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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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런던에 머물다 독일로 바로 갈 일이 생겨서 눈에 띄는 여행사Travel Agency에 들어갔다상냥한 직원분이 반갑게 맞아 주셨는데이런…… 런던 토박이인 듯한 발음한국에서는 서울말을 표준말로 정했지만영국 영어는 행정수도 거주민들의 말에 언어학적 위계를 부여하지 않는다표준말이란 자체가 없기도 하지만런더너Londoner의 발음 특징들이 있는데받침 발음을 잘 안 한다거나 (. book : 부우~. 이렇게 들린다), 개인차까지 더해져 모음 발음이 다르거나... 다양하다. 그래서 그 직원이 활짝 웃으며,

 

“Would you like to book to die*?” 이렇게 물었을 때는 당황했다투 다이로 들림의미는 today. 

 

(나 혼자 생각) ‘언제 죽을 지 예약할 거냐고 묻는 건가여긴 어디?’ “Could I?” (바삐 생각) ‘여기선 죽는 걸 예약할 수 있다는 건가요?‘

 

그는 더 밝게 웃으며 추가 질문을 하였다“Certainly, one way or return?” (진심 놀람!) ‘죽기만 할 건지죽었다 살아 돌아올 건지 묻는 건가요?’

 

뜬금없이 이런 추억 얘기를 하는 것은 이 책에 편도 탑승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살 임무를 수행하려 왔다. (...) 이번 임무에 자원했을 때 나는 이 모든 사정을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그러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내 두뇌에게는 이 정보가 새롭기만 하다나는 여기에서 죽는다혼자서 죽게 된다.”

 

두 시간 비행거리인 독일로 가는 게 아니라 헤일메리*호라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가서 지구를 구해야하는 임무이다무척 좋아하는 장르물 설정이라 읽으면서 질문과 궁금증이 폭증할 흥미로운 설정이다화성에서 감자 심어 캐 먹는 이야기로도 독자와 관객을 맘껏 홀리는 앤디 위어이니 안심(?)하고 읽어 본다

헤일메리Hail Mary : 미식축구 용어경기 막판에 역전을 노리고 하는 패스에서 유래한 말.

 

탑승한 인원 중 두 명은 사망했고 살아남은 주인공은 기억상실증에 몸도 자유롭지 못하다다행히 돌보는 로봇이 있다지구를 구해야 한다고 해놓고 이렇게 답답한 출발이라니덕분에 필력과 구성력에 관한 저자의 자신감에 더 감탄하게 된다.

 

기억을 찾는 과정은 퍼즐 맞추기와 같으니 추리미스터리처럼 사건과 상황이 짜 맞춰질 것이란 짐작을 한다그런 게임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더 기쁘다조각조각 찾아드는 주인공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들이 교차되며 영상매체가 주는 시각 정보처럼 이야기가 흘러간다재밌다.

 

박사님이라면 별을 먹고 사는 생명체를 뭐라고 부르시겠어요? (...) 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어원을 애써 떠올렸다아스트로파지*라고 부르면 될 것 같네요.”

 

아스트로파지astropharge : 별을 뜻하는 아스트로astro와 세균을 숙주세포로 하는 바이러스를 의미하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의 합성어파장 25.984미크론의 적외선을 방사하면서 빛의 운동량을 이용해서 태양과 금성을 오가고 있다.

  

그러니까 이 미생물이 지구 위기 유발자인 것이다태양 에너지를 엄청 나게 흡수해서 지구 온도를 10~15도 가량 떨어뜨리게 된다현실의 우리는 온도가 몇 도나 올라갈지 불안하게 지켜보는 중이라 남일(?) 같지 않아 조금 괴로웠다그래도 지구에 함께 사는 인간들의 활동이 아니고 외부 요인이나 물리치러 나갈 수 있다는 점만은 부럽기도 했다.

 

기후학자들은 앞으로 30년 안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해 (...) 30년이요엄청 나중이네!”

