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시간인데 매일 하늘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다. 올해 사월과 오월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어떤 사람은 봄비가 내리는 게 좋다고 하는데 나는 봄비든, 여름비든, 가을비, 겨울비, 비가 내리는 날은 별로다. 예전에는 무신경하게 창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창밖에 비가 내리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곤 했는데 요즘은 그것도 별로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데 여름이 되어서 일이 주 정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또 가뭄이라고 뉴스에서 난리를 떨 것 같다. 항상 최악의 가뭄, 같은 말들이 있었다. 최악의 가뭄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생각하는 게, 여기 강물이 말라빠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최악의 가뭄이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최악, 역대급 같은 말을 너무 남발하는 게 아닐까 싶다. 역대급이라는 말이 뉴스에서 자주 들으니까 이 말이 참 듣기 싫다.


이번 코첼라에서 르세라핌이 역대급 무대였다고 했는데 그건 정말 역대급이었다. 역대급이라는 말은 그럴 때 사용해야 한다. 처참함의 정도가 역대급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해서 엔믹스와 베몬의 완벽한 무대는 잘 봐지지 않는다. 특히 베몬의 라이브는 소름 돋을 정도로 좋다. 그러나 노래가 어렵고 고퀄이라 따라 부를 수 없는 지경에 무대까지 완벽하니 감탄하다가 지나가는데, 요즘 말 많고 탈 많은 하이브의 신예 아일릿의 마그네틱의 라이브는 마치 유치원 아이들이 무대를 하는 것 같아서 도대체 이게 케이팝의 현실이야? 하면서 계속 보다 보니 그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노래가 아주 쉽고 리듬이 단순해서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아일릿 얘네들이 라이브만 잘한다면, 같은 마음이 들어 버린다. 처첨한 무대를 계속 보니 슈퍼 이끌림~이 입에 맴맴도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 모든 게 정말 하이브의 계략일까 덜덜덜.

비가 많이 오는 가운데 사이사이에 맑은 날이 있었다. 어떤 날의 저녁은 구름이 층위를 나타나며 어둡기 전에 푸른 하늘이 펼쳐지더니 어느 날 저녁은 동쪽 하늘인데 노을과 비슷한 색감을 드러냈다. 참 신비한 컬러였다. 일 년 중에 한 번은 이런 색감의 하늘을 본다. 자주 볼 수는 없다. 하루나 이틀 정도 볼 수 있다. 365일 중에 한두 번 볼 수 있는 이런 하늘의 색감을 바라보고 사진을 한 컷 찍는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이기 때문에 찰나로 어두워지고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묘한 색감은 사라지고 만다.

노을은 노을대로 타오를 수 없을 정도로 타오른다. 휴지를 집어던지면 확 타버릴 것 같다. 노을을 담은 멋진 사진을 보러 가지 말고 직접 이렇게 자주 노을을 보자. 아름다운 것을 찾으러 다니기보다 곁에 있는 아름다움을 봐야 한다. 노을은 저녁에 나오면 볼 수 있다.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이 아름다운 노을은 볼 수 없다.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소중한 것들은 늘 가까이 있으니 가까이 있을 때 어쩌고 하는 말을 한다. 동의한다. 그러나 인간은 늘 가까이 있는 것들은 놓치게 된다. 나 역시 인간이라 가까이 있던 소중한 무엇인가를 그동안 많이 놓치며 살았다.

너무 아름다와서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봄,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데 이만큼 가면 저만큼 도망가는 봄, 그렇게 봄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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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슴슴한 도다리국을 먹었는데 고요함이 입 안으로 확 들어오는 느낌. 도다리 매운탕만 먹었는데, 온통 축제 같은 분위기라 도다리의 맛은 뒷전이고 뻘건 양념 맛이 후려쳤는데 이렇게 고요한 맛이 묵직하게 입안을 채우다니, 너무 맛있는 거였다.


이 독립영화 ‘은하수’를 보고 나니 슴슴한 도다리 국을 먹은 느낌이다. 이런 영화라면 양팔을 벌려 격하게 환영하고 싶다.


