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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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에 담은 정치철학적 개념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번역본의 제목. 그 점이 아쉽다.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2020)

  

<세계지식포럼> 덕분에 미뤄뒀던 책을 일단 펼쳐 보았다아주 오래전 대학원 강의에서 만난 존 롤즈의 정의론도 띄엄... 띄엄... 겨우 떠오르고 여타의 지식정보도 생각도 산만하단 생각에 일독을 결정했다.

 

마침 대선 정국으로 들어선 한국 정치계에서는 능력주의에 관한 어떤 기본적인 이해에서 출발한 건지 모를 능력주의를 언론 패널 이외에 별 다른 경력도 없는 야당 대표가 주장하여 몹시 빈정이 상해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만난 미국 자유주의자들의 논문에는 참 이상한 예시들이 많았다언제나 무언가 부족한 상황에서 골고루’ 나누다 다 죽는 것이 더 나은가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살리는 게 옳은가뭐 그런 논조.

 

듣다 지쳐서 왜 매번 이러냐고이건 원하는 답을 위한 설계된 질문 아니냐고왜 세상을 보는 눈이 이 따위(?)냐고 발작하듯 말이 튀어나온 적이 있다그리 친하다는 생각도 동류란 의식도 없던 교수님이 우리랑은 논조의 전제가 많이 다른 것 같아.”라고 말해서 놀랐다.

 

어쨌든 나는 그런 류의 분석도 질문도 결론도 아주 별로이다만인의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제한된 자원을 획득하는 방법은 자신의 노동력 혹은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고그런 행위로 온전히 사적인 소유물로 만드는 성취만이 정당하다는 쪼잔한 논리.

 

현실에서 여전히 큰 목소리를 가진 능력주의는 물론 이런 소박한 수준이 아니다샌델이 지적했듯이 각자의 재능에 따라 뭐든 주는 대로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다면재능이 뛰어난 이들이 획득한 성공에 대해 사회는 아무런 간섭을 할 수가 없다.

 

그 논리가 성립하려면 성공의 모든 공덕이 주체 혼자의 재능에 한정한 이라는 확인이 필요하다물론 그런 일은 없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 더 현실적인 분석이다어쨌든 능력주의에 따르면 덜 성공한 사람들을 배려할 이유는 전무하다따라서 능력주의를 믿는신념으로 삼은 이들에게 연대는 무의미하다.

 

실생활 공간에서 공중 부양해서 아무 도움 없이 뭔가를 성취한 뒤 다시 착지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샌델은 능력주의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답은우리가 설령 죽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자수성가적 존재나 자기충족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고 운이 좋아 성공했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그것 이외에 인류 전체가 모두 다른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현상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국적사회지역가정가족학교친구 그리고 살아가면 영향을 주고받는 모든 것은 우연의 산물들이다.

 

그러니 국가와 사회는 모두 다른 출발선을 세심하게 살펴 잘 맞춰 주고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는 그런 상냥한 역할을 하면 이상적일 것이나그런 호시절은 인류가 전쟁을 멈춘 적이 없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그러니 결심만 하면 바뀔 수도 있는 개인들이 좀 더 겸손하고 관대하면 좋겠다.

 

능력을 이유로 부디 타인에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으면 한다각자의 능력의 차이란 것도 알고 보면 별반 대단하지 않을 뿐더러어떤 인간도 능력의 우위를 영원히 유지할 수 없다연령에 따라 변하는 체력은 물론이고 아이들과의 지력 대결에서 늘 이길 수 있는 어른도 없다.

