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32
정우신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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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콩 정원>의 초입에서 [핑크 스팀]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았다이때 정원의 계절은 가을인가. ‘옷차림만 달라진 계절이라며떨어지는 것들을 보며시인은 충분하다고 뛰어내리라고 누가 부른 거냐고’ 묻는다화가 난 것일까아쉬워하는 것일까안타까워하는 것일까슬퍼하는 것일까기대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그만 떨어져버린 것들을 추모하는 것일까.

 

알루미늄을 씹었다 뱉었다’. 소리 없이 읽어도 혀를 문 것처럼 시고 뜨거운 맛이 흐른다뭘까왜일까환경부담이 커서 플라스틱만큼이나 주의 깊게 구입하지 않은지 오래다중국조차 400억이나 줄 테니 한국에다 공장을 만들자고 모욕의 대상이 되었다지만여전히 우리는 알루미늄 쿠킹 호일에다 갖가지 맛난 음식들을 굽고 찌고 싸고 나눈다시인은 그 포장지를 뜯어 씹었을까.

 

물과 가까워서 가볍지 않은 미래/슬픔은 무엇일가내게 슬픈 물은 한동안 바다였다영원히 뇌리에게 지우지 못할 기울어진 배를 아래로 당기던 푸른 바다의 물그 짙푸른 장면을 부정하듯 붉은 글씨로 전원구조라 쓰인 거짓말.

 

얼마 동안이었을까물을 보러 가지 못한 시간이온 가족이 여름휴가를 포기했고다음해였던가…… 영화를 보러갔다 바다가 화면 가득 나와 기어이 자리에서 일어나야했다어른들을 믿었고 어른들이 믿은 이들 덕에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물과 가까워져서 무겁게 가라앉은 우리의 미래였던 이들이 꽃잎처럼 단풍처럼 물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들이 돌아오지 못해 우리는 신화 속의 조상들처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만약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노래를 해야했다바다를 향해푸른집을 향해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었다 잎들마저 또 다시 떨어지는 시퍼런 세월을 탄원해야했다.

 

겨울에도 얼어붙지 않던 눈물들이 그 푸른집을 비워내고 푸른 바다에 도착하자 어둠 속에서 물을 가르고 슬픔이 올라왔다.

 

손끝으로 어둠을 두드리는 일은 무엇이고 누구일까손끝으로 톡톡 어둠처럼 창백한 백지를 채우는 글 쓰는 소리일까주먹으로 어둠을 두드린 사람들은 더러는 어둠 속으로 실종되었고 더러는 잠시 찢어발기기도 했다아마도손끝으로 어둠을 두드리는 소리들을 모두 녹음해서 내 삶의 초침과 분침과 시침으로 두고 싶다.

 

입속의 자두 익어가는 소리에 또 다시 시고 뜨거운 맛이 흐른다그새 정원은 다른 여름자두 익어가는 8월인가 보다나는 복숭아 맛을 모른다먹으면 숨을 못 쉬게 된다하여 맛을 기억할 수 있기 전부터 먹어보질 못했다그러니 비유만이 아니라 실제로 천도天桃세계의 과일일 뿐이다.

 

대신 자두는 먹을 수 있다당도만이 최선이라는 법이 있는 건지 먹으면 급성 당뇨가 올 듯한 한국의 재배 과일들을 좋아하지 않지만자두는 진한 단맛 속에도 상큼한 신 맛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내가 본질임을 꼿꼿이 주장한다간혹 몸서리쳐질 만큼 시큼하고 찌릿한 성격 그대로 성장한 자두를 만나면 들큼하고 지긋지긋한 상품들 속에서 빛나는 야생을 만난 듯 기분이 싱싱해져 기쁘다.

 

얄팍한 삶과 사고의 치명적인 부산물처럼 초라한 문장들 말고는 더 쓸 것도 없는데 <핑크 스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알루미늄에 자두를 섞어 태워도 핑크 스팀은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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