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를 그린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그림을 내 식으로 그려봄



중학교로 올라갔을 때에는 초등학교와는 완전히 달랐다. 6학년이라는 최고학년이 지니는 굳건함과 남학생과 여학생이 어우러진 교실의 생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중학교는 냄새나는 아이들과 함께 목욕탕 한가운데 던져진 기분이었다. 가장 힘이 없는 1학년이 지니는 분위기는 2학년과 3학년의 그저 좆밥인 것이다. 어린이는 아닌, 그렇다고 완전한 청소년이 되지도 않은 아주 기묘한 성장기가 중학생이다. 아직 패션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교복도 전부 커서 어딘가 로봇이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위계질서를 잡으려는 권력욕은 심해서 힘이 있는 아이들은 힘이 없는 아이들을 극도로 누르는 모습을 보인다.


중학교 시절의 나는 그저 먼지처럼 지냈다. 나는 너무 존재감이 없었다. 하지만 없는 존재감 때문에 딱히 힘들어하거나 나를 누군가에게 내보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중학 3년 동안 내내 했던 생각은 빨리 중학생이 지나갔으면 했다. 정말이지 그렇게 어린놈의 자식이 얼마나 무료하고 존재가 먼지 같았으면 그저 빨리 지나갔으면 했을까. 나는 내내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초등학교 때에는 분명 공부도 곧잘 해서 성적순으로 뽑는 반장도 했는데 중학교에서는 성적도 나오지 않았다. 공부도 잘하지 못했고 운동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이어폰으로 음악이나 들으며 등하교를 했다. 고작 미술시간 정도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미술을 잘한다고 해서 그 어떤 선생님도 칭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미술 선생님도 그런 분위기였다. 미술시간은 구색 맞추기였다.


한 번은 담임이 나를 불러 문제집을 주면서 이걸로 공부를 해보라고 했다. 담임은 뾰족하게 생겨서 절대 나 같은 학생에게 관심을 가지는 인간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가 학교로 와서 담임선생님을 만나서 뭔가를 준 모양이다. 그게 너무 억울했다. 촌지를 받고 관심도 없는 학생에게 관심을 던지듯이 주는 인간이 나의 담임이라니. 공부를 하지만 성적이 나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왜 부모님은 그런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사람인 줄 알았다. 6학년 때까지 그랬다. 하지만 중학교에 가는 순간 알았다. 나는 루저 중에서도 먼지 같은 루저라는 걸. 발버둥 친다고 해서 나에게 머물러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바뀌지 않으리라는 걸. 발버둥을 치기도 싫었다. 발버둥이라는 건 함부로 치면 안 된다. 가망이 있을 때야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발버둥 쳐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에너지만 소모하게 된다. 서열이 확실하고 성적순으로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판단했다. 나처럼 성적이 안 좋고 먼지 같은 애들은 학교의 숫자를 채우는 하나의 몹인 것이다.

 

나는 집에서 중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버스로 치면 6 정거장, 7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였다. 방송국이 있는 산을 지나 도로를 따라 죽 걸어서 하천을 건너 XX여중을 지나서 학교까지 걸었다. 집에서 좀 일찍 나와서 라디오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서 학교에 갔고 돌아올 때에는 빙 둘러 다른 길로 걸어서 집으로 왔다. 그래서 걸으면 보통 1시간 이상이 걸렸다. 너무 싫은 시간이 영어 시간이었다. 영어를 가르쳐 주기보다 억양만 가르쳐주었다. 영어 문장이 있다면 억양을 제일 중요하게 여긴 선생님은 연필로 억양을 표시했다. 그리고 시험도 숙제도 전부 억양을 표시하는 거였다. 한 번은 억양을 내 마음대로 표시해서 숙제를 냈다. 영어 선생님은 로렉스를 차고 있었는데 시계를 탁 풀더니 들고 다니는 드럼 스틱으로 머리부터 손바닥 허벅지까지 난도질했다. 때리다가 자기가 더 화가 나서 강도가 더해졌다. 나는 학교를 다녀야 하는 이유를 전혀 찾지 못했다. 암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아마 2학년이었을 것이다. 반에서 같이 이야기를 하는 녀석이 생겼다. 그 녀석은 공부를 아주 잘하는 아이로 학교가 끝나면 나와 같이 걸어서 집으로 왔다. 얼굴은 유재석처럼 생겼고 머리가 곱슬곱슬해서 귀여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성적을 제외하면 둘 다 먼지 같았고 이야기도 잘 통했다. 같은 반이라 점심도 같이 먹었다. 그렇게 1학기를 같이 보내고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인사를 하고 방학이 끝나면 잘 지내보자며 헤어졌다. 여름방학을 보내고 2학기가 되었을 때 그 녀석은 나를 피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짐작은 갔다. 언젠가 그러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녀석에게 왜 그러냐, 또는 그런 일로 내가 충격을 받는 일은 없었다.

