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을 지배하는 자 고래책빵 어린이 시 6
재미드니 친구들 지음, 송현지.윤지선 엮음 / 고래책빵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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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에 들어 비로소 처음인 듯 평화로운 토요일입니다. 느긋하게 움직이고 천천히 읽고 분갈이를 하며 흙을 만지고 제목에 이 등장하는 책을 두 권이나(?) 읽습니다. 이번에는 시집입니다. 근래 읽은 어느 책보다 새로운 어휘가 가득합니다. 꽤 놀라면서 읽습니다.


 

입말에 가까운 어휘들을 재미드니연구소 선생님들이 어른과 책의 언어로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진짜 동시라고 소개하신 것이 이해가 됩니다. 29명의 어린이들의 시들이라 타인의 삶을 엿보는 것처럼 문득 민망해하면서 읽기도 했습니다.


 

힘이 있는 표현들이라 감정을 움직입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무섬증이 드는 시들도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 무서워하던 놀이, 상황... 그런 어린 감성이 동시에 반응해서 나왔나 봅니다. 물론 기발하고 재밌어서 웃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에도 자신이 웃기는 줄 모르고 웃기는 꼬맹이가 있어서 동시를 읽어 달라고 하니 재미가 심하게 증폭합니다. 몇 명 되지 않는 가족들 웃음 포인트가 다 다르니 역시 문학은 개별 체험이자 각자의 고유한 경험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이렇게 또 확인합니다.

 

어릴 적 그림을 그리다 그만 두는 것처럼, 동시도 열심히 즐겁게 쓰다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의 29명 중에 미래에 시인이 될 분이 있을까요. 아마 독자인 나는 모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무엇이 되던 많이 웃고 즐겁게 자라길 응원합니다.


 

어린이 시인들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색도, 형태도, 분류도, 기준도 모두모두 달라집니다. 반전 같기도 하고 어른들의 단단한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반박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루하고 우울하던 세상에 색을 더하는 건 역시 어린 사람들이네요.

 

앞에 언급했듯이 지도해주신 선생님들을 존경합니다. 억눌리지 않고 검열 당하지 않고 수정 당하지 않은 채로 어린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언어로 표현한 시들이 책이 되어 출간된 것이 반갑고 기쁩니다. 멋지고 고마운 일입니다.


 

동시는 매번 엄청 재밌습니다. 세상만물이 모두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는 신나는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종종 동시를 만나보시기를 권합니다.

 

! 똥을 지배하는 자가 누구인지는 찾아보는 재미를 위해 알려 드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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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귀신 - 패널시어터와 함께하는 동화
이윤섭 지음, 박영선 그림 / 좋은땅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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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최우선 목표는 생존이다. 생존에 위협이 될 것들 - 가능성들 - 은 본능적인 경고 반응으로, 신체적인 거부 반응으로 유전되었고, 문자를 알게 된 이후 일부는 이야기로, 학습된 감정으로 변하기도 했다.

 

똥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배변이 생존을 위협할 수 있어서 조심해야하고 멀리해야하고 처리를 잘 해야 하는 것이었다. 부모 새가 아기 새들의 변을 물고 먼 곳에 버리고 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부패 자체도 건강에 해가 되니 화장실을 외부에 두거나 시신을 가능한 먼 곳에 묻는 것도 문화라기보다는 생존과 건강을 위한 것이었다.

 

만약 배변이 부끄러운 일이라면 섭식 역시 그래야한다. 유사한 생리적 활동이고, 엄밀히 따지자면 섭취가 배설보다 더 위험하다. 내가 양치질하는 장면과 먹방을 거북해하고 싫어하는 이유에는 문화적인 면에 더해 타인의 생리적 활동과 전시된 몸을 자세히 보고 싶지 않다는 거부감도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부끄러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인간은 배변에 관해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지나고 나면 다 괜찮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성장의 무척 중요한 내용이라서인지 아이들은 똥과 관련된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표지를 보고는 몰랐는데 아이가 피쉬본 똥들이 나온다고 해서 무슨 얘기인가 했다. 그런 똥을 누는 건 아주 위험할 것 같은데...! 피쉬본 선인장과 너무 닮은 똥들! 똥 나라에 똥 누는 친구 놀리는 아이를 혼내 주는 똥 귀신도 있다. 권선징악(?)이 반갑고 역시 똥 얘기는 왠지 재밌다.

 


가정에서는 똥을 누는 일로도 칭찬을 받던 아이가 밖에서 만약 놀림을 당하거나 실수를 하게 된다면 놀라고 상처를 받을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학교 화장실 쓰기가 정말 무서웠던 기억도 나고, 여행이라도 가면 똥을 못 누곤 했던 생각이 난다.

