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는 경이롭다. 특히 3화의 원 테이크신은 그야말로 경이 그 자체다. 성인 여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드러나는 불안이 공존하는 제이미의 모습. 불안 속에는 어른에게 덤빌 수 없다는 소년 특권의 상실과 함께 여자라는 존재에게 선택받을 수 없는 존재의 각인이 양립한다.

공포를 가할 수 있다는 자신과 이것밖에 할 수 없는 고통을 동시에 보여주는 제이미의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롭다. 시리즈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경이롭다. 영화적 기법과 영화적 문법이다.

시리즈는 4화까지로 구성되었는데, 한 회 한 회 독립적인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 봄에 볼 때에는 원 테이크라 조마조마하면서 봤다. 그냥, 이거 도대체 어떻게 찍은 거야? 하면서. 이게 가능해? 와. 이러면서 봤다.

감독은 딱 한 번 VFX를 사용했다고 했다. 원테이크니까 한 시간 분량은 한 시간 동안 촬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3화 같은 경우 일주일 동안 11번을 촬영했다고 한다. 그래서 얼굴 근육의 변화를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11번의 촬영 중 제일 좋은 것으로 사용했는데, 그게 마지막 11번째 촬영을 한 것이라고 한다. 감독이 어디에서 VFX를 사용했냐면 2화에서 라이언이 창문을 뛰어 넣어 갈 때 연결을 위해 사용을 했다고 한다.

그 외에는 전부 원테이크다. 원테이크의 장단점이라면 과거를 보여 줄 수 없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1화 후에 몇 개월, 몇 개월 지난 후의 일을 회차로 보여준다. 그래서 중간의 비어 있는 시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보는 이들의 상상력에 맡긴다.

4화에서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니 온 세상이 다 알아버린 사건으로 집 안은 쑥대밭이 되었겠구나, 누나는 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겠구나, 어딜 가나 살인자를 둔 아버지, 엄마 같은 말이 따라다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말 경이로운 건 이야기다. 현실 속에서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특히 요즘에 일어나는 10대 청소년들의 우경화의 이야기다. 부모는 아이의 방에 있는 내 아이가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숏폼, 쇼츠에 노출된 채 거기에 빠져들어가는 아이에 대해서는 무방비다.

어떤 언어를 쓰는지, 어떤 댓글을 달고 문자를 보내고, 사용하는 이모지의 뜻이 뭔지 부모는 전혀 알지 못한다. 형사와 형사의 아들이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난다.

1화 첫 장면에서 바지에 오줌을 지릴 정도로 너무나 유약하고 소년이기만 했던 제이미의 모습은 3화에서 소년의 모습에서 벗어나서 성인 여자에게 공포를 줄 수 있다고 믿는 모습을 보여주며, 거기에 성인 여자에게 비아냥거리며 자신의 발 밑에 두려고 한다.

이런 모습이 쇼츠나 숏폼에 노출되어 한 없이 빠져들어 도파민이 터지는 매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지금 유튜브에 많이 떠도는 영상 중에는 초등학생이 경찰서에 잡혀 갔는데도 경찰에게 쌍욕을 하면서, 경찰에게 니가 어쩔 건데? 같은 모습의 영상이 있다. 공권력이 아무런 제재도 하지 못한다.

[소년의 시간]은 전 세계적으로 육천만 명이 넘게 시청을 했다. 시리즈 속 인셀이 현실의 주위 10대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어서 아직 보지 않았다면 빨리 클릭을 하기 바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요즘 이문세가 예전처럼 오전에 라디오 디제이를 한다. 날이 너무 좋았던 날에 이문세가 오늘 같은 날은 모든 걸 잠시 내려놓고 김밥 싸들고 소풍을 가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일 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이고, 그 속에 서 있다. 역사 속에 서 있으면 사실 알아채기가 힘들다. 어릴 때 소풍을 가면 김밥과 사이다였다. 소풍은 당일이 다가오기 일주일 전부터 두근거리다가, 소풍 전 날에 도파민이 터진다.

도형이는 우리 반은 아니었지만 같은 동네였다. 동네에서 같이 자란 도형이는 여자애로 소풍날에도 김밥을 못 싸 올 때가 있었다. 도형이는 아빠만 있었는데, 아빠는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갔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셨기 때문이었다.

