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이 바다라 바닷가에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며 소설 읽는 재미가 있어.

세상과 분리되고 싶을 때 소설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거야.

그러다 고개를 들면 바다가 있어. 칼스버그는 맛있고.

바다는 뱀을 닮았어.

멀리서 보는 바다는 꼭 뱀과 같아.

팔다리가 없어도 불평 한번 안 하잖아.

늘 어딘가 숨어 지내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현재에도 증오와 미움을 잔뜩 받고 있지.

천경자는 그런 뱀을 그렸어.

천경자의 [생태]를 봐. 생생하고 감동적이야.

뱀이니까.

수평선 너머 이어지는 바다는 뱀의 몸통과 비슷해.

쥘 르나르가 뱀에 대해서 그랬다지. 너무나 길구나.


영화 요정 김혜리 기자도 자신의 책에서 말했지.

뱀은 자신의 독 때문에 인간처럼 말이 많지 않아.

바다를 조금 멀리서 보면 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고독하며 품고 다니는 독이자 치유제인 그 액체를 마음만 먹으면 내 몸에 수혈할 수 있도록 말이야.


매혹적이며 은근하지.

몸을 이루고 있는 색감은 인간의 인공적인 붓질로는 표현해내지 못할 거야.

천경자 빼고 말이야.

보고 있으면 그 컬러의 매혹에 빠져들 거야.

우울할 때 키리코의 그림을 보며 깊은 우울을 느끼고 나면 괜찮아지듯 팔다리 없이도 고개를 들고 어디든 스르륵 가는 뱀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


차인표가 소설가인 거 알아?

소설도 두 권이나 썼어.

전부 재미있어.

차인표의 오늘예보에도 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뱀한테 물린 적도 없는데 우리는 뱀이 그냥 싫지.

남들이 싫다고 하니까 무조건 싫은 거야.


여기에 서서 바다를 보면 인간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돼.

김소연 시인의 말처럼,

사랑의 달콤함을 알기에는 우리 삶이 너무 길어.

뱀처럼 말이야.

하지만 사랑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인생이 터무니없이 짧지.

뱀처럼 말이지.


천경자 화가가 생태를 그렸을 때 세상은 그랬어.

뱀을 그리는 여자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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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의 동생 양희경이 어릴 때 집에 백구를 키웠대. 양희경과 친구가 되어준 백구가 임신을 했는데 아파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어. 근데 백구가 병원이 너무 무서웠던 거지. 가죽 줄로 입을 묶기도 해서 너무 무서운 나머지 병원을 탈출한 거야. 그러다가 그만 자동차에 치여 죽어 버렸어.


꼬꼬마 양희경이 백구를 들고 엉엉 울면서 묻어주는 이야기를 일기로 적었는데 그 일기를 본 시인 김민기가 9분짜리 대작을 만들었어.


김민기는 시인이었어. 시인이 시를 적을 때는 정직하고 진실되게 자신을 모든 것을 토해내서 적는 것 같아. 그래서 시 문학이 여러 문학 중에 제일 꼭대기에 있다고 하기도 해.


김민기가 만든 백구를 들어보면 생명의 소중함이 잘 나타나지. 양희경은 어릴 때 사랑을 주고 키우던 백구가 사고가 나서 죽는 장면을 봤지. 그렇게 해어지게 되었어. 슬프고 아픈 마음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거야.


단순히 티브이에서 사고가 나거나 아픈 사연은 아이들에게 와닿지 않거든. 촉감이 없고 사랑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아이들은 알지. 내가 만져주고 이야기하고 먹이를 줬던, 내가 사랑을 줬던 존재와 헤어짐을 겪는 것의 소중함을 말이야.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나중에 나보다 일찍 죽을 엄마와 아빠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거 같아. 헤어짐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말이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도 엄빠의 몫일지도 몰라.


