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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 - 아이언맨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함께 만나는 필름 속 인문학
라이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3월
평점 :
라이너의 유튜브 영화채널을 추천받아 구독한 지는 좀 되었다. 열혈 구독자는 아니지만 굳이 다른 채널을 찾아볼 마음이 들지 않게 충분한 만족을 주는 채널임에는 분명하다. 화면도 나레이션도 자극적인 것이 없어 좋다. 체력과 면역이 약해 쉽게 지치거나 질리는 나로서는 휴식 시간에 기꺼이 방문하는 곳이다.
공부할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에 드는 편을 골라 듣는 다소 불성실하고 다분히 이기적인 의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독자이지만, 출간 소식은 반가웠다. 일하거나 책 읽다 지칠 때 휴식 동반자이자 즐거움 제공자인 매체를 책으로 읽는 게 맞나 싶은, 어쩐지 관계의 변질 같아서 망설이다 목차 때문에 굴복하고 말았다.
내가 아주 조금만 더 자기중심적 사고가 뚜렷했다면 이 책의 목차는 나를 겨냥한 의도가 일부 있으리라 생각될 만큼 영화와 인문학자들의 면면이 모른 척 하기에 인연이 오래된 구성이었다. 그리고 완독한 느낌은 솔직하게 기대 이상이었다. 전공자로서 안일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런 여유는 싹 없앨 만큼 깊이 있는 철학 이론을 섬세하게 잘 활용해서 영화라는 대중문화를 정성들여 설명하고 있다. 술술 읽힐 거라는 짐작과는 다르게 심각하게 정독했다. 이렇게 또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1.
할리우드* 영화감독들이 여전히 읽고 지니고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eri poiētikēs)의 명성을 떠올려보면, 비극의 서사는 독자 혹은 시청자들이 가장 호감을 느끼는 인물의 몰락과 죽음이어야 가장 ‘극적’dramatic일 수 있다. 토니 스타크의 <아이언맨>은 배우에 대한 호감이든 캐릭터에 대한 인기이든 그 둘의 시너지이든, 인기를 얻을수록 죽음에 가까워지는 운명을 고대로부터 예정 받은 것이었다.
우리가 비극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토록 영웅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그들의 영웅적인 모습과 실패를 가슴에 담아두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핵심은 바로 ‘공감’에 있습니다. 우리는 등장인물들이 정신적, 육체적 고난을 겪고 고통받는 장면을 보며 그들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서사에 빠져들게 됩니다. 고통과 좌절은 우리에게도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마약 복용과 철없는(?) 행동으로 비난받고 추방되고 단역에 잠시 등장할 때부터 이 배우에게 호감을 가졌다. 슈퍼맨 ** <Man of Steel>보다 더 별로인 ‘아이언맨’으로 복귀했을 때의 반가움과 그 덕에 어벤져스 시리즈를 다 보고 만 팬으로서 이 플롯은 최고이자 최악인 황홀한 극적 장치였다.
매회 히어로들이 처참하게 패배한다. 상영이 끝나고 화를 내는 관객을 실제로 본 적도 있다. 그때 그 기묘했던 충격을 이 책을 읽으며 비슷하게 느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토스와 파토스라니. 몇 줄로 설명이 불가능하니 내용 소개는 할 수 없다.
* 이것이 한글 표준표기법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놀랍다.
** 이것도! 수퍼맨을 왜 굳이 슈퍼맨으로! 충격이다.
2.
어떤 영화를 더 많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블레이드 러너>는 리들리 스콧 감독 연출, 1982년 개봉작이다. 이 영화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지나쳐서 전도와 비평 사이를 오가는 나를 참아주느라 지인들이 고생을 했다.
역시나 나의 마이너한 취향은 일관적이다. 역사상 최고의 SF라고 평가받는 이 영화는 심지어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렸다. 수년 간 떠들 만큼 떠들어서 여기에서 영화 이야기를 다시 하진 않겠지만, 내 존재를 흔들고 인식 기반을 흔들어 대던 이 영화의 모든 장면들 중, 대사들마저 모두 기억나는 ‘그 장면’을 떠올리니 여전히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린다.
로이 베티 그는 떠났고(2019년) 나는 늙어가는 중이다.
“난 너희 인간들이 믿지 못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의 어깨에서 불타오르는 강습함들. 탄호이저 게이트 곁의 암흑 속에서 반짝이는 C-빔들도 봤지. 그 모슨 순간들이 곧 사라지겠지. 마치 빗속의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야.”