 

이야기 속의 친구들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동철이를 놀리는데, 현실에서도 이러는지 모를 일이다. 큰 아이는 불편을 얘기한 적이 없고, 꼬맹이는 몇 년 간 어릴 적 나처럼 집 밖에서는 똥을 누지 못하였지만 기억날만한 큰 불편이 있었던 적은 없다.

 

책에서는 믿음직한 똥 귀신이 나타나서 엄청 무섭게 혼도 내주고 놀리는 버릇도 고쳐주는데, 현실에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해보면 좋을 주제이다. 엄청 엉뚱하고 웃긴 대화도 가능하다. 똥 얘기란 쉽게 지치지 않는 무궁무진한 주제이다.


 

영상자료도 있으니 배변 훈련 중이거나 초등학생 독자가 있는 분들이 접하면 좋을 주제이다. 혹은 똥 이외의 다른 여러 생리 현상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 미리 대화해 보는 계기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https://blog.naver.com/kbinstitute/223039583254

 

마지막으로 똥은 곧 자신이 먹은 음식물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가능한 우리 몸에도 지구에도 덜 유해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먹는 이야기도 해보면 더 좋겠다.



! 동화 제작 방식 - 패널 시어터 - 이 무척 독특합니다. 창작이란 재밌고 자유롭고 즐거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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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뿌리째 흔들리지는 마라
오수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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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늘 그래야하지만, 지금부터는 더욱 정리도 하면서 삶을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더 갈급하다. 조바심이 불안이 되지 않게 - 어차피 게을러서 열심히는 안 되지만 -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씩만 매번 미루지 말고 해보기로 한다.

 

꽤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주변이 어수선하고 남은 것들이 적지 않다. 처음 만들 때 숙고해서 만들지 않은 여러 법들도 특별법이니 개정이니 시행령이니 하면서 내용이 바뀌서 마무리했다고 생각한 일도 불완전해지고 마니 사회도 시스템도 참 부박하다.

 

사람들을 속이는 괴담 혹은 거짓말들 중에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지고 현명해지고 감정 조절이 쉽다는 것도 있다.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그저 늙을 뿐이다. 감정 조절은 저하된 체력을 뚫고 나와 더 날뛴다.

 

더구나 누르고 외면하며 살라는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조건이라면 더 아슬아슬해지고, 앞으로도 더 참을 일이 많다고 생각하면 어질어질하다. 각자의 관리법은 다르겠지만, 이런 괴로움과 고단함을 위해 문학이 존재한다. 대신 화내고 울고 처벌하고 죽여도 주는.

 

아침에 읽은 제목이 마음에 드는 시집이 여러 조언을 건네는데 발끈하며 반항심이 들지는 않는다. 문자와의 거리가 좋다. 어떻게 하겠는가. 계산도 어려운 확률로 태어나 버린 것을. 내게는 삶이 주어졌고, 아주 짧은 삶이고, 살아가는 거다. 엉망이 되더라도.


 

오늘은 인간이 거의 멸종시킨 것도 같은 벌의 날이라 시집 속에서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들과 지구 자연을 만나다가 벌에 관한 글을 찾아보았다. 담담하고 흔들림 없어 보이는 삶과 품위 있고 고독한 죽음에 인간으로 살고 죽는 일이 민망해진다.


여름철에 태어난 일벌의 수명은 약 한달이며, 겨울철에 태어나 일을 적게 하면 최대 6개월까지 살 수 있다. 일벌은 날개를 단 성충이 되면(우화) 일을 시작하는데 나이(태어난 일수)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르다. 초보 때와 경력자의 일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초보 일벌들은 벌집 안에서 주로 일한다고 해서 내역봉이라고 부른다. 우화한 지 3~5일 된 어린 내역봉은 선배 일벌들이 꽃에서 따온 꿀과 화분을 타액으로 반죽해, 부화한 지 46일 된 동생 애벌레들에게 먹인다. 우화한 지 610일 된 일벌은 로열젤리를 분비해 갓 태어난 애벌레들에게 먹이고, 1012일 된 일벌은 밀랍을 분비해 집을 짓는다. 12일째가 된 내역봉은 자신들의 벌집 주변에 어떤 자연물이 있는지, 집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첫 비행(기억비행)을 시작한다. 우화 15일이 지나면 이제 집 밖에서 일하는 외역봉이 된다. 드디어 꿀과 꽃가루, 물을 가져오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외역봉 중 고참들은 벌집 입구에서 침입자를 막아내는 경비 업무를 맡기도 한다.

