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칼에 일단 빠지게 되면, 귀칼의 빠가 되고 나면 여러 장면에서 걷잡을 수 없는 감동으로 처맞게 된다. 이전의 몇 포인트가 있는데 아무래도 시초가 19회의 마지막 장면이 아닌가 싶다. 오니였던 루이에게 잡혀 몸에 피를 철철 흘리며 네즈코가 매달려 있을 때 탄지로가 목숨을 걸고 네즈코를 구하기 위해 물의 호흡이 불의 호흡으로 바뀌면서 루이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 때 감동이 훅 하고 밀려 들어오는데


그때 ‘울고 싶어 지는 듯한 다정한 소리’로 이어지는 탄지로의 노래가 나오면서 네즈코의 팔과 다리가 잘리기 일보 직전에 폭혈을 하고,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네즈코를 위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탄지로가 휘두르는 일륜도에 귀칼의 빠들은, 귀칼에 빠진 팬들은 그만 몰입 최강이 되어 감동으로 구타를 당한 다음 호흡 따위 하지도 못하고 눈물을 콸콸 흘리며 이성과 언팔하고 감성과 맞팔하게 된다. 

https://youtu.be/sa48hrmYN04 카마도 탄지로 노래


네즈코 역시 오니이지만 죽어가는 그 속에서 엄마의 소리를 듣는다. 엄마가 나타나 오빠를 지켜야 한다고, 지금의 네즈코라면 할 수 있다고, 기운 내라고 한다. 지금의 네즈코는 너는 오니지만 오니 같지 않은 오니라서 오니에게서 오빠를 지켜라는 엄청난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다. 초주검이 되어가는 네즈코는 그때 각성을 한다. 오빠를 지키기 위해 각성을 한 네즈코는 폭혈을 하고 오빠와 동생,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오니의 저주 속으로 뛰어든다. 네즈코는 마블로 치면 블레이드 같은 존재로 오니인데 인간을 지키는 오니 공격형 오니다.


초 레어 특급 울트라 하이브리드 귀염 뽀작 네즈코의 디오라마,라고 쓰고 이전에 만들어 놓은 뮬란의 디오라마에 네즈코를 얹었다. 그때 어떤 촉이 발동해서 엘사 디오라마를 만들 때에는 엘사를 디오라마에 부착했지만 뮬란은 탈부착이 가능하게 만들었는데 어쩐지 이렇게 사용될 줄 알았다고 하면 나는 미래형 인간. 초딩이 네즈코는 또 어떻게 알아서 네즈코의 디오라마를 만들어 달라는데 요즘은 만들기 시큰둥해져서 몹시 귀찮아졌다. 그나저나 초딩이 귀칼에 빠지는 건 좀 아닌 거 아닌가. 


2019년에 귀칼 시즌 1을 보고 나도 홀딱 빠졌었다. 그건 완전히 '늪'이었다. 귀칼의 내용은 다 알 테지만 오니(사람을 잡아 먹는 괴물)에게 가족을 몰살당한 탄지로가 오니로 변한 여동생 네즈코를 어떻게든 인간으로 돌려놓기 위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귀칼 시리즈는 원작 만화의 작화보다 애니메이션 버전이 더 인기가 많다. 이를 갈고, 작정하고 만든 유비 포터인가 그 회사에서 뼈를 갈아 넣어서 만들었다. 원작의 선이나 평면적인 작화에서 벗어나 2D와 3D의 잘 만들어진 조화로 화려한 연출과 함께 결투 장면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귀칼의 인기는 어느 날 넘볼 수 없는 원피스를 원작으로 이겨버리고 만다. 2019년 티브이 시리즈가 끝나고 이번에 나온 '무한 열차' 극장 편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또 이기고 만다. 2019년도에 이어 2020년에도 귀칼의 인기를 계속 이어지는데 귀칼의 피규어와 굿즈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다. 귀칼빠들은 오니들처럼 제일 복권 뽑기 투어를 위해 전국의 피규어샵을 돌아다녔다(이렇게 말하면 이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요). 