 

소설 내에서 과학자들이 예측한 기한이 현실의 기한과도 비슷해서 또 한 번 덜컹한다그래도 현실의 인간은 위기감이 없이 대범하기만 하니 소심하고 겁이 많은 나는 거의 매일 무척 두렵고 괴롭다.

 

박사님을 포함한 세 사람은 타우세티로 가겠죠나머지 우리는 지옥으로 가요더 정확히 말하면 지옥이 우리한테 다가오는 거지만.”

 

만약 내게 주인공과 같은 선택의 기회가 있다면 어떤 결심을 하게 될까나를 제외한 지구와 지구에 남은 이들을 구할 일말의 가능성을 믿고 나는 죽을 것이 확실한 우주로 나가게 될까아니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서서히 죽어갈 가능성이 더 높은 지구에 남게 될까.

 

나는 아이들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30년 뒤면 이 아이들 모두가 40대 초반이 된다이 아이들이 그 모든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 이 아이들은 (...) 세계 멸망이라는 악몽 속에 내던져진다이 아이들은 제6차 대멸종을 겪게 될 세대였다나는 배 속이 꽉 뭉치는 기분이 들었다나는 아이들로행복한 아이들로 가득한 교실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 그중 몇 명은 문자 그대로 굶어 죽을 가능성이 컸다.”

 

주인공은 과학 선생님이다직업인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제대로 대접해주고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하는 선생님이다지나친 이상화를 한 것일 지도 모르나나는... 교육자는 미래세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지 귀찮아하고 무시하고 미워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와 배경이 개인으로서의 교사나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하지만 결국 교육자는 그런 부조리까지 이해하고 파생된 분노를 아이들에게 돌리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다또한 교육자는 가장 마지막까지 절망과 포기하지 않는 그런 이들이어야 하지 않을까그것이 교육의 합목적성과 부조리하지 않게 설명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가 아닐까 한다.

 

사태가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누군가는 계속 우유를 배달해야 한다. (...) (외계의 생명체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는세계 멸망을 한 세대나 두 세대쯤 앞두고 있는 상황도 그랬다나는 아이들 앞에 서서 그 애들에게 기초과학을 가르쳤다이 세계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지 못한다면 세계가 존재하는 의미가 뭐겠는가?”

 

주인공에 대해 배우고 나니 책 곳곳에 담긴 기초과학실험과 같은 지식정보들이 다정하고 친절한 수업으로 느껴진다지구 멸망이라는 서늘한 비극과 대척에 선 것이 이런 작은 온기라는 것이 또한 감동적이다중무장을 한 초능력 탑재 어벤져스가 등장했다면 얼마나 뻔하고 지루했을까.

 

우주선 이름이 소박하고 귀여웠던 것도주인공 직업이 평범한 것도감자보다는 훨씬 멋지고 의지가 되지만동료인 외계인 로봇조차 순박한 지능 수준의 작고 선량한 존재 로키였던 것도 오히려 더 대담하고 멋지다작가의 프로젝트는 야심만만한 거대 주제를 담고 있으니까.

 

700쪽 가까이 펼쳐진 이야기가 지향하는 바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도 믿지 않을 지도 모를 존재의 평범함선량함성실함선의애정희망협력연대이다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기적과 구원이라는 간절한 기도이기도 하다.

 

저건 외계의 우주선이다. (...) 인류는 우주에 혼자가 아니다.”

 

로봇이 내게 손을 흔든다! (...) 나도 마주 손을 흔든다로봇이 다시 손을 흔든다.”

 

역사의 큰 변곡점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비슷한 분석과 결론에 도달한다고 한다특별하고 영웅적인 계기는 없었다고공통점은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분명한 선의를 가지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했다고여전히 유효하다면 참 좋겠다.

 

인터뷰에서 저자 앤디 위어는 우울증과 가난으로 고생했지만 항상’ 인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모르는 사람을 위해 구급차를 부르고 길을 비켜주는 일들인간이 서로를 돕는 일은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것이라 보도 되지 않는다고그러니 인류는 지속적으로 미래를 더 좋게 만들고 있다고그렇게 믿는다고 했다.

