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시인들의 시 한 대목을 스토리에 올리고 있다. 커피를 투고하러 가면서 골목의 풍경을 하나 찍고 그 배경에 시인들의 시 한 대목을 적어 올리고 있다. 나의 인스타 팔로워들은 대체로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매일 올리면 매일 보고 간다.


같은 곳을 사진으로 찍는데 비슷한 것 같지만 매일 다르다. 구름이라든가, 지나다니는 사람이라든가, 차들이나 날씨 때문에 같은 곳이지만 다르게 보인다. 십 년 전에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지금 사진에 보이는 모습 밖으로, 좌우로, 그리고 내 뒤로는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아케이드가 생겨나고 분위기가 왕창 바뀌었지만 지금 보이는 이 풍경의 모습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 십 년이 더 지나면 달라지겠지. 그러나 어떻게 달라지는지 크게 궁금하지 않다.


몇 백억 년 후의 우주와 지구에 관한 유튜브의 한 영상이 2주 정도 지났는데 거의 2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어서 조금 놀랐다. 나는 클릭을 해서 보지는 않았다. 나 같은 인간은 아주 먼 미래의 우주와 지구가 어떻게 변하는지 크게 궁금하지 않다. 나처럼 아주 재미없는 인간은 먼 미래는 관심이 없다. 내일도 관심이 없다. 그저 오늘도 살아남자!, 살아남으면 오늘 하루 잘 견뎠군. 하는 축에 속하는 인간인 것이다.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도 육상경기를 준비하는 여고생이 오늘도 열심히 하자가 아니라 오늘도 살아남자! 라며 파이팅을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여고생도 나의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놀랐다. 나와 다른 점은 여고생은 힘든 하루를 살아내면서도 웃으며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갔고, 나는 그러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는 거의 웃지 않는 인간인 것이다.


그런 인간인지라 몇 백억 년 후의 우주의 변화와 지구의 달라짐에 관심이 없다. 계획 따위 백날 잡아봐야 계획대로 되는 일도 없다. 내일보다는 오늘 하루 잘 견디는 게 나의 계획 내지는 목표가 된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왔다. 오늘 하루 내가 견디는 것 때문에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고, 주로 여름에 한정되어 있지만 실컷 달리고 시원한 곳에서 맥주를 마시며 소설이나 읽으며 보내기도 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제 멋대로 살아가는 겁니까.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지금 까지 누군가에게 또는 기관에게 손 벌리지 않고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고 잘 버텨왔다. 폴란드의 유명한 시인이, 원천에 닿으려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흐름에 떠내려가는 건 쓰레기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흐름에 딸려 내려가는 쓰레기 ‘1’ 정도 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쓰레기인 것에 별로 인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쓰레기는 더 이상 더러워질 수도 없으니까 막 뒹굴어도 된다.


그렇다고 해도 열심히 한 것도 있다. 나 같은 재미없는 인간의 특징이라면 했던 걸 계속하고, 봤던 걸 계속 보고, 갔던 곳에 계속 가는 것이다. 매일 조깅을 하고 그 기록을 어딘가에 올리고, 매일 조금씩 글을 써서 마찬가지로 올리고 있다. 올해는 2월에 하루, 지난달에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거리를 비슷하게 달렸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비 막이가 있는 곳까지 가서 근력 운동을 하고 들어왔다.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비가 와도 조깅을 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꽤 있다. 뭐랄까 비를 맞으며 달려본 사람이 있다면 그 기분을 잘 알 텐데, 여름이라 춥지도 않아서 비를 잔뜩 맞으며 저어어어곳까지 달리는 상쾌한 기분은 중독이다.


이렇게 지내면서도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살면서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 있다. 요컨대 이발소에서 머리(카락)를 자르면서, 이발사 아저씨가, 또는 미용사가 갑자기 가위를 들고 나의 눈을 찌르지는 않겠지? 무서운데? 같은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길을 걸어가면서 도로를 달리는 저 자동차가 갑자기 나를 덮칠까? 높은 건물에서 누군가 아령을 밑으로 집어던지지는 않겠지? 라며 누가 이런 것에 일일이 신경을 쓰며 살아갈까.