 

자신의 소임을 다하던 일벌은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판단되면, 벌집에서 2~3떨어진 곳으로 날아간다. 집단의 페로몬이 닿지 않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혼자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벌집 안에서 죽으면 동료들이 자신의 사체를 치워야 하니까 이런 수고로움을 덜기 위한 마지막 비행이다. 일벌의 모든 죽음은 고독사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40570?cds=news_media_pc

 

인간이 곤충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은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고 인간보다 오래 존재할 것이다. 날개 달린 벌들이 인간 탓에 죽는다 해도 이미 날깨를 떼어버린 벌들 - 개미들 - 이 땅 속에서 굳건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태주 시인의 맑은 하루를 읽고 필사를 하고 눈물이 났다는, 그래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지천명을 경계 삶아 조금 다른 삶을 걷기 시작했다는 시인의 글이 천명(天命)’을 모르는 지천명에 다다르고 있는 내게 많이 들렸다.


 

천천히 천천히 살아보라는 시집을 놓고, 촘촘히 엮어진 지구의 여러 삶을 생각하며, 게으름을 떨치고 힘을 내어 시급한 분갈이를 몇 개 해본다. 분갈이야말로 폭력적으로 뿌리를 흔드는 일이다. 미안하지만 매번 잘 적응해서 조금 더 편안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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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B 스파이 유리
박현숙 지음 / 좋은땅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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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하고 무거운 5월도 어느새 후반이다. 정신이 휑하고 멍하다. 이번 주말을 잘 쉬면서 보내야 탈이 안 날 듯하다. 여름휴가에만 즐기자고 했던 장르 문학에 자꾸만 눈이 간다. 재미난 책 몇 권을 쌓아두고 이 책부터!


은퇴한 후로 세계 각국으로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다는 신기하고 부러운 저자의 소설이다. 어렸지만 나름(?) 냉전시대를 살아본 독자로서, 클래식한 제목도 매력적이다. 소련과 더불어 남북한의 역사적 사실들도 등장한다. 모스크바, 평양, 서울로의 장소 이동의 풍경도 흥미롭다


 

어린이 납치라니! 분노가 치민다. 전쟁에 필연적 귀결인 전쟁고아들이 많았을 것이고, 여러 이유로 현실에서도 납치가 많았을 것 이다. 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멋대로 납치 감금한다는 소식도 들리니 인류 문명이란 것이 다시금 씁쓸하고 아리다.

 

당장 분단국인 한반도의 상황도 악화일로이니 꾹꾹 눌러 두었던 불안이 새어나오려는 것을 다시 힘껏 누른다. 작품 속으로 열심히 도망가 본다. 스파이의 역할은 다양하겠지만, 첩보전의 기본은 정보전이다. 얼마 전 동맹국으로부터 불법 도청 사건이 떠올라 입맛이 쓰디쓰다.

 

짐작한 스파이소설의 전형을 따르는 작품은 아니고, 읽을수록 생생하고 위협적인 시대적 배경 속에서 주인공 유리의 삶에 초점을 잘 맞추고 계속 지켜보는 작품이다. 납치와 스파이 교육만으로 그 삶이 얼마나 고되고 슬플지 짐작 못할 바는 아니지만, 스파이로 살아가는 현장의 살벌함... 집권 세력의 승리를 위해 인간을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비정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정해 주고 시키는 대로 충실히 따르는 것이 최선이며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훈련을 받고 힘을 키워서 탈출하라고 응원하고 싶지만... 현실에서도 이야기 속에서도 탈출과 극복보다는 체념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 대화로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가독성이 더 좋다. 번역본이 아니고, 남북한의 갈등이 중심이 되니 현실감이 크다.

 

스포일링이 될까 주요한 계기들과 전개를 밝힐 수는 없지만, 유리의 삶이 극적으로 변하는 - 납치 - 의 계기가 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독자 누구라도 화가 날 듯하다. 어린이는 잘못이 없다. 무슨 함정(艦艇)을 그따위로 허술하게 만들었는지.

 

그 물 속에는 아이를 잡아먹는 귀신들이 많다.”


 

현재도 전투가 발생 중인 전쟁 지역도 있고, 한반도처럼 휴전 상태인 전쟁 국가들도 있다. 영토를 두고 벌이는 전쟁 외에도 각 분야에서 전쟁에 준하는 치열한 접점이 벌어지고 있다. 음습한 방식이 줄고 공개적이고 호혜적인 방식으로 인류 공동의 난제를 해결해가면 좋겠지만, 그런 기대가 혼자 하는 망상 같다는 서글픈 기분을 자주 느낀다.

 

거듭 현실 소환되긴 했지만, 덕분에 즐거운 주말을 시작했다. 흔하지 않은 한국 작가의 스파이 소설, 혹은 스파이의 삶에 주목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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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 - 방대하지만 단일하지 않은 성폭력의 역사
조애나 버크 지음, 송은주 옮김, 정희진 해제 / 디플롯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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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시간이 어려울까 했던 주 3일 읽기 모임은

때론 30분으로 바뀌기도 하면서 9장까지 일독을 마쳤습니다.

