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만남을 합성해봄 ㅋㅋ



무라카미 라디오 43회에서는 패티 스미스의 노래도 하루키가 들려준다. 제목은 ‘Rock N Roll N Nigger’이다. 최근 애플뮤직에서 이 노래는 삭제가 되었다고 한다. 바로 제목의 니거와 내용 때문이다.


패티 스미스는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아무리 봐도 할머니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패티 스미스가 부른 노래가 나이를 먹지 않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무대 위 광기 어린 퍼포먼스,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글이 나이를 전혀 먹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언더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밴드들이 자유를 갈망하고 울부짖으며 공연을 하고 몸부림을 보여주는데 패티 스미스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건 어떻게 생각을 해도 몹시 신기한 일이다. 패티 스미스가 멋있다는 말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면 스타일이 확고하다는 것이다. 그 확고함이 독보적이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패티 스미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찌리릿 정신적 영향을 줘버린다. 어어? 하는 와중에 그녀의 노래와 몸짓 그리고 글에 빠져들고 만다. 만약 28살에 요절한 제니스 조플린이 살아 있었다면 우리는, 전 세계는 패티 스미스와 함께 나란히 덱체어 같은 곳에 앉아서 지는 노을을 보며 독한 위스키를 홀짝이며 독창적인 그녀들의 목소리로 예전에 라떼는 말이야, 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봤을지도 모른다.


제니스 조플린이 살아 있었다면 지구의 반은 이쪽에서 조플린의 주렁주렁 쇠 갈리는 목소리의 공연을 미친 듯이 볼 것이고, 또 다른 지구의 반은 하얗게 변한 길고 긴 머리를 늘어트린 패티 스미스의 흐느적 몸짓과 상대방을 일갈하는 듯한 표정의 공연을 볼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그랬으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하루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루키는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패티 스미스와 만나서 식사를 한 일화를 소개했다. 하루키는 참 유명한 사람을 많이도 만나고 다닌다. 약속을 정해서 만나는 일도 많지만 어딘가 클럽에 갔더니 그녀가 노래를 하고 있었다던가, 옆 자리에 앉아 있던 그 사람이? 라든가,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에세이에서 말하고 있다.

[다음은 패티 스미스의 '록 앤 록 니거'를 부릅니다. 제목이 엄청나죠? 저는 한 번 패티 스미스 씨와 베를린에서 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 노래 '록 앤 롤 니거' 이야기가 나와서 "어,,, 제목이나 내용이라든지 문제가 되지 않았나요?”라고 물어봤습니다. “물론이에요”라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많은 방송사에서 방송금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무대 위에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역시 펑크의 여왕 패티 스미스 멋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클럽에서 이 '록 엔 롤 니거'를 부르고 있는데 맨 앞자리에 흑인 아저씨가 앉아서 얼굴을 몹시 찡그리고 인상을 쓰며 그녀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누구일까?’ 하고 자세히 보니 바로 제임스 브라운이었다고 해요.

“그때는 정말 깜짝 놀랐네”라는 거였어요. 패티 스미스도 제임스 브라운 앞에서는 쫄아버리는구나. “그렇죠, 제임스 브라운이잖아요.” 스미스 씨의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어서 소개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많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들어주세요. ‘Rock N Roll N Nigger’] 라며 그녀의 노래를 튼다.


