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레드를 보다 보면 30대, 40대 여성들이 남자 친구와 헤어져 몹시 슬퍼하는 글이 자주 보인다. 읽다 보면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남자 친구만 바라보고 살았던 사람도 꽤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헤어지고 난 뒤의 허전함이 얼마나 클까. 마치 강아지처럼 24시간 남자 친구 곁에 있고 싶어 한다. 직장도 있고 친구도 있고 다른 일도 있으니 늘 붙어 있을 수는 없고, 대신 시간마다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한다. 뭘 먹는지, 뭘 입는지 챙긴다. 처음에는 관심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관심은 참 이상해서 조금만 지나면 간섭이 된다. 그러다 결국 헤어진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런 장면도 나온다. 결혼반지를 낀 남자가 다른 여자 앞에서 그 손가락을 슬쩍 숨긴다. 반지를 빼지는 않는다. 그냥 손을 감춘다. 가장 사랑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가 너무 소중해서 오히려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여자에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우가 어디 드라마에만 있을까. 너무 좋아하는 옷이라 더럽히기 싫어 아껴 입겠다고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정작 한 번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낡아버리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회사에서 일 년에 몇 번 룸살롱에 간다. 아내는 남편 이외의 남자와 잠을 자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 나가는 독서모임에서 남편과는 할 수 없는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아주 깊게 나눌 수 있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와 이야기를 하면 정말 행복하다. 남편이 곁에 있을 때 느끼는 행복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행복이다. 그렇다면 남편과 아내 중 누가 진짜 바람을 피운 것일까.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부부가 되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된다. 물론 모든 부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부부라서 오히려 더 어려운 것들이 있다.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길에서 어떤 사람을 봤는지, 별것도 아닌 생각이 왜 갑자기 떠올랐는지. 그런 이야기보다는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일본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이런 인간관계를 참 집요하게 들여다본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한국처럼 킬러들의 쇼핑몰 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대작은 만들지 못한다. 일본이나 프랑스는 영화와 드라마에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주 정밀하게 파고드는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다. 가정이나 직장처럼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공간을 무대로 삼는다. 공간은 좁은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마음은 좁지 않다. 보다 보면 답답한 부분도 있다. ‘아니, 그냥 말을 하면 되잖아.’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런데 그 답답함까지가 사람 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네 명의 주인공은 모두 인정받는 연기자라서 그런지 연기가 좋다. 특히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니지만, 자신보다 다른 여자를 더 찾는 것처럼 말하는 순간 아오이 유우가 남편을 바라보는 표정이 참 좋았다. 화가 난 것도 같고, 서운한 것도 같고,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확인한 사람 같기도 하다. 동네 미용실에 가면 아내들이 머리를 하면서 남편 욕을 잔뜩 한다. 어쩌면 그것도 사랑받고 있다는 방식인지 모르겠다. 욕할 수 있다는 것. 아직 화가 난다는 것. 아직 기대한다는 것. 욕하기도 싫은 남편이라면 어떨까. 사랑에서도 이미 아주 멀리 가버린 사람일 것이다. 인간은 알 수가 없다. 마음속에 무엇을 집어넣고 다니는지 아무도 모른다. 부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어쩌면 부부이기 때문에 더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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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사과를 하나 먹었다. 사과는 오전에 먹어야 좋다지만, 나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다만 과일에 대한 불만이 하나 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요즘 과일은 너무 맛이 난다. 당도가 너무 높다. 사과가 꼭 이렇게까지 달아야 하나 싶다.

사과는 아버지의 과일이었다.

아버지가 다른 과일을 드시는 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사과만큼은 무척 좋아하셨다. 손재주가 좋았던 아버지는 회사에서 직접 만든 작은 과도를 하나 가지고 계셨다. 날이 추워지면 사과를 매일 드셨다. 한 손에는 사과를 들고, 다른 손에는 그 작은 과도를 들고.

나는 어릴 때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동생은 아버지를 닮았는지 사과를 좋아했다. 아버지가 사과를 깎기 시작하면 어느새 옆에 붙어 있었다. 아버지가 깎은 사과를 받아먹고, 또 받아먹고.

두 사람은 사과 하나를 놓고 아주 야무지게도 붙어 있었다. 밥은 안 먹어도 사과는 먹을 것 같았다. 사과가 없는 세상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사람들처럼.

