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공주 엘자가 있기 전 저짝 불란서에도 엘자가 있었다. 엘자 륑기니. 오늘처럼 가을의 흐린 날에 잘 어울리는 불란서 노래, 샹송이라 하기에는 팝적이고, 팝이라 하기에는 불란서의 분위기가 확 나는, 파트리샤 카스와 다른 엘자가 있었다.


파트리샤 카스가 한국에 와서 노래를 부를 때 그 무대의 사회를 배철수가 봤는데 그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네.


엘자 하면 글렌메데이로스가 따라오지만 그녀의 앨범을 들어보면 이야 노래 정말 좋아,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엘자를 검색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부르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어쩌고 하는 이야기들이 죽 있다.


우리가 엘자를 알게 된 건 글렌메데이로스였다. 중고등학생 때 집만큼 들락거렸던 음악감상실에서 디제이가 글렌메데이로스의 음악을 뮤직비디오로 틀어주면서 엘자의 이야기도 같이 해 주었다. 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글렌메데이로스를 좋아하던 프랑스 소녀가수가 직접 글렌메데이로스를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만나면서 두 사람은 듀엣 곡을 부르게 되고 그 곡은 우리가 있는 이 도시의 바닷가까지 울려 퍼지게 되었다.


엘자와 글렌메데이로스의 만남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글렌메데이로스의 이야기를 할 때 했으니 여기서는 생략.

https://brunch.co.kr/@drillmasteer/2618


두 사람의 꿀 떨어지는 듀엣곡 Un roman d'amitie https://youtu.be/8dOxNAHMsvw?si=NR6KIU0HCsjQkn4W


두 사람의 듀엣곡은 정말 사랑스럽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곡이 있나 싶을 정도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결국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의 현재 모습도 검색을 하면 다 볼 수 있다.


아무튼 우리에게 불란서 노래를 가장 많이 듣게 해 준 가수가 엘자였다. 추석이 지나고 가을 속으로 흘린 날이 덮치면 그때나 지금이나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시달리고 조금은 우울했다. 그럴 때 그때는 하교하면 졸졸졸 음악감상실에 들어갔다. 학교 뒤에서 음악이나 내내 듣는 그런 놈들끼리 마음이 맞아서 음악 감상실에 앉아서 굉장히 큰 화면으로 보는 뮤직비디오는 재미있기만 했다.


엘자는 현재도 가수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키가 너무 커버려서 목소리가 예전만큼 나오지 않는다. 엘자나 글렌메데이로스의 음악을 들으면 거짓말처럼 그 당시로 확 돌아가는 착각이 든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학교에서 나와서 쫄래쫄래 음악감상실에 가곤 했던.


살아보지 못했던 60년대의 음악, 루 리드나 데이빗 보위, 제니스 조플린의 노래를 들어도 이상하지만 그 당시로 가는 착각이 든다. 음악은 그런 알 수 없는 마법을 부린다. 그런데 제이슨 데룰로나,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현실감각이 사라져 버린다. 현재의 음악인데 음악을 듣고 있으면 현재는 바람에 날리는 가루처럼 날아가 버리는 착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김추자의 노래를 들어도 그렇다. 김추자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건물이 막 바뀌면서 예스러운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물론 착각이지만. 함중아의 노래를 들어도 그렇다.


얼마 전에 존윅의 프리퀄, 존윅 이전의 이야기 윈스턴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콘티넨탈을 보는데 영화 속에 데이빗 보위, 루 리드 등을 언급을 한다. 음악이란 아무튼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엘자 륑기니는 조용한 노래만 부를 것 같지만 90-91년 투어 공연 영상을 보면 무척 섹시한 옷을 입고 댄스곡도 부른다. 댄스곡이라고 하기에는 뭣 하지만 전기기타와 드럼이 뒤를 받쳐주고 격렬하게 몸을 흔들며 무대를 장악해 가며 가냘픈 몸으로 섹시하게 노래를 부른다.


오늘은 날이 무척 흐리다. 이러다가 하늘에서 뭔가가 일어날 것만 같다. 중학생 때에도, 고등학생 때에도 이런 날에는 엘자 같은 음악을 찾아서 들었는데 그럴 때의 기분이 든다. 문득 든 생각이지만 세상에 나와있는 음악은 몇 곡이나 될까. 그리고 인간은 음악에 왜 이렇게 열광을 하고 목을 매다는 것일까.


엘자의 투어 공연 영상 중에는 제니스 이안의 At seventeen를 부르는 영상도 있다. 나의 아저씨 14화에 박동훈이 정희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제니스 이안의 At seventeen이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정희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려고 가게 앞에 앉아서 하루를 여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그때 지안이 옆에서 십 분 동안 같이 있어준다.


