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기간이다. 레인시즌인 것이다. 엇 그제 밤에는 폭우의 소리가 대단했다. 불을 끄고, 라디오 소리도 끄고, 유튜브도 끄고 지축을 울리는 빗소리에 집중을 하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별로 무섭지 않은 것들이 어른이 되어서 무섭게 다가온다. 어린이 때 귀신보다 어른이 더 무서웠는데 이제 그 무서운 어른이 되었지만 세상은 온통 무서운 것들 투성이다.


오늘은 집에 오는데 해안도로가 엄청나게 내리는 비 때문에 3차선 중 2차선이 물에 잠겨 경찰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데 비가 너무 쏟아지니 불안하고 무서웠다. 공포다. 비가 많이 내리면 언젠가부터 무섭기 시작한다. 빗길에 사고가 났는지 차들이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거북이 운행으로 가다 보니 자동차 한 대가 구겨진 종이짝처럼 완전히 구겨져 있었다. 분명 운전자는 사망했을 것이다. 자동차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점점 더 무서워졌다.


여동생이 뚝섬 근처 대학교로 가면서 반지하에서 살았다. 한 번 놀러 갔다가 아침에 눈을 떴는데 캄캄해서 이른 아침인 줄 알았는데 오후 1시였다. 비가 오면 겁이 난다고 했다. 특히 비가 하루 이틀 지속되면 언제라도 당장 달려 나갈 준비를 하며 지내야 했다.


장마 때문에 비가 너무 내려 강물이 불어나고 그 강물에 모든 것이 쓸려 내려가는 모습을 아이폰 3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카메라를 들고나가서 그런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무서운 게 없었다. 태풍이 오면 집 앞이 바닷가이니 방파제에 나가서 파도가 테트라포드에 부딪혀 엄청난 포말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카메라 담느라 신났다. 그런데 지금은 비가 많이 내리면 무섭다. 그래서 건물 밖으로 나가려 하지도 않는다.


어릴 때 비가 와서 물웅덩이가 보이면 장화를 신고 일부러 그 안에 들어가서 첨벙첨벙 물놀이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런 놀이를 하지 않게 되었다.


장마기간에, 굽굽하고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울 때 찬물을 몸에 찌끄리고 나면 엄마가 부침개를 해주었다. 기름옷을 입고 노릇하게 잘 구워져 먹으면 너무 맛있었다. 아버지는 집에서는 술을 드시지 않았는데 장마기간의 주말이면 가족이 모여 마당에 떨어지는 비를 보며 전, 부침개를 먹었다. 비가 쏴아 쏟아져도 무섭지 않았다.


부침개는 밥이 아니라 식사에서 멀어진, 그래서 어쩐지 집 안에서 소풍 같은 기분을 갖게 했다. 동생은 왔다 갔다 하며 질문이 많고, 엄마는 덥지만 부침개가 접시에서 떨어질 때 또 부쳐서 내왔다. 에어컨도 없는데 선풍기만으로 잘 도 여름을 지냈다.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티브이 만화도 같이 봤다. 조카가 여름에 집에 놀러 오면 만화를 보는데 동참하려고 해도 아, 조카가 좋아하는 만화에는 적응이 잘 안 되었다. 나는 지금도 주위에서 애니메이션을 많이 봐서 초딩들과 꽤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귀멸의 칼날은 디오라마를 만들어 버릴 정도로 좋아하고, 사이타마의 원펀맨, 이 세계 삼촌부터 고전(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헬싱까지. 아무튼 만화를 엄청 좋아하는 편인데 조카가 좋아하는 만화는 아따맘마까지다.


어떻든 울 아버지도 어른으로 분명 만화를 아이들과 같이 보는 것이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기공룡 둘리는 전부 앉아서 재미있게 봤다. 레인시즌에 먹는 부침개는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서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둘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가 내려서 마당을 적시고, 가족이 전부 밥상에 붙어 둘리를 보며 호박전을 먹었다. 아버지가 옆에서 있었고 엄마도 젊어 손맛이 좋았다.


며칠 전에 복면가왕에서 오승원의 둘리를 들었다. 그 첫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화악 몰려왔다. 둘리는 이상한 게,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다. 웃기고 명랑만화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항상 슬프다. 그 슬픔은 그리움에서 나온 것이고 둘리가 엄마와 떨어져 지내면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을 오승원이 노래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오승원의 그 한 소절이 미소를 짓게 하면서 마음을 온통 두드렸다. 다시 둘리를 보면 알겠지만 온갖 여러 편에서 둘리가 나오지만 둘리는 엄마가 없다. 엄마를 잃은 둘리의 그 마음이 고스란히 보는 이들에게 전해진다. 복면가왕에서 오승원이 부르는 둘리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오승원의 목소리가 그리움인 것이다.


부침개를 만들어 먹었다.

