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들어서 보면 예전에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연걸의 영화 중에 가장 좋은 영화에 속하는 황비홍 1편. 황비홍의 영화가 주는 매력은- 이전의 중국 무협극에서는 빌런에게 많이 얻어맞다가 이기는 액션에 비해 황비홍은 빌런에게, 빌런들에게 몸을 내주지 않는다. 절대 한 대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점이 아주 좋다. 무영각을 사용할 때는 발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봐도 1편은 명작이다. 그런데 지금 보면 이연걸의 대역이 대부분 액션을 한다. 그게 표가 많이 난다.

 

좀 더 이전의 영화, 세계적으로 대박을 친 ‘플래시 댄스’의 알렉스의 춤도 근래에 보면 제니퍼 빌즈가 아니라 대역의 표가 그대로 드러난다. 제니퍼 빌즈는 당시에 춤을 전혀 추지 못해서 대역을 사용했는데 감독이 애매하게 말을 흘리는 바람에 제니퍼 빌즈만 안 좋게 소문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픽이라든가, 전혀 표가 나지 않는 영화가 있다. 뭐야 그게 그래픽이라고? 하는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더 울프 오브 윌스트리트’가 그렇다. 이 멋지고 약 빨고 만든 것 같은 약 빤 영화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마고 로비가 나온다. 욕 버전의 번역이 있는데 그 버전이 너무 좋다. 이 영화는 놀랍게도 천억이 들었고 그 대부분의 돈이 그래픽에 들어갔다. 아니 이 영화에 무슨 그래픽이 나오며 천억이나 쏟아붓지? 할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배경이 거의 다 그래픽이다. 그러니까, 큰 요트도, 태풍도, 파도도, 물도, 집도 모두가 다 그래픽이다. 이 영화도 시간이 지나면 그래픽이라는 게 일반 사람들도 눈으로 알게 될까. 그런 날이 올까. 온다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할까.


방송에 대한 잘못된, 눈에 드러나는 호러블 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빨간고 무통을 빌려 한 번 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338


방송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서 보면 대역이 눈에 보이지만 당시에는 전혀 대역이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방송이라는 것에 몰입하게 되고 이입이 된다. 그리하여 어머니, 아버지들이 방송에서 이게 좋다고 하면 주머니를 털어 영양제나 평소에 먹지 않던 식품을 왕창 구입을 한다.


음식을 먹고 병이 낫는다던가, 또는 그 결과를 보려면 기본적으로 매일, 1.5톤 트럭으로 여섯 트럭은 먹어야 그게 가능할 텐데, 그런 것 따위 방송에서 말해주지 않으니 방송에 보이는 모습만 맹목적으로 믿게 된다.


방송에 대한 이런 민낯은 우리가 다 알고 있고 방송가에서도 알고 있지만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고 누군가 문제를 지적해도 거대한 방송가는 흥, 하며 코웃음을 칠 뿐, 그것에 대해서 적극 해명하거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중은 개돼지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터졌을 때 다른 문제를 터트리면 자연스럽게 대중은 꿀꿀하며 그쪽으로 몰려가게 되어 있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기에 방송은, 방송가는 대역을 사용하던, 또는 거짓을 말하던 크게 개의치 않는다. 시청률, 조회수가 많이 나온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런데 이런 관행에 직접 뛰어든 피디가 있었다. 김재환 감독으로 정말 골 때리는 프로듀서다. 김재환 감독은 ‘미각 스캔들’을 연출한 피디로 미각 스캔들을 통해 음식, 식당, 식재료의 진실을 알려서 크게 화재가 되었다. 그리하여 시청률이 좋아서 방송국에서 회차를 더 늘려 방송을 더 하자고 했지만 정해놓은 방송 분량만 기획을 하고 조사를 했기에 할 수 없다며 딱 정해진 회차만 하고 방송사의 거대한 유혹을 뿌리쳤다.


김재환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2011년에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를 만들면서 방송가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에 직접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트루맛쇼를 보지 않았다면 롸잇 나우. 당장 가서 보기를 바란다. 당시에 트루맛쇼가 극장에 걸리고 난 이후 대단한 후폭풍이 있었다.


