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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싫은 소리가 있다면 그건 타인의 웃음소리다. 나에게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웃음소리. 음산하면서 마치 나를 향해 깔보는 말들을 흘려보내는 것 같은 웃음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무라카미 류는 무의식 중에 들리는 웃음소리는 폭력에 가깝다고 했다. 히히히히, 킥킥 킥킥, 크크크크 같은 웃음소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근처에서 계속 들린다면 아마도 누구라도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꼭 나에게 하는 지랄 맞은 말 같아서.


우리는 그런 웃음을 티브이 뉴스를 통해 보기도 한다. 가해자가 법정으로 가기 위해 몸이 포승줄에 꽁꽁 묶여서 가고 있음에도 피해자들을 향해 짓는 웃음이 그렇다. '2AM: The Smiling Man'이라는 4분짜리 단편 영화를 보면 타인의 기괴하고 기묘한 웃음이 사람에게 얼마나 공포를 주는지 알 수 있다.

https://youtu.be/_u6Tt3PqIfQ




"씨발, 나는 해미를 사랑한다구요."

종수가 애타게 말을 하지만 벤은 큭큭큭큭 웃으며 대마를 피운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으니 안 그런 척 하지만 나 이외의 사람들은 멸시당해도 지극히 당연하다는 웃음. 킥킥 킥킥 거리며 웃는 소리는 귀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피부를 통해서, 내 얼굴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서 기어 들어온다. 마치 벌레처럼.



종수는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다. 종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종수가 말했다. 나는 아버지를 미워한다고, 아버지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한 번 터지면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고 말이다. 종수는 그런 아버지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걸 알고 있다.


가진 게 없어도 재미를 위해서 여행을 가고 팬터마임을 배우는 해미는 재미를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벤과 어울리지만 종수는 낄 수 없다. 공항에서 곱창집으로 가면서 벤은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우수한 DNA를 이어받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종수가 가지지 못한 엄마와 웃음을 난타한다.


종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종수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분노조절로 구치소에 간 것처럼 자신도 그런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해미 이전의 해미들이 벤의 서랍 속에서 사라져 갔다는 것을. 유전자는 내면의 호러인 것을.


사람들은 버닝이 미스터리하고 애매해서 어렵다지만 실은 버닝은 시처럼 구체적이어서 어려울지도 모른다. 모든 장면과 대사가 구체적이고 구체적이어서 구체적으로 다 나타난다. 단지 너무 가까이 있어서 구체성을 사람들이 찾지 못해서 어려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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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2-04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버닝> 강렬했던 영화! 마지막 문단 너무 소름돋네요👍

교관 2021-02-05 12:28   좋아요 2 | URL
영화 정말 좋았어요. 이창동 감독이 소설가여서도 그런지 영화가 꼭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메타포로 꽈악 짜여진 듯 했습니다. (엄지표시)
 


 나는 지금 벤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나는 실은 여기에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모습이 여기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나면 나는 여기에도, 지금 잠들어 있는 해미의 몸속에도 그리고 아버지가 있는 구치소에도 있다.    


 남자들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 놓고 춤을 추고 그래, 창녀나 옷을 그렇게 벗는 거야.    


 내가 왜 그런 말을 해미에게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날 이후 해미는 보이지 않는다. 해미는 완벽하게 사라진 것이다. 흔적도 없고 가방도 두고 아프리카에도 가지 않고 그대로 어딘가에 동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휴대전화로, 해미에게 온 전화만으로 그것이 해미라는 것을 알 수는 없었다. 마치 해미라는 생령이 나에게 전화를 하여 어떤 메타포를 던지고 간 것 같았다. 윌리엄 포크너가 그랬다. 인간의 오류는 몰라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다 안다고 착각하는 데서 오는 것이라고.    


 설령 나의 착각이라 할지라도 나는 해미를 찾아야 했다. 나는 어릴 때 해미에게 못생겼다고 말했다고 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없는 것일 뿐이 아니라 내가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 해미가 잘못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시 나의 없는 기억도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해미는 그런 말을 나에게 들었고 나는 그런 말을 해미에게 해 버렸다. 어린 해미에게 나는 상처를 준 것이다. 해미는 그 상처를 입고 어딘가에 풀지도 못한 채 어른이 되어 버렸다. 나는 해미에게 그 상처를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해미를 찾아야 했다. 나는 해미를 좋아하게 되었으니까. 해미의 미소와 담배 피우던 모습과 나에게 말을 할 때 눈빛과 나를 잡아주던 그 손길을 나는 사랑하게 되었다.   