하지만 부산 돌려차기 남자 같은 사건이 종종 일어나는 요즘에는 그 쓸데없는 생각이 쓸모없는 생각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 같다.


돌려차기에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앞으로 그런 불안에 늘 떨며 지내야 할 텐데 생활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길을 걸어가다가 수십 번 뒤로 돌아볼 것이다. 일상이 무너지면 일탈도,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눈으로 보이는 풍경은 너무나 평온하게 흘러간다. 흐름에 딸려 내려가는 쓰레기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쓰레기가 되면 주위 풍경을 볼 수 있는 시선이 생기지 않을까.


꿈도 있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잔뜩 있었을 텐데 이유도 전조도 없이 사건이 휘말리고 말았다. 그리고 일상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은 졸음운전을 해버린 운전사 때문에 추억의 한 편에 곱게 남아야 할 여행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중상을 입은 학생도 있다고 한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 요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떻든 오늘 하루를 살아내야 내일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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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으로 하늘을 할퀴었다. 휙 휙.


손톱이 어느새 자라 있다. 손톱을 깎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보니 손톱이 또 자라 있었다. 손톱이 자라는 걸 보니 조카가 문득 떠올랐다. 조카는 어린이였는데 어느 날 보니 훌쩍 커버렸다. 손톱은 정말 아이들과 비슷하다. 어느 순간 보면 이만큼 자라 있다.


강변을 따라 조깅을 하다 보면 이맘때쯤이면 사람만큼 자란 풀들을 깎는다. 강둑과 강변의 풀들을 정리하고 나면 깎은 자리에서 나는 풀냄새가 아주 좋다. 녹차가루에서 나는 진한 냄새가 난다. 작년에도 강변의 풀을 깎아내고 풀냄새가 좋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찾아보니 작년도 6월 16일에 그 글을 썼다. 아무튼 딱 이맘때에 강 주변을 이발한다.


냄새가 아주 좋다. 비가 한 번 오고 나면 손톱처럼 어느 순간 풀들은 불쑥 자라나 있을 것이다. 손톱깎이로 싹둑 손톱을 깎듯 강변의 풀들도 한 번 깎고 나면 아주 시야각이 좋다. 하지만 그렇게 풀들을 전부 깎아 버리고 나면 늘 생각이 드는 건 고양이들은?이다. 고양이들이 풀 속에서 생활을 하는 모양인데 어느 순간 서식자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강변에 나오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겨주고 있다.


요즘 유튜브에서는 인어공주에 대한 이야기, 리뷰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인어공주가 일본 개봉 후 아시아에서는 누구도 예상못 한 흐름이 흐르고 있다. 동북아 패권을 다투는 한중일은 그간 정치적으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런데 인어공주로 우리 하나 되어 단결된 흐름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인어공주 댓글도 쌈박하고 웃음이 터지는 댓글이 많았는데 일본도 비슷했다. 이런 댓글들이 있었다.


팀 버튼인가 싶을 정도로 어둡고 이상한 연출을 하고 있다.

말하는 물고기와 갑각류가 꿈틀거리고, 인어로 분장한 무언가가 노래하며 춤추는 지옥도.

정치적 올바름만 신경 쓰는 뇌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


디즈니를 미국 다음으로 좋아하는 나라가 일본이 아닌가. 일본은 디즈니에 진심이다. 근간에 사이가 벌어질 대로 벌어진 한중일이지만 이렇게나 한마음으로 만들어준 롭 마샬 감독의 큰 그림을 그동안 우리는 보지 못했다.


롭 마샬 감독이 바네사로 제시카 알렉산더를 캐스팅했을 때 그의 빅피처를 봐야 했다. 롭 마샬 감독은 한국인들이 에리얼 역에 할리 베일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흑인이라 어울리지 않는다고 인터뷰를 했지만 그건 감독의 큰 그림에 의한 마음에도 없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롭 마샬은 언더 더 씨를 박력 터지는 에리얼에게도 부르게 함으로 감독이 할리 베일리를 비롯한 유색인종을 돌려 까기 해버린 것이 아닐까. 아니 언더 더 씨를 왜 에리얼도 같이 부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인어공주는 홍보마케팅 비용까지 해서 총 5천억이 들었다. 손익분기점이 7억 달러. 알라딘이 10.5억 달러, 라이온킹이 16.6억 달러를 벌어들였기에 무난하게 인어공주도 7억 달러를 가뿐하게 넘길 것이었으나 한국과 중국으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그런데 거기에 일본까지. 인어공주는 6월 6일 기준으로 3억 3천8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북미에서 58%, 그 외 나머지 나라에서 42%를 벌었다. 다른 나라에는 똥망이라는 말이다. 이제 디즈니에 진심인 일본의 흥행에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지만 어려워 보인다. 이대로라면 7억 달러에 못 미치는 6억 달러 전후로 수천억 달러에서 2억 달러 정도의 손해를 본다.


