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이른 바다에서 책을 요만큼 보다가 온다. 종알종알 대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면 아이들이 놀고 있다. 아이들이 물가에서 노는 모습이 키리코의 그림처럼 비현실적이고 밝으면서 조금 우울하다. 아이들의 빛깔은 햇빛을 받아 색채가 진하여 마치 후 불면 사라질 것처럼 황홀하다. 사운드스케이프와 랜드스케이프가 어울리지 않는, 이런 순간이 왔다는 건 계절이 모락모락 나이를 먹고 옷을 바꿔 입는다는 것이다. 어린 것들은 키가 조금 크고 나는 죽음에 약간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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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은 집으로 와서 샤워기의 물을 틀어서 물줄기의 흐름을 느꼈다. 되도록 숨을 참아가며 샤워를 했다. 여름의 오후는 긴 실타래처럼 길었다. 마동의 얼굴을 욕실의 거울을 통해 보면서 소피와 분홍간호사의 말을 상기해 보았다. 어쨌든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 카를 융이 살아있다면 아마도 경쟁이 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계에 3차 대전이 일어나서 모든 것이 사라진다해도 무의식의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읽었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를 손바닥으로 받았다. 물은 마동의 손바닥위에 떨어져서 바닥으로 흘러 내려갔다. 샤워기에서 나온 수돗물에서는 숨을 쉴 때마다 화학 약품 냄새가 진동했다. 손바닥을 오므려 홈을 만들고 그 홈에 수돗물을 받았다. 그러자 물은 하나의 형상처럼 보였고 물이 지니고 있는 분자의 에테르가 와 닿아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물이 지니는 점성과 물의 흐름이 손바닥을 통해서 느껴졌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이 전해주는 에너지는 살아 있었다. 물은 바람과 비슷하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바람에 비해 물의 존재는 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늘 가까이 있어서 그 존재의 소중함을 배척하며 지내기 일수다. 마동은 손바닥을 펼쳐 떨어지는 물을 느꼈다. 물이 떨어져 손바닥에 닿는다. 그 느낌으로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또 다른 에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동은 긴 시간동안 샤워를 했다. 비누칠도 하지 않았고 몸을 문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뿐이다. 다시 한 번 욕조가 있었다면 하고 생각이 들었다. 수도세가 많이 나오면 집주인은 좋아하지 않았다. 독신자들이 사는 집은 다른 집들에 비해서 월세가 낮았고 그에 따라 수도세나 전기요금은 적게 나와야 한다는 게 집주인의 항변이었다. 전기세나 수도세는 쓴 만큼 사는 사람이 내는 것인데 어째서 집주인이 수도세까지 간섭하며 히스테릭해 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교접 후 좁은 공간속에서 혼자인 시간이 되면 습관적으로 사라 발렌샤 얀시엔의 가슴골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면 어김없이 페니스가 반응을 했다. 뜬금없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과 함께 발기부진 치료센터를 운영한다면 자본이 금방 모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위해서는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다시 한 번 만나야 한다. 그러고 싶지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라는 존재를 마동은 쉽게 인정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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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나’에서 5분 이상 이어지는 근거리 총질 액션만으로도 이 영화는 꽤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 안나의 무차별 총질 액션을 보고 있으면 아토믹 블론드의 샤를리즈 테론과 존윅의 키아누 리브스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그들을 모델로 삼은 것 같다

 

아토믹 블론드의 현실적인 샤를리즈 테론의 액션과 존윅의 비현실적인 키아누 리브스의 액션을 잘 섞어 놓은 액션을 안나는 펼치고 있다. 요컨대 아토믹 블론드의 계단 신에서 샤를리즈 테론의 액션은 20세기의 영화 역사에 올려도 좋을 만큼 장면이 좋다. 테이크를 끊지 않고 5분 이상 지속되는데 샤를리즈 테론은 남자들을 상대로 그 무시무시한 액션을 하고 만다

 

