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중 가장 애매하지만 가장 멋진 계절이고 덥지도 춥지도 않을 것만 같은 유월이 저물어 간다. 매년 유월은 그해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유월부터 이 도시의 축제가 시작이다. 코로나로 막혔던 축제가 도시 곳곳에서 엄청나게 열리고 있다.


온갖 먹거리를 파는 곳과 도로를 막고 무대를 설치하고 사람들에게 맥주를 무료로 마구 나누어 주고, 축제의 노래가 온 도시 안에 울려 퍼졌다. 아니 퍼지고 있다. 그래서 축제가 열리는 다운타운 가의 자영업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축제를 관장하는 프로그램 중간에 브로커가 껴 있어서 새는 돈이 많다는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들의 상환이 이번 9월부터라고 하는데. 코로나를 버티기 위해 빚을 여러 곳에서 끌어 쓴 자영업자들이 코로나가 끝나고 원래대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되어 버렸다. 절대 원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물가의 고공행진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더 끊겼다.


코로나 기간에 선진국들은 자영업자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해주었다. 미국을 비롯해서 프랑스도, 심지어 가장 꼴찌인 일본도 우리나라 보다 훨씬 많은 지원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자영업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정부의 약속은 지금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자영업자들 중 많은 분들이 60년대 생인데, 마지막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처음으로 자식들에게 노후를 맡기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다. 이들이 믿고 있는 것은 국민연금이었는데 지금은 국민용돈 정도가 되었다. 자영업자들이 장사가 되지 않아서 폐업을 하려고 해도 폐업처리가 되는 순간 바로 빚을 갚아야 한다는 은행의 독촉이 온다. 무엇보다 목욕탕이나 피시방 같은 경우는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하기 때문에 돈이 이중고로 든다.


그래서 코로나 기간 중에 은행이나 배달플랫폼, 검색사이트 회사는 엄청난 돈잔치를 했다. 그야말로 호황이었다. 이십 대가 코인을 하고 주식에 몰리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는 현실이 되었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그것이 미래가 되었는데 어떤 이가 열심히 노동을 하려고 할까. 하루 벌어야 하루를 먹고살 수 있고, 하루를 못 벌면 이틀을 굶어야 한다.


장사가 잘 되면 좋은 가 한다면 꼭 그렇지도 않다. 장사가 너무 잘 되면, 그래서 손님들이 줄을 서 있으면 건물주가 월세를 올려 버린다. 아니면 건물주인이 그 자리에 자신이 뭘 한다거나.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영업이 계속 생겨나고 음식점이 늘어나는 이유는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축제하는 다운타운을 빠져나와 강변을 달리면 인간의 삶과는 무관하게 자연은 늘 그대로니까 경이로우면서 무섭고 얄미우면서 부럽고 짜증이 나고 뭐 그렇다. 달리다가 뒤돌아서 보면 이토록 아름다운 빛을 보여준다.

요 며칠 동안 저녁에는 초승달이 떠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을 반겼다. 초승달에는 토끼고 둥근달에는 곰인데, 며칠 전에 80년대 영화 ‘더 베어’를 다시 봤다. 아기 곰 한 마리가 이토록 감동을 줬던 그 영화.

아기곰 두스가 엄마를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사냥꾼의 총에 맞은 큰 수곰 바트를 만나면서 새로운 가족이 되는 이야기다.


두스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온통 경이로움과 재미로 가득하다. 처음 보는 개구리도,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나비도, 예쁘고 맛있을 것처럼 생긴 독버섯도 두스에게는 모든 게 놀라움이다.


하지만 두스는 아직 엄마가 필요한 아기곰. 그러다가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웅덩이에 쓰러져 있는 바트의 상처를 핥아주며 둘은 가족이 된다. 바트는 자신도 배가 고프지만 연어를 잡아서 두스에게 던져 준다.


바트가 두 발로 일어서면 두스도 일어나고, 바트가 나무에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면 두스도 그렇게 하는 장난꾸러기. 그러다가 사냥꾼에게 두스가 잡히게 되고 사냥꾼들의 사냥개들이 바트를 쫓는데.


예전에 볼 때는 그냥 감동이 쓰나미가 되어 밀려왔지만 제작이 6년이나 걸릴 정도로 곰들을 훈련시켰는데, 두스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걸까, 하기 싫은 훈련 때문에 행복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두스에게 영화제에서 상이라도 줘야 할 정도로 어떻게 이런 연기를 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귀엽고 가엽고 예쁘게 나온다. 장 자크 아노는 그 긴 시간 끈질기게 두스와 바트의 우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지막 장면에 표범에게 잡아먹히려고 할 때 크아아앙 하며 소리치는 두스, 그리고 그 뒤에서 두스의 포효에 힘을 실어주는 바트. 아기 곰 한 마리의 행동이 이렇게도 감동을 줄 수 있다니.