기억 속 아버지는 늘 비슷한 모습이다. 한 손에는 사과, 다른 한 손에는 직접 만든 작은 과도. 사과 껍질을 길게 벗겨내고, 잘라서 여동생에게 건네주던 모습.

오늘 사과 하나를 먹다가 그 모습이 생각났다.

사과가 아버지의 과일이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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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덥다. 어릴 때 이렇게 더운 날이면 쭈쭈바를 하나씩 먹었다. 그냥 이름이 쭈쭈바였던 것 같다. 딸기물을 얼려놓은 것 같은 맛. 그걸 하나 들고 꼭 따리를 입으로 잡아당겨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사람은 둘인데 쭈쭈바를 하나밖에 못 사면 중간을 빙빙 돌렸다. 그러다 반으로 똑 끊어서 하나씩 나눠 먹었다. 쭈쭈바 하나를 가지고도 그렇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다 약국집 딸내미 성희네 집에 놀러 가면 가끔 걔 엄마가 냉동실에서 샤베트처럼 얼려놓은 아이스크림을 꺼내 주었다. 쭈쭈바하고는 맛이 달랐다. 뭐랄까. 부자의 맛이었다. “더 먹어.” 그렇게 말해도 이상하게 하나밖에 못 먹었다. 너무 맛있는데 마음껏 먹을 수는 없는 맛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쭈쭈바를 먹었던 기억은 선명한데 막상 그 맛을 말해보라고 하면 잘 모르겠다. 딸기 맛이라고 하기엔 딸기 같지도 않고, 단맛이라고 하기엔 뭔가 빠져 있다. 살얼음이 조금 남아 있을 때 입에 털어 넣고 먹는 맛이 있었다. 혀에 차갑게 달라붙고, 얼음이 사각사각 씹히던 맛. 불량식품의 맛. 그래서 더 맛있었던 쭈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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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등장인물이 총 세 명이다. 끝까지 세 명이 전부다. 그중 한 명은 아이라서 사실상 두 사람이 영화를 끌고 간다. 그런데 미스터리 영화라면 인물이 많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적은 인물로 밀어붙이는 쪽이 잘만 만들면 훨씬 흥미로울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꽤 흥미롭다. 기억을 전혀 잃은 주인공이 눈을 뜬 곳은 처음 보는 집이다. 남편이라는 남자도, 딸이라는 아이도 낯설다. 자신을 부정하고 적대적으로 두 사람을 대한다. 그런데 집 안에는 자신의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사진도 있고, 생활의 흔적도 있다. 특히 딸아이가 엄마를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이상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문제는 자신의 정체다. 이름부터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르다. 남편이라는 남자는 기억에 전혀 없는데 분명 이 집에서 자신이 살았던 흔적은 있다. 게다가 외딴 농장 같은 곳에 있는 저택이라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도 쉽지 않다. 세 사람만 덩그러니 남겨진 공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해진다. 초반은 그래서 좋다. 재미도 있다. 적어도 계속 다음 장면을 보게 만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튄다. 복제 인간이 나오고, 인간의 의식을 디지털로 관리하고 옮기는 미래형 SF 스릴러가 되어버린다. 여기서부터 좀 이상해진다. 인간을 복제하고 의식을 디지털화해서 새로운 몸에 심는 정도의 기술이라면 엄청난 시설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남편이 창고 같은 곳에서 노트북 한 대를 놓고 그 엄청난 일을 벌인다. 이게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잘 와닿지 않는다. 기술의 규모와 공간의 규모가 너무 따로 논다. 남편의 집착도 마찬가지다. 잃어버린 가정을 되찾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광기로 변해가는 설정인데, 후반부에 복제된 아내를 무참하게 폭행하고 죽여버리는 장면에 이르면 ‘이건 또 뭐지?’ 싶은 생각이 든다. 오컬트가 나오다가 바디 호러가 되고, 스릴러와 미스터리가 섞이더니 미래형 SF까지 들어온다. 결국 중반을 넘어가면서 재미가 확 떨어진다. 그런데 묘하게 끝은 보고 싶다. 재미가 없는데 결말은 궁금하다. 이런 영화가 있다. 재미와 흥미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닌 모양이다. 주연은 [해피 데스데이]로 익숙한 제시카 로테다. 이전 작품인 [보이 킬스 월드]에서는 [그것]의 빌 스카스가드와 함께 말도 안 되는 액션을 몸으로 받아냈다. 공포 영화에서 자주 봐서인지 이런 장르에는 확실히 잘 어울린다. 다만 이번 영화에서는 배우가 아쉽다기보다 캐릭터와 이야기가 배우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느낌이 더 크다. 