귀칼의 굿즈와 제일복권 귀멸의 칼날 피규어를 뽑기 위해 이 불경기에도 사람들은 지갑 열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열쇠고리부터, 수건, 컵, 그리고 크고 작은 피규어들이 일본의 여러 피규어 회사들이 많은 버전의 피규어로 예판으로 판매를 시작했고 시작하자마자 순삭이었다. 중국 피규어 회사들도 귀칼의 피규어에 매달렸다. 비교적 저렴한 반프레스토 네즈코는 몇 배의 가격으로 거래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회사에서 흉내를 내지 못하는 장면은 일반인들이 3D로 작업하여 프린트해서 3D 팬으로 피규어를 직접 제작하여 도색을 하기도 했다. 아무튼 대단했다. 그 인기가 꺼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다가 쿄쥬로에게 또 한 번 감동을 처맞은 '무한 열차' 편이 나오면서 귀빠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다 큰 3, 40대 어른들이 극장에서 울고불고 난리 났다. 그게 참 이상하면서 이상하지 않는 현상이다. 왜 귀칼의 빠들은 탄지로, 네즈코, 젠이츠와 이노스케와 그 외의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오니인 루이나 다른 오니들에게도)에게 감동을 먹고, 나이도 먹을 만큼 인간들이 울고불고 난리일까.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소년 드라마다. 가족을 지키려고 목숨을 걸고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나처럼 나이가 든 인간들은 그동안 보호를 받으며 지내왔다. 그 세대가 이제 지켜야 할, 보호해야 할 가족이 생긴 것이다. 내가 목숨을 걸고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내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귀칼에 녹아들어 있다. 나 힘들다고 나 몰라라 하며 일상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탄지로는 하나 남은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는 이들이 그만 탄지로와 네즈코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에 과몰입하게 된다. 탄지로는 15살로 그 나이에 가족과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우리가 그 나이 때 그랬던 것처럼.


네즈코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더 어마어마한데, 시리즈 1 내내 대사도 없고 활약도 없는데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그건 왜 그러냐? 그건 보면 안다. 보다 보면 인간이 오니보다 못할 때가 많고 오니가 더 인간적일 때가 있다. 네즈코가 그렇다.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려보면 된다. 한국 정발에서 오니를 도깨비라 부르고, 영문판에서는 데몬이라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젠이츠다. 젠이츠 역시 네즈코처럼 하이브리드가 아닌가 싶다. 평소 바보 같을 때와 박력일섬인지 벽력일섬인지를 시전 할 때 일륜도를 꺼내서 번쩍할 때 소름 돋는다. 네즈코처럼 각성 상태가 된다. 정말 멋있다. 탄지로와 이노스케와 젠이츠의 투닥투닥 티키타카 장면은 보는 내내 행복하다.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이렇게 행복할 수가, 할 정도로 기분이 좋다. 귀칼에 빠지면 장면 하나하나에 온통 의미를 두고 보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2년 전의 일이었다.


귀칼의 이번 극장판을 일본에서 2천6백만 명이 봤다. 미쳤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일까. 물론 나도 좋아하고 전 세계에서 탄지로와 네즈코를 좋아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흥행을 넘어 광풍의 수준이다.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귀칼은 원피스를 이겼을 만큼 인기가 높다. 그 말은 그동안 원피스를 압도할 만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지난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우리나라 방구석 1열에 왔었다. 한국도 영화 독점, 이런 것들이 처참하지만 그래도 일본보다는 낫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극장 개봉을 하는 건 이제 일본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다. 고 감독은 한국 영화계를 아주 부러워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와이 슌지 같은 감독의 영화는 일본의 극장에 많이 걸리지 않는다. 외국에서 영화상은 수상을 하는데도 극장에 걸리지 않는다. 일본은 그렇다. 그만큼 일본은 이제 문화에 있어서 정체된 지 오래되었다.