그렇게 죽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제니스 이안의 엣 세븐틴이 흘러나온다. 엣 세븐틴은 제니스 이안이 17살에 겪었던 일로 예쁜 소녀들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들로 인해 열일곱 소녀가 겪어야 했던 사랑에 대한 좌절을 이야기하는 노래다. i learned the truth at seventeen로 시작을 한다. 당시 제니스 이안의 목소리에는 쓸쓸함이 가득 묻어있다. 나는 열일곱 살에 진실을 알아 버렸어,라며 제니스 이안은 그 특유의 쓸쓸함으로 그때 받은 사랑의 좌절을 노래한다. 깨끗하고 맑은 얼굴을 가지고 지난 사랑의, 당시에 받은 좌절을 쓸쓸하게 노래한다.


그건 마치 정희를 보는 것 같다. 언제나 자신감에 차 있는 정희는 혼자가 되면 더없이 쓸쓸하고 외롭다. 잠드는 것이 무섭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것조차 버겁다. 사랑의 좌절이 정희를 그렇게 만들었다. 누군가 정희를 안아주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려 버릴 것만 같다. 그건 아마도 정희 옆에서 십 분 동안이나 같이 있어줬던 이지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제니스 이안은 14살에 데뷔해서 75년에 엣 세븐틴으로 빌보드 1위에 오르고 75년 전체 히트곡 랭킹에서 19위를 차지한다. 그 쓸쓸함이 묻어나는 제니스 이안의 노래를 엘자가 부른다. 잘 부른다.


제일 많이 들었고, 제일 많이 알려진 노래가 아닌가 싶다 Mon cadeau https://youtu.be/2IhQj4G009M?si=a2a8JmBpBxCQT4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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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넘버 3에서 재떨이와 야쿠자 이인자와 룸의 살벌한 대기에서 야쿠자가 홍콩도 중국에 반환되었는데 독도도 일본 땅이라고 우긴다. 그래서 재떨이가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한 번 읊으면서 독도가 누구 땅이냐고 재차 묻는 장면이 있다.


영화가 나온 게 97년돈데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하면 조폭건달도 열받아서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예전에 안정환이 일본 리그에서 뛰고 있을 때 경기에 출전하러 경기장에 들어가는데 기자가 독도는 어느 나라 땅입니까!라고 물으니 1초도 망설임 없이 독도는 한국땅!라고 했다.


최근에는 일본 구독자가 취소하든 말든 쯔양이 자신의 영상 자막에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근래에 먹고사는 게 힘들어서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못하는 분위기지만 미국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는데 받아들이는 이 분위기 정말 이상하다. 이러다가 영화 속 조폭들도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말했다가는 이상하게 몰고 가지는 않을까.


영화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예전 영화 중에 ‘주홍글씨’라고 있다. 이 영화를 찍고 이은주가 목숨을 끊었다. 영화를 보면 엄지원이나 이은주는 그 역할 때문에 첼로나 피아노나 노래나 엄청나게 연습을 했을 것이다. 이 영화 때문에 이은주 배우를 잃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뭘 말하는지 모호하고 그저 야하고 변태적인 모습에만 초점을 둔 장면만 가득하게 보인다.


이 영화는 김영하 소설가의 ‘사진관 살인사건’이 원작이다. 정확하게는 99년에 티브이 단막극으로 먼저 ‘사진관 살인사건’이라는 동명제목으로 원작을 극화했다. 단막극은 김영하의 소설대로 흘러간다. 사진관에서 남편이 죽고 그의 아내가 의심을 받는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내, 지경희 역으로 김서라가 나오고, 그녀를 조사하는 형사로 김갑수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겉으로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갑수 즉 김형사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고 김 형사는 아내와 바람을 피운 남자의 머리에 총구멍을 대고, 남자는 오줌을 줄줄 싸고, 아내는 불륜 남자가 싼 오줌이 묻은 이불을 맨발로 빤다. 그 후로 아내는 영혼이 나간 것처럼 행동을 한다. 다른 사람이 된다.


지경희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그녀와 그녀의 사진을 담으면서 사진관에 자주 오는 아마추어 사진가도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 겉으로는 내뱉을 수 없는 또 다른 욕망이 있다. 그건 김 형사 역시 마찬가지다.


참고로 방탄소년단의 정국이 낸 세븐의 내용은 말랑말랑한 내용이 아니다. 일주일 동안 지쳐 쓰러질 때까지 사랑을 나누겠다는 이야기다. 마지막까지 다 짜내서 밤마다 사랑을(아주 순화해서 하는 말이지만) 한다는 아주 야하고 무척 야한 이야기다.  


마돈나가 세상에 야한 노래를 들고 나왔을 때 인간의 욕망을 이렇게 노래로 표현하는 걸 막지 마라, 니들이 나를 막아도 나는 하겠다. 라며 마돈나는 자신의 노래와 뮤직비디오에 자신만의 세계를 과감하게 가감 없이 담았다.


