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단순한 리듬은 그대의 영혼에 좋다. 단순하고 단순하게 흐르는 리듬이 때로는 격렬하게 마음을 뒤 흔들기도 한다. 단순한 반복, 반복이 인간을 천상에 도달하게 한다. 천상에 당도했던 자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지상으로 하강하기도 한다. 그런 음악이 세상에 존재한다.


시인 박정대는 자신의 시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을 찬양했다. 산울림처럼 단순한 음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뛰어난 기교가 있는 것도 아니며 현란한 솜씨를 뽐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깊은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착각에 빠진다. 그 늪은 순수한 영혼 수십만 개가 뭉쳐 있는 늪이다.


담배연기를 빨아들이고 나면 세포는 격렬한 몸부림을 친다. 폐는 쥐어짜는 고통을 호소하고 혈관은 머리가 띵할 정도로 수축한다. 하지만 곧 후하며 연기를 내뱉고 나면 찰나로 세계가 바뀐다. 세상이 연기로 가득 차며 그 중심이 내가 있고 나는 연기 속을 걷는 주인공이 된다. 그날이 바로 퍼펙트 데이다.


바나나로 만든 마이크를 들고 니코가 노래를 한다. 니코의 음색에서는 니코킨 냄새가 난다. 나는 니코보다 루 리드의 목소리가 좋다. 그의 목소리는 순박한 물질이다. 그 물질은 지구 밖에서 온 물질 같다. 그 물질이 나를 이끈다.


사인 박정대는 이어서 루 리드에 대해서 시로 이야기를 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팩토리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착각이 든다. 앤디 워 홀의 팝 아트도 숨을 쉬고 에디 세즈윅의 방탕하고 외로운 자유가 연주 중간중군 나온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을 루 리드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보듬어 준다.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닐까.


시인 박정대의 시 제목처럼 그들은 진정 타락 천사이었거나 전직 천사였다. 순수한 물질로 똘똘 뭉친 그들의 늪과 같은 음악은 누군가를 닮았다. 눈으로 본모습은 변하기도 하고 잊히기도 하는데 손은 생생하게 그 누군가를 기억하고 있다. 도자기 같은 가녀린 목과 언저리 부분을 나의 손은 기억하고 있다. 그대의 목은 초현실 세계, 나는 그렇게 그대의 세계에 스며든다. 바로 퍼펙트 데이다.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 https://youtu.be/9wxI4KK9Z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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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3-08-02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VU 음악은 들을때마다 영감을 줍니다..

교관 2023-08-03 12:56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습니다 너무 좋아요 ㅎㅎ
 

장마가 지나가고 난 후의 도시는 그야말로 뜨거운 습도로 가득한 찜통이다. 대기에 가스층이 이렇게 두텁고 짙게 껴 있는 날들을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조깅을 하려고 강변으로 나가면 습 하면서 무겁고 질척이는 습도가 입 안으로 훅 들어오는 느낌이다.


오늘은 절대 외출을 삼가라는 오후 2시에 조깅을 했다. 너무나 바싹한 햇빛에 모든 것이 말라비틀어질 것 같았다. 움직이면 땀이 났고, 달리니까 땀이 줄줄줄 흘렀다. 그럼에도 산스장에는 멋지게 기구를 드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운동의 맛있음을 아는 사람들이다. 고통의 참맛을 안다. 아무튼 해가 가장 이글거릴 때 두 시간 정도 조깅 겸 걷고 몸을 풀었다. 달리는데 사람들이 저런 미친놈을 봤나 같은 표정으로 나를 훑었다.

그래서 별로냐 한다면 그렇지 않다. 조깅하기에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달리자마자 땀이 나기 시작하는데 평소에 흘릴 수 없는 땀이 줄줄 흐르는 경험이 나쁘지 않아서 괜찮다. 폭염이 오는 여름에 늘 하는 말이지만 이렇게 더운 날에 조깅을 하고 나면 저녁에 부는 덥덥한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아니 시원하다.


