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시간여행 6 - 목숨을 건 아마존 탈출 작전 마법의 시간여행 6
메리 폽 어즈번 지음, 노은정 옮김, 살 머도카 그림 / 비룡소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마법의 시간 여행 시리즈는 출간된 지는 꽤 오래 되었고가장 큰 장점은 순서대로 읽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59권까지 나왔는데 전집으로 사지 않아서 여러 권이 집에 머물렀다 떠나기를 반복했다.

 

아이들 입장을 최대한 상상해 보면 전 세계 곳곳을 여행 다니며 유명한 인물들을 만나기고 하고 때로는 위험에 빠진 동물을 구해 주거나 무서운 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는여러 장르가 등장하는 재미난 시리즈이다.



아마존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것은 싫지만 번역 제목만 그렇고 원제는 무난하다물론 마법의 시간 여행이니모험과 재미는 어느 책에나 골고루 있고때론 꽤나 중요한 지식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만약 이 시리즈와 관련된 역사지리문화과학인물 지식 퀴즈 대회가 있다면 아이들을 이길 자신이 없다.

 

이제 고학년이 되었으니 곧 이 시리즈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니 좀 쓸쓸하기도 하다원하면 내가 읽으면 된다.

 

아마존에 대해 생각해 보면 다들 다른 것들을 떠올리겠지만역시 가장 신비로운 점은 밀림과 정글즉 이름조차 모르는 어쩌면 인류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생물들이 많다는 점일 것이다마법 시간 여행을 하는 잭 역시 그러하다잭의 꿈은 그 생물들의 이름을 자신이 지어줄 수도 있다는 상상이다.

 

나쁘지 않는 상상이라 생각하는데저자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인간이 다른 생물에게 무언가를 베풀어 준다는 이름을 지어준다 우월적 사고에 대해 자연스럽게 지적하고인간이 인지하기 전에도 다른 생물들은 원래 본원적 가치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강조한다그리고 결정적으로 인간들은 이기심으로 아마존에 들어가서 파헤치고 훼손하지 말라고 전한다.

 

이런 책을 만날 때면 동화작가님들이 무척 부럽고 대단하게 느껴진다어른들이야 들은 표시도 안 날 이야기들중요한 메시지들을 어쩌면 아이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이후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로 삼을 지도 모르니까.

 

벌레들한테 이름이 없으면 뭐 어때중략자기들 스스로 자기들이 누군지 알면 됐지.”

 

세상에는 원래 고약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중략피라냐도 그냥 피라냐답게 굴었을 뿐이고뱀도 그냥 뱀답게 굴었을 뿐이고악어도 그냥 악어답게 굴었을 뿐이고재규어도 자기 새끼를 지키려고 했을 뿐이잖아.”

 

기분이 숙연해졌다코도 찡하고 이러다 눈물도 날 것 같다.

 

모든 생물은 원래 자신답게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그들의 삶에 끼어들어 선악과 위계와 가치 평가를 하는 일은 인간이 임의로 하는 일들일 뿐이고 사실도 진리도 아니다그렇다면 인간의 이런 태도혹은 취약점 역시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있는 것일까아니면 어떤 이유로 인간은 이토록이나 어리석어진 것일까.

 

모든 종을 능가할 힘을 찾아 모든 걸 다 소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다 망가뜨리는 행동을 꾸준히 하는 것은 인간다운 것일까…… 아닐까…….

 

........


지구 전체에 공급되는 산소의 6퍼센트가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나온다우리가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아마존 우림이 맡은 핵심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해도 대체재는 없다그런 곳이 매년 50,000 제곱킬로미터씩 숲을 잃고 있다지구의 폐는 이미 5분의 1이 손실되었다. 2035년에는 탄소 수용량이 한계에 도달한다고 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이 사라져 가고 있음을 직접 목격한 페루의 한 생물 교사 해리 힐데브란드는 그때부터 학생들을 인솔해 20년간 한결같이 아마존으로 향해왔다.