 

아주 중요한 책이고 번역서라는 걸 잊을 만큼 잘 읽힙니다.

여기에는 제가 맡은 1장까지 필사한 내용 중 일부만 기록해 둡니다.

 

강간 없는 세계를 함께 고민하며, 많이 읽어주시길 바라는 책입니다.

조사도 제대로 되지 못한 5.18 성폭력도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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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은 젠더(gender, 성별, 성의 구별, 성차)라는 사회적 모순 때문에 발생하는 범죄다. 젠더는 출산, 가족 제도, 친족 관계의 기반이며 모든 언어의 메타포로서 문명의 기본 조건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성폭력은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가치관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성의 몸에 대한 공간화(대상화)로 요약할 수 있다.”

 

성폭력은 아내에 대한 폭력(‘가정 폭력’)과 함께 가장 오랫동안 가장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가장 피해자가 많은 범죄다. 인류 역사에서 이만큼 만연한 폭력임과 동시에 본질적(radical, 根本的)으로 인간성을 드러내는 역사는 없다.”

 

* 본문 표기 이루어고’ : 오타로 추정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으로 간주되기보다 적의 소유물로 여겨진다. (...) 제노사이드는 본디 성별화되어 남성은 죽이고 여성은 강간한다. 여성을 강간, 강제 임신시킴으로써 여성과 아이 모두를 국가의 확장으로 여긴다. 남성 문화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은 자랑스럽고 간편한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이다.”

 

성폭력은 결코 단 한 건의 사건도 사회 밖에서, 역사 밖에서 존재할 수 없다. 동시에 사회와 역사는, 여성이라는 타자를 대표로 하는 사회적 약자의 몸으로서 출발한다. (...) 젠더는 교차적, 횡단적trans, 교직적交織的, 메타적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폭력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분야다. (...) 그만큼 성폭력 연구는 다른 어떤 연구보다 권력과 지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강간>>**에서는 성폭력을 참여자, 희생자 혹은 제삼자(유아, 아주 어린 아이들, 학습 장애가 심각한 사람들의 고통은 제삼자가 설명해주는 수밖에 없다)가 성폭력으로 인정한 모든 행위로 정의한다. 누군가 어떤 행위를 강간, 성적인 학대 혹은 성폭력이라고 말한다면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

 

** <<강간 : 18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Rape : A History from the 1860s to the Present>>(2007)

 

전 세계에서 법은 무엇이 폭력적인 성적 행동인지 잘 인정하지 않는다. 법은 보통남성의 비행을 범죄화할까 두려워한다. 사법권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성범죄자가 현장에서 잡혀도, 범죄가 밝혀져도, 법정 판결이 얼마나 실망스러운지 거듭 모욕적으로 목격하는 현실. 현행법의 처벌 강도와 양형 기준과 감형 사유들과 더불어 법이 무엇을 보호하는가를 보여주는 문장들입니다.

 

차이의 벡터들 중 어떤 것이 본질적으로 부수적이어서가 아니라, 특권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차이를 열등한 것으로 만든다. 다시 말해서, 성 학대 희생자들이 겪은 유린은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치와 굴욕이 된다.”

 

성폭력 생존자임을 공개적으로 증언하는데 주된 장애 중 하나가 수치다. (...) 수치란 무엇인가? (...) 누가 어떤 짓을 했는가(어느 것이 더 죄에 가까운가)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희생자 - 생존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한다고 보는가와 관련이 있다. (...) 수치는 여성을 포함하여, 다른 종속적이고 존중받지 못하는 자로 폄하당하는 사람들을 구성하는 과정의 일부다.”

 

수치는 대단히 정치적인 감정이다. (...) 성폭력이 자신과 공동체에 수치를 줄 것이라는 두려움은 그 어떤 실제 공격보다고 강력하다. 그렇게 때문에 성폭력은 유달리 효과적인 억압의 도구다. 성폭력은 괴롭힘을 직접적으로 당하지 않은 개인, 가족, 공동체까지도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강간과, 어머니와 자식에게 강간이 안기는 수치는 주요한 정치적 무기로 이용되어왔다. 강간의 수치는 섹슈얼리티와 존엄성 정치학의 지표다. 정치적 계급은 수치로부터 희생자를 보호할 큰 책임이 있다.”

 

수치는 피해를 경험한 쪽이 아니라 가한 쪽의 것이다. (...) 수치는 불의를 증언하며, 분노와 경멸처럼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 희생자는 살아남았고, 강간이 없는 사회에 필요한 용기로 교훈을 전한다.”

 

우리 사회에서 성 학대의 범위를 알림으로써 희생자 - 생존자들이 어디에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 존재를 가시화함으로써 피해를 준 쪽의 가치는 내면화하기를 거부한다. (...) 무엇보다도, 수치는 듣는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 (...) 미래는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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