에어컨 바람 앞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너무나 덥덥하고 답답한 자연의 바람이겠지만 땀을 듬뿍 흘리고 맞이하는 자연바람은 시원하다. 거기에 바닷가에 살고 있으니 바닷가에 부는 바람이 그렇게 덥지 않다. 올해도 어김없이 몇십 년만의 더위라는 말이 나왔다. 맞는 말이기는 하나 매년 여름에 그런 말은 늘 나왔다.


하지만 올해는 체감상 다른 해들과 좀 다르다. 어쩌면 내가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지도 모르지만 기록적인 폭우에 들끓는 도시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UN 안토니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올해 7월 27일 자로 지구 온난화는 끝났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끓는 지구의 시대가 되었다고 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각 나라에서 폭우와 폭염으로 사람들이 시달리고 있고 사망하는 수도 늘어가고 있다. 사무총장은 공식적으로 이를 보며 두렵다고 표현했고 이는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매년 여름이 더웠는데, 매일 일상을 기록하다 보니 작년, 재작년 여름에 적어 놓은 글을 보면 그때에도 이 비슷한 이야기를 써놨다. 특히 2021년도 이맘때에도 너무나 더운 폭염에 코로나가 한창이나 늘 마스크를 써야 하기 때문에 더위 조심하라는 재난문자가 자주 왔었다.


그때에도 엄청난 더위가 몰려와서 조심하라고 했지만 나는 매일 조깅을 하기 때문에 강변으로 나가 달렸다. 신나게 달렸다. 한 20분 정도 달렸을 때 내 앞에서 달리던 남성이 느닷없이 쓰러졌다.


남성을 약간 그늘로 옮기고 119를 부르고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괜찮으니 갈길을 가라고 하고(그래봤자 구경한다고) 119가 도착하는 도로와 강변이 좀 떨어져 있어서 도로에 올라가서 119 구조대원들을 데리고 오고. 아무튼 그때 코로나 기간이라 119 구조대원들은 그 무더위에 방역복까지 껴 입어서 아우 정말. 그날 흘렸던 땀이 정말 한 바가지였다. 그때의 일을 자세하게 기록해 놨다.


요즘은 달리고 있으면 달이 따라온다. 그래서 달을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밋밋한 하늘에 달이 떠 있으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생각난다. 달은 루나틱과 인세인 두 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하루키의 일큐팔사에도 나오지만 서양의 달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데, 인세인은 천성적으로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게 바람직하고 루나틱은 달에 의해 즉 루나에 의해 일시적으로 정신을 빼앗기는 것이라 오래전 서양에서 루나틱은 달 때문에 일시적으로 미치는 것으로 그 사람의 문제를 달에게 넘기기도 했다.


이번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6에서 4화 ‘메이지 데이’에 그런 이야기를 잘 그려냈다. 주인공으로 데드풀 2의 재지 비츠가 나온다. 기생거머리 파파라치로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내는 더러운 짓에 넌덜머리를 내고 그만두다가 슈퍼스타인 메이지 데이가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고 그녀를 집요하게 추적하다가 약물에 찌들어 있는 모습을 파파라치들과 카메라에 담는다. 쇠사슬에 묶여 있어서 파파라치들은 특종이라며 사진을 담으면서 점점 메이지 데이 곁으로 간다. 그때 달이 뜨며 메이지 데이가 변한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짧은 영상 속에 잘 담아냈다.

조깅을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달이 떠 있다. 달은 어제의 그 달이다. 그러나 하늘의 구름은 어제의 그 구름이 아니다. 심지어 1분 전의 구름에서도 벗어났다.


달이 떠 있으니 하늘이 밋밋하지 않다. 그래서 달이 뜬 요즘의 하늘은 여러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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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의 소설은 딱 내 수준에 맞다. 지금의 수준이 어릴 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그때 읽었던 쥘 베른의 소설이나 지금 읽는 쥘 베른의 소설이나 별반 다름없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쥘 베른은 바다 밑이나 지구의 중간으로 막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지구 속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존재들이 나타난다. 재미있다. 지구 속을 과학적, 지구과학적으로는 지표와 멘틀과 핵 같은 거, 거친 땅과 땅과 땅 또 땅으로 이루어져 있겠지만 쥘 베른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지구의 중앙으로 가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미국의 할리우드 공포영화가 8, 90년대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둔 것처럼 바닷속 SF영화는 쥘 베른의 해저 2만 리 소설을 원작으로 하거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와 잠수정을 갖다 썼다. 쥘 베른은 1800년대 초기의 사람인데 정말 상상력 그 하나로 지구의 속과 겉, 하늘, 바다를 전부 표현했다.