 

나도 그의 믿음과 낙관에 동조한다아직 못 들었거나 미처 모르는 수많은 돕는’ 일들을 한 많은 분들에게 자주 감사하며 살아간다전작에서도 그랬고 막막한 공간에 주인공 한 명만 달랑 던져 놓고 살아남아 봐라~’ 이런 이야기를 즐기는, '주인공 처절하게 괴롭힘 전문' 저자인가 했는데 말랑말랑 보들보들한 SF라니.

 

경쟁과 싸움보단 협력과 연대가 생존에 유리하다는 당신의 끈질긴 이야기에 설득 당했다이제 대답을 해볼까지구의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면외로움과 막막함을 스르륵 녹여 줄 동료 로키가 있다면 나도 헤일메리호에 탑승하고 싶다그리고 주인공처럼 여행을 끝마치지 못한 동료들을 우주로 보내 주고 싶다.

 

당신의 몸을 별들에게 맡깁니다.” 이렇게 명복을 빌면서.

 

혹은 다른 동료가 나를 우주로 떠나보내며 같은 기도를 해주어도 좋겠다귀향과 귀가를 위한 연휴가 끝나고, 늦은 밤에 어두운 우주를 떠올리며 최초의 고향을 향해 가는 상상도 나쁘지 않다인류에 대한 저자의 굳건한 믿음이 별처럼 꿈처럼 아련하게 빛나는 작품이다.

 

반전은 남겨 두었습니다안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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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나만 그래? - 언니들이 알려주는 조직생활 노하우 26 쏠쏠 시리즈 1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지음 / 콜라주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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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의 이유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1. 이것만 아니면 된다. 2. 이것이어야 한다둘 중의 하나만 맞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전혀 아닙니다대략 이 두 가지 이유로 추동되어 이직과 퇴직을 하는 듯하기는 합니다.

 

저는 이건 더 이상 아니다였으니, 1번에 좀 더 가까웠을까요이직을 3번이나 했으나 나름 경험은 있으나 노하우는 없습니다해외 연구원글로벌기업 한국 지사공사다시 민간기업…… 점점도 연계도 없는 행로였으니까요.

 

책이 작고 가벼워서 오늘 읽을 책들 속에 넣어 나왔는데 회사 이야기를 연휴에 읽으니 살짝 억울한(?) 기분도 있지만 오랜 휴가를 끝내고 곧 복귀해야 하니 완벽한 타이밍인가 싶기도 합니다.

 

저자들의 직급은 사원부터 부장까지 다양하고독서모임을 통해 팟캐스트도 운영하며 출간을 하였습니다책에 포함된 QR코드로 팟캐스트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도 들어 보실 수 있습니다.

 

26개의 상황에 6명의 직장인들이 대답해주고 가이드를 제공해주는 형식인데엄청나게 건조하고 현실적입니다당근당근한 위로와 기도와 간식은 없습니다본인들이 체험한 것들이 기반을 두다 보니 팩트 체크와 해당 지침들로 이어집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딱정확하게 솔직하게 타인이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칼 같이 끊어 분명하게 인지하고 계시는 분들로 보입니다멋지시네요내가 네 상황에 대한 정답을 어떻게 알 수 있겠니스스로 생각해봐라!” “대신 경험한 것들깨달은 것들은 모두 제공해주마!”

 

저자들도 같은 주제에 대해 의견이 다른 경우들이 있습니다연차도 경험도 근무환경도 다르니 당연한 일이지요그리고 바로 그 점이 독자에게는 선택지가 늘어나는 반가운 내용입니다.

 

회사에서 중요한 것들은 분명한 의사소통과 실천입니다심기 살피는 직원이 하루 종일 직원들 표정만 클로즈업 하며 체크하는 것이 아니니 누군가 내 마음내 기분내 상황을 알아주겠지하는 신비롭고 정신적인 능력에 기대서는 안 됩니다그런 태도는 협업을 아주 곤란하게 할 뿐더러 유치한 행동입니다.

