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소름 돋는다고 적어놨지만 정말 소름 돋는지는 모르겠다. 나도 사람들 한 번 끌어 보려고 소름 돋는다고 적어봤다. 헤헤.


백석의 시 ‘통영’에서도 유월이 되면 달과 지구가 가까워져 바닷물이 밤에 화악 빠져나가는 장면을 조개가 울을 저녁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을 했다. 백석의 시를 읽으면 한 줄인데 그 안에 담긴 여러 의미나 환경을 찾아보고 생각하느라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다. 백석은 시인으로 알려졌지만, 러시아어도 잘하고, 영어 선생님이었을 만큼 영어, 그리고 일본어는 물론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을 했으니 박학다식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시 속에는 백석의 박학다식보다 인간이 가진 오감, 특히 미각에 대해서 너무나 눈앞에 아른 거릴 정도로 시를 써놔서 그의 지식이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를 읽으면 뭐 재철에 나오는 식재료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거나, 그래서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김영하 소설가의 단편소설 중에 기묘한 소설 ‘피뢰침’이 있는데 그 속에는 낙뢰와 적란운 같은 자연 현상에 대해서도 잘 나온다. 번개라든가 천둥이라던가, 한 번은 검색해서 보거나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 들어가서 태풍이나 번개에 관해서 유심히 보게 된다. 그러면 김영하의 소설을 읽으며 오 하며 감탄하게 된다.  김영하의 장편 소설 '검은 꽃'을 읽은 지 꽤 오래전인데 아직까지 그 배밑에서 몇 달 동안 갇혀 항해를 하면서 구토와 배설과 식사해결 같은 처절함이 선하다. 대단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하는 정말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배에 갇혀 경험을 통해서 그런 글을 썼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아주 과학적이었다.


앞전에 소개한 아베 코보의 소설을 영화화 한 ‘모래의 여자’ 속에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쥰페이가 모래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모래 구덩이 속에 나무통을 넣어두고 까마귀를 잡으려고 얼마 뒤 뚜껑을 열어 보니 그 안에 마실 수 있는 물이 가득 들어 있는 장면이 나온다.


가끔 해안가를 거닐면 해수욕장의 백사장 말고, 좀 분위기가 다른 백사장으로(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 가면 모래 구덩이 안에 맑은 물이 고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물은 바닷물과 달리 그냥 맑은 맹물이다. 그래서 마실 수 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모래가 물을 생성시키고 산소를 만든다. 자세한 작용을 설명을 하기는 힘들지만 모래 알갱이 사이에는 구멍이 있는데 그런 작용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해안가에 아파트 단지나 인공 구조물을 엄청 만드는 바람에 해안가에 있던 모래가 사라지고 있다. 이는 대체로 몹시 심각한 상황인데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모든 것이 묵살되고 있다.


미국도 벌써 몇십 년 전에 이런 심각한 문제를 인지하여 해안의 인공구조물 때문에 모래가 빠져나가지 않게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해안가에 살고 있는 사람만, 그것도 몇 명 정도만 그 심각함을 알고 있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사는 곳도 바닷가이기 때문에 그런 점을 좀 알고 있다. 동해만 해도 해수욕장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 그 모든 해수욕장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지만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해수욕장이 있는데, 6월이 되면 해수욕장이 개장을 위해 단장을 하는데 가장 큰 변화는 곱고 새로운 모래가 트럭으로 실려 와서 깔린다는 것이다.


집 앞의 해수욕장도 매 년 유월이 되면 대대적인 단장에 들어간다. 백사장을 갈아엎고 그 위에 고운 모래를 다시 깐다. 그리고 주위의 소나무와 야자수를 다듬는다.


문제는 동해의 해안도로를 따라 있는 해안가의 모래들이 자꾸 줄어들어 간다는 것이다. 해안도로를 타고 도로를 짓고, 인공 구조물을 짓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어서 바다에서 오는 바람이 구조물에 부딪혀 밑으로 내려가서 모래를 파고 깎아서 바다로 가버린다. 그래서 모래를 다시 까는데 굉장히 많은 자본을 투자한다. 그런데 모래를 까는 건 일 년에 한 번 까는데 그 모래들이 사라지는 속도는 3, 4개월이면 다시 사라진다. 미국은 위에서 말했지만 해안의 모래를 살리고 지키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문제를 잘 담은 다큐멘터리가 있다. 이 방송을 본 게 벌써 10년 전인데 지금은 해안가의 모래가 어떻게 되었을까.


‘모래의 여자 속’에 등장하는 모래 안의 맑은 물은 몹시 과학적이다. 모래의 기능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모래는 물을 저장하는 능력이 있다. 바닷가에 모래 구덩이가 있고 그 속에 맑은 물이 생성되면 계속 물이 솟아난다. 아주 물이 좋다. 그리고 생명체를 살게 한다.


바닷가에 있는 모래 구덩이 속 맑은 물에는 민물에서만 살 수 있는 생명체들도 살아간다. 모래가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맑은 물에 산소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백사장이 망가진 모습이 10년 전 다큐멘터리에 가득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큐를 보면 1960년대 우리나라 백사장을 모습을 보여주는데 딱 ‘모래의 여자’ 속에 나오는 백사장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해안을 따라 도로가 들어서고 인공 구조물이 들어서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언젠가부터 해안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이런 걸 보면 인간이 인간을 망가뜨리는 존재 3위에 당당하게 이름이 올라오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라고 이 글을 2주 전에 적어놨는데, 지금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존재 2위라고 한다. 하하.


백사장이 사라지는 해수욕장, 해변의 위기 [환경스페셜-살아 숨 쉬는 땅, 모래] https://youtu.be/t3KN40VXEU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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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맵찔이가 먹기에는 너무나 매콤한 오징어볶음. 그러나 고춧가루가 좋으면 매워도 자꾸 먹게 된다. 여름에는 공포영화의 계절이고 무서운 영화를 볼 때에는 이렇게 매콤한 오징어 볶음이 어울린다고 억지로 우겨본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재미있게 무서운 영화를 보는 것이다.