 

열대우림 한가운데 털썩 주저앉은 학생들은 자연과 놀라운 교류를 합니다그곳에서 학생들은 소리 내 우는 원숭이와 마코앵무와 독개구리에 둘러싸여 만물이 이어져 있음을 스스로 깨닫습니다.”

 

...........


아마존이란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아마존은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전사 부족 이름이다전쟁의 신 아레스의 후손인 아마존은 여자들끼리만 나라를 이루었고 매우 용맹하여 사냥을 잘했다고 전해진다. 16세기에 아마존 강변을 탐험하던 스페인의 탐험가가 강 근처에 사는 원주민들 중에서 전사 차림의 한 여자를 보고서 아마존 강이라 이름 붙였다.

 

아마존 강은 얼마나 큰 강일까?

아마존 강은 약 6,200킬로미터로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강이다세계에서 가장 긴 강은 아프리카 동북부를 흐르는 나일 강이다나일 강의 길이는 약 6,700킬로미터이다하지만 강이 차지하는 면적과 강물의 양으로 따지면 아마존 강이 세계에서 가장 크다.

 

우림 지대는 또 어느 곳에 있을까?

아마존 강 유역과 같은 우림 지대는 적도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중앙아프리카의 콩고 분지인도 남부동남아시아파푸아 뉴기니호주 북동부 연안 등이 우림 지대이다그중에서도 가장 넓은 우림 지대는 바로 아마존 강 유역이다아마존 강 주변의 우림 지대는 다른 우림 지대를 모두 합한 것보다도 더 넓다.

 

아마존 강의 자연은 어떤 위기에 처해 있을까?

아마존 강 유역은 지구의 허파라고 불린다수많은 식물들이 모여 있어서 지구 산소의 약 4분의 1을 생산해 내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아마존 강 유역이 환경 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다사람들이 이곳에 농장을 짓고 도로를 놓고 댐을 건설하느라 식물을 마구 없애는 바람에 밀림의 면적이 점점 줄고 동물들이 멸종하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많은 환경 단체들이 아마존 강의 동물과 식물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 - 아이언맨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함께 만나는 필름 속 인문학
라이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이너의 유튜브 영화채널을 추천받아 구독한 지는 좀 되었다열혈 구독자는 아니지만 굳이 다른 채널을 찾아볼 마음이 들지 않게 충분한 만족을 주는 채널임에는 분명하다화면도 나레이션도 자극적인 것이 없어 좋다체력과 면역이 약해 쉽게 지치거나 질리는 나로서는 휴식 시간에 기꺼이 방문하는 곳이다.

 

공부할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 드는 편을 골라 듣는 다소 불성실하고 다분히 이기적인 의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독자이지만출간 소식은 반가웠다일하거나 책 읽다 지칠 때 휴식 동반자이자 즐거움 제공자인 매체를 책으로 읽는 게 맞나 싶은어쩐지 관계의 변질 같아서 망설이다 목차 때문에 굴복하고 말았다.

 

내가 아주 조금만 더 자기중심적 사고가 뚜렷했다면 이 책의 목차는 나를 겨냥한 의도가 일부 있으리라 생각될 만큼 영화와 인문학자들의 면면이 모른 척 하기에 인연이 오래된 구성이었다그리고 완독한 느낌은 솔직하게 기대 이상이었다전공자로서 안일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그런 여유는 싹 없앨 만큼 깊이 있는 철학 이론을 섬세하게 잘 활용해서 영화라는 대중문화를 정성들여 설명하고 있다술술 읽힐 거라는 짐작과는 다르게 심각하게 정독했다이렇게 또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1.

 

할리우드영화감독들이 여전히 읽고 지니고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eri poiētikēs)의 명성을 떠올려보면비극의 서사는 독자 혹은 시청자들이 가장 호감을 느끼는 인물의 몰락과 죽음이어야 가장 극적’dramatic일 수 있다토니 스타크의 <아이언맨>은 배우에 대한 호감이든 캐릭터에 대한 인기이든 그 둘의 시너지이든인기를 얻을수록 죽음에 가까워지는 운명을 고대로부터 예정 받은 것이었다.

