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 캐럴을 비롯한 따뜻한 음악이 나온다. 겨울이라 그렇다. 곧 크리스마스라 더 그렇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캐럴이 소멸했지만 겨울이면 거리에 캐럴이 왕창 흘러나올 때가 있었다. 그게 정말 오래전 같이 느껴진다. 2016년도인가 배캠에서 배철수 디제이가 캐럴이 흘러나오지 않는 겨울의 거리가 쓸쓸하다는 뉘앙스로 멘트를 했었다. 10년 정도가 지나는 동안 이제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캐럴이 나오지 않는 게 당연시되어서 어쩐지 따뜻함도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더 분노하고, 더 삭막하고, 더 폭력을 휘두르는 것만 같다. 겨울의 따뜻함을 느끼려고 끈을 놓지 않고 꽉 잡고 있다. 이 끈을 놓치면 나 역시 분노와 폭력의 바닷속으로 휩쓸려 가버릴 것만 같다. 바람이 불었다. 겨울의 바람이었다. 겨울바람은 당연하지만 차고 시리다. 겉 옷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있다. 나의 살갗까지 와서 닿는다. 순간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든다. 그런 바람이 존재한다. 지금은 당연시 여기던 것들이 허물어지거나,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당연하던 크리스마스 시즌에 캐럴이 거리에 나오지 않아도 이제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당연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연하다는 것이 뭔지 이제 애매하다. 누군가 당연히 그래야죠,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당연하다는 건 언젠가는 당연하지 않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은 쌀쌀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황금빛 햇살이 강으로 떨어졌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 아름다운 모습은 금방 사라진다. 아, 하는 행복도 금방 사라진다. 당연할 것 같았던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그렇지만 살아있는 이상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일어나기 싫어도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외면하는 순간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캐럴을 듣자. 어떤 캐럴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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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그림을 보고 마우스로 그려봄



학창 시절에 살던 집은 마당이 있었다. 앞마당이 꽤 커서 마당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마당에 이불을 빨아서 널어놓고 이불의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건 어항 속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계속 보게 된다.

겨울 이불은 흠뻑 젖어서 무거웠고, 그 몸을 지탱하는 빨랫줄은 아슬아슬하지만 용케도 이불을 받치고 있었다. 우리는 신뢰하고 있었다. 빨랫줄은 얇지만 튼튼했다. 긴 시간 온갖 빨래의 무게를 잘 견뎌왔던 것이다. 나는 마당에 앉아 물이 뚝뚝 떨어져 만들어내는 무늬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마당에는 화단이 있었다. 무화과나무도 있고, 내가 심어 놓은 포도나무가 올곧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자라서 거짓말처럼 철이면 몇 송이 열리기도 했다. 생긴 건 포도라는 걸 알겠지만, 맛에서는 멀어진 포도였다. 어쩌면 포도라는 게 원래 그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르지. 화단의 여러 나무들 틈바구니 속에서 적은 양의 영양분을 빨아먹고 작고 보잘것없는 모습이지만 신기하게도 포도가 열렸다. 그런 포도나무도 겨울을 나고 있었다.

강아지도 한 마리 있었다. 내 옆에 앉아서 따뜻한 볕을 받고 잠들어 있다. 잠든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는 일은 무엇보다 행복하다. 이불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게 지겨울 때 [지하인간]을 읽었다. 처와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가서 행방불명이 된 아버지를 찾는 스탠리 브로더스트와 친아버지를 찾아 나선 여대생 수전. 이들과 함께 산장으로 간 아들 로니를 찾아달라는 진의 의뢰를 받은 사립탐정 루 아처의 이야기다.

이불빨래를 너는 따뜻한 겨울의 일요일이면 마당에 앉아서 고민 없이 한두 시간씩 소설을 읽었다. 그런 일요일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불안도 없고 생각도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럴 시간에 소설을 읽었으니까. 공포와 두려움도 크지 않았다. 지금은 마당으로 걸어오시던 아버지도, 마당에서 잠을 자던 강아지도, 마당도 전부 소멸해 버렸다. 그때의 마당은 오로지 차가운 공기의 냄새와 입자, 그걸 덮어줄 따뜻한 햇살의 기운이 가득할 때 눈앞에 나타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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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메이크 작품으로 설정이 약간 바뀌었다. 집으로 불러들인 보모에게 남편도 아이들도 야금야금 빼앗기는 스릴러 이야기다. 당신이 보모로 불러 놓고 당신이 의심하고 내쫓으려 하면 어떡해?라고 분위기가 바뀐다. 아내는 먹는 약도 있어서 모두가 아내가 지나치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걷지 못하는 막내가 아프고, 10살인 첫째는 보모와 몇 시간씩 붙어있고 엄마와 감정 대립을 하다가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며 세상에서 가장 싫다고까지 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보모가 10살짜리에게 동성 간의 사랑과 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면서 붉어진다.

이미 오래전 데스티네이션 시리즈 3편에 주인공으로 나왔고, 다이하드 4편에서 존 맥클레인의 성깔 있는 딸로 나오면서 떴다. 기억에 남는 역할은 클로버필드 10번지인가, 거기서는 나오는 인물이 몇 안 되니 연기력이 바탕이 되어야 했는데 꽤 잘 했다.

파고 시리즈에도 나왔다. 아무튼 이전 영화나 시리즈에 나올 때의 얼굴과는 달라진 얼굴로 이번 영화에 나왔다. 그러니까 연출인지 얼굴에 나이가 확 들었다. 재미있는 한국 드라마를 보다가 봐서 그런지 답답하다. 이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은 - 남편과 친구는 정말 스테레오 타입이다.

