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최후의 심판 + 두 개의 세계 + 삼사라 + 제니의 역 + 발세자르는 이 배에 올랐다
한이솔 외 지음 / 허블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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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가 작은 책이기도 하고, 흐릿한 내 기억 탓에 책들 사이에 놓였다 잊혀졌다. 푸른 5월에 읽고 싶었는데, 짙푸른 6월에 다시 만났다. 그 시간만큼 미래는 현재가 되었고, 우려하는 변화의 속도와 영향력은 더 커지고 있다.

 

새로운 사물은 사물의 등장 연유와 상관없이 기존의 존재를 지울 수 있다

 

아랑곳없이 넘치게 생산되는 물건들 - 상품들 - 에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의지도 결심도 납작 눌릴 때가 많지만, SF가 계속 써진다는 건 경고할 현재의 수명이 다하지 않았고, 미래도 남아 있다는 것이라 믿겠다.

 

키워드는 인공지능... 별 관심이 없다가 며칠 전 기사를 보고 터미네이터 후속편 시나리오인줄 알았다. 목표 완수, 미션 달성에 흔들림 없는 존재인 인공 지능을 탑재한 사물은 그 과정에 방해가 된다면 인간도 제거한다는 시뮬레이션.

 

인간들이 맨손으로, 칼 들고, 총 들고 서로 죽이나, 인공 지능 시켜 죽이나 늘 하던 짓 아니냐는, 친구의 신랄한 평에 반박할 말이 없어 슬펐다. 예상되는 위험에도 늘 그랬듯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자력으로는 멈출 수 없는 존재일까.

 

작품은 기쁠 만큼 생생하고 멋지다니 일단 책 속으로 깊이 도주해본다. 정확한 과학적 상상력이 강력한 경고와 대안을 제시해주거나, 미심쩍던 불안을 확인해줄지 모를 일이니까. 혹은 이 작가들 모두가 저항군일지도.

 

오랜 세월 위계의 최정점에 스스로를 올려둔 인간이 사물과 위계가 바뀐 법정 모습, 구원을 바라며 추종하다 실망으로 생을 마감한 서사는 엉뚱하지만 현실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더 이상한 짓도, 멀미나게 다양한 유형들도 지겹도록 보고 산다.

 

직업윤리와 의무감은 어째서 현직보다 전직직업인에게 더 많은지... 그럼에도 결론이 궁금해서 멈추지 못하고 읽은 미스터리이자 스릴러처럼 전개되는 법정 공방은 감정이 울긋불긋해질 정도로 논쟁에 뛰어들고도 싶었다.

 

곧 현실이 될 것 같아 그렇다. 미래와 이야기라는 설정은 더 이상 안전하지도 안심이 되지도 않는다. 와중에 역시 해법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이라는 독자로서 내 결론은 졸릴 정도로 익숙하지만 비로소 안도가 된다.

 

그들 모두가 깨달음을 얻었는지도 몰라. (...) 깨달음을 얻은 영혼은 이제 더는 새로운 육체에서 태어나 고통스러운 인생을 반복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 그랬는지도 몰라.”

 

생명 윤리를 다루는 논리적 다툼이 가득한 SF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 현실의 혼란과 고단을 잠시 씻어준다. 돈이 없는 과학연구자들과 수익에 눈 먼 기업인들을 대신한 경고를, 매년 읽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당신은 그러고도 인간입니까?’

 

네가 생각하는 인간은 무엇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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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애에게
류시은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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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사랑하지 않고서는 어쩌면 살아갈 수 없을지 모를 우리를 위해,
사랑할 수 있는 대상과 세계를 확장해 준 문학이 아닐까
설레고도 조심스러운 기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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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과 잠자리 - 2020 보스턴 글로브 혼북, 2020 전미 도서상(National Book Awards)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40
케이슨 캘린더 지음, 정회성 옮김 / 사계절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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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은 가치가 아닌 팩트다. 팩트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양해를 바라고 부당한 폭력과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하는 상황은 잘못이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고 현실이 바뀌진 않는다. 그러니 반성과 개선을 위한 고민과 행동을 계속해야한다.

 

성소수자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해외 문학을 접할 때마다 감정적이 된다. 한국은 다양성 인지와 고민이 너무 부족한 사회이며, 이미 비가시적임에도 더 강력한 배제의 외력이 작용한다. 성소수자 이웃이나 친구가 있는가. 만나본 경험도 극히 적다는 것이 곧 설명이 된다.

 

이 소설에서는 아주 다양한 인간관계의 면면들을 담고 있다. 심지어 주제조차 한 줄로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넉넉한 스펙트럼을 가진 듯하다. 그 폭만큼 독자가 사유할 여지가 늘어난다. 성장 소설임에는 분명하지만, 성장은 미성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도 다인종 가족이 존재하고, 더 늘 것이다. 결혼이란 방식이 아니어도, 인종, 성정체성, 국적,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이다. 필요한 포용력은 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이 작품은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가능할까.