 

그날은 가을에 접어든 날이었다. 가만있으면 춥고 움직이면 더운 날이었다. 곧 기말고사가 있다. 공부를 매일 했지만 시험성적은 안 나올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부모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안다. 하천을 가로질러 가는데 하천 바닥에 누군가 엎드려 있었다. 하천은 발목 정도까지 밖에 오지 않지만 저렇게 사람이 엎드려 있을 수가 있을까. 나는 그 사람 가까이 다가갔다. 설마 했는데 사람이 맞았다. 그때까지 왜 사람이 물이 흐르는 하천바닥에 엎드려 있는지 잘 분간을 할 수 없었다. 물웅덩이에 얼굴이 그대로 처박혀 있는데 도통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물에 빠져있는데 십분 이상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건 분명 저 아저씨가 술에 취해 저런 모습으로 잠이든 건 아니었다. 잠을 자지 않고 저대로 물에 얼굴을 빠트린 채 10분을 꼼짝 않고 있었다. 아저씨는 체크무늬의 난방을 입고 있었는데 등이 위로 부풀어있었다. 그 모습이 나에게는 몹시 끔찍한 현실로 다가왔다. 움직여야 할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그 모습을 실제로 봤다는 것이 나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왔다.


사람이 죽는 방식에는 여러 방식이 있지만 얼굴이 물에 잠겨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방식은 너무나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은 나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를 안겨 주었다. 양손이 차렷 자세로 물에 빠져 있는데 손도 물에 퉁퉁 불어 사람의 손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얕은 물에도 사람이 빠져 죽을 수 있다니. 나에게는 굉장한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아니, 당시의 나에게 충격이라는 단어로 그걸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나는 죽은 자의 바로 앞에서 꼼짝도 못 하고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나에게는 끔찍한 현실로 다가왔다. 그제야 경찰이 사이렌을 올리며 오고 바리케이드를 쳤고 나를 거기서 떨어지게 했다. 후에 얼굴이 하천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은 잔상을 남기며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이후로 내가 하는 말이 옳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렇지 못한 지 전혀 구분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도 상대방의 이야기가 조금씩 축소되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고 올바른 행동을 하더라도 이것이 진정 올바른지 아닌지에 대한 척도를 판단할 수 없었다. 분명 중학시절 내 몸속에는 텅 빈 공동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그 속에 추억이나 기억 같은 것들로 채워나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끔찍한 현실의 죽음을 본 이후 공동 속에 기이한 존재가 싹트기 시작했다.  얼굴을 박고 죽은 아저씨는 사랑받고 중학교 그 시절을 보냈을까. 시간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책임이 따르는 일이 많고 또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 말을 하천에 얼굴을 박고 죽은 아저씨가 일어나서 나에게 말했다. 인간의 생이란 대체로 고달프고 자주 고통스럽다가 아주 가끔 반짝인다고 나는 알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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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 24에서 책을 몇 권 주문할 때 채널예스도 받아서 펼쳐 보았다. 박준 시인의 인기가 좋아서 표지부터 해서 스타트를 끊었다. 제일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박준 시인의 인터뷰를 옮겼다. 박준 시인의 첫 시집 그걸 읽고 온 동네방네 읽어 보라고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박준 시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시집 제목이 생각이 안 난다. 당신의 이름으로 밥을 지어먹었다인가? 암튼 이름을 먹었다. 아휴 알았다니까요, 읽어 볼게요. 라며 당시에 독서를 좋아하는, 취미로 가진 이들에게 들은 말이었다.

박준 시인의 시는 술술 읽힌다. 나는 술술 읽히는 시는 별로라고 생각했다. 편견이지만. 한강의 시는 술술 읽히지 않아서 열심히 고민하고 생각을 해야 했다. 하지만 박준 시인의 시는 술술 읽히는데 사색케 하고 사고하게 했다. 그 당시에 배캠에도 나왔었다. 배철수 형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때에는 창비인가 문지에서 편집부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기억이란 이래서 기억인 거지.

채널 예스에는 소설가 정용준의 짧은 소설도 있다. 첫 문장을 읽고 나는 그만 세신사가 불국사, 백담사 같은 사찰로 읽어 버렸다. 여러분은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소설 ‘돌멩이’는 세신사로 일하는 신 씨의 목욕탕에 온 몸에 멍이 들고 눈 안은 실핏줄이 터진 한 소년이 들어온다. 그리고 멍하게 앉아만 있는 그 소년의 몸을 무료로 밀어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주 짧은 소설인데 아주 긴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읽은 느낌이다. 소설이 참 좋다. 짧게 쓴 소설의 앞뒤의 이야기가 머리에 마구 떠오른다.

채널예스를 한 장 한 장 읽다 보니, 아무튼 채널 24, 예스 24의 목표는 책을 판매해야 한다. 하루키의 ‘무라카미 티셔츠’를 읽어보면 그 속 어디쯤에 책을 읽어 주세요, 그래야 작가들도 먹고 산다는 글이 있다. 채널 24도 책 판매가 큰 목적이니까 이 안에 이번 달에 나온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도 나왔다. 일기 형식이고 두 번째 산문집이다. 최승자 시집도 몇 권 있다. 역시 읽으면 어렵다. 그래서 좋다. 최승자 시인의 시에 얼마나 빠져서 뇌에 고통을 주었던가. 생각해 보니 한창 시를 적었을 때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문예지에서 하는 시 공모전에서 신인상을 탔다. 그런데 나는 거부했다. 그 당시에는 이 정도로 적은 시에 상을 준다니? 주최하는 곳이 이상한 거 아니야? 같은 생각이 가득했다. 지금 생각하니 왜 그랬나 싶지만, 만약 그때 상을 받아서 어영부영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면 그 후에 나는 그 타이틀에 걸맞은 시를 열심히 적었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시시해지는 시는 시라기보다 문구? 정도다. 시라는 건 시를 적는 시인의 고통이 활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까. 박준 시인도 저 인터뷰를 읽어 보면 산문에 비해 시는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고통스럽게 적는다고 했다.