이 노래 제목의 니거가 흑인을 비하하는 깜둥이라는 말이다. 쪽발이나 조센진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 애플 뮤직에서 삭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패티 스미스는 배위의 반어를 통해 하고픈 말을 한다고 본다. 한 블로그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좋은 글을 발견했다. 주인장은 몹시 글을 잘 쓰는데 블로그에 대한 어떤 수식도 없다. 그저 자유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그런 블로그인데 링크를 걸어 둔다. 그 블로그에 이 부분에 대한 글이 있다. https://blog.naver.com/nh5584/222936228025[최근 지워진 노래의 가사는 그런 “깜둥이”를 말 그대로 백인 여성이 노래 부르고 있을 뿐 흑인의 인권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노래다. 잭슨 플록도 니그로, 너네도 니그로, 추방되고 기쁨을 잃은 우린 니그로, 일본인에게 너네도 죠센징이다라고 소리 지르는 일본인이라고 생각해보자. 뭐가 잘못되었나? 패티 스미스는 그런 쓰레기를 지칭하는 단어들을 전복하여 이용하고 있다. 패티 스미스는 단어의 천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누가 그녀의 노래를 인종차별적이라고 짓밟는가. 심지어 시대착오적이지 않다. 시대착오적인 건 그 말을 입에 담고 있는 사실밖에 없다. 진정 니그로라는 표현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은 니그로들이다]


제임스 브라운은 흑인 소울의 대부라고 불리는데 제임스 브라운도 죽은 지가 꽤 되었다. 성룡의 영화에도 나올 정도로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던 사람이었다. 노래는 들어보면 대부분 아? 할 정도로 많은 노래를 불렀다.


패티 스미스는 펑크 록의 대부, 대모로 불리고 있다. 패티 스미스 하면 빠지지 않는 인물이 바로 로버트 메이플소프(이하 메플소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로버트 메플소프는 사진작가이다. 사진을 좋아했던 나는 한때 메플소프의 사진에 빠져서 그의 광기에 먹혀 버리지나 않을까 싶을 적이 있었다. 메플소프의 사진을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 이걸 예술이라고 해야 할지 포르노라고 해야 할지 어렵고 애매하다. 그의 사진은 미국에서 조차 논란이 끊임없이 되고 있다.


메플소프의 꽃 사진 시리즈 역시 감각적이며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빠져나오기 싫다. 1분 이상 보고 있으면 사진 속의 꽃이 움직일 것만 같고 스멀스멀하더니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과도 다르고, 아라키 노부요시의 피 같은 꽃 사진과도 다르다.


메플소프와 패티 스미스의 이야기는 패티 스미스가 책으로 젊은 날의 모습을 쓴 ‘저스트 키즈’가 있다. 두 사람의 세계는 일반인들이 들여다볼 수 없는 광기와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 세계는 넓은 것 같으면서도 협소하고 그러면서 깊고 우울하지만 새롭고 반짝인다.

이 두 사람의 모습만 봐도 너무나 위안이 된다. 6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은 한없이 부럽다. 그들은 자유롭고, 자유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대로 해버렸다. 팔을 벌려, 하는 모든 것이 시작이 되었으며 부르는 노래는 시가 되어 하늘에 한 글자 한 글자 아로새겼다. 미지근하지 않았다. 뜨겁게 타오르면서 차가운 온도를 유지한다.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그 힘은 바로 상상력과 환상 그리고 사랑을 벌리고 나오는 사랑 그것이었다.


록의 대모이지만 시인이었던 패티 스미스는 메플소프를 떠올리며 시를 써주고, 메플소프는 앨범 커버 사진을 촬영해 주었다. 두 사람은 가난했지만 그들의 야망과 꿈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바로 60년대의 청춘을 힘 있게 보내고 있었다.


[어떤 날은 미술관에 갔다. 티켓 한 장밖에 살 돈이 없었던 우리는 한 명만 들어가 전시를 보고 나와 어땠는지 이야기해주곤 했다. 어페이스트사이드로 자리를 옮긴 새 휘트니 미술관에 간 날은 내가 들어갈 차례였다. 미안해하며 들어가서 전시를 봤지만, 지금 내 기억 속에는 그날 미술관 건물의 거대한 창 너머로 건너편 주차 미터기에 기대 담배를 피우던 로버트의 모습밖에 남아 있지 않다. 전시를 보고 나와 전철역으로 걸어가던 길에 로버트는 나에게 말했다. “언젠가 우리가 함께 저 미술관에 들어가는 날, 그날은 우리 작품이 전시되어 있을 거야.”] - 저스트 키즈 중에서


