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괴담은 등줄기를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무서운 건 귀신이 어디선가 튀어나오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매일 다니는 곳, 매일 사용하는 공간이 갑자기 무서운 곳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장편 공포영화는 별로 무섭지 않은데 단편 공포물은 꽤 무섭다. 짧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공포가 설명되는 순간이 오는데, 짧은 이야기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끝나버린다. 옴니버스라 앞의 이야기가 재미없어도 다음 편을 기대하면서 보게 되는 것도 좋고.

사실 공포라는 게 멀리 있는 건 아니다.

어릴 때는 정전이 꽤 자주 됐다. 동생과 TV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화면이 꺼지면 둘이서 꺄악 소리를 질렀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데 그때는 정말 무서웠다. 집 안에 초를 하나씩 두고 있다가 정전이 되면 불을 켰다.

그런데 촛불이 밝지도 않았다. 촛불 바로 주변만 겨우 보이고 조금만 멀어지면 다시 깜깜했다.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웠다. 불빛이 닿지 않는 반대편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인데, 어린아이에게 어둠은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다.

어린 시절이 지나면 공포의 대상도 바뀐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울 때가 있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이 더 무서울 수도 있다.

‘도시괴담’에서 재미있는 것도 바로 그런 부분이다. 괴물이나 귀신이 나오는 장면 자체는 사실 그렇게 무섭지 않다.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괴물이라는 게 너무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있는 사람이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은 묘하게 무섭다. 사람이 정말 무서워하면 나까지 같이 긴장하게 된다.

이번 편 ‘문지방’도 그렇다.

아내가 친정에 가면서 남편에게 문지방 위에 붙여놓은 부적을 절대 떼지 말라고 한다. 옆 동에서는 남자 두 명이 실종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른 편 ‘엘리베이터’에서 사라진 두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에피소드들이 어딘가에서 연결되는 것도 이 시리즈를 보는 재미다.

그런데 남편이 말을 들을 리가 없다. 부적을 떼고 잠든다. 그리고 결국 일이 벌어진다.

나타나는 괴물은 솔직히 별로 안 무섭다. 주먹으로 한 대 맞으면 쓰러질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괴물을 보고 겁에 질려 있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긴장된다.

나는 ‘도시괴담’이 그런 데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괴물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 평범했던 집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공간이 어느 순간 낯설어지는 것.

어릴 때 정전된 집에서 촛불 하나를 켜놓고 반대편 어둠을 바라보던 것처럼.

공포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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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배우들이 워낙 쟁쟁해서 봤는데, 막상 보고 나니 재미와는 거리가 꽤 있다.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데려다 놓고 이렇게 만들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주인공 톰 역의 애덤 스콧은 여기서도 범죄소설가로 나온다. 얼마 전 본 영화 ‘호컴’에서는 공포소설가였다. 두 작품만 놓고 보면 ‘호컴’ 쪽이 훨씬 재미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영화에서 같은 배우가 비슷한 직업의 작가로 등장하는 걸 보면 묘한 생각이 든다. 할리우드에 배우가 그렇게 없나 싶기도 하고.

애덤 스콧은 역시 ‘단절’ 시리즈가 가장 좋았다.

톰은 아들 제이크와 조용한 마을로 이사 온다. 아내를 잃은 뒤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톰에게는 새로운 환경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사 온 집에서 제이크가 이상한 속삭임을 듣기 시작한다.

이후부터 이야기는 조금씩 어두운 쪽으로 흘러간다.

제이크는 집 안에서 계속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다. 톰은 그런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이크가 사라진다.

사건을 쫓던 아만다(미셸 모나한)는 제이크의 실종이 십수 년 전 여러 아이를 납치해 살해한 연쇄살인범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발견한다. 범인은 ‘위스퍼맨’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이상한 건 위스퍼맨이 이미 감옥에 있다는 것이다.

톰은 결국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아버지 피트(로버트 드 니로)를 찾아간다. 피트는 은퇴한 경찰이고, 과거 위스퍼맨을 검거한 인물이다.

제이크를 찾기 위해 피트와 톰, 그리고 아만다는 과거의 사건 기록과 단서를 하나씩 뒤진다.

이렇게 줄거리만 놓고 보면 꽤 재미있다.

게다가 배우들도 좋다. 로버트 드 니로와 마이클 키튼, 애덤 스콧, 미셸 모나한까지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화면도 좋다. 영화 전체에 어둡고 축축하고 서늘한 분위기가 깔려 있어서 범죄 스릴러가 가진 눅눅한 느낌은 제대로 살아 있다.