  

 이후 꿈을 꾸면 비닐하우스를 태우고 있는 어린 나를 바라보는 꿈을 꾼다. 그 비닐하우스에 불을 낸 사람은 나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불을 낸 것처럼 희열을 느끼며 바라보고 있다. 그 어린 종수를 나는 쳐다보는 꿈이다.     


 어린 종수는 어른이 되어 버린 어른 유전자의 종수를 태우며 희열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꿈을 꾸고 나면 개운하지 않게 일어났다. 마치 잠이 들면서 현실의 비닐하우스를 끌고 꿈속으로 들어가 꿈속과 현실이 뒤섞여 몹시 불편한 현실의 자투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비현실의 비닐하우스를 태우면서 현실의 비닐하우스를 찾아다녔다. 벤이 태웠을 비닐하우스가 있는지. 그는 가까이 있는 비닐하우스를 태우며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바람에 힘없이 날리는 쓸모없어진 현실의 비닐하우스 속에 들어가 있으니 결락감이 몸으로 파고들었다. 결락은 차갑고 무서워서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지만 몸이 덜덜 떨렸다.


 낡고 못쓰게 된 비닐하우스를 바라보고 있으니 비닐을 통해서 내 모습이 읽혔다. 그리고 해미의 모습도.    


 변변찮은 동네의 변변찮은 집에서 변변찮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변변찮은 유전자의 모습이 비닐하우스 속에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노력을 해도 결국에는 못쓰고 볼품없는 비닐하우스가 될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원래대로, 원래 이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비닐하우스는 태워지기를 바라고 있다. 포근하면서도 불안한 비닐하우스는 언젠가 태워질 것이다. 아주 빠르고 깨끗하게, 십 분 만에 타 없어질 것이다.    


 너무 가까워서 놓칠 수 있다. 너무 가까우면 안 보일 수 있다. 벤은 그렇게 말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우물을 놓치고 해미를 놓쳤다. 너무 가까우면 안 보인다. 해미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너무’라는 부사는 너무 어둡고, 너무 크고, 너무 깊은 것과 어울렸던 부정적인 투영을 나타낸다. 해미는 나에게 너무 가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해미를 놓치고 만 것이다.    


 해미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것이 진정 해미가 전화를 한 것인지, 해미인지 아니면 해미를 가장한 누구인지, 생령인지 알지 못한다. 해미의 방은 나와 해미가 나눴던 그 방이 이미 아니었다. 서울타워의 유리에 비친 햇빛이 아슬아슬하게 들어왔던, 위태로운 해미의 숨결이 남아있는 방이 아니었다.    


 그녀를 찾아야 했다. 보일이처럼 영원히 보이지 않게 되기 전에 해미를 찾아야 했다.    


 문득 해미가 아주 가까이 있는 비닐하우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벤의 집 화장실에서 해미의 손목시계를 보고 깨달았다. 해미 이전의 해미들이 서랍 속에는 가득하다는 것을.     


 정말 너무 가까이 해미가 있어서 놓친 것이다. 이 세계는 수수께끼 같은 곳이다. 혼잡한 세상 속에서 나 하나쯤 타 없어진다고 해도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 쓸모없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냄비에 지나지 않는 육체는 타 없어지는 게 맞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해미는 안 된다. 해미에게 창녀라고 해서 상처를 줬던 것도 사과를 해야 한다. 벤이 끼어들면서 상처 받은 내 마음도 털어놓고 싶다. 해미를 찾아야 한다. 이제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너와 함께 다시 한번 잠들고 싶다고 말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찾아야 한다.   


 애초에 집으로 전화를 건, 수화기 너머 긴 얼굴의 사람이 해미일지도 모른다. 해미는 거기에 있으면서 내가 있는 곳에 전화를 한 것이다. 나에게 무엇인가 말을 하기 위해서, 나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서, 나에게 입은 상처를 제대로 나에게 표현하기 위해서 전화를 한 건지도 모른다.    