무척이나 야해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데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노래를 들어보면 세븐이나 마돈나의 노래나 자연스럽게 흡수가 된다. 그건 아마도 아티스트의 재능이 그 역할을 가능하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영하의 소설 ‘사진관 살인사건’을 읽어도 그렇다. 전혀 야할 것 없는 이야긴데 읽으면 이야기 그 너머의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손으로 만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러냐 한다면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욕망이 있다. 내 것이 있지만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성적 호기심도 있고, 말로 꺼낼 수 없는 나만의 성적 판타지도 있다. 이 욕망은 본능에 가까운 것으로 사회생활이 부족할 정도로 인지가 안 되는 사람도 성적욕망을 푼다. 풀어야 하고.


예술이란 이런 욕망을 드러내기를 주저 없이 하지만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야 한다. 안 그럼 외설이 되니까.


단막극과 소설의 마지막은 좀 다르게 끝이 난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김 형사가 아내의 맨발을 만지면서 끝난다. 그 더러운 이불을 빤 아내의 발을 만지면서. 이 이야기는 지경희와 사진작가, 그리고 김 형사. 이 세 사람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등장하는 네 명의 남녀가 인간을 대변하듯이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https://youtu.be/vBDwGgQqs2Y?si=qc98NaSgu7NW1w0y


소설도 무척 재미있고 단막극도 아주 재미있다. 잘 만들었다. 그러나 몇 년 후에 영화 주홍글씨로 다시 나오면서 비극이 된다. 주홍글씨는 원작이나 단막극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한다.


변혁 감독이 김영하 소설가의 ‘사진관 살인사건’과 ‘거울에 대한 명상’ 단편 소설을 섞어서 만드는 바람에 이도저도 아닌 영화가 되어 버렸다.  


욕망을 드러내는 방식이 위에서 세븐이나 마돈나, 김영하 원작 소설이나 단막극과는 다르다. 표층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이 너무 과하다. 그저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만 영화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거울에 대한 명상은 동성연인인 두 여자와 그 여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 두 여자는 학창 시절에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아픔을 나누면서 두 여자는 사랑을 한다. 그런데 한 여자가 그를 만나면서 두 여자의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거울이라 여겼던 한 여자의 배신으로 한 여자는 보란 듯이 그와 결혼을 한다. 그는 버려진 차 트렁크에서 한 여자와 갇혀 죽으면서 세상에 거울은 없다고 소리를 지른다.


주홍글씨는 이런 바탕으로 시작하여 그 속에 사진관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 그 설명할 수 없는 건조하면서도 축축한 인간의 속내를 말하는 이야기다. 김영하 소살가의 이 소설은 단편 소설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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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디를 가나 눈에 띄는 문구가 ‘탕후루 반입금지’라는 문구다. 이 문구가 아이스크림 가게, 스티커 사진 가게, 화장품 가게 앞에 떡 하니 붙어 있다. 요즘은 이 탕후루가 반갑지 않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이 탕후루가 인기다. 아이들은 탕후루에 빠져서 엄마를 조르기 일쑤다. 탕후루는 보통 사오천 원 정도 하는데 칠 천 원 하는 곳도 있다.


어떤 전문점에서는 고액의 아르바이트비를 줄 테니 탕후루 직원을 구하는 소식이 뉴스에 뜨기도 했다. 상상 그 이상의 인기를 얻는 탕후루의 가장 큰 문제점은 들어가는 설탕이 과하다는 것이다. 설탕에 환장하는 한국이 걱정이라는 말이다. 공중파에서도 탕후루에 대해서 다루고 있으니 유튜브에서 잘만 다루면 영상 조회수가 대박을 친다. 그러다 보니 먹방 유튜브 들이 너도 나도 탕후루를 먹는 영상을 올렸다. 이를 본 아이들은 너무 맛있게 먹는 모습에 탕후루 전문점으로 달려간다.


이와 더불에 지금 가장 핫 한 소식은 아이폰 15의 발열상태다. 또 떨어트렸더니 깨졌다거나, 티타늄이 너무 약하다는 문제점을 여기저기서 다루고 있다. 빌어먹을 테크튜브들 전부, 몽땅, 1도 빠지지 않고 아이폰 15에 대해서 영상을 만들어서 올리고 있다. 그게 그들의 일이니 뭐 어쩌겠나 싶지만 예전만큼(아이폰 초창기) 기기들에 대해서 인기가 떨어져서 요즘은 설레발들이 늘어났다.