문학에서도 하루키 이후 나오지 않고 있다. 귀칼의 경우 올해 유곽 편이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고 있다. 시리즈 3편이 되겠다. 역시 흥행 돌풍을 일으킬 것이다. 귀칼의 내용으로 보자면 네즈코가 인간이 된 다음에는 귀칼은 끝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 뒤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끝내지 않고 질질 끌게 되면 더 이상 새로운 창작물이 나오지 않는다. 뭐 내가 걱정할 바는 아니지만. 아직까지 최고로 인기가 많은 원피스는 안 끝난다. 아마 5년은 더 나올걸. 소년챔프에서 원피스를 놓지를 못한다. 그러니 이야기를 쥐어짜서 억지로 만들어서 계속 나오고 있다. 팬들에게 욕을 들어 먹어도 일단 다음 편에 나오게 되면 어마어마하게 팔리게 된다. 하지만 그러다가 베르세르크 꼴 난다. 89년부터 나온 베르세르크의 작가는 결혼도, 심지어는 여자도 못 사귀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그대로 화석처럼 늙어서 아직도 펜을 들고 있다.


명탐정 코난? 안 끝난다. 소년 챔프 다음 잡지사로 소년 선데이는 아마도 명탐정 코난 연재를 끝내면 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다음 이야기가 쓰레기라도 계속 만들어 내고 있는 상황이다. 코난은 26년째 저 나이로 머물러 있다. 드래곤 볼? 에이, 안 끝난다. 프리저와 그의 아버지도 끝장내고 시간이 흘러 손오공이 심장병 약을 먹고, 베지터의 아들 트랭크스가 미래에서 오고 인조인간 18호와 크리링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셀과 결투하고 손오반이 오공보다 더 초초초수퍼사이아인이 되고, 이 와중에 부르마는 시간이 갈수록 더 예뻐지고... 아무튼 안 끝난다. 여기까지는 아직 오천도 태어나지 않았다. 계왕신의 신이 나타나고 마인 부우 편으로 이어지고 어쩌고 왈왈왈.  퓨전이랍시고 그런 식의 합체도 이상하고, 오공이 신에게 에너지를 받는 장면이나, 이후 나오는 이야기는 점점 산으로 가고 있다. 그렇다고 드래곤볼이 재미없다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서 더 문제다. 하지만 끝을 내야 할 때는 끝을 내야 한다. 우리가 할아버지 된 다음에도 손오공이 날아다니고 그러려나. 


드래곤볼을 보면 손오공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매번의 전투에서 자신의 극한을 실험하는 장으로 여긴다.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더 강한 상대가 나타나서 결투를 하다가 상대가 다치면 선두를 먹여 다 낫게 한 다음 다시 결투를 한다. 그런 손오공의 모습을 탄지로가 닮았다. 오니와 결투를 할 때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탄지로 녀석은 여자들의 마음만 두근거리게 하는 말이나 하고- 너의 마음도 전장에 가지고 간다느니, 카나오에게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느니, 정의와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해서 여자들은 온통 탄지로 녀석에게 빠져든다. 그런 탄지로가 순간 목숨 걸고 네즈코를 지키려는 장면을 보는 이들도 탄지로의 마음과 비슷하게 된다. 무한 열차 편도 그렇고 누군가를 미치도록 지키고픈 그런 마음으로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았을 귀빠들이 흘린 눈물은 또 유곽 편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느껴야 할 것은,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스위트 홈'을 아직까지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귀칼은 19년도에 시리즈 1이 끝났음에도 지금까지 인기가 식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동안 미쳤었다. 스위트 홈이 인기를 얻었다면 그다음 시리즈가 나올 때까지 식지 않고 인기를 죽 끌고 갈 무엇이 필요하다. 피규어라든가 굿즈가 계속 나왔어야 했다.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가 실린 피규어들이 나와서 마니아들이 구입하여 리뷰를 하고 유튜브 영상을 올리며 다음 시리즈가 나올 때까지 회자되어야 하는데 뚝 끊겼다. 킹덤도 마찬가지다. 귀칼은 만화고 스위트 홈은 실사잖아요,라고 하면 그것까지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중요한 점은 전 세계의 엄청난 팬들을 거느린 홍콩의 피규어 회사 핫토이에서 실사 얼굴 조형을 만드는 조형사, 조형 작가들 중에 한국 작가들이 최고라는 것이다. 한국 작가들이 손을 떼면 대번에 얼굴이 엉망이 된다. 이상한 얼굴의 토니 스타크를 받은 전 세계의 팬들은 핫토이를 향해 비판했다. 그만큼 한국 조형사들은 중요하다.