도형이는 털팔이 같은 성격이라 그런 거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 김밥을 뺏어먹으면 되니까. 김밥을 먹으려고 도시락을 열었을 때 김밥은 여기저기 부딪쳐 모양이 찌그러졌다. 하지만 도형이는 두 개씩 집어 입에 넣었다. 나도 질세라 한가득 김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그러다 목이 막히면 사이다를 마셨다. 사이다 쟁탈전 역시 치열했다. 김밥과 사이다는 잘 어울린다. 김밥을 입에 가득 넣고 사이다를 마시면 입 안이 소풍이었다. 둘이 서로 놀려가며 김밥을 먹고 사이다를 마셨다. 도형이는 묘한 아이로, 나와 동생이 집에서 아직 자고 있을 아침에도 가끔 우리 집에서 엄마와 함께 초파일에 김밥을 말았다.

부스스 일어났을 때 도형이가 접시에 김밥을 잔뜩 올려서 들고 왔다. 발로 나를 차면서 티브이를 보자고 했다.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도형이와 함께 김밥을 먹으며 티브이를 봤다. 김밥을 먹고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꺼내 마셨다. 당시에는 그게 행복인지 몰랐다. 도형이는 가족처럼 스며들었다.

우리 집에서 뭘 하든 이상하지 않았고 같이 어울려 저녁도 먹고 그렇게 지냈다. 도형이는 늘 씩씩했고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든든했다. 그런 도형이가 우는 모습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때 도형이에게 괜찮으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그날이 지나고 도형이는 여전히 씩씩했지만, 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도형이는 나를 위해 옆 동네 남자애들에게 대들기도 했었다. 그때 도형이가 아니었으며 나는 그 애들에게 해코지를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도형이가 울고 있을 때 위로 한 번 못해줬다. 말해야지 말해야지 했지만 도형이는 어느 날 이사를 가버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매년 겨울에 나오는 넷플 오리지널 애니메숑으로 재미있다. 보면 여러 영화들이 스쳐 지나간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슬럼버랜드]다.

거기서도 꿈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며 침대를 타고 다니는데, 이 영화에서 남매도 침대를 타고 비슷한 여정을 한다.

또 크리스마스 영화들, 폴라익스프레스도 생각나고 또, 암튼 여러 영화들이 스쳐간다. 6살 터울의 남매 이야기다.

누나와 동생이 꿈속 세상으로 가서 샌드맨을 찾아 완벽한 가족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이야기다. 누나 스티비와 남동생 엘리엇은 여느 집안의 남매처럼 우당탕탕이다.

누나와 함께 하고 싶지만 누나는 싫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샌드맨이 모든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적힌 그림책을 발견하고 꿈의 세계로 들어간다.

하루는 동생 엘리엇이 누나의 꿈에 나타나는데 같은 꿈을 꾸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서 남매는 꿈속으로 들어가 여행을 하는데 만만찮다.

이런저런 모험을 하고 나중에 동생과 손을 잡고 합을 넣으면 무시무시한 몬스터도 물리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뭉클함이 올라온다.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이 좋다.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는 팝이 나온다. 사실 완벽한 가족이란 있을 수 없다. 완벽한 가족이란 무엇일까.

화목하게 지내는 게 완벽한 가족인데, 화목하다는 건 가족의 누군가는 양보를 한다는 말이다. 자식을 위해 부모가 양보를 하던지, 부모를 위해 자식이 양보를 하던지.

누나, 오빠를 위해 동생이 양보를 하던지, 동생을 위해 형이나 누나가 양보를 하던지. 그러나 마냥 양보만 할 수는 없다.

그러다 보면 어딘가 삐끗거리게 된다. 가족이니 삐끗함이 친구보다 더 아프고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남매가 완벽한 가족을 만들어 달라고 모험을 떠난 이유가 엄마아빠의 불길한 긴장감으로 헤어질 거라는 불안이 스티비를 덮쳤기 때문이다.

스티비는 12살이지만 방관자 어린이가 아닌 해결자로 나서게 된다. 그리고 조력자 동생이 있다. 무너져가는 현실을 제대로 돌리려면 꿈속 샌드맨을 이용하는 것이다.