 태우고 나면 그 후에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태우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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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르르릉.


 “여보세요…….”


 나는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 있는 긴 얼굴의 누군가에게 닿았을 테지만 아무런 소리도,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집으로 온 후 벌써 몇 번째 이런 전화가 오고 있다.    


 아버지는 자존심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변호사는 말했지만 실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이후 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아버지는 나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마치 나 이외의, 내 뒤에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건 꼭 나를 가장하고 있는 아버지의 유전자를 잉태하고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난 아버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에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와 이야기를 하지만 아버지는 지극히 공허와 대화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남은 삶을 세상과 타협을 하며 살아가는 방법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버지 자신의 자기 방어 기저를 만들었고 그건 아버지 자신에게 어떤 면으로(생활에 대해서) 미저러블 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는 이미 장소를 옮겨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화를 하는 건 아버지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착각이라는 것을 알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공허를 통해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전화를 하는 건 벤일지도 모른다. 벤에게서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매일 잠이 들면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꿈을 꾼다. 벤은 두 달에 한 번쯤 태우는 페이스가 제일 좋다고 했다. 당연하지만 남의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 명백한 범죄 행위, 이 명백하고 사실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건 너무나 간단한 것이라 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해미가 그랬다. 원래 없는 것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형태에 대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없는 그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 것.    


 벤이 하는 말을 듣고 어쩐지 해미가 한 말이 떠올랐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리지게 하는 것. 그건 어쩌면 나는 원래 나오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를 인간이었는데 아버지의 유전자를 옮겨 받아서 후세에 그것을 다시 옮겨주는 어떤 냄비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벤은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포르셰를 몰고 다니며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늘 유쾌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인간인지 알 수 없었고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 와인파티를 한다. 일정 시간을 들여 좋은 곳에 위치한 Gym에서 운동을 해서 에너지를 억지로 소모했다.


 여자들이 싫어할 리 없는 종류의 인간이다. 벤이란 그런 인간인 것이다. 그렇게 타고 난 인간이다. 세상에는 그런 인간이 있다. 이미 그런 인간은 정해져 있다. 그렇게 정해져 있는 인간에게 세상의 어떤 틀은 그런 인간을 어쩌지 못한다.

   

 해미도 벤의 주위에 감도는 그런 분위기에 그만 끌리고 말았다. 밖에서 보면 옅은 물이지만 막상 발을 담그면 무릎까지 차올라 놀라게 되는 그런 몹쓸 개울물에 해미는 들어간 것이다.    

 

 큰 비닐하우스가 다 타는데 십 분도 걸리지 않는다. 벤은 대마초를 흡입하고 연기가 뇌를 건드리기도 전에 그런 말을 했다. ‘나'라고 하는 비닐하우스를 만드는데 이만큼의 시간이 걸렸어도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다. 십 분 정도 만에 나는 사라질 수 있다. 범죄행위란 해보지 않는 이상 간단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는 없다.    


 나는 어릴 때 엄마의 옷을 아버지가 태우라고 해서 직접 태운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벤에게 했다. 엄마의 옷을 태우는 꿈을 꾼다. 엄마의 옷은 불이 붙자마자 홀라당 타서 없어졌다. 엄마의 깊은 냄새가 배어있는 옷은 그을음으로 바뀌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는 홀랑 타고 있는 옷을 지켜본다. 타 없어지는 것, 타고 남은 재도 사라지고 나면 그을음으로 동력 삼아 우리는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은 추억일지도 모르고 미미하게 남은 그리움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해미를 만나고 벤을 알고 난 뒤부터 나는 고립이라는 것에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홀랑 타서 죽어버리는 것보다 이대로 두 사람의 주위에서 고립된 채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 무섭다. 그것이 나에게는 무서운 일이다.     


 해미는 벤을 만나기 이전에는 나를 좋아했다. 나의 페니스에 콘돔을 끼워주던 해미의 손길을 나는 기억한다. 보일이의 밥을 챙겨주러 들어가면 집구석구석 박혀있는 해미의 냄새에 도취되어 나는 자위행위를 했다. 그 순간은 절실하게 해미를 떠올릴 수 있었다.    