그런데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개연성이 자꾸 걸린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과 설정도 계속 떠오른다. ‘데블스 아워’를 비롯해 여러 스릴러에서 봤던 요소들을 조금씩 가져와 한곳에 붙여놓은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간다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장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가족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알겠다. 아내를 잃은 톰과 아버지 피트 사이에 쌓여 있는 오래된 감정도 중요한 축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감정들이 범죄 수사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오히려 이야기를 옆으로 새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차라리 가족의 상처를 조금 덜어내고, 제이크의 실종과 위스퍼맨을 둘러싼 사건을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단서 하나가 다음 단서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관객이 범인을 의심하고 다시 뒤집히는 식으로 범죄 수사의 논리와 반전을 강하게 밀어붙였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다.

배우도 좋고 분위기도 좋다.

그런데 좋은 배우와 좋은 분위기만으로는 결국 영화가 재미있어지지 않는다.

보고 나서 가장 아쉬웠던 건 바로 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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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정적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편씩 보게 된다. 잔인하고, 또 잔인하다. 그렇게 보다 보면 어느새 10화까지 와 있다. 특히 마지막 10화는 정말 충격적이다.

이야기는 1800년대,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북극으로 들어간 탐험대의 이야기다. 시리즈 내내 눈이 내리고 사방이 꽁꽁 얼어붙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럽다. 그런데 추위만 견디면 되는 게 아니다. 식량은 떨어지고,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린다. 몸을 썩게 만드는 질병까지 번진다.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생명체까지 탐험대를 공격한다.

매일 보는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눈과 얼음뿐이다. 어디를 가도 빠져나갈 곳이 없다. 그런 곳에서 사람은 조금씩 미쳐간다. 옆에서 함께 있던 사람이 극한의 추위와 병으로 하나둘씩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정상적인 정신으로는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두 척의 탐사선은 거대한 얼음에 갇히고 구조는 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원들은 굶주리고 병들고 죽어간다. 그 과정을 굉장히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다른 고어 공포영화를 볼 때보다 오히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한다. 몸을 반으로 갈라놓고 다리를 물어뜯어 버린다. 화면 자체가 잔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건 그곳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런 곳에 며칠만 있어도 팔다리가 동상에 걸리고, 결국 살이 썩어 들어가 잘라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극의 풍경은 아름답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너무 차갑다. 화면을 가득 채운 눈과 얼음이 아름답게 보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질식시키는 것 같다.

'옐로우스톤' 첫 시즌이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무력한 존재인지를 보여줬다면, '더 테러' 시즌 1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곳까지 인간을 밀어붙인다. 추위와 굶주림, 질병, 죽음이 계속 사람을 몰아세운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절망과 두려움이 아주 구체적으로 보인다.

무서운 건 괴물만이 아니다. 사람이 굶주리고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도 무섭다. 삶과 죽음, 질병과 신체훼손, 인간의 본성과 윤리 같은 것들이 계속 뒤섞인다. 여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까지 끼어든다.

특히 마지막 10화에서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결국 죽은 선원의 살을 떼어 먹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상하게도 괴물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보다 그 장면이 더 오래 간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서 그런 것 같다.

실제 1845년 존 프랭클린 탐험대가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떠났다가 조난당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이 시리즈를 더 무섭게 만든다. 완전히 허구라고 생각하고 볼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저 얼음 속에 갇혀 있었고, 구조를 기다리며 죽어갔다.

지금 '더 테러' 시즌 2를 보고 있는데 시즌 1과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시즌 1보다 재미가 떨어져서 그런지 조금 집중이 안 된다. 아무래도 내가 좋아했던 건 시즌 1의 그 폐쇄된 공간과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 그리고 거기서 서서히 무너져가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정적인 공포를 좋아한다면 '더 테러'는 시즌 1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오히려 공포 시리즈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빠르게 놀라게 하는 공포가 아니라, 보고 있는 동안 조금씩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공포다. 괴물이 나타나지 않아도 이미 무섭고, 괴물이 나타나면 더 무섭다. 결국 가장 무서운 건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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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통쾌해서가 아니다. 쾌변을 하고 난 뒤처럼 개운해서도 아니다. 지브리의 '귀를 기울이면'을 보고 난 뒤처럼, 그냥 마음이 조금 따뜻해진다. 이야기가 롤러코스터처럼 크게 굽이치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을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내 곁에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소중한 날의 꿈'은 그렇게 오래 잊고 있던 소중한 마음을 조용히 꺼내 보여준다. 주인공 이랑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시절의 서울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마라톤을 하고, 뜀틀을 넘고, 여고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뛰어다닌다. 거리에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고, 방앗간과 카세트테이프 가게, 레코드 가게가 보인다. 파란 비닐우산도 등장한다. 이런 것들은 단순한 ‘옛날 소품’으로 배경에 놓여 있지 않다. 하나하나 세심하고 집요하게 그려져 있다.

