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 지구가 목적, 사업은 수단 인사이드 파타고니아
이본 쉬나드 지음, 이영래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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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우연히 파타고니아 티셔츠를 입은 직원을 만났다. 파타고니아 로고가 크게 새겨진 옷이었다. 별로 고급스러워 보이지도 않고, 목 주변이 약간 늘어난 형태였다.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옷에 대해서 물어보았고, 이때 처음으로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를 알았다. 

약 1달 전에 동네 근처 교보 문고를 갔다. 신간 서적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이 책을 봤다. 부제가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다. 그리고, 표지에는 한 남자가 석양에서 서핑 보드를 가지고 해안을 걷고 있는 사진이 있다. 


책 초반부를 읽을 때는 전형적인 창업자 성공 스토리를 다룬 자서전 정도로 생각했다. 흥미가 떨어졌다. 자기 잘났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기 때문에 책에서까지 접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도서관에서 대여했다면 그대로 반납했을 것이다. 하지만, 구입한 책이고, 같이 구입했던 <징비록>, <역사의 쓸모>, <페스트>, <역사의 역사>를 모두 읽었기 때문에 마땅히 읽을 다른 책도 없어서 아무 기대 없이 읽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이 책은 보통의 자서전과 다르다. 파타고나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가 말하는 것은 뭔가 달랐다. 회사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회사의 규모가 작아도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관, 철학, 원칙이 중요하다. 책을 읽어갈수록 이본 쉬나드가 말하는 파타고니아 지향점에 깊은 공감을 가졌고, 어느새 책에 빠져들었다.


이본 쉬나드는 등반을 좋아하는 아웃도어 스포츠 마니아이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자신이 등반할 때 쓰는 장비를 좋게 만들고 싶어서였다. 이때부터 품질 최우선주의를 추구했다. 이유가 뭘까?



우리는 거의 모든 등반 장비를 재설계하고 개선시켜 더 강하고, 더 가볍고, 더 단순하고, 더 기능적으로 만들었다.

우리 마음속의 최우선은 항상 품질이었다. 적절치 못한 도구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고, 우리 자신이 우리 제품의 최대 고객이었으므로 죽음에 이르는 그 사람이 우리가 될 수 있었다. (P.53)


나는 쓰지 않으면서 고객이 쓰기를 기대하면서 제품을 만들면 안된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쓰지도 않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서 팔고, 내가 먹지도 않는 음식을 만들어서 판다. 

나에게 맞는 일, 내가 가장 좋아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직접 사용하는 무엇인가를 만들고, 그걸로 돈도 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난 정말 사업가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사업가가 되려면 좋은 명분들이 필요했다. 다행히 나에게는 사업을 확장하더라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었다. 일은 늘 즐거워야 한다는 점이다. 일터로 오는 길에는 신이 나서 한 번에 두 칸씩 계단을 겅중겅중 뛰어올라야 한다.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입고 심지어는 맨발로 일하는 동료들에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 유연한 근무로 파도가 좋을 때는 서핑을 하고 함박눈이 내리면 스키를 타고 아이가 아플 때는 집에 머물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일과 놀이와 가족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야 한다. (P.85)



이런 회사라면 정말 다니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회사를 운영해도 수익을 내고 회사를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직원들은 이렇게 회사를 다녀도 회사가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1984년 우리는 로스트 애로의 새로운 사옥을 지었다. 거기에는 개인 사무실이 존재하지 않았다. 임원들을 위한 사무실조차 말이다. 이런 구조가 때로는 산만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개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경영진은 개방된 형태의 커다란 공간에서 직원들과 함께 일을 했고 직원들은 곧 이 공간에 '울타리(corral)'라는 이름을 붙였다. (P.101)



2020년 한국의 대기업 사무실 모습은 파타고니아와 사뭇 다르다. 부사장 이상은 별도의 개인 사무실을 가지고, 전무/상무는 직원들과 분리하기 위해 높은 칸막이를 설치해서 '나는 임원이다'를 모두가 알게 만든다. 임원들을 위한 고정 주차 지역이 있고, 이곳에 직원이 주차를 하면 바로 회사에서 전화를 해서 차를 빼라고 한다. 임원에게 개인 냉장고와 수납장을 제공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대기업의 문화이다. 이러면서 좋은 직장 문화를 만들자고 각종 캠페인을 만들고, 설문 조사를 한다.  


파타고니아도 다른 회사들처럼 위기와 부딪혔다. 그들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파타고니아의 가치관, 문화, 방향, 철학 등을 논의했다. 이런 것은 팀 구성원들에게 설문을 해서 투표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도 아니고, 일개 기획이나 전략 부서에서 방안을 마련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주주의 이익을 도모한다, 혁신을 선도한다 등의 구태의연한 목표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파타고니아는 상장 회사가 아니다. 그들은 이런 수준 낮은 사항을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은 그들의 가치관을 요약한 내용이다. 이것만 읽으면, 잘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전체를 읽었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우리의 가치관


1. 회사의 모든 결정은 환경 위기를 염두에 두고 내린다. 


2. 제품의 품질에 최대한의 관심을 쏟는다. 여기에서 품질은 내구성, 자연 차원(원료, 에너지, 운송)의 최소 사용, 다기능, 비노후화, 용도에 대한 완벽한 적합성에서 나오는 종류의 아름다움으로 정의된다. 특히 일시적인 유행을 따르는 것은 우리 기업의 가치관과 부합하지 않는다.


3. 이사회와 경영진은 성공적인 공동체가 지속 가능한 환경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한다. 


4. 이익을 추구하되 성과를 우선시하지 않는다. 성장과 확장은 우리 회사의 기반이 되는 가치가 아니다. 


