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때 우리는 끝없는 빛의 인도에 끌려

선의 깊이에 빨려 들어가 있었다

배부른 나른함과

마신 술의 숙취를

양손에 꼭 쥐고

그때 우리는 식은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졸리는 눈을 참아가며

시시해져 가고 있었다

소음도 잊은 채

당신은 시집을 읽고

내 눈에 들어온 당신은

그대로 詩가 되었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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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예! 파미예 쿠키도 있네요! 이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쿠키니까 있는대로 다 가져가야겠어요!

 

그녀에게는 그의 말이 전달되지 않았다. 그녀는 빵의 세계에 이미 들어가 버렸다.

 

파미예가 마치 눌러놓은 그것처럼 생겼군.

 

그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녀의 손놀림이 더욱 바빠졌다. 케이크는 종류별로 작은 박스에 담아 큰 박스로 옮겨놓고 쿠키도 종류별로 조금씩 담아 다른 큰 박스 한편에 자리 잡아 놓았다. 그 후 크로와상 쪽으로 눈을 돌리더니 여덟 가지 다른 종류의 크로와상을 담기 시작했다. 모든 빵이 세 박스 안에 차곡차곡 담겨지기가 무섭게 그녀는 그에게 달려갔다.

 

보시다시피 박스에 잘 담았고 롤러에도 잘 얹어놨어요. 이제 당신 차례에요. 제가 이들을 지키고 서 있을 테니 당신이 차에 다 싣고 오면 우리는 이곳을 떠나기만 하면 되죠.

 

그래, 사라가 그 높은 힐을 신고 이 무거운 걸 옮기는 것보단 멋지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게 더 좋긴 하겠어. 기다려봐.

이봐, 사라? 이건 뭐지?

 

그녀는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진열된 빵을 담고 있었다.

 

그건 ‘데블스 푸드 케이크’라고 불리오. 악마의 음식이라고 하며 이름답게 매혹적인 검은색을 띠고 있소. 먹어 보시오. 맛도 악마의 유혹 같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그가 고개를 돌렸다. 작은 틈으로 보이던 주방에서 풍채가 좋은 이탈리아 인으로 보애는 60대 남자가 나와서 말을 했다. 얼굴 생김새가 커넬 샌더스의 얼굴처럼 생겼다. 콧수염이 기분 좋게 양쪽이 위로 말려 올라가 있고 회색에 가까운 하얀색을 띄었다.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잊고 빵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빵집을 터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빵집에 들어오기 전의 전투력을 보이던 모습은 사라져버렸다. 작은 그림자도 그녀 옆에서 빵을 찔러보며 그녀에게 동참했다. 60대의 이탈리아 인은 풍채만큼 목소리도 굵직했다. 통통한 손으로 데블스 푸드 케이크를 집어서 건네주었다.

 

이건 말이오, 초콜릿의 배합이 가장 중요하오. 다크 초콜릿을 넣었다 싶으면 단맛이 강하게 나고 카카오매스로 만들면 단맛이 거의 나지 않는다오. 보기엔 그래도 꽤 까다로운 음식이오. 미국식 버터크림으로 맛있게 만들 수 있어야 하지. 때로 미국식 버터크림으로 프로스팅을 해주면 당도가 놓지 않고 표면이 녹아내리지 않지. 자 한번 드셔 보시오.

 

커넬 센더스와 닮은 수염이 달린 이탈리아인 주방장이 그에게 데블스 푸드 케이크를 권했다. 그는 케이크를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상상 할 수 없는 맛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달지 않았고 촉촉했고 기분이 좋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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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개, 이건 옳은 일이야. 옳은 일을 하는데 할 수 없이 '악'을 사용하는 거야. 그러니 나를 막지 말아줘.

 

마동은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을 자의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래야 저 놈을 죽일 수 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는개, 나를 놓아줘 제발.