롭 마샬의 큰 그림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미국은 수면 위에서 흑인을 비판하지 못한다. 흑인을 노예로 부려먹은 역사가 있기에 미국은 매스미디어에서 흑인에 대한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 없는 분위기가 강하다. 디즈니는 꿈과 희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적자에 허덕이더니 꿈을 포기하고 장사꾼 마인드로 온통 피시주의로 쳐발쳐발하는 것에 가장 열받은 사람이 롭 마샬일지도 모른다. 롭 마샬은 캐리비안 해적 낯선 조류에서 동심을 파괴해 버린 진짜 괴물의 인어를 연출한 이력도 있다.


미녀와 야수의 실사에서 찻잔과 주전자, 촛대에 팔다리가 달려 있고 눈코입으로 말을 한다고 해서 전혀 이질감이 없고 이상하지도 않았지만, 인어공주를 보면 왜;; 왜 물고기가 말을 하지? 같은 생각이 들어 버린다.


CNN에서도 한국은 에리얼이 흑인이라 싫어한다는 식으로 뉴스를 보도했지만 한국  사람 누구도 흑인이라서 인어공주가 싫은 게 아니라 에리얼에 어울리지 않아서 별로라는 거다. 블랙팬서 1의 채드윅 보스만에 대해서 싫어한다고 말한 한국인이 누가 있을까. 엑스맨의 스톰 역의 할리 베리에 대해서 한국인 누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지?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미국은 디즈니의 정치적 올바름을 좋아하는 것이고 우리는 디즈니를 좋아하는 것, 오직 그 차이뿐이다. 때 낀 수족관 닦는 기분이라는 박평식의 한 줄 평이 맴도는, 한중일 한마음 하나 되어, 로 묶어준 여러모로 참 의미가 찰진 영화 인어공주였다.



아기공룡 둘리에서 마이콜이 등장한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고길동 씨의 집 앞에 마이콜이 나타났다. 가수를 꿈꾸는 마이콜. 둘리와 도우너에게 노래 지적을 받은 후 마이콜은 핵폭탄과 유도탄들이라는 트리오를 만들어 ‘라면과 구공탄’으로 방송 장악을 하려 한다.


인어공주의 롭 마샬은 한국 너희들이 문제야, 인어공주는 재미있게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너희들에게 문제가 있는 거라고,라며 영화가 마치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재 일본 디즈니에서는 인어공주 관람 시 번쩍하는 빛 때문에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문을 게재했다. 1997년 12월 16일 일본에서 포켓몬스터를 시청하던 어린이 700여 명이 발작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폴리곤 쇼크, 전뇌 전사 폴리곤 사건 또는 폴리곤 플래시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괜찮았지만 시청하던 어린이들에게 문제가 일어났다.


포켓몬스터 38화를 시청하던 어린이들(시청 가정 2690만 가구 약 345만 명의 4세에서 12세 사이의) - 추정했는데 이를 시청하던 어린이들 중 700명이 발작을 일으키고 구토 증세를 보이거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쇼크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파악한 환자는 750여 명 그중 135명이 입원을 했다.


원인은 에피소드 전체적으로 나왔던 빠른 점멸 이펙트와 중반부의 피카츄의 전기 공격에 의한 대폭발 장면에서 빛의 화면 점멸이 연속으로 나오는 장면에 의한 안구 광과민성 발작이었다. 시청하는 어린이들 중 일부가 방을 소등하고 화면 가까이에서 시청을 한 것도 큰 작용으로 본다고 했다.