그저 생방송 투데이, VJ특공대 같은 방송에 돈만 많이 주니 식당을 맛집으로 둔갑시키는 그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영화제작자들이 직접 식당을 차려서 그들과 접촉을 하고 티브이에 방송이 되는 과정까지, 그 민낯을 세세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MBC에서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그것이 기각되면서 트루맛쇼는 더 큰 관심을 모으게 된다. 김재환 감독의 인터뷰 전문이다.


https://star.mt.co.kr/stview.php?no=2011060909034500908

영화를 한 번 보면 입이 크게 벌어지며 실 웃음이 나온다. 허허 그것 참. 그리고 지금 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어떻게 되었을까. 여전히 지난번 빨간고 무통의 방송처럼 크게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대역을 쓰고, 그 대역이 사람들에게 대역이라는 사실이 크게 드러날 때쯤이면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가 버려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럼 방송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모른다. 각자도생이며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 내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한 번씩 리셋해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에서 모든 갈등과 문제는 일어나기 때문이다.


https://youtu.be/1Mv07WEnrXk

다큐멘터리 [트루맛쇼]를 보고 나서 사람들의 반응: 시흥 미디어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92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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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인의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는 문구는 ‘겨울 사랑’라는 시에 나온다.


-겨울사랑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 년 백설이 되고 싶다


문정희 시인의 시는 온통 사랑으로 채색되어 있어서 시가 아니라 그림처럼 다가온다. 그녀의 언어는 손으로 만지면 차갑지 않고 온후하고 따뜻한 엄마가 낀 장갑 속 같다. 사랑에 대한 의미에 금이 가려고 할 때 문정희 시인의 시를 보고 있노라면 그 금이 연고를 바른 것처럼 없어지는 마법을 부린다.


눈송이는 겨울에만 나타나니까 겨울에만 하는 사랑이라 더더 애틋하다. 겨울은 차갑지만 따뜻한 계절이 아닌가. 바람이 심할수록 우리는 등을 구부리고 몸을 만다. 겨울이 심술을 부릴수록 인간의 체온은 뜨겁게 올라간다.

시는 인간과 똑같다. 자식은 엄마의 고통으로 낳지만 태어나는 순간 자식은 또 다른 자식과 만나 가족을 이룬다. 그 사람을 읽는 사람의 것이 된다. 단 한 번의 생을 살기 때문에 실수를 반복하고, 그 실수가 실패가 아닌 실력이 되기도 한다.




-나무처럼 사랑하고 싶다


나무는 인간보다 오래 살면서 인간만큼 보지 않는다. 나무의 사랑은 수줍어서 겉으로 드러나는 법이 없다. 나무와 나무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 거미줄 같은 뿌리를 진화의 시간으로 움직여 서로를 더듬고 알아가며 사랑을 한다. 그들만의 수줍은 통로로 실핏줄을 절실하게 뻗어 서로를 기억한다. 기억은 수백 년을 흘러 단단하게 박힌다. 나무는 외롭지 않다. 그들의 사랑은 기다림이다. 마주 한 뿌리가 언 땅을 헤치고 서로에게 닿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많은 뿌리가 꺾여 나갔는지 기억하지 않는다. 뿌리가 떨어져 나갈 때마다 나무의 숨은 수액을 따라 올라가 나뭇잎 하나를 떨어트린다. 그렇지만 나무는 외롭지 않다. 그들의 사랑이 많은 곳을 걸으며 인간은 나무의 삶을 조금씩 뺏는다. 나무는 우리에게 기꺼이 생명을 나눠주지만 외롭지 않다. 그들의 사랑은 단단하게 서로를 잉태하기에 눈으로 사랑을 좇는 인간은 나무처럼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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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는 내가 일하는 곳에서 아주 가깝다. 1분 정도 떨어진 거리다. 좀 걸어서 늘 가는 로컬카페에 가지 않고 오늘은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로컬 카페에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린다. 그 정도 걷는 동안 들어오는 오전의 도심지 풍경이 좋다. 매일 똑같은 곳인데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오늘은 바로 옆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불과 몇 달 전까지는 자주 왔던 곳이다.  