 

우리가 비극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우리가 이토록 영웅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그들의 영웅적인 모습과 실패를 가슴에 담아두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그 핵심은 바로 공감에 있습니다우리는 등장인물들이 정신적육체적 고난을 겪고 고통받는 장면을 보며 그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서사에 빠져들게 됩니다고통과 좌절은 우리에게도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마약 복용과 철없는(?) 행동으로 비난받고 추방되고 단역에 잠시 등장할 때부터 이 배우에게 호감을 가졌다슈퍼맨 ** <Man of Steel>보다 더 별로인 아이언맨으로 복귀했을 때의 반가움과 그 덕에 어벤져스 시리즈를 다 보고 만 팬으로서 이 플롯은 최고이자 최악인 황홀한 극적 장치였다


매회 히어로들이 처참하게 패배한다상영이 끝나고 화를 내는 관객을 실제로 본 적도 있다그때 그 기묘했던 충격을 이 책을 읽으며 비슷하게 느낀다아리스토텔레스의 미토스와 파토스라니몇 줄로 설명이 불가능하니 내용 소개는 할 수 없다.

 

이것이 한글 표준표기법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놀랍다.

** 이것도수퍼맨을 왜 굳이 슈퍼맨으로충격이다.

 

2.

 

어떤 영화를 더 많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내게 <블레이드 러너>는 리들리 스콧 감독 연출, 1982년 개봉작이다이 영화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지나쳐서 전도와 비평 사이를 오가는 나를 참아주느라 지인들이 고생을 했다.

 

역시나 나의 마이너한 취향은 일관적이다역사상 최고의 SF라고 평가받는 이 영화는 심지어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렸다수년 간 떠들 만큼 떠들어서 여기에서 영화 이야기를 다시 하진 않겠지만내 존재를 흔들고 인식 기반을 흔들어 대던 이 영화의 모든 장면들 중대사들마저 모두 기억나는 그 장면을 떠올리니 여전히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린다.



로이 베티 그는 떠났고(2019나는 늙어가는 중이다.

 

난 너희 인간들이 믿지 못할 것들을 봤어오리온의 어깨에서 불타오르는 강습함들탄호이저 게이트 곁의 암흑 속에서 반짝이는 C-빔들도 봤지그 모슨 순간들이 곧 사라지겠지마치 빗속의 눈물처럼죽을 시간이야.”

 

인간은 복제품이라 불리는 리플리컨트의 이데아가 될 수 없었던비열하고 경솔하고 잔인하고 무지해서 아무 자격도 없어 보여 참담하고 처참했던,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진지하게 하게 만든 확실한 나의 영화이다.

 

당신은 진짜인가?”

당신은 원본인가?”

당신은 리플리컨트인가?”

스스로에게 보이트 캄프 테스트를 한 적이 있나요?”

 

3.

 

<매트릭스>와 르네 데카르트철학자로 명성이 가장 높지만데카르트는 수학자이고 물리학자이기도 하다그의 형이상학은 그가 인정한 엄밀한 논증적인 지식인 수학에 근거하고 있다보편적인 토대의심할 수 없는 하나를 찾아냄으로써 근대 철학과 사상이 개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위대한 학자이다.

 

수학용어 행렬을 영화 제목으로 떡 하니 붙이고 제목을 뛰어 넘는 메시지 가득한 극도로 매력적인 상업영화를 만든 워쇼스키 남매는 최고의 연출가들이었다. 세기말적인 1999년 개봉도 완벽하게 멋졌다하마터면 배우들이 읽어야했다던 책들도 찾아 읽을 뻔했다말려준 친구들에게 지금이나마 감사한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 매트릭스의 세계로 이주하였다지금도 점차 배분의 차이가 줄어들고 있으며 근 미래에는 Matrix의 라틴어 원뜻*처럼 가상세계가 모체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 matrix(n.) ...... directly from Latin mātrix (genitive mātricis) "pregnant animal," in Late Latin "womb," also "source, origin," from māter (genitive mātris) "mother" (see mother (n.1)).

