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이라 불렀던 설날, 이제 구정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있다. 일본식 표기이기 때문이다. 양력 설이라 불리는 명절이 다가오면 그 주에는 동네 사람들, 집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예전에는 전부 목욕탕에 갔다. 어머니들이 목욕 바구니를 들고 물에 젖은 머리를 한 채 동네를 다니는 모습을 왕왕 봤다. 마치 검은 푸들이 기분 좋은 얼굴을 한 채 동네를 다니는 모습처럼 보였다. 어머니를 따라 작은 푸들도 목욕 바구니를 들었다. 목욕탕은 동네에서 조금 걸어 나가면 있는 곳으로 우리 동네 사람들이 가는 곳은 두 군데가 있었다. 명절 전에는 모두가 깨끗하게 목욕을 했다. 그것도 대중목욕탕에서.
어머니, 아버지들은 감기 기운이 있으면 대중목욕탕에 데리고 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면 감기가 낫는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겨울에 대중목욕탕에 갔다가 오면 기침을 더 하고 감기를 앓곤 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가서는 안 되는 건데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지. 감기 기운이 있는 사람들이 전부 목욕탕에 와서 침과 타액을 뱉어놓고 갔는데 무지했다.
그래도 대중목욕탕에 가면 대중목욕탕만의 재미가 가득했다. 목욕을 하고 나오면 아버지가 수건을 말아서 탁탁 털어 주었다.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어정쩡하게 서 있고 아버지는 맞은편에서 열심히 머리카락이 빠지듯 수건으로 털었다. 아버지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었다. 사랑한다 아들아,라고는 한 번도 하지 못했지만 아버지들은 그런 멋이 있었지.
어릴 때는 아버지와 함께 목욕을 하고 나올 때 맥콜을 마시는 기분이 좋았다. 맥콜은 참 희한한 음료였다. 콜라도 아닌 것이, 콜라처럼 팍 터지면서 보리맛이 나는데 목욕하고 마시면 또 맛있었다. 명절 전의 목욕탕에는 평소보다 많은 아저씨들이 목욕을 했다. 목욕탕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일일이 관찰할 수 없지만 역시 표정들이 좋았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명절 전이니까.
요즘은 모르겠지만 남탕에는 공용 손톱깎이가 있어서 목욕을 하고 나온 아버님들이 물에 불어서 물렁해진 손톱을 열심히 깎았다. 왜 손톱깎이를 다 같이 돌아가면서 사용할까 하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역시 무지했던 거지. 목욕탕에는 기묘한 아저씨들이 많았다. 변태기가 있다고 해야 할까. 목욕을 앉아서 하는데 샴푸를 내어서 중간다리 근처에 난 털에 샴푸를 발라서 빗으로 거기를 계속 빗는 아저씨가 있었다. 요즘에야 왁싱 같은 걸 하지만 예전에는 거기의 털은 그대로 두었다. 아버지들은 더 그랬지. 거기에 샴푸를 하고 열심히 빗으로 15분씩 빗는 모습은 뭔가 어떤 고상한 의식처럼 보였다.
드라이기로 사타구니를 말리는 아버님은 기마자세다. 그렇게 자세를 잡고 드라이기를 열심히 휘잉휘잉 흔든다. 목욕하고 잠을 자는 방에서는 대부분 하나만 입고 자는데 그 하나가 양말인 아버님도 있다. 한증막에서 유난히 소리를 내는 아저씨도 있고 별에 별 아저씨들이 다 있었다.
명절이 되기 전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즐거운 일 중에 하나였다. 멀티플렉스가 들어서기 전 극장의 흔적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찾을 수 있었다. 명절 전에 상영하는 영화 예정작은 티브이 광고를 했다. 그리고 벽보와 전단지로 어떤 영화가 걸리는지 종류를 알 수 있었다. 명절 전 영화를 보는 재미가 좋았다. 영화 시작 전에 예고편을 보는 재미가 있었고, 들어가기 전 매점에서 음료와 쥐포를 사 먹는 재미도 있었다.
분위기가 지금과는 좀 달랐다. 명절 연휴가 길면 길수록 즐거웠지만 지금은 그렇지만은 않다. 고향으로 내려와서 동네 친구들과 오랜만에 회포를 풀기도 했고 며칠 있다가 귀성길에 올랐지만 요즘은 당일치기가 많아졌다.
명절의 풍경이 많이 바뀌긴 바뀌었다. 현재 2, 30대 은둔형 외톨이가 일본을 넘어섰다고 한다. 일본이 은둔형 외톨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통계를 꾸준하게 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작년에 첫 통계를 냈다. 지금은 그렇게 은둔형 외톨이로 집에서 나오지 않는 청년이 56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명절의 분위기는 바뀐다. 이번 명절에는 세뱃돈은 몇 살까지 얼마를 줘야 하나를 여론조사까지 했더라고. 이 조사를 하면서 사람들 중에는 오만권은 왜 만들어가지고 하는 소리까지 나왔다.
귤이 하나에 천 원이던데. 물가가 오르는 게 당연한 거라고 해도 너무한 건 너무하다. 귤오천원에 한 봉다리 가득 담아서 마음껏 귤 까먹던 때가 너무 멀게 느껴진다. 설날이 끝남으로 해서 추석 전까지는 떠들썩한 분위기는 없어서 좋다. 추석이니, 크리스마스니, 연말이니 같은 분위기는 추석전까지 없다. 떠들썩할수록 고립되는 사람들은 많아지는 현실이다. 명절에는 떠들썩하지 않고 평범하게 보내는 게 좋다. 물론 그 평범함 속에는 몇 퍼센트의 가설과 몇 퍼센트의 거짓이 존재하고 있다.
매일 집으로 가는 길이 오늘따라 유난히 쓸쓸하고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중식이 노래를 들으면 아,,, 하는 생각이 든다.
중식이 - 그래서 창문에 선팅을 하나 봐 https://youtu.be/4AK_uJg7H8U?si=B7GBZasupp_8OWI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