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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에 늘 걸리지만 출근길은 언제나 한가하다. 대부분이 출근하는 시간이 지난 후에 출근하기 때문이다. 이제 앞으로 죽 뻗은 1킬로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달리면 된다. 이 도로는 양옆으로 벚나무가 심겨 있어서 봄이 되면 도로가 아름답게 변한다. 경남지역이라 이른 벚꽃이 피었다가 빨리 진다. 4월이 오기 전에 바람이 불어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을 매년 본다.
도로를 벚꽃이 수놓는다. 언젠가 천천히 이 도로를 걸으며 봄날을 만끽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봄을 좋아한다. 겨울의 두꺼운 옷을 벗어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겨울옷 안으로 꽁꽁 숨겨 두었던 물오른 살도 드러나기에 마냥 봄이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양가감정을 느끼는 계절이다.
봄은 생동하는 계절이라지만 나는 봄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사계절이 뚜렷해서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좋다고들 한다. 정수라의 노래 중에서도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라는 가사도 있다. 사계절이 있어서 우리는 복 받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말을 사람들은 왕왕한다.
하지만 나는 늘 이런 사계절이 있어서 정말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정확하게는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진정 복 받은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을 가진다. 사계절이 뚜렷하면 정말 살기 좋은 나라가 맞는 것일까.
나는 여름이 아주 좋다. 그래서 여름만 일 년 내내 있는 나라가 부럽다. 반바지 하나만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춥다고 난리 떨면서 패딩을 꺼내서 입을 필요도 없다. 여름에는 기온이 30도까지 올라간다. 겨울에는 추운 곳은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떨어진다. 이렇게 기온 차가 심하게 나는 곳이 과연 살기가 좋은 곳일까.
겨울에 한파만 오면 얼어 죽는 사람이 생겨난다. 여름에 폭염에도 사람이 죽는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추워서, 더워서 죽는 사람이 매년 생기고 증가한다니 그건 어떻게 봐도 이상하다.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파가 오니 주의하세요,라는 뉴스가 뜨면 공무원들부터 잠도 자지 못하는 비상근무다.
도시에 눈이 쌓이면 심각한 상황이 된다. 교통난에, 자동차 사고에, 동파에, 낙성 사고까지, 겨울이니까 두꺼운 옷을 꺼내 입어야 한다. 도대체 옷장에 옷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작년까지 잘 입던, 그 비싸게 주고 산 롱패딩은 유행이 지나서 숏패딩을 사달라고 자식들은 조른다. 난방을 해야 하지만 가스비와 전기세는 지속적으로 오를 뿐이다. 전기가 한전에서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지만, 한전은 대기업이나 개개인이나 중소기업에서 만든 전기를 사들여 공급한다. 오래전에 국가에서 바카라 원전에 투자했는데 그때 한전이 중간에서 보증을 서서 조 단위를 돈을 빌렸다. 그 돈을 현재 달라고 한다. 하지만 국가의 수장은 여러 번 바뀌었고 한전은 돈이 없다. 그러다 보면 전기세를 올릴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안 되면 검은 머리 외국인이 들어와서 한전을 나누어서 민영화를 시킨다. 미국화되는 것이다. 민영화가 되어서 여러 개로 전기회사 쪼개지면 어느 시간대 전기가 가격이 싼 회사 전기를 알아봐야 하는 수고를 겪게 된다. 그러다 보면 중간에 전기회사를 선택해 주는 또 다른 회사가 생겨난다. 정전되면 지금처럼 빠르고 편리하게 대처하지는 않는다. 하루 이틀 걸린다는 말을 듣는 게 당연시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옛날처럼 혹독한 추위가 몰아쳐도 영차영차 하며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게 되어 간다.
여름에는 장마 기간에 늘 흘러넘치는 하수구는 어김없이 그 자리에 또 흘러넘친다. 온열질환 역시 매년 속출한다. 그렇다고 은행이나 건물을 예전처럼 아주 시원하게 해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전기세 폭탄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폭우에 시장 상인들이 전부 물 폭탄을 맞아서 모든 것이 다 떠내려가고 잠기기라도 하면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 깜깜하기만 하다.
마찬가지로 겨울의 폭설에 불이라도 전통시장에 나서 전부 홀라당 타버리고 나면 어디에서 손을 대야 하는지 너무나 깜깜하다. 그곳에서 지내던 사람들은 추운 곳에 그저 내몰리게 된다. 추위 때문에 얼굴이 벌겋게 된 상태로 한없이 기다리고만 있어야 한다. 손과 발이 얼마나 시리고 추울까. 여름에도 물 폭탄으로 모든 것이 떠내려간 사람들은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잠들어야 한다. 거기에 사람들은 전통시장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동정 어린 시선보다 오히려 잘 됐다고 비난한다.
하나의 계절만 있다면 열심히 그 계절에만 맞는 피해복구를 하고 경계하고 재발 방지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겨울에 살기 좋다고 말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겨울에는 크리스마스와 눈이 있어서 낭만적이라고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크리스마스 같지 않기만 하다. 초등학생 때에는 학교에 가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잔뜩 느끼며 좋았다.
교실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꾸몄다. 초등학생 때에는 학교에 가면 재미있었고 좋았는데 요즘은 학교도 전부 힘들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얼마 없어서 기본적으로 우울하고 춥다. 게다가 교사와 학생들의 경계가 허물어져서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부터 여름만 있는 나라에 가서 살고 싶었다. 더운 건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추운 건 참을 수가 없다. 추운 건 너무 싫다. 지금까지 여름에 더우면 더울수록 밖에서 조깅을 하면서 땀을 있는 대로 흘린다. 그러면서 태양의 빛을 받는다. 그러고 나서 샤워하고 나면 어지간한 더위는 그렇게 덥게 느껴지지 않는다. 에어컨 바람보다 선풍기 바람만으로도 여름을 보내고 있다. 천재적인 미친 박사가 나타나서 “나는 기후를 바꾸는 연구를 하고 있어! 이제 막바지에 와서 우리나라 사계절을 없애고 여름만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라고 선언한다면 나는 대환영이다.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한 표 찍어 주겠다. 사람들에게 혼나겠지만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