태어났다. 그들은 우주와 자연과 자기 자신과 문명에 대해 인간이 긴 세월 동안 새로 찾아낸 수많은 과학적 사실을 알고 있다. 인터넷과 검색엔진을 활용해 필요한 정보를 언제든 검색할 수 있는 환경에서 컴퓨터로 대중적이고 세련된 문장을 쓴다. 죽간서를 산에 감추어 두려 했던 사마천과 달리, 책을 쓰면 세계의 주요 언어로 즉각 출판한다. 이런 변화를 발전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총 균 쇠>와 <사피엔스>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사기>보다 더 훌륭하거나 감동적인가? 인간 본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더 가치 있는 메시지를 던졌는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P.77)


역사를 있었던 그대로 서술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랑케의 역사 이론을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비판을 한다. 유명한 역사서들이 서로 자신들의 이론을 주장하고, 서로 반박을 한다. 무엇이 맞는 말일까? 역사란 주관적인 관점의 서사인가? 아니면 객관적인 관점의 사실인가? 이에 대한 궁금증을 저자 유시민은 역시 특유의 비유를 들어서 명확하게 설명한다.



이 문제를 더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어떤 이유에서 인간이 거의 다 죽고 문명이 모두 폐허가 되었다. 도서관의 책과 인터넷 디지털 정보가 다 없어졌다. 사피엔스 가운데 오로지 극소수의 한국인만 살아남았다. 긴 세월이 흐른 뒤 후손들이 폐허에서 2010년 한국 언론사의 신문철을 발굴했다. 그리고 랑케와 꼭 닮은 사람이 그 희귀한 사료를 근거로, 사라져 버린 옛 문명을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려는 야심을 품고 역사를 쓴다고 해보자. 그가 쓰는 역사의 내용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는 어느 신문이냐는 것이다. 조선일보인가 한겨레인가에 따라 미래의 랑케가 쓰는 역사는 크게 달라진다. 예컨대 박정희 대통령은 '위대한 영도자'가 되거나 '방탕한 독재자'가 되는 것이다. 사실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살아남는 게 아니다. 기록하는 사람이 선택한 사실만 살아남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P.231)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 사대주의자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같은 책이 아니고, 민족주의자 신채호가 쓴 <조선상고사> 같은 책을 읽어야 한다. 삼국시대의 후진국 신라를 중심으로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고, 중국 수나라와 당나라에 맞서 한반도를 지켰던 고구려를 중심으로 역사를 배워야 한다. 한반도에서 친일의 잔재를 뿌리뽑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역사부터 제대로 알고, 가르쳐야 한다. 


헤로도토스에게 역사 서술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 사마천에게는 실존적 인간의 존재 증명이었으며, 할둔에게는 학문 연구였다. 마르크스에게는 혁명의 무기를 제작하는 활동이었고, 박은식과 신채호에게는 민족의 광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사피엔스의 뇌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뇌에 자리 잡는 철학적 자아는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시대에 살면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철학적 자아와 공명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자든 아나키스트든 마르크스 주의자든, 식민지 시대 지식인들이 쓴 역사를 읽으면 가슴이 아리다. 그들이 살았던 사회적 환경과 오늘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같지 않은데도 이러는 이유가 무엇일까? (P.213)


<역사의 역사>를 읽으면서 인용하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다. 저자 유시민이 선별한 역사서 내용 중에 저자 유시민이 인용한 주옥같은 내용도 많고, 저자 유시민이 직접 자기의 생각을 정리해서 쓴 좋은 내용도 많다. 


잠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역사를 같이 토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한 '농업 혁명이 사기이다'에 대한 의견을 나누어도 좋고, 연개소문과 김춘추를 비교하며 인물평을 해도 좋고, 십자군 전쟁의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도 재미있을 거 같다.


2020.09.06 Ex. Libris HJK


생물학자 칼 폰 린네(1707~1778)가 창안한 생물 분류 체계에서 우리 인류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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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
강양구 외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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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쓰레기가 책을 쓰네. 기가 막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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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0-09-03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건 모르겠고, 알라딘에서 독서평에 공감 100개가 넘어가는 건 처음보는데,
(그것도 독후감상도 아닌 기대평들에:-)
너무 신기해서 그분들 책장으로 가보니 꼴랑 이 책 하나 넣고 기대평들을 하신분들이 꽤.
개인적으로 작가들이 별로라 책은 관심이 안가는데, 주변 현상은 재밌네요.