황망하게도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눈물이 주룩 흐르고 있었다. 60년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울부짖고 분노하고 기뻐하며 사랑하며 다 태운 에너지의 그을음으로 2000년대까지 살다가 그 그을음이 다 했을 무렵 코로나 직전에 눈을 감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두 사람을 보면 앤디 워홀과 그의 뮤즈 에디 세즈윅도 떠오른다. 앤디 워홀을 너무나 동경했던 메플소프. 하지만 앤디 워홀의 예술을 전혀 이해하지 않는 패티 스미스. 예술은 혼돈이며 비규정적이다. 이는 인간과 흡사하다. 영화 ‘팩토리 걸’에서 시에나 밀러는 그야말로 에디 세즈윅이었다.


패티 스미스는 글도 무척 잘 쓴다. 그녀의 문학적 상상력은 미시마 유키오, 앙드레 지드, 장 주네의 작품들을 읽으며 키웠다. 패티 스미스는 다른 예술가들처럼 그 흔한 약에 손을 댔을 것 같지만 전혀 약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점이 지금까지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책을 쓰고 예술을 할 수 있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패티 스미스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존나 멋지다. 그녀는 노래를 부른다. 그녀는 록을 한다. 그녀의 노래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것뿐이다.


Patti Smith의 Rock 'n' Roll Nigger를 들어보자. 물론 라이브. 1979년.https://youtu.be/LNnC8hYOmlw


2009. 지산록페에 와서 환하게 한국 팬들에게 인사를 했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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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tfm.co.jp/murakamiradio/index_20221030.html


43회는 지난달 30일 저녁 7시부터 한 시간 가량 진행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무라카미 라디오 방송을 해서 43회를 맞이했네요.


무라카미 라디오 방송은 중국 유튜브라고 불리는 빌리빌리로 듣고 있습니다. 유튜브로는 모든 방송을 들을 수 없는데 빌리빌리는 모든 방송을 들을 수 있어서 종종, 아니 거의 매일 한두 시간씩 듣습니다.


도쿄 에프엠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일러스트도 매 회에 맞게 올라와서 보는 재미가 좋습니다. 43회에 네코야마상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는 일러가 보이죠. 야구광으로 알려진 하루키가 43회 방송 초반에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뛰고 있는 무라카미 무네타카 선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무라카미 무네타카 군이 왕(정치) 씨를 넘는 56개의 홈런을 쳐서 매우 경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근데 사실 저는 올해 몇 번이나 진구구장에 다니면서도 무라카미 군의 홈런을 치는 광경은 어쩐일인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운이 나빴던 걸까요?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구장에 갈 때 늘, 언제나, 대체로 글러브를 딱 가지고 갑니다만. 언젠가 라이트 스탠드에서 무라카미 군의 홈런볼을 가지고 싶습니다"라고 시작을 합니다.


무라카미 무네타카는 우리나라 스포츠 신문에도 크게 보도된 일본의 괴물신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야구팬들에게는 좋은 소식이죠. 일본에서는 왕정치를 제치고 일본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새롭게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인은 빅리그로 진출하고 싶어 하네요. 무라카미 무네타카는 2000년 생입니다.


하루키는 43회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집에서 꽁꽁 들고 온 자신의 음반을 들려줍니다. 이번 회에서는 꽤 많은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다른 회보다 더 좋은 것 같네요. 특히 제가 여기저기에 몇 번 글을 적었던 다이애나 크롤의 노래도 있고, 패티 스미스의 노래도 있습니다.


처음에 들려주는 음악은 뉴 올리언즈 출신의 전설적인 세션이자 피아니스트 앨런 투세인트의 I WAVE BYE BYE입니다. 너무 좋아요. 정말 이 늦가을에 어울리는 곡이 아닙니까. 듣고 있으면 강물 위를 스치듯 날아가는 물수제비가 되는 것만 같습니다.


