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을 하다 마주하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은 사람을 멈추게 한다. 매년 보게 되는 이 빛들은 어쩐지 반갑지 만은 않다. 꼭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서 밥을 먹어야 하는 껄끄러움이 있다.


그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형형색색의 빛을 보고 있으면 여지없이 그 빛들은 나를 향해 지금 만족하느냐, 지금 행복하느냐, 그 정도면 괜찮은 거냐, 라고 조금은 강압적으로 말을 한다.


빛나는 크리스마스 불빛들은 어느새 괴물이 되어 모든 건 너 때문이야, 라고 말을 한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어서 도망치고 싶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불빛은 좀 더 무서운 얼굴을 한 채 나에게 소리를 지른다.


우주의 점보다 못한 존재로 넓은 하늘을 노래하고 모든 이들의 행복을 바라며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지질하고 소심하게 내 감정의 변이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대심한 사람은 여러 사람을 이롭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나처럼 소심한 사람은 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박준의 시에 보면 끌어안고 죽고 싶을 문장이 있는데 그 문장은 곧 사람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무서운 얼굴을 한 불빛에게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큰 소리로 대답할 날이 올까.


그런날이 온다면 나의 겨울은 그 어느때보다 따뜻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숨비 - 열여덟의 겨울 https://youtu.be/N4qoasM8-QM?si=DStHA7M33LmPWa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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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을 못자고 나왔지만

어제와 비슷하게 하늘은 푸르고 시리다

 

고개를 꺾어 밀사의 눈초리가 되어

하늘을 봤다


푸석푸석한 마른 공기도

얼굴에 닿는 차가운 바람도


인상을 쓰며 노인정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할아버지도


전부 평일과 다름없어서 다행이다


단풍은 아직 11월을 잊지 못해 12월에도

열심히 매달려 있고

우리는 오늘 어제처럼 삶에 매달리겠지


이런 무료함과 고즈넉에

울컥해지는 12월 4일이다


우리는 변화하되 변함없음을 보여준

위대한 시민이라는 걸,


위대한 시민 속에 너도 있고 나도 있었음을

기억해줘





가을이 오면 무너지지 않고 견뎌 왔음에 https://youtu.be/moVgOwYOXec?si=kDyyIokREOC7BlX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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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여기서부터는 완연한 다운타운이다. 오 분 정도 가면 도착이다. 그러나 그사이에 신호등이 다섯 개나 있다. 다운타운에서는 계절마다 축제를 한다. 마을 축제 같은 것이다. 다운타운이다 보니 가게가 많고 점포에서는 손님들을 끌기 위해 축제에 참여하는 빈도가 높다. 봄가을에 크고 작은 축제가 많이 열리지만 여름과 겨울에도 주말에 소규모의 축제가 열린다.               


 봄가을에는 도시 규모로 하는 대규모 축제가 열리는데 인기 있는 가수도 초청되어서 본격적인 축. 제. 가 펼쳐진다. 겨울이나 여름에는 지역 소상공인들이 주가 되어서 여는 축제는 규모가 자그마하지만 매년 꾸준하게 지치지 않고 개최해서 그만큼 수요도 늘어났다.     

           

 지난번 가을 축제는 멋있었다. 축제의 꽃은 아무래도 먹거리다. 축제 먹거리가 말이 많지만 그럼에도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은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는 먹거리를 사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친다면 축제가 아주 많이 열린다. 나는 예전에 아주 특이한 축제를 구경한 일이 있었다. 여자 친구와 휴가를 받아서 춘천으로 가는 길이었다.               


 둘 다 일이 바빠서 모두가 떠나는 시즌에는 여름휴가를 받지 못하고 한풀 꺾인 9월 초에 휴가를 떠났다. 남이섬으로 가는 길이었다. 남이섬에는 두 번째다. 첫 번째 남이섬에서의 추억이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또 가기로 했다. 여기에서 춘천까지는 아주 먼 거리로 7번 국도를 타고 죽 올라가는 여행길도 기분이 좋다. 우측으로 바다를 계속 보며 달릴 수 있다. 바다라는 건 늘 가까이에서 보는 친근한 바다가 있고, 먼 곳에서 보는 이질적인 바다가 있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오후 늦게 도착했다.     