이번에 나온 원더우먼 84 버전의 피규어를 실사와 똑같이 만들어 버린 JND 스튜디오의 겔 가돗을 함 보라. 이건 완전히 겔 가돗이다. 이전의 여타 겔 가돗의 피규어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바로 한국 회사에서 만들었다. 그리고 이소정 작가의 작품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어떤 무엇을 만들어내어 다음 시리즈가 나올 때까지 인기를 끌고 가야 한다. 귀칼의 인기는 앞으로도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또 재미있다. 오니와 인간의 대결뿐인 그런 소년 드라마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재미있다. 그 재미 속에는 감동이 있다. 와 쓰고 보니 TMI네. 아직 쿄쥬로에 대해서 말 도 못 했는데.


https://youtu.be/SJOT3i3cY2U


일본에서 웃긴 건 인기 떡락인 스가 총리가 인기 최고의 귀칼의 대사인 ‘전집중 호흡으로 답변을 하겠다'라고 국회에서 그렇게 발언하더라. 오니처럼 생겨가지고. 스가 너는 전집중 호흡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를 해라. 탄지로는 모든 게 마음에 드는데 단 하나, 귀걸이 문형이 참 별로다. 카마도 탄지로의 노래를 가장 잘 커버한 가수는 우리나라 유튜버 달마발이다. 여러 커버 버전을 들어봐도 최고다. 

https://youtu.be/MhuDPmTOtQ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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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귀가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을 눌렀다. 새벽 한 시의 엘리베이터는 배고픈 고래의 뱃속 같은 느낌이다. 텅 빈 공허한 공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그것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제대로 설명은 할 수 없다.


문이 서서히 닫히려고 하는데 밖에서 누군가 다시 버튼을 눌러서 문을 열었다. 보통 이 시간엔 누군가 타는 일은 거의 없지만 누군가가 탔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다. 한 소에는 닭꼬치를 들고 있다. 입 주위에는 이미 몇 번의 물어뜯음을 했는지 소스가 입가에 초췌하게 묻어있다.


닭꼬치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고추장과 간장이 숯불 위에서 춤을 추며 맛있게 익어서 닭의 안심에 배어들어간 향과 겨자의 냄새가 어우러져 배고픈 고래의 배를 몰캉하게 만들어 버렸다. 공간이 팽창하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오목렌즈에 비치는 모습처럼 바뀌어 보였다. 남학생은 7층을 눌렀다.


문이 닫히려고 하는데 다시 열리며 치킨 배달원이 탔다.


하느님 맙소사.


닭 신이 있다면 고개를 숙여 마음 깊이 기도를 하고 싶었다. 기름에서 바삭하게 튀겨져 수줍게 갓 나온 후라이드의 냄새와 물엿과 소스가 버무려진 양념이 후라이드 위에 덧 입혀진 양념치킨의 냄새가 앙상블을 만들어 쪼그라든 내 위장에 싸닥션을 날리고 쪼글쪼글한 뇌를 대 환장 파티로 만들었다. 배달원은 스티그 같은 헬멧을 쓰고 10층을 눌렀다.


나는 배에 힘을 주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길 기다리고 있는 또다시 문이 열린다. 5층에 사는 아저씨다. 이 아저씨의 한 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있고 그 속에는 둥그런 일회용기가 있는데 그 안에서 풍기는 냄새는 조려진 냄새다. 간장 베이스에 당근이 들어있고 굵게 썰은 감자가, 그리고 당면이 들어간 찜닭 냄새였다.


보글보글 끓여서 조리는 수준으로 간장 국물이 혈관 속에 퍼지는 모르핀처럼 닭고기에 스며 들어간다. 닭은 부드럽고 쫄깃해지며 당면을 같이 말아먹으면 행복해지는 순간이 온다. 찜닭을 더 건져먹고 나면 그 국물을 뜨거운 밥에 올려서 후후 불어 먹으면, 까지 생각하는데 나는 그만 엘리베이터에 벽에 기대고 말았다.


새벽의 엘리베이터는 그야말로 22장까지 펼쳐지는 신포니에타였고 제목은 닭을 위한 변주곡.