무의식 세계는 현실의 불안이 만든 세계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등장하는 캐릭터들부터 이야기까지 재미있는 영화 [인 유어 드림]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라디오에 캐럴을 비롯한 따뜻한 음악이 나온다. 겨울이라 그렇다. 곧 크리스마스라 더 그렇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캐럴이 소멸했지만 겨울이면 거리에 캐럴이 왕창 흘러나올 때가 있었다. 그게 정말 오래전 같이 느껴진다. 2016년도인가 배캠에서 배철수 디제이가 캐럴이 흘러나오지 않는 겨울의 거리가 쓸쓸하다는 뉘앙스로 멘트를 했었다. 10년 정도가 지나는 동안 이제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캐럴이 나오지 않는 게 당연시되어서 어쩐지 따뜻함도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더 분노하고, 더 삭막하고, 더 폭력을 휘두르는 것만 같다. 겨울의 따뜻함을 느끼려고 끈을 놓지 않고 꽉 잡고 있다. 이 끈을 놓치면 나 역시 분노와 폭력의 바닷속으로 휩쓸려 가버릴 것만 같다. 바람이 불었다. 겨울의 바람이었다. 겨울바람은 당연하지만 차고 시리다. 겉 옷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있다. 나의 살갗까지 와서 닿는다. 순간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든다. 그런 바람이 존재한다. 지금은 당연시 여기던 것들이 허물어지거나,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당연하던 크리스마스 시즌에 캐럴이 거리에 나오지 않아도 이제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당연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연하다는 것이 뭔지 이제 애매하다. 누군가 당연히 그래야죠,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당연하다는 건 언젠가는 당연하지 않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오늘은 쌀쌀하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황금빛 햇살이 강으로 떨어졌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 아름다운 모습은 금방 사라진다. 아, 하는 행복도 금방 사라진다. 당연할 것 같았던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그렇지만 살아있는 이상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일어나기 싫어도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외면하는 순간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캐럴을 듣자. 어떤 캐럴이 좋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인터넷그림을 보고 마우스로 그려봄



학창 시절에 살던 집은 마당이 있었다. 앞마당이 꽤 커서 마당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마당에 이불을 빨아서 널어놓고 이불의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건 어항 속 물고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계속 보게 된다.

겨울 이불은 흠뻑 젖어서 무거웠고, 그 몸을 지탱하는 빨랫줄은 아슬아슬하지만 용케도 이불을 받치고 있었다. 우리는 신뢰하고 있었다. 빨랫줄은 얇지만 튼튼했다. 긴 시간 온갖 빨래의 무게를 잘 견뎌왔던 것이다. 나는 마당에 앉아 물이 뚝뚝 떨어져 만들어내는 무늬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마당에는 화단이 있었다. 무화과나무도 있고, 내가 심어 놓은 포도나무가 올곧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자라서 거짓말처럼 철이면 몇 송이 열리기도 했다. 생긴 건 포도라는 걸 알겠지만, 맛에서는 멀어진 포도였다. 어쩌면 포도라는 게 원래 그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르지. 화단의 여러 나무들 틈바구니 속에서 적은 양의 영양분을 빨아먹고 작고 보잘것없는 모습이지만 신기하게도 포도가 열렸다. 그런 포도나무도 겨울을 나고 있었다.

강아지도 한 마리 있었다. 내 옆에 앉아서 따뜻한 볕을 받고 잠들어 있다. 잠든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는 일은 무엇보다 행복하다. 이불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게 지겨울 때 [지하인간]을 읽었다. 처와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가서 행방불명이 된 아버지를 찾는 스탠리 브로더스트와 친아버지를 찾아 나선 여대생 수전. 이들과 함께 산장으로 간 아들 로니를 찾아달라는 진의 의뢰를 받은 사립탐정 루 아처의 이야기다.

이불빨래를 너는 따뜻한 겨울의 일요일이면 마당에 앉아서 고민 없이 한두 시간씩 소설을 읽었다. 그런 일요일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불안도 없고 생각도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럴 시간에 소설을 읽었으니까. 공포와 두려움도 크지 않았다. 지금은 마당으로 걸어오시던 아버지도, 마당에서 잠을 자던 강아지도, 마당도 전부 소멸해 버렸다. 그때의 마당은 오로지 차가운 공기의 냄새와 입자, 그걸 덮어줄 따뜻한 햇살의 기운이 가득할 때 눈앞에 나타나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