스타벅스의 기둥에는 미술작품이 걸려 있었다. 나는 한참 쳐다보았다. 기둥 뒤에는 온통 유리창인데, 때마침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카페 안으로 와장창 쏟아졌다. 미술작품을 보고 있으니 작품 속으로 감각을 잃은 나의 마음도 같이 우르르 쏟아졌다.


이전에 왔을 때는 분명 없었던 그림인데 때가 되면 갈아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악마의 피처럼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들고 다니는 텀블러가 있어서 커피는 늘 거기에 담아서 마신다. 텀블러에는 술도 담아서 마시고 어묵 국물도 담아서 마시기도 한다.


텀블러에 받아서 온 커피를 홀짝이며 그림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그림은 입체감이 드는 작품으로 글자 속에 숲이 가득했다. 초록과 세피아의 중간으로 보이는 색감의 나무와 숲이 글자의 음각 밑으로 펼쳐져 있는 착각이 드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잘 들여다보고 있으니 글자 속의 숲에도 빛이 마구 쏟아졌다.


한참을 보시네요.

왕왕 가서 눈인사를 주고받는 직원이 옆으로 와서 말했다.


예, 시선을 끄네요, 좋네요.

이 자리에 원래 불이 나면 이쪽 계단으로 나가시오, 같은 팻말이 붙어 있었던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어머, 맞아요, 주임님이 그 팻말은 저기로 옮기고 여기에는 그림을 걸었어요.라고 직원이 말했다.


커피를 더 드릴까요?라고 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예? 그래도 됩니까?라고 내가 직원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을 하는 동안에도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자 직원이 따라오세요,라고 했다. 그제야 그림에서 눈을 떼고 기둥을 돌아서 가는 직원을 봤다. 직원은 빨간 조끼를 입고 있었다. 빨간 조끼? 게다가 키가 좀 작아진 것 같았다.


기둥을 돌아서니 햇빛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이렇게 보니 빠르게 걸어가고 있는 것은 빨간 조끼를 입고 귀가 큰 토끼였다. 기둥 뒤의 문을 열고 그 속으로 쑥 들어갔다. 문이 막 닫히려고 했다. 나는 텀블러를 들고 그 문으로 따라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손에 들고 있던 텀블러가 어쩐지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떨어졌다. 나는 떨어지면서 옆으로 누웠다가 슈퍼맨처럼 팔을 뻗어 보기도 했다. 가끔 잠도 청했다. 이렇게 3박 4일 떨어지다 보면 저기 저 숲으로 떨어져 빛이 될까.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Somewhere Only We Know의 귀요미 버전 https://youtu.be/mer6X7nOY_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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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 하지만 굉장했지. 85년에 라이브 에이드가 있었거든. 라이브 에이드를 보며 사람들은 행복했지. 행. 복. 충. 만. 그것이었어. 정말 가슴 여기, 이 부분, 이 부분이 점점 따뜻해지는 게, 그때 그 따뜻함으로 사람들은 지금까지 지내왔을지도 모르지.


봐봐, 데이빗 보위가 저렇게도 지구인들의 틈에 끼여 지구인인 척 노래를 부르잖아. 프레디 머큐리도 그 옆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고. 데이빗 보위가 2016년에 우리에게 안녕을 고하고 자기네 별로 가서 프레디 머큐리를 만났을 때가 생각나.


이봐 프레디, 그간 잘 지냈나.


그렇다네 데이빗. 자넨 잠시 있겠다고 하더니 그렇게도 오래도록 머물다 오다니. 그곳 생활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 자네는 인간의 모습으로 잘 지내는 것 같았지.


프레디, 인간들은 꽤나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 금방 변질될 결혼생활에 책임감이라는 방부제를 뿌려 쉽게 변색되지 않게 하기도 해, 하지만 인간들은 말이야, 사랑이라는 묘한 감정으로 서로에게 어떤 힘 같은 것을 불어넣어주더군. 그 힘이라는 게 위로 같은 거야.