여름이 되면 오싹하고 무서운 공포물 시리즈가 많이 나온다. 소설 원작의 ‘마당이 있는 집’이나 ‘악귀’가 지난주부터 방영되고 있다. 무섭고 오싹하다. 그럴 때 매콤한 오징어 볶음을 한 번 먹고 맥주를 꿀꺽. 이런 스릴러 공포 시리즈는 극장의 공포영화처럼 점프스퀘어나 고어 적으로 시각적 공포를 주는 게 아니라 냉기가 흐르는 서사가 조여 오는 무서움으로 공포를 준다.


여름을 노린 극장가의 공포는 대체로 미지의 세계나 귀신, 유령이나 괴물이 무서움을 주지만 사실 진짜 무서운 건 사람, 인간이다. 아주 착하고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내면 속 추악한 부분을 건드려 꺼내는 것처럼 보는 내내 두근두근하는, 그런 오싹함을 준다.


미드나 영드의 공포 시리즈보다 한국의 공포물이 훨씬 오싹하고 무섭다. 드라마 ‘악귀’를 보기 전까지 미드 공포물 시리즈 ‘힐 하우스의 유령’을 봤다.

잘 만들었지만 너무 지루하고, 잘 만들었지만 너무 별 내용이 없다. 온갖 미국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 가정 내 산적해 있는 문제를 전부 유령과 함께 다루려 하다 보니 지루하다. 하지만 잘 만들었다. 그러나 지루하다. 잘 만들었지만 재미는 없다. 아무튼 온통 오해와 이해의 그 중간 어디를 왔다 갔다 하면서 서로 내뱉지 말아야 할 말을 뱉어내고 그러다가 유령 때문에 서로 뭉치고, 유령 때문에 서로 찢어지고. 이야기는 느닷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장면이 많다. 정말 느닷없이 과거, 먼 과거, 짧은 과거로 갔다가 현재를 보여주는 화면이 많아서 짜증 난다.

세상에는 그런 시리즈가 있다. 잘 만들었다고 느껴지나 재미가 없는 기묘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재미있었다면 시즌 2가 나왔을 것이다. 미국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그걸 포기할까. 유령이나 점프 스퀘어 없이 정말 재미있게 무서웠던 시리즈는 ‘베이츠 모텔’ 시리즈였다. 베이츠 모텔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에 등장한 모텔이며, 주인공 노먼 베이츠는 싸이코의 살인마 이름이다.

노먼 베이츠의 엄마로 나오는 베라 파미가가 이를 물고 제작에 뛰어들어 총괄 제작까지 맡았다. 뼈와 살을 갈아 넣어서 만들었다는 걸 시리즈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이 시리즈는 기획 전부터 감독이 싸이코의 프리퀄이라 했고 보는 내내 정말 심장이 졸깃해지며 재미있었다. https://youtu.be/G3LrceBiG9s


62년에 나온 '싸이코'는 20년이 지난 83년에 싸이코 2편이 나왔다. 노먼 베이츠가 20년이 지난 후에 베이츠 모텔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싸이코의 주인공 안소니 퍼킨스가 20년이 지나서도 노만 베이츠 역을 했다.


이 시리즈에서 노먼 베이츠와 친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비중 있는 조연으로 니콜라 펠츠가 나온다. 니콜라 펠츠는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엄청난 재력가 넬슨 펠츠의 딸이다.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무엇보다 니콜라 펠츠는 베컴의 첫아들 브루클린 베컴의 아내로도 유명하다. 돈이 너무 많은 재력가 집안의 니콜라 펠츠와 역시 돈이 너무너무너무 많은 시어머니, 스파이스 걸스의 빅토리아 베컴과 결혼식을 두고 고부 갈등을 겪는 일들이 세계의 가십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엄마와 아내가 싸우거나 말거나 그저 아내가 좋은 반등신 브루클린 베컴.


얼마 전에는 유튜브인지 틱톡인지, 라이브로 기름을 한 통을 다 부어서 고작 닭 세 조각을 튀겨서 사람들에게, 그래 너 잘 산다, 같은 반응을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브루클린 베컴은 사람들이 왜 그러지? 같은 반응이다.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요리프로그램에 나왔는데 브루클린 베컴이 아주 간단한 요리를 하는데 방송 스텝과 전문 요리사들, 그리고 보조 출연자들이 많이 나와서 방송 관계자가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말을 했지만, 역시 브루클린 베컴은 그게 뭔지, 무슨 말인지 똥인지 된장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무튼 베이츠 모텔은 시리즈는 진정 재미있고 무서웠다. 무서운 장면이 없이 무서움을 주는, 그 어떤 존재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무섭다는 걸 보여주었다. 시리즈 몇 인지는 모르겠지만 히치콕의 싸이코에서 가장 유명한 욕실 장면의 오마주도 나온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시기에 드라마 ‘마우스’가 했는데, 싸이코패스가 형사에게 보여주려고 사람들을 죽여 전리품으로 만들어 놓으며 나를 잡아봐 하는 이야긴데 무섭고 재미있었다.


https://youtu.be/i_K9U3gE9os 승기야 힘내자!


여름에는 공포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예전 어릴 때에는 전설의 고향이 최고로 무서웠다. 뭐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구미호가 제일이었다. 이 구미호가 요즘은 한국을 넘어 미드 공포 시리즈에도 나온다. 러브크래프트 컨트리에 구미호가 나온다.