 

어떻게 살 것인지도혼자 뭘 성취하는 것도 힘들지 않은가그러니 비교비난순위탈락배척하는 세상 말고 좀 더 다정한 공적 삶을 상상하고 만들어 나가는 일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평소 게으르다는 말을 너무 자주 하는 내가 하는 말은 설득력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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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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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교수의 책입니다유학 중에는 피할 수 없어 라틴어 공부를 잠시 하긴 했지만 그리스어보다는 쉽다는 위안 살면서 그것도 한국에서 라틴어 책을 읽고 강의를 막 듣고 싶고 저자의 팬이 될 줄이야최고로 유쾌한 뜻밖이고 우연이고 조우였습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믿지 않지만삼위일체론을 연구하신 큰 이모부 논문도 재밌게 읽었고존경하는 수녀님과 추기경과 교황도 계시고동네가 가까웠으면 그 교회에 다녔을지 모를 무척 멋진 목사님도 내내 좋아하고스승처럼 여기는 불교계 승려도 계시고존경하는 유학자도 계시니어떤 의미로 저는 무척 종교적인 무종교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류가 새로운 믿음을 받아들였던 건 궁극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 뭔가 좋은 점이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이미 무엇에든 믿음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는 마음에는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안식처에 대한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겠지요.”

 

한국적 특색을 지닌 종교계의 모습에 때론 충격을 받기도 하고 동의할 수 없는 주장들도 만나지만한동일 교수께서 하시는 이야기는 불안도 두려움도 없이 다 반갑게 듣고 싶습니다공감과 동의를 기대했는데그 이상의 놀라운 이야기들을 만나 다시 한 번 반합니다참 어려울 이야기를 참 쉽게 들려주십니다.

 

교회는 대중이 교회와 멀어지게 된 이유에 대해 세속주의 때문이라고 말하지만사실은 박해와 시련 때문이 아니라 교회 스스로가 사람들을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한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 인간은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신에 대해서조차 조작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런 모순된 상황을 신앙으로또 종교로 받아들이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실한 믿음만 가진 이들이 아닌 목사 혹은 신부라는 타이틀을 가진 종교인들의 지위에 관해 설명해주시면서 믿지 않는 혹은 믿지 못하는 이들이 사고하는 방식을 분석하듯 명쾌하고 친절하게 들려주십니다물론 진심을 담아 잘 전하고 싶으신 이야기 주제는 종교와 믿은 이들에 대해서겠지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종교를 밝히고 큰 성당이나 교회사찰을 비롯해 각자 자기가 섬기는 신에게 경배 드리는 성전을 찾아갑니다기도하거나성경이나 불경을 필사하기도 하지요그러나 그 같은 모습 자체가 그를 종교인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 태도가 그 사람을 보여줍니다자기의 종교적 신념이나 가르침이 드러나는 어떤 행동은 우리 사회와 이웃에 그 종교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종교인들에게 아무런 불편함을 주지 않는 종교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책은 최고로 강력한 전도서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라틴어 수업>에 홀리신 분들은 언제가 되든 꼭 읽게 되실 책일 지도.



....................................................

 *     O vos omnes qvi transitis per viam,

attendite et videte si est dolor sicvt dolor mevs.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여,

나의 고통과 같은 아픔이 있다면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

 

이 글귀 속 비데테videte’라는 말에 주목해봅니다이 말은 보다라는 의미의 비데오video’의 명령형입니다이 동사에서 바라봄직관을 의미하는 명사, '비시오visio'가 파생하고이 명사는 영어의 비전vision’이 됩니다고통 속에 있던 예수는 우리에게 보기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보라고 강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바라봄viso’에서 시작됩니다개인의 고통도사회의 아픔과 괴로움도 그 해결을 위한 첫 단계는 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여기가 모든 이해의 출발점입니다우리는 국적성별나이종교를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를 수 있지만인간이기에 분명히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우리가 주의를 기울여 바라봐야 하는 것은 차이가 아니라 같음입니다.

 

나아가 바라봄이 늘 타인을 향한 것이라면 타인의 단점잘못된 점만 쉽게 보게 되어 결국 상대를 탓하는 마음이 생깁니다그래서 타인을 바라보는 만큼 더 절실히 주의를 기울여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세상의 조화로운 질서에 관해 연구하려면인간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진실하고 치열하게내면을 바라보는 눈앞에 등불을 켜서 들어야 합니다들추고 싶지 않은 아픔이나 불편한 양심혹은 잘못한 것에 대한 회한과 고통은자기애와 만나면 이기적인 마음으로 변하기 쉽습니다또한 이런 감정들은 회피에 능해 자꾸 안으로 숨어들기 때문에 스스로 자주 불을 밝혀 바라봐야만 합니다.

