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돌이 쿵!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78
존 클라센 글.그림, 서남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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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유독 희망이 옅어서였는지...


책 속에서 만난 모든 캐릭터가

세상의 전모를 못 보고 고집스럽고 어리석은 

인간의 형태로 느껴졌다.


이 정도까지 투사가 되는 날엔 

책이 아니라 뭐라도 비틀어져 보일 것이니

다시 덮고 다른 날을 골라 읽어 보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돌이 내게로 달려들지 않는다고 느껴지니

이야기로서의 설정과 캐릭터들이 

얼마나 기발하고 유쾌하게 특이한지가 보인다.


낯설게 하기 한편으로는 

끊임없는 소통을 원하는 

작가의 목소리도 들린다.


고집쟁이 거북 

긍정과 배려의 아르마딜로

옆에 머물러 주는 친구 뱀.


모두 모자를 쓰고 있다는 것에 

작가의 애착이 느껴져 

참지 못한 반가운 웃음이 나왔다. 


눈동자의 작은 움직임만으로 

다양하게 전할 수 있는 심리 묘사가 얼마나 되는지 

실험해본 건가 싶은 작품이다. 


아쉽고 얇은 책 속에서 

놀라고 긴장하고 안타깝고 기대하고 그리워하는 감정을 

다 맛보았다.



- 바윗돌은 어디서 왔을까? 혹은 왜 왔을까?

- 아르마딜로의 ‘촉’은 무엇이었을까?

- 이 모든 것은 다 우연이었을까?

- 거북이가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 실은 이런 이들을 많이 만나 대략 알 것도 같지만. 나도 만만치 않다. 이제껏 내개 살아 온 방식이 생존 방식이라 믿고 있을 테니까.

- 소통의 정답, 해법, 비법은 무엇일까?

- 우리의 미래는......



아이들과 함께 읽으라는 가이드가 무척 반갑고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많지 않은 분량에 작가가 담은 질문도 메시지도 참 많습니다.

어쩌면 제 속에만 생겨난 것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페이지를 몇 번이나 보고 한 문장을 이리 저리 생각했는지.

무척 불친절한 책 소개이지만 이 그림책은 직접 보셔야 합니다.

사색과 명상을 위한 무겁고 어두운 고민거리들을 알듯 말듯 전해주는 복잡한 감정이 드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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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지게 1 - 천둥소리
강기현 지음 / 밥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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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한국근현대사가 배경이다그야말로 생사를 건 일들이 일어나던 극한의 시절이다. 6.25 전쟁 장면의 묘사들을 읽다 보면 탱크가 한 대도 없이 정신없이 밀려 내려오던 장면들을 본 것만 같다끔찍하다이런 수단으로 땅을 차지하려던 생각이시대가.

 

제목에서 지게조차 붉게 물들 수밖에 없던 시대가 떠오른다지게로 나르던 것이 짐만이 아니었던 탓이다무기와 탄약을 나른다는 것은 다음 날 그 무기와 탄약에 죽어간 사람들을 나른다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배경이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라서대화를 잘 못 알아듣고 잘 못 읽게 되는 건가 살짝 불안했다문맥을 따지고 짐작을 하는 것으로는 그 대단한 말맛을 다 알 도리가 없어 늘 안타깝다.

 

하동군에서 태어나 교사로 산 작가가 이야기 속에 창조한 주인공은 작가의 친족인가 싶기도 했다꼭 성이 같아서가 아니라 금방 배경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구체적인 생생함이 실존했던 인물처럼 느껴진다.

 

소작농으로 마름으로 살던 이에게 민족의 암울한 시절이 어떤 기회로 작용하는지역사책처럼 소상히 기록한 일본인들에 의한 토지수탈 과정이 충분히 안다고 생각한 정보에 여러 장면을 더한다.

 

그러나 이미 부자들글을 아는 이들작은 감투라도 가진 이들은 더 재빠르기 마련이다소작농의 마름이 땅을 갖고 부자가 되는 꿈은 실현될 기회가 없었다.

 

힘을 가진 이들이 야합을 해서 작당을 하면 누군가의 재산을 뺏는 일도목숨을 끊는 일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그 모든 과정은 마치 폭력을 합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일들은 중단된 적이 없어서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 기분이 아프고 나쁜 기시감과 현실감이 든다그나마 지금의 언론이 없어서 주인공 강몽환의 삶이 산산조각나진 않으니 다행이랄까.

 

그는 그 일로 세상을 다르게 판단하는 눈을 가지게 된다위계를 판단하고 더 크고 강한 힘을 파악해서 자신의 삶을스스로를 그 힘과 닮은 모양새로 만드는 그야말로 개벽천지와 같은 일을 한다.