시리즈 중 한 회는 온전히 50년대 대구를 배경으로 인간이 되고픈 구미호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무섭다기보다 제이미 정이 홀딱 벗고 나오기 때문에 섹시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구미호로 변할 때 그간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구미호 버전을 봤지만 러브크래프트 컨트리 속 구미호로 변하는 장면은 좀 뭐랄까, 이상해. 그 꼬리 같은 것이 콧구멍에서도 나오니까 순간 웃음이.


무엇보다 1시간 내내 한국말을 하는데 정말 너무 어색하고 듣기 싫어 죽는 줄 알았다. 50년대, 그것도 경상도 대구에서 혀가 막 굴러가는 한국어를 하니까. 제목에 걸맞게 굉장한 괴물들이 나오는데 역시 재미가 없다. 예고편에 속은 인간은 나 혼자로 족하다. 시리즈 내내 너무나, 고구마 몇 개를 한 번에 먹은 것처럼 답답하고 지루하다. 게다가 시리즈 내내 그놈의 pc주의가 가득하다.

https://youtu.be/eb8sKpJMRSY


러브크래프트 컨트리라는 소설이 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러브 크래프트는 미국 공포물의 대가가 되었다. 미지에 대한 공포,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빛과 색채에 대한 공포를 만들어냈다. 크툴루 신화의 창시자로 불리며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대부분 영화가 되었으며 대부분 으~~ 하는 얼굴을 만들게 했고 징그럽고 무서웠다. 샘 닐 아저씨가 나왔던 이벤트 호라이즌은 당시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검열로 인해 몇 장면은 삭제하고 나서 극장 상영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 삭제된 부분까지 다 봤는데 90년대에 나온 영화지만 지금 봐도 너무 오싹하다. 그나저나 샘 닐 아저씨 혈액암 판정받았다는데 잘 회복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러브 크래프트는 대놓고 인종차별을 했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그런지 ‘러브크래프트 컨트리’ 이야기는 흑인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에 괴물이 나오는 이야기를 섞어 놨다. 흑인 차별이 무지무지하게 심한 50년대의 미국을 보여주었다. 어느 지역에서는 흑인이 들어와서는 안 되며 들어온 흑인은 사냥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성끼리의 붕가붕가 장면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을 해놔서 좀 그렇다.


여름에 보기 무서운 영화는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 초기 버전이었다. 눈 속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불침범을 서는데 나중에 한 명이 더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무서웠다. https://youtu.be/uIvh6pxBg_E 기묘한 이야기 - 설산. 이게 공포의 레전드다.


옛날부터 겨울 산장의 무서운 이야기는 많았다. 요컨대 폭설 때문에 산장에 친구들과 갇혔는데 창밖에서 친구들이 나오라고 하는데 산장 안에도 친구들이 있고. 산장 밖의 유령이 나를 밖으로 불러내 죽이려고 해서 산장 안에서 친구들과 안고 있는데, 창밖의 한 친구가 피를 머리에서 흘리며 계속 나오라고 무섭게 손짓하고. 그 친구만 산장 안에 없어서 나갔더니 산장 밖의 사람들이 진짜 사람이고, 같은 그런 이야기.


그러니까 예전에는 미지의 존재, 귀신, 유령이 무서운 이야기의 주체였는데 요즘은 인간이다. 인간이 제일 무섭다. 사람은 겉으로는 알 수 없다.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지만 집 안에서 아이에게 상한 음식을 먹이고 쇠사슬로 묶어 놓아서 애가 죽고 나서야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사람이 뇌의 한 부분이 이상해거나 흘러나오지 말아야 할 서번트 물질이 많이 나온다거나. 또는 싸패의 뇌를 이식받았다거나 하면 인간은 정말 무서워질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존재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잘 잊어버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는 그래서 내가 가장 무섭다고 생각하는 영화다. 실제 일본 내에서 발생한 일을 영화로 만들었다. 아이들을 방치하고 도망간 엄마 때문에 아이들이 점점 어떻게 변하는지. 옷도, 생리작용도.


전기도 수도도 끊어지고 집에서 아이들만 배고픔을 견디며 지내다 결국 막내 유키가 숨을 거두는 장면은 너무나 끔찍하고 안타까운데 너무 아름답게 그려져서 정말 슬펐다. 이 영화는 일본의 단면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해서 고레에다는 아베 정부에게 찍혀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https://youtu.be/6ZYPlnmhMTU

'나의 아저씨' 마지막 회를 보면 기훈이가 동훈에게, 이 영화 ‘아무도 모른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5분 보다가 꺼버렸다고. 가정의 가장 오빠가 12살인데 동생들을 위해 다니면서 구걸하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못 보겠더라고. 내가 티브이 속으로 들어가서 애들을 꺼내오고 싶다고.


기훈이가 기훈이 스타일로 이야기를 할 때 동훈은 동훈 스타일로 덤덤하게 듣는다. 그리고 기훈이가 말한다. 다음 날 다시 봤는데 보기 잘했다고, 아이들은 똑똑하게 잘 살아간다고,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다고. 아이들은 다 자가 치유능력을 가지고 있더라고. 기훈이는 자신의 형과 이지안을 위해서 자신의 스타일로 그렇게 위로해 준다.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12살의 야기라 유야는 배우로 훌쩍 커서 올해, 2023년에 인육을 먹는 마을에 부임한 경찰이 되어 사건을 파헤치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간니발’의 주인공이 되었다.

외진 산골 마을, 쿠게 마을이라 불리는 이 마을을 지키는 파출소에 근무하는 순경은 한 명. 이전 순경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새로 부임한 아가와 순경은 아내와 실어증을 앓고 있는 어린 딸 마시로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


마을은 너무나 작고 주민들은 서로 집집마다 그릇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친밀하다. 아가와는 부임 첫날부터 호의적인 마을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다. 한창 좋은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가운데 고토 가문의 사람들이 와서 산속에서 곰에게 당한 시체를 발견했으니 와 달라고 한다.