2008년에 나온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도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을 각색해서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줄거리가 딱 내 수준에 맞는 이야기다. 형의 아들과 함께 오래된 책자를 들고 아이슬란드로 가서 한나를 만나 책의 비밀을 풀기 위해 모험의 세계, 즉 지구 중심으로 가게 되고 수많은 위기를 피해 형이 있었던 공간을 발견하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당시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는데, 지구 속을 탐험하는 SF 판타지 영화가 현실과 비슷하면 더 이상한 것 아닌가. 게다가 쥘 베른의 소설을 토대로 하고 있어서 상상력을 발휘해서 보면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다.  https://youtu.be/iJkspWwwZLM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이라 1, 2로 세계적인 배우로 떠버린 브렌든 프레이저다. 190이 넘는 키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로 할리우드 영화계에 등장해서 인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태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좋았다. 그래서 영화 판에 등장한 지 1년 만에 코믹 액션 영화 원시 틴에이저의 주연을 하게 된다.


그때 나이 서른 살인데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그녀는 조지 오브 정글이라는 영화에 같이 출연한 배우로 한 살 연상이었다. 그리고 브랜든 프레이저를 세계적인 배우로 오르게 만든 미이라를 찍게 된다. 대성공이었다. 엄청난 인기였다.


영화 미이라는 판타지 영화치고는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재미를 주었다. 007의 그녀 레이첼 와이즈의 미모도 찬란했고 모험과 공포, 그리고 미지의 존재가 전부 잘 어울렸다.


그렇게 승승장구만 할 것 같았던 브렌든에게는 벼락 맞는 소리를 듣게 된다. 첫 아이를 얻었는데 아들이 자폐증이라는 것이다. 병원에서 자폐 판정을 받는다. 그런데 아내마저 엄청난 위자료를 요구하며 이혼을 통보한다. 그 돈이 매달 1억씩 줘야 했다.


브랜든은 미아라를 촬영하면서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그간 영화를 촬영하며 액션을 하다가 다치고 골절되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감독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했다. 한 영화에서는 8번이나 내동댕이쳐져야 컷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결과 몸과 마음에 제동이 걸렸다. 우울증은 더욱 깊어졌고 전처는 자신을 사기꾼이라 몰아세웠다.


각종부상으로 수술과 재활로 7년을, 2000년대 초 권력과 부를 가진 제작자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매달 1억씩 10년을 양육비로 주면서 견뎌온 브랜든은 더 이상 의욕이라고는 1도 남아있지 않았다.


받아주는 영화사는 더 이상 없고 집 안에서 나오지 않는 그의 몸은 미이라를 찍을 때의 멋진 사람이 더 이상 아니었다. 몸은 점점 비대해졌고 머리카락은 거의 다 빠져나갔다. 자포자기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브랜든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블랙스완의 감독이었다.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맞는 배우가 없다고 해서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10년이 넘게 방치해 두고 있었는데 그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배우가 바로 브랜든이었다.


이 시나리오는 말이야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의욕이라는 곤 전혀 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야. 한 번 해볼래?  

그렇게 해서 브랜든은 죽음을 앞둔 인간을, 인간에 대한 인간의 구원과 사랑을 다룬 영화 더 웨일을 찍게 된다. 더 웨일에서 27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브랜든이 소리를 지르고 딸과 삶을 대하는 연기에 빠져 들 수밖에 없었던 건 그의 삶을 그대로 연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 장면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시상식에서 그의 수상소감을 들으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중학생 때인가, 아무튼 그때 즈음 쥘 베른의 소설을 옆구리에 끼고 읽으며 우와우와 했다. 이게 막 눈앞에 미지의 세계, 지구 속 또 다른 세계가 화악 펼쳐졌다. 유치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잃어버린 세계는 재미있다. 브랜든 프레이저의 모습을 보는 것도 꽤 좋다.