 

조선인보다 일본인조선의 문물보다 일본의 신문물을 배워야 원하는 삶도 세상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저 멀리 우리가 모리고 있는 서양이라는 세상이 있는디요거기는 일본보담 더 문명이 발달했다고 헙니다시방 우리는 서양사람들 헌티 신문물을 바로 받아딜일 형편이 몬데닝께로 하는수 읎이 일본 사람들 손을 빌려서라도 배와야 안 데겄십니꺼?”

 

쓰다 보니 간단한 구조의 단일 사건처럼 보이나 실은 권력 구조가 끊임없이 바뀌고 찬탈 당해서 언제나 새로운 누군가가 세상을 판치고 깨부수는 그런 시절이었다.

 

와 내 집안의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늘 이런 대하소설이 된다그렇게 살아서그렇게 살아남아 우리는 무엇을 꼭 하고 싶었을까나는 요즘 그 중요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기분이 종종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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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죽화
최재효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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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여성을 꽃을 비유할 때는 능력이나 활약상이나 삶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할 때가 많은데, 실존 인물인 설죽화(1001-1019)는 고려 최고의 무인으로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전쟁에서 활약한 인물이다.


배경은 고려 현종 재위 기간인 1018년 12월에 발발한 고려와 거란 간의 제3차 전쟁이다. 설화나 교과서, 역사 소설... 어떤 경로로도 들어 본 적 없는 인물이다.


부친이 고려의 병사였으며 사망 후 남장을 하고 절에서 무예를 익혔다. 뛰어난 무예 실력 덕분에 별동대를 조직하고 전쟁이 발발하자 강감찬 장군 휘하에 들어가 고려 서북면군별동대장이 되어 거란군 장수들을 도륙한다.


흰 말을 타고 - 표적이 되기 쉬운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지만 - 언월도 - 고려시대 무기에 언월도가 있었구나 - 를 들고 싸우다 전쟁터에서 전사한다. 


전쟁을 묘사하는 장면이 사실적이고 가감이 없어 놀란다. “머리통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온통 피를 뒤집어쓰고도... 투구가 깨지면서...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설죽화가 화살이 온 몸에 박혀 출혈 과다로 사망하는 장면 역시 잔인하다. 저자는 천년 만에 이 영웅을 부활시키고 싶었다고 하는데도 죽음에는 타협이 없구나 싶다. 그래도 기억과 기록은 자체가 힘이고 응원이다.


물론 장편역사소설이고 설죽화에 대한 기록보다 구전에 기반을 하고 있으니 각색의 여지와 여부는 있는 것이 당연하다. 


25년이 넘게 재발하던 거란과의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지쳤을 것이고 설죽화라 인물의 실전과 스토리는 분명 화제가 되고 사기를 돋우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평민인 아버지가 전사 후 품에서 시가 한 수 발견되었고, 설죽화 역시 사망 후 품속에서 서신이 나왔다는 것이다. 당시 문자에 대한 내 역사 지식에 뭔가 오류가 큰 듯도 하다. 


“이 땅에 침략 무리 천만 번 쳐들어와도 고려의 자식들 미동도 않는다네.

후손들도 나같이 죽음을 무릅쓴 채 싸우리라 믿으며

나 긴 칼 치켜세우고 이 한 몸 바쳐 내달릴 뿐이네.”


“금수강산을 넘보는 북방의 흉악한 거란 오랑캐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무려 1003년 전에도 “네가 아들이었다면...” 이란 대사가 존재했다니. 워낙 전투가 빈번하고 농사 노동이 중하던 시기라 오히려 장정이 더 필요했던 시대였을 거란 생각도 해본다.


1003년 전인 1018년 고려 시대의 전쟁 전황도를 보니 기분이 묘하다.


저자는 잊히고 사용되지 않는 순우리말에 대한 애정도 크다. 각 페이지에 단어의 뜻을 풀이해 두거나 어려운 용어들, 인물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고, 따로 어휘를 정리해서 첨부해 두었다. 590-628쪽이나 된다. 


아는 바가 없어 낯선 시대처럼 낯선 용어들을 유추하고 뜻을 배우는 재미가 컸다. 언어란 기록 수단이자 기록 그 자체이기도 해서 가장 활발하게 살고 활용되었던 시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저 시대에도 지키고자 하는 바를 위해 나서 싸운 평민들이 많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방역의 최전선은 이 오랜 시간에도 수많은 이들의 지독한 노동으로 무너지지 않고 있다. 제대로 도움이 되는 영웅이 있으면 반가운 일이지만 영웅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세월이 지나 인류의 문명이 존속된다면 이 시대는 어떻게 기록될까 흐릿해서 서운하고도 간절한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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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일
조성준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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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David Robert Hayward Jones, 장국영 張國榮, Leslie Cheung,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를 먼저 만나고 매일 조금씩 다른 예술가들을 만나는 야금야금 독서가 좋았다. 전공을 한 적이 없고 삶을 쏟아 붓지도 않은 영역을 경험하는 일이 재밌다. 어설픈 지식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이 살다, 빈틈을 메워주는 책들을 드물지 않게 만나게 되니까. 짧은 호흡으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구성이다.