 “한국에는 비닐하우스가 정말 많아요. 쓸모없고 지저분하고 눈에 거슬리는 비닐하우스는 몽땅 내가 태워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그 불타는 비닐하우스를 보며 희열을 느끼는 거예요.” 벤은 말을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난 다 알고 있어, 하는 표정의 미소.    


 자신의 손을 심장 가까이 대고 뼛속까지 울리는 베이스가 있다고 했다. 그건 뭘까. 그건 정말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태. 우. 지. 안. 고. 서. 는. 알. 수. 없. 다.


 “그건 형이 판단하는 거예요?”


 “나는 판단 같은 것은 하지 않아요. 그냥 받아들이는 거죠. 그것들이 태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거기에 옳고 그름은 없어. 자연의 도덕만 있지.”


 “자연의 도덕이요?”


 “자연의 도덕이란 동시 존재 같은 것이에요. 나는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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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워드의 눈빛에는 우주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공허한 표정이 스며있었다. 에드워드를 처음 봤을 때 좋은 옷감으로 만든 고급 정장과 긴 팔다리에 좋은 피부와 은은한 향이 기분 좋게 번지고 말투에 매너가 서려있어서 같은 인류인지 의심이 가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같이 지내는 동안 에드워드는 모두와 다를 바 없는, 나와 같은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에드워드라는 그 사람 자체가 어디론가 갑자기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모스의 회사를 빼앗지 않아서 기분이 편안하다고 했을 때 에드워드의 안도감이 내가 만질 수 있을 만큼 생생해서 나는 정말 기뻤다. 이 남자는 냉철한 인간이 아니었다.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칼을 빼들고 달려올 기사였다. 나는 며칠 만에 에드워드의 얼굴을 읽을 수 있었다.


 누구도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일련의 희로애락이 눈썹이나 입술로 살며시 드러나는 얼굴. 무엇보다 키스를 할 때 한없이 아이 같은 순수함을 담은 에드워드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나는 정말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자마자 헤어진 나는 정말 바보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루카에게 샌프란시스코에 같이 가자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장도 따고 공부도 하고 원하는 일을 하자고 했다. 하지만 루카는 이곳이 좋아서, 이곳의 냄새가 자신의 몸에 깊게 배어 갈 수 없다고 했다. 루카는 나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나의 루카.


 루카가 나가고 짐을 챙겨 나가려고 보니 집안의 물품들이 평소 내가 보던 모습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시끄럽고 소음이 가득한 방을 가득 채우던 낡은 물건들이 내가 떠나는 것을 슬퍼하는지 소리가 싹 걷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시간이 멎은 것처럼 보였다. 이젠 정든 것들에게 안녕을 고해야겠다.


 문을 나가려는데 창밖으로 오페라의 아리아가 들렸다. 그건 에드워드와 함께 봤던 그 오페라였다. 창문을 여니 거짓말처럼 에드워드가 손에 칼과 방패를 들고 멋진 갑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오고 있었다.


  맙소사.


 나는 어쩌면 그에게 고소공포 같은 것이다.


 그는 고소공포를 이겨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늘 피해왔던 고소공포를 끌어 안고 계단으로 한 발 한 발 올라올 때 나는 참을 수 없는 마음을 느꼈다. 에드워드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고소공포를 받아들이고 계단으로 올라와 나에게 양팔을 벌렸다. 동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기사님을 안고 키스를 했다.


 지금 이 순간이 금방 지나가리라는 것을 안다.

 앞으로 이렇게 좋은 순간보다 안 좋은 시간들이 우리의 인생을 가득 채우리라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이렇게 잠깐의 좋은 순간으로 구체적이고 딱딱한 불행의 시간을 이겨내리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지금은 에드워드를 꼭 안고 그와 키스를 하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


 사랑 그게 눈에 보이기나 할까.

 사랑을 하는 순간 사랑 자체가 상처다.

 이제 에드워드와 상처 속으로 뛰어든다.


 사랑해요 에드워드.


[끝]



귀여운 여인 OST - It must have been love

https://youtu.be/p0MdP8KeA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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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에드워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정들었던 이 최고급 호텔을 나간다. 이 남자의 시간이 있고 나의 시간이 있다. 이 남자의 삶에는 시간의 정체나 흐트러짐은 없지만 착실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나의 시간에는 정체가 가득하다. 이제 이 남자를 보내줄 때가 왔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또 다짐했지만 한쪽 구석에서는 계속 그를 잡아,라고 외쳤다.