무엇보다 다이애나 크롤이 부르는 다이애나 버전의 캘리포니아 드림이 정말 좋습니다. 다이애나 크롤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완벽한 여성이라면 바로 다애이나 크롤을 말하지 않나. 키도 크고, 늘씬한 데다, 예쁘기까지 한 이 어려운 길을 한 번에 가고 있으니, 거기에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재즈를 불러재끼니 이건 뭐.


그 어떤 노래도 다이애나 크롤을 거치면 크롤화가 되어 버립니다. 캘리포니아 드림이 이렇게 탄생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다이애나 크롤의 남편은 엘비스 코스텔로입니다. 영화 노팅힐의 쉬~~~ 의 그.


엘비스 코스텔로가 지금은 할아버지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젊은 시절의 엘비스 코스텔로를 보면 우리나라 윤상이나 그 짝의 가수들이 엘비스 코스텔로를 많이 따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멋있네요.


링크가 되면 다이애나 크롤의 이 허스키함의 라이브 버전을 걸어두고 싶은데 아쉽네요 [라고 인스타그램에는 썼지만 여기서는 링크를 걸어 둘 수 있어서 아주 좋네요]. 무라카미 라디오의 백미는 아무래도 청취자들의 사연을 듣고 답해주는 것인데요. 차차 올려보겠습니다. 아주 재미있어요.


이 가을에 빠져들게 하는 목소리를 가진 다이애나 크롤의 캘리포니아 드리민

https://youtu.be/0U8XWyHaGkI <=출처: R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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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시절 어린이라는 행복의 뒤에 숨어 버리고 나면 가난이라는 것을 모른다. 겨울의 일요일 아침이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불을 걷으며 우리를 깨우면 우리는 그대로 이불에서 빠져나와 밥상에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된장국에 두부는 일요일 아침에 우리 가족을 모으는 단단한 음식이었다.


틀어놓은 티브이에서는 기억나지 않는 일요일 아침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는데 아마도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만화나 인형이 나오는. 엄마는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동생의 입에 넣었다. 동생은 티브이에 시선을 빼앗겨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된장국에 밥을 말아서 숟가락 위에 올리고 그 위에 두부를 잘라 올려서 먹는 맛이 좋았다.


창문은 월동준비로 단단하게 찬바람을 막고 있었고 창을 투과한 것은 오로지 따뜻한 겨울의 빛이었다. 그 빛이 밥상을 둘러싼 우리 가족에게 내려앉았다. 추운 겨울이지만 그건 티브이 속 뉴스에서나 하는 말이거나 집 밖의 이야기였다.


특별할 것도 없는 아침식사 시간은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게 가졌다. 뜨거운 된장국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천장까지 닿지는 않았지만 그 분위기가 좋았다. 창으로는 겨울의 햇빛이, 된장국에서는 김이 따뜻한 겨울을 말해 주었다. 주인집에서 귤을 한 봉지 가져다주었다.


이 맛있는 냄새는?


된장국인데 좀 떠 드릴까요?


아이구 좋지, 된장국 냄새가 좋네.


주인집 아주머니는 여고에서 매점을 운영했다. 그래서 놀러 가면 매점 안에서 보는 여고생들, 누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 우르르 나와서 맛있는 과자와 음료를 놓고 이야기하는 그 모습은 언제나 좋다. 주인집 아주머니에게는 딸이 있었고 그 딸이 그 여고에 다니고 있어서 우리를 왕왕 데리고 다녔다.


조깅을 하면서 그 동네에 가보니 동네 자체가 싹 없어졌다. 너른 들판처럼 바뀌고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그래도 몇 해 전까지 조깅을 하면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해 가끔 그 동네를 거쳐 오면서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 골목길, 그 동네의 풍경들.


그리고 서서히 동네에서 사람들이 빠지는 모습을 지켜봤고 허물어지고 완벽하게 없어진 모습까지 봤다. 한 동네의 역사가 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나에게는 추억이 종합 선물세트만큼 많은 동네라서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타까운 것만은 아니다. 제대로 보존이 되지 않는 오래된 것들은 전통보다는 나쁜 관습 같은 것이라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 것이 낫다고 본다.