예전만큼의 맛이 나지 않는다.

훨씬 맛있을 텐데 예전만큼 맛있지 않은 건 같이 둘리를 보던 아버지는 없고, 빗소리는 예전보다 무섭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기향 연기가 올라다가 선풍기 바람에 날려 공중으로 확 퍼졌고, 아버지는 모기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방충망을 더욱 견고하게 다듬었다. 비가 내려 나뭇잎들이 마당에 떨어져 쓸려 내려갔다. 아버지는 물구멍이 막힌다며 나가서 나뭇잎들을 거둬냈다. 엄마는 부침개를 옆 집에 나눠주었다. 옆 집에서 시원한 단술을 가져다주었다. 아, 맛있다. 땀을 닦고, 빗물을 털어내고 갓 부친 부침개를 먹으며 작은 화면 속 둘리와 인사를 했다.


동심으로 돌아간 마법 같은 무대� 오승원의 <아기공룡 둘리> https://youtu.be/3q4Ey8BcB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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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 나온 영화 ‘우리들의 고교시대’의 여주인공으로 장덕이 나온다. 장덕은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였다. 그리고 배우로도 활동을 했다.


우리들의 고교시대에서 김정훈은 소심하고 여성스러워 집안에서 걱정이 많다. 왜냐하면 그런 김정훈이 행글라이더를 타고 운동도 잘하고 피아노를 전공하는 여고생 장덕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정 반대의 성격이지만 두 사람이 친구가 되는 청순한 러브 스토리를 영화는 이야기한다. 김정훈은 바느질을 잘하고 오이팩을 하며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뜨개질을 하다가 장덕의 얼굴이 떠올라 애가 타는 모습이 재미있다.


60년대 르네상스를 맞이했던 영화는 70년대 중반 이후 침제기에 접어든다. 집집마다 보급된 티브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주말의 명화 – 토요명화‘와 '명화극장'을 했기에 사람들은 굳이 극장으로 가지 않아도 가족과 단란하게 방에 누워 더빙판 주말의 명화를 보는 게 좋았다.


그래도 극장가에서 인기가 있었던 건 하이틴 청춘 영화였다. 꾸준하게 사람들이 좋아했다. 당시 하이틴 영화 속에는 지금 봐도 부러울 정도의 정원이 딸린 큰 집에 사는 부자와 부자인 그들이 소시민처럼 소박하고 친밀하게 그려지는 내용이 많다.


고교얄개의 이승현의 집도 그렇다. 이승현은 되바라지고 부자에 태권도 선수이며 누나가 무려 정윤희다. 정윤희는 정말 너무 예쁜 거 아님. 이승현은 누나인 정윤희의 얼굴에 연탄칠을 살짝 한다. 그것도 모르고 정윤희가 밖으로 뛰어 나갔다가 그 예쁜 얼굴에 연탄이 묻은 걸 알고 ㅋㅋㅋ 이승현은 모자라는 것 없고 사치에 못 사는 애들을 깔보며 살아갈 것 같은데 양로원을 찾아서 노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가난하게 누나와 단 둘이 사는 김정훈을 위해 신문배달도 한다. 검열이 가득했던 시기에 하이틴 영화 속에는 일반인들이 꿈꾸는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었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고교얄개 2편 격인 고교우량아에서 정윤희


그래서 얄개시리즈가 많이 나왔다. 1편부터 있지만 내용이 이어지는 건 ‘고교얄개’ 뿐이다. 이후 얄개행진곡, 고교 명랑교실, 고교우량아, 소문난 고교생 등 엄청나게 얄개 시리즈가 쏟아졌다.


얄개 시리즈는 대부분 내용이 거기서 거긴데, 거기서 거기라 대부분 보면 재미있다. 주인공을 하는 배우가 대부분 이승현, 진유영 위주였는데 ‘우리들의 고교시대’에서는 김정훈과 장덕이 주인공으로 나왔다.


우리들의 고교시대는 당시 하이틴 영화를 잘 만들어 내는 감독 세 명이 돌아가면서 옴니버스 식으로 제작한 3편 중 한 편이다. 장덕, 극 중 영아는 집안 때문에 한국을 떠나야 하고 김정훈, 태수는 보내기 싫어서 운다 엉엉. 영아는 태수를 놓고 외국으로 가야 하기에 일부러 못되게 군다. 하지만 태수와 함께 타기 위해 2인용 행글라이더를 제작하고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같이 행글라이더를 타면 영화는 끝이 난다.