아이폰이니 갤럭시니 새로운 제품이 출시가 되면 언제나 문제점이 영상으로 떠돌아다녔다. 출시가 되면 휘어짐, 구겨짐, 그린끼, 카메라 문제, 고스트 현상, 플레어 등 늘 문제가 생겨났고 그에 따라 유튜버 놈들이 이런 문제를 아주 큰일 난 것처럼 영상을 제작해서 올렸다. 안 그런 유튜버도 있지만 대체로 자극적으로 영상을 만들어야 조회수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안 그런 유튜버보다 그런 유튜버가 더 많았다. 큰일 난 것처럼 영상을 제작해서 올려야 자극이 되고 곧 조회수로 돈으로 연결이 된다. 관심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요만한 문제도 이만큼 큰 문제로 영상을 제작한다. 그래야 이슈가 되고 공중파 뉴스에도 나올 수 있으니까.


그런데 개인적으로 아이패드를 지금까지 총 4대를 구입해서 사용하는 동안 그런 문제점 때문에 아이패드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었다. 구겨지거나 휘어지거나 스크롤올 내릴 때 무슨 문제 같은 것들이 있었냐 하면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서브로 아이폰4를 사용하고 있는데 아이폰 4가 나왔을 때 손가락을 어디에 갖다 대면 안테나가 뜨지 않는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현재 애플에서 아이폰의 새로운 발표를 하면 테크튜브들이 미국까지 건너가서 그놈의 팀쿡 하고 사진 한 번 같이 찍고 성덕인 양 인정하고 누가 누가 더 빨리 소식을 올리냐 내기를 하는 것 같아졌다. 그런데 이거나 그거나 저거나 다 비슷비슷한 내용뿐이다. 정말 현명한 테크튜브 몇몇은 그들처럼 우르르 유행에 딸려가지 않고 좀 시간을 뒀다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된 영상을 올린다. 잘 보면 후자 쪽이 훨씬 인기다. 후자 테크튜브들, 즉 현명한 인간들은 이제 다 안다. 우르르 가서 비슷한 영상을 올리고 팀쿡과 사진 한 번 찍고 좋아하는 따위의 영상은 필요 없다는 것을.


아이폰 3이나 아이폰 4, 5가 나왔을 때만큼 혁신적인 변화가 없으니 그 외의 것들에서 영상을 만들 수밖에 없으니 설레발이 늘어나는 것이다.


탕후루도 마찬가지다. 탕후루 달겠지, 나는 먹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탕후루 하나에 들어가는 당분이 콜라 한 잔에 들어간 당분보다 적다고 한다. 그 외 여러 감미료가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일단 과일이라도 들어가잖아. 콜라나 사이다에 과일은 들어가지 않는다. 탕후루는 비싸니까 또 자주 먹지 못할 테고. 아이들 같은 경우 부모가 좀 제재를 해야겠지. 당연한 말이지만.


오징어 게임에 나왔던 달고나. 그 달고나 열풍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달고나 해 먹는 사람이 있을까. 얼마나 열풍이었나. 생각해 보면 굉장했다. 줄 서서 달고나 해 먹고. 근데 2년 정도 지난 지금 달고나 해 먹는 풍경을 볼 수 있냐면, 볼 수 없다. 사라졌다. 거의 없어졌다.


달고나는 그냥 설탕이다. 이 달고나를 먹고 자란 어른들 같은 경우 전부 당분 때문에 지금 고생을 하지는 않는다. 설탕을 가열하여 녹인 다음 소다를 뿌려 먹는 이상한 음식이다. 그냥 설탕을 입에 넣는 수준이다. 가격도 저렴해서 어릴 때 몇 번이나 해 먹었다. 그런데 그 당분 때문에 지금 어른들이 전부 골골거리지는 않는다.


거기에 비하면 탕후루는 양반이다. 그렇게 유튜브나 뉴스에서 설레발을 칠 거리가 되나 싶다. 이는 깊게 파고들면 사회적 문제보다는 사회적 문제를 가장한 정치적인 문제에 가까울 수 있다. 설탕 왕창 들어간 코카콜라는 늘 어쩌지 못하면서 탕후루 같은 소규모에는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사회적인 문제에 있어서 지금 정부는 국민들을 위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것은 아닐까. 국감에 탕후루 업체 대표까지 불렀다고 한다. 부르려면 설탕 회사 대표를 불러야지 거기는 대기업이라 손을 댈 수 없으니 늘 만만한 사람들을 불러 조지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티브이를 보다 보면 흥이 확 깨지는 게 살인을 하고 딱 서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에서 모자이크가 된다. 이 부분 때문에 몰입이 깨진다. 담배 피우는 게 너무 나쁘고 안 좋다고 해서 티브이 영상 속에 등장하는 흡연장면은 전부 모자이크다. 담배가 인간에게 해롭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해로운 것들은 시청자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겠다는 결의 같은 것이 보이는 처방이라고 지들은 생각하겠지만 설레발이다.


담배, 물론 인간에게 나쁘지만 따지고 보면 담배보다는 술이 인간에게 더 해롭다. 술을 마시고 만취한 채로 운전을 하다가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술에 취해 칼부림을 하고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시비를 건다. 명절에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다가 욱 한 마음에 가족을 찌르기도 한다.


