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번에는 카세트를 바꾸었다. 림프 비즈킷이다. 테이크 룩 어라운드가 나온다. 강렬하고 또 강렬한 록 음악이다. 도로 위에서 가끔 이런 노래가 어울리기도 한다. 이 곡은 영화 미션임파서블의 주제곡이기도 하다. 미션임파서블 3편을 보면 애단 헌트는 에클린과 함께 요원들 모두가 반대했던 바티칸으로 들어가기 위해 작전을 수행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DHL 택배 회사의 트럭이 고장 난 것처럼 길을 막고 그 틈을 타 담벼락을 타고 바티칸으로 침투한다. 영화에서 길을 막아선 트럭을 향해 뒤에 멈춰 선 차들이 경적을 울리고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되려 에클린이 차가 고장이 난 것이지! 내가 고장을 낸 거이냐! 차가 이런 것이 내 탓이야? 라며 오히려 소리친다. 이런 부분을 보면 그 나라의 국민성이나 도민성 같은 것을 엿볼 수 있다. 하루키의 에세이 ‘먼 북소리’에도 잘 나와 있다. 먼 북소리는 다른 하루키의 에세이에 비해 진중하다. 단추 한두 개를 풀어놓고 볕 좋은 곳에 덱체어를 깔고 누워 미소를 지어가며 읽는 다른 에세이와는 조금 다르다.       

        

 그건 아마도 하루키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노르웨이 숲’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하루키식, 하루키 만의 소설인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집필하기 위해 좁고 외로운 크레타섬, 더 안으로 기어 들어가 오들오들 떨며 집필하면서 겪은 느낌을 적은 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로마 사람들의, 일종의 천부적인 느긋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재미있다. 요컨대 호텔에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도 세월아 네월아 한다든가, 우체국에서 우편 한 번 받아보려면 이러쿵저러쿵하는 일이나 로마의 빽빽한 주차 공간에 차를 밀어 넣으며 앞뒤로 차를 쿵쿵 박아도 자동차의 범퍼는 이러려고 있는 거지, 하며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화들 말이다. 그리고 한 여성이 낑낑거리며 복잡한 주차 공간에 차를 밀어 넣으면 주위에서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휘파람을 불며 환호하고 박수를 보낸다.               


 로마 사람들의 천부적인 느긋함은 로마에 여행을 온 타국 사람들을 당황케 하기도 하고 꽤 흥미로운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도로 한복판에서 자동차가 퍼져도 그건 운전자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아주 당당하다. 곧 수리하는 정비차가 올 것이다, 그러니 나의 잘못이 아니니 돌아가든지 기다리든지, 여기서 말하는 ‘곧’은 몇 분 일지 몇 시간 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하루키가 80년대의 로마의 모습을 에세이에 적은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국민성이나 도민성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미션 임파서블 3편을 봐도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각 나라의 국민이 가지고 있는 국민성이나 살고 있는 지역의 도민성은 유전자처럼 사람들의 세포에 들러붙어 끈질기게 이어져 내려온다. 영화에서도 로마인이 가진 느긋함 덕분에 애단과 에클린은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트럭이 아니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은 어떨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로에 가장 많이 다니는 차가 트럭이었다. 포터가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반대편 차로에서 오는 차들 사이사이에 빠지지 않고 돌진해 오는 포터는 끊이지 않았다. 트럭의 용량 때문에 크고 작은, 차종은 다양하지만 아주 큰 트럭을 제외하고 통틀어 포터라고 단연 도로에 포터가 가장 많았다.               

 도로 위를 용감하게 달리는 포터를 보는 재미가 있다. 포터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형태가 있지만 실은 다양하다. 한 해에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가 포터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택배 회사의 포터뿐 아니라 식재료를 싣거나 편의점에 식품을 넣는 차 역시 포터다. 공기구를 싣고 다니며 관급공사 현장을 오고 가는 차도 포터이며 소를 싣고 다니는 차 역시 포터다.             

  

 승용차는 사람만 실어 나르지만 포터는 실로 다양한 것들을 실어 나른다. 도로에 끊이지 않고 크고 작은 포터가 다니는데 휴일에는 그 숫자가 줄어든다. 그러니 포터가 많이 보이면 이 사회의 경제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포터가 가장 많이 팔린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구조가 빈익빈 부익부가 분명해지면서 그럴수록 포터는 더 많이 도로에 보이게 된다. 자가용보다 인기가 더 할 것 같은 포터는 가장 인기가 많은 차이며 포터가 인기가 많을수록 어쩐지 손뼉을 칠 수만은 없다.      