아직까지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개근상도 못 타본 내가 상을 놓친 것은 조금 아쉽다. 예전에 강변가요제인가? 대학가요제인가? 거기서 대상을 타고 그날 저녁에 기쁨에 만취하여 트로피를 잃어버린 녀석들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시는 왜 그런지 하찮은 것,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 위로를 해주는 것 같아서 좋다. 그래서 시는 대중교통 같다. 자가용이 아무리 많아져도 대중교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역시 시 또한 사라지지 않고 작고 힘없는 사람들 곁에서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일기도 소개가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잘 모르니까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하자면, 이 사람은 괴짜에, 천재에, 바보에, 운이 너무 좋거나 물욕이 없고 안타까운 사람이다. 집안에 아주 부자였다. 엄청난 부자였는데 예술가들을 후원을 많이 했다. 비트겐슈타인이 8남매인가 그랬는데 어릴 때부터 집으로 음악가들이 와서 저녁 연주를 해주곤 했다. 그 음악가들 중에는 말러도 있고 브람스도 와서 막 연주를 해줬다. 집에 피아노가 7대나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만드는 걸 좋아해서 후에 공학을 전공하니, 아마도 비트겐슈타인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의 피아노였을 것이다. 클림트는 비트겐슈타인의 셋째 누나도 그려준다. 또 셋째 형인가? 2차 대전 중에 왼팔을 잃었는데 라벨이 그를 위해 한쪽 팔로도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곡을 작곡해준다. 대단하지.


비트겐슈타인이 어린 시절에 학교에 가는데 뭐랄까 말투가 이상해서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초딩 때 친구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 있을 텐데 비트겐슈타인이 좌측에 있고 우측에 있는 꼬꼬마가 히틀러다. 후에 독재자가 되었을 때 우리 학교에 이상한 말투의 유대인 녀석이 있었지,라고 했단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커가면서 죽음에 다가가려고 했다. 자신의 정체성 같은 것도 혼란했고, 무엇보다 아버지와 재산 문제로 늘 마찰이 있던 첫째형이 동성애자였는데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 모습에 비트겐슈타인은 크게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둘째형과 셋째 형도 그만 극단적 선택을 하여 세상을 떠난다. 동성애자인 비트겐슈타인도 늘 죽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영국으로 가서 대학교를 다닌다. 캠브리지대학인가, 거기를 다닌다. (제가 비트겐슈타인을 다시 한번 찾아보고 글을 적으면 되는데 너무 귀찮습니다. 예전에 주워들은 것들을 그저 나불나불 거리는 것이니 어? 그게 아닌데 하는 부분은 제대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성인이 되면서 계속 죽음의 유혹에서 괴로워한다.


그러다 보니 철학을 너무나 하고 싶었다. 그래서 스승인 러셀을 찾아간다. 하지만 러셀은 귀찮아서 늘 도망 다닌다. 하지만 이 비트겐슈타인이라는 녀석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할 수 없이 비트겐슈타인에게 그럼 방학 동안 글을 하나 써와라 그래서 그걸 보고 네가 철학을 할지 그냥 공대생으로 남을지 결정을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방학 동안에 글을 하나 써온다. 러셀이 비트겐슈타인이 써 온글의 첫 부분을 읽자마자 너는 철학을 해라, 그렇게 해서 비트겐슈타인이 지금 이렇게나 추앙받는 철학가의 길로 접어든다. 러셀에게 써 온 그 글이 인터넷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가장 유명한 이야기,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은 지금 이 방에 코뿔소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논재를 가지고 토론을 했다. 러셀이 비트겐슈타인에게 지금 이방에는 코뿔소가 없다고 했는데 비트겐슈타인이 그 말을 부정하며 증거를 보여달라며 두 사람의 논쟁이 시작된다. 결론은 이 방에 코뿔소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하하. 러셀은 지독스럽게 이런 논제를 가지고 찾아오는 비트겐슈타인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다.


그러다가 1차 대전이 터지는데 비트겐슈타인은 원래 면제자인데 손을 들고 나는 입대하겠다고 우겨서 입대를 한다. 전쟁이야 말로 죽음을 바로 맞닥트릴 수 있기 때문에. 더군다나 포병의 관찰병인가 그 보직을 자원해서 간다. 거기가 가장 적에게 포탄을 맞을 확률이 높은 자리다. 왜냐하면 적의 포대가 어디에 있나 관찰을 하는 곳이니까 적에게 노출이 되면 바로 포탄을 맞는 곳이지만 비트겐슈타인은 그곳을 자원한다. 그곳에서 총알이 빗발치는데 가운데에서도 매일 일기를 썼다고 한다. 그 일기가 바로 저 책이다.