          

 그러나 남이섬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우리는 춘천 시내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 날 남이섬으로 갔다. 배를 타고 남이섬 안으로 들어간다. 남이섬에는 한창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남이섬 안에도 호텔이 있는데 항상 만원이다. 언젠가 우리도? 같은 다짐을 하면서 남이섬의 축제 현장 안으로 들어섰다.     

           

 축제는 마치 미국의 웨스턴의 한 지역의 분위기였다. 섬 전체가 완전한 축제의 장이 된 것 같았다. 오전에는 아직 본격적으로 축제가 열리지 않았지만 구경할 것들은 많았다. 게 중에서 우리는 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된 공간에서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다. 색감이나 분위기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쓸쓸하게 보였다. 우리는 그림 하나에 붙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는 일은 간판 회사에서 디자인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란 그녀에게 있어서 애증 같은 것이었다. 떼어버리고 싶지만 뗄 수 없는 손모가지였다. 한 번은 애벗 맥닐 휘슬러의 그림에 대해서 몇 시간이나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 계기로 우리는 자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유명 화가의 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리면 기를 쓰고 기차를 타고 올라가서 볼 만큼 그림 전시를 관람하는 걸 좋아했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디자인을 선택했다. 미술대학에서는 교수의 추천까지 받았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무엇보다 시간을 들여 그림을 그려야 했다. 부모님을 사고로 전부 잃고 동생 두 명을 데리고 살던 그녀는 그럴 수만은 없었다. 현실이 폭력이 된 것이다. 무난하지만 그녀의 실력이면 디자인으로 생계는 충분히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응원했다. 틈틈이 그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만나서 데이트할 때도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작은 작업실에서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옆에 있어 주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다. 동기들을 만날 때마다 그녀는 주눅 들어갔다. 안 그러려고 하는데도 그게 잘 안되었다. 그녀는 죽고 못 살았던 대학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점점 피하게 되었다. 나는 어쩌면 그 친구들 대신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상관없었다. 그녀를 좋아했고 그녀 역시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녀의 두 동생 역시 나를 잘 따랐다. 명절에는 집으로 불러 같이 밥을 먹었다. 그녀는 회사에 다니며 착실하게 두 동생을 뒷바라지했다. 그러나 그녀 마음속 자괴감이 극심하게 올라올 때면 그녀는 제일 먼저 술을 찾았다. 처음에는 조금씩 마시던 술이 나중에는 술이 그녀를 집어삼키게 되었다. 우리는 데이트할 때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녀는 술을 마시면 절제가 되지 않았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셨다.     

          

 그녀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아서 병원을 찾아서 상담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 자신을 떠나지 않아서 고맙다고. 술만 마시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기 때문에 술만 피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어려운 것이 없다. 그렇게만 하면 쉬운 일이다. 술을 마신 후의 그녀는 너무 힘든 사람이지만 술을 마시지 않으면 한없이 사랑이 흐르는 사람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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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호철이는 상처받았다. 몸과 마음에 전부 상처를 입었다. 매일 상처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우리 학교와 중학교 사이의 하천으로 흐르는데 호철이는 걷다가 하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천에는 오리도 몇 마리 있었다. 하천은 그렇게 넓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하천도 아니었다.               


 나는 꿈에서 이 하천에서 남자가 빠져 죽어 있는 모습을 봐.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아. 남자는 밤새도록 그렇게 있었나 봐.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그런 소리가 들렸지. 엎드린 채 등이 부풀어 올라 그렇게 죽었나 봐. 그런 꿈을 꿔.라고 호철이가 말했다. 서늘하고 건조한 말투였다. 호철이 같지 않았다. 그날은 그렇게 호철이와 헤어졌다. 토요일이었다. 내가 호철이 집까지 바래다준다고 했지만 호철이는 애써 거절했다. 일요일에 호철이 집에 전화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여러 번 했지만, 신호음만 가고 호철이와 연결되지 않았다.                    

 화학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호철이는 고물상에서 이런저런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기름이나 약품을 많이 알고 있었다. 고물상에는 쥐들이 많이 나왔는데 지난번 호철이가 나에게 자신이 만든 약물로 쥐를 죽이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약품이 쥐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쥐가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호철이는 나에게 보여주었다. 쥐가 잠시 괴로워하는 것 같았지만 서서히 움직이면 둔해졌다. 그리고 쥐의 등이 부풀어 올랐다.         