 

질문하는 인간에게는 분명히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답이 온다는 것을 믿으며, ‘나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사실 제게는 정말 하기 어려운 일하기 싫은 일이 나의 부족함과 실패를 마주하는 것이었는데요저는 이제야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실패와 실수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려야 합니다한없이 작게 부서지고 무너지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우고 감추려고 해도 그 기억은 결정적인 순간에 더 선명하고 또렷하게 다가와 저를 괴롭혔습니다무엇보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흘러도 실패했던 그 어느 한순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고통스러웠지요거기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느꼈습니다그러니 살기 위해서라도 그 순간에서 벗어나야만 했는데그러려면 나의 실패와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모든 문제 해결은 마주하기 싫은 것을 마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그렇게 보기 싫은 것을 마주해나가는 것이 삶의 여정이며 일상의 진보가 아닐까 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돌아가신 부모님과 그 연배의 세대가 존경스러울 때가 많습니다그들이 어떤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 아니라각자 어떻게 주어진 삶을 살아냈을까에 대한 경의라고 해야겠지요어려운 시대에 성장한 것에서부터 직장을 얻고결혼을 하고아이를 낳아 키우고장성한 자녀를 결혼시키고자신의 노년을 맞기까지그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을 겁니다어디에도 어려움을 호소할 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삶의 무게를 지고 걸어온 분들입니다.

 

어찌 보면 인간은 각자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 있다는 점에서 평등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막을 걷는 사람은 사막에 난 길을 보고 걷지 않는다고 합니다바람이나 비동물 때문에 변하는 길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길을 걷습니다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 바라보는 것저는 그것이 아마도 사막에서 바라보는 별과 같지 않을까 합니다어떤 별을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우리가 가는 걸음의 방향은 달라질 겁니다그 별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그런데 그 길잡이가 늘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지켜야 할 누군가사랑하는 누군가존경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인생의 방향을 찾아가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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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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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모임 무산되고 혼자 읽은 책 2>

 

제목을 보는 순간 반발심이 감정적으로 불쑥 올라오지만곧 수긍하고 마는 현실에 다름 아니다측정할 수 없는 모든 정성적인 것들도 정량화 시켜야만 그 가치를 일부라도 인정받는 시스템은 근대 이후로 탄탄하게 구축되어 왔다.

 

우리는 무심코 생명의 가치를 절대시하고 신비화하기도 하며 위무하고 살지만현실의 생명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촘촘하게 세심하게 가격이 매겨져 있다.

 

해당 생명체를 구성하는 모든 태생적 조건사회적/사회화된 조건은 물론이고현재 연령과 건강상태 등등 더 이상 분석할 정보가 남지 않을 때까지 가격 측정의 과정은 이어진다.

 

어느 국가인지노동자가 조합에 가입되어 있는지화이트칼라인지 블루칼라인지어떤 업계인지와 같은 요인들이 모두 추정치에 영향을 미친다각기 다른 연구에서 매우 상이한 추정치가 도출된 가운데 2000년 미국의 비용편익분석 전문가들이 국내 연구를 바탕으로 합의한 생명 가치는 1인당 610만 달러였다.”

 

코로나 판데믹 이전에도 일 년에 천 명이 넘게 일하다 죽임을 당하고 영원히 퇴근하지 못하게 된 분들은 원청회사에서 열심히 찾아 간신히 법의 테두리에 맞춘 가장 싼 보험금이 가격표로 붙어 있다.

 

어느 대기업에선 일인당 500만원으로 맞췄다는 보도를 보았다그렇구나그렇게 생각하는구나모든 인간은 동일한 가치를 지녔다는 말은 이들에게는 단 한 번도 유의미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작 읽고 싶었던 책을 심각하게 공부하듯 읽고 필사하며순진하고 무지한 채로 안전하게 남아 있어 보려던 가림막들을 마저 털어낸다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하지만 확실한 진실이다.