전장에서 총알과 포탄이 터져 막사가 터지는 가운데에서도 글을 미친 듯이 쓴 작가가 또 한 명 있었는데 그게 바로 호밀밭의 파수꾼의 셀린저다. 둘 다 정신이 나간 거지.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엇이 머릿속에 있었던 모양이다.


비트겐슈타인은 그래서 일반병으로 입대를 했는데 장교로 제대를 하기도 했고, 적에게 잡혀 포로가 되기도 하는데 집이 워낙에 부자라 돈으로 빠져나오기도 한다. 전후에 아버지가 사놓은 미국 채권이 엄청나게 불어나서 완전 부자에 부자에 부자 중에 부자가 된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에게 돈은 무용한 것이었다. 다 나눠주었다. 남아있는 형제들과 예술가들에게 다 준다. 그런데 가난한 자들에게는 나눠주지 않았다. 가난한 자들이 갑자기 돈이 불어나면 이상한 생각을 한다고 했단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자기의 별장 하나만 남겨 놓는데, 그게 말이 별장이지 산 언덕에 아주 작은 오두막 같은 집이다. 이것도 인터넷을 찾아보면 그 별장을 볼 수 있다. 거기서 생활을 한다. 그저 흙 파먹어가며.


그러다가 2차 대전이 터지고 이번에는 간호병인가?로 자원입대를 한다. 아아 이제 죽을 수 있구나. 비트겐슈타인은 늘 이런 생각에 시달렸다. 다시 제대를 하고 별장에서 생활하다가 별장 생활을 청산하고 한 초등학교의 교사로 가는데 거기서 애를 두들겨 패서 기절을 시키기도 하고. 친누나의 집을 자신이 지어주는데 그게 뭐랄까 당시의 건축물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금 현대적인 이 시대의 건축물과 흡사한 집을 짓는다. 역시 인터넷을 찾아보면 현대식으로 지은 비트겐슈타인 식 집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캠브리지로 와서 연구를 하라는 러셀의 연락을 받는다. 그래서 훌훌 털고 그곳으로 가는데 마중을 누가 나오냐 하면 바로 케인즈가 마중을 나온다. 케인즈가 그 당시에 했던 말이 드디어 ‘신‘이 오는구나,라고 했다. 그러다가 50년대, 60대에 전립선암이라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비트겐슈타인은 몹시 기뻐했다. 철학적인 언어 말고 가장 유명한 말, 지난 나의 생활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했나. 그렇게 세상의 별이 되고 만다.

 

비록 이렇게 초간단 뇌피셜로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 주절주절 했지만 그의 철학은 철학가들은 물론이고 음악가, 미술가, 작가,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이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를 규정한다’이다. 그리고 이에 해당하는 그의 글을 읽으면 철학적인 사유가 우리 일반화에 들어옴으로 해서 우리의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이 든다. 나도 한때는 비트겐슈타인과 사르트르를 읽으며 와 이건 철학인데 너무 재미있는 걸, 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모두가 사랑하기 때문에 관심 있으면 한 번 제대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나올 전자책 표지의 디자인을 두 가지 버전으로 해서 보내주었다. 아주 마음에 든다. 기린의 언어는 주인공 라미라는 중학생이 어릴 때부터 다니던 동물원의 기린이 무력해 보이기에 중학생이 되어서 탈출을 시키기 위해 기린의 언어를 습득하는 아주 짧은 소설이다.


후에 라미가 성인이 되고 기린의 언어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숨기고 살아가는데 느닷없이 기린의 언어로 라미에게 말을 걸어오는 어쩐 존재가 생기면서 다시 이야기가 진행되는 그 후의 이야기를 적으려고 초반까지 좀 적어놨는데 질질 끌고 있어서 혼자서 낭패군, 하며 있다.


대부분 이른 오전에 바닷가 맥도널드에 일찍 가서 자리를 잡고 맥모닝 따위를 먹으며 적었을 때가 제일 잘 적혔는데 코로나가 볼기짝을 후려치듯 몰려든 다음에는 그걸 할 수 없게 되어서 인지 수월하게 앞으로 쾅쾅 나가지 않는다.

 