데이빗, 인간들이란 바보스럽긴 해도 사랑스러운 생명체라네.


그들은 내가 만든 노래를 좋아해 주었어. 프레디 자네의 노래처럼 말이야, 내가 지구인이 아니란 걸 모르는 것 같았어.


데이빗, 아마 그들 모두 알고 있었을 거야. 그들은 자네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인 거지. 저길 보라구. [당신을 통해 우리는 고양되는 존재] 자네가 지구인이 아니지만 저들은 아직도 자네를 지구인과 똑같이 추모를 하고 있어.


프레디 머큐리와 데이빗 보위가 만나 저 먼 스페이스 오디티에서 초록별을 보며 이제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지. 두 사람은 스페이스 오디티를 지나 러빙 더 에일리언까지 닿았어. 모두가 히어로가 된 거지.


조지 마이클 까지, 그들은 잠시 지구에 머물러 마법을 펼치고 사라졌지. 이 세상에서, 아니 은하계에서 가장 이상하고 엉뚱한 사람들. 개또라이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이 좋아.


그들이 85년에 한데 모여 이웃을 돕자며 신나게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지. 모두가 아이 같은 표정으로. 저렇게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데 어떻게 무대를 보는 우리가 신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있을까.


노래는 별거 아니야. 정말 별거 없어. 그저 시에 음을 갖다 붙인 거잖아. 그래서 별거 아닌 인간이 별거 아닌 노래를 부르니 이렇게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거야.


앞일도 모르며 활짝 웃으며 서로 붙어서 노래를 부르는 프레디 머큐리, 데이빗 보위, 조지 마이클을 봐봐. 정말 6세 아이들 같잖아. 저들은 지구인들이 아니야. 맨 앤 블랙의 관리 대상들이지. 잠시 지구에 와서 우리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잔뜩 던져 주고 다시 자기네 별로 가버렸어.



그래서 오늘 선곡은 모다? https://youtu.be/NxaGnK3A-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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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가지 않지만 나의 단골 선술집이 있었다. 어촌에는 일본에서 온 사에키 씨가 운영하는 작은 술집이 있다. 도쿄의 뒷골목에서 사에키 씨의 언니가 하는 이자카야의 모습과 메뉴를 그대로 들고 와서 이곳 바닷가에서 하고 있다. 작은 곳인데 늘 사람들이 많고 혼자서도 편하게 맥주 한 잔에 맛있는 꼬치구이를 몇 개 먹고 갈 수 있다.


처음 읽는 사람을 위해 말하자면 우리 동네는 바닷가입니다.

사에키 씨는 묘한 사람으로, 말하지 않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옆에서 늘 따라다니는 수행비서 같은 분위기다. 눈을 깜빡이지 않는 그런 신비한 사람처럼 보인다. 사에키 씨는 일본 사람이지만 일본 노래는 잘 모른다. 신승훈의 노래를 좋아하며 하루키가 누군지도 모른다. 당연하지만 한국말보다 일본 말을 더 잘하는데 한국 언어를 농담을 섞어 한국식으로, 게다가 여기 지역 특성상 사투리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루키를 모르는 만큼 오에 겐자부로나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누군지 관심도 없다.


그게 누구야? 교 짱?


사에키 씨는 나를 교 짱이라고 부른다. 나의 이름을 물었을 때 교관이라고 하니 편하게 교 짱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곳에 일주일 한두 번은 들러서 책을 좀 보며 맥주를 홀짝였다. 내가 책을 보고 있으면 무슨 책이냐고 꼭 묻고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라고 말하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표정 없는 얼굴로 그게 누규?

사에키 씨는 두세 달에 한 번씩 도쿄로 가서 비법양념이라든가, 중요 부품? 은 직접 싸들고 온다. 이 집은 전갱이 꼬치가 아주 맛있다. 물론 나의 기준이지만. 꼬치에 구워진 전갱이 구이를 한 입 먹고 맥주를 마시면 피로가 날아간다. 타지방이나 타국에서 나에게 손님들이 오면 – 친척이던, 친구든, 이모부든 사에키 씨의 가게로 데리고 갔다.