우리가 백구를 듣고 슬프다는 것을 느꼈다면 김민기는 그 이면의 어떤 무엇을 보지 않았을까. 김민기는 어느 날부터 아이들을 위해 동요, 동화, 어린이 연극 등 어린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거 같아.


https://youtu.be/Z--qzGwSbeU?si=WxgaEijndC35j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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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하면 나는 봉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라. 그리고 많이 들었지. 학창 시절 바쏘리, 오비츄어리, 메탈리카, 머클리 크루 등 박살 나는 음악을 듣다가도 외로움이 폐 깊숙이 파고 들어올 때면 어김없이 봉우리를 들었어.


김민기의 그 울림이 가득한 저음이 폐를 가득 매운 외로움으로 밀고 들어와. 주로 암실에서 들었어. 나는 사진부여서 선배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는데 그럴 때 암실에서 청소를 하며 김민기의 봉우리를 들었지.


봉우리는 아주 묘했어. 친구들과 소리 지르고 달리고 놀다가도 봉우리를 들으면 나는 이 세상에 혼자라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게 썩 나쁘지 않았어. 그러니까 너는 하찮은 인간일지라도 봉우리처럼 빛나는 거야, 뭐 그러는 거 같았지.


우리는 늘 봉우리를 찾아다니는 그런 존재인 거 같아.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그러나 언젠가 알게 돼, 지금 내가 오르는 이곳이 바로 봉우리라는걸.


김민기 고인의 명복을 빌며.


https://youtu.be/3DMQc76GfzQ?si=u3Qq3K0jddHswT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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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간장 선생의 ‘간’은 우리 몸속에 있는 간이다. 일본은 전시 중이었고 라디오 뉴스에서는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들을 하얼빈 전선에 보내고 도쿄대 출신으로 해변 마을에서 내과 의원을 개업하고 마을 사람들을 돌보는 시골의사 아카기는 간장 선생으로 불린다.

아카기는 왕진을 갈 때 절대 걷지 않는다. 죽을힘을 다해 뛰어다닌다. 환자들을 위해서다. 마을 사람들이 아프면 간장 선생은 진료를 하고 간염으로 진단한다. 아카기는 간염을 없애기 위해 여생을 다 보낸다.

환자가 있으면 전부 간염으로 진단해서 돌팔이로 통하기도 한다. 처방은 약 먹고 잘 쉬고 잘 먹어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7, 8명이지 쉴 수 없다. 게다가 군인에게도 잘 먹고 잘 쉬어라고 해서 욕만 들어 먹는다.

아카기가 처방해 주는 약은 포도당이 유일했다. 부실한 영양을 채워주기 위한 방편으로 그게 전부였지만 포도당은 전쟁 물자라 그것마저 검열이 들어온다.

또 다른 주인공 소노코가 있다. 그게 잘 못 인지도 모르고 동네 남자들에게 돈을 받고 매춘을 하는데 간장 선생의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를 하면서 매춘을 하지 않겠다 한다. 소노코는 순수하고 마음도 예쁘고 일도 잘한다. 소노코는 오직 환자들을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간장 선생에게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현미경이 하나 생기면서 아카기는 간염 연구에 몰두하는데 아들이 전사했다는 전보를 받는다. 그 후로 아카기는 더욱 간염퇴치에 매달리고, 일본 군부 몰래 포로를 구해서 2층에 입원시킨 소노코. 간장 선생과 모르핀중독 외과의와 술중독 스님은 모두 힘을 모아 포로를 살린다.

그러다가 군부는 포로를 감췄다는 사실을 알고 군인들이 총을 들고 병원에 몰려들고. 소노코는 온몸으로 간장 선생과 포로를 구하려고 하고, 의사들도 포로를 지키려고 하다가 전부 군인들에게 맞고 끌려가서 고문을 당한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될까.

간장 선생에서도 전쟁을 일으키는 일본 정부에게 대항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서민들은 굶어 죽어 나가는 가운데서도 오직 전쟁을 위해 물품이 군인 위주인 것도 잘 보여준다.

소노코가 하루는 퇴근하여 집으로 들어오니 어린 동생들이 쪽지를 써 놓고 잠들어 있다. 배고파 죽을 것 같아 누나, 매춘이라도 해.라는 쪽지를 보고 소노코는 생각을 하는 장면이나.

모르핀 외과 의사가 천황대신에 하느님, 부처님을 부르며 이 불쌍한 군인들을 용서해 달라며 외치다가 총을 맞고 허무하게 죽는 장면이나.