그래픽이 초고도로 발전했다고 해도 두스와 바트만큼 감동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시작 16분에 첫 대사가 한 번 나온다. 지루함이 1도 없이 빨려 들어가는 '더 베어'였다. https://youtu.be/S0tX2wKi6O0


초승달은 올려다보는 재미가 있다. 이 지점이 딱 좋은데 건널목 중간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매일 달리는 이곳을 지나가면서 신호가 바뀌면 재빠르게 중간으로 와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몇 컷 찍는다. 곧 좀 있으면 달의 모양이 변할 테니까.

저기 다운타운에서는 축제가 한창이다.

이 하늘을 보라. 정말 경이로운 색감이다. 이렇게 아름다울수록 더 무서운 상상이 든다. 외계종족이 침투하거나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의 모습처럼 보인다. 일본의 병맛 영화 중에 바퀴벌레 종족과 인간이 화성에서 싸우는 영화가 있다.

비급 병맛 영화 테라포마스는 원작을 재미있게 본 터라 보게 되었는데 2016년작인데 2006년작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이 영화는 벌레화가 된 인간들이, 인간화가 되어버린 바퀴벌레들과 한 판 뜬다는 이야기로 병맛 가득, 병맛 나는, 병맛을 위한, 병맛 그랜드슬램을 달성해 버린다.


인구 과포화 상태가 된 지구에서는 더 이상 자원 고갈로 인해 화성 테라포밍에 들어간다. 화성을 지구화하기 위해 바퀴벌레들과 이끼를 화성으로 슝 보냈는데 500년 동안 바퀴벌레들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서 그 못생긴 면상에 짐종국 같은 몸으로 화성에 온 벌레화가 가능한 인간들을 하나씩 죽인다.


죽이는데 이유가 없다. 지구에서 인간들이 바퀴벌레를 보면 이유 없이 죽이는 것과 비슷하다. 병맛 가득한 영화이기 때문에 병맛으로 영화를 보고 생각해야 한다.


태초에 인간보다 오래 산 바퀴벌레는 원래 지구 밖에 생존하던 벌레였는데 환경이 좋은 지구에 보내졌다. 그런데 인간 때문에 원하는 대로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50억 년을 멸종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안 바퀴벌레는 곧 인간의 과포화로 지구가 망해간다는 알고 일부러 인간들에 의해 화성으로 이끼와 보내지게 계획을 한 것이다.


화성의 표면과 우주 먼지와 재 그리고 태양에서 나오는 원자, 분자 따위와 지구의 이끼에서 나오는 산소 같은 것과 함께 바퀴벌레들은 500년 동안 진화가 급격하게 가능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바퀴벌레는 파리에 비해 균을 50배 적게 옮긴다고 한다. 또 지구에서 가장 파괴력이 강한 미생물인 곰팡이의 포자도 바퀴벌레의 몸을 뚫지 못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곤충, 벌레 중에서 인간에 의해 훈련이 가능하다고 한다. 마우스가 미로를 찾아가는 것처럼 바퀴벌레도 그런 훈련이 가능하다네.


게다가 바퀴벌레는 천적의 공격에 죽은 척한다는 것이다. 고양이 같은 천적이 오면 엎드려 그대로 가만히 죽은 척을 한다. 고양이는 바퀴벌레를 먹으려는 건 아니지만 앞다리로 휙휙 가지고 노는데 죽어있으면 재미가 없어 그냥 가버린다고 한다.


병맛 영화인데 감독은 바퀴벌레에 대해서 꽤나 알아보고 이런 막 나가는 병맛 영화를 만든 것 같아서 쓸개가 우~리 하네. 근데 우~리 하다, 이 말이 사투리라메. 나는 사투리인 것도 모르고 지금껏 사용했네. 윈터가 의사한테 팔이 우~리 하네요,라고 해서 못 알아먹었다고 하던데 ㅋㅋ.


이 영화에는 한국인들도 다 알만한 배우들이 대거 나온다. 오구리 슌(제일 병맛 분장과 병맛 대사다), 타케이 에미, 야마삐, 키쿠치 린코, 코이케 에이코(사마귀로 변할 줄은), 이토 히데아키 등.


이 병맛으로 꽉 채운 영화의 병맛 감독이 미이케 다카시인데 위의 이토 히데아키를 데리고 찍은 사제지간의 끔찍한 사랑을 표현한 악의 교전은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졌다. 그리고 시간에 흘러 흘러 작년에 정해인과 고경표와 김뢰하를 데리고 만든 드라마가 골 때렸던 커넥트였다.

이렇게 해서 바퀴벌레 종족이 인간화가 되어 지구를 점령하러 올 때 하늘이 이런 빛을 발한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 번 해보았다. 언젠가부터 보이는 새로운 모든 것이 낙관보다는 비관적이고 염세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라는 인간 자체가 그런 모양이다.


유월이 지나간다. 이제 곧 칠월이다. 칠월은 개인적으로 일 년 중에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제일 태양이 뜨겁게 타오르고 해변이 해변다워지는 칠월이다. 장마에 오염수에, 예전만큼의 기쁜 마음은 들지 않지만 오는 계절을 밀어낼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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