         

 요즘의 포터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예전의 포터는 후진하면 ‘엘리제를 위하여’가 흘러나왔다. 베토벤의 바가텔 A단조인 이 곡은 일명 ‘엘리제를 위하여’로 알려졌고 포터가 후진하면 가장 유명한 부분인 라라라 라라 라라라 하는 음이 나왔다. 포터 열 대가 한 번에 후진을 죽 하면 ‘엘리제를 위하여’가 단체로 나올 것이다. 멋있을 것 같다. 포터들이 달리 보일 것이다. 엘리제를 위하여, 을 집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면 아주 좋은 곡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포터는 참으로 우아한 자동차일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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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호에 늘 걸리지만 출근길은 언제나 한가하다. 대부분이 출근하는 시간이 지난 후에 출근하기 때문이다. 이제 앞으로 죽 뻗은 1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달리면 된다. 이 도로는 양옆으로 벚나무가 심겨 있어서 봄이 되면 도로가 아름답게 변한다. 경남지역이라 이른 벚꽃이 피었다가 빨리 진다. 4월이 오기 전에 바람이 불어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을 매년 본다.    

      

 도로를 벚꽃이 수놓는다. 언젠가 천천히 이 도로를 걸으며 봄날을 만끽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봄을 좋아한다. 겨울의 두꺼운 옷을 벗어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겨울옷 안으로 꽁꽁 숨겨 두었던 물오른 살도 드러나기에 마냥 봄이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양가감정을 느끼는 계절이다.       

   

 봄은 생동하는 계절이라지만 나는 봄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사계절이 뚜렷해서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좋다고들 한다. 정수라의 노래 중에서도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라는 가사도 있다. 사계절이 있어서 우리는 복 받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말을 사람들은 왕왕한다.          


 하지만 나는 늘 이런 사계절이 있어서 정말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정확하게는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진정 복 받은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을 가진다. 사계절이 뚜렷하면 정말 살기 좋은 나라가 맞는 것일까.          


 나는 여름이 아주 좋다. 그래서 여름만 일 년 내내 있는 나라가 부럽다. 반바지 하나만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춥다고 난리 떨면서 패딩을 꺼내서 입을 필요도 없다. 여름에는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간다. 겨울에는 추운 곳은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떨어진다. 이렇게 기온 차가 심하게 나는 곳이 과연 살기가 좋은 곳일까.          

 겨울에 한파만 오면 얼어 죽는 사람이 생겨난다. 여름에 폭염에도 사람이 죽는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추워서, 더워서 죽는 사람이 매년 생기고 증가한다니 그건 어떻게 봐도 이상하다.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파가 오니 주의하세요,라는 뉴스가 뜨면 공무원들부터 잠도 자지 못하는 비상근무다.      

    

 도시에 눈이 쌓이면 심각한 상황이 된다. 교통난에, 자동차 사고에, 동파에, 낙성 사고까지, 겨울이니까 두꺼운 옷을 꺼내 입어야 한다. 도대체 옷장에 옷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작년까지 잘 입던, 그 비싸게 주고 산 롱패딩은 유행이 지나서 숏패딩을 사달라고 자식들은 조른다. 난방을 해야 하지만 가스비와 전기세는 지속적으로 오를 뿐이다. 전기가 한전에서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지만, 한전은 대기업이나 개개인이나 중소기업에서 만든 전기를 사들여 공급한다. 오래전에 국가에서 바카라 원전에 투자했는데 그때 한전이 중간에서 보증을 서서 조 단위를 돈을 빌렸다. 그 돈을 현재 달라고 한다. 하지만 국가의 수장은 여러 번 바뀌었고 한전은 돈이 없다. 그러다 보면 전기세를 올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안 되면 검은 머리 외국인이 들어와서 한전을 나누어서 민영화를 시킨다. 미국화되는 것이다. 민영화가 되어서 여러 개로 전기회사 쪼개지면 어느 시간대 전기가 가격이 싼 회사 전기를 알아봐야 하는 수고를 겪게 된다. 그러다 보면 중간에 전기회사를 선택해 주는 또 다른 회사가 생겨난다. 정전되면 지금처럼 빠르고 편리하게 대처하지는 않는다. 하루 이틀 걸린다는 말을 듣는 게 당연시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옛날처럼 혹독한 추위가 몰아쳐도 영차영차 하며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게 되어 간다.          