카타유 2020-09-06 16:08   좋아요 0 | URL
갱지님 말씀 듣고 보니 참 웃기는 현상이네요. ^^
 
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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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상황이 여전히 뜨겁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로나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전파하고 있다. 
요즘 한국 사회는 정치 세력화된 개신교 교회, 수구세력을 대변하기 위해 광장에 모이는 부대,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고 발버둥 치는 의사들로 인해 시끄럽다. 
나는 분명한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합리적 의심과 추론을 기반으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다. 

소방관, 경찰관, 심지어 공대생들을 더 뽑는다고 그들은 근무 거부를 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익은 늘어나고, 의사들의 이익은 줄어드나? 왜 그들은 근무 거부를 안 하고, 의사들은 근무 거부를 하는가? 그건 의사들이 자기들은 특권층이고, 지배층이고, 기득권층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으면서 사회 구성원이 이러한 사실들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이 사회에 주어진 역할을 무시하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이 바로 수구세력이고, 적폐인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주인공이 해변에서 누군가를 살해한 이유를 도무지 이해를 못해서 찜찜한 마음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알베르 카뮈에게 도전했다. <페스트>는 요즘 코로나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싶다.

아프리카 북쪽 알제리의 한 도시에 페스트가 발생하고, 도시는 폐쇄된다. 도시 경계는 모두 막히고, 들어올 수는 있어도 절대 나갈 수가 없는 도시이다. 더 이상 시체를 매장할 곳이 없어서 화장을 하고, 축구 운동장을 수용소로 개조하고, 식료품을 배급받는 도시이다. 치료약도 없고, 백신도 없고, 그저 페스트 스스로 알아서 물러나가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이다. 

이 책을 읽으면, 현재 코로나 상황에서 한국이 얼마나 잘 대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도시 폐쇄라는 공포감이 어떨지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모두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페스트 환경에서 사람들의 생활이 어떻게 바뀌고,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감정들이 어떻게 변모하는지 알 수 있다. 서사적 기술을 남기겠다는 의도로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제3의 관찰자처럼 설명한다. 비교적 담담하지만, 페스트에 대한 공포가 없어지지 않는다.

주인공 의사와 그 주변 사람들을 관찰한다. 어떤 이는 페스트를 피하기 위해 불법적인 일을 계획하고, 어떤 이는 페스트로 인한 도시 폐쇄를 반갑게 맞이하고,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페스트 전선에 더 뛰어들고, 어떤 이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이 모든 행위에 정답은 없다.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을 다하고, 각자의 결말에 책임을 지는 것뿐이다. 


"당신같은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죠? 세계의 질서가 죽음에 의해 규정되는 이상, 신이 침묵하고 있는 하늘을 바라볼 일이 아니라, 신을 믿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죽음과 싸우는 것이 어쩌면 신에게도 더 좋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P.153)

"당신 말이 옳아요. 랑베르. 절대적으로 옳아요. 당신이 지금 하려는 일을 나는 결코 막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하려는 일은 내가 봐도 정당하고 좋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주고 싶어요. 이 모든 것은 영웅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건 성실성의 문제예요.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성이 대체 뭔가요?" 랑베르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를 예로 들면, 성실성은 내 직분을 완수하는 거예요." (P.194)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자칫 방심한 순간에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전염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P. 295)


페스트는 결국 끝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 속에서도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현재 코로나 상황에서도 똑같이 중요할 것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인간의 보편적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있다. 
 
2020.08.30 Ex. Libris HJK



이 연대기에서 다루고 있는 이상한 사건들은 194X년에 오랑에서 일어났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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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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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역사를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고,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제목이 <역사의 쓸모>이다. 책 표지 중간에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이라는 부제가 쓰여있다. 부제인지 모르겠지만, 22가지 모두 자유, 떳떳한 삶과 연결되는 거 같지는 않다.


