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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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에 담은 정치철학적 개념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번역본의 제목. 그 점이 아쉽다.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2020)

  

<세계지식포럼> 덕분에 미뤄뒀던 책을 일단 펼쳐 보았다아주 오래전 대학원 강의에서 만난 존 롤즈의 정의론도 띄엄... 띄엄... 겨우 떠오르고 여타의 지식정보도 생각도 산만하단 생각에 일독을 결정했다.

 

마침 대선 정국으로 들어선 한국 정치계에서는 능력주의에 관한 어떤 기본적인 이해에서 출발한 건지 모를 능력주의를 언론 패널 이외에 별 다른 경력도 없는 야당 대표가 주장하여 몹시 빈정이 상해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만난 미국 자유주의자들의 논문에는 참 이상한 예시들이 많았다언제나 무언가 부족한 상황에서 골고루’ 나누다 다 죽는 것이 더 나은가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살리는 게 옳은가뭐 그런 논조.

 

듣다 지쳐서 왜 매번 이러냐고이건 원하는 답을 위한 설계된 질문 아니냐고왜 세상을 보는 눈이 이 따위(?)냐고 발작하듯 말이 튀어나온 적이 있다그리 친하다는 생각도 동류란 의식도 없던 교수님이 우리랑은 논조의 전제가 많이 다른 것 같아.”라고 말해서 놀랐다.

 

어쨌든 나는 그런 류의 분석도 질문도 결론도 아주 별로이다만인의 만인의 투쟁 상태에서 제한된 자원을 획득하는 방법은 자신의 노동력 혹은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고그런 행위로 온전히 사적인 소유물로 만드는 성취만이 정당하다는 쪼잔한 논리.

 

현실에서 여전히 큰 목소리를 가진 능력주의는 물론 이런 소박한 수준이 아니다샌델이 지적했듯이 각자의 재능에 따라 뭐든 주는 대로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한다면재능이 뛰어난 이들이 획득한 성공에 대해 사회는 아무런 간섭을 할 수가 없다.

 

그 논리가 성립하려면 성공의 모든 공덕이 주체 혼자의 재능에 한정한 이라는 확인이 필요하다물론 그런 일은 없고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 더 현실적인 분석이다어쨌든 능력주의에 따르면 덜 성공한 사람들을 배려할 이유는 전무하다따라서 능력주의를 믿는신념으로 삼은 이들에게 연대는 무의미하다.

 

실생활 공간에서 공중 부양해서 아무 도움 없이 뭔가를 성취한 뒤 다시 착지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샌델은 능력주의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답은우리가 설령 죽도록 노력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자수성가적 존재나 자기충족적 존재가 아님을 깨닫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고 운이 좋아 성공했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그것 이외에 인류 전체가 모두 다른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현상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국적사회지역가정가족학교친구 그리고 살아가면 영향을 주고받는 모든 것은 우연의 산물들이다.

 

그러니 국가와 사회는 모두 다른 출발선을 세심하게 살펴 잘 맞춰 주고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는 그런 상냥한 역할을 하면 이상적일 것이나그런 호시절은 인류가 전쟁을 멈춘 적이 없는 것처럼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그러니 결심만 하면 바뀔 수도 있는 개인들이 좀 더 겸손하고 관대하면 좋겠다.

 

능력을 이유로 부디 타인에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으면 한다각자의 능력의 차이란 것도 알고 보면 별반 대단하지 않을 뿐더러어떤 인간도 능력의 우위를 영원히 유지할 수 없다연령에 따라 변하는 체력은 물론이고 아이들과의 지력 대결에서 늘 이길 수 있는 어른도 없다.

 

어떻게 살 것인지도혼자 뭘 성취하는 것도 힘들지 않은가그러니 비교비난순위탈락배척하는 세상 말고 좀 더 다정한 공적 삶을 상상하고 만들어 나가는 일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평소 게으르다는 말을 너무 자주 하는 내가 하는 말은 설득력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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