아내가 뭐라고 할 때마다 믿지 않다가 나중에야 내가 잘 못했네, 널 믿지 못해서, 같은 말이나 하고. 남편의 친구이자 아내의 친구인 남자도 상 등신 같은 모습으로 당한다. 이 영화는 원작을 보는 게 훨씬 낫다. 리메이크를 하면 원작보다 못 한건 둘째치고 왜 재미없게 만드냐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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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1-30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베카 드 모네이 만큼의 서늘함은 없더군요. 저도 원작에 한 표!

교관 2025-11-30 14:56   좋아요 0 | URL
윈스테드에 대해서 쓴 단락이 날아가버렸네요 ㅎㅎ 원작에 비해 좀 그렇네요
 



울산 역전시장의 예전모습과 어제 찍은 현재 모습이다. 나는 역전시장 근처에 있는 함월초 나왔는데, 아이들 대부분 학교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살았다.

아직 외할머니가 살아계셨을 적 외할머니가 교관아~하며 집에 오시면 할머니 손잡고 역전시장에 가서 겨울장갑도 사고, 감기 걸려 권소아과에서 주사 맞고 울고 나오면 할머니와 함께 순대를 먹었다. 요즘처럼 장에 찍어 먹지 않고 붉은 소금에 찍어 먹었다. 아주 맛났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서 그런지 역전시장에 가면 그런 기억이 떠오른다. 함월초 교가를 잊어버려 유튜브를 찾아서 들었는데, 반주 듣자마자 마술처럼 그냥 다 기억이 나면서 따라 부르게 된다. 울산을 지켜주는 함월산품에~~ 밝은 달 떠오르듯 희망도 차게~~ㅋㅋㅋ 학습과 훈련이란 도대체가.

시내로 오면 예전 주리원 백화점이 뉴코아아울렛으로 바뀌었다. 주리원 백화점이 생기고 울산에 백화점 시대가 열렸다고 대대적으로 알려졌지만, 주리원 백화점보다 일찍 문을 연 황태자백화점이 있었다. 하지만 훨씬 이전부터 울산 시내에는 백화점이 있었다. 성남동 시계탑 사거리가 보이고 지금 뉴코아 아울렛(구 주리원 백화점) 자리에 야마사이 백화점이 있었고, 맞은편에 마쓰시개 백화점이 있었다.

해방이 되면서 한국인의 손에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일본 이름이 사라졌다. 그러다가 80년대 황태자, 주리원 백화점이 본격적인 백화점 시대를 열었다. 주리원 백화점은 만남의 장소였다. 주말이면 이곳에서 많은 이들이 손을 호호 불며 친구와 연인을 기다렸다. 맞은편에 제일레코드샵이 있었는데 나는 그곳의 단골이었다.

꼬부랑 할아버지 같은 주인은 평론가보다 더 헤비메탈과 음악에 대해서 해박해서 앨범 하나 사러 가면 꼭 하나 더 사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필요도 없는 이영애 브로마이드 같은 걸 주었다. 레코드샵 앞에는 항상 음악이 나왔는데 겨울이면 캐럴의 향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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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시리즈에는 항상 답답한 캐릭터가 나오는데, 이 시리즈에는 답답한 캐릭터가 나오지 않는다. 일단 보기 시작하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몰입하게 된다.

학폭과 왕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 한국에서는 먹어준다. 또야? 하는 생각을 접어 버리게 만들더니 백아진의 소름 돋는 일들이 매 회마다 펼쳐진다.

사패와 소패의 차이점이 있지만, 어디선가 소패도 사패에 속한다고 했다. 날 때부터 감정이 없는 인간과 어릴 때 받은 충격 같은 사회적 트라우마로 점점 감정이 결여되는 인간은 다르지만 같다.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사패는 인간을 죽이는데 망설임이 없고 그 재미로 살아간다. 소패는 사패와는 좀 다르지만 결국은 비슷하다.

그러나 여기 주인공 백아진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패를 던지고 수거를 한다. 하지만 몬스터의 요한처럼 완벽하지 않다. 계획이 틀어지고 백아진이 모르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감정이 없기에 거기에 동요되거나 결여된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 4화에 들어 괴물 같은 아버지에게 개 맞듯이 폭행을 당해 백아진의 얼굴은 완전 처키가 되었다.

맞을 때, 폭행을 당할 때 백아진은 잠시 감정이 드러난다. 백아진은 그 어떤 누구에게도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개똘아이 백아진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백아진을 둘러싼 많은 인간들 역시 정상이 없다는 것이다. 전부 사패이거나 그에 준하는 인물들이다.

스티븐 킹의 미스터 메르세데스 시즌 3을 보는 것처럼 재미있다. 등장하는 많은 인간들이 전부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니 재미있을 수밖에.

조각도시가 남자들의 세계를 말하는 액션물이라면, 친애하는 엑스는 백아진이 주인공인 만큼 여자가 주인공이다. 게다가 소시오패스가 주인공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백아진의 눈빛, 손짓,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머릿속에서 나온 계획대로 하는 짓이라 소름 돋으면서 몹시 홍미롭다. 이런 캐릭터를 김유정이 잘도 소화해내고 있다.

4화에서 비 맞으면서 얼굴 처키 되는 장면에서는 탈진인가 정신을 잃었다는 거 같던데, 보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감정 없는 백아진의 계획은 어디까지 갈까 기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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