5. 우리는 사업 활동이 환경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년 스스로에게 총매출의 1% 혹은 연 수익의 10% 중 큰 금액을 세금으로 부과한다. 이 세금의 모든 수익은 지역 공동체와 환경운동의 보조금으로 사용한다.


6. 파타고니아의 모든 임직원은 우리의 가치관을 구현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7. 최고 경영진은 하나가 되어 최대한 투명하게 회사를 운영한다. (P. 123 ~ 124)



거의 하룻밤 새에 우리는 훨씬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진 냉철한 회사가 되었다. 성장을 지속가능한 속도로 제한하고, 지출은 신중하게 했으며, 경영은 사려 깊은 사상과 생각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3년 만에 경영진 내에서 몇 개의 계층을 없애고, 재고를 단일 시스템으로 통합하고, 판매 채널을 중앙의 통제 하에 두었다. 철학을 글로 정리하고 수업을 통해 문화적 경험을 공유한 것이 이런 급진적 전환에 큰 역할을 했다. (P.127)


 

2019년 파타고니아는 사명 선언을 했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



탄생에서 재탄생에 이르기까지 제품을 책임지고, 우리에게 제품의 수선을 맡기도록 고객들을 장려하고, 제품의 수명이 다했을 때는 다른 귀중한 제품으로 재활용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은 제품을 가능한 오래 지속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제품들이 지나치게 빨리 되돌아오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P.187)



파타고니아 이미지의 핵심은 무엇일까? 대중은 우리를 어떻게 인식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등반 장비를 만드는 대장간이라는 우리의 근원이다. 그곳에서 일하던 자유사상을 품은 독립적인 등반가들과 서퍼들의 신념, 태도, 가치관이 파타고니아 문화의 기반이 되었고 그 문화로부터 하나의 이미지, 즉 사용하는 사람들이 직접 만드는 진정성 있고 질 좋은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생겨났다. (P.240)



우리는 개인 소유의 기업이고 외부 투자자에게 주식을 팔거나 회사를 넘길 생각이 없으며 기업을 담보로 하는 차입을 원치 않는다. 더구나 우리는 전문 아웃도어 시장 밖으로 파타고니아를 확장시키길 바라지도 않는다. (P.264)


우리는 아웃도어 용품을 파는 회사이다. 의사가 접수 담당자에게 병원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허용하지 않듯이 우리는 박람회 부스에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맨 사람을 두지 않는다. 주된 문화가 '실내'에 속하게 된다면 최고의 아웃도어 의류를 만들기는 힘들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사무실에 있는 것보다 베이스캠프나 강가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을 찾는다. 그런 사람들이 직무를 처리하는 데 적합한 자격까지 갖추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경영 대학원 출신이 아닌 떠돌이 암벽 등반가를 채용하는 위험을 무릅쓰곤 한다. (P.273)


나는 행동이 우울한 마음을 치유해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직접적인 행동은 파타고니아 환경 철학의 기반이다. 우리가 사업을 하는 주된 이유는 정부와 기업들이 환경 위기를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행동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언제나 악이 승리한다. (P.302)



나는 악의 정의를 다른 사람과 다르게 생각한다. 명백하고 공공연한 행동이어야 악인 것은 아니다. 단순히 선의 부재도 악일 수 있다. 당신에게 선을 행할 능력과 자원과 기회가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악일 수 있다. (P.387)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언제나 악이 승리한다. 이 말은 정말 공감이 간다. 

어떤 사람들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안 좋게 생각해서 중립을 지키겠다고 한다. 모든 의견에는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판단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 100% 정답은 없다. 항상 최선을 다해 차선을 찾는 것이다. 

나는 악에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만큼 했다 말할 수 있을까? 이건 틀린 말이다. 악에 동조하지 않고, 무관심이나 중립을 지켰기 때문에 악이 승리한 것이다. 

어떤 사안이라도 중립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려는 사람과 지키려는 사람이 있었다. 중립을 지키겠다고 아무 행동도 안 하는 사람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사람보다 나은가? 아니다. 똑같다. 왜냐하면, 그런 중립적인 태도롤 취한 사람들이 많았다면, 탄핵을 하지 못하고, 죄를 묻지도 못했을 것이다. 탄핵을 해서 죄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이 유한한 지구에서는 소비를 줄일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까 걱정인가? 어차피 자동화와 로봇 기술의 발달로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닌 필요한 것만을 구입한다면, 다기능의, 내구성이 좋은, 수선이 가능한, 품질이 좋은, 유행이 없는, 그리고 다음 세대까지 물러줄 수 있는 것만을 산다면 어쩌면 일부 사람들은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P.390)


나는 모든 일에서 달인이 되는 길은 단순함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기술 대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많이 알수록 필요한 것은 적어진다.

나 자신의 삶을 단순하게 만들려는 미미한 시도들을 통해 나는 보다 단순하게 살아야, 혹은 그렇게 살기로 선택해야 정말 중요한 모든 면에서 빈곤하고 결핍된 삶이 아닌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P.391)


올해 초에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위해 내 방을 많이 바꾸었다. 안 읽은 책, CD, 안 읽는 옷, 레고 벌크, 게임용 잡지, 오래된 게임기, 수납장, 책장 등을 버렸다. 그 이후에 방에 들어온 것을 보니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여전히 무엇인가를 사고 싶은 욕구는 계속 있다. 빈 공간에 무엇인가를 채워 놓고 싶다. 단순하게 살아야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 아직도 부족하다. 


지구의 생명에 책임을 지는 한 명의 사람이 되기 위해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실천한다. 



2020.09.19 Ex. Libris. HJK



나는 거의 60년 동안 사업가로 살아왔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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