 심란하고 불안하고 이상한 기분으로 에드워드를 기다리고 있는데 스타키 그 인간이 들어왔다. 스타키는 화가 잔뜩 난 얼굴이었다.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더 심통이 가득해서 꼭 호러 영화 속에 나와서 4분 만에 죽는 못된 단역배우의 얼굴 같았다. 스타키는 화가 난 이유를 나에게서 찾았다. 에드워드가 모스의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포기해버렸다고 했다. 속으로 나는 야호! 를 외쳤다. 그로 인해 이번에 공들인 돈이 날아간 이유를 나에게 돌렸다. 스타키는 그런 인간이었다.


 에드워드는 집에 들어올 거예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나는 스타키에게 말을 하고 소파에서 에드워드를 기다렸다. 하지만 스타키는 자기 화에 자기가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집? 집이라고? 이봐 여기는 호텔이야.


 내 옆으로 다가와 찰흙을 벽에 집어던져 흐르는 얼굴로 창녀, 길거리, 솜씨, 더러운, 같은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며 나를 덮쳤다.


 이 개새끼가 저리 가! 나를 덮치려는 스타키의 팔목을 깨물었다. 그때 뜨거운 것이 얼굴에 닿는 기분이 들었고 동시에 나는 소파 밑으로 벌렁 쓰러졌다. 화가 오를 대로 오른 스타키는 내 몸 위로 올라왔다. 저리 가 이 개새끼야! 스타키의 몸은 무거웠고 나는 발버둥을 쳤다. 욕을 마구 해서 구역질이 났고 얼굴이 아파서 힘도 없었다.


 그때 스타키가 내 몸에서 무엇에 의해 떨어져 나갔다.


 스타키, 난 널 해치기 싫어!


 에드워드, 이미 넌 나를 해쳤어! 고작 저 창녀 때문에,라고 말하는 스타키에게 에드워드는 주먹을 휘둘렀다. 에드워드의 주먹은 스타키의 코에 그대로 붙었고 눌린 찰흙의 얼굴에서 피가 났다. 에드워드가 나를 구했다. 마치 동화 속 기사처럼. 칼을 빼서 휘둘러 나를 구했다.



 에드워드는 부은 내 얼굴에 얼음으로 찜질을 해 주었다. 그 역시 오른손이 부어서 붕대를 감았다.


 남자들은 왜 여자들의 얼굴을 그렇게 때리죠? 고등학교에서 그렇게 배우나요?


 다 그렇진 않아.


 나는 에드워드에게 모스 씨와의 결정을 잘했다고 했다. 에드워드는 모스 씨의 회사를 빼앗지 않아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에드워드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손에 꽉 쥐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부드러운 손길로 찜질을 해주고 한 손으로는 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는 또 다짐했던 마음에 금이 가려했다. 일어나서 가려는데 에드워드는 나를 붙잡았다.


 매번 스타키 같은 당신의 친구가 나타날 텐데 그때마다 주먹을 휘두를 건가요?


 비비안 당신이 가려는 진짜 이유가 아니야 그건. 얼마나 더 원해?


 에드워드는 속마음을 말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전 동화처럼 되길 원해요.


 내 말에 에드워드는, 그런 일은 불가능해.라고 했다. 에드워드는 합의된 돈을 나에게 정중히 지불했고 우리는 짧은 인사를 끝으로 나는 방을 나왔다. 로비에서 아버지처럼 대해준 톰슨을 만났다. 그 역시 변함없이 직원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는 에드워드와 같이 뉴욕이 가지 않느냐고 했다.


 우리가 사는 건 현실이지 꿈이 아니에요.


 톰슨은 나를 위해 리무진을 준비시켰다.


 잘 지내요 톰슨.


 또 놀러 와요 비비안 양.




 리무진을 운전하는 데릴은 음악을 틀었다.

 록시트의 It Must Have Been Lover가 흘렀다.


 I wake up lonely, is there a silence

 In the bedroom and all around

 Touch me now, i close my eyes

 And dream away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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