 만약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약품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다고 호철이가 말했다. 그러나 호철이는 그 약품을 쥐를 잡는 데 사용할 뿐이었다. 그마저도 쥐를 잡는 약품이나 쥐약이 있어서 사용하지 않았다. 호철이는 모든 수업 시간에 공허하게 보냈어도 화학 시간만큼은 눈이 말똥말똥했다. 나는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간다고 하고 호철이 집으로 갔다. 고물상이 보였다. 고물상은 문이 닫혀 있었다. 일요일이니까 고물상도 쉬는 날이다. 나는 문틈으로 호철아! 호철아! 크게 불렀다. 고물상 근처에는 집들이 없었다.    


 주택지는 고물상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아무리 크게 불러도 호철이는 나오지 않았다. 내가 소리를 질러 근처 개들이 크게 짖었다. 틈으로 고물상 안을 보았다. 고물상은 마치 더 이상 반응이 없는 시체 같았다. 잘 보이지 않아서 틈으로 억지로 머리를 밀어 넣어서 안을 보았다. 저기 보이는 버스는 그냥 고장 나고 고물인 버스로만 보였고, 그 안에 생활할 수 있는 침구류 같은 물품도 보이지 않았다. 잘 보이지 않아서 없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어떤 작업복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야성 기업이라는 로고가 붙어 있는 작업복이었다. 40대로 보이는 아저씨였다. 너 누구야? 누군데 여기 출입 금지인데 들어와서 누굴 찾아?라고 했다. 고물상에 친구가 사는데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저씨는 나를 훑어보더니 빨리 가라고 했다. 나는 친구를 봐야 한다고 했다. 아저씨는 여기 고물상 자리는 철거지역이라 누구도 들어와서 살면 안 된다면서, 또 누구도 살지 않는다면서 여기는 위험하니 빨리 나가라고 했다.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하루 만에 이사했단 말인가. 아니지, 며칠 동안 이사를 준비해서 갔을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내일 호철이가 학교에 오면 물어보자. 괜찮은지 어떤지. 나는 도서관으로 가려다가 도서관에 가봐야 잠만 잘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로 갔다.      


 평일에 학교로 가는 길을 일요일에 걸으니 이상하지만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평일에 보던 풍경도 일요일에 보니 달랐다. 뭐가 다르냐고 물어도 딱히 대답할 길은 없었다. 문방구도 문을 다 닫았고 교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들도 보이지 않았다. 방방도 철수한 상태였다. 같은 거리인데 요일에 따라서 풍경이 달라졌다. 나는 방방이 있던 자리에 서서 방방을 타던 호철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우리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근데 하천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경찰차도 몇 대 보였다. 나는 그곳으로 갔다. 지금 막 휀스를 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서 무슨 일인지 봤다. 하천에 누군가 엎드려 있었다. 얼굴이 하천에 박힌 채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시체였다. 나는 시체를 처음 봤다. 서서 5분 정도 지났는데도 시체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하다, 시체니까. 하지만 얼굴을 물이 고인 하천에 박고 죽었다는 게 너무나 기묘한 모습이었다. 나는 저 남자가 누구인지 안다. 저 옷도, 키도. 내가 아는 사람과 같다. 시체는 등이 부풀어 있었다. 경찰이 나에게 돌아가라고 했다.                


 호철이는 월요일에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이제 나도 친구가 한 명도 없다. 호철이는 점점 아이들에게서 잊혔다. 영어 선생님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호철이는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방방, 컵라면과 도넛, 고물상 등.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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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하지만 호철이는 버스에서 생활하지 않고 밖에 있는 컨테이너에서 생활했다. 훨씬 크고 좋은 방이었지만 뭔가 아쉬웠다. 호철이의 방에는 재미있는,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다. 전자기기와 각종 부품 그리고 영화에서나 보던 철제로 된 무기 같은 것들이 가득 있었다. 호철이는 냄비에 있는 짜장을 데워서 밥 위에 올려 주었다. 우리는 그걸 맛있게 먹으면서 놀았다. 천국이었다. 호철이는 친구를 부르는 건 처음이니 나에게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내주었다. 하지만 호철이가 대부분 먹어 치웠다.             


 호철이는 사실 그렇게 많이 먹지도 않았다. 물론 나보다는 많이 먹었지만, 라면도 두 개 정도 먹으면 배불러했다. 라면 두 개 정도는 나도 가끔 끓여 먹었다. 라면은 졸이듯이 끓여서 먹는 걸 좋아해서 호철이와 나는 토요일에는 같이 라면을 끓여서 먹곤 했다. 호철이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마시멜로라고 부르는 선생님 중 가장 미운 사람은 영어 선생님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완벽하게 학벌주의, 성적 위주로 학생들을 대우했다.               