 

...... 더 포스트모더니즘적입니다인식을 넘어선 세상에 대해서복제의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대표적으로 언급해야 할 인물이 바로 사이퍼라는 친구입니다중략사이퍼는 빨간 약을 선택한 걸 후회합니다. ‘빨간 약’, 즉 진실을 거부한다는 것은 가능할까요진실을 알고도 이미 인식한 세계를 거부할 수 있을까요진실은 거짓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었던가요?

 

당신의 매트릭스에 오류는 없습니까오늘도?



4.

 

히어로 영화 중 초기의 최애 영화는 팀 버튼의 <배트맨>(1990)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F판타지범죄물 책을 신나게 읽는 취향이고 팀 버튼 감독의 영화라면 그냥 보던 시절이다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딱 좋았지만 내 취향이 마이너인지라 불안했다당연히(?) 시리즈3부터 감독이 교체되어 그만 볼까 했다 발 킬머 주연이라 또 보고, 4에서 조지 클루니가 나와서 또 보다가…… 10분만 좋아도 영화 욕 안 하는 편인데 이런 코미디는 도저히 못 보겠다 싶었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나 2005년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그리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  주연인 크리스천 베일의 발성이 거의 안 들려서 영화 자막을 열심히 봐야하는 불편한 경험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인 명작들이었다.

 

융은 인간 심리의 구조를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했습니다의식의 세계에서 페르소나와 무의식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의식의 중심인 자아(ego)’입니다페르소나는 하나의 사회적 인격인데 자아는 언제나 페르소나로 일컫는 가면을 쓰고 사회활동을 한다는 것이죠이에 따르면 브루스 웨인이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인 경박한 억만장자이자 플레이보이라는 모습 역시 페르소나입니다.

 

지금은 융의 심리학보다 뇌과학을 더 열심히 읽고 배우는 입장이지만한 시절 갑갑하고 지겨웠던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이고 지루했던 세상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휘둘리지 않게 해주던 칼 융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다제일 처음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한 아이디는 페르소나였다.

 

어렵진 않지만 가볍지도 않게 철학을 재밌고 즐겁게 활용한 흥미로운 책이다나처럼 다소 거만한 태도로 어디 어떻게 썼나 보자해도 재밌을 책이다금세 겸손해져서 동의하며 즐거워하며 읽게 된다나로선 참 반가웠던 영화와 철학의 페어링을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수많은 영화들수많은 철학자들이 있으니 11편에서 그칠 이유는 없지 않나 하는 기대와 욕심이 생긴다이어지는 시리즈가 있다면 나는 분명 읽을 것이다.

 

늘 금요일보다 더 피곤한 목요일덕분에 마무리가 참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내 직업적 역할을 가교(架橋)로 인식한다.

영화와 대중을영화인과 관객을때론 영화와 세상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질문하고 기록하며 전달하는 사람.

 

당신이 여기 실린 글에서 언급한 영화를 당장 보고 싶어진다면,

해당 영화와 음식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풍성하게 떠올릴 수 있다면 무척 기쁠 것 같다.

 

제목과 표지 디자인이 나른하고 느긋해서 책을 읽기 전부터 일종의(?) 착해지는 기분이 든다영화와 요리라니가장 먼저 번쩍떠오르는 영화가 있는데 과연반갑기만 한 소재들이다내가 기대하는 장면들이 담겨 있을까 그것부터 보러 가야겠다.

 

줄리 줄리아(2009) YESSS!

 

라디오 스튜디오 안에서 절대적으로 좋은 음향 시설을 통해 듣는 방송은 언제나 조금 더 특별하게 들린다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이 깔리고 ‘ON AIR’ 사인에 불이 들어오면늘 바닥에서 두 발이 저절로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곤 했다.

 

시그널은 줄리 줄리아에 나오는 줄리아(메릴 스트립)의 테마였다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작곡한 아름다운 선율 위에 DJ의 목소리가 얹어질 때나는 매번 왠지 모르게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그 평온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일은 당장 뭐가 어떻게 될지 짐작도 안 되는데 요리는 확실해서 좋아.”

 

버터는 아무리 넣어도 지나치지 않지.”