 

우디 알렌Woody Allen 감독의 영화들을 아주 많이 좋아했다. 그가 사랑하는 뉴욕의 풍경도 사계도 멋지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는 오래된 판타지가 실현된 듯 놀라고 홀려서 내 청력에는 웅얼웅얼 울리는 주연 배우의 불쾌한 발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많이 다시 보았다.

 

벨 에포크! 물론 그들만의 아름다운 시절이었지만 20세게 내가 반한 문학과 예술과 사람들이 한 가득이니 한동안 빠져 나올 방법이 없었다.

 

21세기가 시작된 지가 21년이 넘었다고 생각하면 무척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마 나는 스스로를 20세기 인간이라 여기기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나를 구성한 정신적 유산들은 실제로 대부분의 20세기의 것들이기도 하다.

 

복잡다단한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난 시기인데 저자는 유려하게 담았고 덕분에 배경 지식이 부족함에도 너무 가볍고 빨리 읽는가 싶을 정도로 잘 읽혔다. 그리고 무척 재미있었다. 알던 이들, 반가운 이들, 그리운 이들, 모르는 이들, 그렇게 33.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가 노숙자 차림으로 전차에 치었는데도 아무도 살펴보지 않아 3일 후 사망한 일은 알던 사실인데도 기막히고 슬프다.

 

동대문플라자DDP 건축을 설계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의 여성 건축가라는 사실을 덕분에 자세히 배웠다. 사막 모래의 움직임과 모래 언덕 곡선처럼 디자인했다는 설명을 들으니 즐겁다. 멋진 일이다.

 

일상도 작품도 다 좋은 나의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평생 반가울 터이다. 그림을 보고 즉각적으로 환하게 웃음이 나오는 특별한 예술가과 작품들이다.

 

처절한 작품으로 유명해졌지만 희화되기도 하던 예술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를 오늘 다시 만나니 죽음이 일상이고 우연이고 미래인 시절이라 그 느낌이 많아 달랐다. 어릴 적 목격한 가족들의 죽음이 평생 그에게 어떤 강도의 공포를 주었을까……. 이제야 그의 아픔이 실상을 얻은 듯 생생하다.

 

어느 작가의 말이었는지 기억이 흐리지만, 작가들의 작품 소재나 심지어 스토리가 겹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잦다고 한다. 이 책의 예술가들의 개인사를 읽으며 그들의 인생을 배우면서, 이들 역시 시공간의 분리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연결된 느낌을 받는다. 예술을 했으니까, 예술이란 같은 목적을 가진 다른 작품들이니까, 혹은 그들이 예술가의 삶을 살았으니까.

 

위대한 몰입으로 가득했던 천재 예술가의 삶이 주는 전율은 그가 남긴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만큼이나 성스럽다.”

 

즐거운 독서 시간 내내 애인처럼 좋아한 예술가의 노래들을 아주 오랜만에 오래 들었다. 여전히 멋지네. 그는 그대로이고 나는 계속 사라지고. <Come as you are>

 

재미있다고 너무 빨리 읽은 미안함과 그만큼 멋진 필력이었다는 찬사를 더하고 싶은 마음을 동시에 느낀다.

 

저는 예술가의 일에 대해 썼고, 이것은 제가 지난 3년 동안 매달린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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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고 더 아픈 사랑
나은숙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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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의 소재들이 인사, 화해, 사랑의 행위들과 연결되고 새로운 시공간으로 바뀐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사소한 물건들과 순간들을 한 편 한 편 시로 담아낸 시작과 마무리가 놀라울 때가 적지 않았다. 나는 미처 눈길을 주지도 못 하고 살아온 존재와 풍경들.

 

시인은 사랑이 많고 사랑을 원하고 사랑을 적는다. 그래서 사랑이 가장 잘 살 수 있는 세계를 고민한다. 마음속에 부정이 있다면 긍정할 수 있는 외부의 매개를 찾아 갈등도 괴리도 완충시키려 한다.

 

사랑을 고민하는 사람은 인류 전체 일지도 모르나 사랑이 담지하는 의미와 본질을 정답지로 발표하는 이는 없다. 대상이 타인이건 삶이건 세상이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타자들이라는 점에서 영구한 연결점도 통로도 완벽하게 마련할 수 없다.

 

가능한 느리게 가능한 비우고 살다가도 문득 그 노력이 도움이 안 될 때 시인이 반복해서 눈을 돌리는 자연의 풍경과 존재들이 거기 있어 다행이다. 이웃의 고운 정원을 구경한 기분이다.

 

매일 꽃, 나무, 하늘, 바다... 그런 풍경들을 전해 주고 같이 보자고 해주는 감사한 이들을 떠올린다. 자연이 존재로 풍경을 완성시킨다면 인간은 언어로 색색의 정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모두가 가뭄과 태풍과 추위와 더위와 무작스런 손길에도 사라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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