장덕이 대중에게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무대가 진미령의 데뷔곡 ‘소녀와 가로등’을 부르는 무대였다. 당시 제1회 MBC 서울가요제는 무대에 가수와 작곡가가 다를 때 같이 무대에 올라야 하는 규정이 있어서 장덕도 같이 무대에 오른다. 그때 장덕의 나이 17세. 빵모자 같은 모자를 쓰고 진미령이 부르는 노래 뒤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진미령과 장덕의 소녀와 가로등 https://youtu.be/HE_K-VbkIUI


그때 사람들은, 대중과 음악 전문가들은 도대체 저 소녀는 누구지? 누군데 저렇게 지휘를 잘하는 거야? 같은 반응이었다. 소녀와 가로등은 장덕의 곡으로 가사가 정말 애절한데 이는 장덕의 애틋한 경험으로 쓴 곡이라 그렇다.


장덕은 첼로 연주가 아버지와 서영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이혼을 하고 아빠와 지내면서 동양사상에 빠진 아버지와 음악 활동으로 바쁜 오빠를 기다리느라 늘 집에서 홀로 지냈다. 매일 밤 오빠와, 아버지가 언제 들어오나 가로등 밑에서 기다리며 떠올린 곡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장덕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유튜브에서 전문 채널을 통해서 보기 바랍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뇌피셜이라 잘못된 정보가 될 수도 있음.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진미령이 노래를 끝내면 무대에 장덕도 올라와서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한다. 장덕은 일찍부터 음악을 했던 오빠 장현과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유튜브 4490 캡처 사진


장덕은 5학년 때 숙제를 하기 위해 오빠에게 배운 기타로 음악에 빠져들었다. 장덕은 오빠인 장현과 함께 드레곤 렛츠라는 그룹을 만들어서 음악활동을 한다. 남매듀오로 미 8군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당시의 포크송 분위기가 강했다. 쎄시봉 같은 느낌의 노래를 불렀다. 듣기 편안하고 귀에 쏙 들어오는 곡의 느낌이었다. 그때 장덕이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있던 송창식이 가수를 준비하고 있던 진미령과 연결을 시켜주며 ‘소녀와 가로등’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장덕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히트를 친 소녀와 가로등 이외에 이미 15세에 작곡해 놓은 곡들이 서른 곡이나 있었다. 그때까지 없던 새로운 예술을 하는 가수가 탄생한 거니까 센세이션이었다. 직접 부른 노래도 인기가 엄청났지만 당시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가수들이 장덕의 곡을 받으려고 찾아왔다. 그 속에는 설운도, 주현미 등이 있었고 연기자인 오연수도 노래를 받으려고 찾아왔었다.


그러다가 이은하에게 한 곡을 주게 되는데, 이은하는 노래는 잘 부르지만 밤무대 가수 같은 뭔가 2류 가수의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장덕에게 받은 그 한 곡 덕분에 이은하는 재즈와 발라드도 소화해 내는 훌륭한 가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그 노래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었다.


장덕은 국제 가요제 이후 3년 연속 수상 속 작곡자가 되고, 마음의 행로의 출연을 계기로 연예계의 배우로도 데뷔를 하며, ‘현이와 덕이’로 음악 활동도 한다. 안양예고에 들어가면서 저 위의 영화처럼 하이틴 영화 10여 편이나 주연을 차지하게 된다.


승승장구만 할 것 같았던 장현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어머니가 있는 미국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한다. 테네시 주립대학에서 작곡공부를 하면서 미국 생활에 적응하려고 했지만 결혼과 이혼, 고국에 대한 향수 때문에 어머니에게 말도 하지 않은 채 한국으로 도망치듯 다시 들어온다. 솔로로 노래를 발표하지만 대중은 냉담했다. 3년이라는 공백은 레코사와 조건에 맞는 전속계약은 어렵기만 했다.


재미있는 건 이 당시 김진아, 남궁원 주연의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의 음악감독을 맡아서 했다. 그러면서 야심 차게 ‘사랑하지 않을래’가 들어있는 정규 2집을 발표한다. 그러나 대중은 싸늘하기만 했다. 우울감으로 장덕은 방 안에 틀어박혀 식음을 전폐하며 보냈다. 세상에서 버려진 사람이라 여기며 그렇게 우울하게 보냈다. 방송국에서 출연 섭외가 와도 장덕은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그런 소식을 듣고 오빠인 장현이 상경하여 다시 현이와 덕이를 재결성을 한다. 7년 만이었다. 오빠를 만나 디시 한 번 남매듀오로 활동하면서 내놓은 노래가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였고 단숨에 가요순위 10위권 내에 들며 인기를 끌면서 장덕은 다시 정상으로 오른다. 그렇게 한국의 카펜터즈가 될 뻔 한 현이와 덕이는 오빠의 설암판정으로 멈추게 된다.


장덕은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고 난 후 모든 활동을 접고 병간호를 하면서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각한 우울증이 시달리게 된다. 그러던 중 1990년 2월 4일에 잠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게 되면서 29년의 짧은 생을 장덕은 마감하게 된다. 당시에는 자살이라고 보도가 되었지만 수면제에 중독이 되어 깨어나지 못했다. 장덕은 당시에 감기약과 기관지 확장제, 수면제를 전부 섭취했었다.