 

"현실에 롤모델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으며일을 친절히 알려주는 사람은 적다."

 

없습니다!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일단 발이라도 담가봐야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업무 내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안 되면 포기하지 뭐이런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은 저는 격려까지는 못하겠습니다누군가가 대신 마무리해야 하니까요.

 

"급여 협상 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내가 부르는 값이 언제나 업계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직업윤리로 꼭 기억하고 반드시 관철시킨다는 태도가 아주 중요합니다상생의 기본 원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마음이 급해서 상황이 절박해서 이번 한 번의 계약을 어떻게라도 성사시키겠다고 헐값을 제시하는 일은 제가 언젠가 먹을 밥에 독을 뿌리는 일과 같습니다누군가가 그 밥을 먼저 먹고 먼저 죽게도 되겠지요재능기부와 봉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결이 다르니 생략.

 

이직/퇴사와 같은 굵직한 선택 말고직장 내 업무 이행과 관련된 여러 상황들사내정치가 만연한 회사 생활상사와의 갈등갑질진학과 관련된 고민 등여러 구체적인 상황들이 있습니다어떤 조언은 내 상황이 아닌데도 무척 설득력이 있고어떤 상황은 무척 마음이 아픕니다.



사내 동료들과는 오히려 편하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내용입니다내 삶내 일양보하고 주저하고 그럴 수 있는 게 아니지요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고.

 

여성 직장인 한 정 책도 아닙니다그래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위로와 함께 덜 지치고 좀 더 잘 대처할 가이드가 있습니다.

 

어떤 날은 여러 번의 심호흡이 필요하고 다른 날은 해탈의 경지에 오를 듯한 상황도 생기지만그런 회사생활이 중요한 일과라면 어떻게든 잘 피하고 잘 맞서며 살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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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곳으로 가자 - 능력에 요령을 더하면 멋지게 갈 수 있다
정문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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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상처 받은 만큼 상처를 주게 되고

아는 것이 많아지는 만큼 겁을 내게 되어

새로운 시도 앞에서 자주 무력해진다.

그럴 때 참고할 만한 어른스러운 태도와 감정 관리의 매뉴얼을 모았다.”

 

정확한 순간은 모르지만 나의 관심사들 중 어른과 죽음은 중요한 순위에 자리매김하고 있다심오한 철학적 숙고를 위해 동기화되었다기보다는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던 어른의 모습을 아무리 살펴봐도 에게서 찾을 가능성이 없고, ‘죽음이 예상 밖으로 주변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인데나와는 다소 무관한 일이라는 생각이 균열되었기 때문이다언젠가의 미래의 일이라 당분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이 아니었다.


사춘기四春期에 사춘기思春期를 동시 다발로 겪고 있는 기분이다.

 

20, 30대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다나이든(?) 이들의 생각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이제는 나는 되지 못한 어른이 된 이들먼저 경험하고 고민한 분들의 생각과 이야기가 궁금하다.

 

나쁘지 않은 것과 좋은 것은 다르다. (...) 자신의 감정을 대충 처리해버리지 않을 때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좋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원하고 추구하고 가지려고 노력하고그런 일들을 잘 안 한다에너지 레벨의 높이가 개인마다 다르다면 나는 한 다섯 칸 정도머릿속에 마지막 칸의 빨간 불이 자주 깜빡거린다그러니 취사선택에 집착하는 편이다.

 

자신의 인생을 두고 자꾸만 나쁜 예언을 하는 걸 그만두자.”

 

안 그랬고 안 그러는 것 같은데…… 최악을 상상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는 생각한다.

 

시간이 걸리지만 본질적인 해답은 나의 강점을 키우는 일뿐이다감정의 기울기를 받아들이고 안달하지 않는 것.”