 

인간 생명에 일상적으로 가격표가 매겨진다는 사실 


이러한 가격표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이러한 가격표는 투명하지도 않을 뿐더러 공정하지도 않다는 사실 


이런 불공정함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가격표가 낮게 책정된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고 높은 가격표가 붙은 사람들에 비해 더 큰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적절한 생명 가격표를 책정하는 것을 논의 할 때에도 그 생명의 가치는 순전히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현재의 1000달러가 10년 후의 1000달러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은 매우 명백하지만과연 오늘날의 1000명이 10년 후의 1000명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는가 


생명 가격표가 일상적으로 매겨지는 것은 현실이므로 우리는 생명가치의 평가 방법을 반드시 직접 결정해야 한다. 


생명 가격표는 대개 불공정하다생명에 가격이 매겨질 때우리는 반드시 가 가격표가 공정하게 매겨지도록그래서 인권과 생명이 언제나 보호되도록 애써야 한다.

 

비극을 애도하고 이후의 보상 문제에까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9.11 이후 사망한 약 3000명의 희생자들에게도 모두 가격표가 붙었다금전적 보상에 반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단지 애도할 때는 희생당한 모든 분이었다가 보상 절차에는 갈가리 찢는 행태가 생명에 대한 올바른 존중과 대접인지 황망할 뿐이다.

 

금액은 25만 달러에서 700만 달러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매우 컸다.”

 

건강에 가격표를 매기는 일은 생명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매우 복잡하고 논쟁적이다. (...) 운전 교습 강사는 만약 차로 보행자를 치었을 때 돈을 아끼려면 후진했다가 마저 일을 끝내라라며 매우 잔인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9.11 희생자 보상기금도 부상자에 대한 보상금이 사망자 보상금보다 많은 경우가 있어 운전 교습 강사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이 경악스러운 내용이 현실을 가장 선명하게 비춰주는 풍경이 아닐까 한다.

 

인간의 생명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이제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가격을 찾기 위해선 인간은 내가 이해하는 개념 범주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역설적이게도 그런 의미로 모든 인간은 비로소 다 다르다는 공식 인정을 받은 셈이다.

 

어차피 가격표가 낙인처럼 부여되는 세상이라면 적어도 계산 기준과 과정이 공정하도록 확인은 잘 해야 한다그런 방식으로라도 인권과 생명은 좀 더 존중받고 보호 받아야 한다. 500만 원짜리 생명보험을 합의도 없이 원청 기업 혼자 결정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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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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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모임 무산되고 혼자 읽은 책 1>



글로서 과학을 잘 전달해주는 과학자들과 책들이 많아지는 것이 나는 무척 좋다적어도 현대 문명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과학도서들이 성경만큼은 많이 팔리고 읽히기를 바란다.


간혹 어떤 과학자는 언론인으로 변신한 듯도 하지만호프 자런과 같은 이는 엄정한 과학자이자 인문학적 통찰과 감수성을 함께 가진 귀한 저자이다잘 읽고 배울 수 있는 글을 써서 그가 발견한 과학적 지식이 널리 알려지는 일이 반갑다.


더 이상 SF의 소재도 아니고 미래의 일도 아닌 당대에 닥친 문제인 환경 문제에 대한 입장과 심정(?)을 최대한 떠올리며 혼란하고 불명료한 것들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공부하듯 읽었다.

 

인류의 10퍼센트에 의해 이루어지는 엄청난 식량과 연료 소비로 인해

나머지 90퍼센트의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만들어내는

지구의 능력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고 우리 몸은 시들어가고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찾아온 죽음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느라 시간을 쓰고 있다.