결국 기도를 하며 닭을 영접하고 말았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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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B4XGvrrz8_Y 다크나이트


명절 특별 편으로 영화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 지난번 슈퍼맨의 존 윌리암스의 영화 음악을 얘기했다. 모차르트가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존 윌리암스 같은, 그런 음악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헤헤 거리며 그 미친 천재적인 실력으로 록음악이나 뮤지컬 음악을 만들었을 것이다.

만약 베토벤이 아직까지 살아있었다면- 그 고집스러운 면모, 귀족의 녹을 받아먹으며 음악을 가르치고 만들었어도 예술은 명예와 권력, 돈 그 위에 있다고 믿었으며 귀족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책을 집어던지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엄청난 샛방 살이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이 너무 뛰어나니까 귀족들도 그런 지랄 맞은 성격이라도 베토벤을 곁에 두려 했다.

그러니까 베토벤이 살아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다른 음악은 절대 하지 않고 영화 음악만 하지 않았을까. 그의 음악을 통해 영화는 완전한 하나의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체가 되는 것이다. 영화 요소에서 일 순위를 꼽으라면 영화음악이 아닐까.

그래서 베토벤은 한스 짐머로 환생하여 영화음악을 만들고 있다. 놀란의 마지막이자 완결 편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이 영화를 완전무결하게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영화음악이었고 진두지휘를 한 한스 짐머가 있었다. 그리고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를 완벽한 조커로 만들어준 것도 한스 짐머의 음악이었다.

세밀한 묘사를 연출하는 놀란의 천재적인 역량이 돋보였다. 조커의 테마곡을 만들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첼로를 잘 연주하는 첼리스트를 찾아가 삼고초려한 일화도 유명하고 철저한 고증을 위해, 시나리오 작가인 동생 조나단 놀란을 무려 4년 동안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시켜 그것으로 영화 테넷을 만들었다.

그런 놀란과 한스 짐머가 만나 다크 나이트를 만들었다. 한스 짐머는 일 년에 열 편이나 영화음악을 만든다. 한 인터뷰에서 도대체 왜 쉬지 않고 일만 하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내가 음악을 하는 건 취미가 아니다. 그것이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이유다.라고 했다.

베토벤이 살아있었다면 바로 딱 저렇게 대답을 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한스 짐머의 영화음악은 600편이 넘는다. 초반의 한스 짐머는 파워 오브 원과 라이온 킹에서의 아프리카 음악을 주로 만들었다. 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95년 크림슨 타이드의 음악을 하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관계자들의 눈에 들어가게 된다. 크림슨 타이드의 음악을 듣고 충격을 받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이후 제리 브룩 하이머의 진주만, 리들리 스콧의 라스트 사무라이 등 할리우드 영화에 참여하면서 굳건한 성곽을 이루고 있던 존 윌리암스의 음악을 무너트리게 된다.  제리 브룩 하이머의 캐리비안 해적의 한스 짐머의 음악은 단연 압권이다. 빰뻐버범 하며 시작하는 캐리비안의 해적의 음악은 등에서 뭔가가 죽 타고 내려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한스 짐머는 독일 출신이다. 독일 출신답게 독일 출신 클래식의 흐름을 이어받아 영화에 쏟아부었다.

한스 짐머의 음악에는 바그너도 보이고 베토벤이 당연하지만 보인다. 한스 짐머는 영화음악을 독점하지 않고 스튜디오를 만들어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한스 짐머의 다크 나이트를 들어보자. 그 웅장함과 정교함에서 베토벤이 보인다.


https://youtu.be/dW3_gzvh5vI

캐리비안 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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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이지만 입을 한 일자로 다물고 눈을 밀사의 눈초리로 만들어서 생활을 들여다보면 일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늘 가까이 있어서, 언제나 가까이 있는데 잘 볼 수 없는 모습들이 있다. 주머니에는 항상 휴대전화가 있기에 그 모습을 기록할 수 있다. 폰을 바꾸기 전이라 카메라의 문제로 인해 화면이 부옇다. 뭐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고 받아들인다.