인간은 복제품이라 불리는 리플리컨트의 이데아가 될 수 없었던, 비열하고 경솔하고 잔인하고 무지해서 아무 자격도 없어 보여 참담하고 처참했던,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진지하게 하게 만든 확실한 나의 영화이다.
“당신은 진짜인가?”
“당신은 원본인가?”
“당신은 리플리컨트인가?”
“스스로에게 보이트 캄프 테스트를 한 적이 있나요?”
3.
<매트릭스>와 르네 데카르트, 철학자로 명성이 가장 높지만, 데카르트는 수학자이고 물리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형이상학은 그가 인정한 엄밀한 논증적인 지식인 수학에 근거하고 있다. 보편적인 토대, 의심할 수 없는 하나를 찾아냄으로써 근대 철학과 사상이 개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위대한 학자이다.
수학용어 ‘행렬’을 영화 제목으로 떡 하니 붙이고 제목을 뛰어 넘는 메시지 가득한 극도로 매력적인 상업영화를 만든 워쇼스키 남매는 최고의 연출가들이었다. 세기말적인 1999년 개봉도 완벽하게 멋졌다. 하마터면 배우들이 읽어야했다던 책들도 찾아 읽을 뻔했다. 말려준 친구들에게 지금이나마 감사한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 매트릭스의 세계로 이주하였다. 지금도 점차 배분의 차이가 줄어들고 있으며 근 미래에는 Matrix의 라틴어 원뜻*처럼 가상세계가 모체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 matrix(n.) ...... directly from Latin mātrix (genitive mātricis) "pregnant animal," in Late Latin "womb," also "source, origin," from māter (genitive mātris) "mother" (see mother (n.1)).
...... 더 포스트모더니즘적입니다. 인식을 넘어선 세상에 대해서, 복제의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언급해야 할 인물이 바로 ‘사이퍼’라는 친구입니다. 중략. 사이퍼는 ‘빨간 약’을 선택한 걸 후회합니다. ‘빨간 약’, 즉 ‘진실’을 거부한다는 것은 가능할까요? 진실을 알고도 이미 인식한 세계를 거부할 수 있을까요? 진실은 거짓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었던가요?
당신의 매트릭스에 오류는 없습니까, 오늘도?
4.
히어로 영화 중 초기의 최애 영화는 팀 버튼의 <배트맨>(1990)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F판타지범죄물 책을 신나게 읽는 취향이고 팀 버튼 감독의 영화라면 그냥 보던 시절이다.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딱 좋았지만 내 취향이 마이너인지라 불안했다. 당연히(?) 시리즈3부터 감독이 교체되어 그만 볼까 했다 발 킬머 주연이라 또 보고, 4에서 조지 클루니가 나와서 또 보다가…… 10분만 좋아도 영화 욕 안 하는 편인데 이런 코미디는 도저히 못 보겠다 싶었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나 2005년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 그리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 주연인 크리스천 베일의 발성이 거의 안 들려서 영화 자막을 열심히 봐야하는 불편한 경험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동적인 명작들이었다.
융은 인간 심리의 구조를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했습니다. 의식의 세계에서 페르소나와 무의식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의식의 중심인 ‘자아(ego)’입니다. 페르소나는 하나의 사회적 인격인데 자아는 언제나 페르소나로 일컫는 가면을 쓰고 사회활동을 한다는 것이죠. 이에 따르면 브루스 웨인이 보여주는 또 다른 모습인 경박한 억만장자이자 플레이보이라는 모습 역시 페르소나입니다.
지금은 융의 심리학보다 뇌과학을 더 열심히 읽고 배우는 입장이지만, 한 시절 갑갑하고 지겨웠던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이고 지루했던 세상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휘둘리지 않게 해주던 칼 융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다. 제일 처음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한 아이디는 ‘페르소나’였다.
어렵진 않지만 가볍지도 않게 철학을 재밌고 즐겁게 활용한 흥미로운 책이다. 나처럼 다소 거만한 태도로 어디 어떻게 썼나 보자, 해도 재밌을 책이다. 금세 겸손해져서 동의하며 즐거워하며 읽게 된다. 나로선 참 반가웠던 영화와 철학의 페어링을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영화들,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으니 11편에서 그칠 이유는 없지 않나 하는 기대와 욕심이 생긴다. 이어지는 시리즈가 있다면 나는 분명 읽을 것이다.
늘 금요일보다 더 피곤한 목요일, 덕분에 마무리가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