빵집의 TV에서는 린다 카터가 출연한 '원더우먼'이 나오고, 벽에는 그 시절 달력이 걸려 있다. 골목 벽에는 '별들의 고향' 포스터가 붙어 있다. 영화 초반부터 김만수의 ‘푸른시절’이 흘러나오는데, 그 노래 하나만으로도 1970년대의 공기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사람 손으로 직접 그린 듯한 영화관 간판도 좋다.

그 영화관에서 이랑이 '러브 스토리'를 보며 눈물 콧물을 쏟는 장면도 재미있다. 이후 장면을 보면 이랑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정확히 어느 한 시점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풍경이 섞여 있다. 특정한 한 해를 재현했다기보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로 넘어가던 시절의 모습을 한데 담아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풍경이 옛날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대사도 재미있다. 억지로 문학적인 표현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여학생들을 보며 남학생들이 “쟤 얼굴이 우리 엄마 닮았어”라고 말하는 식이다.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철수가 학교 옥상에서 커다란 방패연을 만들어 몸에 묶고 뛰어내리려 하자, 친구들이 “야, 영희랑 놀아야지. 너 죽으면 교과서 바뀐다” 같은 대사들. 이런 대사가 참 좋다.

멋을 부린 말이 아니라, 그 나이의 아이들이 실제로 할 법한 말이라서 웃긴다. 철수와 이랑이 가까워지는 과정도 좋다. 둘 다 이성에 대해 제대로 경험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운명적인 사랑처럼 빠르게 흘러가지 않는다. 어색하고 서툰 채로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며 가까워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미소가 쓰윽. 이랑이 철수를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지금의 아이들과는 참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는 그런 사소한 차이를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당시의 공기 속에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그 공기가 참 예쁘다. 수채화처럼 번지는 색감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서울의 골목과 학교, 사람들의 옷차림이 모두 조금씩 빛바랜 듯하지만,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명동의 만화거리에도 영화 속 장면들이 벽화로 남아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보던 풍경이 실제 거리의 벽으로 이어져 있다는 점도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

이랑에게 달리기는 전부였다. 늘 1등을 하던 이랑은 어느 날 달리기 시합에서 다른 아이에게 추월당한다. 그리고 일부러 넘어져버린다. 잘하는 것이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 믿고 있다가 처음으로 무너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이랑에게는 그날이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잘한다고 믿었던 일에서 처음으로 배신당한 듯한 기분. 나는 이 장면이 영화가 말하는 성장통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서울에서 전학 온 수민을 바라보는 이랑의 마음도 그렇다. 수민은 몸에 딱 맞는 교복을 입고 있어 예뻐 보인다. 이랑은 엄마에게 자기 교복은 왜 이렇게 크냐고 투덜거린다.

별것 아닌 장면인데도 영화가 끝난 뒤까지 계속 생각난다. 아마 성장이라는 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사건 하나로 사람이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게 아니다. 하루를 보내는 동안 사소한 일들이 계속 마음을 건드린다.

친구 때문에 흔들리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에서 처음으로 밀려나고, 나보다 예쁜 아이를 보며 질투하고, 내가 가진 것과 남이 가진 것을 비교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소중한 날의 꿈'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안재훈 감독이 연출했고, 각본은 '은중과 상연'의 송혜진 작가가 맡았다. 현실적인 감정과 잔잔한 여운을 만들어내는 두 사람의 감성이 영화 곳곳에 잘 배어 있다. 거창한 사건을 앞세우기보다 일상의 풍경 속에서 이랑과 철수가 겪는 성장의 순간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인 '아가미'도 안재훈 감독의 작품이다. 구병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인데,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두 영화를 이어서 보는 재미도 있다. 성장통은 그런 것 같다. 눈을 떴다가 다시 눈을 감는 하루 동안에도 계속 마음을 찌른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며 친구를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상처받으면서 조금씩 자라난다. '소중한 날의 꿈'을 보고 있으면 그 시절의 내가 잠시 돌아오는 것 같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기분이 좋다. 특별히 신나는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오래 잊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 만난 사람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영화는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찾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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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기 전 또 보는 ‘가을의 전설’은 거칠지만 부드럽고,

아름다운데 매혹의 공포가 있고, 통제에서 벗어난 선함의 종마 같은

트리스탄의 매력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이사벨을 안고 오열하는 트리스탄의 슬픔과

가지고 싶은데 가질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경외가 대자연을 배경으로,

달의 뒤편처럼 아름다운 영상 그 너머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의 세계를 보여준 ‘가을의 전설’.

무엇보다 슬픈 고혹미가 흐르는 음악과 함께 다시 봐도 좋을 영화.


https://youtu.be/2Iio8QmZY8A?si=NKk7nknO-tIHkI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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