초반의 미스터리가 끝까지 유지됐다면 꽤 괜찮은 영화가 됐을 것 같은데, 중간부터 너무 많은 것을 집어넣으면서 오히려 힘을 잃었다. 그래도 결말이 궁금해서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 [어펙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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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중요하다. 요즘 유튜브 [오재나]를 보면 김재환 PD가 대패삼겹살을 백종원이 개발했다는 주장에 대해 하나씩 근거를 찾아 반박하는 영상이 올라온다. 그냥 말싸움이 아니다. 기록을 찾아간다. 오래된 기사와 자료를 뒤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당시의 흔적을 확인한다. 결국 그 모든 걸 뒷받침하는 건 기록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더본코리아가 점주들과 함께 김재환 PD를 상대로 스무 건이 넘는 고소를 했고, 김재환 PD는 그때부터 자신이 문제를 제기한 주장들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말로 맞서는 게 아니라 기록으로 맞서는 셈이다. 김재환 PD는 원래 이런 일을 해온 사람이다. 여러 TV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나는 그의 영화를 거의 다 봤다. 재미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던 것을 붙잡고 끝까지 파고든다.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가 [트루맛쇼]다. TV 음식 프로그램들이 맛집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방송가의 음식점 소개가 얼마나 엉망으로 돌아가는지를 까발린 다큐멘터리다. 그런데 웃긴 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떡볶이 맛집을 소개하면서 온갖 약재가 열 가지 넘게 들어간다는 식의 황당한 프로그램이 여전히 방송되고 있다. [쿼바디스]에서는 한국 교회를 들여다봤다. 미국에도 없고,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초대형 교회들이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까지 커졌는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무엇인지 파고든 영화다. 내가 더 재미있게 본 건 [미스 프레지던트]다. 개봉 당시 박사모 사람들이 극장으로 엄청나게 몰려갔다. 그런데 여기서 제목의 ‘미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세스, 미스가 아니다. 영화를 보면 안다. 제목부터 묘하게 사람을 낚는다. 김재환 PD는 [미각 스캔들]도 연출했다. 음식과 식당, 식재료의 진실을 파헤치는 프로그램이었다. 반응이 좋았다. 시청률도 잘 나왔고 방송국에서는 회차를 늘려 더 방송하자고 했다. 그런데 김재환 PD는 처음부터 정해놓은 분량이 있으니 거기까지만 하겠다고 했다. 방송국의 유혹을 뿌리치고 계획한 회차만 하고 끝냈다. 이런 사람이 지금 기록을 들고 다시 현장으로 나간 것이다. 요즘 그는 유튜브 [오재나]를 통해 기록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닌다. 거대한 자본을 가진 더본코리아와 백종원을 상대로 말이다. 누가 뭐라고 했느냐보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기록이 남아 있느냐를 찾아간다. 그래서 영상이 재미있다. 기록 하나가 기존의 이야기를 뒤집어버리는 순간이 있으니까. 기록은 남의 이야기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개인에게도 그렇다. 기록해 놓지 않으면 그때는 분명 중요했던 일이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진다. 사진 한 장, 메모 한 줄, 오래된 영수증 하나가 나중에는 그 시절을 다시 불러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니 기록하자. 아주 좋은 순간뿐만 아니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까지도. 어쩌면 그런 기록이 나중에는 가장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것이 호러블한 기록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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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윤 2026-08-27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미각스캔들은 김재환 스스로 정해진 회차 때문에 종영한게 아니라 콩고기 조작 보도로 방심위 징계 먹고 폐지된 겁니다, 애초에 미각스캔들의 악질성을 고려했을 때 콩고기 조작만이 아니고 더 했으면 진짜 먹거리 X파일에 버금가는 악질 방송으로 평가받았을 수준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