 여름에는 장마 기간에 늘 흘러넘치는 하수구는 어김없이 그 자리에 또 흘러넘친다. 온열질환 역시 매년 속출한다. 그렇다고 은행이나 건물을 예전처럼 아주 시원하게 해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전기세 폭탄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폭우에 시장 상인들이 전부 물 폭탄을 맞아서 모든 것이 다 떠내려가고 잠기기라도 하면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 깜깜하기만 하다.      

    

 마찬가지로 겨울의 폭설에 불이라도 전통시장에 나서 전부 홀라당 타버리고 나면 어디에서 손을 대야 하는지 너무나 깜깜하다. 그곳에서 지내던 사람들은 추운 곳에 그저 내몰리게 된다. 추위 때문에 얼굴이 벌겋게 된 상태로 한없이 기다리고만 있어야 한다. 손과 발이 얼마나 시리고 추울까. 여름에도 물 폭탄으로 모든 것이 떠내려간 사람들은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잠들어야 한다. 거기에 사람들은 전통시장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동정 어린 시선보다 오히려 잘 됐다고 비난한다.     

     

 하나의 계절만 있다면 열심히 그 계절에만 맞는 피해복구를 하고 경계하고 재발 방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겨울에 살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겨울에는 크리스마스와 눈이 있어서 낭만적이라고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크리스마스 같지 않기만 하다. 초등학생 때에는 학교에 가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잔뜩 느끼며 좋았다.          


 교실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몄다. 초등학생 때에는 학교에 가면 재미있었고 좋았는데 요즘은 학교도 전부 힘들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얼마 없어서 기본적으로 우울하고 춥다. 게다가 교사와 학생들의 경계가 허물어져서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부터 여름만 있는 나라에 가서 살고 싶었다. 더운 건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추운 건 참을 수가 없다. 추운 건 너무 싫다. 지금까지 여름에 더우면 더울수록 밖에서 조깅을 하면서 땀을 있는 대로 흘린다. 그러면서 태양의 빛을 받는다. 그러고 나서 샤워하고 나면 어지간한 더위는 그렇게 덥게 느껴지지 않는다. 에어컨 바람보다 선풍기 바람만으로도 여름을 보내고 있다. 천재적인 미친 박사가 나타나서 “나는 기후를 바꾸는 연구를 하고 있어! 이제 막바지에 와서 우리나라 사계절을 없애고 여름만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라고 선언한다면 나는 대환영이다.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한 표 찍어 주겠다. 사람들에게 혼나겠지만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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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출발하고 두 번째 신호에 섰다. 그 근처에는 강아지를 치료해 주던 동물병원이 있다. 내가 키웠던 강아지를 그 동물병원에서 치료했다. 나이가 들고 병이 깊어 얼마 전에 죽고 말았다.

개와 인간의 관계는 무엇일까. 왜 하필 개라는 동물일까. 돼지도 아니고, 표범도 아니고, 토끼도 아니고 어째서 개일까. 개는 어쩌다가 인간화되어서 인간의 곁으로 왔을까. 인간과 개의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만큼 복잡하다. 어쩌면 인간의 관계보다 더 복잡할지도 모른다. 유순한 눈동자로 24시간 내내 주인만 바라보는 개에게 이만큼의 사랑을 줬으니 오늘은 됐다고 할 수도 없다. 개는 그런 존재다.

인간처럼 배신하지 않는다. 인간처럼 요만큼 여지를 두고 상대방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주인에게 한 번 준 사랑을 배신하지 않는다. 개는 그렇다. 개는 하루 종일 혼자 있으면서도 주인을 보는 그 순간을 위해 혼자인 시간을 차고 견뎌낸다. 이걸 설명할 수 있을까. 개는 주인과 함께 목줄을 걸고 산책하는 순간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가진다. 명품을 바라지도 않는다. 여행을 가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인만 있으면 된다.

나이가 들어도 마냥 아이 같기만 하다. 늘 주인을 찾고 아침에 눈 뜨면 주인의 얼굴을 핥고 훑는다. 나이가 들어 병이 깊어 죽는 그 순간까지 개는 주인을 보며 느리지만 꼬리를 한두 번 흔들고 눈빛을 교환한 다음 죽는다. 나의 개를 데리고 마지막까지 찾았던 동물병원이 저곳에 있다. 개는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했다. 눈치는 빨라서 산책하러 가는 건지, 병원에 가는 건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언제나 나를 좋아해 주었고 늘 나의 옆에서 잠이 들었다. 그랬던 녀석이 죽었을 때 나의 내부의 어떤 부분도 같이 죽었다. 가족이 죽었을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개와 인간의 관계는 무엇일까.