 

요리도 영화도 본연의 재미와 품질을 모두 발휘하는 독보적인 작품이다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uignon한국식 갈비찜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요리도 아니라고 믿으니 저자께서도 언젠가 꼭 성공하시길 바란다.


 

리틀 포레스트(2018)

 

아마도 좋아하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라 믿는다나는 별 재미와 감동이 없었지만. 영화 자체의 스토리 보다 이은선 저자가 좋아하는 일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 둔 후 자책감에 시달린 이야기그래도 멈추지 않고 가고 싶은 곳들로 떠난 이야기제주에서 살면서 내가 느끼기에는 영화보다 더 멋진 고요하고 거룩한 리틀 포레스트의 추억을 만든 이야기들이 참 좋았다.



덕분에 오래 전 퇴사한 날이 떠올랐다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지만시작한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일은 해선 안 되는 것처럼 살아온 관성이 있어서무언가를 끝까지 가보지 않고 중간에 포기했다는 묘한 허전함과 약간의 서글픔이 있었다그래서인지 먹지도 않던 빅맥을 막 먹고 다시 걸은 기억이 난다처음이자 마지막 빅맥문득 기억하지 못하는 그 맛이 뭘까 궁금하다.

 

목요일 저녁에 펼치길 잘 했단 생각이 드는 책이다읽으면서 참 잘 쉬었다는 기분이 든다봤던 영화 맛봤던 음식들은 추억 덕에 즐겁고모르는 영화이름조차 생소한 음식은 궁금해서 즐겁다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걱정 없이 떠들썩하게 천천히 식사를 한 적이 언제 적 일인가 싶다어쩌면 그조차 줄여야할 정도로 다른 과소비를 펑펑하며 산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리라.

 

30년에서 500년으로 인류의 여명을 잡은 학자들의 발표가 나왔다이제까지 들은 것 중에 가장 가까운초근미래 디스토피아이다최상위 포식자가 반드시 멸종하는 대멸종 6차의 예측 시기는 500년에서 1만년이었다가격이 조금 더 싸다는 이유로 수소 대신 석유를 주 에너지원으로 정한 19세기의 그 날인류는 지구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을 격리되어 가난하게 살아갈 운명으로 스스로 결정한 것일 지도 모른다.

 

가난은 세상의 유려한 지식과 아름다운 경험에서 사람을 소외시킨다그것이 가난의 가장 공정하지 못한 점이다누군가를 강렬하게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경험의 결핍들이 메워지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의 도시, 파리 빨간콩 그림책 10
에릭 바튀 지음, 김영신 옮김 / 빨간콩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까워아까워.”

마음속에 떠오른 말은 하나뿐이었다.

이 책은 32쪽 뿐이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파리만 있으면 돼라는 작가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주 오래 전이지만 한동안 머물던 어느 겨울에,

매일 오고 가던 길과 풍경이라 내 발자국도 찾아보고 싶어지는 장면들이다.

 

에릭 바튀와 빨간콩 출판사는 운명인 듯 색감으로 엮여 있다.

빨강파리를 비추는 붉은 태양.

그래서 작가는 더 즐겁고 자유롭다.

 

난 그림을 그릴 때 무척 행복해요그래서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맘껏 그려요.”

 

붉은 태양은 그렇게 파랑이 되고 초록이 된다.

그리고 파리에게 바치는 헌사가 된다.

모든 것이 자유롭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파리로 오라는.

 

언제나 공사 중이었는데 불타버리기까지 한 노트르담은 잘 회복하고 있는지,

요즘 듣는 파리 소식은 확진자 수와 저녁 7시 락다운이라 참담하고 슬프다.



바게트 빵과 파리의 아연 지붕, 다음 세계문화유산은 무엇이 될까, 소식을 기다리는 중.



두근거리고 설레는 일은 몽땅 사라지고 지끈거리고 욱신거리는 통증들만 옮겨 다닌다.

 

계속 이렇게 사는 거... 아니겠지.

 

..........................