나의 소설을 최초에 세상에 내보이게 만들어준 건 한 계간지였다. 그 계간지의 편집장님이 기묘하게도 나의 소설을 좋아해 주었다. 그래서 무려 2년이나 연재를 했다. 그 편집장님은 한솜 출판사 대표이시기도 하고 장편, 단편 소설은 물론이고 출판업에 뛰어들어 열심히 하신 분이다. 나의 소설을 좋아해 주시고 칭창만 해줬던 것이 기억난다. 그랬던 계간지도 코로나의 직격탄인지 어쨌는지 사라졌다. 거의 30년은 된 것 같은데 코로나 이후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 계간지가 있던 기업은 한솜미디어로 굳건하지만 계간지는 이제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코로나로 사라진 출판업, 문예지, 가게, 직업들이 얼마나 많을까. 소설가 황정은은 코로나 시기의 일기를 꾸준하게 적어서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그 속에는 여러 가지가 소멸하고 또 생성했을 것이다.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이번 채널 예스의 테마가 일기다. 작가들이 코로나에 접어들어 기록한 자신의 일기를 테마로 하고 있다.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가 뭘까. 그건 자기 혼자 쓰고 읽으면 일기고, 세상에 내보이면 에세이다.라고 생각한다. 에세이의 좋은 점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 보아라, 같은 문장이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일기니까. 밤에 쓴 일기라면 좀 더 감성적이고 감정에 치우쳐 후에 읽으면 오글거릴 수 있지만 솔직한 자신의 속마음이고, 낮에 쓴 일기라면 밤에 피는 꽃만큼은 아니라서 감정이 조금 소거되어 담백할 수 있다. 나는 태어나서 아직 자기 계발서를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는데 지금 상태로는 앞으로도 안 읽을 것 같다. 매일 쓸 일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일단 쓰고 나면 아침에 일어나서 똥 누고 밥 먹는 것도 특별해진다.


그나저나 너는 잘 있냐, 그곳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내내 얇은 하늘하늘 에이프릴 만으로도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있겠지. 대답도 없고 말도 못 하고 소식 없으면 잘 있는 거지. 아직 로비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게 마음이 안 든다. 크리스마스트리라는 건 12월 26일이 되면 싹 다 치워버려야 좋은 거 같은데. 아직까지 머라이어 캐리가 올아원포~를 부르고 있다니까. 아무튼 너도 그렇고. 너무 좋아하진 말자. 너무 좋아하면 너무 좋아해서 미워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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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1-19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채널 예스 이거 볼만하죠?
예전에 강남 예스24가 있을 땐 얼마만에 한 번씩 가서
뭉터기로 가져 온 적도 있는데 그곳이 없어지고 나니
잘 안 보게 되네요.
과월호는 2천원인가 하던데. 꽤 싼 건데 비매품으로 파는 걸
돈 주고 산다고 생각하면 좀 아깝더라구요.
당월호는 300원인가 하죠? 그건 또 적립금으론 결제가 안 나는 걸로
아는데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암튼 이래저래 저와는 인연이 없는 잡지가 되어버렸는데
여기서 보니까 반갑네요.^^

교관 2022-01-20 11:49   좋아요 1 | URL
체널예스에 대한 숨은 이야기가 많으시네요, 듣고 있으면 재미있습니다 ㅎㅎ. 이번 호를 관통하는 주제가 좋아서 그런지 다 읽어 버린 것 같아요 ㅎㅎ.
 

남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맥도날드로 달려가 커피와 감자튀김을 씹으며 하루키 읽기. 매일 달리는 조깅코스에서 표층적으론 미미하지만 심층적으로 다른 공기와 만나기. 안성탕면이나 스튜에 토마토를 듬뿍 넣어 으깨 먹기. 이층에서 창밖 일층 바라보기. 마음대로 일 시작해서 마음대로 일 끝내기. 덴마크식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 관찰하기. 사람들에게 소설적 거짓말하기. ost 찾아 듣기. 영화 보고 리뷰 적기. 협소한 인간관계를 좀 더 좁히기. 운전하면서 에버 프리 크게 따라 부르기. 돼지국밥 집에 계란 하나 들고 가서 나올 때, 아직 막 보글보글 끓고 있을 때 탁 깨서 넣기. 샤워하고 캐시미어 이불에 발가락으로 비비기. 애플 키보드로 활자 쓰기. 노순택의 사진 찾아보기. 금연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나보다 약해 보이는 인간 노려보기. 자주 가는 오뎅 집에서 무 집어먹기. 핸드크림 바르고 손등에 냄새 맡기. 참치 인간 상상하기. 바닷가 라바짜에 제일 첫 손님으로 제일 첫 커피 받아 마시기. 비 온 후 해무 들어마시기. 조카와 서점가기. 상관없는 사람이 상관없는 세계에 대해서 하는 말 멍청하게 듣기. 잠들어 있는 곱슬이 배 만지기. 새 볼펜 구입하여 볼펜 심이 줄어들어가는 것 보기. 로렌스 라우리의 그림 속 사람들 따라 그려보기. 미스틱 훔쳐보기. 그럴만할 때 손톱, 발톱 깎기. 현실을 illusion 화 시키기. 기억의 표면에 붙어있는 당신의 눈동자 떠올리기. 오아시스의 스탠 바이 미 듣기.

따위를 예전에 좋아했다.

한동안은 그림 그리길 좋아해서 열심히 그렸었다.

불과 일이 년 전.


주위 사람들을 그려줬다.

그리고 보니 전부 여자다.

반성한다.