신호가 바뀌었다. 벌써 십 년이나 늘 같은 시간에 같은 도로를 운전하고 있으며 언제나 비슷한 시간에 같은 신호에 걸린다. 항상 내 앞에서 신호는 바뀐다. 딱히 그게 싫은 건 아닌데 언젠가부터 맨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게 부담이 된다. 수동기어라 출발도 느리고 기어 변경도 자동기어 차만큼 빠르지 않다. 고작 1초도 안 되는 시간인데도 좀 느리다 싶으면 뒤에서 빵빵거린다.

다른 자동차들처럼 앞질러 가면 될 텐데 경종을 울리는 차들이 있다. 이해되지 않는 차가 버스다. 버스가 그러는 건 폭력이다. 시내에서 버스가 1초 정도 빨리 가기 위해서 빵빵 거리는 게 이상하다. 내가 조금만 이해타산을 따지는 사람이라면, 내가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버스를 신고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폭력이 만연하다는 것은 도로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아니 도로에서 더 잘 알 수 있다. 도로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무섭다. 인간은 언제나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폭력이 난무하는 이유가 평화를 위해서다. 폭력을 없애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을까. 가정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폭력이 흘러넘쳐 도로까지 번져 나왔다.

어쩌면 매일 비슷한 시간에 같은 도로에서 같은 신호에 걸리는 이유는 평행우주 때문이지 않을까. 평행우주에 나와 똑같은 내가 또 다른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거기서도 매일 이 같은 반복이 일어난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그곳의 세계와 이곳의 세계가 그만 겹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곳의 세계로 가고, 그곳의 내가 이곳의 세계로 와서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신호에서 비슷한 행동과 경험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르다. 어쩐지 한의원이 열어 놓은 문이 좀 달라졌다던가, 신호가 평소보다 좀 길게 느껴진다던가.

영화에서처럼 평행우주의 다른 세계가 완전히 다르지 않은 건 실체 평행우주에서는 과거로 가서 무엇을 바꾸려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타임 루프를 할 수 있는 미래에서도 그런 짓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평온하게만 보이는 태양계에서 가끔 지나가는 소행성의 충돌이나 빛의 소자가 분산되거나 해서 평행우주가 서로 겹치는 일이 발생했음에도 세계가 비슷하므로 좀 이상하다고 느낄지는 몰라도 그냥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출근길에 죽은 나의 강아지와 똑같이 생긴 강아지가 나를 따라온다면 이야기는 확실히 달라질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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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족관에는 불가사리도 한 마리 있었다. 불가사리의 종류도 수만 가지에, 모양도 천차만별이다. 불가사리는 수족관에 깔린 모래나 돌에 붙어있는 균이나 녹조류 같은 것을 먹어 치운다고 해서 입양을 했지만, 어느 순간 불가사리가 보이지 않아서 물어보니 불가사리 역시 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쪽 다리부터 점점 흐물흐물하게 녹아 없어지더니 그 형체도 없이 물에 녹아버렸다는 것이다.   

  

 안타깝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수족관 속에 있는 생명체들은 각각의 역할이 있고 그 역할에 맞게 주인은 수족관에 맞는 생명체들을 입양해 온다고 했다.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니모들의 행동을 관찰하면 아주 흥미로운 것들이 많은데, 커진 수족관에는 총 세 마리의 니모들이 있었다. 니모는 암수 구별이 없다가 후에 자신이 원하는 성별을 택하여 교배한다. 세 마리의 크기는 다 다르다.     