평소에 늘 다니는 조깅코스가 있지만 그 코스가 질릴 때쯤에 오늘은 이쪽으로 가볼까, 하며 방향을 틀어서 낯선 골목으로 들어가게 되면 마주치는 얼굴들이 있다. 사람의 얼굴이야 스치듯 지나치며 언뜻 보이지만 인간이 아닌 것들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럴 때는 꼭 인간세상 속에 몰래 몸을 숨기고 사는 불법거주 외계인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맨 인 블랙의 그 외계 종족들이 정말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일단 들고 나면 키득키득하게 되고 여러 상상이 몰려든다. 그리고 재미없고 반복된 일상도 꽤나 그럴싸하게 보인다.  


감염병 이후 우리는 평범하기만 했던 일상을 가슴 터지도록 그리워하고 있다. 에반게리온을 보면 붉게 변한 바다를 보며 파란 시절의 바다가 있던 그 평범하던 때를 미치도록 그리워한다. 졸음에 겨워 꾸벅꾸벅 졸기도 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하루를 우리는 너무나 기다리게 되었다. 


일상을 벗어나 일탈 속으로 들어가면 일탈 속에는 일상에서 느꼈던 편안함이 배제되어 있어서 일상을 그리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일상을 뒤로하고 불편하지만 궁금함이 잔뜩 있는 일탈을 향해 뛰어든다. 인간은 참 알 수 없는 존재다. 그래도 이렇게 일상 속에서 일탈적인 모습을 가끔씩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떠나기 싫어 붉어진 채로 나무의 끝에 매달려 그리워하는 얼굴을 만났네

당신의 얼굴을 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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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스트 레시피’의 초반에 추억의 오므라이스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 맛에 죽음을 앞둔 부자 노인은 감격하고 만다. 예전에도 EXID의 하니의 이야기를 하면서 추억에 관한 음식을 다뤘다. 우리가 흔히 혀로 느끼는 맛이라는 건 시간이 지나면 혀의 영역에서 벗어나 뇌의 여러 구간으로 흘러들어 가 버리고 만다.


요리사 박찬일의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를 보면 시칠리아에서 송아지 내장 햄버거를 먹는 일화가 있다. 주인과 대화를 나누며 왜 시칠리아에 송아지 내장 햄버거가 있냐고 물으니 “음, 시칠리아는 가난했으니까, 고기는 먹을 수 없고, 값이 싼 내장으로 햄버거를 만들 수밖에. 그게 시칠리아의 음식이지”. 등심 같은 구잇감은 부자에게 내어주고, 내장으로 곰탕을 끓였던 우리 민중들의 음식과 흡사한 것이 시칠리아의 내장 햄버거였던 것이다.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의 저자 니시카와 오사무는 우리나라 낙지에 대한 추억도 있다. 젓가락으로 집었더니 접시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빨판이 즉시 뺨 안쪽에 달라붙는다. 이가 닿을 수 있도록 뺨을 일그러뜨려 힘주어 씹는다. 씹을 때의 촉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쾌하다. 접시 위에서는 짧게 토막이 난 낙지의 다리가 한 마리 긴 애벌레처럼 여전히 꿈틀 거린다. 블랙 유머 같은 느낌이 든다. 가나지와에서 먹어본 적이 있지만 그보다 몇 배 더 유머를 느끼게 하는 음식이다. 죽어도 다리에 남아 있는 신경의 꿈틀거림으로 생존을 항변하는 ‘죽은 낙지’의 블랙유머다. 


맛이라는 건 역사와 추억으로 기억된다. 음식 속에는 음식이 단단하게 가지고 있는 시간과 시간이 지니는 역사와 그 역사를 이루는 개개인의 추억이 내밀하게 쌓여 있다.


누구에게나 추억의 음식이 있으며 그 추억의 음식은 한 두 개가 아닐 것이다. 누구와 먹었나, 언제 먹었나, 어디서 먹었나, 에 따라 그때그때 먹은 음식은 강한 기억이 되어 추억으로 소장된다. 전어에 대한 추억이 있다. 요즘에는 찾아 먹는 음식이 없지만 예전에는 꽤나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서 먹기도 한 적이 있었다. 짱뚱어탕이 너무 먹어 보고 싶은 나머지 전라도로 여행을 가기도 했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짱뚱어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일이었다.