음식물을 쓰레기 매립지에 던져 넣을 때 우리는 그냥 칼로리 덩어리를 던져 넣는 것이 결코 아니다다른 사람의 생명을 던져 없애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풍요에 대한 무자비한 추구에 이끌린 결과,

우리가 공호하고 소모적이고 명백한 빈곤의 한가운데로 향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세상의 모든 결핍과 고통,

그 모든 문제는 지구가 필요한 만큼을 생상하지 못하는 무능이 아니라

우리가 나누어 쓰지 못하는 무능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식량과 안식처깨끗한 물을 누리는 집단이라는 사실은 지금껏 우리가 위태롭게 만들어온 세상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이런 내용을 알리는 것이지,

사람들을 그저 두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

두려움은 문제를 외면하게 만들고,

정보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한다.”

 

다른 무엇보다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희망을 가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최초로 진지하게 환경 문제에 대해 배우고 고민한 지는 오래되었다주변에서 왜 쓰레기 치우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냐고 궁금해하던 걸 생각하면 내게는 충분히 격세지감으로 느껴진다.

 

코로나 판데믹이 시작되고신종바이러스로 인한 감염 위기가 기후변화에서 초래되었다는 의견이 80%를 넘었을 때는 갑자기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난 것인지다른 사람들 다 알고 있던 걸 나만 모르고 있었는지 무척 놀랐다.

 

인지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믿기 때문에 완벽할 수는 결코 없지만 환경문제에 대한 그야말로 뉴노멀한 합의와 정책과 실천과 산업에서의 변화에 가속도가 붙으리라 기대했다.

 

변하고 있다분명히그러나 충분하지 않은 듯해 두렵다인간이 손 댈 수 없는 지구의 물리화학적 반응은 거세게 이어질 것이다지구생태계가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자체적인 평형 상태를 이루려는 반응이기 때문에 막을 길은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은 가속도를 늦추는 것변화의 폭을 줄이는 것이다할 수 있을까늦지 않게충분히 빠르게


SNS상에서 고기를 굽거나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사진들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고 한다다행이다사진만 안 올리고 고기도 먹고 일회용품도 쓸 거란 비관도 있지만노출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많이 보면 당연한 일상이라 받아들이니까.

 

판데믹 우울만이 아니라 기후우울도 있다실제 상황은 더 극단적이다평생의 자산을 잃고 다치고 죽은 이들도 많다안전지대는 없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저울이 하나 있다지겨워서 지쳐서 귀찮아서 쉬운 선택을 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양팔저울이다내가 한 선택으로 누리는 즐거움과 고통의 무게를 가늠해본다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면 답이 보인다다행히 숫자에 잘 반응하는 인간 유형이라 덕분에 종종 스스로를 구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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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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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런던에 머물다 독일로 바로 갈 일이 생겨서 눈에 띄는 여행사Travel Agency에 들어갔다상냥한 직원분이 반갑게 맞아 주셨는데이런…… 런던 토박이인 듯한 발음한국에서는 서울말을 표준말로 정했지만영국 영어는 행정수도 거주민들의 말에 언어학적 위계를 부여하지 않는다표준말이란 자체가 없기도 하지만런더너Londoner의 발음 특징들이 있는데받침 발음을 잘 안 한다거나 (. book : 부우~. 이렇게 들린다), 개인차까지 더해져 모음 발음이 다르거나... 다양하다. 그래서 그 직원이 활짝 웃으며,

 

“Would you like to book to die*?” 이렇게 물었을 때는 당황했다투 다이로 들림의미는 today. 

 

(나 혼자 생각) ‘언제 죽을 지 예약할 거냐고 묻는 건가여긴 어디?’ “Could I?” (바삐 생각) ‘여기선 죽는 걸 예약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는 더 밝게 웃으며 추가 질문을 하였다“Certainly, one way or return?” (진심 놀람!) ‘죽기만 할 건지죽었다 살아 돌아올 건지 묻는 건가요?’

 

뜬금없이 이런 추억 얘기를 하는 것은 이 책에 편도 탑승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살 임무를 수행하려 왔다. (...) 이번 임무에 자원했을 때 나는 이 모든 사정을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그러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내 두뇌에게는 이 정보가 새롭기만 하다나는 여기에서 죽는다혼자서 죽게 된다.”