미국은 다양성은 인정하라고 하면서도 어린이들의 이런 발작 증상에 대해서는 세세하지 못했다.


한국은 흑인을 차별한다고 하는데 그랬다면 마이콜은 태어나지 말았어야지. 마이콜을 싫어하는 한국인이 있을까. 게다가 라면을 좋아하는, 그것도 구공탄에 끓인 라면을 좋아하는 마이콜을 말이야. 애초에 우리는 무시무시한 공룡인 둘리를 좋아한다. 게다가 고길동 씨도 좋아하고, 또치도 도우너도 좋아한다. 차별 없이 다 좋아한다. 우리는 얘네들의 차이만 인정하지 차별은 하지 않는다.


미국아 너희가 알아야 할 건, 겟 아웃이 전 세계에서 한국이 두 번째로 흥행한 나라라는 걸. 그것도 사람들이 펀딩을 해서 극장 상영을 하게 해서 겟 아웃이 상영관에서 볼 수 있었다. 그 덕에 200만이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겟 아웃을 봤다. 조던 필은 ‘어스’ 영화 상영회에서 “겟 아웃은 미국에서 낳고 한국에서 키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한국에서 흑인을 차별해서 인어공주가 흥행이 실패한 것이라면 겟 아웃에 대해서 롭 마샬 감독은 설득력 있는 해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 CNN 앵커도 말이다.


게다가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 한 인물 중에 조나단과 파트리샤가 있다. 혜미리예채파에서 리샤의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정말 혓바닥이 신나 버려서 그랬어. 




흔한 풍경 몇 장

민족대이동


새의 노래


해가 하루 일과를 끝내는 길


산책하는 가족의 행복모습


붉은 낯빛을 띠는 하늘아


해도 해도 끝은 보이지 않고 피곤은 덮쳐오고, 봄은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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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조비의 앨범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앨범이다. 그래서 엘피, 시디로도 다 가지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시디는 찾아도 없고, 엘피(나에게 엘피가 한 100장 정도 있었다, 군에 갈 때 보관을 잘해달라고 친한 누나에게 맡겼는데 제대하면서 연락이 끊겼다, 다른 앨범은 카세트테이프로 가지고 있는데 데미스 루소스 앨범은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도 없고, 카세트테이프로 앨범이 남아 있다.


뉴저지 앨범은 대학교에서, 군대에서도 친한 사람들 생일이면 이 앨범을 구입해서 포장해서 선물로 사주었다. 그때 다양하지 않은 다양한 반응들이 있었다. 여자애들은 어? 어,,, 그,, 그래 고마워, 또 앨범이네. 같은 반응이었다. 남자친구들이라고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 저 새끼 또 앨범을 주네, 같은 반응이었다. 그래서 내 주위는 본조비를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본조비라는 밴드를 다 알고 있었다.


코로나가 덮치기 전 내가 조깅하는 강에서는 카누 세계대회가 개최되었다. 요즘도 슬슬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래서 여러 나라 선수들과 여러 나라 사람들이 강변으로 몰렸다. 저녁에는 매일 축제 비슷했다. 곳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먹거리가 있고. 코로나 이후 사라졌지만 강변에는 포장마차촌이 있었다. 그곳에서 술을 마시던 외국인들이 많았다. 우리도 한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다가 본조비 뉴저지 앨범을 틀었는데 그들 역시 본조비의 팬이었다.


포장마차 안에서 술을 마시던 모든 이들이 ‘아일 비 데이 포 유’를 부르며 술잔을 높이 들었다. 바야흐로 꺼져가는 하루의 밤, 강가의 포장마차에서 떼창이 펼쳐진 것이다.


이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멋지고 멋있는, 그래서 촌빨 날리지만 아 이래서 본조비구나, 하는 노래가 바로 리빙 인 신이다. 뮤직비디오가 스토리 형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있다. 본조비는 이후로 이런 스토리의 뮤직비디오와 내용의 노래가 많다.