장덕의 죽음 이후 마치 그 사실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한 노래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대한민국을 울렸고 이 노래는 동료가수들이 추모앨범을 통해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8월 설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오빠인 장덕도 아내와 아들을 남겨 둔 채 동생인 장덕 곁으로 떠나고 만다. 그때 장현의 나이 고작 34살.


카펜터즈를 뛰어넘을 것 같았던 ‘현이와 덕이’의 비극적 죽음은 대중에게 너무나 크나큰 충격이었다.


장덕이 하늘로 간지 30년이 넘은 지금 장덕의 죽음을 안타깝게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옆 나라 일본은 자드의 이즈미 사카이가 죽고 난 후 꾸준히 그녀를 기리는 공연을 하고 있다. 우리는 장덕이 수면제 없이 잠도 들지 못하는 그저 한낱 비관적인 약한 예술가라고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녀는 17세의 나이에 당당하게 자신의 곡으로 노래를 부르는 진미령의 뒤에서 지휘봉을 들고 오케스트라를 진두지휘 했던 멋진 아티스트였다.


정수라가 부른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는 소설로 다시 늘려도,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큼 아름다운 노래이며, 장덕에게 곡을 받기 위해 곡을 기다리던 조영남, 최진희, 변진섭, 김승진, 하춘화 등이 있었다.

 

대중이 즐겁게 그 예술가를 기억해 줄 때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면서.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 https://youtu.be/wPkuhmixj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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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30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이 많이 나네요

잉크냄새 2023-06-30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이 노래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일 년 중 가장 애매하지만 가장 멋진 계절이고 덥지도 춥지도 않을 것만 같은 유월이 저물어 간다. 매년 유월은 그해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유월부터 이 도시의 축제가 시작이다. 코로나로 막혔던 축제가 도시 곳곳에서 엄청나게 열리고 있다.


온갖 먹거리를 파는 곳과 도로를 막고 무대를 설치하고 사람들에게 맥주를 무료로 마구 나누어 주고, 축제의 노래가 온 도시 안에 울려 퍼졌다. 아니 퍼지고 있다. 그래서 축제가 열리는 다운타운 가의 자영업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축제를 관장하는 프로그램 중간에 브로커가 껴 있어서 새는 돈이 많다는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들의 상환이 이번 9월부터라고 하는데. 코로나를 버티기 위해 빚을 여러 곳에서 끌어 쓴 자영업자들이 코로나가 끝나고 원래대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되어 버렸다. 절대 원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물가의 고공행진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더 끊겼다.


코로나 기간에 선진국들은 자영업자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해주었다. 미국을 비롯해서 프랑스도, 심지어 가장 꼴찌인 일본도 우리나라 보다 훨씬 많은 지원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자영업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정부의 약속은 지금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자영업자들 중 많은 분들이 60년대 생인데, 마지막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처음으로 자식들에게 노후를 맡기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다. 이들이 믿고 있는 것은 국민연금이었는데 지금은 국민용돈 정도가 되었다. 자영업자들이 장사가 되지 않아서 폐업을 하려고 해도 폐업처리가 되는 순간 바로 빚을 갚아야 한다는 은행의 독촉이 온다. 무엇보다 목욕탕이나 피시방 같은 경우는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하기 때문에 돈이 이중고로 든다.


그래서 코로나 기간 중에 은행이나 배달플랫폼, 검색사이트 회사는 엄청난 돈잔치를 했다. 그야말로 호황이었다. 이십 대가 코인을 하고 주식에 몰리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는 현실이 되었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그것이 미래가 되었는데 어떤 이가 열심히 노동을 하려고 할까. 하루 벌어야 하루를 먹고살 수 있고, 하루를 못 벌면 이틀을 굶어야 한다.


장사가 잘 되면 좋은 가 한다면 꼭 그렇지도 않다. 장사가 너무 잘 되면, 그래서 손님들이 줄을 서 있으면 건물주가 월세를 올려 버린다. 아니면 건물주인이 그 자리에 자신이 뭘 한다거나.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영업이 계속 생겨나고 음식점이 늘어나는 이유는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축제하는 다운타운을 빠져나와 강변을 달리면 인간의 삶과는 무관하게 자연은 늘 그대로니까 경이로우면서 무섭고 얄미우면서 부럽고 짜증이 나고 뭐 그렇다. 달리다가 뒤돌아서 보면 이토록 아름다운 빛을 보여준다.

요 며칠 동안 저녁에는 초승달이 떠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을 반겼다. 초승달에는 토끼고 둥근달에는 곰인데, 며칠 전에 80년대 영화 ‘더 베어’를 다시 봤다. 아기 곰 한 마리가 이토록 감동을 줬던 그 영화.