민들레가 좋은 이유는 이름이 민들레이기 때문이다. 민들레만큼 예쁜 이름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민들레는 거창하지 않고 들판에 가면 늘 볼 수 있어서 좋다. 불꽃처럼 한 번 화려하게 피는 꽃도 있지만 그저 늘 볼 수 있어서, 그래서 언제나 곁에 있어서 위로가 되는 민들레가 좋다. 누군가, 만약에 나는 민들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고 말한다면 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가서 정중히 인사를 하고 손을 내밀 것이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민들레는 내내 초조해서 초초하게 바람을 기다린다. 그러다 바람이 불면 홀씨가 바람을 타고 그리운 사람에게로 간다. 그 사람은 홀씨가 코에 들어가 에취 하며 재채기를 한다. 그리고 눈에 눈물이 핑 돈다. 눈물은 그리움의 맛이 난다. 민들레만큼 확실한 노란색을 띠는 꽃도 없다. 민들레는 노랗기 때문에 좋다. 노란 것들은 전부 예쁘다. 너무 흔해서, 너무 흔해빠진 노란색이라 좋아한다. 노랑은 사랑을 말한다. 민들레는 있는 그대로 사랑을 말한다. 안녕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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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1-18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그림 잘 그리시네요.
여자분들한테 인기가 많으신가 봐요.^^

교관 2022-01-19 11:47   좋아요 1 | URL
인기 같은 건 다 뜬구름 같은 것이에요 ㅋㅋㅋ

 


매일 보는 바다의 모습이지만 매일 보기 때문에 매일 달라지는 바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바다의 장점이라면 멍 때리기 좋다. 바다 멍만큼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을 수 있는 곳도 없다. 빛이 바다에 떨어져 반짝반짝 은갈치 같은 실루엣은 그저 멍 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매일 보면 바다는 어제와 다르고 한 시간 전과도 다르다.


그저 어쩌다가 보는 바다에서는 그 달라짐을 눈치 채지 못한다, 바다는 표정을 가린 채 너는 내가 어제와 어떻게 달라졌는지 모를 걸, 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어쩐지 사람과 닮았다. 사람은 시간을 들여 조금씩 늙어가지만 눈치 채지 못하다가 십 년 후에 늙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늙어가야 아이들은 쑥쑥 커가니 나는 왜 이렇게 늙었지 같은 생각은 소용이 없다.


여기는 광역시이기는 하지만 지방이라 당연하지만 사투리가 난무한데 프랜차이즈 카페의 직원들이나 로컬 카페의 주인이나 아르바이트생들은 전혀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신기할 정도로 사투리를 들을 수 없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나 정도밖에 없는 착각이 들 정도다. 착각이 들 만큼 표준어를 쓰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아진 건 확실하다. “왜 이카는 데, 저거 두가” 같은 말을 쓰는 사람은 바닷가의 장기방에서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 정도뿐이다.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는 모습을 구경하면 재미있다.


훈수를 잘못 둬서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심각해지기도 하고, 한 수를 옮기는데 너무 오래 걸려 또 전쟁이 나기도 한다. 보통 그렇게 전쟁이 나다가도 장기기 끝이 나면 사랑으로 바뀌는데 막걸리는 마신 경우는 장기가 끝나고 백사장으로 가서 전쟁의 2막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때에는 기분 좋은 사투리를 들을 수 있다. 시원시원하게 내뱉는 사투리의 욕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다 코로나 전의 이야기다.



어떤 날의 바다는 겨울의 차가운 사념을 가득 지니고 있다. 한파가 몰아치고 지나가면 영상의 기온이 바닷가에 퍼지면 동네의 노인들이 나와서 볕을 쬐며 앉아있다. 미동도 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는 노인들의 등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꼭 바다의 사념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또 어떤 날의 바다는 궤변을 잔뜩 늘어놓은, 터무니없는 모호한 칼럼을 읽는 것 같다. 여기를 읽고 있는데 이미 읽었던 문장 같다. 또 어느 날은 길을 잃어 헤매는 바다코끼리의 울음 같기도 하다. 어떤 결락을 바다는 잔뜩 지니고 있다.


그러다 활자로 지정할 수 없는 날이면 바다는 부쩍 신이 나서 파랗게 질려 황홀의 밤과 낮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어떻든 바다를 정직하게 설명하려고 하면 부정확한 대기가 해무처럼 확 다가와서 나를 감싼다. 이어폰에서 음악이 바뀌어 에드 시런의 노래가 나온다. 에드 시런은 참 에드 시런 답게 생겼는데 에드 시런 답게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이렇게 좋다니. 노래가 끝나면 한기가 파도처럼 밀려올 것이다. 조깅을 끝내고 따뜻한 국을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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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추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창밖은 몹시 춥고 내가 있는  안은 아주 따뜻해서 창밖의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함이 드는커피를 홀짝이며 흘러나오는   없는 음악을 듣는 오전의 시간이 아주 좋다하루  오전 10시에서 11 30 사이의 시간이 하루  제일 편안하고 기분이 좋은 시간이다라디오를 들으면 오전의 디제이들이 오전에 어울리는 멘트를 마치 친구처럼 한다커피를 마시며 맨하탄스나 시카고의 음악을 들으며 창을 투과하는 햇빛에 잠시 졸음에 겨워 노곤함이 들다가 오래된 팝에 추억에 젖기도 한다 시간에 나오는 음악은 소녀스럽다요란하지 않고 거창하지 않고 들으면 미소 짓게 한다.