영화는 가타를 잃어버려 그 기타를 찾으러 다니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나이가 많은 인디밴드 3인조 혼성 ‘은하수’는 자신들의 노래를 알아주는 곳을 찾으러 다니지만 그 어디에서도 받아주는 곳은 없다. 버스킹을 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


맏형 동은은 어린 시절 가정폭력에 집을 나와 펜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곳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최호섭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두고 간, 사인이 된 그 기타를 아르바이트 비로 기타를 구입한다. 그 기타는 자신의 심장과도 같다.


하지만 그 기타는 어쩌다가 당근으로 팔려 나가고, 기타가 바뀌고, 다시 사채업자에게로 갔다가 어떤 할머니에게로 간다.


모두가 기타에 얽힌 사연이 하나씩 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에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고 싶고, 누군가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과거를 청산하고 노래를 만들어 주고 싶다. 또 다른 누군가는 30년 전에 실종된 기타를 치던 아들을 위해 기타를 준비한다.


기타라는 게 악기 중에서 가장 접하기 쉽다. 하지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 작은 오케스트라의 음을 낸다. 기타 하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은하수는 노래를 부른다. 가사 중에 ‘우주 속 작은 빛이라도 의미가 있어’라는 부분은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먼지 같은 존재지만 먼지가 하찮지 존재는 하찮지가 않다.


이 영화에 카메오로 나오는 사람들이 대단하다. 노브레인의 이성우, 플라워의 고유진, 김현정과 박선주 등 마지막에는 최호섭도 나온다. 재미있었다.


영화의 유머를 장착한 대사도 겉돌지 않고 웃음이 나온다. 이 영화는 확고한 진실보다 흔들림이 많은 가능성이 훨씬 낫다고 말하는 것 같다. 밴드 은하수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아주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 [은하수]였다.


고해형이 연기도, 게임도 잘하는데 노래까지 잘 부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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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해지면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아름다운 것만 찾게 돼



유난히 익숙해져 그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기분인지 감지하고 있지 못했다. 카페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요가 끝없이 흘러나왔다. 노래는 계속 우리가 있어서, 우리가 있어서, 하는 가사가 나왔다. 나는 처음 보는 카페에 처음 맛보는 음료를 마시며 처음 앉는 자리에 앉았다. 그럼에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익숙함 때문에,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 때문에 낯설지 않은 외로움이 들었다. 외로움은 느닷없거나 천천히 물처럼 차오르거나. 5월의 밤바다는 무척 차갑거나 아주 차갑거나.


여기서는 바다가 보인다. 바다를 매일 보는 나로서는 바다가 나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바다와 내가 사랑하는 사이라면 둘 중에 하나는 힘을 가지는 자가 된다. 바다가 나를 덜 사랑하게 되는 순간부터 바다는 나에게 힘을 행사한다. 더 사랑하는 나는 바다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온전한 사랑을 하는 쪽은 매달리는 내 쪽이다. 하지만 오늘 바다와 나는 이별을 한다. 온전하게 하는 사랑과도 이별을 한다. 그리고 나는 내일의 바다를 다시 만난다.


그녀는 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남김없이 먹었다. 내가 반도 먹지 않고 있으니 내 것을 먹어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끄덕였다. 음식을 만들고 있으면, 만드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 그녀는 나처럼 끄덕이며 입을 오물 거렸다. 미도리가 한 말이야. 그녀는 진지하게 듣지는 않았지만 내가 하는 말은 다 듣고 있었다. 카페의 문 근처에는 화분이 있었고 화분에는 난이 자라고 있었다.


언젠가 그녀는 내게 말했다. 난을 키웠어요. 개와 고양이와 달리 아무런 표현을 못하기에 물을 주고 정성스레 보살폈는데 자꾸 썩는 거예요. 내내 속상했는데 난은 다른 꽃처럼 물을 위에서 뿌려주면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뿌리가 물을 마실 수 있게 해야 위에서 썩지 않는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요. 사람들도 먹는 음식이 다른데, 전부 다른 꽃들이 어째서 다 똑같이 물을 위에서 뿌려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전 너무 슬펐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손가락을 죽 펴서 손톱을 확인하는 듯 손가락 끝을 보았다.


이별이 이별이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익숙함이 내 삶에 깊게 들어와 있기 때문일까.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뭘 하면 안 되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시간 속에 내 몸은 풍덩 빠져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하는 김광석의 노래가 떠올랐다. 이별에 익숙해져야 하겠지만 익숙해지는 것은 자의가 아니라 시간에 의해서이다.