 

두 시간 비행거리인 독일로 가는 게 아니라 헤일메리*호라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가서 지구를 구해야하는 임무이다무척 좋아하는 장르물 설정이라 읽으면서 질문과 궁금증이 폭증할 흥미로운 설정이다화성에서 감자 심어 캐 먹는 이야기로도 독자와 관객을 맘껏 홀리는 앤디 위어이니 안심(?)하고 읽어 본다

헤일메리Hail Mary : 미식축구 용어경기 막판에 역전을 노리고 하는 패스에서 유래한 말.

 

탑승한 인원 중 두 명은 사망했고 살아남은 주인공은 기억상실증에 몸도 자유롭지 못하다다행히 돌보는 로봇이 있다지구를 구해야 한다고 해놓고 이렇게 답답한 출발이라니덕분에 필력과 구성력에 관한 저자의 자신감에 더 감탄하게 된다.

 

기억을 찾는 과정은 퍼즐 맞추기와 같으니 추리미스터리처럼 사건과 상황이 짜 맞춰질 것이란 짐작을 한다그런 게임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더 기쁘다조각조각 찾아드는 주인공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들이 교차되며 영상매체가 주는 시각 정보처럼 이야기가 흘러간다재밌다.

 

박사님이라면 별을 먹고 사는 생명체를 뭐라고 부르시겠어요? (...) 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어원을 애써 떠올렸다아스트로파지*라고 부르면 될 것 같네요.”

 

아스트로파지astropharge : 별을 뜻하는 아스트로astro와 세균을 숙주세포로 하는 바이러스를 의미하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의 합성어파장 25.984미크론의 적외선을 방사하면서 빛의 운동량을 이용해서 태양과 금성을 오가고 있다.

  

그러니까 이 미생물이 지구 위기 유발자인 것이다태양 에너지를 엄청 나게 흡수해서 지구 온도를 10~15도 가량 떨어뜨리게 된다현실의 우리는 온도가 몇 도나 올라갈지 불안하게 지켜보는 중이라 남일(?) 같지 않아 조금 괴로웠다그래도 지구에 함께 사는 인간들의 활동이 아니고 외부 요인이나 물리치러 나갈 수 있다는 점만은 부럽기도 했다.

 

기후학자들은 앞으로 30년 안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해 (...) 30년이요엄청 나중이네!”

 

소설 내에서 과학자들이 예측한 기한이 현실의 기한과도 비슷해서 또 한 번 덜컹한다그래도 현실의 인간은 위기감이 없이 대범하기만 하니 소심하고 겁이 많은 나는 거의 매일 무척 두렵고 괴롭다.

 

박사님을 포함한 세 사람은 타우세티로 가겠죠나머지 우리는 지옥으로 가요더 정확히 말하면 지옥이 우리한테 다가오는 거지만.”

 

만약 내게 주인공과 같은 선택의 기회가 있다면 어떤 결심을 하게 될까나를 제외한 지구와 지구에 남은 이들을 구할 일말의 가능성을 믿고 나는 죽을 것이 확실한 우주로 나가게 될까아니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서서히 죽어갈 가능성이 더 높은 지구에 남게 될까.

 

나는 아이들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30년 뒤면 이 아이들 모두가 40대 초반이 된다이 아이들이 그 모든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 이 아이들은 (...) 세계 멸망이라는 악몽 속에 내던져진다이 아이들은 제6차 대멸종을 겪게 될 세대였다나는 배 속이 꽉 뭉치는 기분이 들었다나는 아이들로행복한 아이들로 가득한 교실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 그중 몇 명은 문자 그대로 굶어 죽을 가능성이 컸다.”