일어나 일어나라구! 여기서 나가야 저놈을, 저 폭력으로 똘똘 뭉친 저놈을 죽여버릴 수 있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일수록 등의 살가죽이 벗겨져나가는 고통이 수반되어 왔다.

 

끄아아아악.

 

눈물이 핑 돌았다. 눈동자가 충혈 되었을지도 모른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소리와 잔재를 보며 마동은 붙어있던 땅바닥에서 육체를 떨어뜨렸다. 동시에 피와 근육이 몸에서 분리되어 나가고 핏줄이 덜렁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혈관이 터진 모습이 눈으로 들어왔다.

마동은 마침내 자신을 붙들고 있던 큰 고목에게서 벗어나 두꺼운 막을 뚫고 새로운 에고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뛰어 가면서 뒤를 돌아 보았다. 는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고목은 고목일 뿐이다. 달려가면서 팔을 흔들 때마다 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바닥에서 분리된 마동의 몸은 도저히 사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마동에게는 상관없다.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새로운 에고는 한 아이의 얼굴을 발로 차려고 했다. 마동은 안 돼! 하며 새로운 에고를 덮쳤다. 냄새가 났다. 누린내가.

이미 아이의 얼굴은 맞아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짓이겨진 빵부스러기처럼 망가져있었다. 마동은 새로운 에고를 잡고 바닥에 넘어트렸다. 새로운 에고는 마동에게 저항 따위를 하지 않았다. 넘어진 채로, 도넛을 입에 물고 있는 채로 그대로 있었다. 마동은 이미 이성의 경계에서 벗어났다. 이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떠한 부분도 마동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이렇게 폭력적인 새로운 에고가 자신에게서 나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역시 상관없었다.

 

너 따위는 죽어야 해. 너 같은 놈이 돼 내 속에 숨어 있었던 거야!

 

새로운 에고가 저항을 하던, 하지 않던 마동은 새로운 에고를 죽여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동은 에고를 똑바로 눕히고 뾰족해진 순수성으로 배를 찔렀다.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배가 갈라졌다. 자주색을 띤 피가 솟구쳤다. 그리고 목을 졸랐다. 마동의 몸에서 분수처럼 흘러내리는 피가 팔을 타고 손목을 지나 그 녀석의 목과 얼굴에 떨어졌다. 녀석은 흘러내린 마동의 피를 몸으로 흡수했다.

마동은 기분이 아주 나빴다. 마동은 흐르는 피를 보며 더욱 폭주하기 시작했다. 손바닥과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새로운 에고의 목을 누르며 마동은 선과 악의 근본적인 속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말하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글귀로 옮겨다 놓은 허울 좋은 말일 뿐이다. 지금 눈앞에 누워있는 새로운 에고는 악의 근원이다. 마동은 손아귀의 힘을 자신이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있는 힘을 다해 새로운 에고의 목을 졸랐다. 손가락이 끊어질 정도로 마동은 힘을 주었다.

새로운 에고의 얼굴이 그전에 눈에 들어왔다.

녀석은, 새로운 에고의 얼굴은, 마동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녀석은 목이 졸려가면서도 자조적인 웃음을 짓고 있었다. 목이 졸려 숨이 막히면서도 마동을 비웃고 있었다. 눈동자가 변해서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었지만 비웃고 있었다. 입안에 도넛을 가득 담고서 마동을 비웃고 있었다.

