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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평점 :
<책 모임 무산되고 혼자 읽은 책 2>
제목을 보는 순간 반발심이 감정적으로 불쑥 올라오지만, 곧 수긍하고 마는 현실에 다름 아니다. 측정할 수 없는 모든 정성적인 것들도 정량화 시켜야만 그 가치를 일부라도 인정받는 시스템은 근대 이후로 탄탄하게 구축되어 왔다.
우리는 무심코 생명의 가치를 절대시하고 신비화하기도 하며 위무하고 살지만, 현실의 생명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촘촘하게 세심하게 ‘가격’이 매겨져 있다.
해당 ‘생명체’를 구성하는 모든 태생적 조건, 사회적/사회화된 조건은 물론이고, 현재 연령과 건강상태 등등 더 이상 분석할 정보가 남지 않을 때까지 가격 측정의 과정은 이어진다.
“어느 국가인지, 노동자가 조합에 가입되어 있는지, 화이트칼라인지 블루칼라인지, 어떤 업계인지와 같은 요인들이 모두 추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각기 다른 연구에서 매우 상이한 추정치가 도출된 가운데 2000년 미국의 비용편익분석 전문가들이 국내 연구를 바탕으로 합의한 생명 가치는 1인당 610만 달러였다.”
코로나 판데믹 이전에도 일 년에 천 명이 넘게 일하다 죽임을 당하고 영원히 퇴근하지 못하게 된 분들은 원청회사에서 열심히 찾아 간신히 법의 테두리에 맞춘 가장 싼 보험금이 가격표로 붙어 있다.
어느 대기업에선 일인당 500만원으로 맞췄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모든 인간은 동일한 가치를 지녔다’는 말은 이들에게는 단 한 번도 유의미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작 읽고 싶었던 책을 심각하게 공부하듯 읽고 필사하며, 순진하고 무지한 채로 안전하게 남아 있어 보려던 가림막들을 마저 털어낸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하지만 확실한 진실이다.
- 인간 생명에 일상적으로 가격표가 매겨진다는 사실
- 이러한 가격표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 이러한 가격표는 투명하지도 않을 뿐더러 공정하지도 않다는 사실
- 이런 불공정함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가격표가 낮게 책정된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고 높은 가격표가 붙은 사람들에 비해 더 큰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적절한 생명 가격표를 책정하는 것을 논의 할 때에도 그 생명의 가치는 순전히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 현재의 1000달러가 10년 후의 1000달러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은 매우 명백하지만, 과연 오늘날의 1000명이 10년 후의 1000명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는가
- 생명 가격표가 일상적으로 매겨지는 것은 현실이므로 우리는 생명가치의 평가 방법을 반드시 직접 결정해야 한다.
- 생명 가격표는 대개 불공정하다. 생명에 가격이 매겨질 때, 우리는 반드시 가 가격표가 공정하게 매겨지도록, 그래서 인권과 생명이 언제나 보호되도록 애써야 한다.
비극을 애도하고 이후의 보상 문제에까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9.11 이후 사망한 약 3000명의 희생자들에게도 모두 가격표가 붙었다. 금전적 보상에 반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단지 애도할 때는 희생당한 모든 분이었다가 보상 절차에는 갈가리 찢는 행태가 생명에 대한 올바른 존중과 대접인지 황망할 뿐이다.
“금액은 25만 달러에서 700만 달러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매우 컸다.”
“건강에 가격표를 매기는 일은 생명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매우 복잡하고 논쟁적이다. (...) 운전 교습 강사는 만약 차로 보행자를 치었을 때 돈을 아끼려면 “후진했다가 마저 일을 끝내라”라며 매우 잔인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9.11 희생자 보상기금도 부상자에 대한 보상금이 사망자 보상금보다 많은 경우가 있어 운전 교습 강사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이 경악스러운 내용이 현실을 가장 선명하게 비춰주는 풍경이 아닐까 한다.
‘인간의 생명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이제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가격을 찾기 위해선 ‘인간’은 내가 이해하는 개념 범주의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의미로 모든 인간은 비로소 다 다르다는 공식 인정을 받은 셈이다.
어차피 가격표가 낙인처럼 부여되는 세상이라면 적어도 계산 기준과 과정이 공정하도록 확인은 잘 해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라도 인권과 생명은 좀 더 존중받고 보호 받아야 한다. 500만 원짜리 생명보험을 합의도 없이 원청 기업 혼자 결정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