잘생기기로는 리치 샘보라가 당시에는 좀 더 우위에 있었다. 노래에 욕심이 많았던 리치 샘보라도 본조비가 노래를 부를 때 같이 옆에서 부른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 모습이 잘 나온다. 본조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음감에서 떼창 하는 노래 1순위가 이 노래였다. 이 뮤직비디오가 야시시하고 확실하게 야하게 보이는 건 본조비의 목소리 때문이다. 이 앨범의 모든 곡에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데 카우보이다. 이 노래 리빙 인 신에만 카우보이가 등장하지 않고 대부분 모든 노래에 카우보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컴 온, 처럼 다양하게 쓰이는 말이지 싶다.


Bon Jovi - Living In Sin https://youtu.be/VI2-ASiNCac


본조비를 좋아하는 팬들은, 메탈리카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한 소리 듣는 이유가 말랑말랑한 록을 한다는 것, 그래서 그건 메탈이 아니야,라는 것이다. 본조비는 신시사이저를 풍부하게 사용했다. 그래서 음악이 폭넓게 들린다. 진정한 메탈계에서 건반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 때문에 본조비를 좋아하면 너는 저리 가, 같은 분위기가 메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있었다. 그러나 이 노래, 레이 유어 핸즈 온 미는 건반이 함께 해서 이 노래가 얼마나 신나고 멋진 음악인지 알게 해 준다. 광분하는 관중들을 봐. 이때 존 본조비는 정말 지치지 않는 한 마리의 종마 같다. 부드러운데 거칠고 말랑말랑한데 단단하다. 그걸 본조비가 해내고 있었다. 한 마디로 멋있다.


Bon Jovi - Lay Your Hands On Me https://youtu.be/EhjSzibOIH4


베드 메드신도 너무 신나 버려서 올리고 싶지만 넘어가고, 뉴저지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 아일 비 데어 포 유를 들어보자. 이 노래가 딱 이 뉴저지 앨범을 표현하고 대표하는 노래이지 싶다. 우리는 이런 록을 해, 이렇게 부드러우면서 강렬하고 호소력 있는 노래를 불러, 그걸 너희들은 알 거야, 내가 부르는 이 노래가 너희들에게 가서 닿을 때 나의 마음이 전달될 거야, 같은 말을 하는 것만 같다.


바닷가 집 앞에 웨일스 출신의 존 아저씨가 하는 퍼브가 생겼었다. 그래서 자주 갔다. 존 아저씨는 브루스 스프링스턴을 아주 좋아했다. 존 아저씨의 퍼브에는 여기 바닷가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많이 왔다.


존 아저씨는 한국인 아내와 재혼을 했는데 영국에 있는 가족과도 다 같이 친하게 지낸다고 했다. 그런 점은 참 부러웠다. 퍼브에 들락거린 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 존 아저씨는 셔터를 일찍 내리고 새벽까지 같이 술을 마시기를 바랐다. 대화가 되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브루스 스프링스턴과 본조비로 서로 암약하는 사이가 되었다.


좀 더 친해진 다음에는 주말에는 늘 파티가 열리는데 그곳에서 본조비의 아일 비 데이 포 유를 다 같이 불렀다. 본조비는 누구나 다 좋아했다.


그래서 생각하니 노래는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을 생각하면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전 세계가 좋아하고 스트레이키즈가 이번에도 빌보드 앨범 1위를 차지했다. 벌써 세 번 째다. 르세라핌의 이프푸의 쇼츠는 전 세계의 춤꾼들이 다 따라 해서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노래는 경계를 허무는 부드럽고 강력한 무엇이다.

존 아저씨


새벽까지 술 마실 때


여름의 퍼브 모습


여름에는 모히또지


주말에는 늘 파티


시끄럽게 해서 경찰이 온 적도 있음


내가 찍어서 붙여 놓은 퍼브의 모습


80년대 록의 세계에 한 번 빠져 봐.

Bon Jovi - I'll Be There For You https://youtu.be/mh8MIp2FO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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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팝이 아바의 치키티타였다. 초딩 때, 나는 국민학교였으니까 국딩 때. 나는 국민학생 때에도 라디오를 많이 들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라디오 같은 거 안 듣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윤도현이 오후 4시에 라디오를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 어린이들과 전화 통화하는 코너가 있다. 아니 그런데 내가 국민학교 때처럼 요즘 초등학생들 중에 라디오를 듣는 아이들이 아주 많았다. 신기할 일도 아닌데 정말 신기했다.