시체가 있는 장소로 온 아가와는 얼굴의 반이 없어지고 한쪽 팔이 옆에 분리되어 있는 노파의 시체를 본다. 고토 가문의 사람들은 곰에게 당했다고 하지만 시체를 살핀 아가와는 곰에게 물린 자국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다고 한다. 이건 어쩌면?

그러면서 이야기는 점점 수렁으로 치닫는다. 수백 년 이어온 고토 가문은 식인을 한다는 소문이 있고, 이전 순경은 그 증거를 찾아서 수사를 하다가 당했다고 아가와는 생각한다. 그리고 호적 없이 태어난 아기들이 유독 이 마을에서 사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가와는 마음속에 억누르지 못하는 분노가 있다. 만약 태어난 아기를 어딘가에 잡아 두고 식인을 한다면 이 사람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아가와의 이 들끓는 분노는 형사 시절 범죄자들을 잡을 때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악은 더 큰 악으로 대해야 한다. 자신의 어린 딸에게 접근하는 어린이 성추행범을 잡아서 반쯤 죽을 때까지 폭행을 하는 아빠를 싫어하는 어린 딸 마시로. 그런 마시로가 보호하려는 사람이 바로 성폭행범이다.

어느 날 성폭행범이 마시로에 목에 칼을 대고 나는 마시로를 사랑한다, 우리 같이 죽자.라고 하는데 아가와가 권총으로 성폭행범을 사살하게 되고 그때의 충격으로 마시로는 언어를 잃어버린다. 마시로를 위해 산골 마을로 부임한 아가와에 닥친 이상한 마을의 사람들과 식인을 하는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굉장한 비밀들이 드러난다.

스릴러 공포 장르인데 무척이나 재미있다. 이렇게 전개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생각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영화 이끼와 곡성을 잘 버무려 놓은 듯한 전개와 긴장감이 든다.

감독이 실종을 연출한 가타야마 신조로 봉준호 감독의 연출부에서 영화를 배워간 그 감독이다. 어린 딸 마시로의 연기,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어린이의 얼굴을 파먹는 장면이나 친절하기만 하던 마을 사람들이 점점 아가와 가족을 조여 오는 압박감의 연출을 보는 재미를 더 한다.

매회 사건을 이루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드라이브 마이카 제작진이 탄탄한 스토리에 힘을 더 실어서 간니발은 재미있다. 카니발리즘을 잘 볼 수 있는 시리즈 간니발이었다. https://youtu.be/m5Uyji9i76E


어떻든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무섭고 몹쓸 짓을 한다. 김영하의 소설 ‘비상구'도, 무라카미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도 아이들을 부모가 버리고 방치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무서운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같은 무서운 일들이 사실 주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을 겉으로 봐서는 절대 알 수가 없다. 진정한 공포는 사람이야, 인간이라고. 누가 알아? 밉다고 오징어 볶음에 독약을 탔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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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기간이다. 레인시즌인 것이다. 엇 그제 밤에는 폭우의 소리가 대단했다. 불을 끄고, 라디오 소리도 끄고, 유튜브도 끄고 지축을 울리는 빗소리에 집중을 하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별로 무섭지 않은 것들이 어른이 되어서 무섭게 다가온다. 어린이 때 귀신보다 어른이 더 무서웠는데 이제 그 무서운 어른이 되었지만 세상은 온통 무서운 것들 투성이다.


오늘은 집에 오는데 해안도로가 엄청나게 내리는 비 때문에 3차선 중 2차선이 물에 잠겨 경찰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데 비가 너무 쏟아지니 불안하고 무서웠다. 공포다. 비가 많이 내리면 언젠가부터 무섭기 시작한다. 빗길에 사고가 났는지 차들이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거북이 운행으로 가다 보니 자동차 한 대가 구겨진 종이짝처럼 완전히 구겨져 있었다. 분명 운전자는 사망했을 것이다. 자동차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점점 더 무서워졌다.


여동생이 뚝섬 근처 대학교로 가면서 반지하에서 살았다. 한 번 놀러 갔다가 아침에 눈을 떴는데 캄캄해서 이른 아침인 줄 알았는데 오후 1시였다. 비가 오면 겁이 난다고 했다. 특히 비가 하루 이틀 지속되면 언제라도 당장 달려 나갈 준비를 하며 지내야 했다.


장마 때문에 비가 너무 내려 강물이 불어나고 그 강물에 모든 것이 쓸려 내려가는 모습을 아이폰 3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카메라를 들고나가서 그런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무서운 게 없었다. 태풍이 오면 집 앞이 바닷가이니 방파제에 나가서 파도가 테트라포드에 부딪혀 엄청난 포말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카메라 담느라 신났다. 그런데 지금은 비가 많이 내리면 무섭다. 그래서 건물 밖으로 나가려 하지도 않는다.


어릴 때 비가 와서 물웅덩이가 보이면 장화를 신고 일부러 그 안에 들어가서 첨벙첨벙 물놀이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런 놀이를 하지 않게 되었다.


장마기간에, 굽굽하고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울 때 찬물을 몸에 찌끄리고 나면 엄마가 부침개를 해주었다. 기름옷을 입고 노릇하게 잘 구워져 먹으면 너무 맛있었다. 아버지는 집에서는 술을 드시지 않았는데 장마기간의 주말이면 가족이 모여 마당에 떨어지는 비를 보며 전, 부침개를 먹었다. 비가 쏴아 쏟아져도 무섭지 않았다.