이 시간이 더 좋으려면 아직 이불 안이어야 한다. 창으로 바람이 와서 부딪혀 비명을 지르고 커튼을 조금 걷은 창으로 해가 들어와 방 안에 요만큼의 자리를 만든다. 햇빛 따위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이불 안에서 몸을 말고 오전 9시부터 나오는 라디오 소리에 미미하게 잠에서 깨었다 들었다 한다. 라디오에서 디제이가 나직하게 멘트를 한다. 나는 몸을 한 번 옆으로 뒤집는다.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면 이불에 닿는 감촉이 좋다. 디제이는 오전에 계란 프라이를 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기름에 계란이 그러데이션을 이루며 노릇하게 익어가는 모습을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지글지글 계란이 부풀어 오르면 노른자를 깨트리지 않고 밥 위에 올려 맛간장을 위에서 몇 방울 떨어트려, 까지 말했을 때 침이 꼴깍 넘어간다. 곧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 나온다. 그러면서 나는 기반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상은이 부르는 ‘삶은 여행’은 깊이 있는 노래다. 이 정도의 노래를 만들려면 경. 험.을 하지 않고서는 가사를 만들 수 없다. 좌절을 맛보고 절망을 벌리고 들어가서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희망을 보고 나온 것 같은 가사다. 삶은 여행과 삶은 계란의 ‘삶’이라는 글자는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삶’이라는 명사와 ‘삶다’라는 동사는 비슷한데 다르다. 따지고 보면 ‘삶’과 ‘삶다’ 사이에는 시간이 지나 익어가면서 영글어 가는 명확함이 있다. 그 사이에는 공백이 존재하고 그 공백을 어떤 식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명확함의 관념은 달라진다. 거기에 ‘기반’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보통 ‘기반을 잡는다’라는 말을 왕왕한다. 기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기반이라는 단어와 의미에 대해서 굳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이상은의 노래를 들으며 기반이란 계란 프라이 같은 기. 본. 반. 찬.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매일 기본 반찬을 챙겨 먹는 것이 기반이 좀 잡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기본 반찬을 매일 챙겨 먹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젠가 끝나는 ‘삶은 여행’을 계속 듣고 있으면 조금은 불안하다.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두려움이 따라붙는 것처럼 행복 속에 싹트는 껄끄러운 불안이 고개를 든다. 늘 행복하다가 한 번 불행해지는 게 나은 삶일까, 썩 행복하지 않다가 한 번 행복해지는 것이 나은 삶일까.


‘삶‘이라는 단어를 떨어트려 놓으면 ‘사람‘이 된다. 사람의 ‘ㅁ’과 ‘ㅁ’이 만나면 부딪혀 깎이고 깎여 시간이 흘러야 ‘ㅁ’이 ‘ㅇ’이 되어 사람은 사랑이 된다. 삶이란 하루를 삶아 가는 행위가 모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란 인간의 긴 여행이고 여행은 언젠가 끝이 난다. 소중한 널 잃는 게 두려워서 삶은 언제나 행복하지 만은 않다. 강해지지 않으면 더 걸을 수도 없다. 하지만 노래처럼 이젠 알 수 있을 때가 온다. 우리 모두는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라는 걸.


이상은의 노래가 끝이 나고 팝이 나온다. 러쉬러쉬다. 폴라 압둘의 노래다. 이 노래 뮤직비디오에 아주 젊은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다. 물론 폴라 압둘도 예쁘고 섹시하다. 어린 키아누 리브스와 폴라 압둘의 사랑 이야기를 뮤직비디오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노래가 너무 좋다. 아침에 이불속에서 듣기에 좋은 노래다. 오전의 디제이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오전 10시에서 11시 30분까지 집에 있다면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런 시간을 이렇게 즐기는 건 거슬러 올라가면 학창 시절까지 간다. 겨울방학이면 늦게까지 잠을 잤다. 라디오를 달고 살았기에 오전의 라디오 소리에 눈을 반쯤 뜨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멘트와 노래를 들으며 오전 10시를 즐긴다. 그때에도 오전의 그 시간에는 팝이 흘러나왔다. 비틀스가 나왔고, 라이쳐스 브라더스가 나왔고, 건스 앤 로지스의 패인션스가 나왔고, 머틀리 크루의 홈 스위트 홈이 나왔고, 마이클 볼튼이 나왔고 리처드 막스가 나왔다. 그때 들었던 팝들을 지금도 지치지 않고 듣고 있다니.


오전에 듣던 음악을 오후에 친구와 만나 팝에 대해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 각자 앨범을 들고 와서 하나씩 교환해서 들어본다. 녀석은 핑크 플로이드를 들고 왔다. 로저 워터스가 나가고 데이빗 길무어가 이끄는 핑크 플로이드 야. 하며 나에게 들어보라며 준다. 나는 제랄드 졸링을 준다. 녀석의 눈빛이 변하며 뭐지? 왜지? 같은 말을 계속 내뱉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메탈리카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메가데쓰를 만들어 록을 박살 내는 데이비드 머스테인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히스테리아 앨범을 세계적으로 팔아치운 록의 전설 데프 레퍼드의 드러머 릭 엘런이 교통사고로 팔이 한쪽 잘려 나가는 이야기도 하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시간이 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저녁이 되기 일쑤다.


