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빈 베이컨의 더 히든을 보다 보니 아 뭔가 아쉬워서(바버리움 같은데 바버리움에 비해 깊이가 얕고 뭘 말하는지 모호하고 애매하게 끝이 나서) 찾아보게 된 88년 영화 [결혼의 조건]이다.
히든이나 결혼의 조건이나 한 달 정도 전에 봤는데, 이제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본다. 88년에 나온 [결혼의 조건]은 코미디 영화다.
제이크와 크리스티는 어릴 때부터 친구여서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결혼까지 했지만 제이크는 연애와 결혼의 차이가 크다는 걸 느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지,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맛있게 먹어야 하지, 잔디도 깎아야 하지, 게다가 작가 지망생인 사위를 장인은 탐탁지 않아 한다. 연애는 행복이었지만 결혼은 현실이며 거의 지옥이다.
그냥 혼자서 주말을 보내고 싶지만 동네 부부들과 바비큐 파티도 열아야 한다. 거기에 고기도 못 굽는데 고기는 왜 제이크 자신이 구워야 하는지. 다 태워버리는데.
그런데 싱글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친구 데이비스(알렉 볼드윈)가 너무나 멋진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놀러 오자 제이크의 마음은 더욱 자리를 잡지 못한다.
그와는 반대로 결혼 후 침착하고 차근차근 신혼 생활을 하는 아내 크리스티와 삐걱삐걱거리다가 두 부모님들의 성화에 보험회사에 취직을 하고 아이를 갖기로 결정한다.
두 사람은 임신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임신했다는 사실을 듣는다.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까. 8, 90년대 미국 코미디 영화를 볼 수 있다.
캐빈 베이컨과 엘리자베스 맥거번의 아주 젊은 모습이 새롭다. 무엇보다 지금은 말 많고 탈 많은 알렉 볼드윈이 정말 멋지게 나온다. 눈매가 푹 들어간 잘생긴 미국 배우들의 전형이다.
캐빈 베이컨의 젊은 시절 모습은 리버 피닉스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본 조비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김무열을 닮은 것 같기도 한 얼굴이다.
아내인 카이라 세드윅이 대박이다. 프로듀서이자 감독이자 배우이기도 해서 더 클로저 시즌 7까지 나왔다.
[결혼의 조건]을 찍을 당시 캐빈 베이컨과 엘리자베스 맥거번은 B급 영화배우였다. 그런데 이미 그 당시에 연극으로는 일류 배우였다. 영화와 연극은 연기를 하는 건 같지만, 연기의 전달 방식이 다르다.
영화는 편집과 감독의 예술이라면 연극이야 말로 배우의 예술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배우들도 연극으로 돌아가거나 연극으로 관객을 만나려고 하기도 한다.
근래 박근형 배우가 시간이 별로 없어서 빠듯하지만 연극을 할 수 있을 때 계속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뭔가 가슴을 두드렸다.
[결혼의 조건]은 나 홀로 집에 1, 2의 각본가이자 제작자, 내 사랑 컬리 수와 베토벤의 각본을 맡았던 존 휴즈가 감독을 했다.
제이크가 작가의 꿈을 잠시 접고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에 갔을 때 모두가 권태를 짊어지고 똑같은 양복을 입고(이런 모습은 최근의 8번 출구를 떠올리게 한다) 고개를 숙인 모습을 볼 때 흘러나오는 음악도 좋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의 대환장 코믹 판타지 영화 [결혼의 조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