 가장 큰 놈, 중간 놈, 작은놈 이렇게 나뉘는데 이들의 놀이터는 그동안 수족관 속에 넣어둔 작은 커피잔이나 소품 속이다. 그런데 산호가 들어오고 나서 수족관 속 가장 큰 산호와 함께 니모들이 놀기 시작했다. 산호에서 부드러운 촉수가 나오면 니모는 그 촉수에 몸을 비비며 아아 너무 좋아, 하는 모습으로 산호 속에서 몸을 비볐다가 나왔다가 들어갔다. 재미있는 것은 큰 니모가 산호에서 몸을 비빌 때 두 마리의 니모는 절대 산호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면 나머지 두 마리는 산호를 싫어하나? 하고 생각했는데 큰 니모가 산호에서 나오면 중간 니모가 산호에 들어가서 몸을 비볐다. 그들은 서열이 확실했다. 하지만 제일 작은 니모는 절대 산호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느 날은 중간 크기의 니모 몸에 검은 반점들이 생겼다.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다. 스트레스라는 건 인간이든, 물고기든 생명이 붙어 있는 생명체에게는 전부 영향을 끼치는 모양이다. 니모들에게 먹이를 줘야 하는데 서열이 강한 니모가 밥을 다 먹어버리고 서열이 낮은 니모는 먹이를 먹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먹이를 줄 때 가장 작은 니모를 위해 손을 집어넣어 다른 물고기가 가장 작은 니모 근처에 오지 못하게 하면 중간 니모가 손을 공격했다. 이런 모습은 영화 ‘니모를 찾아서’를 봐도 나온다. 첫 부분에 어린 니모가 잡혀있을 때 아빠 니모가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 니모인가? 암튼 서열이 두 번째인 니모가 공격을 한다. 니모의 습성을 잘 관찰해서 애니메이션에 삽입했다. 중간 서열의 니모가 서열이 가장 높은 니모를 받들면서 서열이 가장 낮은 니모를 보호하는 역할까지 한다. 그러니 중간 니모가 스트레스가 심해서 몸에 검은 점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어항 속에는 두 마리의 새우도 살고 있다. 두 마리의 새우도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새우와 같다. 새우의 역할은 물고기에 붙어있는 세균들을 먹어치운다. 새우는 가만히 있는 물고기에게 다가가서 마치 어린아이가 놀이터에 앉아서 흙을 파먹는 놀이를 하듯 가늘고 긴 다리로 정교하게 물고기의 몸에 붙어있는 세균을 떼서 오물오물거리며 먹는다. 수족관 속에는 락 블레니라는 아주 못생긴 물고기도 한 마리 있다.     


락 블레니는 다른 물고기와는 다른 모습으로 헤엄을 친다. 생긴 것도 망둥어처럼 못 생겼다. 다른 물고기처럼 시종일관 떠다니지 않고 산호에 붙어있던가 바위에 안착해 있는 경우가 많다. 락 블레니는 발처럼 생긴 지느러미로 산호를 꽉 움켜쥐는 모습으로 붙어 있다. 얼굴에는 전혀 표정이라는 게 없는 문화 주인공처럼 생겼고 육상동물처럼 눈코입이 앞면에 붙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락 블레니는 어딘가에 늘 찰싹 붙어 있다. 그러면 새우가 다가간다. 새우가 자신에게 다가오면 아이 귀찮아, 오늘은 긁어낼 세균이 없는데? 하는 표정을 짓고는 새우를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그러면 새우는 어?하며 잠시 당황하더니 락 블레니가 떠난 바위를 긁는다. 그렇지만 락 블레니는 평소에 새우가 자신의 몸을 청소해 주는 걸 좋아한다. 새우에게 몸을 맡긴 다음 아, 정말 시원하구나, 하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걸 보면 참 재미있다.     


 그러던 중 새로운 가족이 한 마리 들어왔다. 복어 종류인데 다른 물고기들에 비해 움직임이 아주 느리고 지느러미의 움직임이 거의 없다. 마치 허공에 공중 부유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복어 종류는 몸이 갑각류처럼 껍질로 덮여 있어서 몸이 유선형으로 휘어지는 헤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치 갈치가 세로로 떠다니는 것처럼.     


 그 작은 복어의 유영은 시선을 몽땅 앗아갔다. 시간 잡아먹는 귀신이다. 하지만 다른 물고기가 조금씩 자라는 것에 비해 작은 복어는 여전했다.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몸의 색채가 노란색과 갈색의 중간색을 띠었는데 그 색이 나날이 옅어져 갔다. 몸 안의 내장 기관이 다 보일 정도였다. 약을 써보고 다른 곳에 옮겨 물을 더 깨끗하게 해 주었지만 얼마 뒤에 죽고 말았다. 그렇게 그곳의 세계는 변하고 변하는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물고기는 사라져 갔다. 그런 모습은 인간 세계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인간도 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면 뒤처지고 그러다가 어느 날 사라지고 만다. 물고기들은 정직하며 솔직하다. 인간들처럼 자신의 기준에 타인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고픈 주인의 노력과 수족관 속 세계에서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규칙을 지켜가며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누구에게나 각각의 사정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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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호가 바뀌었다. 500미터 앞에 또 하나의 신호등이 있고 어김없이 내 앞에서 빨간불이 된다. 대기를 하는 곳에는 교보문고가 있던 건물이 있다. 규모가 크지 않아서 서점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서점은 현재 시점에서 살아남기가 어렵다. 서점은 살아남지 못하지만 나는 언젠가 책방을 하고 싶다. 동네 책방은 방향만 잘 잡으면 살아는 남는다. 서점에 잠깐 들러 몇 분 동안 서서 읽는 책은 꽤나 재미있다. 그러다가 그 재미를 죽 끌고 가고 싶으면 그 책을 구입하면 된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해서 택배로 받는 기쁨보다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손에 쥐고 들고 나오는 기쁨이 아직은 더 크다.     