된장국과 두부는 지금도 늘 먹고 있고 늘 먹을 때마다 맛있다. 하지만 맛은 추억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때의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그때는 어린이였고 가족이 한 밥상에 둘러앉아 있었으니까.


한 가족이 밥상에서 모두 모여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몇 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후에야 알았다. 된장국과 두부는 참 맛있는데 이렇게 맛있고 간단한 음식은 얼마나 더 먹을 수 있을까.

친구가 살던 집인데 우리는 옥상에서 옥상을 목숨을 걸고 건너 다녔다. 그 친구는 쌍둥이 아빠가 되었다.


양팔을 벌리면 마치 닿을 듯한 좁은 골목길


바로 위 사진의 다른 버전


달동네의 모습이다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동네


서서히 철거가 되기 시작하고


동네 점빵이었는데 철거 때문에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저기 보이는 아파트들이 밀려온다


위의 모든 골목이 올해 들어 이렇게 변했다


그리고 마을에 사람들이 싹 빠져나간 여름의 어느 날, 온도가 거의 32, 3도를 육박하는 날에 조카와 옛날에 살던 집을 찾았다.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마귀 숲 같은 느낌 ㅋㅋ


귀신 숲 같은 옛날 집에서 빛이 조카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사람이 빠져나간 자리의 주인은 녹색의 풀과 나무가 사람의 자리를 대신한다


저 사진이 너무 좋아서 흑백으로 출력해서 컴퓨터에 부착



오늘의 선곡은 뉴 올리언즈 출신의 전설적인 세션, 피아니스트 앨런 투세인트의 I WAVE BYE BYE https://youtu.be/HAGySWhFOjg  <= 앨런 투세인트 - 주제


음악이 정말 너무 좋아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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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으면 주인공은 이쪽에 있는 현실 세계와 저쪽에 있는 정신세계의 끝에서 동시에 살아간다. 이쪽 세계에서 죽더라도 저쪽 세계에서는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 즉 같은 공간에 동시 존재하기에 두 세계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 때문에 같이 존재하는 동시에 다르게 존재한다.


동시 존재의 이 세계관은 이창동 감독이 하루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버닝'에도 잘 나온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벤이 그런 말을 한다. 여기에도 존재하고 동시에 거기에도 존재한다고. 또 스팅의 symphonicities 앨범에도 그 세계관을 나타냈다.


시간의 상대성, 이는 요즘 역주행 중인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과도 흡사하다.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의 한 부분이다. 블랙홀이 천체를 집어삼키는 과정에서 강한 중력에 의해서 별들의 입자를 쪼개버린다. 그것들이 빛의 속도에 가깝게 블랙홀에 다가오는데, 별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열을 방출하면서 빛나게 된다. 이 빛은 별들의 삶에 있어서 마지막 빛인데 이걸 강착 원반이라고 한다.


과커 엑소에 따르면 블랙홀이 만들어지면 블랙홀 근처로 가면 갈수록 중력이 점점 세진다. 근데 이 세지는 정도가 빛조차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 지점부터 안쪽까지는 블랙홀이고 그 경계가 ‘사건의 지평선‘라고 한다. 빛이 사건의 지평선 바로 앞에 있으면 탈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경계에 닿는 순간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다. 그 경계의 내부와 외부의 일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 무슨 사건이 일어나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건의 지평선이라 부른다.


블랙홀에 빠져 들어간다는 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중력이 굉장히 큰 천체에 가는 것이다. 근데 여기서 보는 관측자 입장에서 보면 블랙홀에 빠져드는 사람을 본다면 중력이 점점 강해지는 곳으로 가기 때문에 시간이 굉장히 느리게 흐른다. 지구에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사람을 본다면 사건의 지평선에 닿기 직전에는 아예 그 사람의 시간에 멈춘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백 년, 천년을 여기서 블랙홀에 빠져드는 사람을 관측한다고 해도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그 사람은 이미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갔는데도 시간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관측자는 그 사람이 멈춘 것처럼 계속 보인다.