부침개는 밥이 아니라 식사에서 멀어진, 그래서 어쩐지 집 안에서 소풍 같은 기분을 갖게 했다. 동생은 왔다 갔다 하며 질문이 많고, 엄마는 덥지만 부침개가 접시에서 떨어질 때 또 부쳐서 내왔다. 에어컨도 없는데 선풍기만으로 잘 도 여름을 지냈다.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티브이 만화도 같이 봤다. 조카가 여름에 집에 놀러 오면 만화를 보는데 동참하려고 해도 아, 조카가 좋아하는 만화에는 적응이 잘 안 되었다. 나는 지금도 주위에서 애니메이션을 많이 봐서 초딩들과 꽤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귀멸의 칼날은 디오라마를 만들어 버릴 정도로 좋아하고, 사이타마의 원펀맨, 이 세계 삼촌부터 고전(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헬싱까지. 아무튼 만화를 엄청 좋아하는 편인데 조카가 좋아하는 만화는 아따맘마까지다.


어떻든 울 아버지도 어른으로 분명 만화를 아이들과 같이 보는 것이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기공룡 둘리는 전부 앉아서 재미있게 봤다. 레인시즌에 먹는 부침개는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서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둘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가 내려서 마당을 적시고, 가족이 전부 밥상에 붙어 둘리를 보며 호박전을 먹었다. 아버지가 옆에서 있었고 엄마도 젊어 손맛이 좋았다.


며칠 전에 복면가왕에서 오승원의 둘리를 들었다. 그 첫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화악 몰려왔다. 둘리는 이상한 게,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다. 웃기고 명랑만화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항상 슬프다. 그 슬픔은 그리움에서 나온 것이고 둘리가 엄마와 떨어져 지내면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을 오승원이 노래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오승원의 그 한 소절이 미소를 짓게 하면서 마음을 온통 두드렸다. 다시 둘리를 보면 알겠지만 온갖 여러 편에서 둘리가 나오지만 둘리는 엄마가 없다. 엄마를 잃은 둘리의 그 마음이 고스란히 보는 이들에게 전해진다. 복면가왕에서 오승원이 부르는 둘리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오승원의 목소리가 그리움인 것이다.


부침개를 만들어 먹었다.

예전만큼의 맛이 나지 않는다.

훨씬 맛있을 텐데 예전만큼 맛있지 않은 건 같이 둘리를 보던 아버지는 없고, 빗소리는 예전보다 무섭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기향 연기가 올라다가 선풍기 바람에 날려 공중으로 확 퍼졌고, 아버지는 모기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방충망을 더욱 견고하게 다듬었다. 비가 내려 나뭇잎들이 마당에 떨어져 쓸려 내려갔다. 아버지는 물구멍이 막힌다며 나가서 나뭇잎들을 거둬냈다. 엄마는 부침개를 옆 집에 나눠주었다. 옆 집에서 시원한 단술을 가져다주었다. 아, 맛있다. 땀을 닦고, 빗물을 털어내고 갓 부친 부침개를 먹으며 작은 화면 속 둘리와 인사를 했다.


동심으로 돌아간 마법 같은 무대� 오승원의 <아기공룡 둘리> https://youtu.be/3q4Ey8BcBT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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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 나온 영화 ‘우리들의 고교시대’의 여주인공으로 장덕이 나온다. 장덕은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였다. 그리고 배우로도 활동을 했다.


우리들의 고교시대에서 김정훈은 소심하고 여성스러워 집안에서 걱정이 많다. 왜냐하면 그런 김정훈이 행글라이더를 타고 운동도 잘하고 피아노를 전공하는 여고생 장덕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정 반대의 성격이지만 두 사람이 친구가 되는 청순한 러브 스토리를 영화는 이야기한다. 김정훈은 바느질을 잘하고 오이팩을 하며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뜨개질을 하다가 장덕의 얼굴이 떠올라 애가 타는 모습이 재미있다.


60년대 르네상스를 맞이했던 영화는 70년대 중반 이후 침제기에 접어든다. 집집마다 보급된 티브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주말의 명화 – 토요명화‘와 '명화극장'을 했기에 사람들은 굳이 극장으로 가지 않아도 가족과 단란하게 방에 누워 더빙판 주말의 명화를 보는 게 좋았다.


그래도 극장가에서 인기가 있었던 건 하이틴 청춘 영화였다. 꾸준하게 사람들이 좋아했다. 당시 하이틴 영화 속에는 지금 봐도 부러울 정도의 정원이 딸린 큰 집에 사는 부자와 부자인 그들이 소시민처럼 소박하고 친밀하게 그려지는 내용이 많다.


고교얄개의 이승현의 집도 그렇다. 이승현은 되바라지고 부자에 태권도 선수이며 누나가 무려 정윤희다. 정윤희는 정말 너무 예쁜 거 아님. 이승현은 누나인 정윤희의 얼굴에 연탄칠을 살짝 한다. 그것도 모르고 정윤희가 밖으로 뛰어 나갔다가 그 예쁜 얼굴에 연탄이 묻은 걸 알고 ㅋㅋㅋ 이승현은 모자라는 것 없고 사치에 못 사는 애들을 깔보며 살아갈 것 같은데 양로원을 찾아서 노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가난하게 누나와 단 둘이 사는 김정훈을 위해 신문배달도 한다. 검열이 가득했던 시기에 하이틴 영화 속에는 일반인들이 꿈꾸는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었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고교얄개 2편 격인 고교우량아에서 정윤희


그래서 얄개시리즈가 많이 나왔다. 1편부터 있지만 내용이 이어지는 건 ‘고교얄개’ 뿐이다. 이후 얄개행진곡, 고교 명랑교실, 고교우량아, 소문난 고교생 등 엄청나게 얄개 시리즈가 쏟아졌다.


얄개 시리즈는 대부분 내용이 거기서 거긴데, 거기서 거기라 대부분 보면 재미있다. 주인공을 하는 배우가 대부분 이승현, 진유영 위주였는데 ‘우리들의 고교시대’에서는 김정훈과 장덕이 주인공으로 나왔다.


