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에 개봉한 별들의 고향은 경아(안인숙)의 시신을 화장해서 강물에 문호(신성일)가 뿌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문호와 생기발랄한 경아는 위태로운 동거를 하며 경아의 나체를 무명화가인 문호가 그린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간다.
경아는 가난했지만 순수하고 예뻤다. 직장에서 만난 첫 남자 영석(하용수)에게 배신을 당하고 아파하고, 두 번째 남자인 만준(윤일봉)은 부잣집에 잘나가는 대기업의 멋진 사람이지만 의처증이 심하고 집착이 강해서 과거 임신 중절 사실을 알고 경아를 폭행한다. 세 번째 남자 동혁(백일섭)은 건달로 경아를 늘 폭행하고 허벅지에 바늘로 ‘혁’이라는 문신까지 새겨서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결국 동혁 때문에 술집에서 일하는 신세가 된다. 술집에 손님으로 온 문호와 만나 그림을 그리며 재미있게 지내지만 백일섭이 찾아와서 결국 문호도 경아의 곁을 짜난다.
경아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이 사회에서 남자들에게 온통 장난감 취급당하고 배신당하고 폭행당하다가 결국 눈 내리는 얼어붙은 강가에서 수면제 같은 약을 눈과 함께 먹고 잠이 들어 그대로 하늘로 가고 만다. 경아의 나이 고작 26살. 이 당시 별들의 고향은 많은 사람들을 피카디리 극장으로 불러 모았고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영화음악은 천재 이장희가 맡았다. 이장희의 노래가 경아의 처연한 모습이 나올 때 흐른다. 경아는 너무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모습인데 그 뒤로 쓸쓸한 모습이 비친다. 경아의 모든 대사가 강압과 울분, 암울한 사회상을 반영한다. 이렇게 엄혹한 때에 필요한 건 사랑이지만 남자들은 경아를 욕망의 대상으로만 본다.
최인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별들의 고향은 74년을 대표한다. 74년은 대한민국의 격동의 해였다. 광복절에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한 사건이 있었다. 서울에서 청량리 지하철이 개통되었고, 긴급조치 1호, 2호가 선포되었다. 이런 시대에 대항이라도 하듯 흑인 소울의 느낌을 한국 록으로 부르는 록밴드 데블스가 통금을 피해 모여든 고고클럽에서 공연하다가 청춘들이 참사를 당해 88명이 사망한 해이기도 하다. 데블스의 이야기를 조승우가 주인공으로 만든 영화가 [고고 70]이다.
74년은 너무나 아픔이 많은 시기였다. 그 해에 한대수가 나타나 [물 좀 주소]를 부르는 건 단지 어떠한 목마름으로만 부른 건 아니었다. 별들의 고향의 경아를 통해 그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소설가 최인호는 집필 의도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서울을 그리고 싶었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정치적으로 암울한 유신 독재 사대에, 밤 11시 30분이면 통행금지를 피하려 광화문에서 신촌으로 택시 합승을 해야 하는 풍속을 그리고 싶었다. 도시산업화가 막 시작된 때에 청바지를 입은 통기타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술 취한 아가씨가 이리저리 비틀대던 무교동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전원주는 이때에도 가정부로 나오며 경아의 대사 깊숙한 곳에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대사가 계속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