 그러고 보면 10년 전까지는 대형 마트 안에도 서점이 다 있었다. 특히 내가 자주 가는 곳에 있는 서점 코너에는 책을 읽을 수 있게 파스텔 톤으로 설치해 놓은 푹신한 소파가 있었다. 지하에서 그로서리 쇼핑을 한 후에 그걸 들고 2층으로 올라 서점에서 책을 골라서 좀 앉아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것 때문에 대형 마트에 일주일에 서너 번은 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서점에 들러서 책을 읽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읽은 책 중에 책을 구입해서 나오게 된다.     


 그 덕에 대형 마트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즐거운 것들이 많으니까. 심각하지 않고 진지하게 사람들은 대형 마트에서 쇼핑을 했다. 위트와 유머가 가득했다. 바로 옆에는 수족관 코너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족관 역시 보는 재미가 있다. 열대어들이 유영을 하는 모습을 멍하게 보고 있으면 그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물고기의 유영을 옆에서 볼 수 있는 건 수족관 밖에 없다. 수족관은 완벽한 하나의 세계다. 수족관 속에 살고 있는 생명체에도 각각의 사정이 있다.     


 나의 활동 반경 내에는 작은 카페가 있다. 어느 날 카페의 주인이 어항을 들여놓았다. 길이가 60센티미터에 높이는 25센티미터 정도 되는, 물고기는 니모라고 불리는 열대어 두 마리에 말미잘 한 마리뿐인 작은 어항이었다. 산호나 다른 물고기는 없었다. 그런데 이동도 없는 말미잘을 보고 있는 것은 의식이 Zilch 상태가 되는 것만 같았다. 그저 ‘무’의 상태로 가만히 어항 속을 삼십 분, 사십 분씩 바라보게 된다.     


 매일 꾸준하게 보다 보면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 각각의 사정에 맞게 작은 어항 속이 자신들의 집이라 여기며 생활했다. 물고기 따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물고기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고 그들에게는 그만한 이유 역시 분명하게 있다.     


 어항 속의 물고기를 쳐다보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라는 게 소용없어진다. 어항 속의 풍경에 한없이 빠져들게 된다. 카페의 주인은 어항 속의 물고기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 동안 어항의 크기가 커져 수족관이라 불러야 했다. 수족관 속의 세계도 풍성해지고 물고기 역시 늘어났다. 규모가 상당해진 것이다. 수족관의 길이가 옆으로 1미터가 되었고 높이는 50센티미터의 크기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산호초 종류만 스무 여종이나 되었다. 열대어와 산호초를 꾸준하게 관리하는 일은 참 대단한 일이었다. 그건 그 세계가 사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 속 괴생명체처럼 보이는 말미잘도 있고 사람의 뇌처럼 보이는 산호도 있다. 하늘하늘 거리는 촉수가 비어져 나와 있는데 물고기들이 닿으면 괜찮은데 사람의 손이 닿으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물의 흐름이나 수족관을 비추는 빛의 양에 따라 촉수가 나오거나 들어가기 때문에 빛의 양과 물의 흐름, 흐름의 세기를 매일매일 체크해서 관리를 해야 한다. 정말 박수를 치고 싶어 진다. 그래야만 수족관 속의 물고기들과 산호와 말미잘이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어항에서 수족관이 되었다면, 그만큼 크기가 커졌다면 커진 만큼 물고기들은 스트레스를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일 년 동안 죽어 없어진 산호와 물고기도 몇 마리나 되었다. 그들은 인간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의 세계가 싫어서 그대로 죽어버린 것이다. 수족관을 가지고 산호와 물고기를 키우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죽어가는 산호가 있었다. 죽어가는 산호는 죽어가는 물고기와는 다르다. 산호는 죽고 난 후 다른 산호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거나 다른 산호의 서식지가 된다. 수족관 속이지만 대단한 세계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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