시간이란 순수하여 모든 것을 하얗게 만들어 버린다. 시간은 기억도 하얗게 만든다. 너는 시간 속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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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가 대만, 중국 등 영화제에서 사람들이 밀려들어 티켓이 없어서 난리라고 한다. 파묘의 가장 큰 매력은 ‘공포’가 강력하다는 것이다. 공포영화의 초석이자 가장 기본이 되는 덕목이다.


중화권 공포영화들도 꽤나 무섭고 공포가 가득한 영화가 많다. 그러나 파묘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공포의 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파묘가 보는 이들에게 공포를 준 건 영화 속 도깨비불이나 원흉이었던 사무라이 귀신이 아니다.


주인공으로 나온 배우들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화림이 툭툭 하는 말투에서, 빙의 들린 윤봉길의 눈빛,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김상덕의 표정과 고영근의 달라지는 동작에서 굉장한 공포를 보았기 때문이다.


얼굴을 덜덜 떨며 빙의 들려 목이 꺾이는 박지용을 보는 김상덕, 최민식의 엄청난 연기에서 우리는 그만 공포가 몸을 덮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화림, 김고은의 평소 같은 말투로 툭툭 던지는데 그 안에서 소름이 돋았다. 이도현이 빙의되어 신들린 연기를 펼칠 때에도 공포가 화면을 뚫고 쏟아져 나왔다.


영화 속 공포를 주는 대상이 보통 공포영화의 주체가 되는 귀신인 경우가 많지만 파묘에서는 주체의 대상보다 피상적인 대상들이 공포를 느끼는 과정을 통해 보는 이들까지 공포를 주인공들과 함께 느끼는 체험을 한다.


작금에는 주체가 되는 공포의 대상이 포효하는 공포에 둔감해졌다. 영화가 세상에 도래한 이루 공포영화는 영화의 한 장르로 입지를 돈독하게 굳혔다. 하지만 공포영화는 한계에 돌입했다. 공포 마니아들은 어지간한 공포물에 공포를 느끼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공포물이 나오면 좀비나 드라큘라 또는 제이슨이나 프레디 같은 대상이 주인공인 영화에서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던 필이 그 어떤 무서운 대상을 대동하지 않도고 극한의 공포를 주었고, 아리 에스터의 유전에서 처음 느끼는 공포를, 미드 소마에서는 대낮이 밤보다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는 주인공들이 느끼는 공포를 우리가 동시공체로 느꼈기 때문이다.


파묘 역시 배우들의 힘이다. 과연 최민식, 유해진이야, 같은 말이 나오게 만들었다. 장재현 감독의 이전 작들을 봐도 그런 면모가 면밀히 보인다. 주인공들에게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 하는 말투, 대사, 심리에서 우리는 압도당하는 공포를 실감했던 것이다.


특수 분장이나 그래픽으로 중무장한 공포물은 앞으로는 공포보다는 징그러운 쪽으로 갈 것이다. 눈을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징그러우면 공포와 연결이 될 수는 있으나 즉각적인 공포의 범주는 아니다. 징그러움이 이어지면 공포가 될 수 있다. 일본 만화 ‘식량인류’을 보면 그렇다.


인간이 인간을 잡아와서 배양하듯 살을 찌워서 어떤 존재의 먹이로 준다. 각종 호르몬제와 약물을 투여하여 이가 다 빠지고 몸이 문들어지는데도 가슴을 계속 커지고 성욕만 남아서 섹스를 갈구하고 아이를 계속 낳는다. 원작을 보면 알겠지만 처음부터 징그러움의 연속이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너무 공포스럽다. 아주 무섭다.


즉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대상은 바로 인간이다. 특히 어제까지 나의 곁에 있던 사람이 오늘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어제의 온화한 내가 오늘 공포의 내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공포를 주는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라는 걸 우리는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있다.



식량인류 몇 장면




마이클 패스밴더가 나홍진 감독과 간장게장을 맛있게 먹는 장면이 포착 됐다.

어떤 공포물이 탄생할까. 기대를 해본다.