어릴 때에는 집이 워낙 가난해서 단칸방에서 지냈다가 아버지가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형편이 조금씩 풀렸다. 그 풀리는 시기에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아버지는 가난을 자식들에게 줄 수 없다는 그런 신념이 강해서였는지 나에게 소형 라디오를 하나 사 주었다. 내가 그걸 원했거든. 아버지는 내가 사달라고 하는 건 주저 없이 사주는 편이었다.


지금도 피규어를 좋아하지만 어릴 때 장난감을 좋아해서 문구점 앞에 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30분을 그렇게 서 있기도 했다고. 그런 나를 생각하니 좀 무섭네. 아버지는 장난감도 많이 사주었다. 장난감이라기보다 프라모델이다. 조립을 하는 것을 나는 정말 좋아했다. 왜냐하면 완성된 장난감은 구입하면 끝이지만 프라모델은 구입해서 조립을 해야 하는데 아버지와 함께 만들었다. 그 시간이 나는 너무 좋았다.

누나나 형이 없었던 나는 어쩌다가 라디오에 빠지게 되었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팝을 듣게 되었다. 거기서 처음 팝을 집중해서 들었던 노래가 아바의 치키티타였다. 치키티타는 예쁜 소녀를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바의 치키타타가 들어있는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미니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주었다. 아바의 앨범을 넣어서 내내 듣고 다녔다. 겨울이었는데 추운 줄도 모르고 헤드셋으로 나오는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중고등학생으로 가면서 시끄러운 음악에 심취해서 아바는 잘 듣지 않게 되었는데, 시간이 흘러 흘러 2008년에 영화 맘마미아를 보면서 아바의 노래를 찾아들었다. 그때 실시간으로 엔차관람을 3번 했다. 2주 동안 세 번을 봤다. 그 당시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전투적으로 봤을 때였다. 그때 만나던 여자친구도 영화를 너무나 좋아해서 여름휴가를 보낼 때 아침부터 새벽까지 영화만 몇 편 보기도 했다. 극장에서 아예 나오지 않았다.


맘마미아를 볼 때 재미있었던 일이 있었다. 1차 관람 후에 우리는 영화 내내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어서 가사를 좀 크게 프린트해서 제일 마지막 회를 관람했다. 마지막 상영을 할 때에는 극장에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었다.


그때 한 줄 건너 앞에 외국인 5명이 왔는데 노래가 나오니 그들도 너무나 신나게 몸을 흔들며 따라 불렀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더니 우리를 보고 더 신나 했다. 그때 상영관에 우리와 그들, 딱 7명이 전부였다. 그때는 외부음식을 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지라 우리는 큰 텀블러 안에 소맥을 섞어서 넣고, 팝콘 통에 라면을 뽀사서 넣어서 갔는데 그들과 나눠 먹으며 신나게 영화를 봤다.


봤던 걸 또 보고, 읽었던 걸 또 읽는 건 나의 습성이나 특징 같다. 하루키의 소설 들은 죄다 몇 번씩 읽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열 번은 넘게 봤고, 덴젤 워싱턴의 더 이퀄라이저 1편은 케이블에 나오면 그냥 또 보게 된다. 갔던 곳을 또 가고 먹던 음식을 계속 먹는다. 질릴 법도 한데 한 번 구입했던 조깅화가 낡으면 그 조깅화를 또 구입한다. 나는 분명 새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생활이나 습관 같은 것을 보면 새것에 대한 갈망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마 그래서 음악도 질리지 않고 들었던 음악을 듣고 또 듣고 계속 듣는 것 같다. 아바의 노래를 그렇게 막 집중해서 듣지는 않지만 아바는 유명한 그룹이라 그들의 노래는 대부분 듣게 되었다. 아바는 대 히트를 쳤다.


내가 주워들은 이야기로 아바의 보컬 중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한 명이(그냥 메인보컬 아그네사라고 하자) 비행기를 타지 못해서 배를 타고 이동을 해서 공연을 해야 했다고. 맞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이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음악감상실에서 디제이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아바는 잘 알겠지만 두 쌍의 커플로 이루어진 혼성그룹이다. 아바의 노래들이 너무나 유명해서 오랫동안 아바가 그룹을 유지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9년? 10년도 못 되는 시간 동안 활동을 하다가 해체하고 만다. 1982년에 해체를 하는데 커플이 결혼을 하고 다 이혼을 했다.