 

강점을 키우면 끔찍한 인간이 될 것 같지만백신 접종을 1차라도 맞은 이들이 많아져서 예상 보다 많은 친지와 지인들을 만나거나 안부를 주고받으며처음으로 상대에게 담긴 감정이 보인다고 생각한 순간들이 있었다.

 

이제까지는 내가 세워 둔 이미지를 상대 앞에 펼치고 내 생각대로 대했거나혹은 상대가 보여 주고 싶은 이미지 앞에서 반응했거나관계가 그랬나보다하는 생각이 들 만큼 확실한 순간들도 있었다.

 

다들 나이가 들고 여러 이유로 약해지고 지치고 혹은 이제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서…… 이유는 모르지만 어쨌든 화면을 유지할 힘이 사라지고 실상 그대로 만난 기분이 드는 경험이었다좋다편하다이제 와서 민낯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오래 쌓인 애정이 뒤집히진 않는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힘들면 이나 체면’ 같은 건 좀 더 편하게 그만두어도 좋겠다다 비슷하게 살아간다누구나 늙고 약해지고 자신감이 떨어지고 지력이 낮아지고친절하고 상냥하게 사람을 대하도록 서로가 노력노력노력.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가 있다는 걸 기억하고 신세 한탄만 하는 데서 벗어나기,

내가 특별한 존재여야 하고 세상이 내게 우호적일 거란 기대를 내려놓기.”

 

세상의 가치 있는 일 대부분은 가성비로만 따졌을 때 효율이 낮다.

결국 다 똑같지라고 세상을 뭉개서 보지 않고 (...)

세상은 자세히 알고 나서는 절대 똑같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커피도 다 마셨고 눈도 아프고 읽을 만큼 읽었으니 더 좋은 곳으로 가자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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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지도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아 떠난 여행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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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행복은 실패할 수 있는 기회다>

 

그녀와 제러드는 난민이다. (...) 그들은 새로운 땅새로운 문화에서 더 행복하다는 이유로 삶의 터전을 옮긴 쾌락의 난민이다대개 쾌락의 난민은 깨달음이 순간을 경험한다자기가 태어난 나라가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분명하게 깨닫는 순간.”


난민이라는 단어를 이런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나름의 정서적 정리 과정이 필요했다이유가 무엇이건 태어나고 자라며 사회화가 이루어진 곳에서 머물지 못하는 내외적 동기로 이들을 가리킨다는 말에서 수긍이 가는 지점이 있다.

 

다른 한편 자신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이 정도로 확실하게 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어디서든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것 같아 어디서 살지 고민이 더 많아진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면 나는 뭘 간절하게 원하는 게 참 없는 삶이다.

 

저자가 행복을 주제로 여러 나라를 방문하며 지도를 그리는 이유를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 속에 담지된 것들을 관찰하는 시선을 일독을 마치니 스르륵 이해가 된다순서를 바꾸지 말고 다시 읽으며 나라를 배치한 구성을 느껴봐야겠다.

 

프롤로그에서 뜬금없이(?) 동양철학 강연하는 영국 태생 철학자 인용이 있어서 이건 무슨 미쿡적인 취향인가 하고 넘어갔는데그 역시 공간과 공간 인식과 인간에 대해 언급하는 이야기로 이제 잘 엮인다.


만약 내가 원을 하나 그려놓고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 그것을 벽에 뚫린 구멍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바깥쪽보다 안쪽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하지만 사실 이 두 면은 항상 함께 다닌다. ‘바깥이 없으면 도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있는 장소가 우리의 사람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향과 가족이라는 관계이자 공간을 상징하는 명절 기간이면사회 전체가 명절 치르기를 제1행사로 삼고 종종 찬미하는 언론 보도들을 접하면그런 장소와 관계 속에서 가장 큰 폭력을 경험하고 상처를 입은 후 홀로 지낼 이들은 어떤 심정일지 마음이 아프다.