 

죽여버려야 한다. 이 비웃는 모습을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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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멀리 보이는 높은 빌딩 참 멋있지? 특히 밤에 보면 정말 아름다워. 마치 별들이 하나하나 모여 만들어낸 특별한 세계 같아. 정말 황홀하고 행복으로만 가득한 세계

 

하지만 그 속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 막상 들어가면 그 세계가 아름답다고는 느끼지 못 할 거야. 이렇게 멀리서 봐야만 저 빌딩이 아름다운 거야

 

별도 마찬가지지. 별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멀리 떨어져서 보기 때문이야. 별이 아름다워 별 속에 들어가면 여기가 별이라는 것도 못 느끼겠지

 

지금 밟고 있는 이 세계도 그래. 전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지 몰라도 이 세계에 오고 싶지만 오지 못하고 멀리서 떨어져 보는 누군가에게는 아주 아름답게 보일 거야. 별처럼 말이지

 

꽃으로 비유하자면 장미꽃은 참 아름다운 꽃이야, 하지만 꽃을 계속 피우는 건 굉장히 어렵지. 벌레에 먹히고, 병에 걸리고 자신의 가시로 자신과 주위도 상처 입히지. 생기 없는 커다란 장미는 씩씩하고 건강하게 핀 민들레의 아름다움에 당할 수가 없어

 

너를 민들레라고 부른 이유도 거기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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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트럭이 자리 잡은 곳까지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서로를 바라본 후 오케이 사인을 던지듯 눈을 깜빡였고 그와 그녀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영화처럼. 그녀는 어둠 속, 유일하게 빛을 밝히고 있는 빵가게의 문을 열며 총을 겨누었다. 아주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작은 그림자와 그도 따라 들어가며 빵가게 종업원들에게 총을 들었다. 빵가게의 홀에 있는 종업원은 두 명이었다. 서른 살쯤의 백인여자 한 명과 이십대 중반의 멕시칸남자 한 명이었다. 그는 그 두 명을 구석으로 몰았고 작은 그림자도 덩달아 그의 뒤에 바짝 붙어있었다. 그동안 그녀는 빵 가게 안을 살폈다. 마침 카운터 뒤로 보이는 문이 열리며 열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또 다른 멕시칸 남자아이가 나왔다. 빵을 굽다가 나오는 듯 밀가루반죽이 잔뜩 묻은 손을 털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백인 여자 앞으로 바싹 붙었다. 그렇게 그가 겨눈 총 아래 세 명의 사람들을 간단히 모아 놓을 수 있었고 그녀는 빵을 담으려 했다.

 

빵을 담아 옮길만한 아주 큰 박스가 있나요? 그리고 박스를 차까지 쉽게 옮길 수 있는 롤러 같은 것도 필요하구요.

 

내 트럭에 큰 박스들이 많고 롤러도 있으니 가져다 쓰고 우리는 빨리 풀어주면 안 될까요?라며 스페인어의 악센트가 가득한 영어를 구사하는 이십대 중반 멕시칸 남자는 그녀의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했다.

 

우리들이 원하는 양의 빵을 모두 싣고 그때까지 당신들이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무사히 풀어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말은 장담 못하겠어.

 

발음은 엉망이지만 꽤 유창한 영어로 거침없이 말하는 그를 보며 그녀는 멍하게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영어를 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그가 어째서 저렇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지?라고 생각하는 찰나, 이 대사만 열심히 외웠어.라고 그가 말했다. 조금 입이 벌어져 그녀는 그를 바라보다가 작은 그림자의 눈총을 받더니 재빨리 트럭으로 달려가 박스 세 개와 롤러를 갖고 들어왔다.

 

어떡하죠? 무슨 빵을 먼저 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라가 먹고 싶은 것 먼저 담고 자리가 남는다면 며칠 동안 빵만 먹으면서도 살 수 있는 종류의 빵까지 최대한 많이 담아가자구.

 

알겠어요. 우선 조각 케이크 종류를 담겠어요.

 

스트로 베리 케이크, 망고 무스, 치즈 무스,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 레몬 케이크, 블루베리 케이크…….

 

이봐, 사라, 난 티라미수와 나폴레온 케이크가 먹고 싶어. 나폴레온 케이크는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과자 맛이 나서 내 입맛에 딱 맞는다구. 그리고 지금 너무 천진난만한 거 아니야? 우리는 빵 가게를 습격하고 있는 중인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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