메인 보컬인 아그네사는 다른 멤버들이 흥에 불타 올랐을 때 심하게 고뇌에 휩싸였다. 왜 이렇게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며 노래를 불러야 할까, 왜 이다지도 음악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할까, 아이들도 이제 키워야 하지 않을까,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같은 고뇌에 휩싸이며 슬슬 해체의 분위기가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 해가 77년이었다.


왜냐하면 빡빡하고 무리한 엄청난 스케줄에 아그네사가 공포에 떨었기 때문이다. 요즘말로 하면 아마 공황장애 같은 것에 시달렸을 것이다. 아바는 시간이 흘러 2013년에 앨범을 발매했다. 그 앨범에 수록된 곡을 들어보면 아그네사의 목소리는 아직 변함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구의 역사를 쓴 위대한 아티스트에 아바는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아바는 후배 가수들에게 자신들의 곡을 주는 것을 싫어하기로 유명한데 마돈나가 비행기를 타고 찾아와서 허락받은 곡을 넣은 곡이 헝업이었다.


오늘은 아바의 많은 주옥같은 명곡들 중에 처음으로 나의 마음을 빼앗아 버렸던 치키티타를 들어보자. https://youtu.be/p4QqMKe3r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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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오뎅을 삶아 먹을 때 감자를 넣어도 맛있다. 감자가 입 안에서 포슬포슬 녹아 없어지는 느낌도 좋고, 오뎅탕의 달달한 국물을 빨아들인 맛을 감자가 가지고 있어서 좋다. 겨울에 가끔씩 해 먹던 오뎅탕을 먹다 보니 며칠 전 지역 축제에서 오뎅을 만원에 파는데 오천 원어치는 팔지 않는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그 유튜브가 유익병(유이뿅) 채널인데 한국에 공부하러 왔다가 한국에 눌러앉은? 한국에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일본인인데(다 알고 있으려나). 유익병은 어지간한 한국인보다 한국의 방방곡곡 다 돌아다녀본 일본인일 것이다.


요즘은 유익병 채널을 보지 않지만 한때는 재미있게 봤다. 유튜브를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 축에 유익병도 속할 것이다. 전국의 시골이나 작은 도시 구석구석 다니니까 유튜브를 켜고 라이브로 다니다 보면 채팅하는 사람 중에 현지인이 있어서 느닷없이 만나서 길 안내를 받기도 하고, 민박을 하다가 주인 할머니에게 밥도 얻어먹고, 일본 아가씨 혼자 한국 여행한다고 고생이라며 시골에서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온통 받기도 했다.


하와이인가 베트남인가 갔을 때에도 사기당하지 않게 현지에 사는 한국 구독자가 나와서 길 안내부터 식당, 숙소까지 전부 안내를 해 주고 다음 날에도 나와서 안내를 해주기도 했다. 혼자 캠핑을 할 때에는 다음 날 비가 와서 씻지 못하고 그 전날 해 놓은 화장이 다 지워져 같은 사람이 맞아? 할 정도가 된 몰골로 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재미를 줬다. 또 덕자(다 알죠?)와 합방을 했을 때에는 도대체 둘이서 하는 외계어 같은 한국말 때문에 큰 웃음을 주었다. 꾸준하게 한국을 다니며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더니 이번에 뉴스에서 지역축제 오뎅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역축제가 잘 되어 있는 일본은 지역마다 특색 있는 먹거리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다니면 여기나 거기나 저기나 축제에서 파는 음식물이 다 거기서 거기다. 왜 그럴까 도대체. 축제에 가면 파전에 닭꼬치, 오뎅, 삶은 돼지고기 등 거의 비슷하다. 개선이 되지 않는다.