아기곰 두스가 엄마를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사냥꾼의 총에 맞은 큰 수곰 바트를 만나면서 새로운 가족이 되는 이야기다.


두스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온통 경이로움과 재미로 가득하다. 처음 보는 개구리도,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나비도, 예쁘고 맛있을 것처럼 생긴 독버섯도 두스에게는 모든 게 놀라움이다.


하지만 두스는 아직 엄마가 필요한 아기곰. 그러다가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웅덩이에 쓰러져 있는 바트의 상처를 핥아주며 둘은 가족이 된다. 바트는 자신도 배가 고프지만 연어를 잡아서 두스에게 던져 준다.


바트가 두 발로 일어서면 두스도 일어나고, 바트가 나무에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면 두스도 그렇게 하는 장난꾸러기. 그러다가 사냥꾼에게 두스가 잡히게 되고 사냥꾼들의 사냥개들이 바트를 쫓는데.


예전에 볼 때는 그냥 감동이 쓰나미가 되어 밀려왔지만 제작이 6년이나 걸릴 정도로 곰들을 훈련시켰는데, 두스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걸까, 하기 싫은 훈련 때문에 행복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두스에게 영화제에서 상이라도 줘야 할 정도로 어떻게 이런 연기를 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귀엽고 가엽고 예쁘게 나온다. 장 자크 아노는 그 긴 시간 끈질기게 두스와 바트의 우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지막 장면에 표범에게 잡아먹히려고 할 때 크아아앙 하며 소리치는 두스, 그리고 그 뒤에서 두스의 포효에 힘을 실어주는 바트. 아기 곰 한 마리의 행동이 이렇게도 감동을 줄 수 있다니.


그래픽이 초고도로 발전했다고 해도 두스와 바트만큼 감동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시작 16분에 첫 대사가 한 번 나온다. 지루함이 1도 없이 빨려 들어가는 '더 베어'였다. https://youtu.be/S0tX2wKi6O0


초승달은 올려다보는 재미가 있다. 이 지점이 딱 좋은데 건널목 중간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매일 달리는 이곳을 지나가면서 신호가 바뀌면 재빠르게 중간으로 와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몇 컷 찍는다. 곧 좀 있으면 달의 모양이 변할 테니까.

저기 다운타운에서는 축제가 한창이다.

이 하늘을 보라. 정말 경이로운 색감이다. 이렇게 아름다울수록 더 무서운 상상이 든다. 외계종족이 침투하거나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의 모습처럼 보인다. 일본의 병맛 영화 중에 바퀴벌레 종족과 인간이 화성에서 싸우는 영화가 있다.

비급 병맛 영화 테라포마스는 원작을 재미있게 본 터라 보게 되었는데 2016년작인데 2006년작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이 영화는 벌레화가 된 인간들이, 인간화가 되어버린 바퀴벌레들과 한 판 뜬다는 이야기로 병맛 가득, 병맛 나는, 병맛을 위한, 병맛 그랜드슬램을 달성해 버린다.


인구 과포화 상태가 된 지구에서는 더 이상 자원 고갈로 인해 화성 테라포밍에 들어간다. 화성을 지구화하기 위해 바퀴벌레들과 이끼를 화성으로 슝 보냈는데 500년 동안 바퀴벌레들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서 그 못생긴 면상에 짐종국 같은 몸으로 화성에 온 벌레화가 가능한 인간들을 하나씩 죽인다.


죽이는데 이유가 없다. 지구에서 인간들이 바퀴벌레를 보면 이유 없이 죽이는 것과 비슷하다. 병맛 가득한 영화이기 때문에 병맛으로 영화를 보고 생각해야 한다.


태초에 인간보다 오래 산 바퀴벌레는 원래 지구 밖에 생존하던 벌레였는데 환경이 좋은 지구에 보내졌다. 그런데 인간 때문에 원하는 대로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50억 년을 멸종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안 바퀴벌레는 곧 인간의 과포화로 지구가 망해간다는 알고 일부러 인간들에 의해 화성으로 이끼와 보내지게 계획을 한 것이다.


화성의 표면과 우주 먼지와 재 그리고 태양에서 나오는 원자, 분자 따위와 지구의 이끼에서 나오는 산소 같은 것과 함께 바퀴벌레들은 500년 동안 진화가 급격하게 가능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바퀴벌레는 파리에 비해 균을 50배 적게 옮긴다고 한다. 또 지구에서 가장 파괴력이 강한 미생물인 곰팡이의 포자도 바퀴벌레의 몸을 뚫지 못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곤충, 벌레 중에서 인간에 의해 훈련이 가능하다고 한다. 마우스가 미로를 찾아가는 것처럼 바퀴벌레도 그런 훈련이 가능하다네.