그러니까 훈련을 받은 최고 여성 요원이 훈련을 받은 (최고는 아니지만) 남자 요원들을 상대로 제압해가면서 점점 지치는 모습이 나타난다. 마냥 영화적 허용으로 그 장면을 장식하지 않았다. 샤를리즈 테론은 죽음을 앞에 두고 멋진 액션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요원들이 죽음에 직면했을 때 주위 물품을 이용하여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에 비해 존윅의 근거리 총질 액션은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리하여 비현실적이지만 존윅은 아주 스타일리시하고 좋은 액션영화로 남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키아누 리브스는 근거리 액션 전투 신에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었다

 

두 영화의 과격한 액션과 디테일한 디자인을 안나가 해내고 있다. 깡마르고 늘씬하고 훈련받은 여성 요원인 안나가 덩치 좋고 체격 좋은, 훈련 받은 남성 십수명을 제압하는 액션은 현실에서 벗어났지만 멋진 액션장면을 만들어 냈다. (영화 마녀의 5분 처럼 이 영화도 이 장면이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된다) 액션이 과한 장면이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마르고 마른 안나의 뒷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체력적으로 힘이 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역의 역할이 컸으리라 본다

 

 

안나는 오랜만에 여자가 독단적으로 주인공인 액션 영화다. 그것도 알려지지 않은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어찌 보면 요즘의 시기에 시의적절하지 않지만 실험에 가까운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인 설정은 니키타, 내용은 제니퍼 로렌스의 레드 스패로를 닮았다. 러시아 첩보요원인 안나가 미국과 러시아에 끼여 자유와 보호를 위해 총을 든다. 메멘토 식의 시간 되돌리기 어레인지가 영화를 더 긴장되게 끌고 간다. 안나 역의 사샤 루스는 안나가 데뷔작이다. 실제 모델인 덕분에 영화 속 장면이 모델이 무대를 장식하는 느낌을 준다. 뤽 베송의 야심작이라고는 하나 이름만큼 영화는 따라오지 못하지만 뭐 어때. 독단적인 여주 액션 영화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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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봉이는 이반이다. 효봉이는 이반인 것에 대해서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효봉이 주위 사람들 역시 효봉이가 이반인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것에 이해한다, 이해하지 못한다, 가 아니라 효봉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인다. 이것이 이 드라마가 시청자를 대하는 태도다

 

드라마라는 것이 극본, 촬영, 배우, 스폰서 등 수많은 이해관계에 얽혀 있기 때문에 시청자가 불편할 만한 요지는 소거하거나 아니면 심각하게 다루거나 아니면 축소 왜곡하는데 ‘멜로가 체질’은 아 몰라! 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테야, 하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래서 대중에게 관심을 떨어져 시청률은 높지 않으나 점점 강바닥의 밀도 있는 모래알처럼 마니아들을 불러 모은다

 

효봉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지내기까지 효봉이 자신이 가장 힘든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건 은정이의 지속성 복합 장애를 둘러싼 모습을 보며 지금의, 겉으로는 이렇게 행복한 생활에 도달할 수 있었던 효봉이 역시 편견과 싸워가면서 아파하며 힘든 시기를 견뎌냈을 것이라 시청자는 상상할 수 있다. 눈으로 보는 드라마지만 머리로 여러 상상을 하게 하는 것이 좋은 드라마의 태도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반이 별로 이상하지 않은 건 나에겐 이반인 친구가 있었다. 그 녀석은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와 잠을 자고 남자와 헤어져 울지만 워낙 어릴때부터 봐와서 그런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어릴때 부터 그랬으니까. 하지만 직장을 잡고 일을 하면서 겪는 하대와 냉대, 그리고 수많은 편견이 사람들로 하여금 괴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 그걸 견디고 이겨내는 것은 이 시대와 이 사회와 이 나라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의 사악한 면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아름다운 영화라 생각하면서 막상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님비가 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효봉이는 처음으로 힘들다고 안아 달라는 은정이를 안아주며 이 모든 일이 마치 자신이 이반인 것이 이렇게 되었나 싶어 상심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 안에서도 드라마 밖에서도 효봉이를 응원한다. 그건 이반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효봉이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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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끝나고 소피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동은 소피의 얼굴과 동양여자들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비교를 했다. 그리고 동양여자가 무술을 하며 적을 무찌르는 영화가 상영되는 미국극장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영화 속 무술을 하는 동양인들 대부분은 정의롭고 신비로운 몸동작으로 서양의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그렇지만 가슴에 아크원자로를 박고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손과 눈에서 광선을 쏘아대는 헐리웃 영화의 벽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다이렉트메시지: 소피, 낮엔 미친 듯이 졸음이 몰려오지만 밤에는 불면으로 보내는 거야. 불면이라는 것이 너무 생생하고 끔찍해. 한겨울에 흐르는 살얼음이 낀 개울가에 발을 담그는 것처럼 말이야. 어쩐지 근육도 낮 동안은 쪼그라들어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텐션이 가해지며 되살아나는 느낌이야. 아니,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야. 신체도 변이라고 있어. 어때? 이야기를 들이니 굉장하지?