보통 지역축제가 열리고 먹거리가 들어서면 먹거리 코너를 지자체에서 관리를 못하고 업체에 위임한다. 그래서 자릿세가 있다. 보통 2, 3일에 백만 원에서 백오십만 원 정도 한다고 한다. 이삼일에 자릿세 본전과 이익을 뽑아야 하니 비싸게 팔아먹을 수밖에 없다. 지역 축제를 살리고 하는 의무나 마음 같은 건 없다. 그래서 축제 특성상 축제마다 다니며 먹거리를 파는 외부상인들이 많다. 그들에게 지역에 대한 애착이 없기 때문에 자릿세를 뽑아서 또 다른 축제에 가서 장사를 한다. 올해는 코로나도 끝나고 해서 일 년 동안 전국의 축제가 삼일에 한 번 꼴로 열린다고 한다.


지역축제는 정권에 따라 달라진다. 지자체는 중앙정부만큼 돈이 없기 때문에 지원을 덜 받게 되면 축제를 열어 활성화가 되면 그 돈으로 충당을 한다. 진보가 정권을 잡게 되면 지역 축제를 줄이고 지원금을 뿌리는 방법으로 지자체를 돌리고,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지원금은 줄이고 축제를 많이 개최한다.


지역축제가 많이 열리면 풍성해지는 반면에 공무원들이 투입이 되어야 하는데 그만큼 인력이 없다. 공무원들이 축제의 먹거리를 관리해야 하지만 턱없이 일손이 부족하다. 그리하여 축제가 늘어나면 인력을 동원하는 비용이 든다. 기존의 공무원 인력만으로 축제를 전부 관리하다는 또 말단 공무원의 과로사가 뉴스에 날 것이다. 하지만 제한된 공무원으로 관리를 전부 하지 못하니 외주를 줄 수밖에 없다. 브로커가 끼게 되면 당연하지만 중간 마진이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외부상인들이 돌아다니며 먹거리 질은 떨어트리고 가격을 올려 지역 축제를 살리는 것과는 멀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내가 있는 바닷가에서도 주말마다 축제를 한다. 도시 인구가 150만 명이니까 도시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는데 규모가 크다. 가수들도 많이 오고 불꽃놀이도 크게 쏘아 올리고, 맥주를 하루동안 그냥 준다. 영화제가 열리기도 하고, 67년도부터 공업축제가 시작했기에 역사가 깊어서 다운타운에는 매일 밤 먹거리 골목이 열리는데 이곳은 나름대로 관리가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바닷가 쪽으로 오면 품바가 열리고 파전을 팔고 하는 그런 늘 같은 먹거리가 생긴다. 그곳이 한 번 열리는 여름 내내 그곳에서 먹거리 장사를 하고 여름 내내 밤마다 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곳에 앉아서 먹지 않는다. 사람들이 바닷가에 바글바글한데도 그곳에서 먹거리를 먹지 않는다. 비싸고 질도 좋지 않고 맛도 썩 없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 치킨전문점, 샌드위치, 백다방 같은 곳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도 오뎅을 만원에 팔지는 않는다. 오천 원어치는 팔지 않는다니 이 무슨 해괴모니냐.


오뎅탕은 날이 쌀쌀해지면 생각이 나는 음식이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와 목욕을 하고 나오면 늘 오뎅을 하나씩 먹곤 했다. 요즘은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점찍어 놓은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두 개씩 사 먹었다. 그렇게 매일 오뎅을 사 먹다 보면 주인하고 친해져서 오뎅탕 안에 들어있는 무를 먹을 수 있는 자격도 주어진다. 오뎅탕에 빠진 무가 정말 맛있다.


그렇게 몇 해를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러서 오뎅을 사 먹었던 포장마차는 주인 할머니의 나이가 너무 들어서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그 할마니 포장마차가 그 자리에서 몇십 년은 했는데 이제 휑하니 사라지고 난 후로는 나도 오뎅을 사 먹지 않게 되었다.


그 집이 내가 딱 좋아하는 오뎅의 맛이다. 국물이 짭조름하니 새우나 게, 땡초 같은 것들은 전혀 들어가지 않고 예전의 오뎅국물 같은 그 맛. 정말 보온병에 담아와서 국수를 말아서 후루룩 먹고 싶을 정도였는데, 한 번은 그렇게 국물을 받아와서 국수를 삶아서 먹었다. 꿀맛. 오뎅은 두부 같은 음식이다. 다른 음식에 비해 저렴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그래서 먹고 나면 기분 좋아지는 그런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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