게다가 바퀴벌레는 천적의 공격에 죽은 척한다는 것이다. 고양이 같은 천적이 오면 엎드려 그대로 가만히 죽은 척을 한다. 고양이는 바퀴벌레를 먹으려는 건 아니지만 앞다리로 휙휙 가지고 노는데 죽어있으면 재미가 없어 그냥 가버린다고 한다.


병맛 영화인데 감독은 바퀴벌레에 대해서 꽤나 알아보고 이런 막 나가는 병맛 영화를 만든 것 같아서 쓸개가 우~리 하네. 근데 우~리 하다, 이 말이 사투리라메. 나는 사투리인 것도 모르고 지금껏 사용했네. 윈터가 의사한테 팔이 우~리 하네요,라고 해서 못 알아먹었다고 하던데 ㅋㅋ.


이 영화에는 한국인들도 다 알만한 배우들이 대거 나온다. 오구리 슌(제일 병맛 분장과 병맛 대사다), 타케이 에미, 야마삐, 키쿠치 린코, 코이케 에이코(사마귀로 변할 줄은), 이토 히데아키 등.


이 병맛으로 꽉 채운 영화의 병맛 감독이 미이케 다카시인데 위의 이토 히데아키를 데리고 찍은 사제지간의 끔찍한 사랑을 표현한 악의 교전은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졌다. 그리고 시간에 흘러 흘러 작년에 정해인과 고경표와 김뢰하를 데리고 만든 드라마가 골 때렸던 커넥트였다.

이렇게 해서 바퀴벌레 종족이 인간화가 되어 지구를 점령하러 올 때 하늘이 이런 빛을 발한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 번 해보았다. 언젠가부터 보이는 새로운 모든 것이 낙관보다는 비관적이고 염세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라는 인간 자체가 그런 모양이다.


유월이 지나간다. 이제 곧 칠월이다. 칠월은 개인적으로 일 년 중에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제일 태양이 뜨겁게 타오르고 해변이 해변다워지는 칠월이다. 장마에 오염수에, 예전만큼의 기쁜 마음은 들지 않지만 오는 계절을 밀어낼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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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스타다큐 허준호 편에 윤복희가 나왔다. 윤복희를 아는 사람은 많아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잘 없는 것 같다. 나는 윤복희와 패티 김의 노래를 아주 좋아한다. 패티 김의 공연을 세 번 보고 나불나불 어쩌고 저쩌고.


허준호 스타다큐 방송에서 윤복희가 연극 공연 도중 그대로 쓰러져 얼굴이 무대에 찧고 말았다. 아찔했는데 윤복희가 일어나서 계속 공연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윤복희가 연극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는 걸 볼 수 있었다.


윤복희가 처음 연극을 했을 때가 77년인가 그렇다. 1977년 MBC ‘토요일 토요일밤에‘를 보면 윤복희가 나와서 처음 출연한 연극을 홍보한다. 윤복희가 처음 도전한 연극이 에디트 피아프의 일생을 담은 연극이었다.


뇌피셜인데 (자세한 걸 알고 싶으면 검색검색) 윤복희가 미국을 다녀온 후 노래 부르는 스타일이나 가창력이 아주 좋아졌다. 윤복희를 미국으로 데려가 미국 무대에 올린 사람이 누구일까. 그 사람이 바로 세계의 재즈 황제 루이 암스트롱이었다.


60년대에 루이 암스트롱이 공연을 왔다. 60년대는 먹고살기가 팍팍했지만 낭만이 가득했다. 그 당시에는 넷킹 콜도 공연을 와서 한국에 반해서 아리랑을 자신의 앨범에 수록하기도 했다. 루이 암스트롱이 공연을 왔다가 윤복희의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데리고 가서 미국무대에 세웠다.


70년대는 연극이 활발했고 더불어 노래의 전성기였다. 60년대는 우리나라 영화의 르네상스였다. 60년대에는 집집에 티브이가 없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낙으로 사람들이 살았다. 그 시대에는 신문에 매일 연재되는 소설을 사람들이 악착같이 읽었다. 그만큼 사람들은 문화를 소비하고 싶었지만 당시에 즐길 수 있는 문화가 극장의 영화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70년대 이르러서는 노래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70년대에 집집마다 양문형 티브이가 보급이 되었다. 비록 흑백이지만 사람들은 하루종일 일하고 퇴근 후 방안의 티브이 앞으로 몰려들었다. 극장까지 가지 않아도 집에서 스타가수들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방송사들은 돈을 들여 외국 가수들도 불려 들였다. ‘토요일 토요일밤에’에도 아주 앳된 진추하가 나와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진추하가 노래를 끝마치고 통역을 누가 하냐면 너무나 어린 진미령이 나와서 통역을 한다.

진추하는 한국 사람들도 많이 좋아하는데 스무 살의 진추하는 아주 깨끗한 예쁜 얼굴을 하고 있다. 진추하의 유명한 노래도 많다. 원 서머 나잇을 한국인들은 많이 좋아할 텐데. 진추하의 졸업식 노래 ‘그레쥬에이션 티얼스’가 아주 좋아서 이선희가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다.