브랜든이 수상식에서 말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 있다고 느끼신다면 이 말을 기억하세요. 여러분도 저처럼 다시 도전하세요. 빛을 향해 가세요.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https://youtu.be/wRz-UrBoI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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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여름방학을 생각해 보면 아침에 눈을 뜨면 시원했고 상쾌하게 일어났다. 당연하지만 에어컨은 없었다. 그리고 선풍기를 켜 놓고 잠이 들면 입이 돌아간다는 소문이 있어서 시간을 한 시간 정도로 맞춰 놓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더위 때문에 잠에서 깨거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불쾌하게 일어난 기억이 없다.


홑이불까지 덮고 잠들었다가 아침이 되면 마당에서 들리는 새소리에 눈을 뜨고 일어났다. 무엇보다 습도가 지금과 같지 않아서 더위도 맑은 더움이 가득했다고 생각이 든다. 그늘에서는 시원했고 햇빛이 비치는 곳에서는 더웠다. 밖에서 신나게 놀면 코끝이 타서 벗겨지기도 했다.


요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아파트 단지 내 매미소리와 새소리가 들리는데 상쾌하지는 않다. 왜 그럴까. 기후변화 때문일까. 어른이 되면서 몸이 점점 노화가 되어서 그럴까. 잠이 들어도 깊게 잠들지 못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잠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다. 고로 짧은 시간을 잠들어도 깊게 잠들었다가 일어나면 상쾌한데 전혀 잠에서 깨어나도 상쾌하지가 않다.


이건 아무래도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현재 극장에 쏟아지는 재미있는 영화도 재미가 없게 느껴지는 건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영화가 전혀 못 따라오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왜 이렇게 무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일까. 분명 예전에도 이 정도로 무서운 일들이 일어났었겠지만 휴대전화가 없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잘 모르고 살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물에 잠겨 죽거나,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하기까지의 엄청난 고뇌까지 알게 된다. 길거리를 걷다가 칼부림에 목숨을 잃는 일을 실시간으로 접한다.


비가 좀 세게 내리면 불안하고 누군가 휘청거리며 다가와도 불안하다. 어제는 뉴스에 초등학교 교사에게 한 학부모가 교실에서 담임이 너무 밝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수해 때문에 공장에 물이 가득 차서 기계를 전부 못 쓰게 된 사람이 물을 빼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해서 관청에 연락을 하니 바다에 띄우는 기름 제거 막을 보내줬는데 이 비용을 정부에서 보상해 주는 게 아니라 나중에는 이 비용을 개인이 내라고 관청의 관계자가 말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를 하고 인력이 투입이 되어도 다리나 도로를 복구할 뿐이지 개인터전이 망가진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한 개인이 여름에 에너지를 다 쏟아내며 실컷 놀던 아이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면 매일 관리하고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베란다 찬장에 빗물이 새니 내일 실리콘을 쳐야 하고, 또 올 태풍에 대비해서 이번에는 새시도 갈아야 한다. 여름이 시작할 때 에어컨 점검을 하지 않으면 그걸 해야 하고, 빌려줬던 돈을 받을 시기가 다가오면 빌려간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병원에서 검진 날이 문자로 날아오면 그날은 시간을 비워둬야 하고, 아이가 있다면 여름에 먹는 걸 더욱더 신경 써야 한다. 어쩌다가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소아과가 많이 없는 요즘은 아이가 아프면 더럭 겁부터 난다. 하나를 넘기면 두 개가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른이 되어서 아이처럼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 푹 잠들 수 없는 여름밤을 보낼 수밖에 없다.