담배는 광고도 없고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만 술은 이상하게 권장하는 분위기다. 이상하잖아. 맥주 - 각종 맥주, 하이볼, 소주 광고는 죄다 예쁜 연예인들이 나와서 술이 맛있으니 많이 마시라고 한다. 소주 광고는 이효리 이후 그 시기에 가장 잘 나가는 연예인이 광고를 한다. 요즘은 소주병도 예쁘게 만들어서 더 많이 구입하게 하려는 속셈이 눈에 드러난다.


또 술에 관한 드라마도 있다. 술꾼 도시의 여자들처럼 술에 관련된 드라마에서는 술을 찬양하며 미지근한 소주가 어떻다느니, 술을 권장하는 분위기다. 만취해서 꽐라가 되면 세상이 자기 것인 양 이야기가 이어진다. 드라마에서 술 마시는 장면은 너무나 맛있게 이어진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크햐. 사람들은 기분 좋아한다. 그러나 담배 한 대는 모자이크다. 아니 피우는 장면도 거의 없다.


담배와 술 중에 타인에게 피해를 더 주는 건 당연하지만 술이라고 생각한다. 담배로 패가망신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술로 가족이, 가정이, 자신이 망가지는 경우는 허다하다. 영화 속에서 라면에 소주 마시는 장면은 아무렇지 않게 내보내면서 어째서 담배 피우는 장면은 모자이크인가. 이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담배 냄새를 싫어한다. 그러나 이건(영상 속 모자이크 처리건) 그것과는 무관하다. 담배연기가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고는 하나 만취한 사람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큼 표층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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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기념우표, 너무 예쁘네 ㅋㅋ


추석에 모인 가족이 전부 카페에 간다고 외출을 하고 드디어 집에 혼자 있게 되었다. 고작 몇 명 안 되는 가족인데 음식은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모두 카페에 간 김에 저녁도 먹고 올 듯하니 이 많은 음식은 전부 내가 먹어 치워야 한다.


그러다가 잠이 와서 잠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다. 꿈이 강렬해서 일어났을 때 더 피곤했다. 어린 시절 낮잠 자고 일어났는데 눈이 붓고 아픈 것처럼 피곤했다. 꿈에서 나무에서 떨어지는 꿈이었다. 그런데 떨어지는 건 내가 아니고 곰이었다. 곰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어딘가에서 한 번 봤을 법도 꿈에서 본 게 처음이었다. 영화나 뭐 이런 데서 봤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무에서 곰이 떨어지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그런데 꿈에서 곰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굉장히 무서웠다. 곰은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땅으로 떨어졌다. 곰은 자신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곰의 배가 반으로 갈라지면서 내용물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 모습이 곰이라기보다 나의 모습처럼 보였다.


일어나니 몹시 피곤했다. 아직 가족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조카는 부쩍 커서 165가 넘었다. 이제 더 이상 삼촌 무릎에 앉아서 놀던 아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조카가 그렇게 무럭무럭 자란다는 건 주위 어른들이 무럭무럭 나이를 먹고 있다는 말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지만 먹기 싫다고 안 먹을 수도 없다. 나이가 들었다는 건 명절에 더욱 느낄 수 있다. 이만큼 차려놓고 요만큼 먹었는데 배가 부르다.


요즘은 ‘힙하게’와 ‘유괴의 날’을 재미있게 본다. 극장개봉작이나 OTT 영화들이나 미드보다 한국 드라마가 훨씬 재미있다. 전부 모순적이지만 모순적이라서 좋다. 모순이란 인간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념, 이념 같은 것이다. 인간사회의 가장 모순은 정치인들이다.


침팬지 폴리틱스를 보면

침팬지, 이 침팬지들 중에서 우두머리 수컷 침팬지가 모든 암컷 침팬지를 독식하지 못한다. 아니 독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반란이 일어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침팬지 사회에서도 아침에 일어나면 서열이 낮은 침팬지가 서열이 높은 침팬지에게 인사를 한다. 인사는 침팬지들 간의 존경과 복종을 의미한다. 인사를 하는 방식은 인간과는 다르게 제각각이다. 머리를 흔드는 놈이 있고, 허리를 구부리는 놈, 손을 흔드는 놈 등. 다양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서열이 높은 침팬지에게 인사를 한다.


유인원들의 정치를 보면 그리고 인간의 정치까지 모든 정치를 통합해서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데 이상하게 우두머리, 권력을 거머쥐면 보안관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힘이 없는 자들을 위하는 정치를 한다. 이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유전자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회적 행동, 심리적 요인 등 우리의 이런 생물학적 기초는 진화를 통해 만들어졌다. 인간의 정치적인 행위 즉 인간의 심리가 어떤 생물학적 기초가 있느냐 한다면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 유전자가 위계와 서열, 질서를 만드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확립한다. 이게 바로 정치의 시작인 것이다.