역사를 접할 때 특정 사건을 위주로 깊게 들여다볼 수도 있지만, 역사 속 인물 중심으로 역사를 배울 수도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생각하는 하나의 주제에 해당하는 인물을 소개하고, 본인의 생각을 정리해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과 함께 류성룡의 <징비록>을 읽고 있는데, <징비록>을 모두 읽고 나서 할 이야기가 훨씬 많을 거 같다. 하지만, 미처 몰랐던 역사 속 인물을 <역사의 쓸모>를 통해서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뛰어난 외교가 서희, 원종, 독립운동가 박상진, 이회영, 대동법 시행 김육, 청렴한 관리 최석, 쇠뇌를 만든 구진천, 이분들은 이 책을 읽기 전에 미처 몰랐다. 특히,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힘써 왔던 분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하니 나 자신이 창피하다. 

물론, 이 책에 내가 몰랐던 분들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정약용, 장수왕, 정도전, 장보고, 익숙한 분들도 나온다. 


책 앞 부분에 잠시 언급되고, 후반부에 독립운동가로서 힘들게 살아온 이회영 선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저자 또한 아래 문구를 보고 엄청 감동을 했다고 한다.


서른 살 청년 이회영이 물었다.

"한 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눈을 감는 순간 예순여섯 노인 이회영이 답했다.

예순여섯의 '일생'으로 답했다.


외국에서 유명한 사람들이 한 말만 기억하지 말고, 우리 조상들 중에 이런 멋진 말을 하신 분들도 기억을 하면 좋겠다. 과연 살아온 '일생'으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몇 가지 부분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상이하다. 역사의 해석은 주관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읽으면서 가장 짜증 났던 부분은 '원균'에 대한 저자의 평가이다. 


원균을 옹호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역사 속 인물의 선택에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뜻이죠.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때 눈앞에 보이는 글자만 읽고 말아요.


저자 최태성은 원균에 대해서 몰랐을까? 역사 속에 들어가서 인물들과 만나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원균을 예로 들었을까? 선조 명령을 무시하면 이순신 님처럼 고난을 겪을 까봐 어쩔 수 없이 칠천량으로 가서 전멸했으니 인간적으로 쳐다봐야 한다는 말인가? 


원균은 1592년 4월 13일(음력) 임진왜란 발발 시 경상 우수영을 총괄하는 경상 우수사였다. 일본 제1군 고니시 유키나가 군대 18,000명을 막을 수 없었지만, 이후 속속 들어오는 일본 후속 부대를 견제할 수 있는 위치였고, 판옥선도 약 70여 척 있었다고 한다. 옥포, 당포 등지에서 이순신 님과 함께 싸웠지만, 포상 과정에서 이순신 님과 다툼이 많았다. 그는 자기가 뛰어났다고 생각했다. 이순신 님의 부재를 틈타 수군을 총지휘하지만, 칠천량 해전을 통해 역시 원균은 무능력했다는 모습만 역사에 남긴다. 


아무리 선조의 명령에 따라 출전했다고 해도 그 정도 위치였으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원균은 조령, 문경새재를 포기하고, 충주 탄금대에서 조선 정예 병사를 모조리 수장시켜 버린 한심한 신립과 어깨를 견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기가 더 막힌 것은 조선의 가장 한심한 임금인 선조(사실 군으로 불러도 아깝다.)가 정한 선무공신 1등에 이순신, 권율과 함께 뽑혔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뛰어난 장수가 많았는데, 이게 말이 되는가? 울분이 터진다.


세계사를 접할 때는 비교적 감정의 동요 없이 차분하게 읽을 수 있다. 물론, 인도주의에 어긋한 사태에 대해서 마음이 격해진다. 십자군 전쟁에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단지 이교도라는 이유로 약 백만 명의 거주민을 모조리 학살했다는 내용을 읽고, 종교에 대한 깊은 빡침을 느꼈지만, 우리나라 역사를 읽으면서 느끼는 울분과는 차이가 있다. 



역사적 사고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깊은 공감을 느꼈다.


저는 품위 있는 선택에 역사적 사고가 큰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현재만을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까지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근시안적인 선택을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아요. 역사적 사고란 역사 속에서 나의 선택이 어떻게 해석될지 가늠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력을 고려해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쓰도록 강요하는 것은 자유를 해친다고 미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스크를 쓰면 답답하기 때문에 쓰고 싶지 않고, 이런 나의 선택을 규제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코로나에 걸려도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니 상관없다는 것인가? 

내가 마스크를 쓰고, 코로나의 확산을 방지할 수 있다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역사적 사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먼 훗날 누군가 2020년을 평가할 때 마스크 착용 자유와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코로나 전파 감소, 이 둘 중의 어떤 것을 높게 평가하겠는가? 