첫 시작을 알리는 피아노 음을 듣자마자 학창 시절의 졸업식이 확 떠오르는 기묘한 노래다. 졸업의 눈물은 이선희 버전의 노래도 아주 좋은데, 그나저나 이선희 뭐 어떻게 된 거야? 이번에도 이승기 전 소속사 계속 뉴스에 나오던데.


진추하가 중국어로 말하고 진미령이 통역하고. 그리고 진추하와 진미령이 같이 노래를 부른다. 진추하의 노래 ‘이 생명 하다도록’을 부르는데 진추하가 피아노를 치며 중국어로 1절을 부르고 진미령이 2절을 받아 한국어로 부른다. 진미령은 정말 노래를 너무나 똑 부러지게 부르는데 음을 너무 높게 잡았는데 그걸 해낸다. 얼굴이 학생 얼굴이다. 하하하. 진미령하면 장덕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다음에 하자.


진추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노래를 아주 곱게 부른다. 어쩌면 그래서 한국인들이 좋아할지도 모른다. 우리도 알게 모르게 민요나 가요를 곱게 부르는 걸 좋아한다.


진추하는 40분짜리 이 방송에 나와서 무려 네 곡이나 부른다. 물론 영화 홍보 때문에 한국에 왔지만 이때가 네 번째 방한이었다. 나이로 보면 고작 스무 살인데 말이다. 이 영상에서 재미있는 건 군대 간 전영록을 면회 간 백설희가 나와서 면회 사진을 보여주며 아들, 전영록에 대한 애틋함을 말하며 한곡 부른다.



https://youtu.be/xtTkpl5-5mU 1977년 토요일 토요일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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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의 우리가 주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는 정해져 있었다. 학교에서는 교실보다는 사진부 암실, 등나무 벤치, 운동장 로열박스 구석. 학교를 나오면 강원분식이나 대구분식에서 양 많은 라면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고, 다운타운의 카페가 하나 있고 바닷가에 있는, 어제 말했던 합기도 도장 근처의 카나리아 치킨 집이었다. 그 외의 시간은 대부분 음감에서 보냈다.


혼나 미나코를 닮은 그 애는 주말에 호산나에서 디제이를 하며 음악을 틀었다. 인기가 많았다. 다른 디제이들은 멘트를 하는데 그 애는 신청곡이 들어오면 휙휙 음악을 찾아서 들려주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테이블에 오밀조밀하게 앉아 있으면 그 애는 머릿속에 쌓여 있는 풍부한 록 밴드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학생들이 주로 가는 다운타운의 카페는 블랙박스였다. 창문이 없다. 그냥 온통 시커멓다. 좀 더 구석진 곳으로 가면 학교에서 노는 아이들이 앉아서 심각한 얼굴을 한 채 담배를 피웠다. 각 학교마다 일진들이 있고 각 학교를 대표한다는 이유 때문에 밖에서는 서로 앙숙이기도 했지만 블랙박스 안에서는 전부 평화를 유지했다. 이런 모습은 내가 구치소에서 근무할 때에도 비슷했다. 구치소에 근무하면 가장 골 때리는 부류가 조폭들이다. 조직폭력배들. 내보내면 어김없이 며칠 뒤에 또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내가 있는 바닷가에서도 밀수가 이뤄지고(나는 이 사실을 구치소에 근무를 하면서 알았다) 향정신성의약품을 취급하고, 즉 뽕쟁이들이 많다는 말이다. 그리고 술집 관리 같은 것들이 아주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구역이 있으니 각 구역마다 파가 있다. 이 도시는 목공파가 아마 가장 유명할 것이다. 한때는 김호중이 현직 목공파 조폭이라며 가세연의 누군가가 자기 방송에서 그냥 막 제멋대로 말하기도 했는데.


여하튼 여러 파들이 있는데 파벌싸움이 일어나면 무섭다. 그런데 구치소에 모이게 되면 서로 평화협정을 맺었는지 이쪽 파의 애기들이 저쪽 파의 중간 보스에게 똑같이 형님 대우를 해준다. 밖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구치소 내에서는 서로 잘 지내는 것이다. 조폭들이라 몸에 문신도 어마어마하고 전부 깍두기 머리에 험상궂은 얼굴이지만 게 중에 친하게 지낸 형도 있었다. 나에게 잘해주었다. 영치품으로 맛있는 과일이나 소시지가 들어오면 불러서 이만큼씩 주었다.