 

차별은 대개 복합적이다. 누구의 정체성도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출신지, 학벌, 부모의 경제력, 직업, 경력, 거주지, 성별... 이 우연한 조합으로 정체성들은 만들어지고, 해당되는 사회 조건에 따라, 구성원들의 욕망이 반영되는 순서에 따라, 주류와 비주류로 나뉜다.

 

흑인 성소수자라는 정체성들이 결합해서 생기는 새로운 차별에 대한 이야기하는 무척 세심하고 자연스러운 설득력이 있다. 누구나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을 깨달아 간다는 것도 비대면이 점점 더 편해지는 시절에 새롭게 뭉클했다. 타인에게 힘이 되고 싶을 때 말하는 법, 슬픔을 지닌 채 살아가는 유가족이 치유되는 방식을 고민하게 해주었다.



 

궁금한 우리 집 십대들의 독서 감상평은 듣기 전이고, 어쩌면 한참 더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신들만의 것으로 정리될 지도 모르지만, 차별과 혐오가 가시적이고 심지어 권력을 획득할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회의 나이 든 독자로서 무겁게 희망하고 깊은 감사를 느낀다.

 

이제 나는 무언가를 멋지게 성취하는 이들보다, 무언가를 잘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대단해 보인다. 오래된 편견, 과거를 핑계 삼은 버릇, 수명이 다한 의미와 가치 등과 결별하는 결단력이 부럽다. 포기 후에야 새롭게 추구할 수 있으니. ‘내게 익숙한 것들에 대한 방어와 고집은 당사자와 모두의 불행이다.

 

한국에 디즈니 영화 투자자가 이렇게 많았나 싶게, 주인공 생긴 게 마음에 안 든다고진지해서 더 웃기게 떠들어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볼 생각도 없고 권할 생각도 없지만, ‘제 생각에그렇다는 모든 가해의 언행이, 복합 차별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부끄럽다.

 

! 킹과 잠자리 관련 영상. 사계절 TV, 호호책방

https://youtu.be/46s7CkirZ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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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풍경 - 문자의 탄생과 변주에 담긴 예술과 상상력
이승훈 지음 / 사계절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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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 부모 세대는 동몽선습부터 배웠다고 하는데, 나는 좀 늦게 시작했으니 천자문으로 시작하자고, 나와는 무관한 한문 공부 계획이 생겼다. 할아버지께 천자문 선물을 받고 조금 즐거웠고, 입학 한 초등학교에서도 붓글씨 수업이 있어서 그러려니 했다.

 

한자 수업을 받은 세대라서, 한자를 먼저 익히고 한문을 배우는 것이 맞는지, 중국어 원음과 원전은 아니지만, 언어와 문학은 이야기로 책으로 접하는 게 맞는 건지는 좀 헷갈렸다. 뭐든 시험 과목이 되면 흥미가 사라지는 법이고, 수업이 따분하면 더 그렇다.

 

내 최초의 질문은 천지현황에서, 어째서 하늘이 검다고 표현한 것이냐는 거였는데, 물리학을 배우기 전까지 아무도 대답을 주지 않았다. 우주는 어둡고 춥고 지구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없는 공간이다. 대부분의 깊은 공간 속에 찰나로 존재하는 빛들.

 

30대에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한자공부도 함께 시작했다. 기간과 목표가 있어야 잘 따라하는 수험세대라서 한자능력시험 준비를 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들었다. 놀랍게도 엄청 재미있었다. 표의문자라는 건 역사와 사회를 담은 퍼즐과도 같았다.

 

활용할 기회가 적어 다 잊고 필기 노트들만 남았지만, 어쨌든 시험 한정 공부가 그토록 재미있었으니, 더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는 얼마나 더 대단한 내용일지 설레고 기대가 컸다. 제목도 멋지다, 한자의 풍경. 한자라는 언어의 풍경. 언어 문명의 풍경. 인류의 풍경.

 

추상화된 문자 기호를 읽고 인식할 때 활성화되는 이 영역을 스타니슬라스 드앤은 문자 상자(letter box)라고 부른다. (...) 문자의 차이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뇌의 같은 위치에 문자 상자가 있다. (...) 우리가 문자의 서체나 크기의 차이를 무시하고 모두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도 이 문자 상자 덕분이다.”


 

체계와 정서 모두를 챙긴 역작이 이 책이라고, 세상을 풍경을 바꿔달라는 엄청난 응원 메시지도 받았다. 525일부터 읽기 시작해서 열흘 간 일독을 했다. 다행히 함께 읽는 모임이 생겨서 다시 즐겁게 완독해볼 예정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정좌해서 단정한 기분으로.

 

갑골문 존()자는 술잔을 두 손으로 받치는 모습이다 (...) 존경(尊敬)이라는 단어는 두 손으로 공손히 술잔을 잡고 제사를 지내는 모습에서 비롯했다.”