 

지난 4년간 국내 친족 성폭력 발생 건수 3천 건 이상

암수율*이 높은 범죄라 실제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 범죄 발생 후 공식 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비율

- 60% 이상의 피해 생존자가 미취학 아동초등학생이고 부녀간 아동 성폭력이 다수

가족이란 이유로 절대적 침묵을 강요당하고 신고도 못 한 채 극심한 고통을 겪음

성인이 되어서도 누구에게도심리 상담 시에도 털어 놓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공통의 것들을 찾고 없으면 만들고 강조하며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 혹은 필요한 이유들이 많아 호들갑도 신비화도 이해는 하지만 사회 문화적으로 이렇게 강제도 압박도 강한 사회도 별로 없는 지라폭력과 상처가 없는 나조차 때론 질린다.

 

고향과 가족’ 공동체뿐 아니라 좀 더 다양하고 확장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도 자신을 생각해보는 일도 조금은 더 장려되길 바란다사익이 공익에 우선하는 삶을 살다 불타고 물에 빠져 죽는 시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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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연구를 하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인 것 같아요.”

벤호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된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인류의 능력에 대해 영원한 믿음을 갖게 될 거 아닙니까?”

아뇨꼭 그렇지는 않아요.” (...)

 

사람들이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나한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행복의 격차가 존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나는 비밀을 파헤칠 수 있으니까요.”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이고 인상 깊었던 반전이다희망하고 기대하는 것에 대한 짐작과 일반화는 이렇게 확실한 오해일 수 있다는 소위 뼈 맞는 공부를 한 셈이다.

 

연구 주제가 행복이지만 연구 동기는 인류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아닐 수 있다실상 비교 연구란 세상 모든 것을 정량화해야 하는 연구 방식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형식일 수 있다.

 

그러니 행복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불행을 찾아내야 한다행복이 최대치를 기록해서가 아니라 불행이 최대치를 기록해도 그 격차가 클수록 선명한 연구 성과를 달성하게 된다.

 

결이 다른 이야기일 수 있지만실험 과학 훈련을 받으면 이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과학은 실제로 눈 먼 행동을 많이 한다그런 약점을 잘 알아서 기업은 연구 투자비로 과학자들을 조종한다공학과 산업과 결부된 분야의 연구자들은 모두 이 그물 안에서만 생존한다인류의 자산이 되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 쓰일 과학은 그렇게 사유화된다.

 

혼미한 의식의 흐름인 듯 무지하게 이상한 글이지만  이만 총총.

 

어쨌든 오늘도 살아 있는 우리 모두는 최대한 행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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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세요, 제가 준비해 놨어요 - 여행자를 유혹하는 여행 만들기의 세계 일하는 사람 4
신재윤 지음 / 문학수첩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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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불러내는 기억과 감정이 만만치 않다설레었던 적도 지긋지긋할 적도 있었다그래도 여행가방은 여행이건 출장이건 그 기간을 살아내는 필수품들로 가득한 귀중한 존재였다몇 번이나 반복하는 생각인지 모르지만이런 시절을 살게 될 줄 몰랐던 모든 순간들이 짙은 후회로 남는다젊은 시절 추억은 기억에 담는 거라 여겼던 나를 기어이 사진 속에 담은 이들에게 나이 들어 감사한다기억보단 사진이 더 선명하다.

 

관광개발연구원이란 직업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관광을 예매한 적도 단체 여행을 간 적도 없어서일까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면 애증의 시기가 반드시 온다고 하는데저자는 여전히 여행을 좋아할까표지에서 눈을 떼기 싫어 한참 생각만 돌돌 굴리다 펼쳐 읽는다여행을 갈 수 없는 시절의 주말에.

 

관광객이 아니라 개발자의 시선으로 읽는 책이 무척 흥미롭다남들 먹고 노는 이야기는 잠시 멈춰 시선을 담은 문장들이 없다면관음증처럼 느껴져서 읽기가 민망할 때도 있다시리즈 명칭대로 일하는 사람에 충실한 서사라 마음이 편하다.