바꿔 말하면 블랙홀에 들어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시간이 상대적이니까 사건의 지평선을 등지고 주변의 우주를 보면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흐른다. 우주의 역사를 블랙홀에 빠지면서 다 보게 될 만큼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그런데 이런 우주의 사건의 지평선에 관한 내용을 윤하가 사랑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었다. 뮤비를 보면 위에서 말한 블랙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가사에 ‘저기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빛, 한동안은 꺼내 볼 수 있을 거야,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조금씩 옅어져 가더라도, 너와 내 맘에 살아 숨 쉴 테니,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별들의 마지막 삶에서 강착 원반처럼 서로 부딪혀 열을 방출하면서 사라지듯이 두 사람의 사랑도 사건의 지평선에 닿아 하얀빛이 되어 쪼개져 옅어진다. 그리고 윤하는 블랙홀에 뛰어들어 사건의 지평선을 등지고 지구의 남자를 바라보며 미련 없이 잊는다. 남자는 한순간에 시간 속으로 빛이 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남자는 지구에서 사건의 지평선에 빠지는 윤하를 본다. 상대성 시간이기 때문에 남자의 눈에는 블랙홀에 빠져 버린 윤하가 그대로 멈춰 버린 것처럼 보인다. 사건의 지평선에서는 상대적인 시간 때문에, 남자는 미련 때문에 끝까지 윤하가 블랙홀에 빠지는 건 보지 못한다. 잊지 못하는 것이다.


윤하는 어떻게 이렇게 천재적으로 블랙홀인 사건의 지평선을 사랑에 담아서 노래로 만들었을까. 무엇보다 가사에 그 흔한 영어 한 마디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록이다. 드럼의 소리가 정말 좋다. 거기에 윤하의 현란한 피아노 연주가 곁들여진다. '혜성'부터 '별의 조각' 등 우주에 관한 노래들이 많은데 전부 천체물리학을 깊게 파고들어 노래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노래가 너무 좋아. 이 미친 만렙의 천재력인 무엇.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역시 시간의 상대성 때문에 같은 공간에 있지만 두 세계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그림자를 버리고 마음을 잃고 불멸하며 살아가는 세계의 끝에서의 시간은 현실을 살아가는 시간과는 다르다. 동시 존재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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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뮤비를 함 볼까.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https://youtu.be/BBdC1rl5sKY 영상출처: YOUNHA 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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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과자를 먹었다. 누가 사주었다. 호두과자를 살면서 10번도 먹어보지 못했다. 호두과자는 보통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 번 사 먹는 것으로만 먹었지 새우깡처럼 편의점에서 호두과자를 먹기 위해서 선택을 하는 경우는 잘 없다.


어릴 때는 호두 맛 나는 아이스크림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 제일 살이 많이 찐 것 같다. 그리고 가장 행복했었다고 내 기억은 말하고 있다. 아버지와 목욕탕을 갔다가 와서 아버지가 호두 맛 아이스크림을 사 주면 우리는 방 안에서 냠냠 맛있게도 먹었다.


장면은 다르지만 응답하라 1988에서 아버지 마중을 나갔던 노을이는 다 계획이 있었던 거였다. 덕선이가 그 모습을 보고 나도!라고 하니 아버지가 덕선이 손에 쥐어준 호두 맛 아이스크림.


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은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라며 목욕탕에 갔다 온 후 그렇게 먹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여름에도 목욕탕에 갔을 텐데 여름의 목욕탕은 전혀 기억이 없다. 아버지와 목욕탕 기억은 항상 겨울이다.


아주 차가운 겨울.

아주 차가운 토요일의 겨울.

아주 차가운 토요일 저녁의 겨울에 목욕탕에 갔다.