사진출처: 네이버 블로그 크리드포스트 https://blog.naver.com/rlqhstyle/22342490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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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이 나왔다. 목감기다. 어제부터 목이 꺼끌꺼끌하더니 기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목이 콱 막히고 따끔거리는 정도가 심해졌다. 어제 목감기 기미가 왔기에 구비해 둔 목감기 약을 하나 먹었다. 목감기 약을 먹었을 뿐인데 물에 몸이 잠기듯 잠이 계속 쏟아졌다. 앉아서 버티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병든 닭처럼 머리가 1초에 한 번씩 까닥. 잠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영혼이 잠에 잡아먹히는 것 같았다.


오전에 커피를 투고하러 가는데도 잠이 쏟아졌다. 오면서 약국에 들러 목감기 약을 새로 샀다. 약국은 한가했다. 그 약국은 늘 한가하다. 주위에 병원이나 내과가 없어서 들어가면 약사는 늘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약사는 나이가 있는 남자로 가운을 벗으면 약사와는 거리가 먼 느낌이다. 그 약국의 손님은 항상 나뿐인가? 할 정도로 한가했다. 약국으로 가는 길은 늘 다니는 길에서 한 블록 떨어진 도로인데 일상에서 약간 벗어나는 기분이다.


마치 이런 봄날에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는 주말의 느낌이 들었다. 두꺼운 옷이 필요 없고, 그렇다고 반팔은 아직이다. 먼지와 봄꽃의 기운 때문에 주위가 부옇다. 눈을 감으면 헤엄을 쳐 그 먼 기억 속으로 가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내가 다니는 길목에 동네 목욕탕은 전부 사라졌다. 찍어 놓은 사진에서나 동네 목욕탕과 동네 이발소를 볼 수 있다.


또 기침이 나온다. 이번 목감기는 갑자기, 느닷없이 칼칼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나의 목을 감기가 잠식했다. 침을 삼키면 따끔한 그 느낌. 기침을 한 번 하면 머리가 띵 하여서 어떻게든 기침을 참아보려 하지만 기침을 참으면 참을수록 감기가 나를 미치도록 약 올리는 느낌이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기침은 한 번만 나오지 않는다. 기침은 꼭 북수형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서 기침을 여러 번 한다면 민폐가 되는 세상이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코로나 전에는 목감기가(감기가 거의 잘 걸리지 않는데) 걸려도 약을 하나 먹으면 곧바로 목이 잠잠해졌다.


하지만 어제는 약을 하루 분을 먹었다. 세 번을 먹고 하루가 지나 오늘이 되어서야 목이 가라앉았다. 목감기가 걸려 몽롱한 상태에서도 조깅을 해서일까. 잘 받던 약발도 이제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다. 이런 게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5월의 시작이다. 이제 햇살이 바삭바삭해지기 시작하는 시기다. 청량한 바람이 불어와 조깅으로 흘린 땀을 식혀 주는 계절이다. 아침에 나오는데 몽롱하지만 아파트 놀이터에 비치는 햇살 사이에서 휠체어를 탄 할머니가 볕을 쬐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약간 빛바랜 사진을 보는 듯 한 기분이었다. 햇살이 휠체어를 탄 할머니에게 내려앉고 놀이터 주위의 나뭇가지가 만들어 낸 그림자들이 아스라이 보였다. 감기약 때문에 몽롱한 나의 상태 때문에 더 사진처럼 보였다. 눈으로 사진 같은 풍경을 한 번 담고 놀이터를 지나쳤다. 여긴 동해에 물려 있어서 그런지 저온 현상 때문에 그렇게 덥지 않다. 겉옷을 입고 걸어 다니기 좋은 날이다.


며칠 전에는 라디오에서 어린이들의 봄 소풍 소식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같은 날은 봄 소풍 가기 좋은 날이다. 학교에 다 같이 모여 소풍 장소까지 걸어간다. 걸어가는 그동안이 얼마나 즐거운가. 봄소풍은 가기 전날이 즐겁고, 갔다 와서 또 즐겁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그렇다. 봄소풍을 갔다 온 날 저녁에는 김밥도 아직 있고 전날 받은 용돈이 남아서 마음 한쪽이 풍족했다. 친구들은 계속 놀자고 하고 소풍을 끝내고 집으로 일찍 들어와서 봄이불에 몸을 비비는 그 느낌이 좋아서 나가기 싫지만 친구들과 놀고 싶고. 햇살이 바싹해지는 오늘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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