예순여섯 '인생'이 답했다.

예순여섯 '인생'이 나라를 구하거나 한민족의 영광을 널리 알리거나 등이어만 할 필요는 없다. 하루하루 마스크를 쓰는 것만으로도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2020.8.15 광복절 Ex. Libris HJK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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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김수현 지음 / 놀(다산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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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책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이른바 한류라고 불리는 한국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가고 있는데, 김수현 작가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이 책이 일본에서 엄청 인기를 얻고 있다는 내용을 유튜브에서 보았다. 


지금까지 일본 작가의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일본 출판시장은 한국보다 커서 정말 다양한 종류의 책이 나온다. 정말 형편없는 책도 있지만, 좋은 에세이 책들도 많다. 일단, 출판되는 책이 많고, 받쳐 주는 시장이 있으니 양질의 책이 나올 확률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김수현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저자는 푸근한 일러스트와 함께 본인의 생각을 깔끔하게 적었다. 


에세이를 읽는 목적은 무엇일까? 

삶의 위로를 받기 위해서? 읽는데 부담이 없어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 편해서? 

책을 읽는 목적이 다양하듯이 에세이를 읽는 목적도 다양할 것이다. 


내가 에세이를 찾아서 읽는 이유는 어떤 감정, 상황, 현상을 설명하는 현실적 비유를 통해 나의 사고를 돌아보기 위함이다. 여기에서 현실적이란 우리 주변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한가한 오후에 소파나 바닥에 누워 가볍게 펼쳐서 읽다가 뜻하지 않게 발견하는 현실적 비유가 재미있다.


어떤 책은 객관적 실험, 구체적인 타당성,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어떤 감정, 상황, 현상을 설명한다.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에세이를 찾는 이유를 감정적 사고 때문이라면, 이런 책은 논리적 사고 때문에 읽는다. 


이 책에서 발견한 몇 가지 현실적 비유를 소개한다.


운전할 도로 위에 어떤 운전자를 만날지 없듯이, 삶에서 누구를 만날지 우리가 결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로에서 막무가내인 운전자와 한동안 같은 길로 가야 한다면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사고를 막을 있다. (P.118)


저마다 배터리 용량이 다르듯, 우리의 체력도, 충전의 주기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고 배터리의 잔여량은 남과 비교해서 있는 아니다. (P.239)


샤워기의 온도를 조절할 '조금 차갑게' '조금 따뜻하게' 반복하다 내게 맞는 적당한 온도를 찾아내듯이, 관계의 적정선도 그렇게 맞추는 거다. 그렇기에 중요한 지금 관계의 온도를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지, 나의 마음을 아는 일이다. (P.271)


위의 인용 글들을 읽어보면, 정말 마음에 와닿는다. 많은 과학적 근거, 실험 데이터, 논증 체계가 필요 없다. 그냥 읽으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이 바로 에세이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관계를 이어가는 가장 확실한 비결은 "언제 보자" 말을 "이번 주에 보자" 바꾸면 된다. (P.252)


당장은 새로운 직업을 갖기 어렵지만 3 정도의 시간을 두고 준비하면 새롭게 있는 일은 많다. 당신의 시작을 위해 시간을 주자. 삶은 망설이기엔 너무 짧고, 조바심을 내기엔 너무 길다. (P.182)


'' 아니라 '' 중심으로 말해야 하는데, 이건 상대를 평가하는 피하고, 행위와 사실만으로 느낌과 욕구를 표현하는 말하기 기술이다. 예를 들어, "너는 나를 무시한다" 같은 상대를 판단하는 문장을 "내가 말할 네가 TV 보면서 대답하면(관찰) 나는 너한테 존중받고 싶었는데(나의 욕구) 그렇지 못한 같아서 서운해(나의 감정)"라는 문장으로 바꾸는 것이다. (P.219)


위의 인용 글들은 독자들이 따라 할 만한 행동을 바로 알려준다. 말하기 기술은 책 한 권으로 쓸 수도 있을 만한 주제이다. 하지만, 간단하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에피소드와 간단한 문장만으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말하기 기술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이 또한 에세이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 

현실적 비유를 찾아내는 재미, 내 주변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접해보기 바란다.


2020.08.09 Ex. Libris HJK

 

사실 내게 인간관계는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 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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