가게 안은 작아서 조촐한데 꽉 찬 분위기, 무엇보다 맛있는 꼬치구이가 있고 왁자지껄한 기분 좋은 소음이 가득했다. 이곳 어촌에도 일본인들이 많은데 그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이곳에 사는 일본인들은 사에키 씨의 가게가 비좁아서 자리가 늘 없는데 일어서서 맥주를 마시고 꼬치구이를 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한다. 꼭 자리에 앉아야지, 같은 분위기는 없다.


교 짱? 어때 맛있어?라고 꼬치를 먹을 때면 사에키 씨는 꼭 물어본다. 그리고 나에게 듣고 싶은 일본 노래가 있냐고 묻는다. 좋아하는 노래 들려줄게.라고 말하지만 일본 노래는 몇 없다. 사에키 씨의 가게에는 주로 신승훈의 노래나 한국 가요가 조용하게 흘러나온다. 아직도 시디와 테이프로 노래를 튼다. 그래서 내가 듣고 싶은 일본 노래를 말하면 – 요컨대 이즈미 사카이가 있던 자드의 노래를 틀어 달라고 하면, 오케이 알았어,라고 하고는 신승훈의 노래를 튼다. 그런 식이다.


한 번은 술을 많이 마시고 나에게 있던 스메싱 펌킨스의 카세트테이프를 건네주며 틀어 달라고 했다. 스메싱 펌킨스는 대단한 그룹이지만 좋아하는 사람들만 좋아한다. 세계적인 그룹이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그룹이다. 사에키 씨의 가게에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별로 없을 때 스메싱 펌킨스의 1979를 들으면 기분이 참 좋다. 몽롱하며 모호한 분위기가 뇌를 툭 건드리는 느낌이다.

빌리 코건의 목소리만큼 매력적인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라고 나는 사에키 씨에게 말했다. 사에키 씨는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지? 같은 표정 없는 얼굴로 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다.


빌리 코건이 부르는 노래에는 어떤 의미가 있거든요. 시인이 한 줄의 시를 적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읽듯이 빌리 코건 역시 한 줄의 가사를 써내기 위해 엄청난 독서를 하잖아요. 빌리 코건은 술과 담배도 하지 않는 아주 이상한 사람이에요. 마치 오노 지로가 그 좋아하는 마늘도 명절에만 먹고 외출을 할 때 장갑을 꼈듯이 스시에 철학을 담았다고 하잖아요. 빌리 코건의 노래가 그런 것 같아요.


어머 교 짱, 오노 상을 알아?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야. 별일이네. 오노 상의 가게에도 몇 번 갔었지. 물론 예약을 거쳐야 하지만 말이야. 오노 상이 만든 스시를 먹고 있으면 도심 속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거야. 그때 나도 그렇게 장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지. 교 짱이 오노 상을 다 알고 신기하네.


전 다 알아요.라고 나는 큭큭 웃었다. 그랬더니 사에키 씨가 교 짱, 귀엽네(어쩐지 귀엽다는 말은 한국어가 아닌 카와이 같은 말로 들으면 더 좋을 같지만),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사에키 씨, 생강 채 썬 거 좀 더 주세요. 와사비도 듬뿍 주세요. 전 여기 와사비가 너무 맛있거든요.


그랬다, 정말 와사비가 말도 안 되게 맛있다. 그냥 뜨거운 밥에 와사비를 비벼 먹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면 사에키 씨는 파를 더 얹어줄까?라고 한다. 사에키 씨의 가게에 파는 마늘 꼬치도 아주 맛있다. 역시 와사비를 살짝 찍으면 맥주를 부른다.


이 모든 게 전부 코로나 이전의 이야기다.

사에키 씨는 이렇게 생겨서 한 번 그려봄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사에키 씨가 너무 좋아하는 신승훈의 그 노래

https://youtu.be/k4X0z_Lv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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