 그러니까 호철이와 나는 영어 선생님이 대우해 주는 학생에 속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어 성적이 제일 낮았기 때문이다. 영어 선생님은 억양을 몹시 중요하게 생각했다. 억양을 왜 그렇게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한국말이라면 억양 때문에 소통이 안 된다거나 하는 일이 없다. 영어는 억양이 이상하면 대화가 안 되는 것일까? 분명 그런 것도 아닐 텐데 선생님은 억양에 모든 수업을 할애했다.               


 억양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면 영어 선생님은 매를 들었다. 수업 시간 내내 억양만 가르쳤다. 그는 늘 드럼 채를 들고 다녔다. 그걸로 칠판을 탕탕 두드려가며 억양을 강조했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때도 드럼 채를 사용했다. 영어 시간에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호철이가 해 오지 않았다. 숙제는 아침에 반장이 전부 거둬간다. 호철이만 숙제를 내지 않고 있다가 재빠르게 날치기로 작성해서 제출했다.       

        

 억양을 표시해서 제출하는 게 숙제다. 호철이는 바빠서 억양을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표시해서 냈는데 영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들어오자마자 호철이를 불러냈다. 바로 옷소매를 걷고 나서 드럼 채로 머리를, 정수리부터 뒤통수까지 드럼을 치듯 때렸다. 호철이가 아파서 아야 아야 하는 소리를 냈을 때는 영어 선생님은 때리다가 더 화가 났는지 드럼 채를 마구 휘둘렀다.  

                            

 숙제를 지 마음대로 해와! 라며 소리를 지르더니 드럼 채로 등을 때리고 허벅지를 난도질했다. 호철이는 손으로 허벅지를 막다가 손가락도 맞았다. 호철이는 아파서 고통스러워했다. 영어 선생님은 그런 호철이의 모습에 더 화가 났다. 그따위로 숙제하니 영어 성적이 바닥을 기는 거야! 집에서 그렇게 가리키디! 라며 부모님까지 들먹이며 드럼 채를 마구 휘둘렀다. 영어 선생님은 자기가 때리다가 자기 분에 못 이겨 드럼 채를 격렬하게 휘둘렀다. 그때 복도를 지나가던 미술 선생님이 들어와서 말렸다.     

          

 진정 좀 하시라고, 하지만 이미 폭주 기관차가 된 영어 선생님은 멈추질 못했다. 미술 선생님은 뛰쳐나가고 반 아이들은 가만히 얼음처럼 있었다. 호철이는 맞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책상이 끼이이익 앞으로 밀려갔다. 그 소리에 영어 선생님이 나를 획 쳐다보았다. 드럼 채로 나를 가리키며 무서운 얼굴을 했다. 다시 쓰러진 호철이를 때리려는데 미술 선생님이 담임을 데리고 왔다.             


 호철이는 양호실에 누워 있었다. 우리는 늘 맞았지만 호철이는 이번에 충격이 컸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하던 친구였는데 내가 양호실에 있어도 그저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누워 있는 것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대체 선생님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호철이를 심하게 때린 걸까. 억양표시를 잘못했다고 해서 그렇게 학생을 구타할 수 있는 일일까. 애들 말을 들어보니 호철이는 영어 선생님에게 일 학년 때에도 많이 맞았다고 했다.               

 호철이는 몸에 멍이 들어도 집에 이야기하지 않았다. 고물상 하시는 부모님에게 걱정 끼치기 싫었고 또 학교에 부모님이 오는 것도 싫었다. 학교에 부모님들이 오면 대부분 촌지나 선물을 선생님에게 줬기 때문이다. 그걸 영어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 같다고 아이들이 그랬다. 호철이는 부모님에게 맞아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생이면 학생을 마음대로 폭행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이렇게 호철이를 개 패듯이 때릴 수 있을까. 그날 호철이가 양호실에서 나올 때까지 늦게까지 기다렸다. 호철이는 애써 웃음을 보였지만 매우 힘들어 보였다. 나는 호철이에게 택시를 타고 갈래?라고 물었다. 하지만 호철이는 걸어가기를 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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