우리들의 고교시대는 당시 하이틴 영화를 잘 만들어 내는 감독 세 명이 돌아가면서 옴니버스 식으로 제작한 3편 중 한 편이다. 장덕, 극 중 영아는 집안 때문에 한국을 떠나야 하고 김정훈, 태수는 보내기 싫어서 운다 엉엉. 영아는 태수를 놓고 외국으로 가야 하기에 일부러 못되게 군다. 하지만 태수와 함께 타기 위해 2인용 행글라이더를 제작하고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같이 행글라이더를 타면 영화는 끝이 난다.



장덕이 대중에게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무대가 진미령의 데뷔곡 ‘소녀와 가로등’을 부르는 무대였다. 당시 제1회 MBC 서울가요제는 무대에 가수와 작곡가가 다를 때 같이 무대에 올라야 하는 규정이 있어서 장덕도 같이 무대에 오른다. 그때 장덕의 나이 17세. 빵모자 같은 모자를 쓰고 진미령이 부르는 노래 뒤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한다.


진미령과 장덕의 소녀와 가로등 https://youtu.be/HE_K-VbkIUI


그때 사람들은, 대중과 음악 전문가들은 도대체 저 소녀는 누구지? 누군데 저렇게 지휘를 잘하는 거야? 같은 반응이었다. 소녀와 가로등은 장덕의 곡으로 가사가 정말 애절한데 이는 장덕의 애틋한 경험으로 쓴 곡이라 그렇다.


장덕은 첼로 연주가 아버지와 서영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이혼을 하고 아빠와 지내면서 동양사상에 빠진 아버지와 음악 활동으로 바쁜 오빠를 기다리느라 늘 집에서 홀로 지냈다. 매일 밤 오빠와, 아버지가 언제 들어오나 가로등 밑에서 기다리며 떠올린 곡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장덕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유튜브에서 전문 채널을 통해서 보기 바랍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뇌피셜이라 잘못된 정보가 될 수도 있음.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진미령이 노래를 끝내면 무대에 장덕도 올라와서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한다. 장덕은 일찍부터 음악을 했던 오빠 장현과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유튜브 4490 캡처 사진


장덕은 5학년 때 숙제를 하기 위해 오빠에게 배운 기타로 음악에 빠져들었다. 장덕은 오빠인 장현과 함께 드레곤 렛츠라는 그룹을 만들어서 음악활동을 한다. 남매듀오로 미 8군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당시의 포크송 분위기가 강했다. 쎄시봉 같은 느낌의 노래를 불렀다. 듣기 편안하고 귀에 쏙 들어오는 곡의 느낌이었다. 그때 장덕이 노래를 부르는 걸 보고 있던 송창식이 가수를 준비하고 있던 진미령과 연결을 시켜주며 ‘소녀와 가로등’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장덕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히트를 친 소녀와 가로등 이외에 이미 15세에 작곡해 놓은 곡들이 서른 곡이나 있었다. 그때까지 없던 새로운 예술을 하는 가수가 탄생한 거니까 센세이션이었다. 직접 부른 노래도 인기가 엄청났지만 당시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가수들이 장덕의 곡을 받으려고 찾아왔다. 그 속에는 설운도, 주현미 등이 있었고 연기자인 오연수도 노래를 받으려고 찾아왔었다.


그러다가 이은하에게 한 곡을 주게 되는데, 이은하는 노래는 잘 부르지만 밤무대 가수 같은 뭔가 2류 가수의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장덕에게 받은 그 한 곡 덕분에 이은하는 재즈와 발라드도 소화해 내는 훌륭한 가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그 노래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었다.


장덕은 국제 가요제 이후 3년 연속 수상 속 작곡자가 되고, 마음의 행로의 출연을 계기로 연예계의 배우로도 데뷔를 하며, ‘현이와 덕이’로 음악 활동도 한다. 안양예고에 들어가면서 저 위의 영화처럼 하이틴 영화 10여 편이나 주연을 차지하게 된다.


승승장구만 할 것 같았던 장현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어머니가 있는 미국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작곡 공부를 한다. 테네시 주립대학에서 작곡공부를 하면서 미국 생활에 적응하려고 했지만 결혼과 이혼, 고국에 대한 향수 때문에 어머니에게 말도 하지 않은 채 한국으로 도망치듯 다시 들어온다. 솔로로 노래를 발표하지만 대중은 냉담했다. 3년이라는 공백은 레코사와 조건에 맞는 전속계약은 어렵기만 했다.


재미있는 건 이 당시 김진아, 남궁원 주연의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의 음악감독을 맡아서 했다. 그러면서 야심 차게 ‘사랑하지 않을래’가 들어있는 정규 2집을 발표한다. 그러나 대중은 싸늘하기만 했다. 우울감으로 장덕은 방 안에 틀어박혀 식음을 전폐하며 보냈다. 세상에서 버려진 사람이라 여기며 그렇게 우울하게 보냈다. 방송국에서 출연 섭외가 와도 장덕은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그런 소식을 듣고 오빠인 장현이 상경하여 다시 현이와 덕이를 재결성을 한다. 7년 만이었다. 오빠를 만나 디시 한 번 남매듀오로 활동하면서 내놓은 노래가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였고 단숨에 가요순위 10위권 내에 들며 인기를 끌면서 장덕은 다시 정상으로 오른다. 그렇게 한국의 카펜터즈가 될 뻔 한 현이와 덕이는 오빠의 설암판정으로 멈추게 된다.


장덕은 장현이 설암으로 쓰러지고 난 후 모든 활동을 접고 병간호를 하면서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각한 우울증이 시달리게 된다. 그러던 중 1990년 2월 4일에 잠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게 되면서 29년의 짧은 생을 장덕은 마감하게 된다. 당시에는 자살이라고 보도가 되었지만 수면제에 중독이 되어 깨어나지 못했다. 장덕은 당시에 감기약과 기관지 확장제, 수면제를 전부 섭취했었다.