서열을 만드는 습성, 이런 행위를 유발하는 심히, 그런 심리와 행동의 기저에 놓여있는 유전자는 침팬지와 인류가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유전자는 인류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며 변하지 않는다. 서열의 방식은 좀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이런 유전자는 변하지 않는다.


서열이 낮은 침팬지가 서열이 높은 침팬지에게 인사를 하는데 어느 날 한 수컷 침팬지가 인사를 하지 않는데 이게 바로 정권교체의 반란이 시작되는 시기다. 이때 유혈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원만하게 교체가 이뤄지지 않을 때 유혈사태가 일어나는데 죽어 나가기도 한다. 이럴 때 우두머리는 보안관 행동을 한다. 우두머리가 되면 약자 편을 든다. 약자 편을 들어서 수를 맞춘다. 그런 행동을 많이 하는 유전자를 가진 침팬지가 자손을 많이 퍼트렸다. 우두머리가 되어서 지위를 오래 누릴 수 있고 암컷을 많이 가질 수 있는데 우두머리마다 보안관행동을 하는 빈도가 다르다.


암컷 침팬지들도 리더가 있다. 나이가 많고 친한 암컷이 많은 암컷이 우두머리 역할을 한다. 암컷 우두머리도 싸움에 개입을 한다. 그런데 수컷과 방식이 다르다. 수컷은 보안관 행동으로 자신의 지지 침팬지들을 모으지만, 암컷은 공감의 바탕을 둔 개입을 한다. 자기가 친한 침팬지의 편을 든다. 암컷 우두머리와 수컷 우두머리의 싸움 방식은 다르다.


암컷 우두머리는 수컷 우두머리의 음식을 손에서 들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수컷 우두머리가 가만히 있는 경우도 있다. 암컷은 사적이다. 친한 암컷의 편을 드는 정치를 펼친다. 그러나 수컷은 약자의 편을 든다. 80%가 그렇다고 한다. 만약 100% 그러면 내부의 반발이 일어난다는 것을 침팬지가 안다고 한다.


침팬지들도 연합을 잘하는 수컷이 인정을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 수컷이 도전해 와서 우두머리 자리를 잃게 된다. 사자처럼 1대 1로 우두머리 싸움을 하지 않는다. 1이 2에게 우두머리 자리를 내줄 때에는 2는 3과 연합을 해서 1을 몰아내는 것이다. 권력이라는 건 살얼음 판이다. 적절한 보안관 행동과 20% 정도로 공감에 둔 정치를 해야 우두머리 자리를 이어갈 수 있다.


우두머리 자리를 수탈하는 과정에서 연합을 해서 우두머리의 고환을 잘라 죽이는 경우도 있고, 강이나 물에 빠트려 죽이기도 한다. 연합을 잃어버리면 권력자의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공감의 정치를 하지 않으면 고립되어서 쫓겨 날 수 있다. 집단동조심리에서 공동체에서, 집단에서 소외되는 공포는 죽음의 공포에 맞먹는다.


정치인 혼자 일 때는 학벌도 좋고, 사람들에게 지지도 많이 받고, 인물도 좋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 속에 들어갔을 때에는 실력차이가 드러남에 따라 하지 않아도 되는 말, 이상한 말, 개소리 같은 말을 내뱉게 된다.

 2005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의 해리 G 프랭크퍼트 교수는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책을 펴냈다. 영어 제목으로는 ‘On Bullshit(온 불싯)’이다.


개소리가 넘쳐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광고주는 매출을 올리려고 개소리를 하고,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 개소리를 한다. 그들은 어떠한 타당성 있는 말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거라 생각되는 아무 말이나 혀라 한다. 일단 잘 알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 다음 개소리들이 나오는 것이다.


개소리를 하는 인간들에게는 어떤 것이 진짜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거짓말쟁이들은 진실이 아닌 무엇인가를 진실로 대체하여 그것을 숨기려 하지만 개소리꾼 들은 진실을 숨기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듣는 이를 조작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관건이다. 진실이 무엇이든 그들에게는 상관이 없다.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


개소리가 좀 더 음흉하다 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라면 식별이 힘들다는 것이다. 거짓말은 구체적인 움직임을 갖는다. 알려지거나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개소리는 그렇지 않다. 모호하기만 하다. 뭐가 잘못됐고 어떻게 된 거고 왜 불쾌한 거에 대해서 손가락질하기가 힘들다.


요컨대 마음을 열고 하늘을 한 번 보라는 말에는 옳고 그름의 식별이 불가능하다. 정치인들은 개소리와 거짓말을 거듭한다. 개소리를 하는 이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 권력자의 눈 밖에 나서는 안 되는 것, 공천을 받는 것이지 국민을 위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정상으로 간주되고 받아들여지는 수많은 개소리들이 있다. 프랭크퍼트 교수는 그것들이 진실에 대한 존중을 악화시킨다고 생각했다.