 

주인공은 과학 선생님이다직업인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제대로 대접해주고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는 선생님이다지나친 이상화를 한 것일 지도 모르나나는... 교육자는 미래세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지 귀찮아하고 무시하고 미워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와 배경이 개인으로서의 교사나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하지만 결국 교육자는 그런 부조리까지 이해하고 파생된 분노를 아이들에게 돌리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다또한 교육자는 가장 마지막까지 절망과 포기하지 않는 그런 이들이어야 하지 않을까그것이 교육의 합목적성과 부조리하지 않게 설명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가 아닐까 한다.

 

사태가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누군가는 계속 우유를 배달해야 한다. (...) (외계의 생명체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는세계 멸망을 한 세대나 두 세대쯤 앞두고 있는 상황도 그랬다나는 아이들 앞에 서서 그 애들에게 기초과학을 가르쳤다이 세계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지 못한다면 세계가 존재하는 의미가 뭐겠는가?”

 

주인공에 대해 배우고 나니 책 곳곳에 담긴 기초과학실험과 같은 지식정보들이 다정하고 친절한 수업으로 느껴진다지구 멸망이라는 서늘한 비극과 대척에 선 것이 이런 작은 온기라는 것이 또한 감동적이다중무장을 한 초능력 탑재 어벤져스가 등장했다면 얼마나 뻔하고 지루했을까.

 

우주선 이름이 소박하고 귀여웠던 것도주인공 직업이 평범한 것도감자보다는 훨씬 멋지고 의지가 되지만동료인 외계인 로봇조차 순박한 지능 수준의 작고 선량한 존재 로키였던 것도 오히려 더 대담하고 멋지다작가의 프로젝트는 야심만만한 거대 주제를 담고 있으니까.

 

700쪽 가까이 펼쳐진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도 믿지 않을 지도 모를 존재의 평범함선량함성실함선의애정희망협력연대이다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기적과 구원이라는 간절한 기도이기도 하다.

 

저건 외계의 우주선이다. (...) 인류는 우주에 혼자가 아니다.”

 

로봇이 내게 손을 흔든다! (...) 나도 마주 손을 흔든다로봇이 다시 손을 흔든다.”

 

역사의 큰 변곡점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비슷한 분석과 결론에 도달한다고 한다특별하고 영웅적인 계기는 없었다고공통점은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분명한 선의를 가지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했다고여전히 유효하다면 참 좋겠다.

 

인터뷰에서 저자 앤디 위어는 우울증과 가난으로 고생했지만 항상’ 인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모르는 사람을 위해 구급차를 부르고 길을 비켜주는 일들인간이 서로를 돕는 일은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이라 보도 되지 않는다고그러니 인류는 지속적으로 미래를 더 좋게 만들고 있다고그렇게 믿는다고 했다.

 

나도 그의 믿음과 낙관에 동조한다아직 못 들었거나 미처 모르는 수많은 돕는’ 일들을 한 많은 분들에게 자주 감사하며 살아간다전작에서도 그랬고 막막한 공간에 주인공 한 명만 달랑 던져 놓고 살아남아 봐라~’ 이런 이야기를 즐기는, '주인공 처절하게 괴롭힘 전문' 저자인가 했는데 말랑말랑 보들보들한 SF라니.

 

경쟁과 싸움보단 협력과 연대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당신의 끈질긴 이야기에 설득 당했다이제 대답을 해볼까지구의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면외로움과 막막함을 스르륵 녹여 줄 동료 로키가 있다면 나도 헤일메리호에 탑승하고 싶다그리고 주인공처럼 여행을 끝마치지 못한 동료들을 우주로 보내 주고 싶다.

 

당신의 몸을 별들에게 맡깁니다.” 이렇게 명복을 빌면서.

 

혹은 다른 동료가 나를 우주로 떠나보내며 같은 기도를 해주어도 좋겠다귀향과 귀가를 위한 연휴가 끝나고, 늦은 밤에 어두운 우주를 떠올리며 최초의 고향을 향해 가는 상상도 나쁘지 않다인류에 대한 저자의 굳건한 믿음이 별처럼 꿈처럼 아련하게 빛나는 작품이다.

 

반전은 남겨 두었습니다안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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