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뿌리째 흔들리지는 마라
오수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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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늘 그래야하지만, 지금부터는 더욱 정리도 하면서 삶을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더 갈급하다. 조바심이 불안이 되지 않게 - 어차피 게을러서 열심히는 안 되지만 - 생각나는 것들 중 하나씩만 매번 미루지 말고 해보기로 한다.

 

꽤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주변이 어수선하고 남은 것들이 적지 않다. 처음 만들 때 숙고해서 만들지 않은 여러 법들도 특별법이니 개정이니 시행령이니 하면서 내용이 바뀌서 마무리했다고 생각한 일도 불완전해지고 마니 사회도 시스템도 참 부박하다.

 

사람들을 속이는 괴담 혹은 거짓말들 중에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지고 현명해지고 감정 조절이 쉽다는 것도 있다.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그저 늙을 뿐이다. 감정 조절은 저하된 체력을 뚫고 나와 더 날뛴다.

 

더구나 누르고 외면하며 살라는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조건이라면 더 아슬아슬해지고, 앞으로도 더 참을 일이 많다고 생각하면 어질어질하다. 각자의 관리법은 다르겠지만, 이런 괴로움과 고단함을 위해 문학이 존재한다. 대신 화내고 울고 처벌하고 죽여도 주는.

 

아침에 읽은 제목이 마음에 드는 시집이 여러 조언을 건네는데 발끈하며 반항심이 들지는 않는다. 문자와의 거리가 좋다. 어떻게 하겠는가. 계산도 어려운 확률로 태어나 버린 것을. 내게는 삶이 주어졌고, 아주 짧은 삶이고, 살아가는 거다. 엉망이 되더라도.


 

오늘은 인간이 거의 멸종시킨 것도 같은 벌의 날이라 시집 속에서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들과 지구 자연을 만나다가 벌에 관한 글을 찾아보았다. 담담하고 흔들림 없어 보이는 삶과 품위 있고 고독한 죽음에 인간으로 살고 죽는 일이 민망해진다.


여름철에 태어난 일벌의 수명은 약 한달이며, 겨울철에 태어나 일을 적게 하면 최대 6개월까지 살 수 있다. 일벌은 날개를 단 성충이 되면(우화) 일을 시작하는데 나이(태어난 일수)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르다. 초보 때와 경력자의 일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초보 일벌들은 벌집 안에서 주로 일한다고 해서 내역봉이라고 부른다. 우화한 지 3~5일 된 어린 내역봉은 선배 일벌들이 꽃에서 따온 꿀과 화분을 타액으로 반죽해, 부화한 지 46일 된 동생 애벌레들에게 먹인다. 우화한 지 610일 된 일벌은 로열젤리를 분비해 갓 태어난 애벌레들에게 먹이고, 1012일 된 일벌은 밀랍을 분비해 집을 짓는다. 12일째가 된 내역봉은 자신들의 벌집 주변에 어떤 자연물이 있는지, 집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첫 비행(기억비행)을 시작한다. 우화 15일이 지나면 이제 집 밖에서 일하는 외역봉이 된다. 드디어 꿀과 꽃가루, 물을 가져오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외역봉 중 고참들은 벌집 입구에서 침입자를 막아내는 경비 업무를 맡기도 한다.

 

자신의 소임을 다하던 일벌은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판단되면, 벌집에서 2~3떨어진 곳으로 날아간다. 집단의 페로몬이 닿지 않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혼자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벌집 안에서 죽으면 동료들이 자신의 사체를 치워야 하니까 이런 수고로움을 덜기 위한 마지막 비행이다. 일벌의 모든 죽음은 고독사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40570?cds=news_media_pc

 

인간이 곤충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은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고 인간보다 오래 존재할 것이다. 날개 달린 벌들이 인간 탓에 죽는다 해도 이미 날깨를 떼어버린 벌들 - 개미들 - 이 땅 속에서 굳건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태주 시인의 맑은 하루를 읽고 필사를 하고 눈물이 났다는, 그래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지천명을 경계 삶아 조금 다른 삶을 걷기 시작했다는 시인의 글이 천명(天命)’을 모르는 지천명에 다다르고 있는 내게 많이 들렸다.


 

천천히 천천히 살아보라는 시집을 놓고, 촘촘히 엮어진 지구의 여러 삶을 생각하며, 게으름을 떨치고 힘을 내어 시급한 분갈이를 몇 개 해본다. 분갈이야말로 폭력적으로 뿌리를 흔드는 일이다. 미안하지만 매번 잘 적응해서 조금 더 편안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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