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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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직업적 역할을 가교(架橋)로 인식한다.

영화와 대중을영화인과 관객을때론 영화와 세상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질문하고 기록하며 전달하는 사람.

 

당신이 여기 실린 글에서 언급한 영화를 당장 보고 싶어진다면,

해당 영화와 음식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풍성하게 떠올릴 수 있다면 무척 기쁠 것 같다.

 

제목과 표지 디자인이 나른하고 느긋해서 책을 읽기 전부터 일종의(?) 착해지는 기분이 든다영화와 요리라니가장 먼저 번쩍떠오르는 영화가 있는데 과연반갑기만 한 소재들이다내가 기대하는 장면들이 담겨 있을까 그것부터 보러 가야겠다.

 

줄리 줄리아(2009) YESSS!

 

라디오 스튜디오 안에서 절대적으로 좋은 음향 시설을 통해 듣는 방송은 언제나 조금 더 특별하게 들린다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이 깔리고 ‘ON AIR’ 사인에 불이 들어오면늘 바닥에서 두 발이 저절로 붕 떠오르는 느낌이 들곤 했다.

 

시그널은 줄리 줄리아에 나오는 줄리아(메릴 스트립)의 테마였다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작곡한 아름다운 선율 위에 DJ의 목소리가 얹어질 때나는 매번 왠지 모르게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그 평온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일은 당장 뭐가 어떻게 될지 짐작도 안 되는데 요리는 확실해서 좋아.”

 

버터는 아무리 넣어도 지나치지 않지.”

 

요리도 영화도 본연의 재미와 품질을 모두 발휘하는 독보적인 작품이다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uignon한국식 갈비찜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요리도 아니라고 믿으니 저자께서도 언젠가 꼭 성공하시길 바란다.


 

리틀 포레스트(2018)

 

아마도 좋아하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라 믿는다나는 별 재미와 감동이 없었지만. 영화 자체의 스토리 보다 이은선 저자가 좋아하는 일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 둔 후 자책감에 시달린 이야기그래도 멈추지 않고 가고 싶은 곳들로 떠난 이야기제주에서 살면서 내가 느끼기에는 영화보다 더 멋진 고요하고 거룩한 리틀 포레스트의 추억을 만든 이야기들이 참 좋았다.



덕분에 오래 전 퇴사한 날이 떠올랐다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지만시작한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일은 해선 안 되는 것처럼 살아온 관성이 있어서무언가를 끝까지 가보지 않고 중간에 포기했다는 묘한 허전함과 약간의 서글픔이 있었다그래서인지 먹지도 않던 빅맥을 막 먹고 다시 걸은 기억이 난다처음이자 마지막 빅맥문득 기억하지 못하는 그 맛이 뭘까 궁금하다.

 

목요일 저녁에 펼치길 잘 했단 생각이 드는 책이다읽으면서 참 잘 쉬었다는 기분이 든다봤던 영화 맛봤던 음식들은 추억 덕에 즐겁고모르는 영화이름조차 생소한 음식은 궁금해서 즐겁다좋아하는 사람들과 모여 걱정 없이 떠들썩하게 천천히 식사를 한 적이 언제 적 일인가 싶다어쩌면 그조차 줄여야할 정도로 다른 과소비를 펑펑하며 산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리라.

 

30년에서 500년으로 인류의 여명을 잡은 학자들의 발표가 나왔다이제까지 들은 것 중에 가장 가까운초근미래 디스토피아이다최상위 포식자가 반드시 멸종하는 대멸종 6차의 예측 시기는 500년에서 1만년이었다가격이 조금 더 싸다는 이유로 수소 대신 석유를 주 에너지원으로 정한 19세기의 그 날인류는 지구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을 격리되어 가난하게 살아갈 운명으로 스스로 결정한 것일 지도 모른다.

 

가난은 세상의 유려한 지식과 아름다운 경험에서 사람을 소외시킨다그것이 가난의 가장 공정하지 못한 점이다누군가를 강렬하게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경험의 결핍들이 메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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