에릭바튀Eric_Battut:


예술의 도시파리를 통해 19세기 말 벨에포크(아름다운 시절)의 파리에서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위젠 앗제(Eugene Atget ; 19세기 말 20세기 초 프랑스 사진작가산업혁명으로 인해 사라져가는 파리의 옛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노력했다)가 파리코뮌(1871)부터 1914년까지 찍은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었지요더불어 글과 그림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홍콩 정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32
정우신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홍콩 정원>의 초입에서 [핑크 스팀]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았다이때 정원의 계절은 가을인가. ‘옷차림만 달라진 계절이라며떨어지는 것들을 보며시인은 충분하다고 뛰어내리라고 누가 부른 거냐고’ 묻는다화가 난 것일까아쉬워하는 것일까안타까워하는 것일까슬퍼하는 것일까기대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그만 떨어져버린 것들을 추모하는 것일까.

 

알루미늄을 씹었다 뱉었다’. 소리 없이 읽어도 혀를 문 것처럼 시고 뜨거운 맛이 흐른다뭘까왜일까환경부담이 커서 플라스틱만큼이나 주의 깊게 구입하지 않은지 오래다중국조차 400억이나 줄 테니 한국에다 공장을 만들자고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지만여전히 우리는 알루미늄 쿠킹 호일에다 갖가지 맛난 음식들을 굽고 찌고 싸고 나눈다시인은 그 포장지를 뜯어 씹었을까.

 

물과 가까워서 가볍지 않은 미래/슬픔은 무엇일가내게 슬픈 물은 한동안 바다였다영원히 뇌리에게 지우지 못할 기울어진 배를 아래로 당기던 푸른 바다의 물그 짙푸른 장면을 부정하듯 붉은 글씨로 전원구조라 쓰인 거짓말.

 

얼마 동안이었을까물을 보러 가지 못한 시간이온 가족이 여름휴가를 포기했고다음해였던가…… 영화를 보러갔다 바다가 화면 가득 나와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나야했다어른들을 믿었고 어른들이 믿은 이들 덕에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물과 가까워져서 무겁게 가라앉은 우리의 미래였던 이들이 꽃잎처럼 단풍처럼 물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들이 돌아오지 못해 우리는 신화 속의 조상들처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만약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노래를 해야했다바다를 향해푸른집을 향해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었다 잎들마저 또 다시 떨어지는 시퍼런 세월을 탄원해야했다.

 

겨울에도 얼어붙지 않던 눈물들이 그 푸른집을 비워내고 푸른 바다에 도착하자 어둠 속에서 물을 가르고 슬픔이 올라왔다.

 

손끝으로 어둠을 두드리는 일은 무엇이고 누구일까손끝으로 톡톡 어둠처럼 창백한 백지를 채우는 글 쓰는 소리일까주먹으로 어둠을 두드린 사람들은 더러는 어둠 속으로 실종되었고 더러는 잠시 찢어발기기도 했다아마도손끝으로 어둠을 두드리는 소리들을 모두 녹음해서 내 삶의 초침과 분침과 시침으로 두고 싶다.

 

입속의 자두 익어가는 소리에 또 다시 시고 뜨거운 맛이 흐른다그새 정원은 다른 여름자두 익어가는 8월인가 보다나는 복숭아 맛을 모른다먹으면 숨을 못 쉬게 된다하여 맛을 기억할 수 있기 전부터 먹어보질 못했다그러니 비유만이 아니라 실제로 천도天桃세계의 과일일 뿐이다.

 

대신 자두는 먹을 수 있다당도만이 최선이라는 법이 있는 건지 먹으면 급성 당뇨가 올 듯한 한국의 재배 과일들을 좋아하지 않지만자두는 진한 단맛 속에도 상큼한 신 맛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내가 본질임을 꼿꼿이 주장한다간혹 몸서리쳐질 만큼 시큼하고 찌릿한 성격 그대로 성장한 자두를 만나면 들큼하고 지긋지긋한 상품들 속에서 빛나는 야생을 만난 듯 기분이 싱싱해져 기쁘다.

 

얄팍한 삶과 사고의 치명적인 부산물처럼 초라한 문장들 말고는 더 쓸 것도 없는데 <핑크 스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알루미늄에 자두를 섞어 태워도 핑크 스팀은 만들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