장덕의 죽음 이후 마치 그 사실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한 노래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가 대한민국을 울렸고 이 노래는 동료가수들이 추모앨범을 통해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8월 설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오빠인 장덕도 아내와 아들을 남겨 둔 채 동생인 장덕 곁으로 떠나고 만다. 그때 장현의 나이 고작 34살.


카펜터즈를 뛰어넘을 것 같았던 ‘현이와 덕이’의 비극적 죽음은 대중에게 너무나 크나큰 충격이었다.


장덕이 하늘로 간지 30년이 넘은 지금 장덕의 죽음을 안타깝게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옆 나라 일본은 자드의 이즈미 사카이가 죽고 난 후 꾸준히 그녀를 기리는 공연을 하고 있다. 우리는 장덕이 수면제 없이 잠도 들지 못하는 그저 한낱 비관적인 약한 예술가라고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녀는 17세의 나이에 당당하게 자신의 곡으로 노래를 부르는 진미령의 뒤에서 지휘봉을 들고 오케스트라를 진두지휘 했던 멋진 아티스트였다.


정수라가 부른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는 소설로 다시 늘려도,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큼 아름다운 노래이며, 장덕에게 곡을 받기 위해 곡을 기다리던 조영남, 최진희, 변진섭, 김승진, 하춘화 등이 있었다.

 

대중이 즐겁게 그 예술가를 기억해 줄 때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면서.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 https://youtu.be/wPkuhmixj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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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30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이 많이 나네요

잉크냄새 2023-06-30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이 노래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일 년 중 가장 애매하지만 가장 멋진 계절이고 덥지도 춥지도 않을 것만 같은 유월이 저물어 간다. 매년 유월은 그해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유월부터 이 도시의 축제가 시작이다. 코로나로 막혔던 축제가 도시 곳곳에서 엄청나게 열리고 있다.


온갖 먹거리를 파는 곳과 도로를 막고 무대를 설치하고 사람들에게 맥주를 무료로 마구 나누어 주고, 축제의 노래가 온 도시 안에 울려 퍼졌다. 아니 퍼지고 있다. 그래서 축제가 열리는 다운타운 가의 자영업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축제를 관장하는 프로그램 중간에 브로커가 껴 있어서 새는 돈이 많다는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들의 상환이 이번 9월부터라고 하는데. 코로나를 버티기 위해 빚을 여러 곳에서 끌어 쓴 자영업자들이 코로나가 끝나고 원래대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되어 버렸다. 절대 원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물가의 고공행진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더 끊겼다.


코로나 기간에 선진국들은 자영업자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해주었다. 미국을 비롯해서 프랑스도, 심지어 가장 꼴찌인 일본도 우리나라 보다 훨씬 많은 지원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자영업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정부의 약속은 지금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자영업자들 중 많은 분들이 60년대 생인데, 마지막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처음으로 자식들에게 노후를 맡기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다. 이들이 믿고 있는 것은 국민연금이었는데 지금은 국민용돈 정도가 되었다. 자영업자들이 장사가 되지 않아서 폐업을 하려고 해도 폐업처리가 되는 순간 바로 빚을 갚아야 한다는 은행의 독촉이 온다. 무엇보다 목욕탕이나 피시방 같은 경우는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하기 때문에 돈이 이중고로 든다.


그래서 코로나 기간 중에 은행이나 배달플랫폼, 검색사이트 회사는 엄청난 돈잔치를 했다. 그야말로 호황이었다. 이십 대가 코인을 하고 주식에 몰리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는 현실이 되었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그것이 미래가 되었는데 어떤 이가 열심히 노동을 하려고 할까. 하루 벌어야 하루를 먹고살 수 있고, 하루를 못 벌면 이틀을 굶어야 한다.


장사가 잘 되면 좋은 가 한다면 꼭 그렇지도 않다. 장사가 너무 잘 되면, 그래서 손님들이 줄을 서 있으면 건물주가 월세를 올려 버린다. 아니면 건물주인이 그 자리에 자신이 뭘 한다거나.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영업이 계속 생겨나고 음식점이 늘어나는 이유는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축제하는 다운타운을 빠져나와 강변을 달리면 인간의 삶과는 무관하게 자연은 늘 그대로니까 경이로우면서 무섭고 얄미우면서 부럽고 짜증이 나고 뭐 그렇다. 달리다가 뒤돌아서 보면 이토록 아름다운 빛을 보여준다.

요 며칠 동안 저녁에는 초승달이 떠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을 반겼다. 초승달에는 토끼고 둥근달에는 곰인데, 며칠 전에 80년대 영화 ‘더 베어’를 다시 봤다. 아기 곰 한 마리가 이토록 감동을 줬던 그 영화.

아기곰 두스가 엄마를 잃고 떠돌아다니다가 사냥꾼의 총에 맞은 큰 수곰 바트를 만나면서 새로운 가족이 되는 이야기다.


두스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온통 경이로움과 재미로 가득하다. 처음 보는 개구리도,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나비도, 예쁘고 맛있을 것처럼 생긴 독버섯도 두스에게는 모든 게 놀라움이다.


하지만 두스는 아직 엄마가 필요한 아기곰. 그러다가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웅덩이에 쓰러져 있는 바트의 상처를 핥아주며 둘은 가족이 된다. 바트는 자신도 배가 고프지만 연어를 잡아서 두스에게 던져 준다.


바트가 두 발로 일어서면 두스도 일어나고, 바트가 나무에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면 두스도 그렇게 하는 장난꾸러기. 그러다가 사냥꾼에게 두스가 잡히게 되고 사냥꾼들의 사냥개들이 바트를 쫓는데.