아무튼, 그래서 블랙박스에서 혼다 미나코를 닮은 그 애는 인기가 많았다. 각 학교의 잘 나갔던 남자애들이 전부 와서 인사를 하거나 꼬셔보려고 했다. 그 애와 친해지게 된 건 록, 메탈 밴드 때문이기도 했지만 축제 때 그 애도 자신의 학교 사진부에서 사진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그때는 이 도시 안에 있는 고등학생 밴드들이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우리 학교는 공업탑 근처에 있었는데 거기 한 건물의 지하에 딩클럽이라는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있었다. 클럽 같은 분위기인데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있고 구경하러 온 학생들은 일어서서 그대로 소리를 지르며 공연을 관람했다. 술은 당연하지만 판매하지 않고 음료도 판매하지 않았다. 그 애는 학교 밴드의 모습을 사진으로 멋지게 담고 싶어 했다. 게 중에 한 밴드가 스콜피온스 노래를 커버 쳤다.


야, 야, 스콜피온스 기타 이름이 왜 루돌프인 줄 알아?

몰라, 왜 그래? 뭐 크리스마스에 태어났나? 크크크

야, 야, 루돌프 쉥커가 독일 이름이라 그래.

뭐? 스콜피온스가 독일 그룹이야? 거참 미국적이네.

그래도 클라우스 마이네는 이상하지만 독일적이지 않아.

독일적인 건 뭐야?

독일적인 건 램슈타인(람슈타인) 같은 거야.


그때까지 우리는 스콜피온스가 미국 밴드라고만 생각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 밴드는 람슈타인밖에 없었다. 람슈타인의 강력한 노래를 들으면 독일! 독일! 독일! 이 그냥 뿜어져 나왔다. '두 하스트'는 너무나 강력한 노래인데 요즘 공연에서는 고출력 전자음과 합세하여 더욱 신나고 강력해졌더라고.


그래서 그 애에게 풍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애는 롤링 스톤즈, 스웨이드, 오비츄어리, 알파타우루스, 메가데스, 판테라 같은, 온갖 메탈 밴드에 대해서 박식했다. 아무튼 그 애에게 스콜피온스의 가십에 대해서 왕왕 듣곤 했다. 스콜피온스는 좋은 노래가 많다. 너무 많다. 아주 멋진 록발라드 명곡들이 많다. 스틸 러빙 유부터, 올웨이즈 섬웨어, 홀리데이, 윈드 오브 체인지 등. 아주 많다. 록 발라드가 귀에 쏙 박히게 멋지게 들리는 건 곡 자체도 좋지만 클라우스 마이네의 목소리 때문이다. 목소리가 내가,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목소리다.


너무 좋은 노래가 많지만 클라우스의 목소리가 호소력 짙게 들리는 변화의 바람, '윈드 오브 체인지'가 세계의 마음을 흔들었다. 우리는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이 독일의 장벽을 허물고, ‘워 아 더 월드’가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살리고, 스콜피온스의 ‘윈드 오브 체인지’가 변화의 바람에 불을 지폈다는 것에 일조한 것에 대해서 상당히 흥분했었다. 총과 칼보다는 노래와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 움직이게 한다는 걸 굳게 믿고 있었을 때였다.


음감에서 ‘윈드 오브 체인지’ 뮤직비디오만 봐도 눈물이 글썽글썽했었다. 그럴 때였다. 굳건한 진실보다는 흔들림이 많은 가능성을 믿고 있는 바보였을 때였다. 우리 모두는.


이 노래는 고르비가 개혁, 개방 정책 이후 변화의 바람이 부는 러시아를 이야기한다. 영화 ‘테트리스’를 보면 소련이 붕괴되는, 자유를 찾아가는 내용이 잘 나온다. 테트리스가 소비에트 연방 시대 모스크바의 한 컴퓨터실에서 알렉세이라는 프로그래머에 의해서 개발되었다는 사실. 이 테트리스가 소련에서 나와서 전 세계인들의 오락실과 티브이용 게임기 그리고 닌텐도에 들어가기까지의 그 험난하고 첩보작전이 어떻게 이루어져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지 말하고 있다. 정말 재미있다. 테런 애저튼이 실제 인물과 싱크로 99%다. 이 영화에 고르비가 소련의 공산주의에 염증을 느낀 젊은 세대가 소련을 붕괴시킬 거라는 예견하는 장면이 잘 나온다.


그런데 요즘 스콜피온스가 투어를 하면서 ‘러시아를 낭만화하기 때문’이라는 가사를 도저히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다. 가사에 ‘고리키 공원을 따라 모스크마를 거닌다. 변화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라고 되어 있는데 이런 광경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서 클라우스는 가사를 바꿔서 부르고 있다.


'내 마음을 듣는다. 우크라이나라고 말하네. 변화의 바람을 기다리며'로 체인지해서 노래를 부른다. 윈드 오브 체인지는 변화의 바람으로 냉전 종식을 알리는 노래로 알려져 전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감동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윈드 오브 체인지를 들어보자 https://youtu.be/n4RjJKxsam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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