내가 사진부라서 우리는 학교 사진부 암실에서 선배들 몰래 만나서 이야기를 하며 음악을 들었다. 암실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캡틴큐나 소주를 홀짝이며 듣고 싶은 팝을 열심히 들었다. 학교에서 쫓겨나면 단골 투다리에서 술을 마시며 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은 잘 마시지 않는 술을 도대체 몇 살 때부터 마신 것일까. 우리는 XX여고 문예부 아이들과 교류를 하고 있어서 그 애들과 일주일에 삼사일은 같이 보냈다. 사진을 찍고 인화 작업을 하고(흑백 사진은 물약 두 개로도 인화가 가능하기에) 사진에 어울리는 스토리를 만들고 그걸 각 학교의 교지에 들어가게 편집을 했다. 그런 작업을 어딘가에 모여서 해야 한다. 단골집을 만들어야 했고 자주 가는 카페와 투다리와 카나리아 통닭집에서 우리는 맥주나 소주를 마시며 작업에 매달렸다. 일종의 거창하지 않은 사교모임인 것이다. 우리의 모임을 부러워했던 몇몇이 끼었다가 대화에 가제보니, 제니스 이안이니, 귄터 그라스니, 하루키 따위의 시시한 이야기가 이어지니 가버린 녀석들도 있었다. 모이면 겨울방학의 오전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이불속에서 아코디언처럼 몸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라디오에서 들었던 팝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지치지 않았다. 재미있었다. 우리는 그런 데서 재미를 찾았다. 그 속에는 오전 10시에서 11시 30분 사이의 행복한 오전의 시간이 있었다.


아버지가 병실생활을 할 때 간이침대에서 선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면 9세의 기운 좋은 남자아이가 몽둥이로 여기저기 때린 것처럼 몸이 욱신거렸다. 그래도 일을 하러 나가는 사이에 라디오를 들었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팝인데 전혀 즐겁지 않았다. 마치 나의 비참함을 놀리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노래들이 나왔지만 그저 흘러가는 물에 종이배를 띄워놓은 것처럼 그렇게 시간을 따라 의식이 이동을 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가면 중환자 가족이 지낼 수 있는 방에서 잠이 들었다. 겨울이었다. 아버지가 12월 31일에 눈을 감았는데 그 주에 몹시 추운 한파가 몰아쳤다. 중환자 가족이 지내는 방은 마치 자연재해로 인해 동네 체육관이나 마을 회관이나 노인정 같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과 흡사했다. 그저 큰 방이 하나 달랑 있다. 보일러를 켜놔서 춥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따뜻하지는 않았다. 그저 심하게 추운 밖보다는 괜찮은 정도였다.


방의 저쪽에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작은 플래시를 켜서 공부를 하는 학생의 모습도 보였고 그 옆에서 엄마가 잠이 들어 있었다. 또 한쪽에서는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 뜨거운 물을 마시는 가족도 있고 귤을 까먹고 잠든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도 있고, 할머니가 손주가 잠든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덩그마한 방에는 인터폰 전화기가 있었는데 그 인터폰을 받고 가족이 나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중에 반 이상은 그대로 집으로 갔다. 이미 인터폰으로 전화를 받을 때 반응하는 환자가족의 목소리에 모든 것이 다 드러났다. 12월이라 중환자실이 아니었다면 모두가 병원 밖에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시기였다. 12월은 춥지만 따뜻한 계절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기에 추우면 추울수록 사람들과 더 가까이 붙을 수 있는 계절이 12월이다. 하지만 중환자 가족에게는 그 모든 게 사치다.


그 방은,

병원 복도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면 작은 현관 같은 곳이 있어서 신발을 벗고 단을 올라가서 이불을 깔고 잠이 들면 된다. 나는 이불이 없어서 신발을 벗지 않고 신은 채 현관에 다리를 내고 겨울 패딩의 자크를 목까지 올리고 잠이 들었다. 말 그대로 피곤에 절어 잠이 들었다. 새벽 5시가 되면 방안에 돌던 보일러가 꺼진다. 그러면 냉기가 온몸을 침투해서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온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이불이 없는데 이불을 덮고 있었다. 그 할머니가 손주가 덮었던 이불을 나에게 덮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런 중환자실의 생활도 2주나 했다. 그때에도 오전 10시에서 11시 30분 사이의 라디오를 들었다. 그때 팝을 들으며 이 시기가 지나 다시 듣는 오전의 라디오를 행복하게 생각하리라. 그런 다짐 같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오늘도 지디(정지영 디제이)를 지나 현디(김현철 디제이)의 골든 디스크를 들으며 아아 좋은 시간이다.라고 생각을 한다. 악착같이 10시에서 11시 30분 사이에 커피를 마신다. 샷을 추가한 텀블러의 커피를 홀짝이며 라디오를 듣는다. 삶은 여행이고 좋은 여행도 있고 기분 안 좋은 여행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그 안에서 오전 10시의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는 건 하루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라디오에서 반 헤일런이 캔 스탑 러빙 유를 부른다.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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