아버지와 목욕을 하고 나오면 뜨거운 얼굴에 닿는 차가운 겨울의 공기가 아주 좋았다. 입을 벌리고 후 하면 입김이 확 나가는 것도 아주 좋았다.


목욕탕에서 집까지 한 십분 정도 걸리는데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면 집까지 거리가 좀 더 멀었으면 하고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하고 강해서 그런지 요즘도 꿈에 목욕을 하고 나오면 집까지 가는 그 거리가 나온다.


작은 도로와 옆의 담 너머 학교가 있고, 학교에서 가끔 철봉을 한 번 하고 집으로 가는 과정이 꿈에 왕왕 나타난다. 꿈속에서 꿈이라는 걸 알지만 꿈이기 때문에 이건 꿈이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꿈 속이라 말은 나오지 않는다. 나는 꿈을 너무 자주 꾸고 그래서인지 낮동안 피곤하다. 보통 생활의 활력을 위해 운동을 하지만 나는 모든 생활의 활력을 끌어 모아 저녁에 조깅을 미친 듯이 한다. 그리고 밤에 누우면 바로 잠이 들지만 꿈을 꾸고 두세 번 깬다. 피곤의 연속인 것이다.


목욕을 하고 집으로 올 때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호두 맛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다. 우리는 그걸 소중한 밥그릇처럼 양반다리를 하고 다리 사이에 넣어서 숟가락으로 퍼 먹었다. 그때에도 식빵에 넣어서 접어 먹었는데 그렇게 먹으면 살이 찐다는 걸 일찍 알았다.


그러다가 진짜 호두과자를 먹었는데 그게 고속도로 휴게소였다. 맛있었다. 그러나 자주 사 먹는다거나 한 번에 한 봉지를 다 먹게 되지는 않는다. 일단 나의 문화권 안에, 내가 움직이는 활동반경 내에 호두과자를 파는 곳도 없고, 호두과자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먹다 보면 텁텁하다.


그래서 많이 먹으면 세네 개 정도 먹고는 그만둔다. 오늘처럼 이렇게 누가 사주면 맛있게 먹지만 역시 한 번에 다 먹지는 못한다. 호두과자를 초콜릿에 찍어 먹으니 훨씬 맛있었다. 호두과자 하면 자연스럽게 호두까기 인형이 떠올라야 하지만 나는 낙서가 떠오른다.


그래, 벽에 칠한 낙서 말이다. 지금은 없어진 골목인데 자주 다녔던 골목에 누군가 ‘호두’라고 낙서를 했다. 어째서 하고많은 낙서 중에 호두였을까. 아마 자신의 별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별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호두는 뭔가 작고 귀엽고 힘없음을 나타내는 말일지도 모른다.


친구들이 그 별명으로 부르면 싫었지만 학교에서 또는 회사에서 왕따라 덤빌 수도 욕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그 전날 꿈을 꾸었다. 잠을 자는데 호두 병정들이 떼로 몰려와서 밧줄로 자신을 꽁꽁 묶은 다음 호두에게 심문을 받았다. 마구 때리고 꼬집고 할퀴었다. 그런데 그 호두를 보니 자신을 닮은 것이다. 아악 하며 발악을 하다가 꿈에서 깨어난 것이다. 그래서 라커를 들고 분출하고픈 욕망 ‘호두’를 휘갈겨 낙서를 한 것이다. 그랬던 것이다.

호두가 많아서 며칠 먹었다. 몇 개는 초콜릿에 찍어 먹고, 몇 개는 동그랑땡과 같이 먹고, 몇 개는 와인에 곁들이고. 몇 개는 라면에 넣어서 먹었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그렇게 며칠 동안 나눠 먹었다. 냠냠.

오늘은 호두과자와 잘 어울리는 라고 우겨보는 델로니어스 몽크의 라운드 미드나잇 https://youtu.be/6uEkUBMH0oE 출처: An die Mu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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