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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삶과 꿈, 그림으로 만나다 - 민화 ㅣ 아름답다! 우리 옛 그림 5
윤열수 지음 / 다섯수레 / 2018년 2월
평점 :
[리뷰]서민의 삶과 꿈, 그림으로 만나다-아름다운 민화
익살스럽고 귀엽게 생긴 호랑이, 열심히 떡을 찧는 달토끼 두 마리, 붉은 색으로 탐스럽게 익은 석류, 화려하게 채색된 문방사우 등등. 민화는 선조들의 이야기가 잔뜩 담겨 있어서 찬찬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시대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가 하면 옛날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로만 들어온 상상 속의 동물들이 화려한 색감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어서 환상 속을 거니는 것 같기도 하다.
<서민의 삶과 꿈, 그림으로 만나다>는 <아름답다! 우리 옛 그림>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인데, 서양의 명화에 맥 없이 밀리기만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렇게 우리나라의 옛 그림 시리즈가 책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게 정말 감격스럽다. 특히 민화는 다른 종류의 그림에 비해 평가절하되고 있었는데, 최근에 그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많아 해외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기뻤다. 특히 외국인들은 다른 그림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민족성과 뿌리를 알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린 민화의 가치를 높게 쳐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한 일은 하나도 없지만 ㅎㅎ 국내외에서 이렇게 민화의 위치가 격상된 점이 참 뿌듯하다.
일본은 외국의 침략을 거의 받지 않은 덕분에 자신들의 문화를 거의 손상시키지 않고 지켜내려올 수 있었는데, 훨씬 더 찬란하고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문화는 잦은 외침으로 많이 사라져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특히 이런 문화, 역사적인 것들이 새로운 문화의 기반이 되고 컨텐츠가 되어 재탄생되는데 일본인들은 만화, 애니메이션, 소설, 소품 등으로 활발하게 재생산을 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런 부분이 약했기 때문에 더욱 속상했다. 특히 민화 속에 담긴 무궁무진한 우리네 이야기는 한국 사람만이 생산해낼 수 있는 문화 컨텐츠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서민의 삶과 꿈, 그림을 만나다>의 가장 큰 장점은 A4사이즈의 커다란 책 크기와 질 좋은 그림들, 그림의 양이라고 생각한다. 민화에 대한 다른 책들을 많이 읽었지만, <서민의 삶과 꿈, 그림을 만나다>만큼 색감이 좋지도 않았고 실려있는 그림도 제한적이었으며 책 크기가 작아 민화를 자세히 감상하기 힘들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 독자들의 아쉬움을 어떻게 알고 큼직한 사진으로 그림을 가득 실었는지, 책을 받았을 때 커다란 민화를 보고 입이 찢어지게 좋아했었다.
또한 그림의 주제로 먼저 목차를 나누고 그림의 소재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를 해 놓은 구성도 마음에 쏙 들었다. 예를 들면 사랑과 부귀영화를 꿈꾸며 그린 민화 <화조도> 편에는 어째서 꽃과 새가 함께 그려진 모습이 사랑을 뜻하는지 간단히 설명되어 있고 <모란도> <매화도> <포도도> <석류도> 등의 순서로 그림이 소개된다. 그리고 화려한 색감과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을 사로잡는 그림들이 큼직하게 눈을 사로잡는다. 우리 조상들이 모란, 매화, 포도 등 각 사물들에 어떤 소망을 담아 그려 넣었는지,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이나 설화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부족함 없이 설명한다.
민화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주제들은 선조들의 서재를 그린 <책가도>, <문방사우도>와 상상의 동물을 그린 것들이다. 전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공통 부분이 느껴져서 흐뭇하고 후자는 온갖 동물의 형상이 합쳐진 기이한 동물들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덧붙여 호랑이를 익살스럽게 그린 민화들도 좋아하는데 중국, 일본과 다른 그림의 특징이 드러나고, 이렇게나 무서운 동물을 귀엽게 그린 선조들의 마음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책과 함께 4절지 사이즈의 커다란 민화 초본을 받았는데, 작호도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한 면은 작호도, 다른 한면은 괴석모란도의 초본이 그려져 있다. (최근 그림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했는데 기회되면 따라 그려볼 생각이다.)
<서민의 삶과 꿈, 그림을 만나다>를 감상하다 보니 아주 익숙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시골에서 잘 때마다 밤이 되면 나의 무료함을 달래주었던 십장생도!(밤이 되면 놀 거리가 별로 없는데 시골은 티비 채널이 얼마 나오지 않았고 그마저도 어린 나에게 채널을 돌릴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무척 심심했다.) 할아버지가 병풍을 세워 놓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그 병풍에 이 십장생도가 주제별로 하나씩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어린 눈에는 이게 이야기 책의 그림을 색실로 예쁘게 표현해 놓은 줄 알고 주워들은 옛날 옛적 이야기를 껴 맞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 그 때의 추억이 십장생도를 보는 순간 물밀듯이 넘쳐흘렀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슴의 땡그란 눈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다른 부분은 사실적으로 그려 놓고 눈을 왜 이렇게 그려놨는지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궁금증이 풀렸다. 그건 바로 사슴들이 불로초를 바라보게 그렸기 때문이란다. 이런 사소한 것에까지 의미를 두고 그렸다니, 우리 선조들은 해학과 익살이 넘치고 낙관적이며 긍정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인 게 분명하다.
언제나 민화 등 우리 나라의 옛 그림이 서양의 명화보다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고유의 문화에 익숙해지면 그것을 충분히 살린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만의 재미있는 얘기가 훨씬 많아질텐데 아직은 그 시도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서민의 삶과 꿈, 그림을 만나다>와 같은 책들이 많은 인기를 얻어서 한국의 전통적인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웹툰, 드라마, 소설 등이 넘쳐나고 한국 고유의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