우리 주위에 개소리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개소리를 매일 듣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아무튼 명절 연휴가 지나가고 있다. 역시 화살의 속도만큼 빠르게 지나간다.



며칠 전에 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와 함께 조금만 걸으니 좀 쉬었다가 가자고 했다. 그리고 좀 걷다가 쉬었다가 걷고. 그러기를 반복해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우물쭈물하더니 발톱이 몇 개 없다고 했다. 선뜻 그게 와닿지 않았는데 그는 발톱이 조금이라도 자라면 깎아야 한다고 했다. 발톱은 손톱보다 자라는 속도가 느리고 양말 속에 있어서 자주 깎게 되지 않는다. 티브이 예능 라디오스타에서 김국진은 발톱은 6개월에 한 번 깎는다고 했을 정도로 발톱은 자주 깎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발톱이 조금이라도 자라면 바짝 깎아 버렸다고 했다. 왜 그런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저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딘가 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발톱이 신경 쓰였다. 한 번은 발톱이 조그만 자랐을 때 바짝, 아주 바짝 깎으면 좀 덜 신경이 쓰일 거라며 바짝 깎았다.


그렇게 발톱을 바짝 깎고 또 깎았다. 그러다 보니 발톱 몇 개가 사라져 버렸다. 발톱 따위 붙어 있으나 마나 한 줄 알았는데 없어지니 걷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발톱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발톱은 인체에서 양말과 신발 속에 숨어서 잘 보이지 않는 가장 하찮은 존재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욱 잘 관리를 해줘야 한다고 했다. 발톱이 못 생기면 사람들은 입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그 못생긴 발톱으로 그 사람을 판단해 버리기도 한다. 또 이상하지만 나이가 들면 발톱의 색이 변하고 모양도 틀어지며 괴상하게 변한다. 어떤 사람은 상대방의 발이 예쁘면, 발톱이 예쁘면 그 사람을 맹목적으로 좋아해 버리기도 한다.


그는 출장이 잦은 통신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잘 걸을 수 없어서 결국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처음에는 참고 걸었으며, 발톱 부분에 붕대도 감고 걸었고, 병원에도 갔는데 날이 갈수록 걷는 행동에 제약이 많았다고 했다.


우리가 가는 곳은 교정전문센터였다. 나는 그를 그곳까지 가는데 같이 가주는 것이었다. 걸음걸이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는 다리의 모양까지 변형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 교정 센터를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매일 밤마다 귀 안에서 벌레가 속삭입니다. 벌레가 말을 해요. 발톱을 깎아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발가락이 썩는다고 했어요. 벌레는 그렇게 매일 밤 나타나더니 요즘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어요. 덕분에 잠을 잘 잡니다.


얘기를 듣는 동안 목적지까지 다 왔다. 그는 나에게 인사를 하고 약간 이상한 걸음걸이로 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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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왔다. 다가온다, 로 하고 싶지만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왔다, 로 표기했다. 추석이 다가오는 이 시기가 가장 애매하다. 일 년 중 가장 싫어하는 시기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과 가장 싫어하는 시기가 붙어 있다. 이런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날이 흐리고 계절의 변화에 몸도 마음도 힘들어진다. 강한 기시감에 매일 밤 어딘가를 향해 멍하게 시선을 두곤 한다.


명절을 준비하느라 사람들이 행복해야 하는데 나를 비롯해서 그런 사람들을 잘 찾아보기 힘들다. 일주일 동안 계속 비가 오락가락 오다가 하루 날이 좋았다. 노을을 오랜만에 보았다. 노을은 마치 비 사이를 뚫고 나온 오렌지빛 크림 같았다. 너무나 맑은 오렌지빛이었다. 나를 한참 머물게 만들었다. 3분 정도 노을을 계속 바라보았다. 3분은 짧은 시간이지만 긴 시간이었다.  

머리가 텅 비어버릴 것 같고, 대낮에 깊은 꿈을 꾸는 것 같고,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할 수 없는, 그런 순수한 심정을 품은 것 같았다. 이 문장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주인공이 16살 소녀를 만났을 때 들었던 감정이다. 애매한 계절에 노을을 만나면 이런 감정이 들곤 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얼마 만에 보는 노을인가. 오늘이 지나면 이틀 동안 또 엄청난 비가 내릴 거라고 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진중하고 아름답고 멋진 시간이다. 이런 시간은 찰나로 지나가기 때문에 노을이 지는 모습을 진중하게 바라본다. 매직아워의 시간은 계절의 경계에서 더욱 도드라지지만 찰나로 만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이라 더욱 소중하다.