 

다이렉트메세지: 그래, 동양의 친구, 당신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놀라움이야. 당신은 이제 당신의 몸을 추스르는데 전념하라고. 내일이 밝아 왔을 때 어떤 변이로 고통을 받을지 모르니 말이야. 중요한 건 다 잘 될 거라는 거야 친구.

 

마동은 소피에게 고맙다고 했다.

 

다이렉트메시지: 동양의 친구. 나 말이야 포르노 박람회가 다음 주에 한국에서 열리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나를 만나면 좋은 곳으로 안내해줘야 해. 당신은 어서 커피를 들도록 하라구. 난 일을 하러 가야 하니까. 동양의 멋진 친구가 잠들기 전에 다시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구. 갓블레슈.

 

마동은 소피가 나간 트위터의 화면을 보며 멍하게 앉아 있었다. 손에 들려있는 휴대전화의 액정은 소피가 빠져나가고 더 이상의 생명의 빛이 보이지 않는 무생물이 되었다. 마동은 메마른 입안으로 껄끄러운 맛의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가 입안으로 들어와 혀와 목이 색칠하지 않는 마분지처럼 더욱 말라 버리는 것 같았다. 소피가 트위터에서 사라지고 가져온 부재는 마동에게 몇 개의 상념을 가지고 왔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또 다른 자아는 마동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 차릴 수 없었다. 점점 복잡해졌다. 마동 자신이 아닌 몇 개의 상념 속에서도 이명이 들렸다.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글자글한 소리다. 어떤 존재들이 수면위로 입을 내밀고 언어라고 할 수 없는 잡음을 끝없이 내뱉었다. 가까이 가도 그 소리가 명확하게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상념 속에서 삶과 다른 삶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았다. 다른 삶이란 아무래도 삶을 끝냈을 때 나타나는 삶이다. 상념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바다가 살아있는 의지를 가지고 시간과 공간을 떠돌고 있었다. 그 속에서 마동은 작은 나뭇잎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카페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비를 피해 들어와서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죽여가고 있었다. 의미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앞으로 나가는 시간에 대항하는 길은 의미 없이 시간을 죽여가는 길이라는 것을 터득해버렸다. 그렇게 보였다. 비는 이제 거세게 쏟아지지 않았다. 카페밖에는 사람들이 우산 없이 걸어 다녔고 등을 굽히지도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마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를 나오려 하는데 40대 여직원이 남은 커피와 케이크를 캐리어에 담아 주었다. 마동은 고맙다고 하며 그것을 건네받아서 집으로 왔다. 비는 흩날렸고 날은 점점 어두워졌다. 조퇴를 하기 전 사무실에서 천장이 빙빙 돌아 갈 정도로 어지러운 가운데 디자이너들에게 꿈리모델링 단계별 레이어 작업들을 개체 량에 맞게 지시를 했다. 이 작업이 마무리가 되려면 최소한 한 달이 걸린다. 디자이너들은 각자 도맡은 일은 우수한 매커니즘처럼 잘 처리하는 편이었고 그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단순히 레이어에 대한 작업 실력을 보자면 리모델링 디자이너 각자는 마동의 실력을 훨씬 웃돌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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