나는 전어를 무척 좋아했었다. 전어회를 좋아했는데 친구들이 그런 나를 전어를 국수처럼 먹는 놈이라고 불렀다. 전어회를 씹는 맛이 좋았다. 씹고 있으면 고소한 맛이 퍼지는데 그 맛에 빠져 들었다. 그래서 전어회를 먹을 때는 초장에 찍어 먹는 게 아니라 앞접시에 이 만큼 담아서 그 위에 된장을 조금 바른 다음 정말 국수처럼 후루룩 먹었다.


전어를 너무 먹으니까 보너스를 탄 친구 놈이 한 번은 나에게 너 먹고 싶은 만큼 전어회를 사주마, 하며 가을 전어를 사주었다. 그랬는데 내가 네 접시를 먹은 것이다. 가장 비쌀 때 가장 많이 먹었다. 적당히 기름이 올라와서 참 맛있었다. 친구 놈은 네가 먹으면 뭘 얼마나 먹겠냐며 먹을 만큼 먹으랬는데 한 접시 주문해서 먹고 또 주문하고 또 주문할 때 친구 놈의 낯빛이 변하더니 한 접시 더 주문을 하니까 무표정이 되었다.


그 횟집은 우리가 자주 가는 집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는 횟집으로 참 자주 갔었다. 메인 회가 나오기 전에 여러 안주거리가 많이 나오는데 나는 그 집의 미역국을 좋아해서 거기에 밥을 말아서 자주 먹곤 했다. 사장님을 우리는 형님이라 불렀고, 그러다 보니 손님이 뜸 할 때에는 같이 앉아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곤 했다. 재미는 없는 사람이지만 참 순하고 선한 사람이었다. 


단골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회를 정말 많이 챙겨 주었다. 전어를 제외하고는 회에 대한 욕심이 그렇게 없어서 밑반찬으로 나오는 고동을 나는 주로 먹었다. 고동은 인기가 없어서 내가 다 먹었는데 언젠가부터는 내가 쪽쪽 빨아먹는 걸 보더니 나도 먹어보자며 친구 놈들이 먹기 시작하더니 한 번 테이블에 앉으면 고동을 보통 다섯 접시 정도 먹었다. 주인 형님은 얼마든지 있으니, 다른 손님들은 고동은 쳐다보지도 않으니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그때가 한창 아버지가 투병할 때였다. 병원에서 병간호를 하느라 자주 가던 그 횟집에 나만 가지 못하게 되었다. 낮에는 어머니가 병실을 지켰고 밤에는 일 마치고 달려가서 병실의 간이침대에서 잠이 들다가 아침에 어머니가 병원에 오면 나는 일을 하러 나왔다. 그 소식이 친구들을 통해서 횟집 형님 내외의 귀에 들어갔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횟집 주인 형님이었다.


한 번 오라고 하기에 일하는 도중에 시간을 내서 들렀다. 그랬더니 우리가 늘 앉는 큰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전어회와 고동과 미역국과 밥이 있었다. 병간호하려면 든든하게 먹고 가라며 밥을 차려 주었다. 그리고 아무 말하지 않고 자리를 피해 주었다. 고동을 몇 개 쪽쪽 빨고, 미역국에 밥을 말아 호로록 먹고 전어회를 된장에 찍어 먹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모든 일들이 마무리가 되고 일상으로 돌아와 그 횟집으로 가보니 주인이 바뀌었다. 우리에게 연락도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바닷가에서 제대로 횟집을 할 거라고 종종 말하곤 했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며칠 전에 옆 집에서 전어회무침을 먹으라고 주었다. 보통 아파트 옆집들에게 사진으로 액자나 시계나 뭐든 만들어줘서 먹을 걸 종종 얻어먹는다. 미안할 정도로 나눠준다. 선짓국을 하면 도대체 이렇게 한 냄비를 주면 그 집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게다가 옆 집은 한식 조리사 자격증이 있어서 유부초밥, 추어탕 등 못하는 음식이 없는데 일주일에 한 번은 얻어먹는다.


그래서 전어회무침도 얻어먹었다. 전어회를 먹으면 항시 그때가 떠오른다. 그 횟집의 그 주인 형님 내외. 너무나 다정하고 순했던, 장사와는 거리가 참 먼 사람들인데 묵묵히 회를 썰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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