거의 치료해 준 포로는 결국 군부의 고문으로 죽는 장면이나. 당시 일본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데 이게 진지하지만 그렇게 심각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고래가 나오는 장면과 폭탄이 터지는 장면은 아주 마음에 드는 초현실 장면 같았다.

간염이나 잘 먹고 잘 쉬어라고 하는 진단은 잘 먹을 수 없고, 잘 쉴 수 없는 전시를 일으키는 일본 군부, 정부에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간염은 말 그대로 간염 이외에 여러 의미가 있다. 그걸 이마무라 쇼헤이는 블랙 코미디로 잘 에둘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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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는데 새벽에 잠을 깨우는 무서운 소리

불이 났다고 소리치는 소리,

사이렌 소리,

비명 소리


그건 소름 끼치는 공포였고

평소에 집어먹는 겁의 몇 배는 되었다



일상 속에서 소리로 무서움을 느낄 때가 있다


가령 전투기의 소리가

분당 간격으로 들리는 것


지진으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겁이 나는 소리는


와그작하며

사랑이 깨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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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소매치기당한 발랄한 재수생 소녀와 권총으로 아내와 아내의 애인, 두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로맨스 같은 이야기다. 영화를 보다 보면 컬러인데도 어두운 부분은 꼭 흑백 영화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감독인 이만희는 컬러영화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도 영화 속 흑백으로 보이는 부분은 이만희 고집 같은 부분일까 싶기도 하다.

발랄하다 못해 태양 같은 인영 역의 문숙은 이 영화로 데뷔를 했다. 이만희 감독은 인영의 행동과 말투를 각본대로 하지 않고 촬영장에서 청춘의 문숙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영화에 반영했다고 한다.

이만희 감독은 이 영화를 촬영하고 나서 문숙과 연인관계가 되고 부부가 된다. 이때 이만희에게는 전 처 사이에 어린 딸이 있었는데 이혜영이다.

문숙의 젊은 시절 연기가 대박이었던 [삼포 가는 길]이었다. 나는 그 영화를 재미있어서 몇 번 봤는데 백일섭과 문숙이 티격태격 타누는 대사가 아주 재미있다. 삼포 가는 길의 마지막 장면에서 문숙이 울면서 먹었던 삶은 계란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계란일 것이다.

태양 닮은 소녀에서 재미있는 장면은 이 당시에도 서울은 북적북적하며 길거리 촬영 때에는 사람들을 통제하지 못해서 흘깃흘깃 사람들이 보는 장면까지 다 촬영이 되어 있다.

인영의 친구로 고영수가 나오고, 바보들의 행진의 병태도 엑스트라로 1분 정도 나온고, 당시 지방과는 비교되는 서울의 거리와 상가, 패스트푸드 같은 것들이 잔뜩 나오는 것 역시 재미있다. 아파트 단지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고 신성일이 미키마우스 하연 티셔츠 입는 장면에 문숙이 까르르 거리며 귀엽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이만희라는 대 감독과 대 배우 신성일 그리고 신예 문숙이 만나 당시에는 볼 수 없는 실험적인 영화였고 탐미적이다. 서울로 문숙을 찾으러 간 고영수가 나오는 장면에는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이 영화 음악으로 나온다.

인영은 그야말로 태양을 닮았다. 밝고 맑고 꾀죄죄하고 더럽지만 인영의 주위에는 밝음의 아우라가 있다. 마치 바삭바삭한 여름 햇살 같다. 영화는 한국 영화 같지 않다. 마치 불란서나 미국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영화의 색감은 꼭 오즈 야스지로의 색감이 떠오른다.

인영은 살인자 아저씨의 생일을 위해 엄청난 준비를 하는데. 순수한 영화다. 이만희 감독은 아내가 된 문숙과 함께 다음 해 황석영 소설 원작의 ‘삼포 가는 길’을 촬영하는 도중 사망하고 만다.

문숙은 꾸준하게 영화배우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지만 그대로 미국으로 가고 만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의 천재 감독의 실험적인 영화 ‘태양 닮은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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