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도 이때는 청년처럼 보인다. 카포티의 젊은 날을 표현했으니 더 그렇게 보인다. 나는 카포티의 소설을 거의 다 읽었는데, 거의 다 기억이 안 난다.
17세 때 쓴 소설집은 읽으면서도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 읽은 기억은 있다. 그러니까 기억이란 게 한 번 심하게 아팠을 때, 그때의 그 아픔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픈 고통을 기억했다가는 큰일 난다. 그 당시에 아파서 고생한 기억이 날 뿐이다.
마찬가지로 카포티의 모든 소설을 구입해서 구석에 앉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은 있는데 내용은 기억이 없다. 사실 카포티의 소설은 그다지 얼마 없다. 그러나 ‘인 콜드 블러드’는 내용이 기억이 난다.
이 소설은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이며 소설보다는 사설에 가깝다. 현장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해 놨다. 읽으면서도 신문을 읽는 기분이었지 전혀 소설을 읽는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59년 캔자스 주 한 농가의 일가족이 아주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머리가 터지고, 애고 어른이고. 그런 모습이 활자로 너무나 세세하게 그려졌다. 범인은 바로 잡힌다.
두 명인데 그중 한 명이 카포티와 비슷한 몹시 내성적인 성격이라 카포티는 그 범인과 함께 감방에서 지내면서 이 이야기를 완성하려 한다. 그 소설이 ‘인 콜드 블러드’이며 이 영화는 이 소설을 적게 된 계기와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영화가 된 ‘냉혈한’도 있다. 그래서 카포티를 알고 싶다면 3부작에 가까운 이 소설과 이 영화와 이 소설이 영화가 된 영화를 보면 된다.
카포티는 아주 이상한 말투 때문에 어린 시절 꽤 힘들게 보냈다. 카포티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영화로 만들기로 했을 때 카포티는 홀리 역으로 메릴린 먼로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카포티는 먼로가 섹시함만을 가진 배우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드리 헵번이 되었다. 당시에 꽤 열받았었다고. 영화에도 나오지만 카포티는 기억천재다. 일단 한 번 들으면 94%를 기억한다.
그래서 카포티는 소설가보다는 인터뷰어로서 더 유명하다. 다른 인터뷰어와 다르게 받아 적지도 않고, 녹음기도 틀지 않는다. 오직 인터뷰이의 눈을 보며 하는 말을 그냥 담담하게 듣고 그날 밤에 들은 기억으로 인터뷰 기사를 써냈다.
영화에 카포티를 전적으로 도와주는 작가 하퍼 리로 캐서린 키너가 나온다. 캐서린 키너의 매력은,라고 쓰려니 너무 기네. ‘존 말코비치 되기’에도 매력이 철철 넘치고, 뭐 그렇다.
인 콜드 블러드 소설책은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책이 가장 더러운 것 같다. 카포티와 카포티를 연기하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매력에 빠지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