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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평점 :
<책 모임 무산되고 혼자 읽은 책 1>
글로서 과학을 잘 전달해주는 과학자들과 책들이 많아지는 것이 나는 무척 좋다. 적어도 현대 문명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과학도서들이 성경만큼은 많이 팔리고 읽히기를 바란다.
간혹 어떤 과학자는 언론인으로 변신한 듯도 하지만, 호프 자런과 같은 이는 엄정한 과학자이자 인문학적 통찰과 감수성을 함께 가진 귀한 저자이다. 잘 읽고 배울 수 있는 글을 써서 그가 발견한 과학적 지식이 널리 알려지는 일이 반갑다.
더 이상 SF의 소재도 아니고 미래의 일도 아닌 당대에 닥친 문제인 환경 문제에 대한 입장과 심정(?)을 최대한 떠올리며 혼란하고 불명료한 것들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공부하듯 읽었다.
“인류의 10퍼센트에 의해 이루어지는 엄청난 식량과 연료 소비로 인해
나머지 90퍼센트의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만들어내는
지구의 능력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고 우리 몸은 시들어가고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찾아온 죽음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느라 시간을 쓰고 있다.
음식물을 쓰레기 매립지에 던져 넣을 때 우리는 그냥 칼로리 덩어리를 던져 넣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던져 없애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풍요에 대한 무자비한 추구에 이끌린 결과,
우리가 공호하고 소모적이고 명백한 빈곤의 한가운데로 향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세상의 모든 결핍과 고통,
그 모든 문제는 지구가 필요한 만큼을 생상하지 못하는 무능이 아니라
우리가 나누어 쓰지 못하는 무능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식량과 안식처, 깨끗한 물을 누리는 집단이라는 사실은 지금껏 우리가 위태롭게 만들어온 세상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이런 내용을 알리는 것이지,
사람들을 그저 두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
두려움은 문제를 외면하게 만들고,
정보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한다.”
“다른 무엇보다 한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희망을 가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최초로 진지하게 환경 문제에 대해 배우고 고민한 지는 오래되었다. 주변에서 왜 쓰레기 치우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냐고 궁금해하던 걸 생각하면 내게는 충분히 격세지감으로 느껴진다.
코로나 판데믹이 시작되고, 신종바이러스로 인한 감염 위기가 기후변화에서 초래되었다는 의견이 80%를 넘었을 때는 갑자기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난 것인지, 다른 사람들 다 알고 있던 걸 나만 모르고 있었는지 무척 놀랐다.
인지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믿기 때문에 - 완벽할 수는 결코 없지만 - 환경문제에 대한 그야말로 뉴노멀한 합의와 정책과 실천과 산업에서의 변화에 가속도가 붙으리라 기대했다.
변하고 있다, 분명히. 그러나 충분하지 않은 듯해 두렵다. 인간이 손 댈 수 없는 지구의 물리화학적 반응은 거세게 이어질 것이다. 지구생태계가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자체적인 평형 상태를 이루려는 반응이기 때문에 막을 길은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은 가속도를 늦추는 것, 변화의 폭을 줄이는 것이다. 할 수 있을까? 늦지 않게? 충분히 빠르게?
SNS상에서 고기를 굽거나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사진들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고 한다. 다행이다. 사진만 안 올리고 고기도 먹고 일회용품도 쓸 거란 비관도 있지만, 노출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많이 보면 당연한 일상이라 받아들이니까.
판데믹 우울만이 아니라 기후우울도 있다. 실제 상황은 더 극단적이다. 평생의 자산을 잃고 다치고 죽은 이들도 많다. 안전지대는 없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저울이 하나 있다. 지겨워서 지쳐서 귀찮아서 쉬운 선택을 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양팔저울이다. 내가 한 선택으로 누리는 즐거움과 고통의 무게를 가늠해본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면 답이 보인다. 다행히 숫자에 잘 반응하는 인간 유형이라 덕분에 종종 스스로를 구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