 

여느 회사처럼 프로젝트 기획제안보고 모두 문서로 이루어진다당연히 보고서 지옥! -를 거쳐 나아가는 장면들기발한 아이디어가 현실화 되는 과정에서 아쉬었던 결과적인 이야기들, K-투어 열풍과 관련된 글로벌 쇼핑 관광 나는 가볼 일이 없겠지만 프로젝트들의 에피소드들직업 상 어쩔 수 없는 프로출장러로서의 삶과 견문록이 담겨 있다.

 

디자이너에게 완벽함이란 무엇인가를 추가할 것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상태다.” - 생텍쥐페리

 

누군가의 노고로 개발한 것인지 전혀 모르고 만났던 영원 젊은 달 제이파크’ 이야기에 급 호감을 느껴 책에 얼굴을 더 바짝 대고 읽는다. ‘대지예술이란 컨셉이 확실한 개발이지만 지역 경제를 살리고자 너나없이 개발한 관광 상품들이 이런 시절엔 어떤 역풍으로 돌아갔을지 마음이 무겁다.

 

제주추사관담양의 관방제림부여의 궁남지통영의 나천칠기와 목공예 배우기 상품 등... 내가 좋아한 곳들이 꽤 나온다관광과 단체 여행이란 형식만 빼고 관광개발원이 개발한 여기저기를 즐겼네비로소 깨닫는다.

 

도시재생이란 이름을 단 부서가 지자체에 생긴 지는 꽤 되었는데페인트칠하고 벽화 그리는 것 이상의 어떤 일을 하는지 사실 무관심했다매년 예산의 범위 내에서 뭐라도 할 터인데토지와 건물 비용이 비상식적인 서울에서 문화비축기지와 서울로 7017이 도시재생의 상징으로 마무리 된 것이 새삼 놀랍다.

 

잘 살아 보세로 기억되는 시절 사실 나도 별 기억이 없다 에 깡그리 부수고 시멘트로 발라 없앤 문화유산급 자산들이 많았을 텐데, ‘한국적이라는 것이 꼭 어느 시대를 표방하거나 상징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겠지만식민지와 전쟁을 겪고 난 국토의 문화 단절과 가난이 분하고 서럽기는 하다.


혹시 여행 꿀팁을 기대하셨다면...... 많이 있다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이렇게 모르던 직업을 알게 된 기쁨이 크다책을 다 읽었고 표지를 봐도 두근거린다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이들과 함께 마음 편히 판데믹 시절이 말이야~” 옛 이야기 하며 여행할 날이 이번 생에 다시 올까.

 

나는 왜 그토록 여행에 열광하며여행 분야에서 직업까지 갖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여행하면 행복하니까.”

 

“‘설렘이라는 감정은 우리의 일상을 권태롭지 않게 만들어 주는,

식재료로 비유하자면 후추와 같은 존재하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설렘이 행복으로 충족되지 않고 가끔은 실망으로 내려앉기도 한다.

하지만 그 설렘 덕에 여행하고 싶은 욕망이 지속되고,

더 넓게 보면 우리 일상도 지탱되는 것이 아닐까?”

 

오래 전 휠체어를 이용하는 친구와 유럽을 함께 여행한 적이 있다일과 여행이 혼재된 상태이긴 했지만 업무 내용은 벌써 잊었고휴식과 여행은 감정까지 남았다어떤 도시는 내가 이미 여러 번 와 본 곳이라 재밌게 소개와 안내를 해줘야지들뜨기도 했다.

 

그러나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짧은 여정에 벌써 중세 유럽의 포장이 잘 유지되어 내려온 울퉁불퉁 길에 양가적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길조차 수백 년 유지되었구나좋겠다부럽다 하는 마음과 동시에그렇기 때문에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돌들을 파내거나 새로 포장을 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동시에 보았다.

 

친구의 전동 휠체어 배터리는 덜덜 떨리는 길을 가느라 참 빨리도 방전되었고나는 이런 저런 감탄을 섞어 소개하려던 야심을 많이 접어 넣어야 했다그런 여행도 이제는 다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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