예전에 볼 때는 그냥 감동이 쓰나미가 되어 밀려왔지만 제작이 6년이나 걸릴 정도로 곰들을 훈련시켰는데, 두스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걸까, 하기 싫은 훈련 때문에 행복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두스에게 영화제에서 상이라도 줘야 할 정도로 어떻게 이런 연기를 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귀엽고 가엽고 예쁘게 나온다. 장 자크 아노는 그 긴 시간 끈질기게 두스와 바트의 우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마지막 장면에 표범에게 잡아먹히려고 할 때 크아아앙 하며 소리치는 두스, 그리고 그 뒤에서 두스의 포효에 힘을 실어주는 바트. 아기 곰 한 마리의 행동이 이렇게도 감동을 줄 수 있다니.


그래픽이 초고도로 발전했다고 해도 두스와 바트만큼 감동을 줄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시작 16분에 첫 대사가 한 번 나온다. 지루함이 1도 없이 빨려 들어가는 '더 베어'였다. https://youtu.be/S0tX2wKi6O0


초승달은 올려다보는 재미가 있다. 이 지점이 딱 좋은데 건널목 중간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매일 달리는 이곳을 지나가면서 신호가 바뀌면 재빠르게 중간으로 와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몇 컷 찍는다. 곧 좀 있으면 달의 모양이 변할 테니까.

저기 다운타운에서는 축제가 한창이다.

이 하늘을 보라. 정말 경이로운 색감이다. 이렇게 아름다울수록 더 무서운 상상이 든다. 외계종족이 침투하거나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의 모습처럼 보인다. 일본의 병맛 영화 중에 바퀴벌레 종족과 인간이 화성에서 싸우는 영화가 있다.

비급 병맛 영화 테라포마스는 원작을 재미있게 본 터라 보게 되었는데 2016년작인데 2006년작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이 영화는 벌레화가 된 인간들이, 인간화가 되어버린 바퀴벌레들과 한 판 뜬다는 이야기로 병맛 가득, 병맛 나는, 병맛을 위한, 병맛 그랜드슬램을 달성해 버린다.


인구 과포화 상태가 된 지구에서는 더 이상 자원 고갈로 인해 화성 테라포밍에 들어간다. 화성을 지구화하기 위해 바퀴벌레들과 이끼를 화성으로 슝 보냈는데 500년 동안 바퀴벌레들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서 그 못생긴 면상에 짐종국 같은 몸으로 화성에 온 벌레화가 가능한 인간들을 하나씩 죽인다.


죽이는데 이유가 없다. 지구에서 인간들이 바퀴벌레를 보면 이유 없이 죽이는 것과 비슷하다. 병맛 가득한 영화이기 때문에 병맛으로 영화를 보고 생각해야 한다.


태초에 인간보다 오래 산 바퀴벌레는 원래 지구 밖에 생존하던 벌레였는데 환경이 좋은 지구에 보내졌다. 그런데 인간 때문에 원하는 대로 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50억 년을 멸종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안 바퀴벌레는 곧 인간의 과포화로 지구가 망해간다는 알고 일부러 인간들에 의해 화성으로 이끼와 보내지게 계획을 한 것이다.


화성의 표면과 우주 먼지와 재 그리고 태양에서 나오는 원자, 분자 따위와 지구의 이끼에서 나오는 산소 같은 것과 함께 바퀴벌레들은 500년 동안 진화가 급격하게 가능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바퀴벌레는 파리에 비해 균을 50배 적게 옮긴다고 한다. 또 지구에서 가장 파괴력이 강한 미생물인 곰팡이의 포자도 바퀴벌레의 몸을 뚫지 못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곤충, 벌레 중에서 인간에 의해 훈련이 가능하다고 한다. 마우스가 미로를 찾아가는 것처럼 바퀴벌레도 그런 훈련이 가능하다네.


게다가 바퀴벌레는 천적의 공격에 죽은 척한다는 것이다. 고양이 같은 천적이 오면 엎드려 그대로 가만히 죽은 척을 한다. 고양이는 바퀴벌레를 먹으려는 건 아니지만 앞다리로 휙휙 가지고 노는데 죽어있으면 재미가 없어 그냥 가버린다고 한다.


병맛 영화인데 감독은 바퀴벌레에 대해서 꽤나 알아보고 이런 막 나가는 병맛 영화를 만든 것 같아서 쓸개가 우~리 하네. 근데 우~리 하다, 이 말이 사투리라메. 나는 사투리인 것도 모르고 지금껏 사용했네. 윈터가 의사한테 팔이 우~리 하네요,라고 해서 못 알아먹었다고 하던데 ㅋㅋ.


이 영화에는 한국인들도 다 알만한 배우들이 대거 나온다. 오구리 슌(제일 병맛 분장과 병맛 대사다), 타케이 에미, 야마삐, 키쿠치 린코, 코이케 에이코(사마귀로 변할 줄은), 이토 히데아키 등.


이 병맛으로 꽉 채운 영화의 병맛 감독이 미이케 다카시인데 위의 이토 히데아키를 데리고 찍은 사제지간의 끔찍한 사랑을 표현한 악의 교전은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졌다. 그리고 시간에 흘러 흘러 작년에 정해인과 고경표와 김뢰하를 데리고 만든 드라마가 골 때렸던 커넥트였다.

이렇게 해서 바퀴벌레 종족이 인간화가 되어 지구를 점령하러 올 때 하늘이 이런 빛을 발한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 번 해보았다. 언젠가부터 보이는 새로운 모든 것이 낙관보다는 비관적이고 염세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라는 인간 자체가 그런 모양이다.


유월이 지나간다. 이제 곧 칠월이다. 칠월은 개인적으로 일 년 중에 가장 좋아하는 달이다. 제일 태양이 뜨겁게 타오르고 해변이 해변다워지는 칠월이다. 장마에 오염수에, 예전만큼의 기쁜 마음은 들지 않지만 오는 계절을 밀어낼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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