 

저자가 평생 공부한 지식을 한 권의 책으로 나눠주었으니, 책의 형태를 한 보물이다. 해박함도 통찰도 문명 해설사처럼 전해주는 설명도 모두 최고다. 특히 2023년이란 현재에 지치고 질리고 소비된 독자라면 더 의미 있을 언어의 기원을 향한 긴 여행이다.

 

갑골문과 금문의 자의 머리에는 신()이라는 독특한 표시가 있다. 앞서 밝혔듯 자는 고대 형벌 가운데 얼굴 등에 문신을 새기는 묵형을 집행할 때 쓰는 날카로운 송곳을 나타낸다. 의 머리에 이 있음은 길들여 순종케 했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 용이... 상상의 동물이 아니라 실존했단 말인가...

 

엄청 재밌다. 한자를 몰라도 관심이 없었어도, 그런 건 다 상관없다. 묵독의 독서 방식 대신 어릴 적엔 수업 시간에 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았던 강독을 하고 싶을 만큼. 촘촘하게 다 소개하고 싶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니 읽어 보시기를 힘껏 권한다.

 

! 사계절 TV에 한자의 풍경 특강 자료가 있습니다. 책을 먼저 보시고 감탄하시기를 저는 권하고 싶지만, 강의를 듣고 흥미를 가지시는 것도 좋겠지요. 막연한 SNS 헤맴보다 훨씬 재밌습니다. https://youtu.be/D5pd2DDIt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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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단어들
이적 지음 / 김영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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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되기 전에 단어들을 만났고 이야기를 들었다. 책에 담긴 단어들 중에는 한번, 두 번, 세 번, 여러 번 만난 것들이 더 많다. 그때는 재미있고 기발해서 유쾌했던 이야기가 다음엔 폐부를 찌르는 아픔이기도 했고 이제는 서글픔이 되기도 한다.

 

나쁜 말을 하고 나면 나중에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상처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단어모음집도 단어사전도 아닌 단어로 촉발된 이야기들이며, 생각보다 여러 편의 이야기들을 나는 읽지 못하는 시를 만난 것처럼 멈춰서 거듭 읽고 얼마간의 문해를 유예해두기도 했다. 뻔하지 않은 것, 반가운 놀라움은 고마운 돌발이다.

 

이것은 선의에 기댄 시스템이라기보단 어떤 믿음,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힘에 기댄 시스템이다. (...) 민주주의라는 이야기를 지탱하기 위하여.”

 

그러니까 이 이야기들은 저자의 신간 연재를 미리 읽은 것과도 좀 다른 숙성을 거쳐왔고, 이후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는 대표 공식처럼 쓰는 문장, 언어가 사유라면, 단어들은 사유의 표현형이자 시대에 따라 변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변 보는 일이 하늘을 나는 일만큼이나 무시무시해졌다.”

 

고요하지만 치열하게 뭔가를 관찰하거나 생각을 다듬는 사람, 그런 풍경, 그런 몰입, 그런 기록이 역시 좋다. 떨린다. 갈수록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어렴풋이 흐려지니, 그런 표현들이 활용된 이야기들을 만나 더 좋다. 잘 통하는 낯선 이와 나눈 짧은 대화가 기뻐서 기쁜 것처럼.

 

눈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면 동물을 학대할 수 있고 마침내 폭력은 자신을 향할 거라는 공포도 입에 담지 않았다. 단지 둘 사이가 더 깊어지기 전에 큰 눈이 와준 게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엄밀해지고 치밀해지려면 연필과 펜촉만 다듬어서는 안 된다. 정신이 그런 훈련을 견디고, 아무도 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런 훈육을 거쳐야 한다. 게으르고 대강 살 핑계는 많고 많다. 나는 대개 매끈한 합리화에 재능이 있는 편이다. 그러니 그렇지 않은 이의 글은 늘 반갑다.

 

어느 쪽 입장이든 개떡같이 말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으니, 찰떡같이 말해주세요.”

 

상황이 변했다고 달라지면 안 되는 것을 잊고 말았다. 마침 그런 이야기가 있어 얼른 다시 기억에 채워 넣는다. 남이야기가 아닌 경우가 더 많은데, 그 작은 차이를 여전히 남의 일이라 여기는 어리석은 나. 눈을 뜨고도 눈 먼 어리석음.

 

4일 연속 휴일에 느긋해진 틈으로 짜증이 솟았다. 어쩌면 조바심이 차오르는 길로 함께 흘러 나왔나보다. ‘왜 말을 못 알아듣는가는 내 불만은 내 설명이 부족한 탓일 것이고, 상대가 짜증을 부리고 제 방에 들어가며 상황 마무리를 회피하는 무례함은 과거의 내 행태일지도.

 

성실하게 화를 내고 끝까지 다퉈보자.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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