하늘이 침착하게 내려앉는다.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 누군가도 지금쯤 매직 아워의 오렌지 빛 하늘을 보고 있으리라 믿어본다. 마지막까지 소명을 다하는 일광의 흔적과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밤의 시작이 마주하면 미라클 오렌지 빛이 대기에 물감을 쏟은 것처럼 퍼지기 시작한다. 정중하게 꺼져가는 태양의 깃털처럼 내려앉은 어둠과 만나 소박하고도 화려한 교향시를 만들어 낸다.


이 시간만큼은 그린데이의 '9월이 지나면 나를 깨워주세요'를 듣자. 이 노래를 부르는 그린데이는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던 빌리 암스트롱 녀석. 그린데이는 그냥 신나게 노래나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시간은 녀석들을 언제나 악동으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9월이 지나면 나를 깨워 달라는 그린데이의 노래를 이맘때 듣고 있으면 언제나 좀 힘들다. 그린데이가 너무 성숙해져서 힘들고, 이제 나 역시 펑크 록에 미쳐있지 않아서 힘들다.


9월은 늘 8월이 꺼져가는 계절이라 힘들다. 이런 마음을 대변하는 영화가 독립영화였던 ‘9월이 지나면’이다. 영화는 청춘의 그 순수한 아름다움을 잘 말하고 있다. 그 속을 벌리면 알 수 없는 아픔이 도사리고 있음도 보게 된다. 조현철이 기타를 들고 그린데이의 ‘9월이 지나면 나를 깨워주세요’를 부른다. 그때 눈을 감고 노래를 듣던 지연이 천천히 눈을 뜨며 승조를 바라본다. 몹시 마음에 드는 장면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8kLEieEFI


제목이 뭐예요?

9월이 지나면 깨워주세요. 내 인생의 노래야.  

왜요? 9월에 무슨 일 있었어요?

그냥 9월은 항상 좀 힘들더라고.

지금도요?

지금은 그냥 그래.


덤덤하다. 그리고 그 덤덤함 속에 덤덤함을 벌리고 다른 감정의 무엇인가가 고개를 들려고 한다. 그게 9월이다. 9월은 그래서 힘들다. 큰 소리로 힘들어! 가 아니라 그냥 좀 그래. 조현철은 그런 마음을 표현했다. 무엇보다 영화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건축가들이 나와서 좋다. 특히 안도 다다오.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작은 그림자들이 일어나는 시간.

사색하는 자들은 운명을 생각하는 시간.

어둠을 향한 긴 호흡을 할 시간.

아마추어 소설가들은 고독하게 홀로 되려고 준비하고 모두가 시인으로 향해 문을 여는 시간.

낮 동안 잠들어있던 건물들은 이제부터 가장 근사한 일을 젊은이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분주해지는 시간.


이제 곧 어둠 속으로 녹아들겠지. 나는 조깅하러 나왔으니 열심히 땀을 흘릴 것이다. 불청객일 것 같았던 오렌지빛은 어느새 주어가 되지만 이내 자리를 내어준다.


낮과 밤이 주연과 조연을 바꾸는 마법의 시간의 초연함을 자연은 연주한다. 우리는 그대로 그 연주를 마음을 다해 들을 뿐이다. 자연에 귀를 기울이면 당연하게도 그들은, 자연은 듣는 이를 위해 연주를 해준다. 복잡하고 자질구레한 설명은 생략한 채.


그린데이의 노래를 들어보자. 빌리 조 암스트롱이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만든 노래. 9월이 지나면 나를 깨워달라는 그 노래. https://youtu.be/NU9JoFKlaZ0?si=fNBBZhhPnzn1q_4n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속에는 두 사람의 연인이 등장한다. 빌리 엘리엇으로 유명한 제이미 벨과 에반 레이첼 우드. 두 사람은 그야말로 풋풋한 청춘이다. 에반 레이텔 우드는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아기아기한 모습의 갓 사랑에 눈을 뜬 소녀 같은 모습이다.


잘 알겠지만 이 두 사람은 이후 진짜 연인으로 발전을 하여 결혼까지 한다. 에반 레이첼 우드는 웨스트 월드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그 안에서도 독보적인 모습이었다. 영화 카조니어에서 올드 돌리오로 나온다. 주인공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돌리오에게 힘을 내! 넌 행복해야 해! 하게 된다. 너무 좋은 영화였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3271


그린데이의 노래를 듣자. 9월이 지나가니까. 9월이 되면 힘드니까. 9월이 지나가면 깨워주세요. 빌리 조 암스트롱도 나이가 들었지만 머릿속 한 구석에는 혀 내밀고 악동의 암스트롱이 언제나 존재해 있다.


https://youtu.be/kTdoKP2QIR4?si=GLutuwRD2wZXkHm_


오렌지빛이여 빛나라


9월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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