나는 거의 매일 조깅을 해서 인지 일단 누우면 그대로 잠이 든다. 특히 요즘에 조깅을 하면 땀이 땀이 아니라 수돗물처럼 흘러내린다. 조깅을 하고 목이 마를 때 보통 사람들은 시원한 물을 마시지만 나는 대체로 미지근한 물을 마신다. 그렇게 마시는 것에 습관이 들리면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것보다 훨씬 갈증들 걷어준다. 그리고 저녁을 먹을 때 시원한 맥주에 얼음을 동동 띄워서 한 잔 마시면 좋다.


오늘도 저녁에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풍경은 고즈넉했다. 아주 평온하고 편안하게 보였다. 나는 조깅을 해서 땀이 뻘뻘 났지만 가만히 서서 고즈넉한 풍경을 잠시 감상했다. 낚시꾼의 모습은 고기보다 세월을 낚는 모습처럼 보였다. 일희일비하지 말자,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평일에 하루종일 낚시를 하려면 아무래도 쉬는 날이거나 일을 하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름대로 개개인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2, 3년 전의 이맘때 저녁 시간에는 아주 붉은 노을이 하늘을 덮었는데 올해 여름은 습도가 높고 습기가 가득한 우기 속의 나날들이 많았다. 그래서 조깅을 하면 땀이 어마무시하게 흐른다.


그렇지만 고즈넉하다. 이렇게 서서 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불안에서 조금 멀어질 수 있다. 길냥이 녀석도 강을 바라보다가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고개를 돌려 뭐야? 니?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저 길고양이도 힘들어서 강에 뛰어들려고 그러나? 같은 생각이 잠시 들었다. 자살에 관한 책자를 많이 출간한 인문학자 마르탱 모네스티에의 ‘자살백과’의 402페이지에는 고양이의 자살에 과한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바닷가의 어부 집에서 공생을 하던 암고양이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다. 다리를 저는 암고양이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주인을 따라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같이 배에 올랐는데 고양이가 물에 뛰어들었다. 물에 빠져 죽는 걸 주인이 건져서 수건으로 물을 닦아내고 볕이 드는 옆에서 털을 말리게 두었더니 다시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다.


칼부림으로 20대 청년을 죽은 그 사람은 모두가 행복한데 자신만 불행한 것 같아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행복하게 매일을 보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대체로 행복하지 않게 보내다가 한 번씩 행복을 맛본다, 맛보는 그 행복은 아주 짧고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 행복했던 기억으로 언제인지 모를 다가올 행복을 위해 연소시키며 살아간다.


매일 행복하다가 한 번 불행한 게 나은 삶일까, 늘 불행하다가 한 번 행복한 게 괜찮은 삶일까. 매일매일 돈이 넘쳐난다고 해도 매일매일 행복할 수 없다. 우리보다 행복을 많이 느끼는 아이들 역시 스트레스를 받고 그 순간은 짜증을 낸다.


일행이 옆에서 인스타그램 속 타인의 멋진 사진들을 보며 부러워한다. 인스타그램의 멋진 사진만 보지 말고 이 고즈넉한 풍경을 한 번씩 보며 행복보다는 덜 불행한 것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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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7-26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기는 인생, 보기에도 흐뭇하네요.

교관 2023-07-27 11: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이렇게 반건조 가자미를 잘 말리면? 아니 조금 삭히면 홍어처럼 킁 하고 비릿한 맛이 나면서 아주 풍미가 오른 맛있는 가자미가 된다. 기름을 두르고 프라이팬에서 잘 구워주면 기존의 부드럽기만 한 가자미에서 맛볼 수 없는 풍부한 아미노산의 맛이 확 난다.


사실 아미노산의 맛이 뭔지는 모르지만 보통 우리가 먹는 부들부들한 가자미 구이 맛보다는 훨씬 맛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그 속에 느껴지는 또 다른 맛이 아미노산의 맛이라고 하자.


구을 때 방울토마토도 같이 구우면 좋다. 토마토는 한 15개 정도를 같이 굽는다. 토마토에 가자미의 쿰쿰한 비릿함이 기름과 잘 버무려져서 토마토 역시 풍미가 확 난다.


이 정도의 비릿한 맛이 나는 생선구이가 나는 좋다. 예전에 비해서는 비린맛을 덜 찾아 먹게 되었는데, 예전에는 친구들이 으 할 정도로 비린맛을 좋아했었다. 대학교 자취를 할 때 왕왕 사 먹었던 음식이 꽁치통조림이었다. 자취생이 간단하게 먹기에 제일 좋은 식품이었다. 너무 좋아. 나는 꽁치통조림으로 요리를 해 먹지 않았다.


그냥 뚜껑을 따서 그대로 밥에 비벼 먹었다. 꽁치통조림은 그대로가 제일 맛있다. 찌개에 넣고, 국에 넣고 하면 꽁치의 그 맛있는 비린맛이 사라져서 별로였다. 그래서 자취방에서 술을 먹다가 만취에 가까워져 아이들이 안주를 찾을 때면 꽁치통조림을 통조림 그대로 버너에 살살 보글보글 데워서 그걸 안주삼아 먹었다.


그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녀석들이 우웩 우웩 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방 안에 온통 꽁치 비린내 때문에 미치겠다는 것이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 녀석들은 자취방에 놀러 오지 않았다.


홍어를 삭히면 어째서 그런 킁 한 맛이 다른 생선에 비해 많이 나느냐 한다면 홍어는 온몸으로 소변을 배출하기 때문에 항아리 같은데 넣고 하루만 지나도 톡 쏘는, 킁 한 맛이 난다는 말이 있었다. 홍어를 라면에 넣어서 먹어보면 라면에 홍어의 맛이 배이는데 라면을 먹을 때마다 입안이 팡팡 터져서 또 홍어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족을 못쓴다.


하지만 정확하게 홍어의 맛, 이건 비린내가 아니다. 꽁치 비린내, 고등어 비린내가 비린맛이라고 생각한다. 고래고기에서 비린내가 많이 난다. 포유류이기 때문이다. 고래는 차가운 바다에서 살아가려니 기름이 온몸을 덮고 있어서 전문가가 잘 삶아내지 않으면 비린내가 한 달 넘게 갈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곳이 고래의 도시라서 예전에는 전통시장에서 고래고기를 삶아서 수육으로 팔았다.


전문점에서 먹으면 고래고기는 엄청 비싸다. 마음대로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트에서도 가끔 돌고래 수육을 팔기도 했는데 돌고래 수육을 권장하지 않는다. 돌고래는 하루에 몇 천 킬로미터를 이동을 해야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인데 그러다 보니 오염된 바다에도 들어가고, 그래서 돌고래의 몸속에는 수은 성분이 아주 많다. 결론적으로 요즘에는 고래고기 자체를 웬만하면 먹지 말기를 바란다. 고래고기 아니라도 먹을 거 많잖아.


어떻든 홍어의 톡 쏘는 맛과 생선의 비린맛은 조금 다른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요즘은 손질된 고등어구이가 잘 나오는데 구워서 이틀 정도 지나서 먹으면 내가 딱 좋아하는 맛이 난다. 비린맛이 많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회도 활어회보다 숙성회가 훨씬 맛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비린맛을 찾아서 먹지는 않는다. 입맛이 어린이 입맛으로 바뀌었다. 너무 비린맛이 나면 어? 하게 되었다. 그래도 사진에서처럼 반건조 꾸덕한 가자미 구이의 살짝 킁 한 맛이 나는 비린맛은 좋다.


오늘 라디오에 아이들의 방학으로 자유는 물러갔다는 사연이 엄청 많이 올라오는데, 여름 방학에 밖에서 새까맣게 될 때까지 놓다가 집에 들어오면 씻고 저녁을 먹을 때 물에 밥을 말아서 숟가락으로 밥을 뜨면 엄마가 반건조 가자미 구이를 젓가락으로 뜯어서 올려주었다. 그때는 그게 비린맛인지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맛있게만 먹었다.


잘 말리면, 그냥 베란다에 걸어두면-해가 들지 않는 부분에- 꾸덕해지는데 가자미를 구우면 냄새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고 맛에서만 그걸 맛볼 수 있는 스킬이 생긴다. 그래서 결론은 조금 짭조름하니 물에 밥을 말아서 같이 먹으면 너무 맛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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